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문산 산행기(2003년)
용문산 동북능선을 타다
(옛날 산행기로 사진이 없습니다.)
산행일 : 2003년 2월 3일
누구 : 나 홀로
교통편 : 통일호 6시50분 청량리 출발 -> 8시15분 용문역 도착 -> 8시 40분 용문터미널에서 버스 출발 -> 9시 용문산 입구 도착
산행코스 : 용문광장 9시출발 -> 용각바위 9시25분 -> 마당바위 9시 35분 -> 능선갈림길 3거리 10시 10분 -> 용문산 북정상 전망대 11시 10분 -> 가협치 -> 문래재 12시 40분 -> 1004봉 1시 10분 -> 윗고북갈림길 삼거리 2시 20분 -> 도일봉 갈림 삼거리 2시 50분 -> 823봉 3시 10분 -> 용계계곡 삼거리 3시 25분 -> 용계계곡 -> 신점리 용문광장 4시 25분
산행시간 : 7시간 25분
도상거리 : 약12km

구정 전 전국적으로 많은 눈이 내렸다.
텔레비전 뉴스에서는 일가족 4명이 포천 국망봉으로 산행을 갔다가 길을 잃어, 구조대를 찾으러 갔던 1명은 살고 고립되었던 3명이 저체온증으로 사망했다는 소식을 전한다.
연휴에 일찌감치 서울로 구정 다음낭 산에는 눈이 많이 쌓인데다가 집사람의 만류를 뿌리치고 어느 산을 갈까 망설이다 정한 산이 용문산이다.
새벽부터 서둘러 청량리에서 열차를 타고 용문역에 내려 버스로 환승하여 9시 정각에 용문산 매표소를 통과하여 힘찬 발걸음으로 오늘 산행을 시작한다.
부지런한 걸음으로 용문사를 지나 계곡으로 접어들어 이마에 땀이 비 오듯 흐를 즈음 용각바위에 도착한다.
잠시 바위 밑에서 용각바위를 올려다봐도 용뿔 형상은 느낄 수가 없다.
길을 가는 산객들의 지루함을 달래주기 위해 재미있게 이름을 붙였다 생각하여 걸음을 재촉한다.
마당바위를 지나 조금 올라가니 좌측으로 능선을 오르는 급경사 길이고 우측에는 계곡 건너로 나무목재 다리가 있는데 아무도 건너간 자국이 없다. 지도를 꺼내 다시 한번 확인 해보지만. 분명 그 다리를 지나 계곡으로 접어들어야 가협치가 나올 것 같은데 발자국도 없고 표지기 리본도 아무리 봐도 없다.
조금 더 올라가다 보면 표지기도 있고 발자국도 있겠지 하는 마음으로 가파른 길을 올라가 봐도 가협치로 가는 길은 없고 능선삼거리에 다다랐다.
다시 내려가서 다리 건너로 가볼까 생각해봤지만 자신이 생기지 않는다.
정상에서 누가 갔을지 모른다는 희망을 가지고 부지런히 재촉하여 약 2시간만인 11시경 북 정상에 닿지만 군부대 때문에 최고점에는 서지 못하지만 정상 밑에 전망바위에 올라가서 주변경관을 조망한다.
서북쪽 하늘에는 스모그 가스층이 생긴 것이 일출 전 수평선 위를 보는 것 같은 환상적이었는데 스모그 가스층 위로 암봉 하나가 튀어나온 것이 운악이 아닌가 생각이 된다.
동 북릉을 보니 능선을 타고 흰 눈이 한없이 길게 이어져 있다.
1000m 급 무명봉을 시작으로 가협치, 문래재, 1004봉에서 우측으로 이어지는 능선은 한없이 주저앉았다가 다시 솟구쳐 올라 726봉을 이루고 726봉 밑으로 고압선 철탑 두 개가 흉물스럽게 자리를 하고 있다. 726봉에서 다시 주저앉았다가 솟구쳐 일어나며 중원산과 도일봉 갈림길 능선을 이룬다.
