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산100산산행기

무등산 산행기

범솥말 2025. 4. 26. 00:07

무등산 산행기

 

산행일시: 20121118

누구와: 다솜산악회 회원들과 함께

산행거리: 13

산행시간: 5시간50(12:00~16:35)

산행코스:원효사입구(11:37)-꼬막재(12:15,640m)-신선대입구(12:32)-규봉암(13:22,식사30)-장불재(14:30,900m)-입석대(14:42.1017m)-서석대(15:05,1.100m)-중봉(15:30,915m)-중머리재(15:52,586m)-증심사주차장(16:34)

<입석대에서>

무등산(無等山)?

옛날에는 무진악이라 불렀다고 합니다.

이는 광주의 옛 이름인 무진주라고 불렀기 때문에 무진주에 있는 산이라 하여 무진악으로 불렸는데 이 외에도 서석산, 무덤산, 무당산이라고 부르기도 했다고 한다.

<규봉암과 광석대> 

현재의 무등산이라는 이름은 부처가 세상 모든 중생과 견줄 수 없이 우뚝하다는 존칭으로 옛 이름과도 유사한 무등산이라 부르게 되었다는 설과 어디에도 견줄 수 없고 등급을 매길 수 없는 산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또한 조선의 태조 이성계는 무등산을 무정산(無情山)이라고 부르도록 어명을 내린 적이 있다고 한다.

<입석대 전경>

 이는 전국의 명산을 다니며 왕이 되게 해달라고 빌었고 왕이 된 후 자신이 죽인 고려 말 신하들의 원혼을 달래는 제사를 드렸는데 무등산 산신령만이 들어주지 않았다 해서 정이 없는 산이라고 어명을 내렸다는 일화가 있다고 전해지기도 한다.

<서석대 전경>

무등산은 정상 부근 서석대, 입석대, 규봉의 바위가 웅장하며 아름다운 곳으로 이름 나 있다.

정상에서 서편에는 석조 수십 개가 울을 둘러막은 듯 한 서석대(瑞石臺)가 있으며 서석대 남쪽으로는 입석대가 있고 동쪽으로 가면 수백 척 되는 세 개의 거석이 서 있는데 이것이 바로 삼존석(三尊石)이며 부근에는 송하, 광석, 풍혈, 장추, 청학, 송광, 능암, 법화, 설법, 은신 등 10개의 석대가 있는데, 그 중 광석, 풍혈은 강봉의 입석과 함께 절경으로 알려져 있다.

 

원효사입구에서 규봉암으로

버스에서 내려 등산화 끈을 매며 산행 준비를 하고 보니 일행들이 사라졌다.

사람들이 많이 가는 곳으로 올라가려다 말고 탐방안내도를 보니 우리 일행이 가야할 길은 바로 능선으로 올라가는 길이 아니고 직진으로 가다 좌측 다리를 건너 가야하는데 하마타면 다른 산악회에 휩쓸려 올라갈 뻔 했다.

그러나 정상적인 길로 들어섰으나 우리 일행이 보이지 않아 불안했으나 한동안 올라가자 일행을 볼 수 있었으며 편백나무 숲을 지나 조금 오르니 꼬막재에 올라선다.

<꼬막재로 가는길의 편백나무 숲>

<꼬막재에 도착해 한숨을 돌리고>

꼬막재에 올라온 일행은 40명중 반수에도 못 미치는 인원이었으니 대부분 많은 사람들이 화장실 갔다 오는 사이 일행이 없어져 나처럼 헤메다 다른 산악회로 휩쓸려 갔을 가능성이 매우 다분한 것으로 이번 산행 리더가 인솔을 잘못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쉴 사이 없이 꼬막재를 넘어 조금을 가다보면 샘터가 있는데 수량이 많은 지 돌두꺼비 수로를 통해 물이 솟고 있어 목은 마르지 않았지만 무등산의 약수를 마시지 않고 그냥 지나칠 수 없어 한 모금을 마시고 일행들의 뒤를 이어간다.

