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악산, 백담사~쌍폭골~끝청~오색산행이야기(1)
(백담사~쌍용폭포 인문산행)
산행일시: 2019년07월03일
누구와: 나홀로 산행
산행거리: 약15.43㎞
산행시간: 9시간00분(09:40~18:40)
산행코스:백담사(09:40)-길골입구(09:59)-사미대(10:12)-설담당부도(10:17)-곰골입구(10:19)-영시암(10:40)-표묘등(10:48)-구암(11:00)-유홍굴(11:06)-수렴동대피소(11:08)-흑룡담(11:09)-만수담과만수폭포(11:28)-백운동합수곡(11:44)-연화담(11:54)-용손폭포(12:05)-쌍용폭포전망대(12:25)-쌍폭골접근(12:28)-쌍폭상단(13:00)-서북릉(15:47)-끝청봉(16:14)-1466봉(16:46)-1363암봉(17:07)-데크쉼터(17:57)-제1쉼터(18:07)-설악국공오색분소(18:40)
갈 때 :동서울터미널(06:30)->원통터미널(08:15)->원통터미널(08:20)->용대리백담사입구하차(08:43)->백담사행셔틀버스승차(09:25)
올 때 :오색시외버스정류소에서 동서울 행 승차(19:15)
주요지점 통과 및 이동거리
08:20 원통터미널에서 진부령행 승차
08:45 용대리 백담사입구 하차
08:55 백담사행 셔틀버스 매표(백담사행 셔틀버스는 맨 처음 매표 후 30분 후 출발)
09:25 백담사행 셔틀버스 출발
09:37 백담사주차장 도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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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40 백담사에서 산행시작
09:59 길골입구, 산행거리1.58km, 산행소요시간19분, 해발497m
10:12 사미대
10:17 설담당 부도
10:19 곰골입구, 산행거리2.64km, 산행소요시간39분, 해발535m
10:44 영시암, 산행거리4.17km, 산행소요시간1시간03분, 해발547m
10:48 표묘등, 오세암갈림길, 산행거리4.37km, 산행소요시간1시간07분, 해발575m
11:00 구암, 구담
11:06 유홍굴
11:08 수렴동대피소, 산행거리5.12km, 산행소요시간1시간28분
11:09 흑룡담
11:28 만수담과만수폭포
11:44 백운동과 상수렴합수곡, 산행거리6.90km, 산행소요시간2시간57분, 해발601m
11:54 연화담
12:05 용손폭포
12:19 관음폭포
12:22 용아폭포
12:25 쌍용폭포전망대, 산행거리8.05km, 산행소요시간4시간24분, 해발850m
12:28 쌍폭골 등산시작
12:35~45 쌍폭 숨은폭포1
12:55 쌍폭 숨은폭포2
12:57 쌍폭 숨은폭포3
13:00 쌍폭상단
13:10~14 쌍폭위 무명폭포, 산행거리8.32km, 산행소요시간3시간28분, 해발1006m
13:16 1236암봉 밑
13:26~43 1236암봉이 보이는 너럭바위(점심), 산행거리8.62km, 산행소요시간3시간45분, 해발1020m
14:12 사태지역 와폭, 산행거리9.16km, 산행소요시간4시간33분, 해발1153m
13:53 주목지대
14:00 책바위1
14:08 책바위2
14:10 물결암반
14:12 층층와폭
14:16 책바위3
14:36 전쟁의 흔적 탄통
14:40 통나무가 가로지른 건곡, 산행거리9.36km, 산행소요시간5시간03분
14:50 이끼통나무가 가로지른 계곡
15:02 작은 이끼폭포(살모사가 사는 지역)
15:05 계곡에서 능선으로 오름
15:47~53 서북릉, 산행거리10.55km, 산행소요시간6시간07분, 해발1454m
16:03 설악이정목9-12, 산행거리11.05km, 산행소요시간6시간23분, 해발1499m
16:14~23 끝청봉, 산행거리11.33km, 산행소요시간6시간35분, 해발1598m(-12m오차)
16:32 능선바위굴
16:41 상부정류소 예정지(붉은깃발)
16:46 1466봉, 산행거리11.92km, 산행소요시간7시간07분
17:07 1363암봉, 산행거리12.39km, 산행시간7시간27분
17:57 정규등산로 데크쉼터(오색1.7km↔대청봉3.3km), 산행거리13.81km, 산행시간8시간18분, 해발906m
18:07 제1쉼터
18:40 국립공원오색분소날머리, 산행거리15.43km, 산행시간9시간00분, 해발444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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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0 동서울 행 승차(오색막차 19:15분->5분연착)
◎산행 전 이야기
이번 설악산 산행은 쌍폭까지는 인문산행으로 진행하고 쌍폭에서 쌍폭골을 들어서서 서북릉에 이르는 비법정탐방로 계곡산행으로, 서북릉에서 끝청봉까지는 한계령에서 대청봉으로 이어지는 법정탐방로로, 끝청봉에서 남동릉을 따라 비법정탐방로로 들어서서 설악폭포 가기 전 데크쉼터로 내려선 후 오색에서 대청봉을 잇는 법정탐방로를 따라 오색으로 하산하는 코스를 잡았습니다.
