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바위의 슬픈 사연을 품은 황석산을 넘다
산행일시:2015년04월26일
산행거리: 약 8.2km(이정표기준)
산행시간: 5시간25분(10:45~16:10)
누구와: 대구참사랑산악회원, 이*성, 성*현, 주*기
주요산행처:사방댐(10:45)-황석산성남문(11:35)-황석산남봉(12:20)-정상(12:30)-능선안부(12:50)-거북바위(13:40)-황석산북봉(13:50)-헬기장(14:05)-1125봉(14:30)-장자벌갈림길3거리(14:40)-청량사(16:00)-청량교날머리(16:10)
◎산행 전 이야기
제자들에게 건축학을 가르치는 이규성 교수님이 우리 산행팀에게 주는 가르침은 건축에 관함이 아니고 건배사였습니다. 술이 우리 생활과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면서 술과 인간도 불가분한 관계가 되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술의 기원이 언제인지 자세히 알 수는 없지만 그리스의 신화를 인용하면 술의 신 바커스가 등장하는 것으로 보아 옛 그리스에는 술이 만연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제우스와 세멜레 사이에서 난 디오니소스가 바커스인데 바커스는 각지를 두루 다니면서 사람들에게 포도 재배 방법과 함께 와인 마시는 즐거움을 가르쳐 주었습니다.
바커스는 원래 트리키아의 산에서 식물과 동물의 생명과 대지의 풍요를 관장하는 신이었는데 어느 날 방랑길에 올랐다가 아티카의 마을에 도착하여 사람들에게 포도 재배와 와인 제조법을 가르친 다음 함께 와인을 마시고 축제를 벌였는데 이때부터 그는 술의 신(酒神)으로 추앙을 받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런가 하면 세계적인 베스트셀러인 바이블에 의하면 술은 창세기에서부터 시작되는데 하나님이 노아에게 언약을 주고 이후 노아의 방주가 등장하며 홍수가 멎은 후 노아는 세 아들 셈, 함, 야벳과 함께 방주에서 나와 농사를 시작하며 포도나무를 심어 포도주를 먹고 취함이 술의 기원입니다.
술에 관련된 신화나 전설이 그리스나 이스라엘에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나라에도 술과 관련된 재미있는 신화가 전해지는데 고구려를 건국한 동명성왕이 그 주인공으로 신화는 이러합니다.
천제의 아들 해모수가 하루는 지상에 내려와 놀다가 연못가에서 물의 신인 하백(河伯)의 세 딸을 만나는데 그녀들의 미모에 반하여 사랑에 빠지게 된 해모수는 그녀들의 마음을 사로잡기 위하여 술을 권하게 되며 그 술을 받아 마신 큰딸 유화는 술에 취하여 수궁으로 돌아가기를 거부하였고 마침내 해모수와 하룻밤의 달콤한 사랑을 나누었는데 열 달이 지나자 유화는 커다란 알을 낳게 되는데 그 알 속에서 나온 것이 주몽(朱蒙)으로 고구려를 건국한 동명성왕(東明聖王)입니다.
결론적으로 술이 인간과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며 건배사도 발전하게 되고 그러다보니 오늘 이규성 선배님께서 건배사를 공부해 오셨다는 명품 건배사 「소취하, 당취평」이 등장하게 되었으니 『소주에 취하면 하루가 즐겁고 당신에게 취하면 평생이 즐겁다.』라는 뜻으로 마치 중국어처럼 들리지만 중국어가 아닌 우리말의 약어라고 합니다.
산행을 마치고 경환 사모가 신장개업한 가게에서 술 한 잔을 기울이며 재미있는 시간을 보냈습니다. 소주에 건하게 취했으니 오늘 하루가 즐거웠음은 당연했음이며 가정으로 돌아가 당취평이 되는 건 알아서 할 일이고 술잔을 들고 건배를 할 때의 마음처럼 서울과 대구의 사랑이 영원하기를 바라며 다시 한 번 「소취하, 당취평」과 함께 ‘서대영원’을 외치며 산행기의 문을 열어 봅니다.
◎들머리로 가는 길
거연정을 지나고 이어서 거연정 휴게소를 지나 우측으로 방향을 바꾼 우리 노랑 애마는 작은 언덕을 넘어 우진마을로 들어선다.
