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재이야기

만화로 보는 역사기행, 왜관지명이야기

범솥말 2026. 9. 19. 10:55

왜관 지명이야기

 

이글은 문화재청에서

발행하는 월간문화재사랑 2014.04월호에

실린글로 글의 저작권은 문화재청에 있습니다>

왜관이란?

조선시대에 왕래한 왜인의 숙박이나 접대 등에 관한 일과 이들과의 무역을 도모하기 위해 남해의 개항장과 서울에 설치한 관사(館舍).입니다.

1407년(태종 7) 부산포(釜山浦 : 동래)·내이포(乃而浦 : 제포, 지금의 웅천)에 객관이 설치되어 왜인이나 상업을 하는 왜인(商倭)의 숙박 및 접대와 교역을 담당하면서 비롯되었다. 이때 왜관이 설치된 것은 고려말 이후에 극성했던 왜구가 조선 개항 이후에도 여전히 문제가 되었기 때문이다.

조선정부는 왜구를 진정시키기 위하여 회유책을 실시했다. 그러나 입국왜인의 무질서하게 정박하고, 변경의 경비허실을 정탐하는 등 문제를 일으켜 이에 장소를 제한하여 왜인들의 숙박·접대·무역처를 제공하면서 왜관을 설치했다.

처음에는 부산포·내이포의 개항에 따라 여기에만 왜관을 설치했으나, 1418년(태종 18) 염포(鹽浦 : 울산)와 가배량(加背粱 : 고성 관내)을 추가로 개항함에 따라 이곳에도 왜관을 설치했다.

이후 왜관은 왜변, 조선의 대왜정책, 왜의 개항간청 등과 관련하여 개항장과 함께 폐쇄·복설이 반복되고, 4곳에 있던 왜관이 부산포 1곳으로 축소되면서 한말까지 운영되었다.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의 발발로 부산포와 함께 그곳에 있던 왜관도 폐쇄되었고, 1607년(선조 40) 국교가 회복되면서 부산포가 개항되고 소실된 왜관(자성대 부근)을 두모포(豆毛浦)에 새로 지었다.

이후 1678년(숙종 4)에 초량(草粱)으로 옮긴 뒤 한말까지 계속되었다. 1876년(고종 13) 강화도조약에 따라 초량왜관을 거점으로 일본 공사관이 설치되고 거류지가 설치되어, 대소 일본상인들이 지역에 제한받지 않고 상업활동을 전개하면서 거류민과의 상업활동이 수적·양적으로 폭주함에 따라 왜관의 기능이 유명무실해져 소멸되었다. ...............<이하 생략>

출처 : 한국브리태니커 사전

글·그림 유영수

□경북 칠곡 왜관 호국의 다리 

위치; 경북 칠곡군 왜관읍 석전리

등록문화재 406호

소개; 1905년 군용 단선철도로 개통, 1941년 상류부분에 새로운 철교를 개통하며 국도로 이용했으며, 6.25 때 인민군이 건너지 못하도록 폭파하여 나라를 구했다는 호국의다리 '왜관철교,. 우여곡절 끝에 칠곡 군민들의 숙원에 따라 1993년 2월에 재탄생하게 되었다. 

이후 왜관철교는 가치를 인정받아 대한민국 근대유산이라는 문화재로 등록되었다.

이 교량은 이곳 주민들의 자랑거리일 뿐만 아니라 대한민국의 자랑거리이고 아픈역사를 품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