이 코스는 누군가 지나기는 했겠으나 기록은 찾아 볼 수 없는 코스로 계획은 잡았으나 참고할 만한 기록이 없고, 일부 있는 것은 사진만 나와 구간별 거리가 불투명하므로 구간통과 시간을 잡기가 곤란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산은 접하면 모든 길이 열리므로 여러 사람들의 통과 사진을 종합해 막차시간에 맞추어 산행가이드북을 만들어 계획을 잡습니다.
산행에 중요한 요소 중 하나인 들머리와 날머리를 정하는 것도 결정하는 데도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오색에서 출발해서 백담사로 진행하는 경우 쌍폭골 진입로를 찾는데 어려움이 있으며 마지막 쌍폭을 내려서는 사면을 내려서데 어려움이 따를 것 같았으며 이후 인문산행을 위한 명소들을 그냥 지나칠 수 있을 수 있다는 점이 있고 제일 큰 문제는 오후 7시까지 백담사로 내려서지 못하는 경우 걸어서 용대리까지 이동해야한다는 점이 있습니다.
반면 백담사에서 출발해서 오색으로 진행하는 경우 산행 시작시간이 약40~50분 늦어진다는 것을 빼고는 다른 조건을 모두 충족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
인문산행을 위한 명소도 보고, 쌍폭하단에서 상부로 올라서기도 안전하고, 서북릉으로 올라서므로 신경 쓸 것이 없고 중요한 대중교통문제 해결됩니다.
오색에서 마지막 동서울행 버스는 19시15분인데 막차를 타지 못하는 경우 늦도록 있는 직행버스나 양양시내버스로 속초로 들어서면 심야버스가 있으므로 귀가에 신경을 적게 써도 된다는 점입니다.
이런저런 여러 가지 조건을 비교하여 이번 산행은 들머리를 백담사로, 날머리를 오색으로 잡고 산행에 임하게 되었습니다.
늘 설악으로 들어서기 전 어린 시절 소풍가지 전날 같은 설레는 마음으로 산행날을 맞습니다.
오늘은 어떤 풍경이 다가오고, 처음 경험하는 쌍폭골은 어떠한 추억을 남겨줄까? 하는 기대감이 있지만 반대로 걱정도 많습니다.
예정하는 시간에 하산을 할 수 있을지, 길 찾는 어려움은 없을지?, 아무런 사고 없이 무사히 산행을 마칠 수 있을지? 등이며 7~8년전 누군가의 산행기를 보면 쌍폭골에 살모사가 있다고 쓴 글을 읽은 적이 있어 뱀에 대한 걱정도 많이 되었는데 높은 산에는 뱀이 살지 않는다는 게 일반적인 상식인데 설악산에는 예외인지 많은 뱀을 보게 되는데 이번 쌍폭골을 지나며 누군가 말했던 큼지막한 살모사와의 상봉도 이루어졌습니다.
암튼 미지의 쌍폭골과 끝청 남동능선을 이어가는 산행 지금부터 열어갑니다.
◎백담사에서 쌍용폭포 구간
백담사까지는 셔틀버스로 이동한다.
시간표를 보면 첫차06시 백담사에서 막차09시로 되어 있지만 중간 시간표가 없다.
이건 「세상에 이런일이」에 나올만한 일이다.
용대리에서 백담사로 가는 버스시간은 정해진 건 없으며 만차가 되면 수시로 출발하며 만차가 아닐 경우는 누군가 최초로 매표를 한 시간부터 30분후가 출발시간이 된다고 한다.
완전 배짱장사를 하는데 인제군청은 용대리 주민의 이중대인지, 이런 식으로 셔틀버스를 운영하면 제재를 가해야 하는데 그놈이 그놈인가보다.
산이나 사찰을 찾은 사람들의 편리를 위해 운행하는 버스가 아니라 용대리 주민들의 이익을 추구하기 위해서 운행하는 버스라는 말이다. 인제 국회의원, 인제군의원은 이런 거 알고나 있을까? 싶다.