<신선대 억새 평전>

<북산과 아래 신선대의 모습>

한동안을 가니 신선대 입구 억새밭이 나온다.

일행 후미에서 따라가다 혼자 신선대를 갔다 올 심사로 홀로 떨어져 억새평원으로 들어선다.

조금 가다보니 처음 볼 때와 달리 길도 멀었고 억새가 끝나는 지점에서 한참을 내려섰다가 다시 올라가야 하므로 신선대를 다녀오려면 아무리 서둘러도 40분 이상을 소비해야 될 것 같아 포기하고 먼발치에서 보며 과일을 먹으며 휴식을 취해본다.

다시 등산로로 나와 앞서간 일행을 따라 가보지만 시간상으로 따라잡을 수가 없었다.

<규봉암으로 가는 길>

우리가 가는 등산로는 원효사 입구에서 무등산 6부 능선을 한 바퀴 도는 둘레길 같은 의미여서 멀리서 오는 사람들에게는 이 코스보다는 원효사에서 바로 장불재로 오르는 코스가 나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길은 비교적 좋아 때로는 나무 사이로 오솔길을 걷는 느낌이 들고 때로는 작은 계곡을 건너며 바닥이 흐르는 물로 뒤덮여 질척거리는 길을 지나는 가하면 때로는 어마어마한 바위가 나뒹구는 너덜 길을 지나기도 하는데 그럴 때마다 설악산 황철봉을 오르는 그러한 기분이었다.

<규봉암 일주문과 범종각풍경>

<규봉암의 불전과 광석대 주상절리>

<규봉암의 해우소---세계적으로 이렇게 멋진 해우소는 흔치 않을 것 같다.>

원효사를 출발한지 1시간45, 신선대를 출발한지 40분만에 도착한 곳은 규봉암이다.

무등산에는 많은 사찰이 있는데 그 가운데 하나가 규봉암인데 무등산 정상인 천왕봉에서 화순 방향으로 능선을 뻗어 안양산과 마주보고 있는 봉우리가 규봉인데 그러한 연유로 사찰의 이름을 규봉암이라 지은 것 같다.

규봉암이 유명한 것은 규봉암 뒤로 광석대가 있기 때문이었다.

광석대는 주상절리로서 무등산의 심벌인 3대 주상절리가 있는데 입석대와 서석대 그리고 광석대인데 일반사람들은 입석대와 서석대는 익히 알고 있지만 광석대에 대해서는 생소하게 여기는 사람들이 많다.

<규봉암의 광석대 주상절리>

규봉암을 갔다 와서도 주상절리를 보았지만 규봉암에 있는 주상절리가 광석대인 줄 모르는 사람이 많은데 이러한 것은 규봉암에서 광석대에 대한 안내판을 만들지 않아서인 것으로 생각이 된다.

규봉암에 들어가서 한동안 여러 위치에서 사진을 찍고 윗길로 나와 양지바른 곳을 찾아 점심을 맛있게 먹었다.

점심을 먹으며 정면에 보이는 봉우리가 멋있게 보였는데 무슨 봉우리이지 알지 못했고 아마도 그 봉우리가 입석대나 서석대가 있는 곳은 아닌가 예측을 해보았다.

<전설을 가지고 있는 지공석실---좌측 바위에 지공대사 좌선 수도원이라 써있다.>

<지공이 법력으로 수 억 만개의 돌을 깔았다는 지공너덜겅>

식사를 마치고 윗길을 통해 한동안 가니 무지무지하게 긴 너널지대가 나온다.

이곳이 지공너덜이며 너덜이 시작되는 길가 옆에는 석실이 있는데 이 석실은 옛날 지공과 뇌공이라는 두 선사의 신비로운 전설을 간직하고 있는 곳이라고 한다.

나옹의 스승인 지공은 원래 인도의 제납부타라는 승려로 금강산과 무등산에 머물기도 했는데 지공스님이 지공 너덜 옆에 석실을 만들고 좌선수도하면서 법력으로 수 억 만개의 돌을 깔았다는 전설이 전해지는데 이곳이 석실과 지공너덜이라고 한다.