저 곳을 가야 한다.
그러나 어떻게 건너편 능선으로 가야 하나.
아무도 간 흔적이 없다. 한참을 망설이다가 전망대에서 아래로 내려선다.
눈은 장난이 아니다.
깊은 곳은 허리까지 차지만 거리가 짧아 무모하게 계곡을 횡단해 본다.
70~80m를 가자 양지바른 곳에는 눈은 없으나 땅이 얼어 미끄럽기는 마찬가지다.
그러나 한 계곡을 돌아서 정상에서 동북릉으로 이어지는 능선은 정상에서 볼 때와는 너무나 다르다. 햇빛이 드는 쪽은 녹았던 눈이 다시 얼어 표면이 딱딱하게 굳어 한발 한 발 내딛을 때 마다 허벅지와 정강이가 녹다가 다시 언 눈에 긁혀 무척이나 아프고 햇빛이 들지 않는 쪽의 눈은 부드러우나 눈의 깊이가 기본이 1m 이며 눈이 많은 곳은 다리가 모두 묻혀 걷기조차 불편하다.
사람이 다닌 흔적도 없고 표지기 리본도 하나도 없다.
한참을 고전하며 가다보니 빨간 표시기하나가 눈에 띈다.
무지하게 반가운 마음에 가까이 가서 보니 「한강 정맥종주 박찬성님」의 자취였다.
지도를 꺼내보니 가엽치에 온 것 같다.
한참을 가다 용문봉과 동북릉으로 갈라지고 나는 계속 동북릉으로 간다.
눈은 계속 무자비하게 쌓여있고 힘도 많이 든다.
하지만 기분은 좋은 편이다.
등산로의 흔적은 전혀 찾아볼 수 없으나 산짐승의 발자국이 등산로인 것 같다는 생각으로 계속 산짐승의 발자국을 따라 가다보니 눈이 허리까지 찬다. 혼자 외로이 눈 속을 헤매다보니 노란 표시기와 분홍 표시기가 하나씩 나부낀다.
이곳이 문래재라는 것을 느낄 수가 있었는데 가협치와 문래재 사이에서 눈속을 무지하게 헤매 힘도 많이 빠졌으므로 하산을 하고 싶은데 걱정이 태산이다.
태화 관광 산우회와 인천의 어느 산우회의 표지기로 조계로 가는 길목을 가리키고 있으나 발자국의 흔적이 전혀 없어 위험을 무릎쓰고 계곡으로 내려 설 자신이 생기지 않아 다음 안부에서 탈출하기로 한다.
시간은 12시 39분을 가리키고 있다.
992봉과 1004봉의 경사진 능선을 오르는 길은 양지 바른 쪽이라 눈은 없으나 낙엽 밑에는 얼어붙은 얼음이라 무척이나 미끄러웠고 어려운 가운데 경사진 오르막을 지나 1004봉에 도착한다.
1004봉에서 잠시 휴식을 취하며 길게 늘어선 고압철탑과 저 멀리 산간마을 보며 힘을 북돋으며 무거운 몸을 일으켜 세우며 우측 능선을 타고 내려선다.
짐승이 여기 저기 땅을 쑤셔댄 것이 야생 멧돼지가 서식하는 것 같은데 문래재 부근에서도 돼지발자국을 여러 번 보았는데 만약 이런 상황에서 멧돼지를 만나면 어떻게 해야 하는 건가? 하는 생각을 하며 능선을 따라 한참을 내려 오다보니 능선이 갈라진다.
계속 밑으로 가야 하는지 우측으로 이동해야하는지 도무지 감이 잡히지 않는 상태에서 좌측으로 가다말고 잘못 가는 것 같은 생각에 우측 능선으로 등로를 바꾼다.
표지기도 없고 등로도 없이 다만 감으로 갈 뿐이다.
얼마를 내려섰을까?
