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산100산산행기

소백산을 처음 찾던날.....

범솥말 2025. 1. 6. 00:23

소백산 칼바람을 만나다

언제: 2003119

누구와: 나홀로

산행코스: 어의곡리 - 비로봉(1220) - 비로산장 - 천동리

도상거리: 어의곡리- 5.1km - 비로봉 - 6.7km- 천동리

산행시간: 3시간 40

<눈덮인 비로봉의 모습입니다>

겨울산 그리고 대 설원 하면 떠오르는 산은 아주 많다.

하지만 그 중 백두산 ,설악산, 태백산, 소백산을 거론하는데 부인할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듯싶다.

겨울 소백을 다녀온 사람이라면 장엄한 능선과 평원 그리고 몸마저 가누기 힘들게 불어대는 바람, 나뭇가지 마다 아름답게 핀 설화, 사랑스런 애인의 눈처럼 티 없이 맑은 상고대, 끝없이 펼쳐진 주목군락을 동경하며 상기할 것이다.

그래서 매년 눈 덮인 소백을 찾는 이가 많다.

 

2003119일 어의곡은 평온하기 이를 데 없다.

바람한 점 없고 이따금 아이젠의 마찰 소리와 거친 숨소리만 어의계곡을 잠에서 깨울 뿐이다.

매표소를 지나 계곡 안으로 계속 해서 부지런히 걷는다.

앞서가던 사람들과 반가이 인사를 나누며 한명 두 명 추월하기를 여러명.

온몸이 따스한 온기로 재충전 되면서 땀이 흐르니 자켓을 벗어 되는대로 뭉쳐서 배낭에 쳐 넣는다.

눈이 점점 많아진다.

경사가 심해지고 계단으로 된 등산로가 계속 이어 지며 가파른 오름길이 지속되니 다리가 약간 무거워지는 감을 느끼며 등산로 옆에 세워진 구조대 위치표시에 해발이 점점 높게 표시되며 깔딱 고개를 오른다.

이때까지만 해도 소백을 처음 찾는 나로서는 주능선의 칼바람을 실감하지 못했으므로 힘든 고개를 넘어 빨리 주능선으로 갔으면 하는 바람이었다.

힘든 깔딱 고개를 올라서 주능선으로 이어지는 길은 별로 힘들지 않은 평범한 길이었는데 비로봉에서 내려오는 4사람을 마주치며 반가이 인사를 나누자 그분들 하는 얘기가 "그런 차림으로 비로봉은 오르면 얼어 죽는다."는 말에 같이 산을 다니는 사람끼리 격려는 못해줄 망정 도움이 되지 못하는 겁을 무척 준다고 생각했고, 정상을 밟고 내려온다는 자부심에 무척이나 과장되게 이야기 한다며 달갑지 않게 생각으로 지나쳤다.

그사람들과 헤어져 모퉁이 하나를 돌아서니 바람이 조금씩 불면서 눈발이 조금씩 날리며 바람이 점점 세차게 불어 배낭에 쑤셔 박은 자켓을 다시 입으며 모자를 눌러쓰니 이제는 아무리 강풍이 불어도 끄떡없을 것이 생각했다.

강한 바람과 싸락눈을 맞으며 주능선으로 향하니 한 치의 양보 없는 눈보라는 사정없이 내 머리를 내려치며 내 품으로 안긴다.

 

시계 50여미터

주능선에는 아직 들어서지도 않았는데 눈보라는 더 세차게 불어온다.

양쪽에 등산로를 표시해주는 로프가 있으니 등산로라는 것을 느낄 수 있으며 조금 전 지났을 일행 발자국도 소백의 눈보라가 집어 삼켜서인지 찾아볼 수가 없을 정도이다.

이대로는 추워서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어 너풀거리는 자켓 모자의 끈을 졸라 외풍을 차단하며 이제는 되었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으니 배낭을 내려 자켓을 꺼내 입고 모자까지 쓰고 끈을 졸라매니 천국인 듯싶다.

