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장산 산행기
산행일시: 2010년03월06일
누구와: 올림포스산악회원21명과 함께
산행거리: 약 8.7㎞
산행시간: 4시간00분(11:30~15:30)
산행코스:장성갈재(11:30.276m)-쓰리봉(12:28.734m)-686봉(13:23.점심20분)-용추폭포갈림길(13:55)-봉수대(14:00.725m)-정상(14:17.742.8m)-고창고개(14:45)-휴양림갈림길(15:00)-방장교(15:30)
호남의 삼신산 중 하나인 방장산은?
어제 저녁 남부지방에서는 비가오고 있다며 오늘 오전부터 갠다는 기상예보를 듣고 희망을 안고 아침 일찍부터 서둘러 산악회 버스에 몸을 싣고 고창으로 향한다.
방장산이란 산명은 산신이 살만한 신비로운 산에만 붙이는 이라하는데 중국에는 삼신산 중의 하나인 방장산이 있는데 이곳 고창의 방장산은 지리산과 무등산과 함께 호남의 삼신산으로 추앙받아 온데다가 산의 모양도 중국의 방장산과 닮았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하는데 방장산의 원래 이름은 방등산(方登山), 반등산(半登山)이었으나 임진왜란 후 승명의식에 의해 중국의 영산(靈山)인 방장산의 이름을 본 따 방장산으로 불렸다고 하며 1592년 임진왜란 때 조선을 지원하러 온 명나라 이여송(李如松) 장군이 고창에 이르러 방장산의 수려한 산세를 보고, 장차 천하를 호령할 큰 인물이 나올 것을 염려하고 5개의 쇠말뚝을 박아 산의 정기를 차단했다는 얘기가 전해지기도 한다.
최고 높이가 742에 불과하지만 고창지방은 평야지대로 인근의 산들이 100m급에 불과하므로 얕잡아 볼 수 없는 산이라 생각이 들며 산행을 시작하는 들머리인 장성갈재고개는 해발272m에 불과하지만 사설시조에서는 바람도 쉬어 넘는 고개, 산진(山眞)이 수진(水眞)이 해동청(海東靑)보라매도 다 쉬어 넘는다고 읊기도 한 것으로 보아 예로부터 장성갈재고개는 넘기가 힘든 고개였음을 말해주는 것이다.
장성갈재에서 쓰리봉으로.....
어제부터 남부지방에는 비가 내리다는 일기예고 때문인지 올림포스 산악회에 몸을 실은 산님들은 많지 않아 산악회장인 운전기사와 그의 부인인 총무 그리고 산악회고문이며 선두대장을 제외하면 순수한 산님은 21명으로 들머리인 장성갈재에 하차를 하니 어제 저녁부터 내렸다는 비는 아직도 안개비가 내려 앞뒤를 구분하기 힘든 자욱한 안개로 오늘 산행이 순조롭지 않음을 예고한다.
들머리의 날씨는 자욱한 안개와 안개비를 뿌리며 우리 일행을 맞아 주었고 나와 일행들의 의사와 상관없이 안개와 안개비가 자욱한 우측의 들머리로 끌어 들였고 여자5명과 남자16명은 생김도 멋있고 보기에 품의가 있어 보이는 선두대장의 지휘로 좁고 경사진 길을 따라 힘차게 산행을 시작한다.
차에서 내린 일행은 안개로 서늘함을 느껴서인지 모두 외투를 입고 산행을 시작하였고
어제부터 비가 내린 탓과 오름막 길은 검은 빛이 약간 나는 진흙으로 앞서간 사람들로 곤죽이 된 길을 따라 오르자니 경사진 길을 오르는 것보다 더욱 큰 어려움은 미끄러움이었으며 또 다른 요소는 가시거리가 30m에 불과한 안개로 심적인 불안이 작용하고 왠지 개운치 않고 공포영화의 한 장면을 연상시키는 그러한 분위기였다.
산행할 때마다 산행 전에는 후미에 끼어 여유있게 산행을 해야지 하는 건 마음뿐이며 막상 들머리를 지나 얼마가지 못해 본색을 드러내고 선두권에 합세하고 온몸이 땀이 스며드니 일행들은 여기저기서 외투를 벗는 사람들이 보인다.
오늘 온 산님들이 대체로 나이가 들었는데 산을 잘 오르는 분들인 듯 생각이 된다.
