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평,청계산 산행기
산행일시: 2010년10월 02일
누구와: 집사람 그리고 태숙처형과 함께
산행거리: 약 6㎞
산행시간: 3시간 30분(11:40~15:10)
산행코스:청계1리(10:30)-산행들머리(11:42)-주능선합류(12:50)-청계산정상(13:20,658m,점심20분)-주능선갈림길(14:10)-청계리날머리(15:10)
청계산을 처음 오른 건 한강기맥을 답사하면서 천호동에 직장을 두고 있던 2007년7월 토요일이었다.
당시 양수리부터 시작하여 4시간 이상을 걸어서 아무도 없는 청계산 정상에 올랐는데 그래서인지 청계산 정상은 잔디가 잘 가꾸어져 있는 조용한 산이라는 이미지만 남아있다.
조용하기만 했던 산은 전철이 국수역까지 연장되면서 2009년부터는 청계산이 서울근교의 명산으로 자리 메김을 하면서 많은 사람들로부터 사랑 받는 산으로 바뀌었다.
그 여파로 우리도 작년 가을 집사람과 둘째형수와 청계산을 왔다가 청계리 밤나무 밭의 알밤이 지천으로 떨어진 것을 보고 제사에는 관심이 없고 제사밥에만 관심이 있다는 속담대로 산행은 대충, 밤은 풍성하게 주은 적이 있다.
그리고 해를 넘기고 1년이 지난 뒤 다시 청계산을 찾았다.
올해는 작년에 비해 늦추위가 기세를 부리더니 개회기에 개화를 제대로 하지 못하고 예년에 비해 비 오는 날이 잣다보니 열매를 여는 작물이 모두 흉작이다 보니 청계산 밤도 작년에 비하면 적게 달리고 밤알의 크기도 작년만 아예 못하다.
들머리 입구에 주차를 하고 작년에 왔다간 곳이기에 지리를 알고 있어 자연스럽게 배회를 하며 1시간이상 알밤을 줍고 산행에 접어든다.
들머리에서 약간오르막을 올라 다시 내리막으로 접어들어 다시 오르막으로 접어드니 작년 형수님과 왔을 때 잠시 쉬면서 정상을 갈까 망설이던 묘지가 있는 곳이다.
묘지가 있는 곳을 지나 계곡과 능선으로 갈라지는 곳에서 능선방향인 우측 길로 들어섰지만 어느 길로 들어서던지 300여m 후에 다시 만난다.
초입부터 길 옆에서 오가는 산님을 반기는 꽃은 물봉선으로 8월 중순이면 어느 산을 가던지 흔히 보는데 이곳 청계산에서도 예외는 아닌 듯하다.
물봉선을 뒤로하고 야트막한 고개에 오르니 잘려나간 참나무 밑둥에서 새털구름같은 운지버섯이 예쁘게 나있어 부수입으로 챙기고 기분 좋게 정상으로 향한다.
10여분을 걸어 철탑공사 때 길로 사용했던 지점에 도착하니 "며느리밥풀"같은 꽃이 나를 반기니 이 꽃은 "나도송이풀"이라는 꽃으로 꽃모양은 "며느리밥풀"과 비슷하지만 잎 모양이 완연이 구별된다.
<나도송이풀>
이제까지는 길도 좋고 경사도도 완만하였으나 이곳에서 좌측으로 오르며 길이 좁고 가파르게 오르기 시작한다.
가는 길가 누리장나무에는 꽃은 다 지고 빨간 꽃받침이 꽃을 대신해 화사로움을 뽐내고 있었는데 누리장나무의 이름은 나무잎이나 줄기 등에서 누린내가 나므로 붙여진 이름인데 이 누리장나무에는 애뜻한 사랑의 이야기가 묻어 있는데 이러하다.
<누리장나무>
누리장나무의 전설
옛날 어느 고을에 가축을 잡아 고기를 파는 백정이 살고 있었다.
그런데 이 백정에게 20대 중반의 아들이 하나 있었다.
비록 사회적으로 천대를 받는 백정의 아들이었지만 잘 생기고 매우 똑똑한 청년이었다.
그러나 마땅한 혼처가 없어 장가를 들지 못하고 있었는데 이 총각은 이웃 마을에 사는 양가집 처녀를 사모하고 있었는데 우연히 마을 잔치 집에서 일을 거들다가 눈이 마주친 후로 그 처녀를 잊지 못하는 딱한 사랑에 빠지고 만 것이었다.
신분제도가 엄격하던 시절이라 총각은 누구에게 말도 해보지 못하고 가슴앓이만 깊어갔고, 백정 내외는 초췌하게 야위어가는 아들을 보며 안타까운 마음으로 이유를 알아내려고 하였지만 아들은 굳게 입을 다물고 말하려 하지 않았다.
총각은 가끔 처녀의 집 근처를 배회하며 얼굴이라도 보려고 하였지만 처녀의 바깥출입이 많지 않던 시절이어서 열 번을 찾아가도 한 번 보기가 어려워 총각을 더욱 애타게 하였다.