08시55분 첫 번째로 매표를 하여 출발시간이 09시25분으로 정해졌고 나중에 온 사람들은 운 좋게 바로 와서 타고 올라가는 사람도 있다.
백담사 주차장에 하차를 하고 곧바로 산행을 시작한다.
백담사에서 쌍폭에 이르기까지 인문산행은 권혁진의 설악인문산행을 바탕으로 쓰며 권혁진님은 여러 사람들이 설악산을 유람하고 기록을 남겼지만 대부분 김창흡의 유산기를 바탕으로 전해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백담사를 떠나 7분정도 지나면 돌로 지은건물이 있는데 설악산 탐방안내소가 있는데 이 건물은 오래전 백담대피소로 활용되던 건물이다.
탐방안내소를 지나면 황장폭포를 가기 전 영산담이 있다고 해서 이곳을 자날 때마다 큰 담소가 있는지 눈여겨보았지만 바위가 있는 곳에 큰 담은 보이지 않았으며 등로에서 잠시 이탈하면 물이 제법 고여 있는 담이 있는데 이 근처에 오래전에는 그럴싸한 담이 있었는데 매년 지속되는 홍수로 인해 물길이 바뀌고 영산담의 위치도 바뀌었을 것 같다.
영산담이라는 뜻은 산이 물에 비치는 못이라는 뜻으로 설악인문기행을 쓴 권혁진님도 영산담을 제대로 알지 못해 황장폭포 바로 아래 있는 담을 「나만의 영산담으로 생각하고 싶다.」고 기록했다.
영산담을 지나면 다음 명소는 황장우 또는 황장폭포다.
백담사에서 10분정도가면 처음으로 계곡과 접하는 등로 우측에 담과 폭이 있다.
폭포라고 부르고 있지만 우리가 생각하는 폭포와는 큰 차이가 있는데 옛 기록에는 황장폭포라는 기록은 없으며 황장우, 황장연, 황장뢰 등으로 묘사했는데 황장뢰는 여울을 뜻한다고 하니 황장목이 많은 곳, 여울진 못, 그 정도의 뜻이라고 한다.
이곳 황장우는 백담계곡의 시작점이라고 하는데 조선시대 이의숙은 "이곳에서 아래로 20리를 곡백담이라고 한다."라고 곡백담기에 기록했다고 한다.
황장우를 지나면 다음명소는 구융소다.
구융소의 위치는 황장우에서 흑선동계곡 중간 곡선으로 휘어진 못을 말함인데 구융이란 지금은 볼 수 없는 소의 밥그릇으로 통나무를 파내서 만든 여물통으로 표준말은 구유인데 강원도 사투리로 구융이라고 한다고 하는데 필자도 어릴 때 구유라고 부르지 않고 구융이라고 불렀다.
등로에서 계곡 건너편의 구융소를 보고 조금 지나면 왼쪽으로 출입금지 안내판과 목책이 보이고 이곳을 지나면 철다리가 있는 좌측계곡에 도착하는데 백담사에서 약20분 거리다.
이곳이 길골로 오래전에는 길동이라고 불렸는데 이곳을 지나 저항령으로 저항령에서 설악동 신흥사로 오가는 길이라는 뜻의 계곡길이다.
길골을 지나 5분을 가면 계곡은 섬을 만들고 계곡물은 섬 남쪽으로 흐르고 동쪽은 물이 흐르지 못하는 웅덩이가 있다.
오래전부터 이곳 물은 맑지 못하고 마치 썩은 물같이 갈색 빛을 띠는데 이는 물이 탁한 것이 아니라 침점된 나뭇잎의 타닌? 성분이 녹아서 나타나기 때문인데 권혁진님도 물고기들이 많이 사는 것을 보고 착각이었음을 느꼈다고 하는데 이곳에는 큰 물고기는 볼 수 없지만 작은 물고기는 무척 많이 보였는데 깊은 곳에는 팔뚝만한 물고기도 있을 것 같다.
갈색 빛 담소를 지나 5분을 가면 우측에 명소가 있으니 사미대와 사미소다.
이곳이 사미대라고 100% 확신할 수 없지만 옛 유산기를 해석하는 사람에 따라 다른 곳을 사미대라고 칭한 사람도 있다고 하는데 심원사에서 가깝게 있던 이곳이 사미대라는 의견이다.
사미대는 사미승에서 이름을 땄을 것이라는 것인데 사미승이란 나이 어린 동자승을 일컷는 말로 동자승이 집생각이 날 때마다 이곳 바위에 올라 앉아 시간을 보냈을 가능성을 생각하고 사미승이 있던 곳, 곧 사미대이고 사미대 아래 깊은 못이 사미소라는 것이다.
