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악산, 오승골~오승폭포~1396봉~대승폭포 산행이야기
산행일시: 2021년01월05일
누구와: 나홀로 산행
산행거리: 약11.24㎞
산행시간: 7시간48분(09:20~17:08)
산행코스:옥녀탕휴게소(09:20)-오승골진입(09:38)-계곡진입(09:52)-1폭포(10:02)-2폭포(10:22)-3폭포(10:42)-오승폭포(11:05)-계곡큰바위(11:43)-4폭포(12:16)-미륵장군봉능선(13:12)-서북릉안부(13:39)-1396봉(13:54)-출금지역,정규등산로(14:25)-대승령(14:53)-대승폭포(15:50)-사중폭포(16:22)-한계사지(16:29)-44번도로(16:36)-옥녀탕휴계소(17:08)
주요지점 통과 및 이동거리
09:20 옥녀탕휴게소에서 산행시작---44번 도로를 따라 약1.47km이동
09:38 오승골 등로로 진입, 이동거리1.47km 소요시간18분, 해발463m
09:52 몽유도원도와 오승골갈림길, 이동거리2.02km 소요시간32분, 해발486m
10:02~10 2단1폭포, 산행거리2.26km
10:22 2폭포, 산행거리2.58km
10:42 3폭포, 산행거리2.72km
11:00 오승폭포 합수곡, 산행거리3.04km, 산행소요시간1시간40분, 해발747m
11:05~11:16 오승폭포, 산행거리3.11km, 산행소요시간1시간45분, 해발768m
11:43 계곡큰바위, 산행거리3.43km, 산행소요시간2시간23분, 해발869m
12:15~32 4폭포, 산행거리3.72km, 산행소요시간2시간55분, 해발1018m
13:12 미륵장군봉능선, 산행거리4.15km, 산행소요시간3시간52분, 해발1240m
13:40 서북릉안부, 산행거리4.45km, 산행소요시간4시간20분, 해발1362m
13:54~14:02 1396봉, 산행거리4.69km, 산행소요시간4시간12분, 해발1382m
14:20 미륵장군봉갈림길, 산행거리4.94km, 산행소요시간4시간20분, 해발1362m
14:25 1358고지(출금안내판), 산행거리5.09km, 산행소요시간5시간05분
14:53 대승령, 산행거리6.01km, 산행소요시간5시간33분, 해발1210m
15:16 대승암터
15:50 대승폭포, 산행거리7.85km, 산행소요시간6시간30분, 해발735m
16:22 사중폭포
16:30 한계사지, 산행거리8.86km
16:36 장수대 44번국도, 산행거리9.10km, 산행소요시간7시간16분, 해발486m
16:48 오승골들머리
17:08 옥녀탕휴게소, 산행거리11.24km, 산행소요시간7시간56분, 해발409m
○산행 전 이야기
2021년 시산은 설악산, 오승골로 정했습니다.
시산이라는 의미를 부여하는 산행이라 대청봉에서 최대한 가까운 곳으로 정하려했는데 스터디를 마친 관터골~백암골이 있는데 코스가 길어 해가 짧은 겨울철은 무리라고 생각하여 코스가 짧은 오승골~서북릉~한계산성리지로 정했는데 그것마저도 마음 먹은대로 되지 않아 오승골~서북릉~대승폭포 코스로 바뀌게 되었습니다.
산행일을 잡고 준비를 다 마쳤는데 눈이 조금 내린데다가 서울지방 온도가 -8도가 예보됩니다.
대중교통을 이용하려다 아직도 코로나 바이러스가 수그러들지 않은 점도 있고, 하산 후 장수대에서 동서울행 버스를 타는 시간이 대략 17시10분경과 19시35분경에 지나는데 17시10경 지나는 차를 탈 수 있는지 예측을 할 수 없는 입장에서 17시10분경 버스를 타지 못하면 2시간반을 기다려야 하는데 추운날씨에 자신이 없어 자차를 이용하기로 합니다.
아침부터 서둘러 설악로로 들어서서 날머리가 될 옥녀탕휴게소에 주차를 합니다.
오래전에는 여름철이면 이곳이 인기가 꽤나 있던 곳인데 어느 땐가 홍수로 옥녀탕 일대가 크게 훼손이 되면서 옥녀탕은 관광지로서의 명성이 사라지고, 이제는 휴게소도 운영하지 않으니 넓은 주차장은 빈터로 변했습니다.
옥녀탕휴게소에 도착해 간단하게 아침을 먹고 산행을 시작합니다.
새벽녘에 서울지방에 적은 량의 눈이 내렸는데 이곳 설악산에도 서울보다 조금 더 눈이 내렸는데 산행하는 데는 미끄럽고 길 찾는 어려움이 따르므로 힘든 산행이 될 것 같은 생각이 듭니다.
옥녀탕휴게소에서 44번 도로를 따라 1.5km정도 가야 들머리인 오승골로 진입할 수 있으므로 44번도로를 따라 걷습니다.
옥녀1교를 지나며 옥녀탕폭포를 보니 내린 눈이 옥녀탕폭포 바위사면을 덮어 내려설 때 쉽지가 않을 것 같습니다, 아마도 슬링을 내리거나 휴게소 뒤편 능선으로 내려서야 할 것 같습니다.
옥녀3교를 지나며 좌측 몽유도원도 일대의 풍경과 우측으로 하늘벽 일대의 풍경을 보니 다시 보아도 멋있는 풍경입니다.
부지런히 걸어 옥녀3교를 지나고 하늘벽이 있는 곳에서 경사를 돌아 조금 더 오르면 오승골 들머리가 있는데 100여m 전에서 숲으로 들어서서 본격적인 산행을 시작합니다.
○옥녀탕휴게소에서 오승골들머리까지 이동거리1.47km, 소요시간18분, 현재시간09시38분, 해발463m이다.
○오승골 들머리에서 오승폭포 구간
길도 없는 곳에서 숲으로 들어가 대각선으로 7~8분 지나자 오승골 들머리에서 이어지는 등로를 만난다.
등로를 따라 큰 기대를 가지고 오승골로 점점 들어선다.
오승골의 원 계곡이름은 석황사골이라고 한다.
지금 갈직에 있는 석황사가 오래전 이 계곡안에 있었다고 하는데 그래서 사찰의 이름을 따서 석황사골로 불렸는데 석황사가 갈직으로 가고 현재는 터만 남아 있으므로 이 계곡을 대표할 수 있는 오승폭포의 이름을 차용해 오승골로 부르고 있는데 산꾼들뿐 아니라 한국지명위원회에서 정식으로 지명을 고쳤으면 좋겠다.
소나무 숲으로 이어지는 등로를 따라 7분정도 들어서자 갈림길이 나타났는데 좌측은 몽유도원도리지길인 것 같았고 계곡으로 내려서는 게 오승폭포로 가는 것 같았으니 계곡으로 내려섰는데 아쉬운 일이 나타났다.
바로 석황사 옛터를 보았어야 하는데 계곡으로 들어서고 보니 이내 석황사 옛터는 나오지 않았는데 아마도 갈림길에서 몽유도원도길로 조금만 더 올라갔더라면 볼 수 있었을 것 같았는데 아쉽고 또 아쉬운 대목이었다.
계곡으로 들어서서 널브러진 바위를 이리저리 돌며 올라섰는데 등로가 있는지 여부도 눈이 덮여 알 수도 없었다.
