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상산 우정산행기
산행일시: 2020년10월27일
누구와: 좋은사람들 안내산악회(지한이와 둘이서)
산행거리: 약10.0㎞
산행시간: 4시간30분(09:55~14:25)
산행코스:서창마을들머리(09:55)-장도바위(11:00)-적상산성서문(11:08)-주능선(11:17)-향로봉(11:28)-기봉3거리(11:55)-안렴대(12:00)-기봉3거리(12:34)-기봉(12:36)-안국사(12:42)-적상산사고지(13:03)-치목마을들머리(13:20)-송대(13:40)-치목마을날머리(14:25)
주요지점 통과 및 이동거리
09:55 서창마을들머리에서 산행시작 해발357m
10:06 이정표(서창마을0.6km↔향로봉2.9km), 산행거리0.5km,산행시간12분, 해발458m
10:22 이정표(서창마을1.4km↔향로봉2.1km), 산행거리1.1km,산행시간29분, 해발632m
11:00 장도바위, 산행거리2.2km,산행시간1시간08분, 해발848m
11:05 적산산성서문터
11:17 주능선3거리, 산행거리2.7km,산행시간1시간22분, 해발963m
11:29 향로봉, 산행거리3.4km,산행시간1시간33분, 해발1022
11:42 주능선
11:54 기봉3거리, 산행거리4.8km,산행시간2시간00분, 해발1021
12:00~30 안렴대, 산행거리5.1km, 산행시간2시간05분, 해발1036m
12:36, 기봉, 산행거리5.6km, 산행시간2시간41분, 해발1037m
12:42 안국사
12:50 안국사일주문, 산행거리6.1km,산행시간2시간55분, 해발969m
13:00~18 적상산사고지
13:20 치목마을들머리, 산행거리7.1km,산행시간3시간25분, 해발883m
13:40 송대, 산행거리8.2km,산행시간3시간45분, 해발648m
14:19 적상산날머리, 산행거리9.8km,산행시간4시간24분, 해발344m
14:23 치목마을회관날머리, 산행거리10,0km,산행시간4시간28분, 해발329m
○산행 전 이야기
친구 지한이가 명산100산 중 마지막 한 산을 남겨 놓고 마지막 산은 함께 산행을 하였으면 부탁을 합니다.
볼 것 없이 오케이입니다.
사긴이 지나고 산행일을 일주일 남긴 상황에서 코로나가 창궐하게 되니 2단계로 격상되고..... 산행일을 일주일 남기고 취소할 수밖에 없었는데 이러한 여파로 안내산악회는 몇 달 동안 산행 공지를 올리지 못했습니다.
다시 시간이 흐르고 격상되었던 거리두기가 완화되며 산행일정이 잡혔으며 내 친구가 마지막 남겨 놓은 산은 무주의 적상산이었습니다.
저의 경우 산림청 명산 100산을 의도적으로 한 건 아니지만 20여년 산행을 하다 보니 그런대로 거의 오르고 이제 성인봉과 깃대봉만 남겨 놓았는데 의도적으로 갈 필요는 없고 기회가 되면 천천히 간다는 생각입니다.
명산을 하는 사람들 입장에서 보면 계속 이어서 하지 않는다고 대수롭지 않게 여길 수 있겠지만 저는 제 나름 산행원칙이 있으므로 개의치 않습니다.
적상산은 오래잔 동네 지인들끼리 만든 산악회에서 2번을 오르기는 했지만 정상적으로 오르지 않고 차량을 이용해 상부저수지까지 간 후 상부저수지에서 기봉을 포함 3개봉만 다녀왔으니 산행을 했다고 할 수 없는 입장이었습니다.
이런 적상산을 친구와 함께 산행하게 되었으니 기분 좋은 일입니다.
다만 6일만에 설악산과 고대산 그리고 적상산을 산행한다는 부담이 있는데 예전 같으면 3일 연거푸 산행해도 문제가 없겠지만 이제 나이가 들다보니 연속 산행이 무척 힘들고 부담이 되는 편입니다.
그러나 늘 설악 오지산행을 하다가 안내산악회가 주선하는 명산을 가게 되니 들머리까지 가는 수고와 날머리에서 막차를 타려고 뜀박질하는 짓을 하지 않으니 마음은 편할 것 같습니다.
