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동, 월류봉둘레길 트레킹이야기
(대구참사랑과 서울독립군 제39차 중 32차 트레킹)
트레킹일: 2026년04월26일
누구와: 대구 참사랑산악회 회원과 성봉현, 시인마뇽
트레킹거리: 약10.24km
트레킹시간: 5시간18분(11:15~16:33)
트레킹코스:월류봉주차장(11:15)-원촌교(11:28)-둘레길이정목(11:42,월류봉광장1.2km↔반야사7.2km)-휴식타임(11:50)-완정교(12:17)-둘레길쉼터(12:40~13:20,점심)-백화교(13:42)-징검다리1(14:15)-징검다리2(14:17)-반야교(14:28)-숲속식당(14:30~15:30)-반야사일주문(15:45)-반야사(15:50)-대웅전(15:53)-문수전(16:07~12)-반야사(16:19~22)-반야교날머리(16:33)

갈 때: 서울역(08:08)-대전역(09:18~10:04)-영동역(10:38)-대구팀 버스로 월류봉으로
올 때: 반야교→황간역(18:10)-대전역(18:52)~새마을로 환승(19:19)-서울역(21:00)
주요지점 통과 및 이동거리
11:15 월류봉 광장에서 산행시작
11:26~31 원촌교
11:34 데크로드 시작점
11:42 둘레길이정목(월류봉광장1.2km↔반야사7.2km), 트레킹거리1.28km, 트레킹소요시간27분
11:50~57 간식타임

12:08 데크길 웃어요 당신
12:17~20 완정교(월류봉광장2.6km↔백화교2.4km), 트레킹거리2.80km, 소요시간1시간02분
12:40~13:20 테크길 쉼터, 점심식사
13:26 현수교, 트레킹거리4.38km, 트레킹소요시간2시간10분
13:42 백화교, 트레킹거리5.31km, 트레킹시간2시간27분
13:55 월류봉 둘레길 3코스시작점, 트레킹거리6.19km, 트레킹시간2시간40분
14:03~13 후미 기다림---휴식 대기
14:15 징검다리1, 트레킹 거리6.85km, 트레킹 소요시간3시간00분
14:17 징검다리2

14:28 반야교, 트레킹 거리7.61km, 트레킹 소요시간3시간13분, 해발191m
14:30~15:30 숲속식당(휴식 및 간식)
15:42 반야사 입구 차단기
15:46 반야사 일주문, 트레킹 거리8.50km, 트레킹 소요시간4시간30분, 해발202m
15:50~16:00 반야사, 트레킹 거리8.78km, 트레킹 소요시간4시간35분, 해발207m
16:07~12 반야사 문수전, 트레킹 거리9.17km, 트레킹 소요시간4시간52분, 해발262m
16:19~22 반야사
16:33 반야교 날머리, 트레킹 거리10.24km, 트레킹 소요시간5시간18분
◎보고 싶은 얼굴, 보고 싶은 사람을 만나고.....
늘 낭만에 취해서 사는 최백호는 30여년전에 호소력있는 낮은 저음으로 보고 싶은 얼굴을 그리며 이렇게 노래했습니다.
♩눈을 감고 ♩♬걸어도 ♬눈을 ♪뜨고 걸어도
♩보이는 것은 ♬초라한 모습 ♬보고 싶은 얼굴.......
그런가 하면 가녀린 목소리로 고음을 소화하는 민해경은 30여년전에 잠 못 이루며 보고 싶은 사람을 그리워하는 절규를 노래로 표현했습니다.


♩메마른 가슴 ♩♪끌어안고 ♬정들은 ♬사람 그리면서
♬혼자서 지새우는 밤엔 ♪보고 싶은 사람♩♬
♩보고 싶은 얼굴, ♬그리고 보고 ♪싶은 사람..........
누구에게나 마음속으로 그리는 사람이 있을 것이지만 유독 4월이 되면 봄바람과 꽃바람을 타고 스며드는 보고 싶은 얼굴, 그리고 보고 싶은 사람이 있습니다.
1년365일 통 털어 나날이 소중하고 귀한 날이지만 4월의 마지막 주일은 우리들, 그러니까 서울독립군과 대구참사랑이 보고 싶은 얼굴, 그리고 보고 싶은 사람을 보고 만나는 날입니다.
최백호나 민해경이 노래하는 남녀간의 이성은 아니지만 인간적인 끈끈한 정으로 엮여있는 그리움과 설렘일 것입니다.
그리움과 설렘이 너무 강했던 탓인지 지난 가을 수원 화성의 만남은 종아리인대 문제로 참여하지 못했으므로 이번에는 몸조심 많이 했는데 이번마저도 참여하지 못하면 상습범으로 지목되어 비난을 받을 것은 당연하고 나이 들어 퇴출될까 걱정이 앞섰기 때문입니다.
보고 싶은 얼굴, 그리고 보고 싶은 사람들의 만남은 대구도 아니고, 서울도 아니고 영동군 황간면 소재인 석천계곡의 둴류봉 둘레길 1구간~3구간입니다.
서울역에서 대전으로, 대전에서 10분 환승시간을 두고 황간으로 기차를 타고 가기로 하고 기차에 몸을 싣고 보고 싶은 얼굴들을 그리다가 잠이 들고...... 어렴풋하게 차내 방송이 들리는데 대전이라고 생각하고 기차에서 내렸는데 아29~~~~ 대전이 아니고 오송이랍니다.
기차는 떠나버리고, 이게 말이 되냐구요ㅠㅠㅠ
오송에서 담에 오는 기차로 대전으로 이동해보지만 미리 예매했던 황간행 기차는 이미 떠났구요ㅠㅠㅠㅠ 최고로 빨리 갈 수 있는 기차편은 27분 뒤에 영동행입니다.
노환인가? 아니면 치매인가?
이제 상습범 취급을 받게 될 것이 뻔합니다.
그래도 늦게라도 가서 얼굴을 봐야지 생각했는데 임대장 전화가 왔고 어쩌구 저쩌구.......
엉킨 실타래를 푼다고 이런 저런 얘기가 오가고..........