한동안을 올랐지만 사방의 시계가 불량하여 어느 정도 올라왔는지 산 아래의 풍경은 어떠한지 전혀 알지 못하는 상태에서 앞사람의 발자국과 뒷모습만 바라보며 쫓아가는 입장이고 보니 명산100산인들 무슨 소용이 있을까? 라는 생각을 한다.
507고지의 헬리포터
507고지의 헬리포터를 지나 다시 경사지고 미끄러운 길을 따라 오르니 돌로 단을 쌓은 흔적이 있는 봉우리에 올라 혼자 생각으로 이곳이 734m의 쓰리봉인가? 하는 생각을 하면서도 벌써 올라 왔을리 없다는 생각이 교차한다.
사방이 운무에 쌓여 앞만 보고 가다보니 앞에서 인기척이 나더니 우리보다 앞서 이 산을 찾은 팀이 있었는데 전문 등산객이기보다는 친목단체에서 산행을 나온 듯한 사람들이었으며 이 사람들이 길을 밟고 지나서인지 처음과 비슷한 곤죽 길을 지나 몇 차례 오르고 내리기를 거듭하더니 상당히 가파른 경사지를 계속 오른다.
처음부터 품위가 있어 보인다 생각했던 선두대장은 산행을 하며 이런저런 얘기 끝에 본인의 얘기를 하는데 부산출신으로 전 국회의장을 지낸 박관용씨와 친구이며 노무현 전 대통령과는 절친했던 9년 선배라며 노무현 대통령이 죽기 한 달 전에도 통화를 했다며 얘기와 다른 산악회에서도 임원을 맡고 있는데 올림프스에서 대장을 맡아달라고 사정을 하여 어쩔 수 없이 대장을 맡고 있다는 얘기였으며 후미대장을 맡고 있는 사람도 오늘 산행에 참여하지 않아 후미가 걱정스럽다고 한다.
쓰리봉에 올라 마음으로 사방을 조망하다.
담소를 마치고 다시 경사지를 오르니 비석이 서있는 묘지가 나오고 묘지를 지나 얼마되지 않아 스텐레스로 만들어 세운 정상판이 나오니 이곳이 해발734m의 쓰리봉이다.
쓰리봉 정상
선두대장을 먼저 가시라고 한 뒤 혼자서 서성이며 누군가 오기를 기다린다.
넓지 않은 쓰리봉 정상은 바위봉으로 날씨만 좋았다면 사방의 조망이 무척이나 좋았을 것이지만 지금은 운무가 사방을 덮고 있으므로 지척을 구분할 수가 없으니 명산이 아무소용이 없다.
정상에 한동안을 있으니 써늘한 한기가 온몸으로 퍼지니 혼자 천천히 걸을까? 생각하는데 기척이 나더니 조금전 쓰리봉 오름길에 묘지에서 잠시 쉬던 5명이 올라 왔는데 그 분들은 전주에서 온 분들로 "산을 청소하는 사람들"이라는 카페의 사람들이라며 한곳에 머물러 있기 힘들어 그 분들과 천천히 걸어본다.
갈재에서는 진흙땅이었으며 쓰리봉에 오를 때도 진흙이면서 간간이 잔설이 남아있었는데 쓰리봉에 올라서부터 암봉과 암릉으로 이어지는 능선의 앙상한 나뭇가지에는 어제 내린 비가 얼어 상고대를 만들어 하얀 수정의 나라와 나뭇가지마다 안개꽃을 피웠다.
쓰리봉에서
뒤이어 온 일행 몇 명을 만나 한동안을 걷다보니 너럭바위에서 선두대장이 기다리고 있다가 일행을 보고 너럭바위로 오라오라며 이곳의 조망이 매우 뛰어난 곳이라고 말하지만 눈으로 볼 수 없으니 이곳이 쓰리봉보다 조망이 더 좋은 곳인 나쁜 곳인지 예감과 생각뿐이지 시계가 30여m이므로 전혀 판단할 수가 없으니 안타까울 뿐이다.
실제 방장산은 조망이 좋기로 이름난 산으로 남으로 무등산이 보이고 동으로 내장산과 백암산이 그 앞으로 입암산의 능선 들이 한눈에 들어온다 하는데 아름다운 능선을 보는 것은 다음 기회로 미루어야 할 것 같다.
