명산100산산행기

춘천, 삼악산 산행기

범솥말 2025. 6. 15. 23:20

삼악산 산행기

화악지맥5구간 겸하기

산행일시: 20100309

누구와: 나홀로

산행거리: 19

산행시간: 9시간00(09:40~17:40)

산행코스:강촌(09:30)-등선봉들머리(09:40)-1.8km-등선봉(11:10,632m)-1.4km-청운봉(12:10,546m)-1.2km-용화봉(12:45,654m)-청운봉(13:15)-1.6km-석파령(14:10)-5.7km-삼악분기점(16:03)-작은촛대봉(16:05)-2km-가일고개(16:45)-4.1km-개곡리종점(17:40)

<등선봉에서, 구름에 가려있는 화악산과 중앙에 계관산이 보인다.>

 

석삼에 거칠악을 쓰는 이름을 가진 삼악산(三岳山)?

산림청 선정 100산의 하나인 삼악산은 한북정맥상의 포천의 백운산을 지나 도마치봉에서 동쪽으로 갈라져 석룡산, 화악산, 응봉, 촉대봉, 몽덕산, 가덕산, 북배산, 계관산을 지나 작은촛대봉에서 100m 지난 지점에서 우측으로는 가일고개를 지나 보납산으로 이어지는 화악지맥의 마지막 구간이며 작은 촛대봉에서 분기하여 좌측으로 갈라져 석파령을 지나 삼악산의 가운데 봉우리인 청운봉을 가운데 두고 좌측으로 1.2km지점에는 용화봉이 우측으로 1.4km(등선봉에서 강촌들머리까지1.8km)지점에는 등선봉을 두고 있는 산으로 북으로 춘천시내와 호반을 동남으로 젊은이들의 메카인 강촌을 남으로 시원스럽게 흐르는 남한강이 그리고 서북으로는 경기의 최고봉인 화악산을 비롯한 화악지맥의 능선이 감싸고 있는 경치가 아름다운 산이다.

삼악산은 이번이 4차례 올랐으며 최근에 오른 적은 200983일 영등포처형님과 처남 그리고 집사람과 함께 오른 적이 있으나 매번 오를 때 마다 상원사 길로 올라 등선폭포방향으로 내려가다 보니 그것이 전부 인 줄 알았는데 누군가의 글에서 "삼악산은 용화봉과 청운봉 그리고 등선봉까지 3개봉을 합쳐 삼악산이라 부르므로 3개봉을 오르지 않고는 삼악산을 올랐다고 할 수 없다"라는 주장을 받아 들여 기회가 된다면 3개봉을 한번에 밟아야 되겠다고 작심을 하였으며 오늘 비로써 3개봉과 아울러 화악지맥으로 분류하는 사람들이 있기에 5구간으로 생각하고 작은 촛대봉으로 가일고개까지 답사키로 정하고 청량리에서 열차에 올랐다.

 

등선봉 오르는 길.....

청량리에서 오전 750분에 출발한 기차는 강촌역에 928분에 도착하여 강촌의 다리를 건너 바로 들머리로 들어선다.

강촌역 다리에서 보는 등선봉과 북한강

개념도 상으로는 다리를 건너서 다시 육교를 건너 가평쪽으로 300m를 가다가 우측의 개발제한표석이 세워진 곳을 들머리로 하고 능선을 빗겨 오르다 408봉을 지나 능선과 합류하게 되어 있다고 했는데 하지만 육교를 건너서 육교 끝나는 지점의 입산통제 안내판 옆으로 들머리 안내 표식리본이 나풀거리고 있어 육교 옆을 들머리로 삼고 전격적인 산행에 들어선다.