결론은 버킹검입니다.
오늘의 버킹검은 제일모직 신사복도 아니고, 영국 왕실 궁전도 아니고, 바로 대구팀 버스가 영동역으로 왔다가 가는 것으로 정하며 일단락 했는데 죄송하지요, 저의 작은 부주위로 팀 전체가 시간을 낭비와 트레킹이 지연되었으말입니다.
암튼 구구절절한 사연을 겪으며 1년만에 보고 싶은 얼굴, 보고 싶은 사람들을 영동역에서 버스를 타며 반가운 얼굴들을 봅니다.
그런데 보고 싶었던 사람들이 많이 안보입니다.
오늘은 여학생이 2명으로 상훈아우없이 상훈네만 보이고, 수근 아우는 보이는데 수근네가 안 보이고, 가끔은 얼굴을 보여주던 경기도 후배인 경환네도 모습이 보이지 않고, 대구팀의 감초와 마스코스였던 대박이네 내외도 모습이 보이지 않고, 몇 년을 함께 했던 김원장 내외도 발길을 완전히 끊었는지 보이지 않습니다.
보이지 않는 얼굴들을 그리다 보니 어느 새 버스는 황간으로 들어서서 원촌교를 건넙니다.
원천교를 건너자 좌측 월류광장으로 가는 길 한쪽으로는 승용차가 도로를 완전히 메웠고 좁을 길에 차량이 서로 만나면 애를 먹으며 교행을 하며 지나는데 시골 마을에 왠 사람들이 이렇게 많이 모였나 궁금했습니다.
어렵게 월튜봉 주차장으로 들어섰는데 전국 산악회의 절반은 이곳에 모인 것 같았는데 월류봉 광장에서 하차하며 이 많은 사람들이 월류본 등산 또는 월류봉 둘레길 트레킹을 하려고 모인 사람들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월류봉 둘레길 제1구간, 월류봉 광장에서 완정교까지
월류봉 광장은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는데 이런 상황을 이를 아수라장이라고 표현하나 봅니다.
무슨 큰일이 났나 했는데 큰일은 없고 여기 모인 많은 사람들이 월류봉 능선이나 월류봉 둘레길을 걷기 위해 온 사람들로 눈 앞 석천 건너편에는 달이 머물다 간다는 월류봉이 하늘 높게 솟아있고 월류봉 암벽 아래는 작은 정자 눈에 들어옵니다.
월류봉 입석을 배경으로 단체로 사진을 찍고 걷기를 시작합니다.
오늘 월류봉 둘레길은 1구간-월류봉 광장~완정교, 2구간-완정교~월류봉 둘레길 입간판 포토존, 3구간-월류봉 둘레길 입간판 포토존~반야사이며 보너스로 반야사 문수암을 왕복하고, 반야교까지로 약10km입니다.


이곳은 월류봉광장 으로 둘레길 제1구간이 시작되는 시점이며 산행을 즐기는 팀들은 징검다리를 건너 뒤로보이는 월류봉 능선 산행을 시작하는 시점이기도 합니다.
사람들이 많아 사진을 찍는 것도 쉽지 않고, 월류봉 입석 근처까지 승용차를 세워 최대한 차량을 피해 찍었습니다.
대부분 둘레길은 위에서 아래로 진행하는데 이곳 월류봉 둘레길은 아래 월류봉이 보이는 광장에서 시작해 물길을 따라 반야사까지 이어가게 됩니다.
몇 년전 백화산을 찾았을때 반야사에서 옥동까지의 석천계곡을 답사하지 못해 못내 아쉬웠는데 이번에는 반야사에서 옥동까지 모두 계곡길을 걷나 싶었는데 월류봉 둘레길은 반야사까지로 반야사에서 옥동까지의 계곡은 다음 기회로 미루어야 했습니다.

월류봉광장에서 트레킹이 시작됩니다.
선두에는 경환 아우가 나섰는데 출발 총성이 울리자마자 선투팀을 이끌고 내달렸으니 지금쯤 원천교는 갔을 겁니다.
아무리 빨리가도 소용이 없습니다.
어느 곳인지 몰라도 후미를 기다려 함께 같이 가야하기 때문입니다.
후미에서 성봉현 아우와 이야기를 나누며 둘레길을 시작합니다.
성봉현은 오랜 산친구로 2005년인가 한북정맥을 답사하던 시절 한북정맥 1구간을 답사하기 위해 같은 버스를 타고 사창리에서 내리면서 인연이 되어 이제까지 이어오고 있는데 대구팀과의 인연도 성봉현 아우로 맺게 되었으니 서울과 대구팀 간의 모임에서는 중추적인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평생을 KT에서 근무하고 정년을 하고 난 후, 현재는 감리자로 부산 모회사에 근무하고 있는데, 이런 이유로 함께 기차를 타고 내려오지 않고 각각 부산과 서울에서 출발했는데 함께 서울에서 내려왔다면 엉뚱한 곳에서 내려서 쓰잘떼기 없는 시간을 낭비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후미에서 둘레길을 지나며 보는 풍경으로 이곳 모퉁이를 돌면 이 멋있는 풍경을 사라집니다.
개천 건너편 정자와 암릉이 어우러진 풍경이 한 폭의 동양화를 연상하게 합니다.
그림속에는 물위에 배가 떠 있고 노를 젓는 사공이 등장하는데 현실은 그림과 조금 차이가 있네요.
정자는 가본 적이 없는데 정자에 올라 막걸리 한 잔하며 시 한수를 읊으면 최고 일것 같고, 정자에는 현판이 달렸는지는 모르겠으나 이름이 월류정이라고 부른답니다.
월류봉 아래 있는 정자니까 정자도 월류봉이라는 이름을 지은 건 당연하다는 생각이 드는데 월류정이 아주 오래전 조선시대에도 있었는지는 알 수 없는데 현재 이곳 월류정은 2006년에 지었다고 합니다.