700여m 이상을 내려와서 보니 먼저 가던 능선이 옳은 길이고 지금 가고 있는 능선은 길이 없다.
가다말고 한참을 망설이며 빽으로 700m를 가서 되돌아 와야 하는지 깊은 계곡을 가로질러야 하는지 결정하기가 힘들어 시간을 보내다 고심 끝에 내린 결정은 협곡을 가로지르기로 했다.
경사가 무척 심하고 눈도 무척 많다.
조심조심 나무를 잡으며 계곡 밑으로 내려서다 왼쪽 팔 부상을 당하며 협곡 밑 부분까지 내려서 이제 조금만 더 가면 위기에서 탈출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며 앞으로 발을 내딛는다.
헉..이거 정말 장난이 아니다.
가슴까지 눈이 차는데 겁도 많이 난다. (최고 하이라이트였음)
대낮이지만 이곳은 햇빛 한 점 없고 인적은 고사하고 인간의 냄새조차 없다.
가시나무와 가시덤불이 조급한 내 마음을 더욱 더 불안하게 부추긴다.
가까스로 탈출하고 능선에 걸터앉아 하늘을 본다.
하늘은 가을처럼 구름 한 점 없이 높다.
서서히 추위가 몰려오고 이러다가 저 체온증이 오면 어떡하나?
이런 식으로 어디까지 가야하나?
왜 용문산 동북릉에는 산행을 하는 사람이 없나?
혼자서 너무 무리한 산행을 하고 있다는 후회가 끝없이 이어진다.
등산화와 바지는 흠뻑 젖었다. 눈이 많을 것이라고 생각을 했으면서도 스패츠는 집에 두고 와 등산화 끈으로 바지끝단을 묶어 스패츠를 대신했다.
다시 힘을 내어 산행을 하다 보니 고압철탑의 윗고북 삼거리 안부에 닿는다.
지도를 꺼내 보니 사거리인 것 같으나 조계 쪽으로는 등산로가 없고 표지기도 없다. 문래재에서는 이곳에 와서 조계로 탈출하려했는데 사람이 지나간 흔적이 없어 무작정 계곡으로 내려설 수 없는 입장이었다.
지도를 보고 윗고북으로 탈출할까 생각하다 시계를 보니 2시가 조금 넘었다.
시간이 이르다는 생각에 산행을 하기로 마음먹고 계속 직진을 하다보면 용계로 빠지는 길이 있을 것이라고 기대를 하고 가파른 오르막을 힘들여 오른다.
언 눈에 스쳐서인지 한쪽 다리에 통중이 온다.
거친 눈길을 몇 시간째 휘 집고 다니니 그럴만하다.
경사진 등산로를 따라 823봉을 향해 올라가다 보니 좌측으로 능선이 갈라져 나갔다. 지도를 꺼내 보니 싸리재 도일봉과 중원산으로 갈라지는 갈림길이다.
처음 생각에는 도일봉으로 예정을 했었으나 사정이 안 좋아 중원산으로 방향을 잡고 823봉에 도착하여 잠시 휴식을 갖는다.
멀리 지나 온 용문산 정상이 보이고 능선을 따라 내려온 길을 더듬어 본다.
현재까지 오기는 잘 왔으나 인적이 없어 어떻게 하산을 해야 하는지 문제로 이제 여기서 바라는 것은 중원산 입구 갈림길에서 누군가 용계로 내려갔으면 하는 기대를 할 수 밖에 없다.
누군가가 용계를 거쳐 중원산을 다녀간 산객이 있기를 바라는 기대 속에 얼마 남지 않은 지점을 향해 급한 걸음으로 내달려 용계 갈림길 삼거리에 닿는다.
진홍색 표지기가 바람에 나부끼며 갈림길을 알려주고 있으며 눈 위에 3~4명의 발자국이 나 있다.
반가웠다.
기뻤다.
사지에서 돌아온 느낌이다.