들머리에서 본 강촌역

육교가 끝나는 지점 들머리

들머리 초입부터 된비알로 시작되는 길은 거의 4발로 오를 정도로 경사가 심했고 날이 풀렸다고는 하나 낙엽 밑은 아직도 얼어있어 미끄럽기까지 하였으니 오르는 길이 만만치는 않았으니 한 차례 된비알을 올라 완만한 경사지를 지나 우측으로 돌아 상수리나무 숲으로 이루어진 408봉에 도착을 하니 능선너머쪽은 암릉의 소나무지대로 아래는 자동차의 굉음과 의암호에서 흘러내리는 북한강의 멋진 풍광이 땀 흘려 오른 나를 달래준다.

칼바위 능선으로 오르며.....

잠시 숨을 돌리며 강 맞은편의 검봉산을 보니 강촌역 바로 뒤 437봉의 높이와 비슷함을 느끼니 많이 올라왔음을 실감하며 앞을 가로 막고 있는 570봉을 향해 서두른다.

408봉에서 570으로 잠시 지나가면 좌측으로는 또 다른 길과 만나는데 이곳이 개념도에 나와 있는 개발제한표석으로 오르는 길이며 이곳을 지나 408봉에서 570으로 오르는 길 좌측은 단애로 이루어진 절벽이며 절벽을 딛고 뿌리를 박은 소나무들의 기기묘묘한 모습이 인상적이고 우측으로는 사면을 이루고 있는 암릉과 그 밑으로 상수리나무들이 둥지를 틀고 지켜서 있다.

450봉에서 바라 본 570

570봉 가기 전인 450봉에서 570봉을 바라보는 경관은 표현하기 힘들 정도의 단애와 어우러진 노송들의 모습이 마치 한 폭의 동양화를 닮았고 칼바위로 이동을 하며 덩치 큰 바위를 우회하며 느끼는 스릴은 위험과 환희를 동반한 쾌감 바로 그것이다.

칼바위능선을 지나며.....

칼바위 능선에서 보는 명지산과 연인산

힘들게 570봉에 올라서니 사방이 탁 트여 조망이 최고였다.

잠시 숨을 돌리고 등선봉으로 향하니 계속 이어지는 경관이 놀라울 정도로 아름다워 혼자서 원더풀을 외치고 또 외친다.

 

등선봉에 서다.

등선폭포와 주변은 기암이 대단한데 이는 지반의 침식과 하각작용으로 인해 최고의 경관이 조성된 곳이어서 줄 곳 등선봉을 오르면서도 주변의 단애와 노송에 반해 힘든 줄 몰랐으며 등선봉 정상에 대한 생각이 머리를 지배하고 있었다.

작은 봉을 넘어 편한 길로 들어서다 막판에 경사가 급해지며 포근하게 느껴지는 공터가 나오니 이곳이 등선봉이다.

등선봉 정상석

중앙 북쪽으로 오석으로 설치한 정상석이 남으로 활렵수림에 걸려있는 정상판이 인상적인데 정상판에는 등선봉과 나사산강원도 모임이라고 표기하였는데 문고리장식을 박아 나무에 걸어둔 표지판이 서민적이어서인지 정감이 듬뿍 가며 활렵수림 아래쪽에 자그마한 삼각점이 햇빛을 받으며 나를 맞는다.

잠시 휴식을 취하며 사방을 조망한다.

남으로 시끄러웠던 강촌은 기차가 지나가는 시간을 빼고는 조용하여 평온하게 느껴졌고 그 뒤로 검봉과 봉화산이 보이고 뒤쪽으로는 팔봉산이 보인다.

등선봉에서 보는 강촌과 봉화산

등선봉에서 보는 연인산과 명지산

남서쪽에서 시계방향으로 용문산, 축령산 불기산, 대금산, 연인산, 명지산 화악산과 매봉 사이로 능선너머로 국망봉이 보이고 북배산과 오늘 산행의 종착점이 될 계관산, 작은촛대봉이 보인다.

사방을 감고 있는 힘찬 산맥은 흰 두건을 두른 용이 하늘로 솟아오르는 것처럼 흰 눈이 덮였으며 경기 제1의 화악산과 매봉은 흰 구름이 정상을 감고 있어 용이 승천하기위한 의식을 거행하는 듯 장관이었다.