전형적인 산골 마을로 남해 가천의 다랭이 마을을 연상시키는 곳으로 가천 다랭이 마을은 바닷가에 있는 촌락인데 문화재청에서 한국의 명승으로 지정하며 관광지가 된 곳으로 CNN이 선정한 한국에서 꼭 가봐야 할 곳 3위로 꼽았다고 하는데 우진마을이 2개의 산을 등지고 있는 것이나 경사진 산을 좁다란 다랭이로 개간하여 농사를 짓는 방식 등 여건이 아주 흡사한데 단지 가천에는 앞에 바다가 있고 우진마을 앞에는 화림동계곡이 있다는 것이 다르다.
재미있는 건 촌락을 관광지로 변환시키고 나니 가천마을 주민들이 농사를 못 짓겠다며 만세를 불렀다는데 국가에서 다랑이 논을 모두 사서 마을 사람의 품을 사서 농사를 지라고 했다니 ‘세상에 이런일이‘에 나와야할 일이 아니가 싶다.
그건 그렇고 우전마을에서 들머리까지는 약3km로 대형차가 출입을 할 수 없으므로 걸어서 올라야 하는데 서대팀은 복도 많다, 1시간을 발품을 팔아 걸어야 하는 길을 울 사장님 덕에 앉아서 갈 수 있었으니 .....
암튼 우리는 그렇게 편하게 들머리인 사방댐위에 도착했다.
◎들머리에서
산행을 시작하기 전 한자리에 모여 사진을 찍으며 파이팅을 외쳐보지만 어딘지 어색하고 무언가 허전하다 했더니 서대팀의 감초 대박 총무가 없어 그런가 보다.
<산행들머리에서 화이팅을 외치며.....>
물건도 있어야 할 자리에 있어야 하는데 하물며 있어야 할 총무가 제 자리에 없으니 당연한 일이겠으며 실과 바늘처럼 붙어있는 정미씨도 없고 차에 오를 때부터 차회장님이 기가 죽어 있다 했더니 회장사모 경숙씨의 모습이 안 보인다.
경환사모 옥경씨와 재형사모 채미씨는 제껴두더라도 참사랑의 사인방 중 정미씨와 경숙씨가 보이지 않으니 상훈사모 미옥씨와 수근사모 금선씨가 기를 펼 수가 있을지 의문이다.
이러한 여자들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카리스마 넘치는 상택아우 흩어진 일행을 불러 세우고 들머리에서의 기념촬영을 마치고 무산산행을 기원하는 출발로 산행이 시작된다.
◎들머리에서 산성남문 구간
들머리로 들어서서 우측 방향을 바꾸며 오르는 등산로는 서서히 고도를 높이고 높이에 비례하여 숨은 가빠오고 우측으로는 어마어마한 바위로 이루어진 계곡에서 물이 낙차하는 소리를 들으며 한동안을 오른다.
길가 옆에는 양지바른 곳곳에 봄풀이 자라나고 있어 예상치 못한 야생화가 있기를 바라며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오르다 소용담으로 불리는 구슬붕이를 만난다.
이미 바람꽃 종류는 꽃이 졌지만 주흘산 산행 시 5월달에도 홀아비바람꽃과 궝의바람꽃을 만난 적이 있어 은근한 기대를 해본다.
들머리에서 15분 정도 올라 어마어마한 건폭에 도착했는데 이름표는 폭포가 아닌 바위로 달고 있었는데 그것도 피바위란다.
<피바위의 슬픈 유래를 읽고 있는 재형아우>
<피바의의 유래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앞서간 하이맛 선배님과 차회장 그리고 경환아우가 안내판을 주시하며 기다리고 있다.
지난번 이곳을 산행한 적이 있는 경환아우가 피바위에 대한 유래를 설명하여 안내판은 읽어볼 여유가 없었는데 나중에 안내판을 읽어보니 피바위의 유래는 이러하다.
임진년에 조선을 침탈했던 일본이 5년 뒤 다시 난을 일으키니 곧 정유재란으로 함양의 관과 민이 힘을 합해 이곳 황석산성에서 왜구와 맞섰으나 조총을 가지고 달려드는 왜구를 당해내지 못하고 2일만에 성이 함락되자 이 고을 여인들이 왜구에게 몸을 망칠 것을 우려해 치마를 뒤집어쓰고 수 백길 낭떠러지기로 몸을 던져 순절하니 하늘도 울고 땅도 함께 울었다.
