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흘산 산행기
산행일시: 2013년05월 11일
누구와: 서울가고파산악회와 함께
산행거리: 약16.2㎞
산행시간: 6시간20분(10:20~16:40)
산행코스:1관문,주흘관(10:20)-여궁폭포(10:40)-약수터(11:45)-주흘산(12:35,1075m)-주흘영봉(13:08,1106m)-부봉3거리(14:25)-부봉1봉(14:40,917m)-제2관,조곡관(16:00)-1관문,주흘관(16:40)
부봉에서 본 주흘산
주흘산은 문경의 진산으로 그 형상이
마치 학이 날개를 펼치며 날기 직전의 모습이라
하며 영봉 정상석을 세운 곳이 머리에 해당된다고
하는데 이러한 형상은 부봉에서 바라보아야 볼 수가 있다고 한다.
주흘산은 여러 차례 찾았으나 정작 주흘산을 오르지 못했다.
아주 오래전 직장 동료들과 과거길을 찾은 것을 시작으로 가족들과도 산이 아닌 과거길이나 왕건 촬영장을 찾기도 했지만 정작 주흘산 정상을 가보지 않았다.
언젠가는 마역봉과 부봉을 오르기도 했지만 거기까지였고 역시 주흘산 정상을 가보지 못했다.
명산100산 이름을 짓느라 백두대간 답사길에 대간길3거리에서 주흘산 영봉을 찍고 내려서기는 했지만 그것도 주흘산을 올랐다고 말할 수 없다.
명산100산을 일부러 답사하러 다니지는 않지만 어차피 명산을 오르다 보면 100산도 언젠가는 다 오르는 날이 있을 것이다.
어차피 명산100산을 답사해야 하는 입장과 요즘 야생화가 한창인 절기이기에 주흘산의 야생화를 볼 겸 하여 가고파산악회와 주흘산으로 나서기로 했다.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회장의 지시에 따라 1관문으로 향한다.
제1관문 주흘관(뒤로 부봉)
주흘관 홍예문 천장에 인물화
제1관문인 주흘관은 2층으로 되어있는데 2층은 팔작지붕의 누각으로 관원이 수문을 하던 곳이며 1층은 사람들이 통행하던 문으로 무지개 형태의 홍예문인데 천장에는 의미심장한 인물화가 그려져 어 눈길을 끈다.
법궁인 경복궁의 동서남북 문 천장에는 청룡, 주작, 백호, 현무가 그려져 있는 것과 달리 주흘관 천장에는 누군지 모르는 장수의 얼굴이 그려져 있었는데 긴 머리를 뒤로 동여매고 비녀대신 장검을 꽂고 있었는데 이 그림의 의미는 무엇일까? 아마도 잡귀를 물리치는 척사의 의미가 아닐까?
여궁폭포로 가는길 풍경
주흘관을 지나자마자 우측으로 들어서 여궁폭포로 방향을 잡았는데 산행하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아 우리 팀이 누군지 전혀 알 길이 없다.
여궁폭포로 오르는 계곡은 계속 너덜 길을 오르게 되어 있는데 얼굴에는 땀이 흐르지만 몸 전체는 더위를 제대로 느끼지 못하고 있었는데 아마도 계곡에서 굉음을 지르며 힘차게 바위와 부딪치며 흐르는 계곡의 물 때문이 것 같다.
여궁폭포에서 인증을
20여분을 올라 여궁폭포에 도착하니 먼저 도착한 사람들이 장사진을 치고 있었고 서로 좋은 지점에서 사진을 찍느라 아수라장을 방불케 하였는데 20여m는 되어 보이는 직벽에서 폭음을 내며 쏟아지는 물줄기가 장관이었으며 대부분 사람들이 한동안 자리를 뜨지 않는다.