휴식을 끝내고 616봉으로 가는 능선에는 성터가 나타나기 시작하고 616봉을 지나 청운봉으로 향하는 급경사 길은 음지로 험하고 잔설과 아직 녹지 않은 땅으로 미끄러워 항상 위험을 안고 있으며 곳곳이 낭떠러지기로 되어있어 잠시도 방관할 수 없는 길이다.

안부로 내려서 우측으로 흥국사를 통해 등선폭포로 내려서는 길을 지나 청운봉으로 올라서는데 등선봉에서 한참아래 낮은 봉우리로 보였던 청운봉의 오름길은 왜 그리 높게만 느껴지는지 걸음이 무겁고 느려진다.

 

비운의 왕 궁예의 전설이 서려 있는 곳 삼악산성지

청운봉 정상을 우화하며 뒤돌아본 등선봉은 616봉과 가운데 봉을 합쳐 등선3봉으로 부르면 더욱 더 아름답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며 안부에 이르니 흥국사로 내려가는 길목에 안내판이 있으니 삼악산성지에 대한 안내판이다.

이 험한 산꼭대기에 웬 산성인가 했더니 이것이 맥국산성이(麥國山城)라고도 하는 삼악산 서남쪽 지대를 둘러쌓은 삼악산성이다.

2km의 내성은 고구려 이전에 삭주(朔州:지금의 강원도 춘천)에 맥국(麥國)이라는 소 부족국가가 등선봉의 동남쪽 공간에 축조하였다 하고, 4km의 외성은 고려 말 왜구를 막기 위해서 흥국사를 중심으로 등선 폭포로 이어지는 계곡에 쌓았다고 하는데 이 산성은 궁예가 철원에서 왕건에게 패하고 피신하여 사용한 근거지라는 전설도 아울러 전해 오고 있다.

조금 아래쪽에 있는 흥국사는 궁예가 부처의 힘으로 나라를 재건하려고 하여 세운 절로 큰절이라고 불리었으며 이 근처를 대궐 터라고 불렀는가하면 근처 고을인 '작은초원’,큰초원은 당시 군마를 매어 두었던 곳이라 하여 말골이라 불렀으며 등선폭포근처의 아랫마을은 군사들이 옷을 말리던 바위가 있는 곳이라 하여 옷 바위다시 말해 의암(衣岩)이라 불렸는데 현재 의암댐은 여기에서 유래된 것이라고 한다.

강원도 문화제 제50호인 삼악산성지는 "삼한시대 맥국의 성이라고 전해지며 태봉국의 궁예가 왕건에게 패하여 패전군졸들과 함께 피신처로 이용했던 곳이라고 전해진다"고 하는데 경기도 북부와 강원도는 태봉국의 시조였던 궁예의 전설이 서려 있는 곳이 유난히 많은데 이곳 삼악산 궁예의 전설 외에도 왕건과 궁예에 얽힌 얘기는 많다.

성터

용화봉으로 가면서 보는 춘천호반

한탄강은 궁예가 왕좌를 빼앗기고 도망하면서 이 강에 이르러 강가의 모든 돌에 구멍이 뚫려 있음을 보고는 좀이 먹은 것으로 여겨 "나의 운명도 다했구나"라고 한탄했다 하여 한탄강이라는 이름이 생겨났다는 전설이 있으며 화악지막의 분기점인 도마치는 궁예가 왕건과의 전투에서 패하여 이곳을 통해 도망할 때 산길이 너무 험난하여 말에서 내려 끌며갔다고 하여 도마치라 부르게 되었다고 하며 도마치에 그리 멀지않은 국망봉의 산 이름은 도망치던 궁예가 이 산에 올라 자신의 도읍지 철원땅을 바라보며 한숨과 탄식에서 붙여진 이름이라하며 산정호수가 있는 명성산은 왕건에게 쫓긴 궁예가 이곳에 와서 대세가 기울었음을 느끼고 패잔군사의 생명을 보존토록 해산령을 내리자 군사들과 궁예가 소리내어 우니 산도 따라 울었다하여 붙여졌으며 여우고개는 궁예의 군사가 명성산에 피난하고 있을 때 왕건군사들이 궁예군사를 여우처럼 엿보았다고 해서 부르게 되었다는 전설이 있다.