아~ 이건 뭡니까?
둘레길 옆으로 비각이 있는데 입간판에 송시열 유허비라고 되어 있습니다.
그냥 지나쳤는데 유허비 뒤로 보이는 이곳이 한천정사라고 하는데 산과 물이 빚어낸 경관이 수려해 ‘달도 머무른다’는 ‘월류봉(月留峰)’ 아래 일대의 산수를 가리켜 한천팔경이라 하는데 그 팔경을 한눈에 감상할 수 있는 곳은 우암 송시열이 머물렀다는 지금의 한천정사라는 것입니다.
미리 알았다면 잠시 둘러보고 오는 건데 쬐금 아깝네요.
송시열은 인조, 효종 때 사람으로 유명인사로 전국 곳곳에 서원을 짓고 후학에 힘쓰기는 했지만 서원에서 공부한 제자들이 각각의 파벌을 만들어 동인이니 서인이니 남인이니 북인이니 편을 가르고 붕당정치를 하면서 물고 물리는 정국이 반복되며 조선은 망국의 길로 들어섰는데 그 후손들이여서인지 그 버릇 고치지 못하고 오늘날까지 이어오고 있으니.........
송시열의 사당은 저의 고향인 여주에도 있으며 송시열과 관련해 제일 대표적인 괴산에 있는 화양구곡인데 못마땅한 것은 화양구곡안에 화양서원을 짓고 만동묘를 만들었는데 만동묘는 중국 황제를 모시는 사당으로 영원한 중국의 속국이기를 자처하는 셈이지요

송시열 우허비를 지나 둘레길을 비포장으로 석천을 따라 이어집니다.
왼쪽은 대구팀의 권재형 아우입니다.
인연이 닿기 전, 백두대간 산행기를 올리는데 본인 이름으로 올리지 않고 부인이름으로 올리는 바람에 많은 헷갈림이 있었는데 하루에 대간은 답사하는 거리도 멀뿐만 아니라 지방에서 대간을 답사하는데 그것도 여자 이름이라서.......
몇 년전 만학을 하느라 못 보던 시절도 있었는데 나이 60이 넘어 박사학위를 취득했다는 것이니 얼마나 장한 일입니까?
우리가 대구팀과 인연을 맺게된 계기가 바로 재형 아우와 서울팀의 봉현 아우가 한북정맥을 답사하며 만나면서 부터인데 당시 의정부 천보산 능선에서 골프장으로 내려서는 길을 물으며 인연을 맺게 되었습니다.
언제나 웃을 때면 볼에 보조개가 생기고 솔선수범을 하는 참 좋은 아우입니다.
옆에 계신 분은 시인마뇽의 닉을 쓰는 우명길 선배님입니다.
경기도 파주 산으로 어려운 가운데 열심히 공부해서 서울대학교를 졸업하시고 대기업에서 간부로 근무하시다가 IMF 사태로 인해 사업을 접으셨으며 선배님을 닮아서인지 두 아들이 우리나라 최대 기업에서 중추적인 역할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선배님 닉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30여년 전 당시에는 BMW이라는 닉을 섰는데 BMW은 BOOK, MOUNTAION, WORK로열심히 일하고, 열심히 공부하고, 열심히 산을 다닌다는 뜻이었는데 만나는 사람들이 BMW이라는 외제차와 연관지으며 너무나 많이 물어서 시인마뇽으라고 예전의 별명으로 바꾸었다고 합니다.
시인마뇽으로 바꾸자 시인의 호를 마뇽으로 쓰는 것이나고 묻는 사람도 많았는데 시인마뇽은 인류의 조상이 되는 크로마뇽인을 닮았다고 서울대학교 재학시절 친구들이 지어준 별명이라고 합니다.
올해 79세이신데 1대간 구정맥은 20년전에 답사를 마쳤고, 이제는 쉬어도 좋을텐데 올해 초에 우리나라 5대강 답사를 마치셨는데 우리나라 5대강은 낙동강, 한강, 금강, 영산강, 섬진강이며 앞으로의 계획은 우리나라 10대강을 따라 둘레길을 답사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한천정사를 지나 둘레길에서 석천을 건너는 징검다리로 갈라지는 3거리가 나옵니다.
월류봉으로 오른다면 이곳에서 석천을 건너야 하는데 우리 일행이 아닌 사람들 일부는 징검다리로 가거나 이미 징검다리를 건너 사람들이 보였는데 둘레길을 답사하는 우리는 석천을 따라 직진 방향으로 진행을 했고, 대나무 숲을 우측에 두고 데크길을 따라 올라서면 좁은 논둑 데크길을 따라 지납니다.
데크길을 따라 가면 원촌교 북단으로 올라서게 되고 원촌교 남단으로 이동해 잠시 머뭅니다.
선두팀은 사라져 보이지 않고, 이곳에서 5분 정도 기다려 후미에 오시는 선배님과 함께 둘레길을 이어갑니다.
원촌교에서 150m 정도 이동하면 위 사진에 보이는 데크길이 나타나는데 석천계곡 가장자리로 이어지는 데크길의 높이가 무척 높았는데 데크길이 높다는 것은 홍수가 났을 때를 안전사고를 대비해 데크길을 설치한 것 같았습니다.



데크길은 약130여m 인데 데크길을 지나며 보는 풍경이 일품으로 월류봉의 능선이 석천과 어우러져 한껏 멋을 발산하고 석천 상류 방향으로는 멀리 백화산 주행봉이 우리 일행을 맞은 채비를 하는 것 같습니다.
데크길이 끝나는 지점에서 높다란 계단으로 올라 석천 옆 능선길로 이어지는데 올라선 곳에 둘레길이정목(월류봉광장1.2km↔완정교1.4km) 있는데 1구간이 끝나는 지점까지는 약1.4km가 남았음을 표기하였습니다.
월류봉 광장에 그렇게도 많았던 사람들은 모두 어디로 사라졌는지, 좁은 둘레길을 마주오는 사람들과 교행하는 데는 아무런 문제가 없고 편했습니다.
10분 정도 지난 지점 둘레길 좌측으로 쉼터가 있는데 어느 산악회인지 약30여명되는 사람들이 진을 치고 간식을 나무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우리팀 선두는....