초입에 비박터가 나타나고 앙상한 가지가 드러난 잡목 뒤로 계곡 좌측 몽유도원도 릿지 암벽이 모습을 드러내는가 하면 인간의 온기는 사라진지 수개월이 지난 듯 황량하고 썰렁한 분위기다.
비박터에서 2분을 지나자 선답자들 산행기록에서 사진으로 보았던 2단폭포가 나온다.(들머리에서 550m)
이곳 첫 번째 폭포는 좌측으로 오른다고 기록했는데 눈이 내려 오를 수가 없고 우측으로도 오를 수 없는 난감한 상황이었다.
사진으로 보면 우측으로 쉽게 오를 것 같으나 현장에서는 눈 때문에 도저히 자신이 없어 좌측 암벽으로 붙어 발을 딛을 수 있도록 입바람으로 눈을 불어대기를 여러 차례, 어렵사리 중간으로 올라섰으니 원없이 입바람을 불어댔다.
중간에 오르니 얼지 않은 소(沼)가 나타났는데 잘 생긴 폭포였고, 이곳에서는 우측으로 조심스럽게 폭포위로 올라설 수 있었는데 평상시 같으면 아주 간단하게 오를 수 있는 곳을 눈이 내려 미끄러워 시간은 시간대로, 힘은 힘대로 쓰면 어렵게 1폭포를 지난다.
이어서 좌편으로는 직각으로 하늘을 떠받치고 있는 몽유도원도 리지가 이어지는데 아침햇살을 받은 직벽에 파란 잉크를 풀어 끼얹은 것 같은 하늘이 조화를 이루며 멋있는 풍경을 연출한다.
산을 사랑하는 사람이 이곳에 잠들었는지 누군가의 동판도 눈에 띄고, 거친 바위가 제 멋대로 뒹구는 계곡을 따라 오르다 잠시 숨을 돌리느라 뒤돌아보면 좁은 계곡 건너편으로 가리봉과 주걱봉이 모습을 나타낸다.
1폭포에서 고생은 했지만 주변 풍경을 보는 재미를 느끼며 10여분 오르면 2폭포가 나온다.(1폭포에서 320m)
2폭포는 1폭포에 비해 위용도 떨어지는데 여름철에는 폭포라고 부를 수 없을 정도겠으나 겨울철 얼음이 얼어붙으면 폭포다운 분위기가 풍긴다.
2폭포는 우측으로 돌아서 오를만 했으므로 고생은 적게한 편이다.
2폭포를 지나며 계곡은 경사가 급격해지고 계곡에는 큼지막한 바위가 듬성듬성 자리를 잡고 언제부터 걸쳐있는지 알 수 없는 고목들이 어지럽게 널려있는 계곡을 네발로 엉금엉금 기며 오른다.
사람들이 많이 다니지 않는 계곡이라 돌들이 움직이므로 잘못 딛게 되면 돌이 정강이를 호되게 팰 수 있으므로 서둘지 않고 조심스럽게 오른다.
험한 계곡 좌측으로는 몽유도원도 릿지 암봉이 하늘 높게 솟고 우측으로 이제까지 밋밋했던 풍경이 거대한 바위가 나타나며 장군바위석봉이 등장하기 시작한다.
거친 계곡으로 20분을 오르면 3폭포가 나타난다.(2폭포에서 140m)
우측으로 조심스럽게 올라 이어가는 계곡은 계곡다운 면은 없고 마치 사태지를 지나는 것같다는 표현이 알맞을 것 같다.
3폭포에서 어렵게 20분을 오르면 나뭇가지 뒤, 계곡 좌측으로 오승폭포가 눈에 들어온다.(3폭포에서 320m, 오승골갈림길에서 1.02km)
선답자들은 합수곡에서 10분을 좌측으로 들어가면 오승폭포라고 했는데 오승폭포는 주계곡에서 볼 수 있으며 폭포 아래로 접근한다면 약70여m를 가야한다는 뜻이다.
이곳까지 왔으니 가까이 접근해서 오승폭포를 조우하며 시간을 보낸다.
○옥녀탕휴게소에서 오승폭포까지 산행거리3.11km, 소요시간1시간45분, 현재시간11시05분, 해발768m이다.
○오승폭포에서 미륵장군봉능선 구간
오승폭포
오승폭포는 대부분 건폭이거나 찔찔이인데 오승폭포에서 힘차게 거센 물줄기가 떨어질 때는 장마철, 큰비가 오고 난 뒤에나 가능할 것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1396봉에서 시작되는 폭포상단계곡은 그 길이나 폭이 짧고 좁아 계곡에서 흐르는 물이 적기 때문이다.
그러나 100여m되는 높이에서 수직에 가깝게 떨어지다가 하단에서 지그재그로 방향을 바꾸며 내리쏟는 폭포 물줄기를 볼 수 있는 기회도 있으니 장마철 비가 많이 내렸을 때라고 하는데 필자도 이번이 오승폭포와의 조우가 처음이라 아직 보지를 못했다.
전부터 오승폭포의 존재는 알 고 있었는데 오승골을 지나 서북릉으로 오르는 길은 알지 못했기 때문에 조금은 늦게 오승골을 찾게 된 것이다.
가던 날이 장날이라는 속담처럼 모처럼 기대를 걸고 오승폭포를 찾는 날에 눈이 내려 고생을 더하며 올라야 했다.
오승폭포를 오기까지..... 발을 헛디디며 넘어지기도 하고, 미끄러지지 않으려 힘을 쓰다가 미끄러지기도 하며.... 산행을 포기하고 내려갈까 생각도 하다가 명색이 꾼인데 중간에서 다시 내려선다는 건 자존심 상하는 것이니 일단 오승폭포까지 가는 것이 1차 목표로 설정하고 어렵게 올랐다.
날씨는 출발할 때 -8도였는데 춥기는 하지만 계곡에는 바람이 별로 없으므로 크게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오승폭포에 도착해서 소리 없이 폭포를 주시해본다.
마치 사진에서 보는 것과 같이 산악회에서 이끄는 많은 산객들이 곳곳에 퍼져 즐기는 모습이나, 로프타는 연습을 하는 모습이나, 건하게 상을 펴고 둥글게 모여 앉아 식사를 하는 모습이 선하다.
그러고 보니 독립군 회원이명서 J3멤버인 지맥님도 2019년에 1번은 계곡으로 오르고 2번은 오승폭포 하강을 했는데 로프에 생명을 담보한 채 폭포를 하강하는 모습 또한 선하다.
오승폭포에 도착해 1차목표를 달성했는데 이제 가야할 방향을 결정해야한다.
그런데 다시 내려간다고 생각하니 오를 때보다 더 어려울 것 같은 생각이 들고..... 일정대로 산행을 계속이어가자니 자신이 없고.... 어떻게 해야 하나?.....
오승폭포에서 하산하는 시간이나 능선에 닿은 시간이나 크게 차이가 없을 것 같다는 생각에 서북릉으로 가서 다시 생각하기로 결정을 하고 오승폭포에서 나와 계곡을 따라 오른다.
스터디한 바에 따르면 오승폭포에서 30분 정도 오르면 큰바위가 나온다고 했는데....
아~ 힘들다.
무슨 계곡이 이런가? 왜 오르기는 이리 힘든가? 그리고 왜 이리 경사는 가파른가? 아마도 소크라테스 형에게 물어봐야 할 것 같았다.