가벼운 마음으로 차 한 잔을 마시며 기분 좋은 휴식을 취하고 어린 아이 같은 마음으로 하산을 한다.
아무도 보지 않는 산중에서 엉덩방아를 찧으며 넘어지기를 몇 번. 눈이 많고 배낭을 메고 있어 다치지는 않았고 30분이면 내려갈 것으로 생각했던 하산길이 꼬박 한 시간이 걸렸다.
4시 25분 신점리 용문광장 주차장에 닿는다.
산속에서 고립되어 언제 어떻게 내려가야 하나 걱정하던 것이 모두 해소되고 아무도 가지 않은 산행을 하여 다른 산객이 내가 간 발자국을 따라 편한 마음으로 산행을 할 수 있다면 오늘의 고생은 헛되지 않으리라 생각한다.
에필로그
경기도 내에서 제일 높은 산은 화악산이며 그 뒤로 명지산, 국망봉 그리고 용문산 일 듯싶다.
화악산과 명지산 그리고 국망봉은 대체적으로 육산인 반면 용문산은 육산과 암봉을 겸비하고 계곡 또한 많아 어느 산에 비해 손색이 없다.
서쪽 양평으로부터 암봉으로 이루어져 있는 백운봉(936m)과 영우봉(887m) 함왕봉(887m) 장군봉(1064m) 용문산 정상(1157m) 1004봉 823봉 824봉 중원산(801m) 도일봉(864m) 으로 이어지는 능선은 웅장하면서도 세련미가 넘치고 수목도 활엽수지대와 침엽수 지대가 암봉들과 어우러져 조화를 이루고 있는 산으로 여러분들께 종주를 권하고 싶다.
지난 2002년 12월 31일 백안리 새수골에서 백운봉 영우봉 함왕봉 장군봉 용문산 남정상 용문산 북정상을 경유 용문사 주차장까지 정상 기점 서릉을 종주하였고 그 후 북릉 및 동북릉을 종주하기로 마음먹었었다.
이번 산행은 너무 힘들었고 정신적인 부담도 무척이나 컸다.
며칠이 지나고 나서 산행기를 쓰는 것이 내가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실감하면서.........
더욱이 포천 국망봉 조난사고가 난 다음날로 부담을 더욱 가졌고 예상했던 것과 전혀 다르게 산꾼들이 전혀 산행을 하지 않은 코스와 생각보다 눈이 많이 쌓여있었다는 점에서 예상이 완전히 빗나가고 말았다.
전국에 분포되어 있는 명산은 많다.
하지만 수도권에서 아주 가까이에 있어 교통이 좋고 산세도 좋은데 찾는 산객들이 너무 적다는 것이 다소 아쉽다.
지난 12월 서릉 종주 때도 구간 산객을 몇 명 만났을 뿐 종주하는 산객을 만나지 못했고 이번 동북릉 종주 때도 단 한명의 산객도 만날 수가 없었다.
인간의 냄새가 소중함을 깨닫게 해준 산행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용문산 종주에 참여했으면 하는 바람이 크다.
산행기를 옮기며
이 산행기록은 22년전 산행입니다.
당시 현장감을 생각하면 지금도 겁이 덜컥납니다.
50살때이므로 겁이 없었고 산행이 뭔지도 제대로 알지도못하면서 패기로 산행을 했을 때입니다.
포천에서 3명이 눈속에 고립되었다가 저체온증으로 사망한 다음날, 이날이 구정 다음날입니다.
생각보다 눈이 많이왔는데 용문산 정상(지금의 정상 아래 바위)을 오른 사람은 아무도 없었는데 지금생각하면 한강기맥의 천사봉과도일봉 능선을 간다고 가슴까지 차는 눈을헤치고 가엽치, 문례재로 지났는데 지금같았으면 마음에 조급함을 느껴 죽었을지도 몰랐을 텐데 그때는 걱정을 하면서도 죽을 수 있다는 생각은 하지 않고 길을 찾았기 때문에 마음이 안정되어 무사히 하산을 했던 것 같은데 요즘은 이렇게 무모한 산행을하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산행기를 옮기며 다시 읽어 보아도 그때는 운이 억세세 좋았던 것 같습니다.