얼마가지 않아 우리팀을 만납니다.
그리 좋은 자리는 아니지만 그런대로 석천 풍경을 보며 잠시 쉬어갈만한 자리입니다.
선두를 이끌던 경환 아우가 반겨줍니다.
경환 아우하면 떠오르는 이미지가 있는데 하나는 장가를 잘 갔다는 것으로 부인이 경기도 가평에 고향을 둔 분으로 마음착하지요, 예쁘지요, 자녀들 교육까지 잘 시켰으니 장가를 잘 간것은 틀림 없고, 또 하나는 경환 아우가 신성일 보다 못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경환 아우를 첨 보던날 영화배우를 동반하고 나왔는 줄 착각했으니까요, 그뿐만이 아니고 산도 잘타고 선배들이나 동료들에게 사랑받는 행동을 하는 아끼는 친구입니다.
무슨 술인지 칼라가 들은 술이 이미 돌고 있었고, 술안주는 과일인대 술도 마시지 않으면서 과일 안주만 축내며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한동안 쉬다가 다시 둘레길을 따라 나섭니다.


다시 둘레길로 들어서면 몇 발자국 가지 않아 데크길이 시작되며 데크길을 따라 5분 정도 지나면 전망쉼터를 겸한 포토존이 나오는데 이곳에는 '웃어요, 당신'이라는 표어가 걸려 있으니 웃는 사람에게 복이 있고 오래 살 수 있음을 일깨워 주는 곳입니다.
삼삼오오 짝을 이뤄 한가롭게 둘레길을 따라 10분을 지나 이정표(월류봉광장2.6km↔백화교2.4km)가 있는 다리가 나오는데 이곳이 온정교로 둘레길 제1구간이 끝나는 곳입니다.


▷월류봉 광장 들머리에서 제1구간 종점인 완정교까지 트레킹거리2.80km, 소요시간1시간02분, 현재시간12시17분입니다.
◎월류봉 둘레길 제2구간 완정교 시점에서 2구간 종점 구간
완정교는 제1구간 종점이면서 제2구간 시점이 되는 지점으로 완정교 남단에는 월류봉 둘레길 코스와 석천의 역사를 기록했는데 이러합니다.

「석천은 보은 속리산에서 발원하여 상주시 모동면을 경유하여 황간면 우매리 백화산 자락을 감돌아 원촌리에서 민주지산에서 발원한 초강천과 합류하고 용암리에서 금계천과 합류하여 흐르는 지방하천이다. 섯천이라는 뜻은 하천 바닥에 황색으로된 암석이 많다고 하여 지어졌으며 하천 상류에는 신라 상원화상이 창건한 반야사와 백화산이 어우러진 수려한 계곡이 있어 사시사철 탐방객이 많다.」

제2구간을 열어준 대구 미스코리아 출신은 상훈 아우의 내자입니다.
늘 밝고 상냥하며 부부애가 참 좋은 친구들입니다.
오늘 트레킹하는 우리팀 중 유일한 홍일점으로 상훈네까지 없었더라면 분위기가 많이 다운 되었을 것을 생각하면 더욱 고마울 뿐인데, 오늘 참석한 사람들 중 유일한 홍일점이란 뜻은 아니고 제1.2구간 트레킹을 하는 중에서의 이야기입니다.
상훈 아우는 영주가 고향인데 고향에 계신 노모님께서 몸이 상당히 불편하시어 매주 어머니를 찾아 뵙고 효도 하는 일이 있어 부득 참석하지 못했다고 해서 전화로 목소리만 듣는 것으로 만남을 대신했습니다.
이들 부부는 아들이 결혼해 손자를 보았다고 하는데 누가 보아도 손을 보았다면 믿지 않을 정도로 몸관리도 잘했는데 이들 아드님은 육군사관학교를 나온 유망한 장교라니 부모에게 효를 다하니 아들도 부모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가 봅니다.
제2구간은 데크길로 시작합니다.


원천교 데크길과 같이 제2구간 데크길도 물에서 무척 높게 설치했거나 천변 험한 절벽 옆으로 설치했습니다.
제2구간을 출발해서 5분 정도 지나면 재미있는 풍경이 나오는데 석천 가운데 작은 바위 3~4개가 물 위로 돌출되었는데 이곳 풍경을 보며 단양의 도담삼봉이나 영월의 어라연이 생각났는데 영동 석천에 도담삼봉 또는 어라연이 잠시 놀러왔나 싶었습니다.
재미있는 풍경을 보고 얼마가지 않아 또 다른 풍경을 봅니다.



물 위로 돌출된 작은 돌 위로 제법 큰 자라가 2마리가 바깥 세상을 구경하러 나왔는데 사람들의 눈치도 보지 않는데 이놈들 사람이 가까이가면 물속으로 잠수해 버릴겁니다.
어렸던 시절 여름 더위를 달래기 위해 강가를 놀러 다니며 자라를 잡기도 했는데 오늘 보는 자라는 제법 컸는데 주변환경을 보니 이곳은 자라가 자라는 환경이 못되는데 이상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자라는 바위가 있는 곳을 좋아하기는 하지만 모래가 있는 곳에서 살아가며 자라는 새끼를 낳는게 아니고 알을 낳는데 모래를 파서 알을 낳고 묻으면 암놈 자라는 임무가 끝나는데 악어가 모래밭에 알을 낳는 것과 같습니다.
모래속에 있는 알은 뜨거운 햇볕으로 인해 정적온도가 되면 부화하여 물가로 나오게 되지요.
아직 4월인데 오늘 햇살은 무척 따가우며 긴 데크길을 걷다보면 등짝으로 땀이 흘러 내리니 풍경이고 뭐고 시원한 그늘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며 조금 지나자 선두팀이 둘레길 쉼터에 자리를 잡고 기다립니다.
반갑고 고마워라~~~~