너럭바위에서 선두대장과 일행 몇 명이 한동안을 산에 대해 얘기를 하는 사이 일행 10여명이 올라오고 대원들이 오자 바탈진 암릉 길을 돌고 돌며 내려서다 바위 경사진 내리막에 와서 선두대장은 오늘 후미대장이 못나와 후미가 잘 오고 있는지 걱정이 된다며 불안해하자 내가 자청해 후미를 봐줄까 의사를 전달하니 감사하고 고맙다는 대장과 또 다른 회원들의 이구동성으로 터져 나온다.
후미대장이 되다
내려왔던 길을 역으로 한동안을 올라가 다시 너럭바위에 도착해서 드문드문 올라오는 일행들에게 안전사고에 대비한 조심산행을 일러주며 후미가 오기를 기다린다.
고창뻘에서 불어대는 강한 바람은 방장산의 능선까지 치고 올라 후미를 기다리기 위해 정지 상태로 있는 내겐 참기 힘든 고통으로 배낭속에 벗어 넣었던 자켓을 꺼내 입고 잠시 있으니 7명이 올라와 올림포스를 확인하고 후미인지 물으니 뒤에 또 다른 올림포스회원이 있다고 대답한다.
언제까지 기다려야 하나? 선두는 어디쯤 가고 있을까?
이런 저런 생각 중에 3명이 올라오고 올림포스 회원 중 후미임을 확인하고 3명과 함께 느린 걸음으로 안전사고에 대비하며 앞서간 다른 회원들을 따라간다.
3명은 한 동네 아니면 직장의 선후배인지 서로가 잘 아는 사이 같았으며 산을 자주 다니고 좋아하는데 한사람이 무릎이 아파서 함께 천천히 간다는 것이었다.
산죽과 진달래가 무성한 길을 따라 오르고 내리기를 몇 차례 기암이 우뚝 선 686봉이다.
앞서간 7명이 점심식사를 하는 중으로 후미팀도 이곳에서 식사를 하기를 원하니 각자의 도시락을 펼치니 집사람이 정성스럽게 싸준 약식과 떡 그리고 생고구마를 함께 나누어 먹으며 간단히 점심을 해결한다.
686봉
식사를 먼저 마친 3명은 먼저 출발하고 나머지 7명과 함께 가기위해 남아 있다가 함께 출발하니 얼마가지 않아 먼저 떠난 3명을 만나니 일행 반이 후미가 된 셈이다.
정상으로 가는 길.....
그렇게 반이 후미를 이루며 약15분을 내려서니 잎이 무성한 산죽속에 스텐레스 봉으로 세운 이색적인 이정표가 있는데 용추계곡을 거쳐 신평리로 내려서는 갈림길이다.
주위를 살필 여유도 없이 경사진 길을 오르는데 좌측은 바위 낭떠러지기로 계곡의 깊이는 모르겠으나 고도를 생각할 때 사면의 길이나 깊이가 상당할 것 같은 생각이 든다.
겹겹의 층으로 이루어진 경사면을 계단 오르듯 오르며 아마도 이곳이 정상이 아닐까? 생각했는데 예측은 빗나가고 이곳은 헬리포터로 활용하고 있는 봉수대인 것이다.
자욱한 안개로 10m밖에 구분되지 않는 봉수대 한 편에는 산을 청소하는 사람들 팀이 식사를 하는 중인데 산에서 코펠에 불을 지펴 라면을 끓이고 있으니 동아리 이름에 걸맞지 않게 산에서 취사를 하니 한심한 노릇이 아닌가?
얼마전 가리왕산을 갔을 때도 그랬고 백덕산을 갔을 때도 그랬으며 그외 산을 갈 때마다 자연스럽게 버너에 불을 지피는 사람들이 늘어가고 있는 현실을 볼 때 안타깝지 않을 수 없다.
방장산 정상
날씨가 좋았더라면 봉수대에서의 조망도 일품이겠으나 운무는 아직도 가시지 않아 조망이 안 되다 보니 휴식없이 진행을 하기로 하였으며 봉수대에서 한참을 내려서다 다시 오름이 시작되고 방장산 정상에 도착 직전 산악회 회장인 기사님이 후미를 보기 위해 역으로 올라와 상봉을 한 뒤 함께 정상에 서니 봉수대를 떠난지 15분이 지난 뒤였다.
방장산의 원 이름은 방등산이라는데.....
방장굴 앞에 있는 안내판에 의하면 방장산의 이름은 방등산이이며 방장산과 방등산가의 내력은 이러하다.