지금은 갈수기라 계곡에 물이 많지 않은데 이곳 사미대는 푸른 물이 깊게 보였으며 사방으로 높은 바위들이 튀어 나와 명경을 만들었다.
나이어린 동자승이 고향을 그리는 모습을 그리며 사미대에서 잠시 머물다 등로로 복귀한다.
심원사터는 사미대 길 건너편 인근으로 숲속으로 들어가 주춧돌을 확인해야 하므로 생략하고 등로를 따라 몇 발자국 떼어 놓다보면 작은 안내판이 반기는데 설담당부도 안내판이다.
등로에서 약30~40여m 떨어진 곳으로 많은 사람들이 지나다가 들리는 곳이다.
오래전 와보았던 곳인데 당시에는 관심 없이 보고 지났었다.
부도는 고승의 사리나 유골을 안치한 탑으로 둥근 원형모양과 종모양이 대부분으로 이곳 설담당부도는 종석형태의 부도로 앞에 설담당이라는 한문이 새겨져 있다.
부도 앞에 누군가 젤리봉지를 버려 쓰레기인줄 알고 청소를 한다는 생각으로 집으려다 보니 뜯지 않은 젤리봉지였다.
이곳은 봉정암과 오세암, 그리고 영시암으로 불공을 드리러 다니는 불자들이 많아 오고 가는 길에 참배를 하며 예물로 놓는 것 같은데 마음은 이해하지만 쓰레기를 양산하는 행동은 좋지 않다.
이 부도의 주인이 되는 설담은 심원사라는 절이 불타고 새로 지금의 터에 절을 세우며 백담사라는 이름을 지은 승려라고 한다.
설담당부도를 보고 등로로 복귀해 1분정도 지나면 왼쪽으로 계곡이 있으며 계곡을 건너는 철다리가 있는데 이곳이 곰골이다.
계곡이름에 곰이 붙은 것을 보면 예로부터 이계곡에 곰이 살았나보다.
마지막 곰이 살았던 저항령과 는 곰골 중간에서 갈라진 계곡이 가까운 편으로 저항령~곰골을 한 영역으로 삼고 살아갔을 것 같다.
곰골을 지나 20여분을 지나면 영시암이다.
권혁진님이 설명하는 영시암 위치에 대한 설명을 요약하면 이렇다.
영시암이라는 암자의 이름은 김창흡이 설악에 들어와 심원사 남쪽 조원봉 아래 터를 잡고 살면서 붙인 이름이었는데 어느 날 찬모가 호랑이에게 물려 죽는 일이 발생하자 김창흡은 설악을 떠나게 되었는데 이후 영시암은 허물어져 흔적을 찾아보기도 힘들게 되었는데 위치는 현재 영시암에서 계곡을 건너 제법 떨어진 곳이었다고 하는데 27년전 이곳을 처음 지날 때는 빈터로 있던 곳이었는데 이후 도윤스님이 작은 암자를 세우고 잊혀져가던 영시암을 세상에 드러냈다.
<영시암 샘터에서 물 한 바가지를 마시고 표묘등으로 향합니다.>
그런가 하면 현재의 영시암을 다시 세운 도윤스님의 말은 다르다.
2017년 10월 '원간산'에 기고한 내용을 요약해 본다.
도윤스님은 현재(당시) 87세로 설악산의 산 증인이다.
1960년 백담사에 들어와 터만 남아 있던 봉정암과 오세암을 복원하였으며 1994년에는 이곳 영시암을 김창흡 후손들의 후원에 힘입어 현재의 모습을 복원한 인물이라고 하는데 '월간 산' 취재팀에게 김창흡의 삼연정사가 있던 곳을 안내하며 현재의 영시암터에 삼연정사가 있었다고 하며 영시암(永矢庵)이라는 이름도 김창흡이 사용한 그대로라고 전했다고 한다.
이곳 영시암은 불교의 사찰이기도 하지만 설악산을 찾는 산꾼들의 안식처역할을 겸하고 있는데 곳곳에 대피소가 있기는 하지만 영시암, 오세암, 봉정암 같은 사찰은 1사람당 1만원을 받고 넓은 방에서 여러 명이 합숙을 할 수 있도록 배려를 하고 있는가 하면 이곳을 지나는 산객에게도 무료로 국수를 제공한다고 하니 감사할 일이다.
영시암에 도착해 샘터에서 물 한 바가지를 마시고 바로 표묘등으로 향한다.