가다가 힘들어 잠시 쉬며 뒤돌아보면 좁은 오승골 협곡 사이로 건너편 촛대봉과 주걱봉이 멋진 포즈를 잡고 있는 풍경을 보면 많이도 올라선 것을 느낄 수 있다.
주걱봉을 보고 잠시 힘을 쓰다보면 선답자 산행기에 등장하는 계곡큰바위가 나오는데 그러고 보니 오승폭포에서 30여분을 올라온 것이다.(오승폭포에서 320m)
계곡큰바위라~ 특이하거나 아주 거대한 것도 아닌데 오승폭포를 지나 중간에 마땅하게 적시할 지형지물이 없으므로 계곡에 있는 바위로 지형지물로 활용하는 것이다.
잠시 허리를 펴고 한 숨을 돌린다.
가야할 방향을 보고 조금 올라서는데 노란 표지기가 눈에 들어오는데 가깝게 가서 보니 J3팀 표지기로 독립군 카페에 전국 폭포하강의 글을 올려주시는 지맥님과 오교주님, 박현주님이 오승폭포 하강을 하기위해 이곳을 지나며 달아놓은 듯 했는데 지맥님 표지기를 보니 산중에서 만난 것 같은 반가움이 생긴다.
지맥님 표지기를 뒤로하고 계곡으로 오르는 길은 심한 경사는 여전하고, 잔돌로 이루어진 너덜길도 여전하고, 계곡을 가로지른 고목을 넘기도 하고 아래로 기어서 빠져나가며 오르다 보니 미끄러짐이 자주 발생하는데 다리에 힘이 많이도 빠진 것 같다.
힘들다고 느끼는데 눈앞에 큰 얼음 덩어리가 나타난다.
선답자들이 기록한 마지막폭포라는 생각이 든다.
물이 적어 찔찔이라고 기록을 하는데 얼음 덩어리로 보면 제법 틀을 갖춘 제대로 된 폭포같은 느낌에 2단으로 이루어진 마지막 4폭포로 접근해 우측으로 조심스럽게 오르자 중단은 쉬어가기 좋은 분위기다.(계곡큰바위에서 320m)
고도계를 확인하니 1018m다.
까마득하게 느껴졌던 서북릉이 이제 300여m 정도 남겨놓았으니 여유가 생기고, 배낭을 내려놓고 이곳에서 쉬어가기로 한다.
아직은 열기가 있는 따끈한 물로 커피를 타서 조금씩 입속으로 넣으며 혀로 커피를 저어가며 마음껏 맛을 음미하며 망중한을 즐기며 건너편 가리봉을 조망한다.
온도가 많이 내려가 추운 날씨이지만 바람이 거세지 않아 견딜만 했는데 오승폭포에서 하산하지 않고 여기까지 오르게 된 것이 아주 잘한 결정으로 기분이 그런대로 좋다.
그렇다고 산행이 끝난 것도 아니지만 선답자들의 산행기록을 보면 이곳부터는 계곡에서 능선으로 오르며 능선은 경사는 계속 심하지만 너덜겅이 아니고 잡목들이 있어 잡목을 잡고 오를만 하다고 했으니 안심이 된다.
한동안 커피타임을 갖고 배낭을 추스르고 산행을 이어간다.
어렵게 폭포를 횡단하여 이곳에서 길을 알려주는 지형지물인 폭포 좌측 전나무가 있는 옆으로 오르면 된다.
능선으로 오르면 등로가 나타나는 것으로 생각했는데 적은량의 눈이 있어서인지 등로는 확인할 수 없지만 계곡과 계곡 가운데 능선으로 오르면 된다.
얼마 지나지 않아 우측 주계곡으로 여겼던 계곡을 서서히 계곡의 모습이 사라지고 등로는 좌측 계곡쪽 능선으로 계속 이어진다.
곳곳에 거대한 고목이 널브러진 채 썩어가는 풍경이 눈에 들어오고 진달래나무가 때로는 손잡이가 되어주기도 하지만 때로는 갈일을 막으며 성가시게 방해를 한다.
오르는 능선 좌측으로 침엽수와 첨봉이 층층 계단을 만들며 비경을 창출하고, 우측 미륵장군봉 능선이 점점 가깝게 느껴지고, 가다가 뒤돌아보면 낙엽이라고는 한 잎도 남지 않은 앙상한 잡목 뒤로 가리봉 능선이 한눈에 들어오는 것을 보면 많이도 올랐다는 생각이 든다.
조금 전부터 능선 우측으로 하늘금이 보이기 시작하더니 고도를 조금 높이자 정면으로 하늘금이 나타나기 시작하니 바라고 바라던 미륵장군봉 능선이 눈앞에 보이는 것이다.
미륵장군봉 능선과 만나는 지점에 대한 상상을 그리며 올라서는 지점 조금 전에 노란색 표지기가 있으며 표지기를 지나 능선에 닿는데 아무런 표식이 없다.(4폭포에서 430m)
○옥녀탕휴게소에서 미륵장군봉 능선까지 산행거리4.15km, 소요시간3시간52분, 현재시간13시12분, 해발1240m이다.
○미륵장군봉능선에서 1396봉 경유 대승령 구간
미륵장군봉 능선
얼마나 그리며 올라선 지점인가~
성취감에 젖어 주변을 둘러보아도 어떠한 표식을 찾아볼 수 없다.
이렇게 미륵장군봉 능선 합류지점에 관심을 갖는 것은 서북릉에서 내려서며 오승골로 들어설 때 쉽게 찾을 수 있는지에 대해 고민을 많이 했기 때문인데 이 코스를 스터디하며 한계산성릿지로 시작해서 오승골로 하산하려고 스터디했는데 누구도 이곳에 대해 확실하게 기록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산행을 하는 사람에 따라서 미륵장군봉 능선에서 오승골로 갈라지는 지점이 다를 수는 있겠지만 오승골에서 올라서면 지점은 확실한데 이지점에는 특별한 지형지물이 없다.
등로에서 서북릉 방향으로 보면 참나무가 3개가 삼각구도를 형성하고 있는 곳이다.
좌측은 잔가지가 없는 참나무, 중간은 4가지가 한 나무로 이루어진 참나무, 오른쪽은 2가지가 한 나무를 이룬 참나무가 있는 곳이다.
구체적으로 적시하면 좌측 참나무가 있는 곳에서 후방으로 10여m 떨어진 지점, 좌측으로 노란 표지기가 걸려있고, 우측 참나무로 가깝게 접근하면 뒤편 가지에 분홍색 띠지를 묶어 무엇인가를 표시했는데 이곳이 대승폭포로 내려서는 옛길인 듯 한데 분명한 건 분홍색 띠지가 묶여있는 곳에서 반대편 능선으로 내려서는 곳이 오승골로 내려서는 길이 된다.
미륵장군봉 합류지점에서 한동안을 머물고 뚜렷한 등로를 따라 서북릉으로 향하며 이제까지 사용하지 않았던 스틱을 펴고 스틱을 이용하며 급한 등로를 따른다.
잡목사이로 귀때기청봉과 한계령, 점봉산이 나타나고 고도를 점점 높이며 키 작은 나무들이 나타나고 잠시 후 거친 바람소리가 귀전을 때리지만 아직은 강한 바람을 느낄 수 없다.