이른 새벽 준비를 마치고 사당으로 나가 좋은사람들 안내산악회와 접속하고 이어서 10여분 지나 말죽거리에서 지한이와 조우하고.....
적상산 가을 단풍을 보기 위해 42석을 모두 채운 회원들을 태운 버스는 고속도로로 들어서서 휴게소에 한 번을 쉬고는 예상보다 30여분 이른 시간인 09시50분에 적상산 들머리가 되는 서창마을에 도착합니다.
○서창마을들머리에서 향로봉 구간
서창마을 좁을 길을 따라 버스가 올라 가다가 더 이상 오를 수 없는 곳까지 가면 그곳이 적상산 서창마을 들머리가 되는 곳이다.
버스에서 내린 회원들은 늘 하던 대로 기계처럼 각각 산행채비를 마치고 삼삼오오 팀을 이루고 들머리로 들어선다.
지한이와는 6년전 통영 미륵산을 함께 오르고 이번이 2번째이다.
들머리로 들어서면 등로는 계단으로 정리가 아주 잘되었으며 등로의 넓이도 아주 넓어 고속도로나 다름이 없다.
들머리에서 0.5km정도 오르면 숲은 잡목에서 소나무 숲으로 바뀌고, 조용했던 숲은 앞서간 회원들과 뒤따라 오르는 회원들의 외침으로 시끄러웠다.
등로 상태가 너무나 좋다.
거의 힘들이지 않고 오르게 되는데 서창마을에서 기봉과 향로봉 중간 능선까지 직선으로 따지면 얼마 되지 않는데 길은 지그재그가 계속 이어지기 때문에 거리는 있으나 그만큼 등로는 완만하고 힘들지 않다.
소나무 숲에서 활엽수림인 참나무 숲으로 바뀌며 주변은 금빛과 은빛으로 바뀌고, 앞서가던 지한이는 힘들다고 엄살을 떨면서 성큼성큼 잘도 간다.
들머리에서 50분을 지나 등로 주변에 긴의자가 설치되어 있는 곳에서 간식을 하며 잠시 쉬어 간다.
단풍이 짙게 물든 적상산 중턱
소슬한 바람이 불어주며 흐르는 땀을 식혀주고, 앞서간 사람이나 뒤를 이어 올라서는 사람들의 얼굴이 희색이 떠나지 않은 모습을 보며 안내산악회에 대한 순수한 진면목을 새삼 느낀다.
안내산악회와 함께하는 산행도 참으로 오랜만이다.
처음 보는 낯선 얼굴들이지만 오래전부터 알고 지내던 산객인양 모두가 친절하다.
그리 오래 휴식을 필요로 하지 않았는데 과일을 먹으며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누다 보니 금방 10분이 지나고, 다시 등로로 들어서면 잠시 후 낙석방지 철망이 있는 사면을 지나 방향을 바꾸며 계단이 나타나는데 이 계단을 올라서면 적상산의 명물 중 하나인 장도바위다.
장도바위.
최영장군이 민란을 평정하고 개선하던 중 이곳에 이르러 붉은 단풍과 깎아지른 암벽이 띠를 두른 듯한 아름다움에 이끌려 산정을 오르던 중 산정을 얼마 남기지 않고 큰 바위가 가로막아 오를 수 없게 되자 최영장군이 허리에 차고 있던 장도를 뽑아 바위를 내리치자 바위가 쪼개지면서 길이 열렸다는 전설이 전해지는 곳으로 이런 전설에 따라 장도바위라고 불린다고 안내판에 상세히 적고 있다.
산을 다니다 보면 곳곳에 많은 지형지물을 만나게 되는데 이러한 전설을 지니고 있는 바위도 많이 만나고는 하는데 현실성은 전혀 없지만 이러한 지형지물이 산행을 하는데 양념 역할을 하므로 이 산을 오래도록 기억할 수 있게 만든다.
지한이와 사진을 찍고 장도바위를 뒤로한다.