영시암을 떠나 200m가면 오세암과 수렴동대피소로 갈라지는 3거리 길이 나오는데 오래전에는 우측으로 돌아서 길이 있었던 것으로 기억하고 있는데 지금은 바로 오르며 이곳에 계단이 설치되어 있는데 이곳이 표묘등이라고 하는데 표묘등이란 '높고 먼 돌이 있는 비탈길'이라는 뜻이라고 한다.
<오래 전에는 우측으로 돌아서 내려갔던 것 같은 기억입니다.>
<오래 전에는 표묘등으로 불리던 이곳이 지금은 오세암갈림길입니다.>
표묘등에 오르면 지금은 초소가 있는데 이곳에서 오세암길과 봉정암이 갈리게 된다.
오세암길로 들어서도 가야동 계곡을 가로질러 봉정암을 갈 수도 있기는 하지만 주변 경치가 좋은 수렴동 길을 따라 오르는 게 대부분이며 오세암을 거쳐 마등령을 넘어 설악동으로 이어지는 길이 산객들이 이용하는 길로 잘 알려져 있다.
우측 수렴동으로 가는 길로 들어서면 가파른 내리막길로 내려서서 계곡을 가까이 두고 10분 정도 가면 우측 계곡이 펼쳐진 곳에 제법 큰 바위가 서북방향을 바라보고 있는 듯한 바위가 있는데 이곳이 구암이라고 한다.
거북바위라고 생각하고 다시 보니 거북이 모가지를 빼고 무언가를 보는 듯한 형상이 풍기기는 하지만 보는 각도가 달라서인지 썩 잘생긴 거북으로는 보이지 않는다.
구암 아래는 아주 넓지는 않아도 제법 넓은 푸른 못이 있는데 이곳이 구담이라고 하는데 풀어서 기록하니 거북 못이다.
구암을 보고 계곡을 따라 오른다.
계곡으로 내려서니 따가운 햇살이 계곡바위들을 달구었고 달군 바위의 온도와 강렬한 햇볕이 더하니 찜통이다.
유홍굴을 찾기 위해서였다.
유홍굴의 위치는 구곡담과 가야동이 만나는 합수곡에 있다고 기록하고 있다.
계곡을 이리 저리 헤매고 건너갔다가 오기도하며 위로 점점 올라가 보지만 있을만한 곳이 없다고 생각했는데 합수곡 가까운 곳에 이르자 바위와 바위가 기댄 곳 작은 굴이 있다.
가까이 다가서면 설마 이런 곳에서 신분 높은 사람들이 여관처럼 하루를 묵어 설악산 구경을 했을까? 싶은 생각으로 다가선다.
유홍굴에는 박장윤과 홍기섭의 마애명이 있다고 했으니 마애명으로 유홍굴인가를 확인해야 했다.
가까이 가니 지저분한 작은 굴 왼쪽 바위 면에 朴長閏, 오른쪽에는 아주 희미하게 洪耆燮이라는 마애명을 확인할 수 있었으니 이곳이 유홍굴이 틀림없었다.
유홍굴은 유홍이 강원도 관찰사로 있을 때 설악구경을 왔다가 이곳에서 하룻밤 유숙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인데 이후 조선의 사대부들이 설악구경을 하며 이곳을 기준하여 거리를 나타내기도 하고 이곳에서 유숙하기도 했다고 한다.
설악인문기행 작가인 권혁진님은 유홍굴을 찾은 뒤 "바위 밑으로 들어가 보니 바깥에서 보는 것보다 상당히 넓다. 네 다섯 명이 앉아서 쉴만한 공간이다."라고 기록했으므로 유홍굴을 찾으면 같은 방법으로 굴속으로 들어간다는 생각을 했었는데 유홍굴은 지저분하여 들어가고 싶은 생각이 사라졌다.
유홍굴을 확인하고 올라서 위치를 확인하니 등산로 바로 옆인데 반대편에 있어 모르고 다닌 것인데 수렴동휴게소를 가기 전 가야동 계곡을 가로지르는 철다리가 시작되는 5m후방 우측 바위인데 등로에서는 보이지 않고 계곡쪽으로 내려서면 유홍굴이 있다.
<유홍굴은 정규 등산로에서 약5~6m 떨어진 곳,
아주 가까이 있지만 굴 입구가 반대편이므로 모르고 지나친 것입니다.>
유홍굴은 예전에는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하는 곳이었는데 지금은 수렴동대피소가 있어 산객들이 쉬어가기도하고 숙박을 하기도하고 거리 기준 등을 잡기도 하지만 대피소가 없던 오래전에는 유홍굴이 수렴동대피소의 역할을 했으니 중요한 거점이었다는 것이다.
철다리를 건너 수렴동대피소로 들어선다.
밖에서는 우리네 정도 되는 부부와 다른 사람이 식사중이고 안쪽으로 젊은 부부가 식사중인 모습이 보인다.