이곳 원주민들은 이곳을 파랑소라고 불렀다고 하는데 이 파랑소는 물이 원래 깊어 실 한 타래가 들어갔다고 하며 조곡관아래 용추와 연결되어 있어 이곳에서 실을 넣으면 용추로 나왔다고 하는데 어느 해에 수해로 용추로 이어지는 수로가 막혔다고 한다.
이곳은 경관이 뛰어나 하늘의 칠선녀가 이곳에 내려와 목욕을 했다는 것으로 아래서 위로 올려다보면 마치 여인의 하반신과 같이 생겼다고 하는데 사람들이 많아 그러한 모습을 볼 여유도 없다.
시원스럽게 쏟아지는 물줄기를 배경으로 초면인 사람에게 부탁해 증명사진을 찍고는 작은 다리를 건너 정상으로 발길을 돌린다.
여궁폭포 위 계곡이 궁금했는데 여궁폭포 아래쪽과 흡사했으며 계곡의 물도 많았고 작은 폭과 작은 소를 무수히 거느리고 있었는데 계속하여 아래로 물을 방출하고 있었다.
쌍폭포
혜국사로 가는길 다리를 건너고
시원한 계곡을 따라 한동안 올라 쌍폭포에 도착했는데 두 계곡의 합수점이기도 한 이곳은 좌우에서 물을 쏟고 있었는데 좌측은 수량이 적었고 우측은 수량이 많았는데 좌측은 혜국사가 있는 계곡에서 내려오는 물이고 우측은 곡충골의 주 계곡이었는데 등산로는 우측 폭포위로 있는 아치구름다리를 건너 좌측 계곡으로 오른다.
혜국사의 전경
계곡을 따라 5분여를 오르면 혜국사 갈림길이 나오는데 등산로는 혜국사로 가지 않고 윗 쪽 경사진 길로 오르게 되어 있는데 혜국사의 불전사물이 있으면 사진을 찍으려 혜국사로 갔는데 혜국사는 공사가 한창이었고 규모가 아주 작고 불전사물도 없다.
혜국사를 지을 때 돈이 없어서 기와를 올리지 못했는데 주지스님이 불경을드리고 난 후 말 두필이 내려와 기와를 올려주었다는 전설이 전한다.
불전사물 생각에 혜국사를 들렸다가 10분을 허비하고 다시 3거리로 와서 등산로를 따라 15분 정도 오르니 안정암이란 지점 이정표가 있는데 안정암은 이정표 우측 아래 있었는데 눈여겨보지 않으면 알 수가 없는데다가 이곳에서 보면 지붕만 보인다.
혜국사를 지나 야생화를 만나고
혜국사에 딸려있는 암자인 안정암에도 전설이 있다.
암자를 지을 때 돈이 없어 불공을 드리자 산삼 30뿌리를 내려주었다고 하는데 그 덕분으로 산삼을 팔아 안정암을 지을 수 있었는데 암자를 짓고 남았던 산삼을 스님과 보살이 눈이 맞아 도망을 치면서 이 산삼을 훔쳐가지고 가서 팔았다고 하는데 이로 인해 스님은 앉은뱅이가 되었고 산삼을 사서 먹은 사람은 피를 토하고 죽었다고 하는 전설이 전해진다고 한다.
산삼을 훔친 스님이 앉은뱅이가 된 것은 이해가 되지만 돈 주고 사먹은 사람은 무슨 죄가 있다고 죽어야 했을까???
안정암을 지나 경사진 길을 따라 주변을 구경하며 오르다 물이 마른 계곡을 건너면 산죽이 주변을 덮고 있으며 이곳부터는 햇볕에 온몸이 노출되는 지점으로 잠시 더위와 싸워야 하는데 그렇게 주금을 오르다 보면 더위를 식혀줄 샘터가 나오는데 이곳이 대궐터이다.