등로는 지그재그로 이어지며 절벽지대를 오르는데 위에서 내려다보면 삼각형 형태로 깎아 내린 절벽에 중간에 촉스톤바위가 있는데 암벽이 무너지지 않게 촉스톤바위가 중심을 유지시키는 듯하다.
장도바위가 있는 절벽지대와 촉스톤바위가 있는 절벽지대는 적성산 특유의 절벽 띠를 두르고 있는 풍경인데 이러한 풍경으로 제대로 볼 수 있는 계절은 겨울이나 이른 봄철에는 나뭇잎이 없어 자세히 볼 수 있는데 녹음이 지거나 단풍이 물든 계절에는 절벽 띠를 두른 곳을 지나면서도 이를 제대로 느끼지 못하고 지난다.
절벽지대를 지나며 다시 한 번 지그재그로 오름을 하면 축성이 나타나는데 장도바위에서 불과 3분여 거리로 적상산성 서문터라고 안내판에 기록되어 있는데 문루는 복원이 되지 않은 상태다.
사적146호인 적산산성은 확실한 축성시기는 알 수 없으나 고려중기 또는 고려말기로 추정하고 있으며 적상산 상부의 평원과 중간에 절벽으로 띠를 이루는 지형을 최대한 활용한 대표적인 산성으로 예로부터 군사적 요충지임을 알 수 있다.
산성터에 진입하면 적상산 힘든 산행은 이미 끝난 것이며 이곳부터는 밋밋한 등로로 향로봉, 기봉, 안렴대 등 3개봉으로 이어지는 정상 능선까지는 얼마 걸리지 않는다.
서문터에서 잠시 사진을 찍으며 시간을 보내는 사이 뒤에서 한 무리 회원들이 올라서고, 함께 어울려 밋밋한 등로를 이어가기를 10분, 주능선에 오른다.
정상부가 분지형태를 이룬 적상산은 서창마을에서 주능선으로 오르면 정상인 기봉과 향로봉 중간 지점으로 닫게 된다.
주능선 넘어 동쪽으로는 원래 넓은 분지로 분지안에는 적상산 사고지와 사고지를 관리하는 호국사라는 사찰이 있었는데 양수발전소를 만들며 상부저수지가 생기며 수몰될 우려가 있어 사고지는 조금 위쪽인 현 위치로 옮긴 것이며 호국사는 기봉 남동쪽으로 이전하며 안국사로 이름을 바꾸었다.
산행 진행은 능선3거리에서 북쪽에 있는 향로봉으로 갔다가 다시 이곳으로 되돌아와 기봉과 안렴대로 이어가야한다.
능선3거리에서 향로봉으로 가는 길은 정말로 아주 좋아 과장되게 말하면 눈을 감고도 갈 수 있을 정도였으며 향로봉으로 가는 회원들과 향로봉을 찍고 되돌아 나오는 회원들은 모두들 밝은 표정이다.
능선3거리에서 향로봉은 그리 멀지 않은 0.7km로 10분이 걸려 도착하니 이미 먼저 오른 산객들이 블랙야크 명산100산 인증이 한창이었으며 인증사진을 찍기 의해 차례를 기다린다.
▷서창마을들머리에서 향로봉까지 산행거리3.4km, 산행시간1시간33분, 해발1022m, 현재시간11시29분이다.
○향로봉에서 안렴대 구간
향로봉!
우리나라 산봉 중 제일 많은 이름이 국사봉이라고 하는데 국사봉 만큼은 아니지만 전국적으로 보면 향로봉이라는 이름을 가진 봉우리도 많은 편으로 서울 근교에만 해도 북한산과 수락산에도 향로봉이 있다.
향로봉의 유래는 찾아보지도 않았지만 산의 형상이 향로를 닮은 데서 비롯되었을 것인데 순수한 우리말로 지은 향로봉이 좋다.
명산을 가면 산정 80%정도가 불교와 관련된 이름을 붙이고 있는데 난 그런 게 싫다.
오래전에는 선대들이 우리말 이름을 지어 불렀을 텐데 이름께나 알려진 승려들이 명산마다 들어가 무허가로 암자를 지으며 도솔, 원효, 달마, ..... 등등의 불교와 관련된 이름을 붙이며 오늘에 이르는데 그런 게 싫다.