<장불재로가는 길에서 보는 입석대와 서석대 풍경>

<안양산으로 처음에는 서석대가 있는 곳으로 착각>

지공석실에서는 누군가 버너를 이용해 라면을 끓여 먹고 있었으며 지공 너덜에는 산행하는 남녀의 아름다운 사랑이야기가 진행 중 이었으며 따사로운 햇볕이 내려 쬐이는 지공너덜 지대는 한가롭게 느껴만 졌다.

너덜을 구경하고 장불재 방향을 보니 길 방향이 장불재 위쪽으로 닿는 것같이 느껴져 불안해지기 시작했는데 윗길로는 사람의 통행도 적어 물어볼 사람도 없다.

갑자기 불안감이 엄습해오고 불안한 마음에 다시 규봉암으로 되돌아가 아랫길로 내려선 것까지는 좋았는데 아랫길로 한동안 가다보니 윗길과 만나게 되는 데 너무 성급한 생각으로 힘은 힘대로 빼고 시간은 많은 손해를 봤다.

<장불재의 풍경>

<장불재에서 본 광주 시가지와 중봉>

<정불재 표지입석에서>

장불재로 가는 길은 비교적 좋았으며 밋밋한 오르막으로 지나 넓은 광장과 대피소가 있는 장불재에 도착한다.

장불재에 도착해 안내판을 보고 입석대와 서석대를 확인하였으며 먼저 보았던 민등 능선에 우뚝 솟은 봉우리는 앞서가는 사람들의 대화를 들으니 낙타봉이라고 하였는데 나중에 지도를 확인해 보니 안양산으로 표기되었고 안양산에서 장불재까지 긴 능선은 지인들의 산행기를 참조해보니 백마능선이라고 표기하고 있다.

장불재에 도착하여 많은 사람들과 하나가 되니 왠지 모르게 마음이 푸근하고 마치 내 집에 온 것 같은 안도감이 들어 아무 하는 일도 없이 사람들 사이를 이리저리로 배회하였는데 아마도 한동안을 혼자 걷다가 나도 모르는 외로움이 쌓여 있었나 보다.

<입석대로 가는 길 풍경>

그렇게 장불재 억새밭에서 추억을 만드는 사람들과 광주 시내를 내려다보기도 하고 건너편 중봉의 모습도 보며 시간을 보내고 장불재 표지석으로 다가가 옆 사람에게 사진 한 방을 부탁하고는 입석대로 향한다.

입석대는 장불재에서 500m의 거리에 있는데 경사도 완만하여 큰 무리 없이 오를 수 있으며 입석대는 서석대와 더불어 200512월 천연기념물 465호로 지정되어 있는 주상절리대다.

 

주상절리대는 화산이 폭발하여 솟구친 용암이 지표로 흘러나와 냉각되어 생기는 것인데 대개 4~8각을 이루고 있다고 한다.

주상절리대는 이곳 외에도 제주도 바닷가와 경주 양남 바닷가, 울산의 강동 바닷가에도 있다.

육지에 있는 주상절리대 중, 포항 달전리의 주상절리는 무등산의 서석대와 같이 전면은 드러내 있으나 후면은 땅속에 묻고 있는 형태다.

또한 입석대는 주상절리는 유일하게 6각형의 돌기둥으로 마치 석수쟁이가 모형을 만들어 세운 것처럼 오묘하므로 감탄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자연은 참으로 신기하고 그 힘은 가히 예측할 수 없을 정도여서 인간이 만들 수 없는 기이한 작품을 만들 수 있다는 생각을 하면 자연의 위대함을 새삼 느낄 수 있다.

입석대는 2007년 초만해도 출입이 자유로웠으나 낙서를 하는 등 훼손이 심해지자 출입을 제한하고 전망대를 만들어 전망대에서 볼 수 있도록 하였다고 한다.