여인들의 한 맺힌 죽음은 순절을 지킨 피로 바위를 붉게 물들이니 세월이 400여년이 지난 지금에도 핏빛이 그대로 유지되고 있으니 오늘날 사람들은 이 바위를 피바위로 부르고 있다는 것이다.
피바위는 장관이었다.
<세월이 지나도 핏빛바위는 변하지 않고 일본넘들을 저주하고 있습니다.>
물이적어 폭포로서의 위용을 보이고 있지는 못하고 있지만 장마가 지고 난 후를 파바위 폭포를 생각하면 더욱 더 장관일 것이다.
시각적으로 위에서부터 가속을 붙이며 아래쪽으로 떨어지는 물줄기는 우전골을 우레와 같은 굉음으로 진동시킬 것이며 바위에 부딪치며 일어나는 포말과 물안개는 태양을 등지고 일곱 빛깔 무지개를 만들며 주변을 빛낼 것이니 장관이 아닐 수 없을 것이다.
경환아우가 열심히 피바위를 설명하는 사이 차회장은 아무 말 없이 경사진 능선을 오른다.
피바위를 지나 우측 능선으로 오르는 길은 만만치 않은 깔딱으로 능선에 오르면 우전마을에서 직등하는 능선길과 합류하는 지점으로 주변의 정황으로 보아 간이 쉼터가 분명했다.
능선을 먼저 오른 차회장과 경환아우는 뒤에 떨어져 오는 일행은 안중에 두지 않은 채 계속 능선으로 내달린다. 원래 말 수가 적은 아우이기는 하지만 오늘 따라 더 말이 없는 건 아무래도 회장사모가 옆에 없어 전의를 상실한 느낌? 그렇게 보인다.
<갈증을 달래기는 과일이 좋더라~~~>
<매번 마무리 전문으로 일행 마지막에서 로프가 있는 암릉을 오르고 있습니다.>
차회장을 불러 세워 대화도 나누고 휴식을 취할 겸 정지시켰지만 조금 앞서간 경환아우 조금 내려왔다가 다시 오르면 될 걸 꾀를 부리고 내려설 생각을 하지 않았고 그사이 하나 둘 뒤따르던 일행이 합류하고 휴식을 취하며 갈증을 풀겸 간식을 취하는데 앞서가던 경환아우 입이 궁할만도 한데 내려오지 않고 위에서 바라만 보고 있었으니 결국 손해만 보고 말았다.
다시 능선을 이어간다.
능선 좌측으로는 피바위 계곡이 이어지고 우측으로는 참나무 숲이 들어차있는데 푸른 잎이 능선과 계곡을 덮어야했지만 아직도 초봄같이 앙상한 가지를 내 보이고 있는 것은 아마도 높은 산으로 아직도 이곳은 봄으로 가고 있나보다.
<대한독립만세!!! 대한민국만세!!! 대한국민만세에 챔피온 먹었어~~~>
좌측으로 피바위가 끝나는 지점을 지나 능선으로 계속 오르다 보니 앞에는 돌을 켜켜이 쌓은 성곽이 나타났으니 함양관민이 목숨을 다해 싸우다 함락되었다는 황석산성에 도착한 것이다.
앞서 올라선 경환 아우가 산성남문에 올라 포효를 하는 모습이 보인다.
◎황석산성에서 정상 구간
황석산성은 경상남도 사적 제322호이다.
<경남 사적 제322호인 황석산성 안내판을 읽고 있는 회장님>
<저곳이 백두대간인데 아마도 백운산이지???>
여기서 잠깐 문화재 상식
사적은 역사상 중요한 사건이 있었거나 건축물 · 시설이 있던 곳, 또는 그 자취를 국가나 도가 법으로 지정한 문화재로 황석산성은 경상남도에서 지정한 문화재입니다.
국가지정문화재는 유형문화재, 무형문화재, 기념물, 민속문화재로 분류하며
유형문화재는 국보와 보물로 구분하며,
무형문화재는 중요무형문화재로 구분하고,
기념물에는 사적, 명승, 천연기념물로 구분하며,
민속문화재는 중요민속문화재로 구분을 합니다.