시간을 확인하니 12시40분, 이곳에서 식사를 하기로 합니다.
예전에는 많게는 20명 정도가 함께 식사를 했는데 오늘은 단촐하게 11명입니다.
식사시간이 되면 분주하게 움직이던 대구 미스코리아 출신들이 생각납니다.
참사랑산악회 회장 차수근 아우의 내자인 수근네, 전 회장 차성섭 아우의 내자인 성섭네, 총무를 맡았던 박영홍 아우의 내자인 대박네 3총사가 생각납니다.
때로는 2대회장님인 경환 아우의 내자인 경환네도 함께 하긴 했지만 그래도 3총사가 대부분 책임을 졌던 분들인데 오늘은 성섭네는 참석했지만 몸관리 차원에서 제3구간만 걷기로 했으니 이 자리에 없고, 수근네는 불가피한 일이 생겨서 불참이라는데 담에는 얼굴 좀 보여주시고요, 대박이나 대박네 정말 본 지 오래되었네요,
가녀린 몸매에 억양이 강한 경상도 사투리가 매력이었는데...... 그런데 대박이는 오늘 왜 모습을 보이지 않았는지.....
모두 모두 사랑스러운 아우들인데.......
그리고 안 보이는 사람이 또 있는데 김원장 내외의 모습을 본지 오래되었는데 오늘 보지 못한 분들은 담에는 얼굴을 보면 정말 좋겠습니다.
암튼 3총사가 있을 때는 분위기가 최고였는데 물건도 있어야할 자리에 꼭 있어야 하는 것처럼, 사람도 있어야할 곳에 있어야 만사가 형통하는 법이지요.
식사를 하면서......
성섭 아우네가 반야월 산다고 하는 얘기가 나오자, 물어 보았습니다.
반야월에 지금도 시멘트공장이 있냐고?
경환아우가 거품을 물며 시멘트 공장이 있었던 적이 없었다고 부정하고 나섰고 성섭아우까지 시멘트 공장은 예전부터 없었다고......
40년전에는 있었다고 얘기하자 뻥을 친다나, 거짓말 하는게 아닌데 대놓고 거짓말 장이를 만들고, 거짓말 장이가 될 것 같았는데 시인선배님이 완전히 반전을 시켰는데 핸폰으로 찾아보니 예전에 한일시멘트 대구공장이 있었는데 지금은 주택지로 바뀌었다고.......
전세가 역전이 되었는데, 경환아우는 제천이나 단양같이 시멘트를 채취하는 공장을 뜻함이었고, 저는 레미콘 공장을 뜻한 것이었으니 무승부가 되었습니다.
함께 웃으며 이런 저런 애기와 가지고 온 음식을 나누어 먹으며 만찬을 즐기며 긴 시간을 보며 주변을 정리하고 일어섭니다.
데크길을 따라 2~3분 지나자 현수교가 설치되어 있고 현수교를 건너면 화장실까지 준비되어 있습니다.

먹을 것 다먹고 볼일도 보았으니 다시 길을 나섭니다.
현수교를 지나면 백화교까지 거리는 약1km가 되는데 특별한 지형지물은 없으며 둘레길 옆으로 포도과수원이 있으며 비가림으로 관리하는 포도 넝쿨에서는 새순이 돋아나는 것을 볼 수 있으며 뜸하게 주택이 보이기도 하며 석천 건너편으로 차도가 있어서 더 많은 주택이 산재하고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백화교에 도착합니다.
백화교 북단 반사경 옆에에는 표기가 불분명한 이정표(완정교2.6km↔반야교2.5km)가 있고 뒤로는 황토색 빌라건물이 보입니다.


백화교를 지나면서 일행은 2팀으로 자연스럽게 나누어졌습니다.
선두팀에는 저를 비롯해서 경환 아우와 대정산악회 회장님, 임대장 절친인 아우님, 성섭아우, 수근아우, 그리고 상훈네가, 후미팀에는 임대장과 성봉현 아우와 권재형아우 그리고 시인마뇽 선배님으로 나누어 졌습니다.
백화교를 막 지나며 좌측으로는 별장같은 집들이 곳곳에 보이는데 이런 곳에서는 어떤 사람들이 살고 있을까?
우리 일행은 이곳을 지나며 경치 좋은 곳, 호화스러운 집 그러나 문화생활권에서 떨어져 있는 이런 곳에서의 삶에 대한 이야기를 하며 지났는데 모두의 의견은 주말이면 가끔 놀러와 쉴 수 있는 것은 좋지만 이런 곳에서 거주하는 것에 대해서는 싫다는 의견이었습니다.


이야기를 하면서 지나다가 2구간 종점, 3구간 시점을 그냥 지나칠 뻔 했습니다.
제2구간 종점은 백화교에서 약900m 떨어진 지점으로 우측에 포토존임을 나타내는 월류봉 둘레길 입간판이 있습니다.
▷월류봉 광장 들머리에서 제2구간 종점인 둘레길 입간판까지 트레킹거리6.19km, 소요시간2시간40분, 현재시간13시55분입니다.
◎월류봉 둘레길 제3구간 입간판 시점에서 반야사 종점 구간
월유봉 둘레길 3구간으로 접어듭니다.

성섭아우입니다.
언젠가 예전 사진을 보고 성섭아우를 바로 알아보지 못한 적이 있었습니다.
준수한 소년같이 예쁘장해서 였는데 대구 아우들은 하나같이 모두 잘생겼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세월이 지나 준수함은 사라졌지만 터프가이로 거듭나 호탕하고, 소탈하고, 여유있는 현재가 더욱 남자답고 좋는 것 같네요.
몸이 불편해 처음부터 둘레길을 함께 답사하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성섭네가 고맙네요, 아마도 처음부터 함께 걸었다면 성섭아우가 더욱더 신바람이 났을 겁니다.
호탕한 아우가 약간 의기소침한 것이 성섭네 걱정이 많아서인가 봅니다.
주변은 지나온 길과 다를바 없고 특벽한 지형지물도 없는 비포장 도로로 우측은 석천이 우측으로 방향을 바꾸며 흐르는 곳으로 둘레길과 석천 중간에 작은 섬을 이루는 듯했는데 그 부분을 버드나무가 밭을 이루고 있어 둘레길 좌우에는 버드나무 꽃이 날려 마치 눈이 내린 것처럼 변해버렸습니다.
바람이 불면서 일대가 눈이 내리는 것 같았는데 비염이 있어서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하고 지납니다.
3구간을 들어서서 약700m 지난 지점, 기경* 아우가 쉬어가자고 하니 우측 버드나무 아래서 10분 여를 기다리니 후미그룹이 도착합니다.