 

봄맞이 채비를 하는 용화봉

궁예의 아픈 전설을 뒤로하고 용화봉 오름길을 오르고 좌우로 진달래 나무들은 점점 다가오는 봄을 맞을 채비에 바쁜지 꽉 다물었던 봉우리를 조심스럽게 키우고 있으니 앞으로 한 달이 못되어서 이들은 봄의 전령사로서 온 산을 붉게 물들이며 긴 잠에서 깨어나지 못한 나무들에게 이제 완연한 봄이 되었노라고 소리칠 것이다.

용화봉으로 가면 본 등선봉

길게 느껴졌던 오름길도 끝이 나고 어느새 나는 또 다른 이름인 성봉이라 불리는 용화봉 앞에 서고 용화봉에서 시원스럽게 내보이는 춘천시내와 호반을 보며 오름길의 힘들었던 느낌을 떨쳐버린다.

삼악산 등산의 멋은 의암호가 감싸고 있는 호반도시 춘천을 암릉의 능선에서 바라보는 감격으로 춘천시를 보면 의암호 한가운데에 떠 있는 모습으로 이러한 도시를 더욱 더 빛나게 해주는 요소 중 하나는 하늘을 찌를 듯한 암봉과 오랜 세월을 이 산과 함께하고 있는 노송과 애처로운 궁예의 전설이 있는 삼악산이 있어서 일 것이다.

용화봉에서 보는 춘천호반

용화봉에서.

하지만 조망 위치는 제격이나 꽉 들어찬 가스로 가까운 춘천 시내는 시야에 들어오나 멀리 화악산이나 용화산은 제대로 조망이 안 되고 형체만 보일 뿐이다.

한동안을 용화봉에 머물며 휴식을 취하다 보니 인기척에 이어 3팀에 8명을 만났는데 평일임을 감안하면 의외로 산님을 마났으며 가볍게 인사를 나누고 삼악산이 처음이라며 이것저것에 대해 물으니 아는 범위에서 설명을 해주고 안산에서 온 일행들이 등선폭포 부근에 있다하여 산성지 안내판까지 동행을 하다 헤어진다.

그분과 헤어지고 불운의 왕이었던 궁예를 생각하며 다시 청운봉으로 오른다.

불규칙한 성곽과 암릉을 따라 한참을 올라 청운봉에 선다.

청운봉에서 본 등선봉

청운봉 정상

청운봉에는 정상석이 없으며 무질서한 돌 무더기와 좁은 공간에 자은 상수리 나무가 전부인데 상수리나무에 둘산악회에서 청운봉이라는 코팅지를 매어 놓아 청운봉을 오르는 산님들에게 그나마 위안을 주고 있다.

이제 청운봉을 마지막으로 삼악을 모두 밟았으니 작은 촛대봉까지 7.3km의 능선과 가일고개까지의 1.4km의 능선 그리고 개곡리까지 4.7km가 남았다.

청운봉에서 간단히 점심을 해결하기로 하고 집사람이 정성스럽게 싸준 도시락을 풀며 산에 자주 가서 미안한 마음에 도시락이 없어도 된다고 큰소리 쳤지만 장거리 산행에서 굶으며 산행할 수는 없는 노릇이니 내 마음을 알고 챙겨주는 집사람에게 감사한 마음을 가져본다.

 

가자! 석파령으로.....

맛있게 점심을 해결하고 긴 능선을 향해 출발을 한다.

청운봉의 가파른 내리막을 시작으로 바위는 점점 멀어지고 405봉도 가기 전부터 바위는 찾아보기 힘들고 이내 지맥 분기점에서야 바위를 만날 수 있으니 능선은 전형적인 육산이다.