미륵장군봉 능선에서 20분이 걸려 서북릉 안부에 도착한다.(미륵장군봉 능선에서 300m)
서북릉에서 미륵장군봉 능선으로 갈라지는 3거리는 3거리 등로가 뚜렷한데 몇 차례 이곳 능선을 지났지만 미륵장군봉 능선으로 내려가는 길에 대해서는 관심을 가져보지 않아 그냥 지나쳤던 곳이다.
인증사진을 찍고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한 1396봉으로 이동한다.
서북능선에는 20여일 전 내렸던 눈이 그대로 쌓여 있었으며 바람이 거세게 불고 있지만 이런 악조건이 있는가하면 하늘이 맑아 원거리까지 조망이 되는 즐거움도 있다.
미륵장군봉 갈림길에서 1396봉까지는 0.24m로 10여분이 걸리는데 능선 좌측으로 펼쳐진 풍경에 눈길을 빼앗기다보니 시간이 더 걸린다.
1396봉에 올랐다.(미륵장군봉 갈림길에서 240m)
정상에는 대한민국 입석이 있다.
대부분 사람들은 이곳을 대한민국봉이라 부르기도 하고 기록하기도 하는데 이건 아주 잘못 알고 있는 것이다.
설악산에는 곳곳에 이와 똑같은 대한민국 입석이 곳곳에 설치되어 있는데 이 입석은 정상표지석이 아니고 설악산 천연보호구역이나 국립공원을 알리는 표지석인 것이다.
쉽게 설명하면 설악산 대청봉에 올라서서 지리산 천왕봉이라 주장하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는 것이므로 전국 산을 사랑하는 사람들 모두 이점 유념하여 다시는 말도 안 되는 대한민국봉이라 부르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설악산에는 대한민국 입석이 설치된 곳이 여러 곳 있는데 얼핏 생각나는 곳이 서북릉에서 치마바위골 좌릉으로 내려서며 갈직으로 갈라지는 곳, 달마봉에서 계조암으로 내려서며 안양암 갈림길에 1396봉과 똑 같은 대한민국 입석이 설치되어 있다.
1396봉~
바람이 너무 거세게 불어 몸이 밀릴 정도다.
그래도 사진은 찍어야 하기에 장갑을 벗고 사진 15방 정도 찍는데 손톱이 빠져나갈 것 같고 얼굴은 면도칼로 마구 그어 대는 것 같은 느낌으로 5분정도 버티다가 정상에서 내려서야 했는데 1396봉에서 보는 조망이 잊을 수가 없을 정도로 멋있다.
하늘은 푸르디 푸르고, 얇지만 하얀 옷을 걸친 설악의 풍경이 예전과 다른 풍경이었고, 젤 맘에 드는 건 원거리 조망으로 향로봉과 북한의 금강산이 확실하게 구별되는 풍경이 펼쳐졌다는 것이다.
아쉬운 건 오래 머물지 못하고 시야에 들어오는 사방의 산들을 하나씩 찾아가며 조망을 할 수 없었다는 점이다.
추운가운데 한계산성 릿지 능선을 본다.
처음 산행코스로 잡았던 곳인데 오승폭포를 오르며 눈이 내려 미끄러운 데다가 길 찾는 어려움도 따를 것 같아 이미 마음으로는 포기하고 안전하게 대승령을 지나 대승폭포로 내려선다고 마음 먹었으니 한계산성 릿지는 다음에 다시 도전해야할 것이다.
너무너무너무 춥다.
1396봉에서 내려서서 바람을 피할 수 있는 작은 공간을 찾아 손은 허벅지 사이에 대고 한동안 녹인다.
1396봉 아래 조망대로 다시 나가려 하다가 금새 동상이 걸릴 것 같아 나서지도 못하고 꼬리를 내리고 서서히 왔던 길을 되돌아 내려선다.
몸을 옴추린 채 뭔가에 쫓기듯 내려서다가 중간에 오승골 풍경을 조망하며 집사람에게 설악의 풍경을 몇 장 전송하고 미륵장군봉 갈림길 안부에 도착한다.
이곳에서 능선을 따라 내려서면 출입금지 입간판이 설치되어있고 금줄이 있는 1358고지 쉼터로 대승령에서 십이선녀탕으로 넘어가는 길에 쉬어가는 곳으로 거리는 0.15km이고 5분거리다.(1396봉에서 400m)
한번 얼어붙은 몸은 원상으로 회복되기가 힘든지 이곳에서도 사진 2방찍는데 너무도 힘들었으며 스크린 샷도 손가락이 얼어 찍을 수가 없었으며 불어대는 거센 바람에 지체할 여유도 없이 바로 대승령으로 내려선다.
쉽게 생각했던 내리막 등로는 눈이 많아 무척 미끄러워 급히 내려설 수도 없고, 손은 꽁꽁 얼어붙었는데 스틱으로 짚으며 안전을 확보해야 했으니 힘들고 힘들다.
등로 옆 능선으로 올라서면 흑선동계곡 너머 수렴동과 공룡능선의 모습을 볼 수 있는데 모든 게 귀찮게 느껴질 뿐이므로 조망도 뒷전이었다.
대승령으로 가며 느끼는 건 한해 한해 해가 바뀌며 체력도 떨어지고, 무서움이나 두려움 없이 산을 다니던 그 마음도 기가 죽었는지 자신도 없어지고..... 이러다가 어느 날부터 산에도 가지 못하는 건 아니가? 하는 나약한 마음이 들기도 한다.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며 대승령으로 올랐다.
○옥녀탕휴게소에서 오승폭포, 1396봉경유 대승령까지 산행거리6.01km, 소요시간5시간33분, 현재시간14시53분, 해발1210m이다.
○대승령에서 대승폭포, 한계사지 경유 44번도로 구간
대승령~
대승령은 지금은 설악산의 하나의 고개지만 예전에는 설악산을 설악산, 한계산, 달마산, 천후산으로 나누어 불렀는데 귀때기청봉을 비롯한 내설악이 한계산으로 불렸으니 대승령은 한계산의 하나의 고개였다.
대승령은 옛 산행기에도 자주 등장하는 곳으로 교통이 좋지 않았던 조선시대 때는 이곳 대승령이 교통의 요지였을 것이다.
한계천을 따라 한계사와 대승폭포를 구경한 후 장수대 인근 자양전의 민초 집이나 대승암에서 하루를 묵고 백담사, 영시암, 오세암, 봉정암 등의 사찰이나 수렴동계곡을 보기위해서 이곳 대승령을 넘어 갔다는 기록을 보면 이곳 대승령은 산행하던 당시의 사대부들이나 약초꾼들에게는 중요한 고개였을 것이다.
세월이 지나 현재에는 약초꾼은 시시해서 이곳으로 넘지 않을 것이고, 대부분 산을 찾는 산객들의 전용 무대로 바뀌게 되었다.
1930년대 노산 이은상선생의 설악행각을 보면 장수대 옆 자양전에서 잠을 자고 대승폭포를 지나 이곳에 올랐다.
당시 노산 이은상 선생은 대승령에 올라 이렇게 썼다.
폭포를 떠나 1시간이 되어 대승령에 오른 노산은 “답답하고 숨찬 고행이 대승령에 올라 시원함 맛 볼 수 있으니 이를 참는 자 만의 특권이다.“ 라고 했는데 그러나 요즘은 대승령은 기본이니 참는 자 만의 특권이라는 수식어도 시대에 따라 바뀌니 어울리지 않는 것 같다.
