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불산 공룡능선 산행이야기
산행일시: 2011년04월 24일
누구와: 서울독립군과 대구 참사랑산악회원
산행거리: 약 10㎞
산행시간: 6시간40분(10:30~17:10)
산행코스:산행들머리(10:30)-사격장안들머리(10:50)-금강폭포(11:45)-에베로릿지1봉(12:05)-2봉(12:30)-3봉(13:10)-신불주능선(13:30)-점심-신불재(14:30)-신불산정상(14:55.1209m)-공룡능선칼바위(15:15)-홍유폭포(16:30)-날머리(17:10)
일반 전철과 달리 소음이 적고 부드럽게 달리는 안락한 공항철도는 서울역을 출발하여 미디어씨티역으로 향하고 있으니 이제는 아침 일찍부터 서둘러 긴 하루를 보내며 소중히 가꾸어 놓은 추억을 마무리 할 때다.
눈을 뜨면 차창밖으로는 지하터널의 암흑이 지배하고 있고 눈을 감으면 오늘 하루가 주마등처럼 스쳐가며 만나면 반갑고 아무런 부담과 격이 없이 하나가 되어 하루를 보냈던 사람, 사람, 사람들............... 과 즐거움을 함께 나누었던 시간과 어려움을 극복했던 시간들이 눈앞에 펼쳐진다.
저 높은 곳을 향하여
<사격장에서 본 에베로릿지와 계곡>
장제마을에서 전열을 가다듬은 우리 일행은 능선으로 오를 팀과 계곡길로 올라 에베로릿지를 할 팀으로 나누고 능선 위에서 합류하기로 하고 서로가 갈 길로 들어선다,
에베로릿지팀으로 분류된 나와 우리 일행은 군 사격장의 경계를 넘나들며 계곡을 건너 정상 등로에 접어들어 V자형태의 계곡 한가운데 서서 앞을 보니 좌측으로는 영축산 동쪽 능선이, 우측으로는 1046봉 동릉이 감싸고 있어 위압감을 더해주며 저 높은 곳 신불능선은 꿈의 능선처럼 여겨진다.
작년부터 또 다른 취미로 야생화에 재미를 들이고 있는 나는 우리 일행 중 맨 후미에서 뒤따르며 사격장에 들어서자 앞서가던 일행이 각시붓꽃을 발견하고 카메라를 들이대니 힘들이지 않고 무임승차 한 뒤 얼마가지 않아 연보라빛 구슬붕이를 만나니 꽃말대로 기쁜 소식을 전해주나 보다.
양지바른 풀밭에서 자라는 구슬붕이는 용담과에 속하는 2년생초로 용담에 비해 키가 작기 때문에 소용담이라고도 부르며 아주 흔한 꽃은 아니지만 키가 작아 사람들의 눈에 잘 뜨이지 않으므로 쉽게 찾기 힘들다.
<소 용담이라고 불리는 구슬붕이---꽃말은 기쁜소식>
구슬붕이와의 만남을 뒤로 하고 오르는 길 주위에는 뱀딸기와 오랑케꽃 그리고 새싹이 돋는 나리군락과 노루발등이 눈에 띄고 쉼터 옆 계곡에는 병꽃나무가 꽃망울을 터뜨리기에 한창으로 야외 야생식물원에 온 기분이다.
너덜길로 이어지며 오르던 길은 어느 지점에서 철조망을 만나니 이곳이 사격장의 경계로 철조망을 넘으면서 사격장을 벗어난 것인데 처음 사격장으로 진입한 것은 모두가 인식하고 있었으나 꽃과 계곡에 반하고 주위경관에 홀려 한동안을 사격장임을 잊은 채 산을 오르고 있었던 것이다.
철조망을 벗어난 바로 옆 계곡에는 무명폭포가 있어 이제껏 땀 흘리며 오른 보상을 한번에 다 받는 느낌으로 한 컷씩 카메라에 모습을 담고 금강폭포로 오른다.
무명폭에서 10분정도 올라 앞서간 일행들이 금강폭포를 접수하며 탄성을 터뜨린다.
애타게 그리던 족도리 풀을 만나다
뒤 처져 있는 내게 빨리 오라고 외쳐대지만 나는 그 시간에 또 다른 야생화 왜현호색과 산괴불주머니와 오늘은 왠지 볼 수 있을 것 같은 예감으로 그리워하던 족도리풀 4~5개체를 만나 족도리풀과의 조우로 시간을 보내며 아름다운 꽃을 카메라에 담고 있었다.