우리 일행이 원팀이되었습니다.
휴식을 취한 곳에서 2~3분 지나자 석천이 나왔고 석천에는 징검다리가 놓여 있습니다.
징검다리를 건너는 모습이 보기가 좋은데 안개가 서린 징검다리를 건너는 풍경이었다면 금상첨화였겠지만 안개가 없어도 멋있는 풍경입니다.
그런데 이어서 징검다리가 나타나니 첫 번째 징검다리는 석천안에 섬으로 들어서는 것이고 두 번째 징검다리는 섬에서 벗어나는 징검다리인가 봅니다.


두 번째 징검다리의 돌은 대리석을 사각으로 다듬은 것이라 순수함 멋은 떨어지는 편입니다.
징검다리를 건너 계단을 따라 오르면 차도가 나오는데 이 도로는 백화산길로 완정교로 이어진 길인데 둘레길은 넓은 차도 옆 사잇길로 이어집니다.
사잇길로 들어서서 10분을 이동하자 다시 백화산길과 만나게 되는데 3거리에는 참숯가마찜질방 대형 입간판이 있고 좌측으로 반야교가 보입니다.
도로 건너편에는 주차장이 있고 몇 몇 음식점이 있는데 우리가 찾은 곳은 숲속식당입니다.


식당에 들어가서 막걸리에 두부김치를 안주삼아 1시간을 이런저런 이야기로 정을 나눕니다.
반가운 사람이 합석했습니다.
영동역에서 얼떨결에 버스에 올랐고 월류봉 광장에서 어떨결에 내렸는데 있어야할 성섭네 보이지 않아 수근 아우에게 물어보니 무릎이 아파서 함께 트레킹을 하지 못한다고.....
버스에서 지루하게 일행이 오기를 학수고대하다가 식당에서 다시 합류한 것입니다.
오늘의 메뉴는 두부김치에 막걸리입니다.
막걸리, 진정한 우리 술~~~ 너무 좋지요.
각각 지방에 따라 내세우는 막걸리가 많은데 영동 황간 막걸리는 어떨까?
다른 사람들은 모르지만 서울 장수막걸리에 길들여져서인지 황간 막걸리는 발효가 덜 되었는지 입맛에 딱 맛는다는 생각이 들지 않습니다.
전에 아미산에서 올렸던 막걸리 예찬을 다시 써 먹습니다.
막걸리라는 술의 의미는?
막, 걸러낸 술
막, 출출할 때 마시는 술
막, 취하고 싶어서 마시는 술
막, 그리울 때 마시는 술
막, 노래부르고 싶을 때 마시는 술
막, 사발에 따라 마시는 술
막을 수 없는 대구와 서울 우정 나눔의 가교역할을 하는 술
그러고 보니 막걸리가 좋은 술로 매번 우리가 만날 때 막걸리를 준비하는 데는 깊은 뜻이 있었구먼.....



막, 출출할 때, 막 그리움이 고플 때, 막 취하니 또 반야사로.....
술자리를 끝내고 얼마 남지 않은 월류봉 둘레길 3구간을 이어갑니다.
반야교를 지납니다.
5년전 쯤 겨울,
혼자서 기차를 타고, 황간역에서 택시를 이용해 이곳에 왔습니다.
아무도 없는 반야교에서 산행을 시작해 주행봉~한성봉을 지나 수봉리로 하산 했던 백화산 산행이 생각이 났는데 당시에는 짙은 안개로 2~3시간은 앞을 분간하기 어려울 정도였습니다.
반야교를 지나 반야사 일주문을 가는 동안 성섭네와 한동안 같이가며 이야기를 나눕니다.
무릎이 아프다고 하는데, 요즘은 의술이 발전해 너무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고 했지만 아픈 사람과 위로하는 사람과는 큰 차이가 있으니 아픈 사람은 더 이상 악화되지 않도록 늘 세심한 주의가 필요할 것입니다.


굽이쳐 흐르는 석천을 따라 가다면 중간에 보를 만들고 물을 가둬 마치 저수지 길을 지나는 것 같은 착각을 합니다.
얼마를 지났을까, 반야사 일주문이 나오는데 현판은 '백화산 반야사'로 달려있는데 석천을 가운데두고 양옆에 있는 산을 백화산으로 통칭하는 것 같습니다.
일주문(一柱門)은 불교 사찰의 삼문(三門)의 하나인데 산문으로도 불립니다.
삼문의 1번째인 일주문(一柱門)은 하나를 뜻하는 한 一, 기둥을 뜻하는 기둥 柱, 문을 뜻하는 문 門으로 문을 하나의 기둥으로 받치고 있어서, 기둥을 일렬로 세웠다고 해서 일주문이라고 부르며 일주문의 의미는 「마음을 하나로 모아 일심(一心)으로 첫발을 들여 놓는다.」는 뜻을 담고 있습니다.
삼문의 2번째 문은 금강문을 쓰기도 하고, 천왕문을 쓰기도 하는데 사천왕상이 지키고 있는데 사악한 기운들의 침입을 막는 수문장의 역할을 합니다.
삼문의 3번째 문은 해탈문이라고 쓰기도 하고, 불이문이라고 쓰기도 하는데 해탈문은 해탈의 세계에 이르게 한다는 의미이고, 불이문은 인간의 욕심과 욕망으로 인해 발생된 여러 가지 모든 번뇌와 해탈은 둘이 될 수가 없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이와같이 삼문을 지나면 불전이 나오는데 반야사는 삼문의 예를 갖추지 않았고 불이문을 지나 바로 불전에 이르게 지었습니다.
일주문을 지나 4~5분 지나면 심천계곡 옆 양지바른 곳에 아담한 사찰이 있으니 이곳이 반야사입니다.
반야사로 들어서며 월류봉 둘레길 제3구간 종점에 도착합니다.
▷월류봉 광장 들머리에서 제3구간 종점인 반야사까지 트레킹거리8.78km, 소요시간4시간35분, 현재시간15시50분입니다.
◎반야사와 문수전 구경하고 반야교까지