용문산 산행기(2002년)
(옛날 산행기로 사진이 없습니다.)
산행일 : 2002년12월 31일
누구와 : 나홀로
산행시간:5시간45분(10:30~16:15)
산행코스:백현3리(새수골10:30)-백운봉(940m)-영우봉(877m)-함왕봉(947m)-장군봉(1064m,13:45)-용문산정상(1157m,15:00) -용문광장(16:15)

용문사에서 출발한 버스는 용문을 경유하여 양평으로 달린다.
달리는 차창 밖으로 용문산의 웅장하면서도 장엄한 모습이 마치 용이 트림을 하는 냥, 길고 긴 능선의 기운이 넘치는 형상을 보며 감회에 젖는다.
백운봉을 시작으로 영우봉과 함왕봉, 장군봉 그리고 용문산의 정상, 저 길고 긴 능선을 걸어 넘었다니 스스로 대단하다는 생각을 해 본다.
오늘이 지나면
2002년은 영원히 역사속으로 사라지고 어둠이 창아온 뒤 다시 태양이 떠오르면 2003년이시작된다.
오늘은 2002년의 마지막 날,
뜻있는 한 해를 매듭짓는 마무리 산행을 용문산으로 정하고 조금 늦은 9시에 서울을 출발 양평을 거쳐 백현3리(새수골) 염광생활관 앞에 10시 30분에 도착한다.
용문산(龍門山)은
산 이름에서 풍기는 것처럼 진짜 용의 산세로 한국의 마테호른이라 칭하는 백운봉을 머리로 하고 길게 늘어진 능선을 타고 영우봉,함왕봉과 장군봉을 만들고 정상을 넘으며 한강기맥 길을 두루 휘감고 가슴에는 천년의 세월을 한자리에 있으며 모진풍상을 격은 용문사와 용문사의 은행나무를 품고 주위에는 자산들인 처읍산, 유명산, 대부산, 소구니산, 어비산, 봉미산, 천사봉, 중원산 등이 떠 바치고 있는 제왕으로 어느 산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다.
용문산의 높이 1157m로 경기도에서는 화악산과 명지산에 이어 세 번째로 높으나 1000m 넘는 산이 즐비하게 있는 강원도 산보다 더 높게 보이는 건 산행 들머리가 아주 낮기 때문이다.
들머리에 도착해 간단한 운동으로 몸을 푼 뒤 새수골에서 산행을 시작한다.
10여분 올라 도착한 곳은 물이 맑아 아무 생각 없이 발을 담그고 싶다는 탁족대이나 때가 한 겨울인 만큼 믈이 흐를리 없고 물은 모두 얼어 탁족대의 실감을 느끼지 못하고 가던 길로 20여분 오르니 백년약수에 도착을 한다.
백년약수는 새수골로 흐르는 실개천의 발원지로 약수터까지는 많은 사람들이 수시로 왕래하는 곳으로 등산로도 그런대로 넓고 잘 갖춰져 있으며 우기 같으면 수량이 많이 샘솟을 텐데 한 겨울이라 그런지 어린 아이의 오줌처럼 샘의 명맥을 유지할 뿐으로 힘없이 떨어지는 약수를 받아 마시고 발걸음을 옮겨 약간 가파른 길을 15분 정도 오르면 헬기장이 있다.