<족도리풀과 꽃---꽃말은 모녀의 정>
만병초라고도 불리는 족도리풀은 나뭇잎이 있는 그늘진 곳에서 자라는데 일반적으로 꽃은 줄기의 끝이나 꽃가지에서 나와 피어야 하는데 얘는 독특하게 땅에서 올라와 피는데 그것도 낙엽색깔과 아주 비슷한 홍자색으로 눈여겨보지 않으면 찾기가 힘들고 꽃모양이 족두리를 닮아 족두리풀이라는 이름을 얻게 되었다 하는데 족도리풀은 슬픈 전설을 간직하고 있으니 전설은 이러하다.
족도리풀의 전설
옛날에 경기도 땅에 아름답기로 소문이 난 꽃님 아가씨라가 살고 있었답니다.
살기가 넉넉지 못한 꽃님이는 봄이면 바구니를 옆에 끼고 산나물을 캐어 시장에 내다팔며 병든 어머니에도 효성이 지극하였는데 그 소문은 입에서 입으로 전달되어 궁궐까지 전해지자 끝내 꽃님아가씨는 궁녀로 뽑혀 정든 땅과 어머님과의 이별을 하게 되었답니다.
그 곳 궁궐에서도 마음씨가 곱고 미모가 뛰어나자 또 다시 뽑혀 중국으로 가게 되는 신세가 되고야 말았습니다.
그렇게 맘에도 없는 인생의 길을 가게 된 꽃님이는 눈만 뜨면 어머님의 모습에 생활이 어려워 한탄하며 보고 싶어하는 어머니와 고향을 그리워하며 살다가 꽃님이의 가슴에는 무거운 병이 생겼답니다.
고향 땅만 밟으면 낳을 병을, 어머님만 한번만 보아도 낳을 병을. 꽃님이는 숱한 사연을 가슴에 척척 쌓아 놓아 그만 그곳에서 한스런 생애를 마감하게 되었답니다. 말한듯 뭣하랴 어머님의 마음인들 살아 있어도 살아 있는 게 아닐 것은 뻔한 일 서로의 마음에 깊은 응어리는 깊이 쌓여만 가고 끝내는 어머님도 검정덩어리가 된 가슴을 부여안고 고향 땅에서 꽃님이를 생각하며 죽게 되었답니다.
이 착한 두모녀의 일상을 알고 있는 동네 사람들도 모두가 함께 슬퍼하며 모두 내 일처럼 걱정하고 위로해 주었고 어머니를 고향 뒷동산에 잘 묻어 주었고
다음해 동네 뒤산 꽃님이 어머니 산소에는 예전에 보지 못했던 이상한 풀이 자라났고 마을 사람들이 이 꽃을 자세히 보더니 예전에 꽃님이가 궁궐로 갈 때 머리에 족두리를 하고 간 그 모습을 닮았다는 것을 알았고 꽃님 아가씨의 한이 이 꽃에 맺혀 피여 난 꽃으로 그때부터 족두리풀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답니다.
쥐방울과의 여러해살이 풀로 잎사귀가 하트 모양으로 생겨 친근감이 있으며 나물을 띁으러 다닐때 애호랑나비를 좋아했는데 이때부터 애호랑나비는 다른 곳에서는 알을 낳지 않고 오로지 이 족두리 잎에만 알을 까고 알에서 깬 애벌레는 이 족두리 잎사귀만 먹고 자란다고 하네요.
글구 꽃님이와 꽃님이 어머니가 서로를 못잊어 한 것처럼 꽃말도 모녀의 정이랍니다.
족도리 풀과의 조우를 마치고 일행들이 한 자리에 있는 금강폭포로 가니 조금전 지나온 무명폭도 멋있게 보았지만 금강폭포에는 비할 수 없는 장관으로 높은 곳에서 떨어지는 폭포수의 낙차와 바위에 부딪쳐 생기는 물안개가 우리의 육체와 마음 모두를 시원하게 해준다.
영화나 소설에서 보면 이런 곳을 지날 때 시 한수를 짓기도 하건만 ..........
폭포를 떠나는 순간부터 에베로릿지가 시작되므로 폭포의 정기를 받을 필요가 있어 한참을 쉬며 체력을 보충한다.
에베로릿지 구간을 넘으며
에베로릿지를 하는 우리팀의 여성분들은 산행도 열심이지만 바위구간 릿지도 뛰어나 우리팀의 릿지를 리드해 나가는 것을 보면서 오늘 산행도 맑음이라고 마침표를 찍어버린다.