대부분의 능선이 그렇듯이 특정되어 있는 바위나 고개 그리고 수림의 분포 더 나가 산세로 인한 높낮이 등 이러한 사안은 조금씩 차이가 있을 것이나 그 외 모두 같을 것이다.

석파령을 가는 도중 등선봉을 보니 등선봉은 매우 아름답고 위용도 대단하다.

청운봉에서 바라 볼 때는 3봉으로 보였는데 이곳에서 보니 등선봉의 우측으로 등선 전위봉, 470, 450, 408봉이 점점 낮아지는 봉우리가 일정한 모습으로 나열되어 있으니 등선5봉이라 불러야 하겠고 601봉까지 합친다면 등선7봉으로 불러야 좋지 않을까?

옛날 가평과 춘천을 잇는 교통요지였던 석파령

청운봉을 떠난지 30여분이 지나 석파령에 도착한다.

비포장의 그런대로 잘 가꾸어진 석파령은 옛날에는 가평과 춘천을 잇는 주요한 교통의 요지였겠으나 지금은 남한강을 따라 4차선 자동차 전용도로를 만들고 경춘고속도로를 개통하는가하면 기차까지 매 시간마다 다니고 있으니 누가 석파령으로 넘어 다니겠으며 누가 석파령을 기억하고 있을까?

그나마 산을 찾는 우리같은 정맥꾼들이 기록을 찾아가며 옛날의 석파령과 현실을 견주어 보며 격세지감을 느끼곤 할 것이다.

예전에는 가평에서 춘천을 가기 위해서는 신연강이라하는 지금의 북한강을 건너 덕두원에서 이곳 석파령을 넘어 당림리로 가는 것이 일관된 통로였다고 하는데 춘천부사가 새로 발령을 받아 부임할 때 신구관들이 이곳 석파령 정상에서 임무 교대를 하며 가지고 온 돗자리 하나를 찢어서 나누어 앉았다는 유래가 있어서 석파령이라고 한다는 전설이 유래되고 있는 것으로 보아 이곳 석파령이 험하고 좁았던 모양인 것이 돗자리를 펴고 2명이 앉을 공간이 되지 않아 하나의 돗자리를 찢어 따로 앉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또한 신구간 부사는 각자 이곳 석파령에서 서로 의미가 다른 눈물을 흘렸다고 하는데 신임부사는 고개가 험해 힘들어서 울고 구임부사는 고을살이를 해보니 살기 좋고 인심이 좋아 떠나기 섭섭하여 울었다고 한다.

이곳에는 6.25 한국전쟁 전까지 이곳에 석파령지라는 돌비석이 세워져 있었다고 하는데 지금은 그모습을 찾아 볼 수 없고 나무로 만든 이정목이 길을 안내하고 있으나 지그시 눈을 감고 옛날을 느껴보면 험한 고개를 넘나들던 보부상들의 숨결을 느끼는듯 하기만 하다.

방화선을 따라

석파령을 지나 460봉을 오르는 능선에는 고사리밥이 지천이다.

봄이면 집사람과 산나물을 캐러 곧잘 다니는 나로서는 그냥 지나칠 문제는 아니지만 시기를 맞춰 이곳에 고사리를 꺾으러 오기가 쉽지 않다.

고사리밥이 있는 능선을 지나면 또 한차례 오르막이 시작되고 오르막을 넘어 구릉을 지나며 425봉에 도착하게 되는데 425봉정상부에는 잘 가꾸어진 묘기가 하나 있는데 호조참판을 지냈다는 분의 묘로 산중 높은 곳에 위치한 묘들은 대부분 잘 가꾸지 않고 방치하여 폐묘 모습이 되어있는 반면 이 묘는 작은 침엽수까지 심고 벌초도 말끔히 하며 조상들이 잘 유지하고 있으니 보기도 좋았다.