현재 대승령에는 아무도 없다.
능선을 넘는 바람만이 휑하며 쓸고 지나갈 뿐, 적막만 지속된다.
이런 상황에서 내설악을 조망하는 것도 어렵고 거칠게 불어대는 바람이 무서워 사진 한방만 찍고 도망치듯 대승령을 내려선다.
대승령에서 내려오는 길에 눈은 그리 많지 않았는데 작은 돌로 계단을 만들어 돌이 돌출되어 있는데 눈이 있으므로 밟으면 미끄럽다.
미끄러지지 않으려 스틱으로 중심을 잡으며 안감힘을 쓰며 내려서다 보면 대승암터에 도착한다.
대승암이 이런 시시한 곳에 있었을까?하는 의문이 드는데 지금 표시한 이곳도 추정지로 확실하지는 않은 곳이다.
그러나 필자는 대승암이 추정지에 대해서는 생각이 다르다.
필자의 생각은 현재 추정지에서 대승령으로 올라서며 능선 좌측, 그러니까 현 추정지에서 서북방향으로 더 이동해 좌청룡과 우백호가 뚜렷한 아늑한 곳이었을 가능성도 생각해 볼 수 있다.
대승암의 위치는 고지도 어디에도 표시된 것이 없다.
그럼에도 대승암의 위치를 추정하는 건 김창협이 설악산을 구경하며 쓴 산행기록인 동정기에 잘 나타나고 있는데 숙대승암(대승암에서 하룻밤을 자며)이라는 시와 내용을 보면---대승폭포에서 한동안 쉬고 가마를 타고 4리를 가서 대승암에 도착했는데 높아서 호젓하고 좋기는 하지만 중들이 떠나 빈 절이 된 것이 흠이다.
그러나 하룻밤 쉬어가기에는 문제가 없으며 대승령에 오르면 곡연과 봉정암을 볼 수 있다고 했는데 날이 저물어 대승령까지 오를 수 없으니 안타깝다.---- 고 적었다.
대승폭포에서 4리, km로 환산하면 1.6km기되는 지점인데 정확하게 이곳에서 대승폭포까지는 3리가 된다. 필자의 추정은 이곳에서 5분여를 내려서면 거대한 전나무가 있는 계곡에서 능선이 아닌 계곡으로 오르는 곳에 대승암이 있는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대승암의 폐허?
대승암은 왜? 망했을까?
지금으로 치면 국회위원 쯤 되는 넘들로 조선시대 사대부들이 툭하면 여행을 다니며 가마를 타고 이런 곳을 올랐다.
미리 암자에 전갈을 넣어 마중을 나오게 하는가 하면 자고, 먹고, 돈은 주었는지 모르지만 아마도 공짜로 취식과 취숙을 했을 것 같다.
한두 번도 아니고 가난한 암자에서 버틸 여력이 없어지고 암자의 중들은 하나 둘 떠나다 보면 암자는 폐허가 되는데 김창흡이 이곳에 하룻밤을 묵을 때도 빈 암자였다고 기록했다.
대승암터를 내려서 울창한 전나무가 있는 곳을 지나고 앞만 보고 내려서다 보면 목교가 나오고 목교를 건너 능선으로 오르면 대승폭포를 조금 못 간 지점에 거대한 노송이 있는데 노송이 있는 곳을 가깝게 접근하며 큰 고민에 봉착하게 되니 국골초소를 통과하는 문제가 남아 있기 때문이다.
겨울철에는 장수대에서 대승폭포까지 탐방노선이 되고 대승폭포 위로는 탐방이 금지되는데 국공초소에 국공직원이 있다면 어디서 넘어 오는 길이냐?부터 시작해서 왜 입산을 했느냐? 하며 범칙금을 물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곳에서 비껴 지날 수 있는 길은 없으니 초소에 국공직원이 없기를 바랄 뿐이다.
스틱도 소리가 나지않게 바닥을 찍지 않고, 발자국 소리도 최대한 내지 않으며 천천히 내려서니 초소 방향으로 눈위에 발자국이 없다, 그렇다면 오늘 국공이 초소로 오르지 않았다는 것이니 마음 편하게 내려서니 대승폭포다.
대승폭포에 도착해 잠시 폭포와 한계령방향, 그리고 미륵장군봉 능선과 가리봉을 보며 한시름 놓는다.
대승폭포는 대한민국 사람들 중 대부분 오른 폭포로 별도 부연할 이야기가 없지만 노산 이은상선생과 대승폭포의 만남에 대해 그냥 지나갈 수 없으니 노산 이은상 선생은 대승폭포를 보고 이렇게 적었다.
「어디서 문득 흰 용이 번쩍하고 눈앞을 지나가면서, 쏴하는 이상한 소리가 고막을 깊이 때립니다.
이것이 무엇이겠습니까. 이 순간에 불가사의한 직감을 주는 이것이.
여기가 어디 오니까 이 무딘 머리를 번개 칼로 때리는 황홀한 여기가.
어허! 장엄한자여. 어허! 웅대하고 화려한 자여. 어허! 하나님 신비한 솜씨로라도 애 쓸 대로 애써 된 자여. 어허! 번뇌 속에 타고 타던 중생으로 하여금 저 이른바 <서늘하고도 맑아서 디시는 더운 번뇌가 없다.>라는 것을 맛보게 하는 자여.
그래 네가 누구? 네 이름이 무어? 가로되 설악산<雪嶽山>
그리고는 또? 가로되 대승폭<大勝瀑>
과연 만 길이나 되는 대승폭이 허공으로 떨어지는 신비한 큰 광경을 건너편 바위 위에서 바라보며 미친 기쁨에 몸과 마음을 둘 곳을 모릅니다.
더구나 이 대승폭의 기묘하고도 특이한 경치라 할 것은 지금 저 아침 햇빛에 반사되어 생긴 무지개입니다. 우리가 이 무지개를 보려고 일부러 오전에 이곳을 찾아온 것입니다 만은 어김없이 그 무지개가 여기서 춤을 추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노산선생은 대승폭포에 와서 무척이나 감탄했음을 기록하고 있는데 물론 과장도 많을 것입니다. 그러나 분명한 건 노산 이은상선생이 대승폭포를 찾았을 때는 이른 오전이었고 무지개가 피어올랐다는 것인데 노산 이은상선생은 무지개를 보려고 시간을 맞추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대승폭포에 무지개~
훌륭하고 멋있는 조합이기는 한데 여러 차례 대승폭포를 올랐지만 대승폭포에서 무지개는 본 적이 없는데 기록이 사실이라면 대단한 행운이라고 할 것 같다.
오후 햇살이 퍼져있는 지금 대승폭에에는 무지개가 없다.
여름에도 볼 수 있는 행운을 잡기 힘든데 이러한 겨울에 무지개가 없는 건 당연하다.
노산 이은상을 생각해보고, 얼어붙은 대승폭포를 내려다보며 5분여 휴식을 취하고 하산길로 내려선다.
대승폭포에서 사중폭포까지는 대부분 등로가 데크계단을 설치하여 안전하기는 하나 오름길에서는 지루하고 힘들다는 것을 느끼는 곳이기도 하다.