방등산은 나주의 속현인 장성의 경계에 있다.
신라말엽 도적이 이산에 은거하며 양가집 자녀들을 잡아가는 등 노략질이 성행할 때 장일현의 한 여인도 잡혀갔는데 남편이 구하러 오지 않는 것을 방등산가를 지어 한탄하였다한다.
고창고개로 가는길
방등산가는 작자와 연대미상의 백제가요로 고려사에 가사와 내력만 전해내려 온다고 하며 동굴은 고창평야를 배경으로 수송되는 곡물을 약탈하던 도적의 소굴로 이용되었고 구한말 천주교 박해 때 천주교도의 은신처로 사용되기도 하였고 6.25때는 빨치산의 근거지로도 이용되었으며 20여명이 기거할 정도의 굴이라고 한다.
이러한 방등산이 언제부턴가 방장산으로 바뀌고 험하고 깊은 산도 세월이 흐르며 건강을 제일로 삼는 시대에는 산은 높으나 결코 높지 않으며 계곡이 깊으나 결코 깊지 않은 산이 되었다.
올림포스 회원 중 마지막3명과 나와 회장 5명이 정상에 남아있지만 아마도 선두는 지금쯤 방문산으로 불리는 벽오봉을 지나 종착점인 양고살재로 향하고 있을 것이다.
회장님에게 사진 한 장을 부탁하고 정상에서 잠시 머무르고 고창고개로 하산을 시작한다.
편백나무 숲을 가로질러.....
정상에서남서쪽으로 약간 방향을 틀어 가파른 내리막길을 따라 조심스럽게 내려선다.
내리막길도 오르막 못지않게 곤죽이 된 등로는 우리의 안전을 위협했고 순간 실수를 하게 되면 다칠 수도 있겠으나 당장 생각되는 문제는 진흙탕으로 어떻게 남은 길을 가서 여벌옷으로 갈아입을 수 있으며 걱정해주는 척하면서 소리없이 비웃는 눈총은 어떻게 감당할 수 있을까? 하는 불안과 염려로 천천히 조심스럽게 내려선다.
가파른 길을 한동안 내려서 완만한 능선을 지나며 고압철탑아래를 지나 정상을 나선지 30분이 지나 고창고개에 도착한다.
고창고개는 용추골로 내려서 봉화대 전에 있던 갈림길과 중간에 합쳐져 신평리로 가는 길이며 맞은편은 장성땅 백암리에 있는 방장산 휴양림으로 내려서는 안부이다.
고창고개에서 머물 시간도 없이 바로 벽오봉으로 향한다.
고창고개에 이르기 전인 철탑부근부터 이어진 편백나무 숲이 나오는데 편백나무는 키톤치드를 월등하게 내뿜어 삼림욕을 하는데 제일 유용한 나무로 산행을 하는 사람들에게는 피로를 풀어주고 신선함을 주는 나무로 유명하다.
방장산의 수림은 갈재에서 고창고개에 이르도록 제대로 가꾸지 않았고 나무들도 거의 아무 쓸모없는 잡목들이었으나 편백나무 숲에 이르니 가지치기는 물론 잡목제거도 하여 시원스러운 모습을 갖추었고 능선을 따라 좌측 사면의 약한 경사를 타고 사열하는 군병들처럼 하나같이 열을 맞춰 보기 좋게 나열되어 있다.
고창고개에서 한참을 가니 또 다시 분기점이 나타나고 능선 아래에는 페러행글라이더장으로 가는 길이고 가던 방향으로는 억새봉이 300m 남아있다고 이정표가 알려주고 있다.
그런데 여기서 문제가 생긴다.
이제껏 산을 다니며 항상 선두에서서 다녔고 가장 긴 A코스만을 다녔는데 억새봉이 300m남은 지점이고 벽오봉이 수백m남은 지점에서 회장은 행로를 바꿔 휴양림으로 내려가라니..............
내가 산행속도가 늦어서라면 몰라도 후미를 보느라 늦은 것이었는데 얼마나 억울한 일인가? 하지만 회장의 입장을 이해 못하는 것은 아니다, 선두는 산행의 최종목적지인 양고살재에 내려섰을 것이다.
내키지 않는 걸음을 떼어 놓으며 휴양림으로 향하고 이내 우리를 기다리는 버스에 안착하고 방장교 아래 계곡으로 내려서는 길에는 봄의 전령사인 버들강아지의 하얀 망울이 미소를 짓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