대궐터에 남아 있는 샘터
이곳이 대궐터라는 이름을 갖게 된 이유는 고려말 공민왕이 홍건족의 난을피해 피난길에 올랐다가 이곳에 행궁을 설치한데서 비롯되었다고 하며 이 샘터는 그 당시부터 사용하던 것이라고 하는데 오랜 세월이 지나도 샘물은 끈임 없이 솟고 있는데 대궐은 간데없고 무성하게 잡목만 자라고 있다.
샘터는 수량이 풍부해 산을 찾는 많은 사람들의 갈증을 풀어주고도 남음이 있는데 시원한 물을 한 바가지 그대로 마시고 잠시 뒤를 돌아보며 여유를 가져본다.
이제껏 앞만 보고 오르느라 주변을 제대로 보지 못했는데 이곳에서 보니 맞은편 조령산이 가깝게 보이고 대간의 하늘금은 조령산의 연봉을 따라 수직으로 오르락내리락하며 의료기기가 심폐기능을 측정하는 것처럼 불규칙하게 이어진다.
샘터를 지나고 너덜지대 계곡을 오르며 길가 옆에서 처음으로 접하는 작은 꽃을 발견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이 꽃이 회리 바람꽃이라고 하는데 진작 알았으면 더 예쁘게 더 세밀하게 찍는 것이었는데.............
경사진 등산로 위 아래로 야생화가 서식하기 좋은 환경으로 많은 야생화가 꽃을 피우고 지며 삭과를 맺을 준비를 하기도 한다.
능선을 점점 오르며 위에 보이는 봉우리가 정상인 줄 알았는데 이 봉은 정상 전위봉으로 정상가는 길은 능선을 넘어 좌측으로 이어지는데 능선에 가려 보이지 않던 주흘산 주봉이 나타나고 가는 길은 데크계단을 한동안 설치했다.
정상아래 야생화 밭
계단 아래쪽으로는 넓은 초원에 피나물 박새 현호색등이 무리지어 둥지를 틀었는데 흰 꽃이 보이므로 꽃마리인 줄 알았는데 키가 조금 작은 홀아비바람꽃이 넓은 초원을 뒤덮고 있었는데 이러한 군락지를 본적이 없어 흥분이 좀처럼 가시지 않았다.
혼자 꽃을 구경하느라 많은 시간을 보냈는데 그 사이 많은 산님들이 정상으로 올라갔지만 야생화에 대해 관심이 없으니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었다.
꽃밭을 나와 주흘산 주봉을 향해 조금 가다 보면 하나의 바위산이 둘로 가라진 듯한 협곡이 나오며 V자로 갈라선 협곡아래로 문경의 산하가 한눈에 들어온다.
이곳 우측경사가 심한 협곡사이에서 나이든 부부가 올라오는데 이곳은 문경시내 동쪽 지곡리에서 올라오는 길로 주흘산을 제일 가깝게 올라올 수 있는 길이란다.
전좌바위
주봉을 받치고 있는 천길 낭떠러지기의 바위기둥은 인공으로 깎아 세운듯한데 양쪽으로 세워진 이 바위가 전좌바위라고 하며 아래쪽에서 정상방향을 보면 양쪽의 전좌바위가 마치 정상을 오르는 문 같이 생겼다하여 전좌문이라고 한다고 한다.
이미 올라오며 대궐터의 샘을 지났는데 이곳 전좌문에도 고려 공민왕의 애환이 서린 이야기가 전해지는 곳이라고 하는데 고려 공민왕이 홍건적의 침입을 피해 지금의 안동인 복주로 피란했다가 떠나는 길에 동화원 부근 어류동에 머물면서 매일 올라 북쪽 계립령길(계립령은 현재 부봉과 포암산 사이에 있는 하늘재로 당시에는 경상도와 충청도를 잇는 최고의 길이었습니다.)을 바라보며 희소식을 기다렸다는 얘기가 전한다.
