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재이야기

경복궁, 건청궁(乾淸宮) 권역

범솥말 2023. 10. 20. 23:23

건청궁(乾淸宮)

경복궁의 북측 후원으로 가는 도중 향원지 뒤에 있는 궁궐속의 궁으로 경복궁 중건 시기보다 6년 늦은 1873년 지어졌으며 처음에는 조선왕조 역대 임금의 초상화인 어진(御眞) 등을 보관할 목적으로 지어졌다가 고종과 명성황후 거처로 사용되는가 하면 고종은 이곳에서 정사를 보기도 하였고 각국의 공사를 만나는 접견장소로 사용하기도 하였습니다.

또한 건청궁은 1887년 미국의 에디슨 전기회사에 의해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전깃불을 밝힌 곳으로 그 결과 전기의 역사는 우리나라가 일본보다 앞서있다고 합니다.

이러한 건청궁은 1895108일 을미사변으로 인해 명성황후가 일본 애들에게 죽임을 당하는 살육의 현장으로 바뀌고 생명의 위협을 느낀 고종은 이듬해인 18962월 왕세자와 함께 궁내용 교자를 타고 바로 신무문을 통해 정동 러시아 공사관으로 피신하는 아관파천을 단행하면서 기능을 상실하기 시작해 1909년에 일본인들에 의해 헐려 사라졌으며 대신 그 자리에는 조선총독부 미술관이 지어졌으며 이후 이 미술관은 한동안 국립현대미술관으로 사용되다가 1998년 철거된 후 건청궁 복원은 20046월에 시작돼 3년여 만에 마무리 되었습니다. 

 

장안당(長安堂)

건청궁안에 있는 건물로 건청궁으로 들어서 좌측의 초양문으로 들어서면 있으며 황후의 거처였던 곤녕합 서측에 있는 장안당은 고종의 거처이기도 하지만 한 때는 이곳을 편전으로 사용하기도 하였습니다, 

서쪽으로 누마루인 추수부용루가 있는데 글의 뜻은 가을 물속의 연꽃이란 뜻입니다.  

장안(長安)이란 오랜 동안 편안하게 지내다는 뜻으로 현판은 고종임금의 어필로 어필현판첩에서 탁본하여 새긴 것이라고 합니다. 

 

정화당(正化堂)

올바른 교화라는 뜻을 지니고 있는 이곳은 장안당에 딸린 건물로 고종임금의 침소입니다.

 

 

초양문(初陽門)

처음 나타나는 양의 기운이란 뜻을 가진 이 문은 곤녕합과 장안당 사이를 잇는 문으로 현판은 청나라의 옹가방의 글씨라네요. 

 

필성문(弼成門)

도와서 이룬다는 뜻을 지닌 이문은 장안당 서측의 문으로 붉은 벽돌로 만든 예쁜 월문으로 되어 있습니다.

 

곤녕합(坤寧閤)과 옥호루(玉壺樓)

땅이 편안하다는 뜻을 가진 곤녕합은 건청궁 장안당 동쪽에 있는 건물로 왕후가 거처하는 공간 이며

곤녕합의 현판은 고종의 어필로 어필현판첩에서 탁본한 것이며 옥호루의 현판은 복원하면서 새로 단것이라고 합니다. 

곤녕합의 부속 건물인 옥호루는옥병안의 얼음이란 뜻으로 깨끗한 마음을 의미하는데 1895년 곤녕합 옥호루에서 큰 사건이 일어났으니 일본 자객에 손에 명성황후가 시해되는 사건으로 이 사건을 을미년에 일어났다하여 을미사변이라고 합니다.

일본자객들은 살해된 명성황후를 동측 녹산에서 불에 태웠는데 이는 친러정책을 쓰는 고종과 명성황후로 인해 러시아가 남하할 것이 두려워 국모였던 명성황후를 살해한 사건인데 일본 애들은 일본의 국익을 위해 어찌 한 나라의 국모를 시해할 수 있을까? 정말 끔찍하고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이러한 사건이 일어났던 이 건물은 이후 한동안 방치되었다가 철거되었으며 2006년에 와서 다시 옛 모습대로 복원되었으며 동쪽에는 사시향루라는 현판이 걸려 있습니다. 

 

정시합(正始閤)

처음부터 바르게 하다라는 뜻을 지닌 이 건물은 곤녕합의 동북쪽에 붙어있는 건물로 황후의 침실입니다.

 

함광문(含光門)

만물을 포용하여 공화가 빛난다라는 뜻을 지닌 이문은 곤녕합으로 들어가는 남쪽 문입니다. 

 

복수당(福綏堂)과 녹금당(綠琴堂)

복수(福綏)복록을 받아 편안하다는 뜻으로 곤녕합 뒤에 있는 건물이며

녹금(綠琴) ”녹색의 거문고로 푸른 숲이 내는 아름다운 거문고 소리를 의미하며 복수당 서쪽행각에 붙어있습니다.  

 

인유문(麟遊門)

<언제사진일까? 독일인이 조선 여행 때 찍은 사진인가 봅니다.

좌측이 건청궁 입구이고 우측에 인유문이 보입니다.>

기린이 노닐다라는 뜻을 지닌 이문은 건청궁 입구 오른쪽 산 옆에 있는 문으로 이문을 통해 무청문 앞을 지나 궁성에 붙어있는 광무문을 통해 궁 밖으로 나갈 수 있습니다.

지금의 청와대가 있는 곳이 옛날에는 경복궁의 후원이었으므로 이곳으로 후원구경을 갔을 것 같은 생각이 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