호조참판의 묘를 지나 망월리에서 능선너머 당림리로 넘는 임도 조금 못 미친 지점에 등산로 옆에 하얀 쌀을 새 먹이로 뿌려 놓았다.

누군가 아름다운 마음에서 새들과 함께하는 세상을 만들자고 먹이를 주었을 것은 당연하겠으나 나 이외의 자들을 불신하는 세상에 살다보니 순수한 마음도 의심부터 하게 되며 누군가 쌀에 약물을 묻히지는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임도에 내려서 이정표를 보니 계관산까지 2.4km가 남았으니 지맥 분기점까지는 1.5km가 남은 셈이다.

사방이 어두워지며 작은 눈발이 날리니 마음이 조급해지며 갈 길이 바빠진다.

능선 우측으로 산림은 큰 나무를 기준으로 작은 나무를 제거해주고 가지치기와 간벌로 보기 좋게 가꾸어 놓았다.

나무에 대한 관심이 많아 산을 다니면서 산림을 가꾸지 않아 그것을 보는 내 자신이 숨을 못 쉴 정도로 답답함을 느끼곤 했는데 이곳은 너무도 잘 가꾸어 놓았으니 보기에 좋고 기분도 좋아진다.

멀리 방화선 위로 분기점이 보인다

눈이 날리는 가운데 작은촛대봉과 방화선이 가까워진다.

잣나무 수림을 지나며 앞이 큰 또 하나의 묘를 나오고 방화선을 만난다.

방화선으로

이렇게 높은 지점에 웬 묘? 그것도 왕의 무덤만큼은 안 되더라도 정승의 무덤정도는 될 모양인 것이 조금 전 지나온 참판의 묘의 거의 2배는 될 듯싶다.

가족들이 제대로 관리하는지는 모르지만 방화선에 들어있어 나무를 제거하는 것은 기본이고 매년 방화선 정비 때 억새를 베니 폐묘가 되지는 않을 것 같다.

방화능선에 합류하여 넓은 방화선으로 걸으며 우측의 잣나무단지를 보니 다른 곳과 차이가 많은데 이곳은 명월리의 잣나무 육종지로 수확을 전문으로 하는데 일반적인 잣나무 단지는 잣나무가 키가 크게 자라므로 잣 수확하기가 힘들어서 잣나무를 사과나무나 배나무처럼 전지를 하여 키 높이를 인위적으로 조정하며 효율적으로 잣 수확을 하는 곳이기도 하다.

 

작은 촛대봉에 서서.....

바로 위 작은촛대봉을 오르는 길은 힘에 부친다.

길 옆 눈을 뭉쳐 이마와 얼굴에 맛사지를 해보지만 맛사지 할 때는 시원하지만 곳 얼굴이 얼어붙는 듯 추위를 느낀다.

삼악산 분기점

작은 촛대봉 정상

남은 힘을 다해 이정표가 있는 분기점에 도착하고 이어 바로 근체에 있는 작은촛대봉에 도착하여 삼각점을 보며 지난날을 회상해본다.

작년521일 새마포산악회와 소나기가 쏟아지는 우중산행을 하며 계관산을 지나 이곳 작은촛대봉까지 다녀갔으니 약9개월만에 삼각점과의 조우인 것이다.

눈이 날리며 가까이 계관산도 보이지 않고 삼악산도 보이지 않는다.

삼악산으로 갈라지는 분기점으로 와서 잠시 휴식을 취하며 가일고개까지 무사히 내려가기 위한 운기를 모은다.

다시 화악지맥4구간으로 접어들어 비탈진 능선을 타고 내려서서 30여분을 걸어 가일고개에 도착한다.

가일고개에서 본 계관산 정상

개곡리 군내버스 종점

시간을 확인하니 510분전으로 개곡리 종점에서 가평으로 나가는 마지막 버스가 6시에 있으니 알맞은 시간에 무사히 산행을 마쳤다.

날리던 눈은 어느새 멈추고 산중의 어둠은 예상보다 빨리 찾아들고 있다.