이곳 전좌문을 지나면 주흘산 정상까지는 계속 데크 계단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이 데크 계단을 만들기 전까지는 많은 사람들이 오르고 내려 명산의 훼손이 심각했다고 하는데 이제는 데크 계단을 이용하므로 주변의 아름다운 산을 보며 정상을 오를 수 있게 되었다.
주흘산 정상
주흘산 주봉정상에서
정상에서 본 문경시내와 관봉
정상에 오르니 중앙에 정상석이 있고 문경 시내가 한눈에 보이고 건너편으로 운달산이 우뚝 솟아있다.
대간길을 찾으려 하니 보이지 않고 정상 남서쪽으로는 1080m의 관봉이 솟아있는데 보기가 좋다.
정상 부근 여기저기에는 많은 산님들이 식사를 하거나 휴식을 취하며 담소를 나누고 있었는데 대부분 혼자 산을 찾으니 이러한 풍경을 접할 기회가 적었는데 보기가 좋다.
올라올 때 많았던 산님들은 주흘산 주봉을 보고 2관문으로 하산을 대부분하고 20%정도가 영봉을 거쳐 2관문으로 내려서며 부봉을 오르는 사람들은 나같이 미련한 사람 소수에 불과한 것 같다.
짭짤한 수입을 올리고 있는 아이스크림 아저씨
정상에는 아이스크림 장사가 500원하는 아이스크림을 2.000원에 팔고 있었는데 땀 흘리며 고산을 올라와서인지 많은 사람들이 아이스크림을 사먹으니 아이스크림 파는 아저씨 오늘 장사가 짭짤한 것 같이 보였다.
인증사진을 찍고 한쪽에서 집사람이 챙겨준 떡으로 간단히 요기를 한 후 영봉으로 나선다.
주흘산 주봉에서 영봉까지는 약 20분이 걸리는데 이어지는 능선 길은 아주 좋아 마치 양탄자 위를 밟고 지나는 것 같이 좋으나 1030봉을 지나면서부터는 암릉이 시작된다.
우측으로는 계속 자로는 잴 수 없는 낭떠러지기가 이어지고 암릉길 양쪽으로는 이제 막 피기 시작한 진달래가 한창으로 어린 시절을 회상하며 진달래를 따 씹으며 진달래 향기를 느끼며 영봉이어간다.
주봉에서 많았던 사람들이 주봉에서 머물기도 하고 다시 올라선 길로 내려서는 사람들도 있고 이미 영봉으로 간 사람들도 있어 등산로는 한적하고 조용한편이다.
주변의 절벽지대와 나뭇가지 사이로 내려다 보이는 문경시내와 건너편 단산을 보며 걷다보면 어느 새 영봉으로 올라선다.
영봉에 올라서니 식사하는 3팀 10여명이 있었으며 주흘산 영봉은 백두대간을 하면서 평천재로 내려서는 갈림길에서 이곳을 올랐던 게 전부였다.
그때는 주흘산 영봉에서 주봉을 갔다 오고 싶었는데 시간문제로 가지 못하고 아쉽게 발을 돌리기도 했었다.
주흘산은 문경의 진산으로 그 형상이 마치 학이 날개를 펼치며 날기 직전의 모습이라 하며 영봉 정상석을 세운 곳이 머리에 해당된다고 하는데 이러한 형상은 부봉에서 바라 보아야 볼 수가 있다고 한다.
주흘산 영봉 정상
주흘 영봉에서
경향신문사 명산 취재팀이 찍은 사진
영봉에서 보는 백두대간 능선
영봉에서 보는 월악산과 포암산
우측 벼랑으로 잡목들이 있어 시야를 가렸었는지 벼랑 여기저기에 자른 나무가 놓여있고 나뭇가지사이로 월악산과 포암산이 보이고 포암산 우측으로는 대간을 따라 전혀 가림이 없는 대미산의 하늘금이 지나간다.
뒤 이어온 사람들과 서로 사진을 찍어주고는 영봉을 벗어나 대간방향으로 내려서다 점심을 해결한다.