수렴동대피소를 처음본 건 1992년 사월초파일이었다.
난생처음 설악산 대청봉 등정에 나선 날이었는데 계곡 곳곳에 잔설과 얼음이 있었고 소청산장과 중청 희운각 사면에 무척 많은 눈이 두껍게 쌓여 있었으며 수렴동대피소는 다 쓰러져가는 오두막같은 모습이었다.
옛날 이곳을 지나던 기억을 떠올리며 오래지 않아 설악골~가야동 연계산행을 생각하며 수렴동대피소를 지난다.
수렴동대피소를 막 지나면 계단이 시작되고 아래는 한길 이상 되는 깨끗한 물이 쉬어가는 담소가 있다.
<윗쪽 바위가 검게 보입니다.>
이곳이 흑룡담이라고 부르는 못으로 설악산유산기를 쓴 사람마다 조금 차이는 있는데 흑룡담 이외에 조담, 조연으로 쓰기도 했다.
흑룡담이라는 건 주변 바위 색깔이 검다는 데서 비롯한 것이고, 조담이나 조연이라고 부르는 건 말 구유처럼 길게 휘어진 모양이라는 뜻이고, 담과 연의 차이는 물의 흐름이나 깊이에 따라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큰 차이는 없는 것으로 글을 쓰는 사람의 성향에 따라 조연 또는 조담으로 썼다는 것이다.
흑룡담을 지나면 층층겹겹을 이룬 바위가 있는데 박상원은 한설록에서 단상암, 그러니까 풀이하면 붉은 책상바위라고 보았다.
지난번 특이하다고 생각해 사진을 찍기도 했는데 이번은 계곡을 유심히 보고 지나는 바람에 같은 계곡길을 지나면서도 단상암을 보지 못하고 지나쳤다.
단상암을 지나면 우측으로 계곡과 인접하게 내려서며 높이는 그닥지 높지 않지만 우람한 폭포와 담을 볼 수 있는데 이곳이 하수렴의 최고의 풍경을 간직한 만수담과 만수폭포다.
설악을 누구보다 사랑했다는 김창흡은 영시암에 거처를 하며 만수담이 내려다보이는 곳에 멸경암이라는 정자를 짓고 잠시 유숙을 하며 시를 읊고 풍경을 노래했다고 하며 만수담 위 너럭바위를 희이대라고 이름짓고 낮잠을 자기도 하며 시간을 보냈는데 『삼연집』에 「희이대에서 낮잠을 자다」라는 시를 남겼다고 한다.
만수폭포 주변으로는 경치가 뛰어나다.
만수폭포 조금 아래와 조금 위에는 큰 바위가 계곡에 덩그러니 있는데 이 바위에는 옛 선인들이 설악을 구경하며 석수를 동반해 자기의 이름을 새긴 각자바위다.
오늘 산행에서 물을 건너 2개의 각자바위로 다가가 확인할 여건이 안 되어 멀리서 바라볼 뿐이었는데 아래 있는 각자바위에 있는 민백흥의 마애명은 크게 새겨 멀리서도 글씨를 확실히 확인할 수 있었다.
예나 지금이나 사람들은 낙서하기를 좋아하나보다.
자기과시를 위한 마애명을 새기고는 했는데 마애명에 대해서 매우 심하게 꾸짖으며 반대의견을 피력한 사람으로는 연암 박지연과 남명 조식이 있다.
연암 박지연은 발승암기에서 이런 글을 남겼다.
내가 동쪽으로 풍악산을 유람할 때..... (요약하면)
“금강산을 갔을 때 경치가 뛰어난 곳에 옛사람부터 당시대 사람까지 빼곡하게 마애명을 새겼는데 돋보이게 하려고 붉은 색칠을 해서 빛나기도 했다.
천길 낭떠러지기 깎아지른 절벽에 이름석자를 새기지만 이름을 새기는 석공의 목숨도 중요하거늘 원숭이 목숨과 같이 여긴다.
이름을 새기는 명예욕은 모두 부질없는 짓이다.“
그런가 하면 남명 조식은
“대장부의 이름은 사관이 책에 기록하여 오르내려야 하는데 구차하게도 산속 썩지 않는 돌에 이름을 새겨 억만 년을 전하려 한다.”고 따끔하게 비판하였다.
대청봉을 갔다가 온 기록인 유봉정기에 만수폭포 주변의 풍경을 보고 김창흡은 이곳에서 바위를 통째로 파낸 것 같다며 주변 풍경에 감동을 받았다고 기록하였다.