그러니까 경상남도 사적인 황석산성은 경상남도가 지정한 문화재 중 기념물에 해당합니다.
산성남문에 일행이 속속 도착한다. 꼴찌는 오늘도 수근아우다.
<선두는 천천히 가라! 이연사 힘차게 외쳐봅니다.~~~>
<백두대간 하늘금을 긋고 있는 중---백운산과 장안산이 보이네~~~>
마음이 넉넉한 아우는 꼴찌로 가도 서두르는 법이 없는데 이에 비해 수근사모인 금선씨는 산도 잘 타지만 성격도 좋아 수근씨의 모든 시중을 잘 들어 주는 것 같았는데 매사 금선씨에게 의존하고 말 한마디 한마디가 어리광이 절절 흐릅니다.
형제 중 막내 같아 물어보니 ‘막내가 맞다‘는 대답이다.
선두팀과 후미팀이 거리를 두고 성곽을 따라 길을 가다가 성곽 아래 등산로로 접어들었는데
좌측으로 넓게 분포한 초지형태의 지형에 야생화가 많을 것 같은 분위기에서였지만 지형으로 보아서는 많이 있어야할 야생화는 거의 보이지 않았다.
<성곽길을 걸으며>
그러다 보니 어느 때인가 일행이 둘로 갈렸다.
이정표에는 성곽길과 계곡길 모두 거리는 동일했고 정상이 얼마 남지 않아 문제가 없을 것 같아 갈린 채 2팀으로 산행하기로 했다.
정상 500m여를 남긴 지점부터 암릉길 깔딱고개가 시작되었는데 등산로에서 상을 차리고 술 한잔으로 목을 축이며 쉬고 있던 3사람이 정상을 가지 않기로 했다며 즐거운 모습으로 우리 일행을 맞아준다.
<나 독감땜에 힘든데 당신은 왜 먼저 올라가는 거야?---미옥씨의 절규>
그들과 헤어져 소모된 체력을 회복시키기 위해 잠시 휴식을 취한다.
전에는 씩씩해 보이던 상훈 아우가 오늘은 미옥씨 옆에서 떨어지지를 않는다.
얘긴 즉 미옥씨가 독감에 걸려 몹시 힘들어 한다는 얘기로 아마도 어제저녁 산행을 못한다고 선포했을지도 모른다. 서울 선배들이 오는 날이라고 상훈 아우가 사정사정해서 오늘 힘든 것을 참고 억지로 산행에 임했는지도 모를 일..............
어쩐지 들머리부터 미옥씨 옆에 딱 붙어 산행을 한다 싶었지???
산성 동문으로 오르는 깔딱고개는 상당했다.
깔딱고개를 오르는 주변에는 산 아래에서는 이미 져버린 진달래가 이곳은 만개되어 지쳐가는 일행들에게 힘이 되어 주고 굵은 땀방울이 이마를 타고 눈 속으로 스며들기를 몇 차례 찬바람이 얼굴을 강타하자 정신을 차리나 깔딱고개 위 산성동문에 도착했다.
<경환아~ 이리로 올라와봐, 조망이 죽이는데.....>
<야~ 여기서도 볼건 다 보이는데, 바람이 너무 세게부니 빨랑 내려와라~~~>
<남봉에서 바라본 우전마을의 평화로운 풍경입니다.>
정상은 산성동문 좌측이며 남봉은 우측에 키를 같이 하고 우뚝 솟아 있다.
상택아우는 망설임 없이 정상 반대편인 남봉으로 오르니 나도 언제 다시 올지 모를 남봉으로 올라서며 주변을 조망하는데 숲 속에서 정상에 있는 줄 알았던 선등팀이 경환아우, 차성섭회장, 재형아우, 봉현아우가 연 이어 나타난다.
함께 정상을 배경으로 인증 샷을 때리고 남봉을 내려서 정상으로 향하며 정상을 바라보니 상훈네와 수근네, 걱정을 했던 부부팀이 정상에 먼저 올랐다.
<남봉에서 바라본 정상의 풍경입니다.>
상택아우와 함께 마지막으로 정상에 합류하므로 일행이 모두 정상에 무사히 도착해 일단 반의 성공을 이루었다.
◎정상에서
황석산!