점심을 마치고 시간을 보니 13시33분이다.
부봉3거리로 가면서 보는 조령산과 부봉
백두대간길3거리에서
부봉3거리로 가는 백두대간길 풍경
16시까지 산행을 마쳐야하는데 부봉을 오르면 시간이 빡빡하고 그렇다고 영봉에서 2관문으로 하산하자니 왠지 억울한 생각이 든다.
부봉을 오르기로 하고 아래쪽으로 내려선다.
금방 갈 것 같았던 3거리 대간 갈림길은 좀처럼 나타나지 않더니 딱 30분이 걸려 도착을 한다.
3거리에는 중견부부가 쉬고 있다가 자청해서 사진을 찍어 준다고 하고 오이 한 토막을 주어 고맙게 받고 다시 속력을 내어 부봉3거리에 도착했는데 아무도 없다.
5분을 쉬고 난 뒤 부봉으로 오른다.
부봉3거리
부봉정상의 모습
제1봉에는 묘지가 있다 묘지 옆 정상석도 있다.
10여 년 전 3관문에서 마역봉을 지나 부봉 전체를 등정하고 2관문으로 내려선 적이 있지만 모든 기억이 어렴풋하다.
나뭇가지사이로 보이는 포암산과 월악산을 보고 숨을 돌린 후 2봉으로 간다.
1봉에서 내려서면 거대한 바위아래 오픈 동굴이 있는데 야영을 하기에 좋은 장소가 된다.
잡목을 지나 2봉에 도착했으나 정상석도 없고 잡목이 많아 사방 어디도 볼 수가 없다.
부2봉 전망대에서 보는 부3.4.5봉과 조령산
2봉에서 내려서며 전망대가 있는데 이곳에서는 부3.4.5봉까지 보이고 좌측 후면으로 조령산이 보인다.
2봉에서 3봉은 보기에는 가깝게 붙어 있는 것처럼 보이는데 막상 2봉을 내려서며 보면 한동안 떨어져 있다.
부봉 제2봉 내리막의 미륵바위
2봉을 내려서는 막바지에는 마치 부처같이 생긴 바위가 있는데 이 바위가 미륵바위이며 미륵바위 앞 벼랑에는 반은 고사한 노송이 몸을 비비틀고 있는 모습을 하고 있는데 보기에 멋있다.
암봉을 내려서 지친 몸을 이끌고 3봉으로 오르는데 막판 로프를 잡고 오직 팔의 힘으로 올라야 하는 난코스가 나왔는데 힘이 빠져서인지 부담스럽게 느껴진다.
이곳은 겨울에 눈이 오고 난 뒤 난코스 중의 하나가 될 것 같은데 그나마 다행인 건 코스가 길지 않다는 것이다.
부3봉의 풍경
부3봉에서 보는 부4봉과 주흘산
3봉정상에는 정상석이 없는데 부봉 전체 6봉 중 정상석이 있는 곳은 1봉이 유일하다.
통 바위 덩어리로 이루어진 정상에 한 평정도 움퍽 패여 흙으로 메워진 곳에 소나무가 자라고 있는 것이 인상적이었으며 정상주변 음지에는 부부 2팀이 휴식을 취하고 있어 잠시 조망을 살피고 4봉을 향해 내려선다.
시간을 보니 15시가 넘고 있어 마음이 조급해지기 시작을 한다.
정해진 시간이 1시간밖에 남지 않았는데 생각보다 부봉 등정시간이 많이 걸리므로 탈출로가 있으면 하산한다는 생각으로 3봉을 내려섰는데 탈출로는 없고 어쩔 수 없이 4봉을 오른다.