다시 등로로 복귀하여 길을 걸으면 오래전에는 계곡 옆으로 길을 따라 지났는데 언제부터인지 테크로드를 만들어 힘들지 않게 이동할 수 있다.
데크로드 우측으로는 조금까지만 해도 많은 물이 흘렀는데 건곡으로 바뀌고 잠시 후 넓은 합수곡에 도착하니 만수폭포를 떠나 약10분정도의 거리다.
합수곡
이곳은 백운동계곡이 수렴동계곡과 합치는 곳이다.
수렴동계곡이라면 제대로 이야기 한 것인데 요즘은 구곡담계곡이라고 해야 정답으로 인정해줄 것 같다.
김창흡의 유봉정기에서 봉정에서 내려서며 이곳을 기준으로 상수렴과 하수렴으로 나누었는데 이곳에서 쌍폭이 있는 위쪽을 상수렴, 그리고 아래쪽을 하수렴으로 적었으며, 홍태유는 유설악기에서 십이폭동이라고 썼으며 김몽화도 유설악록에서 십이폭이라 기록했다.
구곡담은?
구곡담이라는 단어는 이은상의 설악행각에서부터인데 우리는 쌍용폭포가 있는 일대를 구곡담으로 부르고 있지만 이은상의 설악행각에서는 우리가 아는 바와 다른데 쌍용폭포 위 봉정골에 구곡담이 있는 것으로 기록했다고 한다.
쌍용폭포 바로 위에 있는 방원폭포가 1담이 되며 3. 4는 담이라는 이름을 얻지 못하고 소라고 기록했다고 하며 4곡담을 지날 때 사자암이 잘 보인다고 하고, 9곡담 오른쪽 돌계단을 백단대라고 기록했다고 하는데 봉정골을 간 사람들이 없어 확인을 할 수 없는데 이로보아 구곡담은 설악행각을 설악산국립관리공단에서 잘 못 이해하여 비롯된 오보라고 할 수 있다.
합수곡을 지나면 폭포의 향연이 시작된다.
상수렴이어도 상관없고, 구곡담이어도 상관없고, 십이폭동이라도 상관없는 자연이 주는 아름다운 폭포가 시작된다.
1992년 처음 이곳을 오를 때 너무나 신기하고 너무나 좋았던 기억이 있으며 지금은 데크로드를 설치한 대부분의 등로가 예전에는 대부분 계곡 옆을 지났으니 폭포를 체감하는 즐거움은 지금보다 더 뛰어 났으니 가던 길을 멈추고 폭포 구경을 하느라 무척 많은 시간이 걸렸는데 함께했던 9명의 산악회원들 중 2명은 노환으로 돌아가시고 나머지 6명도 산은 다닐 수 없는 입장으로 필자 혼자만이 산을 찾으며 오래전 동네 부부산악회의 명맥을 이어간다.
백운동 합수곡에서 상수렴으로 접어들어 몇 발자국 떼어 놓지 않았는데 등로 옆에서 뱀을 만난다.
살모사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고. 지난번 길골에서도, 1308봉 아래서도 2마리나 이런 뱀을 보았는데 살모사보다 날렵하고 조금 큰데 무늬는 살모사와 비슷하다.
암튼 설악산에는 뱀이 많은 편인데 뱀이 많다는 것은 먹이가 많다는 것인데 무엇을 주 먹이로 삼고 있는데 뱀이 많을까?
이곳에서 뱀을 보면서 누군가 오래전 쓴 산행기록에 쌍폭골에서 살모사를 만났다며 조심해야한다는 글을 읽은 적이 있는데 괜시리 걱정이 된다.
잠시 후 폭포를 만나는데 백운동합수곡을 떠난 지 3분여가 지나서다.
목교를 지나며 폭포를 본다, 폭포라기보다는 작은 담으로 그나마 담은 위에서 떠 밀려온 자갈로 메워지고 아주 얕다.
목교를 건너 잠시 후 다람쥐 한 마리가 지나가도 도망치지 않는다.
손을 내밀고 오라고 하니 손에 먹을 것이 있는지 확인하고 먹을 것이 없자 조금 떨어져 보고만 있다.
이곳을 지나는 산객들이 수시로 먹거리를 주어 사람에게 길들여진 것 같았는데 먹을 것을 바라는 다람쥐를 보고 그냥 지나칠 수 없어 배낭을 내려놓고 빵을 조금 떼어 던져주니 맛있게 먹는다.
다람쥐를 뒤로하고 목교를 건너며 진풍경이 나타나니 연화담이다.