금강폭포에서 너덜길을 따라 오르다 암벽이 막아서는 자리 주위에는 "꿩의다리"가 봄바람에 새잎을 나부끼며 나를 부르고 반가운 마음에 접근을 하다보니 쇠살모사가 째려보고 있어 눈 싸움을 피하고 선등자를 따라 1봉으로 오른다.
몇해전 용화산에서 암릉을 지나다 갈비뼈를 다친 적이 있는 시인마뇽선배님께서 아직도 고소공포와 암릉공포가 다 안 가셨는지 암벽을 타는 모습이 다소 불안해 보이고 먼저 올라선 권재형씨가 팔을 늘어뜨려 끌어 주는 모습이 정겹기만 하다.
1봉에 올라서 모든 구간을 다 마친것 같이 휴식을 취하며 뒤돌아 올라온 계곡을 보니 뿌듯함이 가득하고 권재형씨의 설명으로 아리랑릿지와 쓰리랑릿지를 감상한다.
쓰리랑릿지에는 구간을 오르는 사람들이 제법 보이고 정상 맨 위 바위에는 정상을 정복한 어느 등산가가 개선장군의 모습으로 서있다.
마음으로는 당장이라도 붙고 싶은 충동을 느끼며 아리랑과 쓰리랑, 그리고 합수곡을 거쳐 이어지는 에베로 구간이 소설의 한 장면처럼 멋있고 멌있다.
<3봉오름길에서 본 에베로 2봉>
이렇게 멋있는 구간들을 못보고 능선으로 올라선 우리의 또 다른 일행과 함께 쾌감을 느끼며 즐겨야 했을 아쉬움이 남는다.
<에베로 3봉을 향해서...........>
릿지를 오르면서 고도에 따라 조금씩 달리 보이는 아리랑과 쓰리랑의 모습은 고도에 따라 한 단계씩 업그레이드되고 아래서 느끼지 못했던 또 다른 맛과 풍기는 내음과 그리고 스릴 넘치는 쾌감은 환상이며 오늘의 이시간은 오래오래 내 마음속에 남을 것이다
<아리랑과 쓰리랑 리지>
한동안을 암릉과 씨름하며 암릉지대를 벗어나고 우리앞에 나타난 경고판을 보고서 이제야 에베로릿지 구간이 끝났음을 실감하며 아무런 사고 없이 위험구간을 지났다는데 모두에게 감사함을 느끼고 그렇게 우리는 에베로를 접수하고 오래 기억할 또 하나의 추억을 만든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라는데.........
경고판을 지나 억새밭 사이로 나 있는 완만한 경사길을 따라 올라서 마음은 새봄을 맞는 봄처녀인냥, 설레이고 누군가에게 얘기하고 싶은 그런 거........
능선이 점점 다가오고 우리보다 먼저 올라선 일행과 능선길로 올라 온 일행이 모두 한 자리에 모여 억새밭 사이 여기저기 둘러 앉아 멋진 풍경을 연출하니 제목은 "지금은 식사 중"이다.
<지금은 식사중>
금강산도 식후경이라는 명언을 신불산이라고 부정 할 수는 없을 것이니 후미팀도 선등팀들 사이에 자리를 잡아 식사와 일잔을 곁들이니 이게 지상낙원이다.
반찬이 없어도 산상에서는 만찬이 되는데 오늘은 산상 뷔페를 차렸는지 갖가지 육,해,공군의 푸짐한 반찬과 상추쌈과 봄똥쌈이 유난히 돋 보인다.
30분이 일각처럼 가버리고 우리는 다시 신불능선을 간다.
넓은 평원에 펼쳐진 억새는 겨우내 몰아친 비바람과 강풍을 용케도 참아내며 굽은 허리를 나플거리며 우리를 맞고 등로 옆 억새사이로 따뜻한 햇살을 머금고 자라난 오랑케꽃은 유난히 노랑 꽃잎으로 화사한 단장을 하고 오가며 지친 산님들을 정겹게 반긴다.
2006년11월 영남알프스를 답사하기위해 처음 이곳을 지나며 넓은 평원에 매료되어 힘든 줄 모르고 안개낀 이길을 걸었던 기억과 뿌옇게 낀 스모그 너머 좌측으로 희미하게 보이는 재약산의 사자봉과 수미봉의 정상석에 입마춤을 하고 드넓은 사자평원을 내려서던 그 때가 스크린의 한 장면처럼 생생하게 떠 오른다.