<올라올 때는 힘들었지만 올라오고 나니 기분이 아주 존대, 이 기분 영원히.........>
<이 바위 들어서 던져버릴거야~~~>
<정상에서의 조망---황매산이 보인다던데 어디쯤인거야?>
황금 빛 돌이 온 산을 감싸고 있었나 생각했는데 그것도 아니었고 그러면 금맥이 바위속을 뚫고 지나갔나? 그건 모를 일이다.
분명한 건 산림청이 선정한 명산 100산에 선정되어 있는 산이다.
산림청이 선정한 명산 100산에 속한 대부분의 산들을 보면 산세가 뛰어나다는 점, 오랜 역사적 가치를 간직하고 있다는 점, 계곡과 풍광이 뛰어다는 점, 그리고 이름난 명찰이 속해있다는 점 등이다.
선정된 산에는 그만한 연유가 있을 진대 황석산은 어떤 점을 놀이 사 100산에 선정되었을까?
물론 황석산은 정상부 바위로 이루어진 3봉의 풍경이 뛰어나며 남서쪽의 거연정이 있는 화림계곡과 금원산과 협곡을 이루며 만든 용추계곡 또한 100산에 꼽히는데 중요한 역할을 했을 것이지만 피바위의 실화가 묻혀있는 산임과 아울러 함양 안의 사람들의 지조와 절개를 상징하는 중요한 유적지라는 것을 배제할 수 없었을 것이다.
<명산100산의 황석산, 남봉에서 바라본 정상의 풍경>
<명산100산의 황석산, 거북바위 근처에서 바라본 정상의 풍경>
산줄기로의 황석산은 백두대간에서 흘러내린 기백, 금원 거망을 거쳐 황석에 다다르는데 인접한 백두대간을 정상에서 볼 수 있음을 물론이거니와 백두대간은 끝자락인 지리산의 길고 긴 능선을 한 눈에 볼 수 있는 곳이다.
지리산 천황봉에서 부터 반야봉에 이르기까지 연봉들을 볼 수 있었는데 거리 문제도 있겠으나 박무로 인해 희미한 모습만 볼 수 있었음이 조금은 아쉬운 점이다.
정상은 멀리서 보면 하나의 돌로 불쑥 솟은 것처럼 보이지만 자세히 보면 여러개의 돌이 사람이 쌓은 것처럼 켜켜이 놓여있어 보기에 좋기도 하지만 바람이 불면 떨어지거나 흩어질지 모를까? 하는 불암함을 조성시킬 정도로 아슬아슬하게 보이기도 한다.
정상에 서면 사방 조망도 뛰어나지만 주변의 산들을 알 수가 없어 사전 공부가 미흡했음이 여실히 증명된다.
<명산100산의 황석산, 정상을 오르며 바라본 남봉의 풍경>
<명산100산의 황석산, 거북바위 부근에서 바라본 북봉의 풍경>
하지만 지리산과 백운산 백운산 뒤로 장안산은 제대로 볼 수 있었고 동북으로 작년에 올랐던 금원산과 기백산도 확실히 볼 수 있었고 이때까지만 해도 갈 것으로 예정했던 거망산은 눈앞에 보였지만 동남쪽으로 있다는 감암산과 황매산은 구분할 수 없었다.
서쪽으로 들머리로 삼았던 우진마을의 들녘과 산성남문이 시야에 들어오고 삼형제봉을 연상시키는 남봉과 북봉이 유난히 믿음직하게 보였으며 북봉 못 미친 곳에 있는 거북 바위는 생김과 크기를 함께 따지자면 국내최고가 아닐까 생각된다.
이렇게 멋있는 황석산 정상에서 우리는 다함께 인증 샷을 때렸다.
얼마니 세게 때렸던지 지금도 어떨떨한 기분이다.
◎정상에서 북봉 구간
정상 내림이 시작된다.
상택아우와 봉현아우와 함께 몇 장의 사진을 찍고 뒤따라 내려선다.
하강지점이 있다.
<아들은 위관이므로 이런 훈련을 자주하는데 엄마인 내가 안 할수 없자나?---유격, 유격>
<나도 유격훈련해야지 혹시 알아 그러면 우리 애도 육사가서 장교가될수 있을지.....>
미리 내려섰다면 내려서는 일행들을 한 사람씩 멋진 포즈를 찍었을 텐데 위쪽에서 아래로 내려서는 모습을 잡으려니 제대로 잡히지 않는다.