연화담이란 연꽃을 닮은 못이라는 뜻으로 담은 깊지 않아 보이고 너럭바위를 타고 내려오다 한 곳에 머물며 담을 이루었고 왼쪽으로는 아파트 2~3층 정도의 높이로 바위가 있는데 마치 인위적으로 쌓아 올린 듯 멋을 풍긴다.
물론 설악인문기행에는 연화담에 대해서 나오는 구절은 없는 것으로 보아 옛 선인들은 별도의 이름을 붙이지 않고 십이폭동이니 상수렴으로 일괄해서 부른 것 같다.
연화담을 뒤로하고 계곡을 따라 10분도 되기 전 폭포를 마주하니 이곳이 용손폭포인데 있어야할 안내문이나 안내판이 없다.
용손폭포는 3단 폭포로 아래 2개의 담은 크지만 위 첫 번째 담은 담으로 보기 힘들 정도로 작으며 폭포 양편으로는 암반인데 특히 좌측으로는 하늘 높게 솟은 암봉은 설악산의 최고의 암릉인 용아장성능선으로 이르고 있는 암봉의 하나다.
폭포 중간 대각선으로 홈이 패여 있어 장마철이나 수량이 많을 때는 낙하하는 물줄기가 대각선으로 패인 골을 따라 물이 솟아오르는 풍경 또한 장관이다.
용손폭포 상단은 골폭으로 수천, 수억년의 세월동안 물이 흐르며 골을 만들었고 물은 골을 타고 낙하를 한다.
관음교를 건너며 용손폭포를 뒤로하면 이정표(대청봉2.5km↔백담사8.4km)와 설악이정목10-24를 만난다.
산행을 시작하며 2시간반, 이정표의하면 8.4km를 지나왔다고 하지만 이정표의 거리환산에 약간 착오가 있으며 쌍폭까지 가야 8km가 된다.
철교를 건너면 좌측으로는 용아장성능선이 하늘을 받치고 맑고 푸른 하늘에는 작은 구름이 높게 걸려 있다.
철교를 건너 5분을 지나 작은 폭포를 만나는데 갈수기라 수량도 많지 않으며 담은 많이 메워져 보기에 답답하지만 그렇다고 폭포마다 준설을 할 수 있는 입장이 아니다.
이 폭포는 특별히 붙여진 이름이 없는 것 같으며 굳이 이름을 짓자면 관음폭포의 하단으로 보아야 할 것 같은데 언제부터 관음폭포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는지 알 수 없는데 관음교라는 목교에서 비롯된 것인지 모를 일이다.
하단 관음폭에서 위를 보면 멀지않은 곳에 폭포가 보이는데 안내판이 없어 확실한지는 알 수 없지만 사람들은 이 폭포를 관음폭포라고 부르지만 필자는 근거 없는 관음폭포를 배제하고 용아폭포로 기록한다.
오래전에는 쌍폭이라고 하나의 폭포군단이었는데 이은상이 왔다간 후 용손폭포, 용아폭포를 지어내어 헷갈리게 했다는데 관음폭포는 언제 생겨났단 말인가?.....
관음교를 지나 방향을 조금 바꾸면 거대한 쌍폭이 눈에 들어온다.
오래전 설악산을 유람한 선인들은 이곳을 쌍폭이라고 불렀는데 이은상 이후 쌍용폭포라고 부르며 아래쪽 꼬리를 달고 있는 폭포가 용아폭포라고 부른다.
처음 이런 용아(용의아들), 용손(용의손자)이라는 폭포이름을 접하고 못마땅하게 생각한 적이 있었는데 설악산국립공원관리공단에서 지어낸 것이 아니고 이은상이 설악산 유람기인 설악행각에 시 한수를 올리면서 용손과 용아가 시작되었는데 이후 인은상님의 시에 등장하는 용아, 용손을 그대로 따서 용손폭포, 용아폭포로 이름을 붙인 것이다.
쌍용(雙龍) 저 두 어른 어느 적에 만나신지
백자(百子) 천손(天孫)을 무릎 아래 두시고서
상기도 사랑이 넘쳐 어개 걸고 웃으시오
이은상이 지은 시조로 백자, 천손이라 노래했다고 쌍폭이 용아폭포, 용손폭포로 하나의 폭포가 3개의 폭포로 나누어 졌고 언제부터는 관음폭포가 등장하게 되었으니 이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이해해야 하나 싶다.
용아폭로를 보며 계단을 따라 오르면 전망대가 있다.
전망대에 올라서 가야할 쌍폭의 우측 폭포를 보고 옛 기억을 떠올리며 잠시 오래전 추억에 빠진다.
▷백담사주차장에서 쌍폭전망대까지 산행거리8.05km, 산행시간4시간25분, 해발850m 현재시간12시25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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