데크계단이 설치되기 전에는 바위지대를 기어 오르기도 하고 한 구비 돌아 오르기도 하며 땀이 흐르면 불어오는 바람에 땀을 식히며 뒤돌아보면 가리봉 능선의 멋있는 풍경을 보고는 했다.
그런데 요즘은 데크계단이 이어지는 중간에 데크전망대를 설치해 안전하게 주변풍경을 감상할 수 있도록 했다. 좋은 세상에 살고 있음을 감사하게 생각한다.
이곳을 오르며 노산 이은상선생은 무었을 보았을까?
노산 선생은 이렇게 적었다.
「여기 바위 위에 올라서 뭐니 뭐니 해도 남쪽으로 가리봉(加里峰) 구불구불 먼 멧부리들을 바라보는 것이 경치치고는 으뜸이라고 하겠습니다.
오른쪽으로 부터 몸을 제대로 틀어 올려 기껏 뾰족해보자, 기껏 솟아보자 한 봉이 가리봉이요, 그 다음으로 끝은 칼날 같은 선으로 삥 돌리고도 안으로 휘우듬이 패어서 밥을 푼다면 한 번에 십만섬을 퍼낼법한 것이 이곳 특유의 주걱봉이요, 또 그 다음으로 키도 맞추어 차례로 큰 것이 어버이 명령을 받자와 공수하고 선 듯한 것은 물을 것 없이 삼형제봉(三兄弟峯)입니다.
이것들이 가로 늘어서 남쪽하늘 한 면을 통히 가리고서 남의 경탄과 찬미를 허락도 없이 모조리 빼앗아 가는 것을 느낍니다.」
길고 긴 계단을 내려서면 보조암골로 들어서는 길목을 지나 대승골 계곡으로 내려서면 겨울이 찾아든 사중폭포가 눈에 들어온다.
예전에는 사중폭포를 그냥 지나쳤는데 노산이은상 선생의 설악행각을 읽고 난 다음부터 사중폭포를 찾는다.
노산 이은상은 설악행각 2일차에 지금의 석황사가 있는 운현리에서 첫날을 자고 2일차 산행에서 운흥사지와 광계사지를 지나 옥녀탕, 한계산성을 둘러보고 장수대에서 조금 위 한계천 인근 자양전에서 둘째날 밤을 보내는데 자양전으로 가기 전 사중폭포를 보고 내려섰다고 기록했다.
사중폭포로 내려서 잠시 보며 오래전 이곳을 방문했던 노산선생을 떠올리며 등로로 복귀한다.
등로로 복귀하면 눈앞에 장수대분소가 보이는데 다시 고민이 생긴다.
떳떳하게 장수대로 나갈까?
그러다가 국공직원이 어디서 내려 오냐? 말을 걸으면........
시빗거리가 생길 수 있는 건 해소해야하므로 장수대로 내려서지 않고 한계사터로 오르기로 했다.
장수대 조금 못 미친 지점, 다리 옆에서 우측으로 3~4분 오르면 한계사터다.
제법 넓은 한계사터에는 오래전 건축물이 있던 주춧돌과 보물 제1275호인 한계사지남3층석탑이 있으며 모양과 형태가 같은 보물 제1276호인 한계사지북3층석탑은 2~3분 더 오르면 볼 수 있다.
설악행각을 보면 노산 이은상선생이 한계사지에 왔던 기록도 세세하게 적었다.
지금은 보물로 지정된 한계사지3층석탑은 노산이 이곳을 찾았을 때는 주변 여기저기에 석탑의 잔해가 널려있었다고 적었으며 석양이 물드는 시간 폐허가 된 한계사지를 둘러보며 허전하고 허탈한 마음을 시한수로 적었다.
중요한 것을 설악행각에서 재발견할 수 있었다.
범바위, 양반바위, 송곳바위와 같은 바위에 대한 노산 이은상 선생의 기록을 본다.
「한계사지 뒤로는 범바위와 아울러 장쾌한 3봉이 우뚝 서있고 앞으로는 주걱봉이 마주보이고 밑으로 한계를 건너 소나무 한그루가 바위위에 자란 것이 마치 사람이 말을 타고 앉은 것 같다하여 양반바위라 하는 것은 명물이 아니라고 할 수 없는 기관인데 옆 계곡 중간에 혼자 뾰족한 송곳봉은 제대로 따로 생겨나.....」
아주 오래전부터 불렸던 바위이름인데 요즘은 부르는 사람이 없기도 하며 누군가 바위 이름을 부른다고 알아들을 수도 없으니 안타까운 일이다.
범바위, 양반바위, 송곳바위
전에는 한계사지 뒤편에 있는 암봉을 범바위, 또 대감바위(또는 양반바위)라고도 부른다고 생각했었다,
권세있는 대감들이나 양반들이 한계사의 중들에게 요구도 많이 하며 감시한다는 느낌을 준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으로 알았는데 노산선생의 글에서 보면 한계사지 뒤에 있는 바위는 범바위와 이름이 없는 3봉이라고 적었으며 양반바위는 한계천 건너 마치 사람이 말을 타고 앉아 있는 것아 보인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기록했으며 송곳처럼 뾰죽하다고 해서 양반바위 주변에 송곳바위가 있다고 기록했으니 현세에 살아가는 우리가 오래전부터 불리던 바위 이름에 대해 관심을 가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한계사터를 막 지나면 오래전 동부산장이었던 폐가가 있다.
한 때는 호화스러웠던 산장으로 아주 좋은 위치에 있는 산장이었는데 언제부터인지는 모르지만 아주 오래전부터 사람이 살지 않아 폐가가 되어 있었다.
지금은 모두 쓰러졌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으로 가깝게 접근하자, 아~ 누군가 매입을 했는지 기와를 새로 올리고 창문을 새로 달았고 깨끗하게 수리를 했는데 사람이 사는지는 모르겠다.
한계사지와 옛동부산장을 보고 서쪽 길이 없는 곳으로 40여m 내려서면 설악로 44번 국도다.
○옥녀탕휴게소에서 오승폭포~1396봉~대승령~대승폭포 경유 설악로까지 산행거리9.10km, 소요시간7시간17분, 현재시간16시37분, 해발486m이다.
○장수대 앞 44번도로에서 옥녀탕휴게소 구간
44번 도로로 내려서며 산행은 끝났다.
그러나 산행을 시작할 때 날머리를 옥녀탕으로 잡았으므로 옥녀탕휴게소에 애마를 두고 왔으므로 설악로를 따라 2.4m를 걸어서 이동해야 하는데 장수대에서 옥녀탕휴게소 구간은 걸으며 도로 좌우 경치가 뛰어나므로 그리 지루하지는 않은 구간으로 이곳에서부터는 노산 이은상선생의 설악행각에 나오는 암봉이나 계곡의 잊혀져가는 이름이나 전설을 상기시키며 이동한다.
동부산장에서 길이 없는 곳으로 조심스럽게 내려서면 설악로로 150여m 떨어진 장수대 분소가 멀게 보이고 도로의 주변 경치는 햇살을 받은 설악의 비경이 아주 새롭게 보인다.
잠시 내려서면 오승골 초입이 되는 곳을 지나는 장수3교가 나오고 장수3교에서 60~70m를 지난 지점에는 출입금지 안내판이 있는데 이곳이 오승골로 들어서는 들머리가 되는 곳으로 이곳으로 몽유도원도 릿지와 오승폭포, 오승골로 들어설 수 있다.