반야사(般若寺)
반야사는 신라 성덕왕 27년인 728년에 원효의 제자 상원화상이 창건하고 고려 충숙왕 때 학조대사가 중창한 절로 알려져 있습니다.
또 다른 전설은 성주선원의 무염국사가 창건했다고 전하는 설입니다.
심묘사에 주석하고 있던 무염 스님이 사미승 순인을 보내, 못에 살고 있던 익룡을 쫓아내고는 그 못을 메워 절을 지었는데 그 절이 지금의 반야사라는 것입니다.
무염은 부석사 석징 스님을 찾아가 화엄경을 공부한 후 당나라로 유학을 갔다고 합니다.
유학을 다녀온 후, 보령 성주사를 중심으로 성주산문을 열고는 40년 동안 법회를 펼쳤다고 하는데 너무 많은 사람들이 찾아와 그들을 잠시 피하기 위해 보령을 떠난 발길이 닿은 곳은 상주 심묘사였다는 것입니다.


심묘사는 임진왜란 때 불타 존재하지 않는데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의하면 월류봉 아래에 자리했던 사찰로 추정하고 있는데 심묘사 팔경에 월류봉이 들어있다고 합니다.
산과 물이 빚어낸 경관이 수려해 ‘달도 머무른다.’는 ‘월류봉(月留峰)’ 아래 일대의 산수를 가리켜 한천팔경이라 하는데 그 팔경을 한눈에 감상할 수 있는 곳은 송시열이 머물렀다는 한천정사가 있는 곳이 오래전 심묘사가 있던 터라고 추정한다고 하는데 이 설을 따른다면 반야사 창건은 상원스님 창건설에 비해 약100여년 뒤가 되는 셈입니다.
큰법당인 대웅전으로 갑니다.
대웅전으로 돌아가는 옆에는 아이스크림을 파는 상점이 있고 상점 옆에는 오래전 사용했던 빨간색의 공중전화 부스가 있는데 요즘은 공중전화를 쓰지 않으므로 철거하고 빈 부스만 서있습니다.
종무소 옆길을 따라 대웅전 앞마당으로 올라섭니다.

넓은 앞마당에는 4월 초파일을 기념하는 연등이 달려있고, 대웅전 안에는 금불상이 정좌해있고 주변으로 탱화가 있는데 다른 곳에서 보던 탱화와는 달라보였으며 색채가 화려하지 않으면서 귀해 보이는 느낌이었으며 대웅전 전면 기둥에는 주련이 걸려있는데 이러합니다.
天上天下無如佛(천상천하무여불) 천상과 천하에 부처님 같은 이 없고
十方世界亦無比(시방세계역무비) 시방세계에도 역시 견줄이 없네
世間所有我盡見(세간소유아진견) 세간의 모든 것을 다 보았지만
一切無有如佛者(일체무유여불자) 일체에 부처님 같은 이는 없네
백화산이 반야사를 품은 산자락은 승천하는 봉황의 날개처럼 넓으면서도 힘차고, 그 산자락 사이의 석천계곡을 굽이쳐 흐르는 물소리는 자연이 선사하는 교향곡입니다.
대웅전에서 계곡을 따라 조금 오르면 석천계곡의 영천이 있는데 시간이 없어 문수전만 보고 왔음이 못내 아쉬웠습니다.
석천계곡의 영천이라~~~
바로 세조가 목욕하고 피부병을 고쳤다는 전설이 전해지는 곳입니다.
신묘대사가 반야사를 중창하는 날, 세조가 행차했었다고 하는데 이때 세조 앞에 문수동자가 나타나 따라오라 해서 가 보니 지금의 반야사 옆 영천으로 세조는 이곳에서 목욕한 후 피부병이 나았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문수동자와 세조의 피부병에 대한 이야기는 이곳 말고도 오대산 상원사에도 전해지는데 정말 세조가 문수동자와 만났는지에 대해서는 모르겠으나 세조가 오대산 상원사나 이곳 영동 반야사를 왕림했는지의 여부는 실록이나 승정원일기를 확인하여 증명하면 되는 것인데 승정원일기에 세조가 반야사에 왕림했다는 기록이 없으면 설에서 설로 전해지는 것입니다.
세조가 반야사에 왔었다는 승정원일기의 기록이 있다고 해도 문수동자관련 피부병이 낳았다는 설을 사실이 아닙니다.
세조는 피부병을 고치지 못했고 피부병으로 결국 죽은 것으로 기록하고 있으니까요.
대웅전 앞마당에는 3층 석탑이 있습니다.

이 석탑은 영동 반야사 삼층석탑 (永同 般若寺 三層石塔)으로 2003년3월 대한민국 보물 제1371호 지정되었는데 영동 반야사 삼층석탑은 비록 일부 새로운 부재가 보충되었지만, 양식적인 면에서 백제계와 신라계 석탑의 양식을 절충해 건립된 고려시대 석탑의 특징을 잘 나타내고 있어 귀중한 자료로 평가되어 보물로 지정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탑은 신라시대 반야사를 지을 때 세워진 것으로 추정하는데 반야사 북쪽 석천계곡 안에 있던 것을 1950년 반야사로 옮겼다고 합니다.
그러나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이곳 반야사 삼층석탑을 보물로 지정한 데는 문제가 있는 듯합니다.
쉽게 말하면 이런 석탑들을 보물로 지정한다면 우리나라 보물의 가치가 하락된다는 뜻으로 석탑 기단부가 원래의 돌이 아니고 잘 맞지도 않고, 틈새도 벌어지고 전체적으로 매끄럽지 못합니다.
3층 석탑 뒤에는 배롱나무가 있는데 수령이 500년이라고 하는데 사실 여부는 알 수 없으며 배롱나무는 아직 잎도 나지 않았으니 아름다운 꽃이 피기까지는 한동안 있어야 할 것입니다.