 

 

삼악산 산행기(2)

 

산행일시: 2009083

누구와: 태숙처형님, 권태욱, 집사람 그리고 나

산행거리: 5.1

산행시간: 4시간55(10:00~14:55)

산행코스:삼악산입구(10:00)-상원사(10:25)-정상<용화봉>(12:20.654m)-흥국사(13:50)-등선폭포(14:50)-등선폭포날머리(14:55)

10여년전부턴가 정맥과 대간을 산행하다가 집사람의 반대로 안내산악회와 인연을 맺고 언제부턴가 산림청 100산을 밟기 시작했다.

그리고 최근 들어 집사람과 몇 차례 산행을 하며 집사람이 힘들어 하지만 보람을 갖는 것 같아 내가 운동이 덜 되더라도 함께 갈려 노력중이다.

며칠전 영등포 처형님과 용화산을 다녀오며 다음에 삼악산을 가기로 구두로 약속을 한터라 산행지를 춘천의 삼악산으로 잡고 산행준비를 하다말고 개인택시를 운영하는 처남에게 연락을 하여 4명이 함께 산행하기로 했는데 처남은 개인택시를 하므로 등산이 필수이나 쉬는 날이면 운동을 멀리하고 술과 가까이 하다 보니 몸 상태도 좋지 않아 억지로 함께 가기로 한 것이다.

삼악산은 산림청 선정 명산100산에 들어있으며 선정사유를 고고시대에 형성된 등선계곡과 맥국시대의 산성터가 있는 유서 깊은 산으로 기암괴석의 경관이 아름답고, 의암호와 북한강을 굽어보는 조망이 좋은 점 등을 고려하여 선정하였다한다.

삼악산은 소양댐과 춘천댐에서 흘러내린 물이 의암호를 만들어 춘천호반과 북한강의 푸른 강변을 끼고 강촌역 뒤에 있는 검봉산 그리고 봉화산과 마주하여 솟은 산으로 주봉이 용화봉(645m)으로 용화봉과 계관산으로 이어지는 갈림길인 청운봉(546m) 그리고 등선폭포 위로 솟아 있는 등선봉(632m)을 가리켜 삼악으로 표기하여 삼악산이라 하는데 이러한 삼악에 대해 제대로 알고 이해하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듯 싶다.

산 이름에서 나타나듯이 거칠악()자가 들어있어 곳곳에 여러 가지 형상을 한 크고 작은 기이한 바위가 많다.

10여년전 오른적이 있으나 당시에는 산림청 100산이 선정되기 이전이었고 춘천에 다른 볼 일이 있어 들렸다가 마음의 준비도 안 된 상태에서 상원사 입그를 들머리로 하고 출발해 등선폭포로 내려섰었다.

이제 10년만에 다시 집사람과 삼악을 찾은 것이다.

이러한 삼악과의 만남을 위해 우리는 의암댐옆 삼악산 들머리 좁은 주차장에 주차를 하고 가파른 길을 통해 삼악산과 조우를 한다.

5분정도 오르니 강이 내려다보이고 앞과 뒤 풍광이 뛰어난 카페가 있는데 아침 이른 시간이라 문을 열지 않은 것 같다.

카페에서 조금을 오르니 아주머니 한분과 아들로 보이는 한사람을 데리고 우측으로 내려서며 팬션으로 내려가는 길이라며 팬션을 거쳐 오르면 입장료 1.600원을 내지 않고 산을 오를 수 있다고 하나 외지에 사는 사람들이 지리에 익숙치 못하니 정상적으로 입장료를 지불하고 오를 수밖에 없는 일이다.

갈림길을 지나 가파른 등산로를 따라 오르며 좌측의 기암들이 푸른 나뭇잎과 어우러져 멋진 경치를 만들고 건너편 기암도 가운데 강을 두고 제멋을 풍긴다.

상원사에 도착하니 용인에서 왔다는 부부와 함께 쉬는 사이 집에서 가지고 간 칡술을 나누며 산에 대한 얘기로 한동안을 보낸다.