헬기장은 능선 상에 있으므로 계곡의 답답함에서 조망이 사방으로 열린 능선에 서니 장쾌한 능선을 타고 이어지는 용문산의 위용을 실감 할 수 있으며 언제나 구름에 싸여 본 모습을 드러내기 싫어하던 백운봉이 이렇게 또렷하고 선명하게 눈앞에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철사다리가 약간의 흉물스럽긴 하지만 신애리로 길게 뻗어 내린 능선은 금강의 한 부분을 옮겨 놓은 것처럼 보기에 좋았고 말로만 들어오던 백운봉과의 만남을 생각하며 갈 길을 재촉하니 숨이 목까지 차며 땀이 하염없이 흘러내린다.
그렇게 얼마를 올랐을까? 힘이 많이 들다 싶을 때 백운봉 (940m)정상에 도착을 하여 정상석을 안아 본다.
옆에는 백두산에서 통일을 염원하기 위해 가지고 온 돌을 위에 안치하고 만든 탑이 있고 안전을 고려해 만든 전망대가 일품으로 전망대에서는 사방 어느 곳이나 조망할 수 있으며 양평시내는 발아래 있으니 한 눈에 내려 다 보이고 여주로부터 내려오는 남한강 줄기는 굽이굽이 말없이 흐르며 팔당까지 흐른다.
시간가는 줄 모르고 많은 시간을 보내다 백운봉을 뒤로하고 내려가는 길은 그냥도 힘들고 험한 난코스인데 눈이 와서 녹다가 다시 얼어 빙판이 되어버린 길을 철난간과 밧줄을 잡고 조심스럽게 쩔쩔매며 내서 험로를 벗어나 사나사 계곡에서 오르는 능선과 만나는 삼거리에 닿는다.

잠시 사방을 둘러보며 휴식을 취한 뒤 경사진 길을 어렵게 올라서니 험로인 내리막길 그리고 다시 바위절벽 오르막길과 바위길로 이어지는 등산로가 눈과 얼음으로 무척이나 조심스럽다.
쉽지만 않은 암릉길을 지나 절벽과 노송이 함께 어우러져 진풍경을 연출하는 영우봉(887m)에 도착하여 전망대에서 주위 경관을 훑어보고 잠시 휴식을 취하며. 배낭 속에 있는 행동식(가지고 간 행동식: 귤 한개, 사과 한 개, 흰 가래떡 15cm 짜리 3개 와 물 1 리터 , 커피 1리터)을 꺼내 요기를 하며 깊은 생각에 잠긴다.
오늘이 가면 내 나이 50이다.
나이50 지천명이라 했는데........
지천명(知天命)이란 공자 위정편에 나오는 말로 나이 쉰에 천명(天命)을 알았다고 한 데서 연유해 50세를 가리키는 말로 굳어졌다고 하는데 이는 하늘의 뜻을 알아 그에 순응하거나 하늘이 부여한 최선의 원리를 안다는 뜻을 의미한다고 한다.
이 나이에 이르면 인생의 여러 경험을 통해 세상의 이치를 깨닫게 된다는 뜻을 내포하고 있으므로, 지천명은 단순한 나이의 표현이 아니라 인생의 중요한 전환점을 상징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나는 무엇인가?
하늘이 나를 세상에 태어나게 한 큰 뜻을 깨우친다는데 나는 아직도 깊은 뜻을 깨우치지 못하고 있다.
나는 누구인가?
마흔아홉을 살아오면서 세상의 이치를 깨달아 한 차원 높은 생각과 삶을 살아갈 수 있을까?
어떠한 일로 보람을 느끼며 더욱더 보람 있는 일을 할 수 있을까?................
눈 뎦인 산능에서 추위를 잊은 채 한동안 골똘히 생각하지만 나는 답을 찾을 수가 없고, 아무런 마음의 준비도 없는 상태에서 내일을 맞이해도 문제는 없을까?, 살아가는데 지장은 없는 걸까?, 다름 사람들은 지천명을 어떻게 받아들이 살아가는 걸까?........... 갑자기 추위가 엄습한다.
결국은 지천명을 맞을 시원한 답을 얻지 못한 채 다시 길을 재촉한다.