부4봉 정상
부4봉에서 보는 지나온 풍경
부봉 제4봉 전망대에서 본 월악산과 포암산
급경사를 치고 올라 우측 우회길과 정상을 지나는 길이 있는데 바위를 타고 정상으로 오르며 시간이 없어 휴식을 취하고 싶어도 그대로 올라야했으며 2개의 대형바위로 된 정상은 반대편에서는 쉽게 오를 수 있는데 3봉 쪽에서는 오를 수 없다.
정상아래 돌아가는 길은 하나의 돌이 가라져 (ㄱ) 자로 되어 있는 바위기둥을 빠져나가 정상으로 오를까 했는데 그럴 시간적 여유가 없다.
부봉 제4봉에서 본 제5봉 사자바위와 우측 뒤로 제6봉
4봉을 내려서며 5봉을 보니 5봉 정상 사자바위가 그럴싸하게 보였으며 5봉 뒤 우측으로 6봉은 멀고 높게만 보였는데 거칠고 험한 4봉을 내려서며 아래쪽에 탈출로가 있기만을 바라며 내려선다.
기대했던 탈출로는 4봉을 내려섰는데도 없다.
어차피 5봉을 올라야 했는데 5봉은 거대한 산처럼 느껴졌는데 심신이 그만큼 지쳐있는 것 같았다.
힘이 들게 5봉을 올랐는데 4봉에서 볼 때 정상에 거대한 사자가 앉아 있는 듯 보였는데 정상에서 보니 그러한 형태는 나타나지 않았고 일반적인 통 바위였는데 어느 남녀가 서로 앉고 있어 아래서 보고 그냥 내려 올 수밖에 없었다.
부5봉 정상
5봉을 내려서며 6봉을 보니 멀리 떨어져 있기도 하고 높게 솟은 바위봉은 별개의 산처럼 느껴졌다.
5봉을 내려서며 마음속으로 탈출로가 있기를 무척이나 열망했는데 확실치는 않지만 10여 년 전에는 탈출로가 몇 곳 있었던 것 같았고 철 계단도 있는 것으로 기억되는데 이제껏 탈출로나 철계단이 없었다는 게 이해가 되질 않는 부분이었다.
5봉을 내려서 6봉 방향으로 다가서니 다행히 탈출로가 있다. 이정표가 비듬히 세워져 있었고 녹이 슨 이정표는 조곡관으로 내려가는 방향으로 화살표가 지시하고 있다.
이정표와 하산길에서 보는 부6봉
2관문까지는 2.5km로 1시간20분, 부봉은 1시간10분이 걸린다고 표기되어 있다.
현시간이 15시30분이니 주차장에 16시까지 가야하는데 절망이다.
탈출로로 들어서 계속 뛰어 내려가기 시작한다.
그렇게 계속 뛰면서 조곡관에 도착을 했는데 이정표에 80분으로 표기했는데 28분에 내려왔으니 거의 뛴 셈이다.
영남 제2관문 조곡관과 조곡관 앞 쉼터
조곡관 앞에는 50여명이 쉬고 있었는데 완전히 다른 나라에 온 느낌이었다.
다른 사람을 인식하지 않고 땀이 말라 하얗게 핀 염분과 흐르는 땀과 함께 뒤집어 쓴 먼지를 길가 수로에 흐르는 물에 세수를 하며 씻어내니 개운한 상태에서 약수터 이정표를 보고 계곡건너 약수터로 가니 맑은 물이 콸콸 넘치고 있었는데 한 바가지를 퍼서 그대로 마시니 온몸이 시원하고 정신이 바짝 든다.
정신을 차리고 나니 주흘관까지 가야된다는 압박에 바삐 갈 길을 서둔다.
주흘관은 조곡관에서 3km다.
문경새재 길은 누구나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인데 옛날 영남에서 한양을 오갈 때 주로 이용했던 통행로로 포암산 아래 하늘재와 소백산의 죽령과 함께 3대 통행로 역할을 했는데 하늘재는 명승 제49호이며 죽령은 명승 제30호이며 문경새재 옛길은 명승 제32호로 지정하여 원형을 보존하고 있다.