그러다가 처녀의 집 근처를 자주 맴도는 총각을 수상하게 여긴 마을 사람들에 의하여 소문이 처녀의 집에까지 들어가게 되었다.
처녀의 부모는 불같이 노하여 지방 관가에 고발을 하는 지경에 이르러 총각은 처녀에게 말 한번 붙여보지 못하고 관가에 끌려가 심한 매질을 당하는 신세가 되었다.
관가에서 모진 매를 맞고 백정 아버지의 등에 업혀 집으로 돌아가던 길에서 담 너머로 밖을 내다보던 처녀와 눈길이 마주쳤다.
처녀의 연민어린 눈길을 바라본 총각의 눈에서 눈물이 흘렀다.
그렇게 집으로 돌아간 총각은 그날 밤 못 이룬 슬픈 사랑을 가슴에 안고 죽고 말았다.
백정부부는 자식의 슬픈 사랑을 알았기에 처녀가 사는 이웃마을이 내려다보이는 길가에 묻어주었다.
그로부터 몇 달 후 처녀는 친척집에 다녀오는 길에 총각의 무덤 곁을 지나게 되었는데 무덤 곁을 지날 때 발길이 얼어붙고 말았다.
도무지 발길을 옮길 수가 없었던 것이다.
같이 간 일행은 동생이었는데 동생이 아무리 잡아끌어도 발걸음을 떼지 못하고 무덤 곁에 주저앉아 버리는 것이었다.
놀란 동생은 할 수 없이 집으로 달려가 부모님과 이웃사람들을 모시고 나왔지만 처녀는 총각의 무덤 앞에서 이미 죽어있었다.
처녀의 부모는 백정부부와 의논하여 처녀의 시신을 총각의 무덤에 합장하여 주었다. 그런데 이듬해 봄 그들의 무덤 위에서 나무 한 그루가 자라 꽃을 피웠는데 나무와 꽃의 향기가 누린내 같기도 하고 된장냄새 같기도 하였다.
사람들은 그 나무와 꽃의 냄새가 백정의 냄새와 같다고 수군거렸으며 그래서인지 그 나무의 이름을 누린내가 난다고 하여 누리장나무 또는 누리개나무라고도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오르는 길 양옆으로 천남성이 붉게 물들고 있어 지나는 사람들이 무슨 꽃인지도 모른 채 좋은 느낌만 간직하겠으나 천남성이 옛날 궁중에서 부자와 함께 사약으로 쓰였다는 사실을 안다면 전에 느꼈던 아름다움이 반감하며 경계하는 꽃으로 인식이 바뀔 것이다.
<천남성>
갑자기 급경사지로 바뀌고 조금을 오르니 산님들의 떠들썩한 소리가 귓가에 맴돌고 이내 주능선에 도착한고 능선에 올라서자 그동안 보지 못했던 산님들이 줄을 이으며 정상으로 오르는데 이들은 국수역에서 내려 형제봉을 지나 정상으로 가는 산님들인 것이다.
잠시 능선에서 흐른 땀을 식히고 다시 정상으로 향한다.
약 1km 되는 능선을 걸으며 좌로 양수리 일대와 우로 유명산일대와 용문산의 기지부터 양평의 벡운봉까지 길게 뻗은 능선이 아름답게 보이며 지난날 한강기맥을 시작하며 지났던 추억과 종주 산행의 발로가 되었던 용문의 능선은 살아 승천하는 용의 솟음처럼 갖가지 추억들이 주마등처럼 스친다.
거친 숨을 토해내며 청계산 정상에 도착한다.
<청계산 정상에서>
넓은 정상에는 거의 100여명 되는 산님들이 판을 벌리고 식사와 정상주를 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한강기맥 때 이곳에 왔을 때와 다른 한 가지는 당시에는 정상석이 한 개였는데 오늘은 두 개가 되어있다는 사실이다.
정상석이 2개가 되었다 해서 문제될 것은 없는 것이고 이 시간 제일 중요한 것은 다른 사람들처럼 자리를 잡고 점심을 해결해야 된다는 점으로 한 곳에 자리를 잡고 맛있는 점심을 하며 오를 때의 힘들었던 모든 일들을 털어버린다.
30분정도 식사를 하며 한가한 시간을 보내고 오른 능선을 다시 역순으로 내려선다.
혼자서 주변을 보니 용문산을 비롯한 유명산, 소구니산, 중미산, 대부산 등은 나뭇가지에 가려 보이지 않고 북쪽에 있는 화야산과 고동산만이 그런대로 모습을 보여 준다.
맑았던 날씨가 구름으로 덮이며 사방이 어두워지며 굵은 빗방울이 한 두 방울씩 떨어지기 시작한다.
모든 사람들이 분주히 움직이고 우리도 빠른 걸음으로 능선을 타고 내려서다 청계리 갈림길에서 좌측으로 내려서니 뿌리던 빗방울이 잠시 멈추니 여유를 가지고 내려선다.
<나무다리 내다리>
내린 빗방울이 길가 풀잎을 적시고 젖은 풀잎을 등산화와 바지로 털며 내려서다보니 외로운 애마가 주인을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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