신불산 정상에 서다
일행과 거리를 두고 옛 추억에 젖어 가다보니 릿지의 모봉이 되는 1046봉을 내려설 때면 또 하나의 장관이 연출되는데 능선 우측으로 벗어나면 천애의 절벽을 이루고 있는 험릉이지만 능선 좌우로는 드넓은 신불평원이 한없이 펼쳐지고 신불재 전망대를 중앙에 두고 1046봉과 신불산정상을 잇는 데크 계단은 영화 속 한 장면처럼 좌절에서 희망이 반전되는 메시야의 메시지 같이 느껴진다.
한계단 , 두계단,세........ 계단을 세는 재미로 신불재를 지나 정상으로 오른다.
5년전 새벽에 이길을 걸을때는 안개가 뒤덮이고 이따금 빗방을도 떨어져 불안한 분위기에 사방 조망도 제대로 하지 못했는데 오늘은 어떤 기쁨을 선사할지......
<신불산정상에서>
우리는 정상에 서고 정상석은 우리를 맞는다, 늘 그랬듯이 환한 미소를 머그믄 채
우리가 정상에 선 것이다.
신불산!!!
신령님이 도를 닦는 산이라는 데서 붙여졌다는 이산은 사람들이 곤경에 빠졌을 때 도움을 주는 산이라고 불리어 오고 있으며 옛 문헌상에서는 신불산이란 이름을 쉽게 찾아 볼 수 없고 간월산 단조봉이라고 적시하고 있다고 하며 신불산은 영축산, 간월산, 재약산(천황산), 가지산, 운문산, 고헌산과 함께 1.000m가 넘는 준봉들이 겨울이면 눈 덮인 고봉들이 마치 알프스와 흡사하다고 하여 영남알프스라는 이름을 얻게 되었는데 그중 신불산이 가장 웅장한 자태를 뿜는다고 한다.
정상석! 가슴으로 안고 입마춤도 해야 하는데 정상석 주위에는 우리 일행뿐 아니라 다른 산님들도 많고 정상석을 배경으로 아름다움을 연출하는 행동이 지속되니 개인행동은 나중으로 미루고 우리 일행이 합동사진으로 선방을 날리고 난 후 틈새 공략에 성공하고 삼각점이 설치되어있는 구 정상석으로 이동을 한다.
단체로 온 팀들이 정상 전망대에서 기념촬영에 정신이 없고 집체만한 캐년이 아우성에도 아랑곳 하지 않은채 정상을 지키고 있는가 하면 영남알프스의 모든 산들은 정상에 정상석이 하나씩 있는데 유별나게 신불은 정상석을 3개 지니고 있는 것을 보면 아마도 신불은 우리 인간들에게 사랑을 듬뿍 받고 있으며 욕심이 많은 산은 아닐까?
신불공룡의 날등에 올라타다
정상에서 한동안 기쁨을 나누고 2팀으로 분류하여 하산하기로 했으니 1팀은 공룡능선으로 2팀은 간월재를 통해서 하산을 하며 홍유폭포나 아니면 주차장에서 합류하기로 하니 나는 1팀으로 합류해 신불공룡의 실체를 확인하고 얼마나 힘이 세고 멋진 놈인지 직접 확인하기로 했다.
공룡이라는 이름을 가진 산은 거의 없는것 같으며 원조를 굳이 따진다면 설악이 아닐까 싶다.
설악의 공룡은 너무나 많이 이름이 알려져 있어 모르는 사람이 거의 없고 대부분이 길고 아름다운 공룡을 타보았으나 신불은 대부분 미지에 속할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정상에서 우측으로 길게 늘어뜨린 공룡능선은 자수정 동굴 분기점까지 육로는 전무하고 계속 암릉으로 이어지며 난이도는 3급정도로 아무런 어려움이 없으며 위험성도 아주 적은 편이다. 육중하고 둔탁한 칼바위 위에서 조망은 상당히 뛰어나다.
영남알프스를 구간으로 답사한 가지산과 운문산도 멀리보이고 우리가 내려서야 할 지점도 아주 평온한 모습으로 시야에 들어온다.
<신불공룡의 등줄기>
신불공룡을 타고 넘으며
우리일행의 반에 해당하는 9명이 신불공릉을 넘기로 하고 권재형대장의 안내로 우측으로 길게 늘어뜨린 능선을 따라 하나가되어 들어서고 권재형대장은 안전사고라도 생길까 노심초사하여 수시로 일행의 거동을 살피며 사방의 지형지물들을 설명하며 이동을 한다.