<입석대를 배경으로 포즈를 취한 여인>

<멋진 풍경 아래 누군가 묘지를 썼다>

<입석대 포토-존에서>

입석대는 최고의 명소로 명소중의 명소를 차지한 사람이 있으니 입석대 주상절리 바위 앞에 누군가 묘를 썼는데 풍수에 따르면 참으로 명당에 묘를 썼다.

풍수지리에 의하면 묘지 뒤에 바위를 두고 묘터를 잡으면 자손이 결재를 하는 직업을 갖는다하니 아마도 공무원으로 자손이 잘 풀렸을 것이라 긍정적으로 생각을 해 주고 이제는 자손이 잘되었으면 욕심을 버리고 다른 곳으로 이장을 해야 되지 않을까? 생각이 된다.

과유불급이라고 지나치게 많음은 모 자른 것만 못하다고 하니 너무 좋은 것을 기대하면 더 나쁜 해가 될지도 모를 것이기 때문이다.

공원관리소에서 관광지의 관리를 위해 묘를 제대로 관리를 해서인지 명당이라는 생각에 아까워서인지 묘지를 이장하지 않고 있는 것인지 아무튼 다중이 보는 명소에 초라한 묘지가 있다는 것은 보기에 좋지 않은 것은 분명한 일이다.

<입석대의 풍경>

입석대 전망대에서 내려와 오른쪽으로 조금 이동하면 작은 입석대 표지석이 있는데 많은 사람들이 입석대 증명사진을 찍는 곳으로 이곳은 인기를 끌고 있는 포토존의 한 곳이기도 한데 두리번거리다가 옆에 있는 사람에게 사진을 찍어 줄 것을 부탁하니 친절하게 2장을 찍어준다.

<입석대와 승천암 중간에 있는 주상절리 풍경>

입석대 우측으로 돌아 입석대 정후면 뒤로 길이 나있는데 이 길로 올라가며 규모는 작지만 멋진 주상절리 입석이 또 있는데 입석대가 인기가 많다보니 이곳은 사람들이 눈길도 주지 않는다.

입석대에서 이 길로 500m를 오르면 서석대가 나오게 되는데 서석대를 오르는 중간에 전설을 가지고 있는 승천암이 있다.

<누운 주상절리대  승천암 풍경>

전설에 의하면 옛날 승천암 부근에서 무언가에 쫓기고 있는 산양을 스님이 구해주었는데 스님이 잠을 자는데 이무기가 나타나 스님의 몸을 감고 내가 산양을 집아 먹고 승천하려 했는데 스님이 훼방을 놓아 승천하지 못했으니 만약 종소리가 나지 않으면 너라도 잡아먹어야 되겠다.”라고 하였는데 얼마 있지 않아 우렁찬 종소리가 들리니 이무기가 스님을 풀어주고 사라졌다는 것이다.

꼭 치악산의 상원사에 전해지는 구렁이와 꿩의 전설과 흡사한 이 전설은 조금 더 진행을 하면 아미도 스님에게 구원을 받은 산양이 머리가 터져 죽으면서까지 스님에게 은해를 갚았다고 풀어가지 않았을까?

입석대를 지나 승천암을 지나 서석대에 이르기까지 각을 이룬 바위들이 무수히 많은데 아마도 땅을 파보면 이러한 바위들도 땅속에 묻혀있는 주상절리대의 돌출부분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천왕봉 아래로 지공이 법력으로 깔았다는 너덜겅이 산재해 있다>

<서석대로 오르는 길>

승천암을 지나고 점점 고도를 높이면서 모든 시야가 한눈에 들어오니 그냥 두고 지나치는 것이 아까운 풍경을 가다말고 카메라를 수없이 담는다.

봉우리 정상에 오르니 서석대 표지석이 있어 놀랐는데 아래서 보면 주상절리대가 길게 산에 기댄채로 형성되어 있지만 위에서 보면 평범한 땅바닥에 바위가 드믈게 보일뿐으로 주살절리대라는 실감을 느낄 수 없는데 진가는 나중에 하산하면서 서석대의 진면목을 볼 수가 있다.