가면 갈 수록 눈은 더 많이 쌓여있고 지난 25일 폭설 이후 2~3명 정도가 간 흔적이 있을 뿐이지만 그것마저도 바람이 눈을 몰고 한바탕 지나가 버리면 아무런 흔적도 남지 않아 진행하는데 어려움이 따르며 거기다 어제 많은 양은 아니지만 눈이 내리고 바람이 불어 발자국을 메워 길이 갑자기 사라졌다 나타나기를 수없이 반복한다.
조용한 산 속에는 이따금 지저귀는 산새 소리와 까마귀의 울부짖음, 간간히 불어 닥치는 바람은 눈보라를 일으키고 힘에 겨운지 숨소리는 산중의 적막함을 깨뜨린다.
영우봉을 떠나 얼마를 왔을까?
함왕이 성을 쌓은 전설을 지닌 함왕봉에서 점점 멀어지는 백운봉을 뒤로하며 다시 길을 재촉한다.
눈은 더욱더 많아 어느 곳은 발목이 묻히는가 하면 어느 곳은 무릎까지 푹푹 빠지니 체력 소모도 많아서 인지 자꾸 다리가 무거워진다.
계속 눈 속을 걷다보니 등산화와 양말은 모두 젖었고 바지 하단은 얼어붙어 판자 쪽과 흡사하니 처량하기 그지없으나 나 혼자 스스로를 달래고 위로하며 걷고 또 걷는다.
더욱 많이 쌓인 눈이 피로를 더해줄 무렵 장군봉에 닿고 아무도 없는 능선에서 장군봉과 대화를 나누며 정상석을 감싸본다.
온 길을 뒤돌아보니 우뚝 솟은 백운봉이 장군봉보다 높게 보이고 멜게 보이는 것을 보니 많이 온듯하다.
주위 나뭇가지에는 빨강색, 파랑색, 노란색 등 하얗게 변한 리본들이 바람에 나풀거리고 상원사와 용문사로 안내하는 약식 이정표도 있으며 서북쪽으로는 옥천 고랭지 채소밭을 덮은 흰 눈이 넓게 보이며 그 옆으로 유명산이 보이고 뒤쪽에는 얼마 멀지 않은 곳에 용문산 남측 정상이 보인다.
사방을 둘러보고 앉을 곳을 찾아보지만 모두 눈밭이어서 마땅치 않아 그루터기에 걸터앉아 행동식으로 체력을 보충하고 따뜻한 커피 한 잔을 하며 달콤한 휴식을 취해 본다.
시간은 1시 45분이며 갈 길이 멀다.
장군봉에는 여러 명이 상원사로 올라왔다가 내려간 흔적이 있어 더 이상 남정상쪽으로는 갈 수가 없는 것으로 알고 상원사로 내려서려다 용문산 남정상을 가까이에 두고 그냥 내려가기가 서운해 철조망 근처로 접근하니 위쪽으로는 경고판이 땅에 비스듬히 세워져 있는데 군부대의 접근을 금지하는 부대장의 경고였는데 경고판 아래쪽에 붉은 색 리본 두개가 달려 있으나 아무도 눈을 밟고 간 흔적이 없어 다시 장군봉으로 내려서다 백운봉을 지나 사나사 삼거리의 안내판에 누군가 매직펜으로 써 놓은 글귀가 생각났다.
「용문산 정상 빠르게 가는 길, 장군봉에서 한 시간, 군부대쪽으로 계속 직진하며 철조망 가까이까지 간다.철조망 가까이에서 우회전 해서 간다. 」
바로 그것이다 싶어 내려왔던 길을 두 개의 리본이 달려있는 곳으로 다시 올라가 조심스럽게 철책을 따라 몇 번을 미끄러지고 넘어지면서 위쪽으로 계속 가니 등로가 잡힌다.
얼마를 지나왔을까? 절벽코스를 조심스레 오르는데 인기척이 들린다.