앞서간 사람은 보이지 않고 뒤 따라와야 할 일행은 오지를 않고 비로봉에서 어의곡으로 내려오는 사람들도 없으니 불안한 마음도 들고 길을 잘못 들은 것은 아닌지 누군가에게 물어 보고 싶어도 물어 볼 사람도 없다.

 

길이 있으니 무의식으로 길을 따라 가며 순간순간 여러 가지 생각들이 머리를 스니 일본의 노벨상을 수상한 작가 가와바다 야스나리의 설국이 생각나니 온통 사방 천지가 눈 속에서 펼쳐지는 소설속으로 들어가 본다.

어둠이 깔린 산마을에서는 전등불만이 밤을 밝히고 하염없이 쏟아지는 눈은 새로운 세상으로 만들지만 설국속의 시골에는 이처럼 바람이 불지 않을 것이다.

조금을 걷다보니 김주영의 홍어가 생각난다, TV문학관으로 2번인가 방영되었던 그 홍어가...

지조와 고립의 분위기를 자아내는 순백의 눈 속.

산골 마을을 배경으로 전개되는 소설속에서 허벅지까지 내린 눈 속을 헤매는 상황이 지금 내 모습과 비교되며 긴 착각 속으로 빠진다.

 

주위를 둘러 볼 정신도 없이 길을 따라 걷다보니 주능선 3거리에 닿은 것으로 좌측은 국망봉이고 우측은 비로봉으로 표시된 이정표가 보이니 제대로 가고는 있는 것인데 주능선에 들어서고야 말로만 듣던 소백산의 칼바람을 실감 할 수가 있었다.

바람은 더욱 거세게 불어 대니 어의곡에서 하산하던 사람들이 하던 말의 진정한 의미를 깨달으며 비로봉으로 걸음을 옮긴다.

눈을 들어 시계 불량한 사방을 둘러보지만 보이는 건 눈보라 뿐 그 외에는 볼 수가 없는 지경으로 시계는 완전 제로다.

넓은 나무계단으로 계속 이어지는 운치있는 능선 길을 걸으며 계단 좌우로 굵은 로프를 쳤는데 로프의 역할은 눈이 많이 내리면 등산로의 표식도 되지만 바람이 거세기 때문에 바람에 등산객이 날아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함도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든다.

 

주능선 3거리에서 비로봉은 300미터라고 표기하고 있으나 힘들게 걷다보니 생각에는 3km는 되는 듯 멀게 느껴졌고 행여나 바람에 날아가지 않을까 주의를 기울이며 힘들게 비로봉 정상에 닿는다.

비로봉과 교차로 구간의 칼바람은 듣던 대로 정말 무시무시했다.

정상에는 비로봉 1439.5m라고 쓰인 내 키만한 정상석이 반갑게 맞아주지만 형식적으로 잠시 안아 보지만 정상석도 차고 너무 춥다.

배낭 속에 카메라가 있으나 비바람이 불어대고 체감온도 영하 20도이하의 강추위 때문에 사진 찍을 엄두도 내지 못한다.

사방을 둘러보지만 시계가 불량하여 여기가 어딘지 모르겠으며 정상에 있는 안내 전망판에 연화봉 월악산을 보고 그 쪽에 월악산이 있나보다 생각뿐이다.

 

바람의 여신이 소백산에 머물고 있는지 정상에서 5분도 버티지 못하고 산장을 향해 조금을 내려서니 그렇게 매몰차게 불어대던 바람이 방향을 바꿔서인지 조금은 멎은 듯하다.

비로봉 대피소로 언 몸을 녹이기 위해 문을 열고 들어가니 10평도 채 못 되는 공간에 사람은 꽉 차 들어갈 틈이 없어 망설이다가 좁은 틈을 비집고 들어선다.

먼저 자리 잡은 팀들은 그 와중에서도 앉아서 컵라면과 싸가지고 온 식사를 하지만 나중에 들어온 사람들은 서있기도 불편할 정도다.

남의 눈치를 볼 입장도 아니어서 공간을 확보하여 새벽잠을 설치며 정성스레 김밥을 싸준 마누라를 생각하며 선 채로 김밥을 입속으로 밀어 넣으며 허기진 배를 채우니 비록 꼴은 우습지만 맛은 최고다.