한사람씩 위험구간을 로프에 목숨을 담보하고 내려섰는데 서대팀의 산행이 9년이 되었고 각각 매월 몇 차례 산행을 하는 입장이고 보면 눈이 없는 로프지대는 그리 크게 염려될 문제는 아니다.
차례대로 우리 팀원들이 하나 둘 내려서 전원이 무사히 로프지대를 내려선다.
안부로 내려서 내려온 슬랩지대를 보니 위에서 느끼지 못했던 중압감이 든다.
산행대장 상택아우의 지시에 의해 이곳 안부에서 식사를 하기로 하고 산상의 만찬을 준비한다.
우리 속담에 ‘금강산도 식후경’이라고 했듯이 황석산도 예외가 될 수는 없을 것이다.
늘 식사 때가 되면 대구팀에게 미안하다는 생각이 든다.
<황석산도 식후경입니다.>
아우들의 배낭을 보면 무언가 꽉 차있으며 배낭에서는 매직 쇼를 하는 냥 무엇인가 계속 나왔고 무거운 짐을 메고 높은 정상까지 올라왔으니 말이다. ....................
식사를 마치고 일행은 다시 능선을 따라 거북바위로 향한다.
가다말고 뒤돌아본 정상의 모습이 이때까지 느끼지 못했던 비경으로 정상을 배경으로 한 사람씩 인증 사진을 찍으며 시간을 보낸다.
<함 잘찍어봐>
<난 사진보다는 실물이 낳더라~~~~ >
<멋진 정상을 배경으로, 우리 둘이 사진도 못 찍었네>
북봉으로 이어지는 능선은 참으로 아름답고 기묘한 바위들의 연속이었고 북봉을 가기 전 황석산의 명물 거북바위에 올라서 또 한 차례 포토타임이 이어지니 아까운 시간은 계속 흐르고 누구랄 것 없이 모두의 입에서 “이렇게 가면 거망산까지 가겠느냐?“ 는 의문 섞인 발언이 이어진다.
한동안 거북 바위에서 노닐다 북봉으로 접근하였고 북봉은 등산로가 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출입을 제한하고 있으므로 좌측으로 우회하여 지나야만 했으니 북봉을 넘는 줄 알았다가 우회하여 지난다 생각하니 아쉬움도 남는다.
<지고 없을 진달래가 이곳은 한창입니다. 황석산과 어우러진 꽃이 금상첨화입니다.>
<그만 들어라, 나 돌에 찡겨 죽으믄 속이 시원하겠냐???>
<거북바위에 올라 장수를 기원 해 보았습니다.>
정상까지의 산행시간은 정상이었으나 정상에서 머문 시간과 거북바위에서 머문 시간들이 예상보다 길어지며 거망산까지 갈 수 있는지 확정을 지을 수 없게 되자 급기야 상택아우에게 거망산을 생략하고 가면서 거창 수승대를 돌아봤으면 좋겠다는 의견을 개진하니 대부분 좋다는 의견이었으나 그래도 오늘 산행의 최고 좌장인 이규성 선배님의 의견이 중요했는데 이선배님도 좋다는 의견이시다.
한참을 내려섰다가 다시 올라서 북봉 북측에 도착한다.
북봉에서 장자골 갈림길 구간
북봉에서 장자골갈림3거리까지의 능선길은 걷기 좋은 길이다.
<쌍봉낙타의 혹등처럼 솟아 오른 봉우리가 인상적입니다.>
해발 1100고지로 이어지는 능선이지만 고산임을 느끼지 못할 정도로 주변 산세는 순하고 이제까지 지났던 암릉분위기에서 육산 분위기로 바뀌었고 길가 주변에도 조릿대나무와 보기드믄 싸리나무가 1km로 이상 군락을 이루었고 갈참나무는 4월 하순임에도 아직도 잎을 피우지 못한 채 앙상한 가지를 드러내고 있다.
<어느 시인이 인생은 나그네길이라네요, 정처없이 걷고 또 걸어야합니다.>
<황량한 길과 새싹이 돋아나는 길을 걷다보면 때로는 존일도 많이 생길겁니다.>
폐헬기장 주변에는 푸른 새싹이 자라나 고산 야생화가 있을 것 같아 눈을 크게 뜨고 찾아 보았지만 한 개체도 만날 수 없었는데 황석산은 야생화와는 별로 친하지 않다는 생각을 해 본다.