<서석대 정상에서 보는 풍경>

<서석대 정상석에서>

무척 붐빌 것으로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사람들이 적은데 이는 산악회마다 하산 시간이 정해져 있으므로 시간을 맞추기 위해서 중봉3거리에서 전망을 하고 하산하는 사람이 많아서인 것 같았다.

서석대 표지석에서 기념촬영을 하는 사람들 틈에 끼어 기회를 보아 어렵게 한 커트 부탁을 한 뒤 갈 수 없는 정상3봉인 인왕봉과 지왕봉 그리고 최고봉인 천왕봉을 마음에 담아 본다.

오늘 우리가 오를 수 있는 최고봉이 서석대이다.

<정상3봉인 인왕봉과 지왕봉 그리고 천왕봉>

정상3봉은 20115월과 102차례 1966년 군부대 주둔 이후 45년 만에 무등산 정상 부근인 인왕봉과 지왕봉이 개방되었고 2012년에는 4, 7, 10, 114차례 개방하였다고 하는데 정상인 천왕봉은 방공시설이 설치되어 있어서 개방되지 않았다고 한다.

정상을 오르지 못한 아쉬움을 남긴 채 서석대에서 천황봉과 유봉쪽으로 이어지는 너덜지대와 흩어져 있는 주상절리들, 평온한 광주시내 그리고 호남정맥으로 이어지는 안양산과 백마능선, 화순 방향의 주암댐 등 조망이 좋아 사방을 둘러보며 많은 시간을 할애한 후 발 아래보이는 중봉을 향해 서서히 이동을 한다.

장불재에서 서석대로 오르는 길은 입석대를 지나 오르는 길과 중봉갈림길 3거리에서 서석대로 오르는 길이 있는데 다시 말해서 입석대에서 서석대를 오른 뒤 입석대로 다시 되돌아 오지 않고 바로 중봉 3거리로 내려올 수 있다는 것이다.

계속 내리막길로 이어지는데 길의 사정은 좋은 편도 아닌데다 어제 비가 내렸을 때 이곳 고지대에는 눈이 내려서 하산 길 주위에 아직도 잔설이 남아 있어 실수를 하는 날이면 많이 다칠 수 있으므로 조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전망대에서 본 서석대>

<서석대 전망대에서 본 인왕봉의 주상절리 풍경.>

서석대 정상에서 중봉3거리 방향으로 5분여를 내려오면 서석대 전망대가 있다.

이곳은 서석대 주상절리대를 제대로 볼 수 있도록 시설을 갖춘 곳으로 이곳에서 서석대를 보면 입석대와 달리 전면은 외부로 나타나 있지만 후면은 땅속에 묻혀있는데 산을 등지고 기대있는 주상절리대인 것이며 주변의 작은 주상절리는 입석대 형태를 띠고 있는 것도 있다.

서석대를 오르는 사람에게는 쉼터를 겸한 전망대가 되고 내려가는 사람에게는 정상에서 표지석만 보았으므로 실제 주상절리 서석대를 제대로 보고 갈 수 있는 전망대가 되는 셈이다.

서석대 전망대에서 10여분을 내려서면 중봉3거리에 닿는다.

이곳은 장불재에서 1km로 떨어진 지점으로 넓은 비포장 차도로 연결되어 있으며 원효사 방향 공원관리사무소로 내려가는 차도와 장불재로 가는 방향 그리고 천왕봉으로 올라가는 방향이 맏 닿은 3거리로 비포장 2차선으로 되어 있는데 중봉도 이곳에서 1km로 떨어져 있다.

<중봉으로 가는 길>

<중봉 억새평원 풍경.>

<중봉 억새평원에서 본 우측의 서석대와 좌측의 천왕봉>

시간을 보니 3시가 조금 넘은 시간으로 조금은 집결시간에 도착하기에 촉박한 듯하다.