명산을 오르게 되면 블랙야크 인증을 받는 사람들을 흔하게 볼 수 있는데 향로봉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블랙야크 띠를 편 채 인증사진을 찍었는데 친구 지한이도 블랙야크 띠를 가지고 인증을 한다.
적성산의 최고봉은 향로봉이 아닌 기봉이다.
그런데 기봉은 통신시설이 설치되어 있으므로 출입을 제한하고 있어 이곳을 주봉으로 삼고 있는데 그런측면에서 블랙야크에서도 기봉이 아닌 향로봉에서의 인증을 인정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제는 국립공원측이나 무주군에서 적극적으로 기봉의 제한을 풀 수 있도록 노력해야한다.
세상이 많이 바뀌었는데 오래전 정해진 규칙과 논리로 언제까지 산객들의 권리인 최고봉을 막을 것인가? 멀지 않은 곳에 있는 모악산도 통신시설이 있는 정상을 개방했는데 적상산만 이제까지 정상을 개방하지 않고 제한하고 있으니 지자체가 나설 차례가 된 것이다.
향로봉에서는 조망은 시원치 않은데 남쪽으로 덕유산만 알 수 있으며 서남방향으로는 구봉산, 서쪽으로는 운장산, 서북방향으로는 성치산 등이 있는데 불분명해서 산명을 알 수가 없다.
향로봉에서는 오래 머물지 않고 내려선다.
조금 전 지났던 등로를 따라 능선3거리를 지나고 낙엽이 쌓인 길을 따라 이동하면 기봉 아래 사면을 지나 기봉 갈림길3거리에 닫는데 이곳3거리는 향로봉 안국사 그리고 안렴대로 갈리는 3거리로 편의상 기봉3거리로 표기한다.
기봉3거리에서 적상산 정상인 기봉은 아주 가까워 2분 정도만 오르면 되는데 정상은 홍수예보시설 및 각종 통신시설이 있으므로 출입을 금지한다는 안내판이 세워져 있는데 그래서인지 회원들은 기봉에 오를 생각조차 하지 않고 안렴대로 향한다.
기봉3거리에서 남쪽 방향으로 5분을 지나면 안렴대가 있다.
신갈나무 노거수가 절벽에 뿌리를 박고 살아가는 곳으로 이곳에서면 서창마을과 향로봉그리고 이름 모를 산들이 겹을 이루고 있는 서쪽이나 서남방향으로 조망이 트인다.
신갈나무 노거수에 올라서 사진을 찍으며 10여 년 전 동네산악회원들과 올랐던 그때를 회상하며 한켠에서 점심을 해결하기로 했다.
간단히 식사를 하는데 아래쪽에서 올라오는 사람들이 아래로 내려가면 안렴대가 있다고 하는 말을 하자, 뭔가 한 대 얻어맞은 기분이다.
이곳이 안렴대인 줄 알았는데..............
식사를 대충하고 아래로 내려서니 안내판이 있는 안렴대가 있다, 그러고 보니 이제까지 안렴대의 정확한 위치를 모르고 신갈나무노거수가 있는 곳을 안념대로만 생각했었다.
하긴 안렴대는 어느 특정한 곳이라기보다는 층암절벽을 이루고 있는 이곳일대를 포괄적으로 부르는 것일 것이다.
▷서창마을들머리에서 안렴대 상봉까지 산행거리5.1km, 산행시간2시간05분, 해발1036m, 현재시간12시00분이다.
○안렴대~기봉~안국사~적상산사고지~치목마을 들머리
안렴대(按簾臺)!
안내판에 의하면 안렴대는 고려 시대 거란이 침입했을 때 삼도(三道) 안렴사(按簾使)가 군사들을 이끌고 이곳으로 들어와 진을 치고 난을 피한 곳이라 하여 안렴대라 부르게 되었다고 하며 병자호란 때는 적상산 사고 실록을 안렴대 바위 밑에 있는 석실(石室)로 옮겨 난을 피했다고 한다.
안렴대에서는 사방이 탁 트여 조망이 뛰어난데 특히 서창마을 일대와 적상산능선을 붉게 물들인 풍경과 남쪽으로 덕유산 향적봉에서 무룡산을 지나고, 삿갓봉을 지나고, 남덕유산을 지나 장수 서봉까지 덕유산의 긴 능선을 볼 수 있다.