헬기장을 지나 능선을 가다말고 뒤돌아본 풍경이 아름답게 보인다.
북봉과 정상이 쌍봉낙타의 솟아난 혹처럼 보이고 아직 잎을 피우지 못한 산림은 회색빛 솜사탕처럼 부풀어 올랐으며 마주보는 방향으로 금원과 기백의 긴 능선이 힘차게 내달리는 모습이다.
<시원한 바람을 쐬여가며 능선을 걷습니다, 앞 방향 우측으로는 금원산과 기백산이 지척에 있습니다.>
<1153봉에서, 힘을 냅시다, 화이팅~~~~~~>
헬기장에서 20여분을 지나 1153봉이 있다.
앞서가던 일행들이 모두 한자리에 모였다.
함께 인증 샷을 때리고 잠시 땀을 식히고 다시 능선을 이어간다.
부드러운 능선을 몇 차례 오르내리기를 반복하며 바로 앞에 다가선 1205봉을 넘어서는 듯했는데 갑자기 1205봉 전 이정표가 있는 3거리에 도착했는데 이곳이 우리의 목적지 중 하나인 장자벌 갈림길이다.
◎장자벌 갈림길에서 청량교날머리 구간
앞 뒤 길게 늘어져 산행하던 일행들이 장자벌 갈림길 쉼터에 모두 모였다.
<어느새 장자벌 갈림길 안부 3거리에 도착을 했습니다. 배낭도 무거운데 있는 거 다 풀러봅시다.>
산행대장 상택아우의 간결한 전달 사항을 전한다.
“오늘 산행에서 예정에 넣었던 거망산은 가지 않기로 하고 이곳 3거리에서 하산합니다. 대신 거창의 명소 수승대를 잠시 둘러보고 갈 것입니다.“
의외로 반대의견이 없었고 어쩌면 좋아했는지도 모른다.
거망산도 가지 않기로 했으니 각자 배낭에 있는 간식과 행동식을 모두 내 놓으니 예정에도 없는 산상파티가 열렸는데 대구 아우들 알콜 실력 이미 알고 있었지만 있는 술 모두 마시고도 아쉬워하는 듯 했는데 그래도 내심 걱정했던 사고는 없이 무사히 산행을 마칠 수 있었다.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15분의 달콤한 휴식을 마치고 하산을 시작했다.
<내려가기전 포즈도 잡았으니 인증 샷 한번 때려보시오 우리 채미 보여주게 잘 찍어봐요.>
<하산이 시작됩니다.>
이정표에 장자벌입구까지 3.14km가 표기되었으니 약1시간~1시간10분을 예상해 본다.
하산에는 별다른 문제도 없었으며 특별한 전망대도 없었으며 난이도가 큰 코스도 없이 무난한 길이었는데 높은 산은 어느 코스로 오르던지 쉬운 구간은 없겠지만 장자벌 코스도 이 구간으로 오른다면 경사도가 심해 체력의 소모가 상당할 것으로 보인다.
하산길 주변에는 노각나무와 참나무 숲이 이어졌는데 철을 잃었는지 아직도 잎새를 피울 생각을 하지 않고 있다.
<수억년전 공룡부부가 살았답니다, 연애를 하고 이곳 황석산에서 알을 낳고 갔습니다.>
<부화를 할려해도 유아원 유치원 등
사교육비가 너무 비싸 수억년동안 학원비가 내려갈 때를 기다리다 돌이되고 말았다네요>
<다음 공룡세상은 사교육이 없는
세상에서 태어나거라, 둘리는 부화했는데 너는 둘리과가 아닌가 부다>
공룡알 형상을 닮은 바위를 지나 이정표가 있는 안부에 도착하고 잠시 숨을 돌린 후 하산길은 능선에서 우측으로 가파르게 내려서며 작은 계곡 지류를 따라 이어진다.
이끼가 파랗게 낀 계곡을 가로지르는 곳에는 꽃이 피었다가 진 후 꽃대에 씨방을 키우는 홀아비바람꽃이 여기저기 보인다.
우진마을 방향에서는 볼 수 없었던 야생화의 흔적이 하산길 곳곳에서 보인다.