반가움이야 뭐라고 표현할 수 없을 정도였고 진행을 하면 할수록 누군가 떠드는 소리가 확실하게 들리더니 이내 모습이 나타나니 50대 후반의 세 분이었는데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 그 사람들은 장군봉으로 가는 길인데 눈 때문에 길을 찾지 못해 애를 먹다가 나를 만나 나와 같이 반가웠던 모양으로 장군봉으로 내려가는 길을 물어 자세히 안내를 하고 헤어져 한참을 더 가니 용문산 남측정상이다.
위쪽으로는 더 이상 갈 수가 없고 오른쪽 이정표가 길을 안내한다.
옆길로 들어서니 정상 9부 능선에 길을 내어 경사도가 심하고 좁은 길을 조심스럽게 가다보니 두 번째 산님을 만나니 40대 초반의 부부였는데 여자분이 무척 힘들어 했고 아침 9시 30분부터 용문사에서 오르기 시작했다는 이 분들이 아직도 하산으로 접어들지 못했다면 장군봉을 거쳐 언제나 상원사까지 가실지 걱정스러워 동정심 어린 인사를 하고 돌아선다.
2번째 산님과 헤어져 경사면을 철책을 잡고 조심스럽게 한동안을 더 가다니 까마귀의 울부짖음에 누군가의 '"훼이~훼이~" 쫓는 소리가 들린다. 가까이 가니 친구인 듯한 30대 중반 2명이 간단한 요기를 준비하고 있기에 반가이 인사를 나누었다.
이들이 있던 곳은 오늘의 최고봉인 용문산 북측정상 전망대로 정상석이나 정상목도 아무것도 없는 전망대로 아쉽게도 최고봉 정상은 군부대가 있어 오를 수가 없다.
시계가 그리 썩 좋지는 않지만 북릉을 따라 천사봉, 도일봉, 중원산이 한눈에 조망이 된다.
한동안 주위 경관을 살피다 3시가 되어 하산을 서둘러 정상에서 내려서며 4번째 산님인 형제로 보이는 20대 후반 두 명을 만나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 내려서 삼거리에 닿고 상원사 쪽 능선 길은 위험하므로 마당바위 쪽 계곡 길로 들어서니 정상부에도 눈이 많았지만 계곡에도 눈이 무척이나 쌓였으며 계곡을 내려서 문례재로 오르는 길은 아무도 가지 않았다.
마당바위를 지나고 용각바위까지 단숨에 지나니 용문사가 보인다.
용문사 입구에 있는 은행나무는 천연기념물 30호로 나이는 약 1100살 정도로 추정되며 우리나라에서 가장 크고 오래되었으며 여러 가지 전설을 지니고 있는데 통일신라의 마의태자가 나라를 잃은 설움을 안고 금강산으로 가다 심었다는 전설과 의상대사가 짚고 다니던 지팡이를 꽂아 놓은 것이 자라서 나무가 되었다는 전설이 있는가하면 또한 옛날 어느 사람이 이 나무를 자르려고 톱질을 하자 그 자리에서 피가 쏟아지고 맑던 하늘이 흐려지면서 천둥이 일어났기 때문에 중지하였다는 설도 있으며 또한 나라에 큰 변이 있을 때 소리를 내었다고 하는데 고종이 승하하였을 때에는 커다란 가지가 1개 부러졌고, 8.15 해방과 6.25 사변때에도 이 나무에서 이상한 소리를 내었다고 한다.
은행나무를 보며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며 여유 있게 용문산 광장에 도착한다.
4시 30분 발 버스에 몸을 싣는다.
용문과 양평을 경유하여 동서울로 가는 버스다.
양평에서 하차를 하여 택시를 타고 새수골 까지 4000원을 주고 간다.
나의 애마 프린스를 몰고 서울로 향하는 중 옥천에서 차를 세우고 어두워져 가는 백운봉, 함왕봉, 장군봉, 용문산을 음미한다.
2002년 12월 31일 어둠이 점점 밀려드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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