지한이와 사진을 찍으며 제법 많은 시간을 보낸다.
안렴대를 뒤로하고 조금 전 지나왔던 길을 따라 기봉3거리에 도착한다.
문제는 기봉이다.
10여 년 전에도 기봉을 올랐었는데 오늘은 기봉을 올라야 하는지?, 아니면 다른 사람들을 의식해 오르지 말아야 하는지? 망설이다가 기봉을 오르기로 한다.
친구 지한이는 갈 필요를 느끼지 않는다며 안국사로 내려서고, 혼자서 기봉으로 오른다.
기봉
적상산 최고봉이면서도 사람들 기억속에는 무명봉으로 기억되는 주봉이다.
그래서인지 기봉에 대한 기사는 인터넷에 찾아도 나오지 않는데 무주군청에 의뢰해 볼까? 생각도 해보았지만 지자체에서는 산에대한 정보가 거의 없고 있다고 해도 공부를 하지 않아 알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으로 지자체에 의뢰해서 시원한 답변을 받은 곳은 정선군청이외 어느 곳도 없었다.
한문으로 표기하지 않아 알 수는 없지만 아마도 기봉은 깃대봉과 같은 의미로 산정에 깃발이 날리던 곳에서 유래되어 기봉이라 부르게 되었을 가능성을 생각해 본다.
적상산 최고봉인 기봉은 3개 정도의 시설물이 있는데 어떠한 시설물인지 모르겠지만 기봉3거리에 있는 안내판에 의하면 홍수예보시설과 각종 통신 시설이 있다고 기록하고 있다.
최고 높은 지점에는 통신시설로 보이는 시설물이 있고 높은 탑까지 갖추고 있다.
가운데 있는 시설물은 문이 열려있는데 사람이 있는지 여부는 알 수 없고, 기봉 정상에 정상표지석은 없으며 삼각점도 볼 수 없었으며 도근점 같은 측량시설물이 있고 시설물을 둘러친 철망 옆 졸참나무에 1.5m 정도 되는 널판지를 나무에 부착했는데 널판지에는 적상산이라 음각을 했는데 가까이에서도 자세히 보아야 글씨를 읽을 수 있으며 기봉을 찾은 산객이 달아 놓은 표지기가 4개가 달려 있는 게 전부다.
기봉에서는 사방이 잡목이 우거져 조망이라고는 전혀 없으며 적상호나 안국사 그리고 적상산사고지 어느 곳도 보이지 않는다.
오래 머물 필요를 느끼지 못하고 조금전 올랐던 기봉3거리로 내려서서 안국사로 향한다.
안국사는 기봉3거리에서 2~3분 거리다.
안국사로 들어서면 단풍이 물든 풍경이 펼쳐지는데 이러한 단풍 풍경은 올해 보는 최고의 풍경이라고 할 수 있다.
마치 불이 붙어 훨훨 타오르는 듯 했는데 단풍나무 속으로 들어서면 마음이 동요되어 다른 세상에 와있는 느낌이었다.
붉게 물들인 단풍나무와 노랑 물감을 부은 듯한 색깔로 사람들을 사로잡는데 한 가지 아쉬운 건 자연산 단풍이 아닌 인공을 가미하여 이식한 것이었는데 그래도 신이 난 지한이와 사진 몇 컷을 한다.
전에도 그랬지만 사찰 구경에는 별 취미가 없고, 오래전 마당에 우물이 있었는데....
대웅전 앞으로는 오르지 않고 일주문을 나섰는데 안국사는 고려 때 창건했다고 하며 광해군 때 조선왕조실록을 봉안할 적상산 사고를 지으며 절도 확장하고 사고를 지키는 호국사로 불리다가 영조 때 나라를 평안하게 해주는 사찰이라 하여 지금의 안국사라 부르기 시작했다고 한다.
안국사를 나서서 포장도로를 따라 10분정도 내려서면 적상산사고지가 있다.
사고지는 조선시대 조선왕조실록을 보관하던 곳으로 사고의 역사는 이러하다.