오승골 진입로에서 조금 더 내려서서 남서쪽으로 거대한 암벽이 막고있는데 우리는 이곳을 하늘벽이라 부른다.
그러나 1930년대는 하늘벽이라고 부르지 않고 학이 살던 바위라는 뜻의 학서암(鶴棲巖)이라 불렀다는 것을 설악행각에서 보면 알 수 있다.
설악행각 본문을 보면
「높이가 수천장이나 됨직한 큰 암봉을 볼 수 있는데 상단일우가 깨어진 자취는 석색으로 짐작해 수 십 년에 불과한 일인 듯 하거니와 이것은 여기에 학(鶴)이 대대로 깃들이고 있으니 독사(毒蛇)가 학자(鶴子---새끼 학)를 해하려다가 천벌 입은 자취라고 전설합니다.
그리고서 떠나 가버린 학은 영원히 돌아오지 아니하고 다만 암벽의 이름만 학서암이라 공전할 뿐입니다.
나는 이것이 조선인의 정상과 같음을 느낄 때에 고뇌를 버린 것이 오직 학이라고만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러면서 노산 선생은 시 한 수를 적습니다.
「암각(岩角)에 날아들며 대대(代代) 살던 저 백학(白鶴)이
장(長) 깃 펼쳐들고 먼 어대로 왜 가는고
영산(靈山)은 이리 좋건마는 살지 못해 떠났구나
정든 곳 버렸을 제 가며 오작 울었으리
새끼들 버리고서 멀리 날아 떠돌면서
그 자리 편안하지 못하여 내 집 얼마나 그리는고
오늘은 어느 곳서 살았는가 죽었는가
망명 몇 십 년에 그 울음 뉘 알는고
언제나 고향강산(故鄕江山)으로 웃고 돌아오려오.」
필자는 이 글을 읽으며 숙연한 마음과 조국에 대한 자부심, 그리고 노산 이은상선생의 용기와 애국심에 존경함을 나타내지 않을 수가 없다.
이 글을 쓰던 때가 1933년 일제 강점기였다는 것을 생각하면 대단한 용기라 아니할 수 없다.
일본넘들에게 아첨을 떨며 재산을 축적하는 매국노가 세상에 판을치며 주인행세를 하던 시절 노산께서는 우리민족의 아픔, 나라 잃은 슬픔을 바위 전설에 부합하며 용기 있게 적었다는 것이 진정한 애국자라고 느낀다.
전설의 요지는 바위 절벽 중간에 학이 새끼를 치고 길렀는데 뱀이 새끼를 잡아먹으려 하자 하늘에서 벼락이 떨어져 뱀을 죽였고 그때 떨어진 벼락으로 암벽의 색깔이 변했다고 하며 어미 학은 집을 버리고 어디론지 날아가서 살았는지 죽었는지 모를 일이라는 것이며 학이 살던 바위라는 뜻의 학서암이라 부른다는 것이다.
이러한 전설은 설악행각을 접하기 전에는 들어 본 적이 없지만 노산 이은상선생은 설악행각을 나설 때 15명과 함께 나섰는데 그중에는 이 지역 사정에 밝은 심마니도 있었고 포수도 있었으므로 현지 사람들의 구전으로 전해지는 전설이나 지명을 기록했을 것이다.
학서암을 지나면 아침에 옥녀3교를 지나는데 아침에 보았던 풍경과 오후에 보는 풍경이 또 다르게 보이는데 이곳에서 옥녀탕휴게소로 가며 지금은 이름마저 사라진 설악로 주변에 있는 바위들에 대한 이름이 나오는데 다음부터 그냥 지나칠 게 아니라 잊혀진 바위의 이름을 다시 부르고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고 생각된다.
이어서 옥녀폭포에서 장수대 방향으로 가며 쓴 기록을 보면 이렇다.
「옥녀폭을 지나 한계천 반석을 지나 서남으로 산곡이 보이는데 촌명은 느아우골이라고 하고 한자로는 뇌아우(礨阿隅)라고 씁니다.
개울을 우편으로 끼고 오르며 느아우쪽으로 보는 근사한 3개첨봉은 이름마저 그럴사한 삼장군봉입니다.
전사(戰事)-방급(方急)하여 수뇌의 참모가 여기에 열렸다고 보는 것은 명자로 인하여 짐짓 말함이라 할지라도 저 3첨봉의 상대상현한 모양이 그냥 무의미한 토석으로만 보이지는 않습니다.
-----삼장군봉에 대한 부연한 내용은 중략----
청량한 물소리가 들리매 몸조차 그리로 쏠릴 듯이 끌려갑니다.
그리고 다시 보매 조금 전에 보았던 삼장군봉과 같은 3첨봉이 또 있습니다.
그러나 이번 것은 호장대신 기려하고 웅용대신 00하여 첫 번째는 명윤이라 함 즉 하고, 두 번째는 청화라 함 즉 하고, 세 번째는 원묘라 함 즉한, 대번에 시원한 맛이 돌고 평화한 빛이 고여 마치 활개만 돌면 나도 몰래 하늘로 날 것 같은 기미를 주는 자들이니 과연 이름을 듣고 보내 삼선봉이라 합니다.
---삼선봉에 대한 시 중략--
여기서 좌편 잡목너머로 멀리 보이는 장엄한 암벽을 적암이라 하는데 한계고성 대궐터에서 흐르는 물이 저리로 떨어집니다.
얼마를 지나 소나무가 있는 언덕을 넘어 밭 가운데를 지나며 동북면으로 석경연암을 보는 맛은 참으로 장관입니다. 그중에서도 가운데로 따로 높이 솟은 암봉이 있으니 그것이 응암(鷹巖)이요.........」
노산 이은상선생이 옥녀폭포에서 학서암으로 가며 쓴 글에서 우리는 옛 지명이나 바위의 이름을 찾아볼 수 있는데 첫 번째, 느아우골인데 1930년대나 지금이나 계곡의 이름은 그대로 바뀌지 않았음을 알 수 있는데 우리가 잊고 있는 응봉, 적암, 삼선봉, 삼장군봉이라는 암봉들이 있음을 알 수 있다.
지난번 「‘설악행각’ 따라가기」를 연재하면서 적암에 대해서는 확실하게 알았는데 삼장군봉과 삼선봉은 약간 헛갈렸었는데 이번 이곳을 지나며 확실하게 알았으며 응봉은 지금도 오승골을 기준으로 좌측에 있는 암봉인지 우측에 있는 암봉인지 알 수가 없다.
적암은 대궐터 우측 붉은색이 나는 바위가 분명하고 삼선암은 학서암 서측에 있는 바위로 3개의 암봉이 둔탁하게 열거되어 있고 이곳에서 조금 떨어진 곳, 느아우골 좌측 능선에 가깝게 붙어 서있는 암봉으로 3개의 첨봉이라고 썼지만 어찌 보면 4개의 첨봉으로 볼 수도 있는 암봉이다.
옥녀2교는 느아우골을 지나는 다리이고 이어서 옥녀1교를 지나는데 옥녀1교는 한계천을 건너는 다리인데 옥녀2교에서 옥녀1교로 지나며 우측으로 골짜기가 보이는데 이곳이 한계고성이 있는 골짜기로 성골이라 부르며 성골이 한계천과 닿는 지점에 작은 폭포가 있는데 우리는 이곳을 옥녀폭포, 옥녀탕이라 부른다.