이 길은 포장하지 않은 흙길로 많은 사람들이 신을 벗고 맨발로 서행을 하고 있었는데 나도 맨발로 걷고 싶었지만 무거운 등산화가 또 다른 짐이 되니 그냥 걸을 수밖에 없다.
조곡폭포
조곡문을 지나면 바로 조곡교 다리를 건너 좌측으로는 조곡폭포가 있는데 옛날에는 보지 못했던 폭포로 아마도 인공폭포인 듯 했다.
전설을 지닌 꾸구리 바위
조곡폭포를 지나 5분정도를 오니 맑은 물이 흐르는 계곡에 큰 바위가 있는데 꾸구리바위라고 하며 이러한 설명문이 있다.
「전설에 의하면 이 바위 밑에는 송아지를 잡아먹을 정도의 꾸구리가 살고 있어 바위에 앉아 있으면 물속의 꾸구리가 움직여 바위가 움직이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고 하는데 특히 아가씨나 젊은 새댁이 지나가면 희롱하기도 하였다고 한다.」
아무리 전설이라 해도 다 자라야 15~20cm정도의 물고기가 어찌 이렇게 큰 바위를 움직일 수 있으며 감히 사람을 희롱할 수 있었다는 말인가? 우리나라의 전설은 과장이 너무 심하다는 생각과 그러니 전설일 수밖에 없고 흥미롭다는 생각을 하며 다시 부지런히 걷는다.
꾸구리 바위에서 약 3분을 지나면 용담 또는 용추라는 와폭이 있는데 이곳은 드라마 왕건 촬영지로 궁예의 최후 장면을 찍었다는 곳...........
여러 가지 이야기를 지니고 있는 용추
암튼 용추는 예로부터 시인들이 자주 찾던 경승지로 하늘과 땅의 신인 팔왕이 선녀들과 어울려 놀았던 곳이라 하여 일명 팔왕폭포라고도 불리는 곳으로 동국여지승람에는 사면과 밑이 돌이고 그 깊이를 헤아릴 수 없으며 용이 하늘로 오른 곳이라고 전하고 있다고 한다.
또한 여궁폭포와 연결이 되어 여궁폭포에서 물을 부으면 이곳으로 나왔다고 하는데 어느 해 수해로 막혀버렸다고 전하기도 하는 용추............
용추를 막 지나며 좌측으로는 교귀정과 노송이 자리하고 있는데 교귀정은 조선시대 신·구 감사가 업무를 인수인계하던 곳으로 현재 건물은 1999년 복원되었다고 하는데 교귀정 옆에 있는 노송은 오랜 역사를 지키며 오늘도 그 자리에 있는 것이다.
교귀정---사또가 부임하면 이곳에서 인수인계가 이루어졌다고 한다.
지름틀 바위
교귀정을 지나 10분을 내려서니 또 하나의 볼거리가 오가는 사람의 발걸음을 멈추게 하는데 지름틀바우라고 이름이 붙은 바위로 지름이란 경상도 사투리로 기름을 말하는데 기름을 짜는 기름틀과 흡사하게 생겼다는 것이다.
무명폭포
지름틀 바위에서 5분을 내려오면 왕건쎄트장 후문입구가 있으며 그 맞은편으로는 작은 3단 무명폭포가 있는데 어제 비가 조금 내려서인지 제법 많은 량의 물을 쏟고 있다.
무명폭포를 지나 쎄트장 정문을 지나니 멀리 주흘관이 보인다.
영남 제1관 주흘관이 보인다.
많은 사람들과 더불어 조곡관에서 주흘관까지 전설이 있는 볼거리 등을 보며 지루하지 않게 왔지만 주차장으로 가서 이미 떠나고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으로 우리 버스를 찾았는데 아직 일행을 기다리고 있었다.
지정된 16시에서 45분이 경과된 시간이었는데 다른 일행에게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