조선왕조실록은 모두 4부를 만들어 춘추관, 충주, 전주, 성주의 4사고에 각기 1부씩 봉안하였는데, 임진왜란으로 전주사고에 보관했던 실록을 빼고는 모두 불타 없어졌다.
이후 5부를 만들어 1부는 서울 춘추관에 그대로 두고 다른 4부는 강화도 마니산, 경상도 봉화의 태백산, 평안도 영변의 묘향산, 강원도 평창의 오대산에 사고를 새로 설치하고 각각 1부씩 나누어 보관했다.
춘추관의 실록은 1624년 이괄의 난으로 불타버렸고, 묘향산 실록은 청나라 침입을 대비하여 전라도 무주의 적상산에 새로 사고를 지어 옮겼다.
마니산사고의 실록은 병자호란으로 크게 파손되고 불까지 나자 보수하여 강화도 전등사가 있는 정족산에 새로 사고를 지어 옮겼다.
그 뒤 철종까지의 실록이 정족산, 태백산, 적상산, 오대산의 4사고에 각각 1부씩 보관되어 조선이 멸망할 때까지 온전히 전해져 내려왔는데 1910년 일본이 국권을 강탈한 뒤로는 정족산과 태백산 사고의 실록은 규장각 도서와 함께 조선총독부로 옮겨졌다가 정족산사고본은 경성제국대(서울대) 도서관에 보관되었으며 태백산사고본 848책은 부산기록정보센터에 보관되어 있다.
적상산사고의 실록은 구,황궁(舊皇宮) 장서각에 이관되었다가 6·25사변 당시 북한측에서 가져가 현재 김일성종합대학 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다.
오대산사고의 실록은 일본의 동경제국대학으로 반출되었다가 1923년 일본 관동대지진 때 대부분 없어지고, 화를 면한 74책은 우여곡절 끝에 현재는 국립고궁박물관에서 보관하고 있는데 전해지는 조선왕조실록은 총 2,077책으로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되어 있다.
이곳까지 왔으므로 지한이와 둘이서 적상산 사고지를 가보기로 하고 안내소로 가니 문화해설사가 있어 문화해설사의 안내를 받으며 사각으로 올라갔다.
사고지를 이번이 3번째 찾은 것인데 2번은 모두 문은 열렸지만 사각으로 오를 수 없었고 문화해설사도 없었는데 오늘은 운수가 좋은 날인지 김한순 문화해설사가 있다.
시간이 없어 해설을 오래 들을 수는 없었는데 사각 2층으로 오르면 유리상자안에 펼쳐진 실록과 비취한 신록이 있는데 펼쳐진 신록은 무주나 적상산사고지 등이 나오는 실록으로 해당 페이지를 펼친 상태라는 김한순 문화해설사의 설명과 이곳에 보관 중이던 사고는 6.25때 북한이 가져갔는데 현재 김일성종합대학에 보관중이라는 설명이었다.
문화해설사는 흥이 오르는데 우리는 하산 집결시간이 정해져 있으므로 양해를 구하고 대충 해설을 듣고 사각을 내려선다.
사고지를 나와 상부저수지와 어우러져 붉게 물든 단풍을 보고 하산 채비를 한다.
▷서창마을들머리에서 치목마을들머리까지 산행거리7.1km, 산행시간3시간25분, 해발883m, 현재시간13시19분이다.
○치목마을 들머리에서 치목마을 마을회관 구간
산악회에서 정한 하산은 치목마을이다.
예전에 적성산을 왔을 때 치목마을로 내려서는 들머리에 있는 이정표는 보았지만 직접 하산해보지 않아 궁금했던 길이다.
이정목 옆에는 덕유산국립공원 안내도가 있고 좌측으로 국립공원에서 설치한 차단기가 있으며 차단기를 지나 내려서면 확연하게 길이 있어 따라 내려선다.
골짜기 시작을 나타내는 작은 골에 있는 목교를 건너 지나면 등로는 안국사 건너편 산릉 사면을 따라 내려서게 되는데 등로의 상태는 서창마을에서 올라온 길을 고속도로라고 표현한다면 치목마을로 하산하는 길은 국도도 아닌 지방도로라고 표현할 수 있다.