3층석탑 건너편에는 범종각이 있습니다.
큰 사찰을 가면 대부분 불전사물을 범종각에 안치하고 있는데 이곳 반야사 범종각에는 불전사물 중 법고와 목어는 없고 범종과 운판만 안치했습니다.
제가 사찰을 가면 제일 반갑게 찾는 게 불전 사물인데 이곳에서는 멀리서 범종각만 보고 가깝게 가지 못했습니다.
부산 범어사에는 너덜겅 지대에 있는 바위를 두드리면 맑은 쇳소리가 나는 것으로 유명해 많은 사람들이 찾고 있습니다.
그런가하면 이곳 반야사는 석천을 가운데 두고 건너편 백화산 자락의 너덜겅 지대가 마치 호랑이가 꼬리를 치켜세우고 있는 모습의 형상이 있는데 이 호랑이가 오랫동안 반야사를 지켜주고 있다고 전합니다.
이런 소문을 타고 전국 많은 사람들이 반야사 호랑이를 보러 몰려온다고 하는데 봄철이 되어 나뭇잎이 나오기 시작하면서 비경을 대부분 가렸습니다.
문수전을 가자는 의견과 시간상 반대하는 의견이 대두되면서 반야산 호랑이와 문수전을 가보지 못하는 아쉬움이 컸는데 임대장이 문수전에 가고 싶은 생각이 있다면 가고 싶은 사람끼리 빨리 갔다가 오자는 의견을 내세우니 듣던중 반가운 소리였습니다.



임대장과 상훈네 3명이 대웅전 오른쪽으로 ‘문수전 가는 길’안내판이 있는 곳으로 경사진 길이 이어지는데 이 길이 문수전으로 가는 길입니다.
가파른 길을 따라 5분 정도 오르면 능선3거리에 닿게 되는데 능선을 넘어 내려서는 길은 영천으로 가는 길이고 우측으로 방향을 바꿔 능선으로 1~2분 오르면 깎아지른 듯한 절벽위에 문수전이 있습니다.
문수전은 벼랑 끝에 간신히 걸쳐있는데 문수전 앞쪽은 절벽으로 안전펜스는 설치했어도 조심해야 하는 곳이며 이곳에서 반야산 호랑이와 동쪽으로 이어진 석천계곡이 산과 산 사이에 물길을 내고 유유히 흐르며 백화산의 산세와 문수전 아래 절벽인 망경대가 어우러져 말 그대로 천하제일의 풍광입니다.



문수전에서 반야사 랑이를 배경으로 번갈아 사진을 찍고 임대장과 상훈네가 내려간 다음 문수전을 둘러보니 문수전 문은 잠겨 있었는데 자물쇠는 채워지지 않았지만 닫힌 문을 열어 볼 수는 없으며 문수전 전면 4개의 기둥에 걸린 주련을 보고 읽고 해석을 해보려고 이리저리 맞춰보았는데 가방끈이 짧아 해석은 고사하고 제대로 읽을 수도 없었는데 주련과 주련을 해석하면 이러합니다.

十年磨一劍(십년마일검) 십 년 동안 칼 하나를 갈아
霜刀透乾坤(상도투건곤) 서릿발 같은 칼날이 천지를 가를 만하니
一揮斷三界(일휘단삼계) 단번에 삼계를 가를
時來文殊殿(시래문수전) 때가 문수전에 왔구나
주련을 열심히 보다가 일행이 모두 내려간 것을 알고 혼자서 문수전을 나서는데 뒤이어 경환아우와 성섭아우, 그리고 전 대정산악회 회장이 문수전으로 올라섭니다.






잠시 주변 풍경과 반야사 오랑이를 보고 호랑이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고 다 같이 문수전을 나섭니다.
문수전으로 올라갈 때는 반야사에서 기다리는 다른 사람들을 생각해 빨리 올라갔다가 내려와야 한다는 부담이 있어 급하게 올라갔던 길을 천천히 내려섭니다.
보기에는 완만해 보이는데 실제로는 경사가 심한 편이며 나이가 들면서 가파른 길을 오르고 내려설 때마다 전과 다르다는 생각이 자꾸 드는 것을 보면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나 늙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반야사로 내려서 일행들과 합류합니다.
그리고 반야사에서 반야교를 향해 이동을 합니다.


각각의 손에는 아이스크림을 들고서.....
무슨 아이스크림?
아침에 기차에서 졸다가 오송역에 내려 여러 팀원들에게 지은 죄도 있고 해서......
여럿이 보행을 하며 아이스크림을 먹는 재미도 좋습니다.
혼자라면 창피해서 걸어다니며 아이스크림을 먹을 수 있겠나요?
일행이 있고 그것도 여럿이라면 창피할 것도 없지요, 예전에 경험한 적이 있자너요, 예비군복을 입으면 어떤 행동을 했었는 지를.......
일행들과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누며 내려서다 보니 반야교에 도착했고 우리의 애마가 반갑게 맞아 줍니다.
▷월류봉 광장 들머리에서 제3구간 종점인 반야사를 거쳐, 반야교까지 트레킹거리10.24km, 소요시간5시간18분, 현재시간16시33분입니다.
반야교에 도착하면 오늘 예정했던 월류봉 둘레길 모든 구간을 마칩니다.
보고싶었던 사람들을 보지 못한 아쉬움이 있지만 아무 탈없이 예정했던 코스를 마칠 수 있다는 점입니다.
대구팀은 버스로 대구로 가고, 성봉현씨는 대구까지 갔다가 부산으로 가기로 했고 시인선배님과 저는 황간역에서 18시10분 기차로 대전까지 가는 것으로 예매를 한 상황입니다.


황간역 가까운 곳, 올갱이로 유명한 음식점으로 이동해 오늘 있었던 일들을 서로 이야기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기차 시간에 맞춰 황간역으로 이동해 단체 사진을 찍으며 이별을 고합니다.
이별은 헤어짐이 아니 다음 만남의 시작일 것입니다.
가을 날씨가 좋고 기분이 상쾌한 날 반갑고 셀레는 마음으로 만나보기를 소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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