잠시 숨을 돌리고 중봉으로 향하는데 삼거리에서 중봉까지는 넓은 평원에는 억새가 자리를 잡고 있는데 10월에는 흐드러지게 핀 억새로 장관을 이루었을 듯한 이곳은 원래 중봉 아래에 있는 군부대가 자리를 잡고 있던 곳인데 1999년도에 군부대가 현재의 위치로 이전하여 옛 모습을 복원을 하였다고 한다.

초원하면 저지대의 낭만적인 풀밭을 떠 올리지만 이렇게 1,000고지의 높은 곳에도 넓은 초원을 이루고 있는데 가을철 억새산행을 떠올리는 여러 산들에게 뒤지지 않을 정도이니 무등산도 이제는 억새산행에 주전으로 자리매김할 날도 머지않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 심하지 않은 곡선의 미를 나타내며 이리저리로 굽은 도로를 따라 뒤돌아보면 방금 내려선 천왕봉과 서석대가 보이고 좌측으로는 입석대와 장불재의 방송 중개탑이 위용을 나타내며 그 뒤로 백마능선을 타고 흐르는 초원이 앞으로는 우뚝 솟은 중봉이 억새와 어우러져 장관을 이룬다.

<중봉 정상석에서---한장을 찍기위해 나도 한장을 찍어 주었다.>

<중봉에서 보는 풍경>

<억새평전에서 능선으로 이전한 군부대>

급한 마음에 빠른 걸음으로 단숨에 중봉에 올라 사방을 조망하며 주위를 살피다가 어느 가족의 사진을 찍어주고 나도 사진 한 장을 부탁하니 또 그렇게 중봉에서의 추억을 만든다.

사방 어느 방향을 보아도 싫증나지 않는 경관에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아 아까운 10분을 투자하며 가야할 중머리재를 내려다본다.

시간을 보니 아무래도 집결시간 안에 증심사까지 내려가지 못할까? 하는 불안에 산악 마라톤을 하는 식으로 중머리재를 향해 내달리니 10여분 갔을 때 나를 불러 세운 것은 무명의 주상절리였다.

다른 곳에서는 보기 힘든 주상절리가 이곳 무등산에는 여러곳에 산재하고 있으니3대 주상절리인 광석대, 입석대, 서석대외에도 천왕봉을 오르는 전위봉인 인왕봉과 지왕봉 그리고 천왕봉 등에도 멀리서 보면 주상절리가 솟아있는 것으로 관측되고 이곳에 있는 주상절리만 해도 귀한 이름을 가지고 있을 법한데 이름도 얻지 못 한 채 외롭게 서있는 것이다.

<무명의 주상절리에서의 풍경>

뒤에 내려오던 어느 일행이 그냥 내려서기 아쉬웠던지 이곳저곳을 누비며 사진을 찍어대니 제3자를 모델로 한 커트 찍고는 다시 경사진 내리막길을 순식간에 내려서니 많은 사람들이 휴식을 취하고 있는 중머리재이다.

 


<중머리재 풍경>

이제 증심사까지 2km이므로30분이면 내려가지 않을까?하는 생각에 여유롭게 휴식을 취하고 다시 급한 하산을 한다.

<하산길에 보는 새인봉>

<무등산 증심사를 나서며---공사중인가?>

2km라서 금방 내려갈 것이라는 예상은 많은 사람들이 길을 메우고 있고 등산로 사정도 그리 좋은 편이 아니어서 쉽지 않았는데 증심사 조금 못 미친 지점에서 후미대장을 만나 여유를 가지고 하산을 한다.

450년 된 느티나무 보호수에 도착해 증심사에 다다랐음을 느끼고 증심사를 지나며 산 위에서 보지 못했던 단풍나무의 아름다운 잎새를 보며 간간이 눈이 남아있던 서석대 주변과 달리 이곳은 아직도 가는 가을을 아쉬워하며 가을의 끝자락을 놓지 못하고 있는 안타까운 현실을 접하며 공사중인 증심사 일주문을 벗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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