때로는 2사람이 교행하기가 불편한 등로가 한동안 이어지기도 하는데 어찌 보면 자연미가 물씬 풍긴다고 할 수도 있다.
가파른 사면 길은 안전을 위한 쇠파이프 난간을 설치한 곳도 보이며 아주 가팔케 내려서는 구간도 이어지기도 한다.
치목마을 들머리에서 5분 정도 내려서면 사면길에서 안국사나 안렴대 방향을 보면 가을 단풍이 보기가 좋은데 그 가운데 하늘로 치솟은 암봉이 보이는데 숲 사이로 보이므로 카메라에 담을 수가 없고 5분을 더 내려서자 어느 순간 나뭇가지 틈새로 암봉이 나타난다.
잠시 후 한 무리 산객이 몰려 내려오는데 이 팀은 적상산 사고지로 갈 때 주변 길가 단풍이 물든 곳에서 단체로 식사를 하던 팀인데 우리 팀과 섞여 하산을 하게 되었다.
상수리나무가 우거진 등로는 무척이나 가팔라 짧게 지그재그로 한동안을 이어 내려가는데 앞서가던 산객이 미끄러지면 땅에 손을 딛으며 부상을 당했는데 우리 팀은 아니었다.
산행을 하며 어느 팀을 떠나 부상을 당하면 안 되므로 다가가 도와줄 방법을 물으니 괜찮다며 극구 사양한다.
친구 지한이가 앞서 내려갔으므로 부지런히 급한 등로를 내려서는데 가파른 길이 어느 정도 끝나면 넓은 공터같이 보이는 묵묘 터가 나오고 이어서 철망을 둘러친 묘가 나오는데 잔디는 모두 죽고 맨땅이다.
이를 보고 친구 지한이는 “자식이 돌보지 않는 곳에 뭐하러 묘를 썼는지 모르겠다.“고 하는데 산행을 하면서 고산 사람들의 발길이 미치지 못하는 곳에서도 묵묘를 흔하게 볼 수 있는데 이러한 건 명당을 찾았던 선대들의 공통된 사고였다.
자식이 잘 되기를 바라며 명당 터를 잡지만 자식이 돌보지 않고 방치하는데 자식이 잘되면 뭣 한다는 것이며 그러한 자식들을 위해 명당 터를 잡을 필요는 있는가?
요즘은 명당 터에 대한 인식이 바뀌었으니 차량이 닿을 수 있는 곳이어야 자식들이 쉽게 찾아볼 수 있다는 점에서 차량으로 산소까지 갈 수 있는 곳이 명당이라고 한다.
하산하며 2번 째 목교를 지나는데 치목마을 들머리를 들어서서 20분이 지나서다.
목교 아래는 석굴이 있으며 이어서 데크계단이 나타나는데 길기도하고 경사도 심한데 계단으로 들어서면 계곡 물소리가 주변을 울리는데 이곳이 송대다.
송대나 송대폭포에 대해서는 인터넷을 두드리다가 해윰님 블로그를 들어가게 되었는데 우리가 등로 주변에서 볼 수 없는 송대폭포를 볼 수 있었는데 송대 주변에 있기는 한 것 같은데 치목마을에서 가는 길이 완전히 다르다.
우리가 볼 수 있는 건 폭포가 아닌 송대인데 계곡 옆에는 대형 입간판에는 푸른 이끼가 낀 풍경을 담은 사진과 안내문에는 「적상산 남쪽계곡과 급경사를 타고 흐르는 물줄기가 높은 암벽을 뛰어넘고 울창한 송림 사이의 층층바위 암반위로 쏟아지며 장관을 이룬다.」고 기록하고 있는데 어차피 설치한 간판인데 적상산의 명물 중 하나인 송대폭포에 대해서도 기록이 있었다면 더 좋았을 것을, 송대폭포는 이곳에서 00떨어진 곳에 있으며 가는 길은 00에서 등을 기록하고 사진도 표기했다면......