노산 이은상선생은 이곳을 지나며 어떻게 기록했을까?
「옥녀폭은 층층이 큰 바위를 뚫고 3번 꺾여, 3번 괴어 흐르는 곳입니다. 권상용이 쓴 기록에는 옥류(玉流)라 쓰고 거기에 폭포 꺾인 것이 3번, 돌확으로 된 것이 셋, 꺾여서는 물을 뿜어 흰빛이 나고 괴어서 있지 아니한다고 설명을 하였습니다.
물론 그 이름에 있어서는 내가 듣는바 옥녀(玉女)와 그가 쓴바 옥류(玉流)가 서로 다른데 아마 옥녀와 옥류(玉流)가 음이 비슷한 데서 생긴 것일 것입니다. 옛 사람들은 기록을 따라 옥류라 하지 않고 이곳 사람들이 전하는 옥녀를 취하는 것은 폭포 위에 있는 묘한 바위를 공기바위라 하여, 옥녀가 가지고 놀던 것이란 말이 재미있기 때문입니다. 위에 2번 꺾인 폭포는 작은 것이지마는 아래 1번 꺾인 것은 꽤 긴 폭포요 또 여기 돌확이라는 것은 저 탕수동의 명물인 탕(盪)과 같은 것이어서 여기서는 흔히 옥녀탕이라고도 합니다.」
옥녀탕을 정리하면 조선시대 이곳을 선답하고 쓴 기록에는 이곳을 옥녀탕, 옥녀폭포, 옥녀가 가지고 놀던 공기돌이라고 쓴 반면 이곳 토착민들은 이곳을 옥류라고 불렀던 것 같다.
옥녀폭포를 보며 걸음을 옮긴다.
아침 이곳을 지나며 날머리로 삼았던 옥녀폭포의 바위 사면은 눈이 모두 녹았는데 아침에는 이곳을 보고 슬링을 걸고 내려서야 한다는 괜한 생각을 한 것이다, 날머리로 잡고 예정대로 산행을 하지도 못하면서.........
옥녀1교를 건너자 넓은 주차장, 옥녀탕휴게소 매점, 국공초소가 텅빈 채 썰렁하고 아갈바위 아래 주차한 애마가 추운 바람을 맞으며 주인을 반긴다.
○옥녀탕휴게소에서 오승폭포~1396봉~대승령 경유 원전회귀까지 산행거리11.24km, 소요시간7시간48분, 현재시간17시08분, 해발409m이다.
설악산, 오승골~서북릉1396봉~대승폭포 산행가이드북
◎갈 때
○동서울터미널(06:30)-> 장수대(08:45)
-장수대에서 하차하여 원통방향으로 약0.6km 지나면 우측계곡이 오승골이며 이곳에서 약40m정도 지나면 우측으로 출입금지 입간판이 있는 곳이 오승골과 몽유도원도 들머리가 된다.
◎올 때
○날머리는 장수대로 장수대시외버스정류소에서 동서울행 버스를 타야하며 오색에서 16:50, 19:15에 출발하므로 대략 장수대에서17:10~15, 19:45~50에 지난다.
○버스를 타지 못하는 경우 원통택시를 호출하던가 히치로 이동해야 한다.
◎산행포인트
▶들머리부터 등로는 뚜렷하며 약0.5km 지나면 몽유도원도 릿지길과 계곡길이 갈라진다.
▶오승골로 들어서서 10분을 지나면 2단으로 잘 생긴 첫폭포가 나오며 첫폭포에서 거친계곡을 따라 좌측으로는 몽유도원도 릿지구간이 펼쳐진다.
▶1폭포에서 2폭포는 10여분이 걸리며 2폭포에서 거친 계곡을 오르며 좌측으로 몽유도원도 릿지, 우측으로 작군석봉을 보며 20분정도 오르면 3폭포가 나온다.
▶3폭포를 지나 30여분 오르면 좌측에 고봉과 고봉 사이에 오승폭포가 모습을 나타내는데 합수곡에서 약70여m 떨어져 있어 가깝게 접근해 폭포를 보고 다시 나와서 계곡을 따르면 된다.
▶오승폭포롤 보고 다시 합수곡으로 나와서 잡석이 널브러진 경사진 계곡을 따라 25분 정도 오르면 계곡가운데 큰바위가 있는 지형지물에 닿게 된다.
▶계곡큰바위를 지나도 경사가 심한 잡석 구간을 30분을 오르면 4폭포가 나오며 폭포 상단에서 쉬어가기 좋으며 뒤돌아 멋진 가리봉의 풍경을 조망할 수 있다.
▶4폭포에서 등로는 좌측 가문비나무가 있는 곳을 지나 능선으로 오르게 되며 우측 계곡은 잠시 후 없어지며 경사진 잡목지대를 40분을 오르면 미륵장군봉 능선에 닿는다.
▶미륵장군봉 능선은 길이 뚜렷하며 오승골에서 올라서 미륵장군봉 능선과 합류하는 지점은 산행기 사진에서와 같이 갈참나무 3그루가 있는 곳이며 우측 참나무를 보면 분홍색 띠지가 묶여 있다. 이 나무 후방 10m정도 아래에는 오승골 방향으로 노란색 표지기가 진입로임을 알린다.
▶미륵장군봉 능선에서 약20여분 정도 오르면 서북릉 안부에 도착하며 이곳에서 대한민국 입석이 있는 1396봉은 0.24km, 대승령에서 십이선녀탕으로 가는 정규등산로 1358고지는 약0.13km가 떨어진 지점이다.
▶서북릉 안부에서 7~8분 이동하면 대한민국이 음각된 입석이 있으며 이곳에서 조망은 으뜸으로 대청봉에서 공룡능선을 따라 마등령, 황철봉으로 대간능선이 조망되며 , 한계령에서 망대암을 지나 점봉산으로 이어지는 대간능선이 조망되고, 귀때기청봉과 건너편 가리봉 능선이 조망되고, 향로봉 과 금강산이 조망되며, 대암산 화악산, 가리산, 오대산까지 조망되며 가깝게는 한계산성 릿지능선과 오승골, 안산과 성골 응봉을 조망할 수 있다.
▶1396봉에서 조망을 마친 뒤 미륵장군봉 갈림길 안부로 되돌아 온 뒤 이곳에서 130m를 지나면 출금안내판이 있으며 1358고지 쉼터로 십이선녀탕이나 대승령으로 정규등산로가 이어진다.
▶1358고지에서 대승령까지는 약1km로 25분 정도 소요되며 대승령에서 대승폭포까지는 약1.8km로 50분 정도, 대승폭포에서 장수대까지는 약1km로 35분 정도가 걸린다.
◎산행코스
옥녀탕휴게소(09:20)-오승골들머리(09:38)-몽유도원도길(09:52)-1폭포(10:02)-2폭포(10:22)-3폭포(10:42)-오승폭포합수곡(11:00)-오승폭포(11:05)-계곡큰바위(11:43)-4폭포(12:15)-미륵장군봉능선(13:12)-서북릉안부(13:40)-1396봉(13:53)-미륵장군봉갈림길(14:20)-1358고지쉼터(14:25)-대승령(14:53)-대승암터(15:15)-대승폭포(15:50)-사중폭포(16:22)-한계사지(16:30)-44번도로(16:36)-오승골진입들머리(16:48)-옥녀탕(17:09)----11.24km,7시간50분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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