다음 사람을 위해 빨리 자리를 비워준다는 생각으로 단숨에 목으로 밀어버리고 따뜻한 물 한 모금으로 몸을 녹이고 칼바람과 싸우며 비로봉도 올랐고 배도 채웠으니 세상 부러울 것이 없어 대피소를 나와 주위를 둘러보니 이제야 세상이 제대로 보인다.

 

내린 눈으로 가지마다 눈을 받쳐 들고 있는 주목군락은 아름다운 풍광을 보여주기는 하지만 말로만 듣던 주목군락은 태백산의 고목에 비해 질이 떨어진다는 생각으로 약간의 실망을 주었고 설화나 상고대도 어의곡 오름길 보다 기대에 못 미친다는 생각을 하면서 천동리 갈림길로 들어선다.

내려가는 길에서는 안전을 위해 아이젠 착용이 최상이라 생각에 배낭에 고이 모셔 놨던 아이젠을 꺼내 착용을 했다.

천동리 쪽 하산 길로 접어드니 산장에서 보던 것과 사뭇 다르다.

길옆 주목들은 제각기 자기 나름대로 자태를 뽐내고 있는데 제대로 서 있는 주목이 있는가 하면 옆으로 비스듬히 누워 있는 주목도 있으며 W자형으로 있으며 나이테가 있어야 할 나무속은 텅 비었고 몇 아름 됨직한 큰 주목이 그 위용을 자랑하는가 하면 얇은 껍질로 큰 나무 전체를 지탱하며 오가는 사람들의 눈과 마음을 즐겁게 해준다.

 

주목의 아름다움에 취해 한동안을 내려오니 그렇게 거세고 거짓말처럼 눈보라와 강풍은 사라졌다.

또 하나의 겨울산행의 진미로 소백과 태백은 겨울 엉덩이 썰매로도 유명한 곳으로 10년 전 태백산에 가면서 우리 팀의 일행은 미리 비닐포대를 준비하여 내려오는 길에 엉덩이 썰매를 타고 기분 좀 낸 적이 있었는데 그때 승아 어머니가 녹다가 얼은 얼음에 엉치뼈를 상해 병원을 여러 차례 다닌 적이 있었는데 소백산 옹달샘을 지났을 때 30대 중반을 보이는 젊은 친구가 엉덩이 썰매로 기분을 몹시 내고 있다.

처음에는 200-300미터 재미로 기분으로 타는가 생각했는데 그 친구 하산 길은 엉덩이 썰매로 계획하고 온 것 같았는데 가파른 내리막길을 시속으로 따지면 20km는 되는지 빠른 속도로 내려 달리며 먼저가서 미안하다며 내달린다.

내 시야에서 멀어지더니 한참을 가다보니 완만한 경사 지대와 돌아 많이 솟은 지대에서 서행하다 걷다가 다시 엉덩이 썰매를 타면서 나와 계속 선두 경쟁을 벌인다.

정확히 거리는 재보지는 않았지만 약 2.5km정도 그렇게 기분을 내며 엉덩이 썰매를 탔을 것이다. 이 정도면 초인적이 아닌지 그 친구 지금쯤 병원 신세지고 있는 건 아닌지................

엉덩이 썰매 친구와 선두를 치열하게 뺏고 뺏기고 하다 보니 천동리 공원이 가까워 졌는지 눈길에서 아스팔트길로 바뀌고 걷기가 불편해 아이젠을 벗고 한참을 내려오니 국립공원 관리공단이다.

 

잠시 쉴 겸해서 야생화 전시 사진전을 둘러보고 다리 안 폭포를 지나 다리안 유원지에 도착하니 산에 오르기 전처럼 천동리는 바람 한 점 없이 평온하였다.

소백 겨울산행의 진미인 설화와 상고대는 다음을 약속하고 거센 눈보라 강풍과 천년의 세월을 전해주는 아름다운 주목이 그래도 내게는 좋았다.

다시 소백을 찾을 때는 능선을 종주했으면 하는 바람과 순백의 설원을 아무도 밟지 않은 순백의 능선에 발자국을 남기며 고생 좀 하고 싶다.

그 무더운 여름날을 생각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