청량사로 가까이 접어들면서 낮은 곳에서 서식하는 윤판나물과 광대수염을 볼 수 있었는데 이번 산행에서 야생화는 최악이었다.
윤판나물을 카메라에 담고 내려서니 청령사 대웅전 앞이었는데 중간 안부 이정표가 있는 곳에서 청량사 대웅전까지 정확히 30분이 소요되었다.
산행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지만 저는 산중의 사찰을 좋아하지는 않는다.
제가 절을 방문하는 것은 명찰에 있는 문화재 탐방이나 대찰에만 있는 불전사물을 보러 가기위해서이다.
그러나 청량사는 작은 사찰로 불전사물이 없는 사찰이어서 들어간다는 생각도 해보지 않고 내려선다.
<지루할 줄 알았던 하산길은 그런대로 재미있게 내려왔습니다.
무사히 하산했으니 뭘 더 바라겠습니까? 무두들 수고 많이 하셨습니다.>
포장된 가파른 길을 따라 10분을 내려서 우리의 노랑 애마가 기다리고 있는 청량교에 도착하며 산행을 마무리 한다.
◎산행 후
국도와 같은 고속도로, 이름은 고속도로 현황은 국도
88고속도로를 두고 하는 말입니다.
대구팀 산행 때 88고속도로를 이용하는 산행이 벌써3번째입니다.
시간은 없고 차는 밀리는 상황이 매번 지속됩니다.
그때마다 미안했음은 두말할 나위가 없었지요.
밀리는 도로를 어렵게 빠져나와 도착한 곳 경환사모가 신장개업한 음식점으로 갔습니다.
보고 싶었던 얼굴을 보았습니다.
총무가 있었습니다.
대박이 오늘 산행에 참석하지 못했음은 정미씨 어머니 팔순이었다고 합니다.
축하! 축하! 축하할 일입니다.
그런데 정미씨는 안 보입니다? 참석한 분들 대접하다 술이 많이 취했답니다.
회장 사모 경숙씨가 산행은 참석 못했지만 이곳에 와있었습니다.
반가웠습니다.
가게로 들어섰습니다.
들어서며 마주 친 사람이 경환사모인줄 알고 깜짝 놀랐습니다.
세월을 거꾸로 거슬러 오르나 해서요, 언젠가 보았을 때보다 젊어보였으니까, 그런데 자세히 보니 아닌 것 같았는데 닮은 것 같았습니다.
나중에 경환 아우와 인사를 하며 뵈었지만 오랜만에 보는 반가운 얼굴이었습니다.
대박 내십시오, 박영홍 대박이 아닌 떼돈 버십시오.
주방 안에서 반가운 얼굴을 보았습니다.
<이건 모지?
응 어제가 경환이 생일이었는데 서울 형님들과 함께 축하해주려고 참았습니다.>
영미씨였습니다.
대구팀과 처음 만나던 날 만났던 분이니 기억해야하겠지요? 한티재 너머 음식점까지 함께 해주셨고 황매산 산행 때도 함께 해 주셨는데 오늘 이곳에서 보게 됩니다.
자주 보았으면 좋겠습니다.
그러고 보니 못 본 분은 채미씨뿐입니다.
한티재에서 김밥을 건네던, 수도산 산행 때 나중에 모습을 보여주셨던 채미씨는 친가에 일이 있어 올 수가 없다고 하네요, 담에는 얼굴이라도 보면 좋겠습니다.
산행을 함께 할 수는 없었지만 뒤풀이를 함께 하기 위해 늘게 합류해 주신 시임마뇽선배님,
반가운 분입니다.
<영미씨의 청으로
다시 로미오와 줄리엣 원곡을 부르고 있는 시인마뇽 선배님--- 이럴줄 알고 몇 번 연습했는데...........>
영미씨가 오랜만에 요청한 신청곡 ‘로미오와 줄리엣’을 열창하시며 분위기를 돋구셨던 선배님 우리들의 정신적 지주이시기도 합니다.
술 이야기로 시작했던 일행이 술로 마무리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거 아시지요?
건축공학 제1장에 나오는 건배사는 미적인 아름다움과 견고성이 있어야 한다는 것
농축하자면
「소취하, 당취평」---
『소주에 취하면 하루가 즐겁고 당신에게 취하면 평생이 즐겁다.』
그리고 「소취하, 당취평」과 함께 ‘서대영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