필자도 그렇지만 많은 사람들은 이곳이 송대를 겸한 송대폭포로 여ㅣ길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안내문에는 ‘울창한 송림 사이로....’ 라고 표현한 것을 보면 예전에는 소나무가 울창하던 곳인데 세월이 흐르며 활엽수로 바뀌었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데 이런 생각은 송대 주변으로는 소나무가 없고 참나무 종류의 활엽수와 메타세퀴아나무 몇 그루가 있을 뿐이다.
지금은 갈수기로 층층바위로 흐르는 물은 볼품은 없는데 큰 바가 내리고 난 후에는 층층바위에서 떨어지는 작은 와폭도 주변 뛰어난 풍광과 어우러져 장관을 이룰 것 같다.
송대에서 시간을 보내고 다시 하산을 한다.
경사진 모퉁이를 돌며 건너편 산중턱이 나타나는데 중간에 바위절벽을 이룬 띠를 두르고 있는데 아주 미미하다.
적상산의 산명에서 나타나듯이 치마를 두른 듯한 절벽 띠가 적상산만의 매력인데 그것도 가을 단풍이 물들 때면 금상첨화일 것이다.
그러나 중간 절벽 띠는 숲이 가려 제대로 감상할 수가 없는데 겨울에 적상산을 오르면 나뭇잎이 가렸던 절벽 띠를 제대로 볼 수 있다.
산행을 시작한 서창마을에서 안렴대 방향과 향로봉 방향으로나 와인동굴에서 향로봉을 보면 긴 띠를 볼 수 있는데 때로는 2겹으로 띠를 두른 곳도 눈에 띤다.
이어서 덕유09-03 이정목을 지나 하산하는 사면 길은 고즈넉하고 여유가 있어 아주 좋다.
잠시 후 능선을 넘어 가게 되는데 하산이 이른 감도 있고, 능선에서 간식을 겸해서 잠시 쉬어가기로 하고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니 이 또한 좋다.
능선에서 쉬며 위에서 내려가는 산객들의 모습을 보면 모두 즐거운 표정인데 우선은 무사한 산행이 이어지고 있고, 산행거리가 길지 않아 힘도 크게 들지 않았고, 이제 하산 길도 막바지로 조금만 내려서면 산행을 마칠 수 있기 때문인 것 같다.
우리도 산객들 무리에 끼어 하산을 한다.
계속 이어지는 내리막길을 내려서다 보니 차단기가 나오고 국립공원입산시간제한 안내판이 나오니 이곳이 적상산 치목마을코스 날머리가 되는 곳이다.
포장도로가 나온다.
포장도로를 따라 길 양옆으로 촌가를 지나며 오래전 나고 자랐던 고향이 생각나고, 이어서 3분정도 마을로 들어서자 치목마을회관이 나온다.
마을회관에 수돗물이 있어 산에서 내려온 산객들이 이곳에서 세면과 세발을 하는데 주인장에게 허락은 받은 건지............ 물 값이 제대로 나올텐데......... 그렇다고 씻지 않을 수 없고, 눈 딱 감고 씻고 옷을 갈아입으니 아~~~ 너무 좋다.
▷서창마을들머리에서 치목마을날머리까지 산행거리10.0km, 산행시간4시간28분, 해발329m, 현재시간14시23분이다.
○ 이 후
안내산악회는 이래서 좋다.
하산하면 시간적 여유도 있고 막차 버스시간을 보며 놓치지 않으려 난리를 치르지 않아도 되고, 집합 장소로 잠시만 이동하면 안락하게 서울까지 데려다 줄 버스가 대기하고 있는 이런 점이 좋다.
고속도로 안성부근에서 조금 밀리기는 했지만 일찍 서울에 도착했다.
사당에서 하차해 작은 음식점으로 이동했다.
친구 지한이와 연락은 서로 했지만 얼굴을 본지는 1년반은 되었으니 친구와 지난 이야기도 하고 명산100산 답사기념 축하도 해주고...........
지한이와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술 한 잔 마시고 나서도 8시가 안되었다.
혼자서 설악을 드나들며 막차 신세를 지던 것에 비하면 오늘은 황제 산행을 한 것 같다.
지한이와 다른 친구 동룡이와 셋이서 설악산을 억지로라도 데리고 가야하는데.......
힘들어 싫다고 하지만 설악 비경을 보면 빠져나오지 못한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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