상원사를 지나 이어지는 깔딱고개를 오르며 처남은 무척이나 힘들어한다.

안부에 도착하여 한숨을 돌리고 간식으로 가지고 간 과일로 갈증을 해소한다. 쉼을 하고 있는 사이 좌측에서 한분이 올라오는데 현지인으로 입장료를 내지 않는 코스로 의암댐을 조금 지나 좌측으로 오르면 길이 있다고 다음부터는 그곳을 이용하라고 일러준다.

안부부터 정상까지는 800m로 계속 4발로 올라야 하는 코스다.

눈이 오면 오르는데 상당한 어려움이 있을 것 같고 오르면서 수시로 뒤를 돌아보면 위치와 각도에 따라 발아래 펼쳐지는 춘천시 전경과 멀리 용화산과 오봉산 그리고 중도와 붕어섬, 의암댐 등이 같이 어우러진 경치가 일품이다.

정상을 200m앞두고 암봉 능선에서의 조망은 일품이다.

화악산에서 이어지는 지맥능선이 한눈에 들어오고 강 건너 봉화산이 가까이에 있다.

직사광선이 우리를 지체할 수 없게 만들고 이내 정상으로 발길을 돌리게 한다.

아래쪽 깔딱에서는 200m가 멀게만 느껴졌는데 정상은 눈 깜빡할 사이 도착을 한다.

정상에는 더운 날씨에 거친 숨을 쉬면서 다가서는 우리를 정상석이 반갑게 맞아주고 오래전부터 알고 지낸 친구를 대하듯 미소 띤 얼굴로 답례를 건네고는 연실 카메라 초점을 맞추고 눌러댄다.

한동안 부산을 떨고는 금강산도 식후경이라 했으니 일단은 배를 채우고 볼일이다.

알맞은 자리를 잡아 준비해온 찬에 처형님께서 지어오신 찰밥을 보태니 바로 이게 임금님수라상이고 진수성찬이다.

내 입장에서는 시간과 거리가 너무 짧아 등선봉까지 가고 싶었으나 힘들어하는 처형과 처남을 보니 말을 꺼내기가 어려웠다.

그렇게 해서 정상에서 직진으로 방향을 잡아 청운봉으로 해서 등선봉으로 하산했어야 삼악을 밟는데 정상인 용화봉만을 밟고 내려섰으니 3악산에 가서 1악을 밟고 온 미완의 등정이 되고 만 것이다.

하산 길은 비교적 양호하여 별 어려움 없이 내려선다.

옛 성터를 지나 흥국사로 내려서니 갑자기 마주치는 사람들의 수가 늘어나는 것은 아마도 등선폭포로 입장한 일반관람객이 흥국사까지 계곡을 따라 올라오기 때문인 것 같다.

흥국사에서 수백m를 내려오다 탁족을 하기위해 알맞은 자리를 잡고 차가운 물에 발을 담그고 신선이 되어 시간을 보낸다.

생각같아서 옷을 훌러덩 벗어버리고 물속으로 들어가고 싶으나 그럴 수는 없는 일이고 약식으로 등목을 하니 차가운 기운이 온몸으로 퍼지며 더위를 몰아낸다.

한동안을 놀다 다시 하산을 시작하니 가면 갈수록 비경이 눈앞에 펼쳐지고 이윽고 선녀탕과 등선폭포의 아름다운 비경이 우리의 눈앞에 현실로 다가서니 황홀할 정도로 예술의 극치였다.

산을 다니노라면 곳곳마다 아름다운 비경은 무수히 많으나 각자의 산들은 그 산이 지니고 있는 나름대로의 아름다움을 가지고 날개 편 공작처럼 오가는 산님들의 눈요기와 기쁨조 되어준다.

폭포아래에 도착하여 차량을 회수하기 위해 지하도를 건너 버스를 기다리며 등선봉의 비경에 빨려 들어가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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