<공룡능선 칼바위를 내려서고 있다>
명색이 공룡의 등줄기라는 수식여가 붙어있으니 얕보거나 무리한 행동은 용납 될 수 없다. 실제로 공룡능선도 험한 구간이지만 처음부터 에베로릿지를 오르며 어려운 구간을 완등하다 보니 이 구간의 난이도가 상대적으로 낮다는 생각을 했을 것이다.
능선 양쪽으로 수십길 낭떠러지기를 무사히 지나 자수정동굴 분기점에서 일행을 만나기 위해 좌측 홍유폭포 쪽으로 방향을 바꿔 급경사로 이어지는 내리막을 내려서는데 공룡이 내게 주는 선물이 하나 더 있으니 자주처녀치마가 그것이다.
<자주처녀치마---꽃말은 절제>
처녀치마라는 이름은 늘어뜨린 잎이 여자의 주름치마를 닮아 붙여졌다고 한다.
대개 군락이나 여러 개체가 부근에 무리를 지어 사는 편이나 공룡에서 본 이 넘은 홀로 피어있었고 일반적으로 그늘진 습지에서 자라는데 이 넘은 산 능선 건조한 지대에 살고 있다는 점 등이 학계의 주장과 다른데 그 이유는 계곡밑에 있다가 능선을 지나는 나와 만나기 위해 잠시 능선으로 이동했을 것 같다.
처녀의 수줍음을 그대로 닮아서인지 다른 꽃들은 하늘을 향해 피는데 반해 처녀치마는 수줍은 처녀처럼 고개를 숙이고 있어 더욱 더 예쁘게 보인다.
일행이 가버린 능선에 수줍어하는 산속의 치마를 두른 처녀와 한동안 노니다 작별을 고하고 일행을 따라 가려니 줄기차게 내려 달리는 선수들이라 한동안을 축지법을 쓰고야 합류할 수 있었다.
홍유폭포를 접수하고
거의 다 내려왔나 싶을 때 계곡의 물소리가 점점 더 세게 들리더니 이내 홍유폭포가 우리 눈앞에 보인다.
<홍유폭포를 접수하고---나 어때요?>
무지개 홍(虹) 흐를 류(流)의 이름을 가지고 있는 이 폭포는 날씨가 맑은 날이면 무지개를 항상 동반하고 있음을 시사하고 겨울이면 하얀 빙폭으로 옷을 바꿔 입으며 오가는 사람들과 오랜 세월을 같이 했으리라, 33미터의 높은 고공에서 내려 쏫는 물줄기를 보니 당장이라도 폭포속으로 뛰어들고 싶은 충동을 불러일으키는 감정을 추스르고 함께한 일행과 탄성을 자아내며 홍유폭포 접수 기념으로 아름다운 비경을 카메라에 담아 본다.
휘날리는 물보라로 찌든 몸의 땀 내음을 날리고 차디찬 물에 손을 담그며 산행 초입부터 있었던 어려움을 말끔히 씻어내고 합류하기로 한 일행을 맞으러 폭포3거리로 갔으나 간월재 구간으로 간 일행이 아직 내려오지 않아 기다리는 시간을 이용해 계곡물에 발을 담그며 오늘의 여러 순간순간들을 오랫동안 기억하고 있을 것이라고 다짐한다.
그 이후
작천정의 추억
작천정은 고려말 충신으로 태종에게 선죽교에서 피살당한 포은 정몽주가 유배당시 이곳에서 글을 읽던 곳이라고 합니다.
세종 때는 지방학자들이 세종임금을 생각하며 지었다는 정자이나 왜란 등을 겪으며 소실되어 버린 것을 여러 차례 중수하여 2005년을 마지막으로 현재의 모습을 갖추었다 합니다.
<작천정과 모은대>
암튼 이곳 작천정에서 신선이나 할 수 있는 놀이를 즐겼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지만 시간이 충분치 않아 식사에 만족했다는 게 쫌...............
식사얘기가 나와서 말인데요,
만나면 좋은 친구까지는 좋은데 이렇게 진수성찬을 차리면 서울 친구들이 부담을 많이 느끼지 않나요???
주변경관과 한잔의 막걸리도 좋았지만 밤잠을 줄여가며 차린 음식 넘 넘 고맙고 감사했습니다~~~만 어찌 갚아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그날 기분 넘 좋았는데 호의에 대한 감사함을 제대로 전달하지 못해서 죄송했고요 시간을 맞추기 위해 과속하신 선생님과 함께 마음 졸여 준 친구들 정말 감사하고 가슴 깊은 곳에 고이 간직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