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9차 중 27차 서울 독립군과 대구 참사랑의 교류 산행이야기
연천 고대산 산행과 백마고지이야기
산행일시: 2020년10월25일
누구와: 서울독립군과 대구참사랑산악회원
산행거리: 약7.0㎞
산행시간: 5시간10분(10:30~15:40)
산행코스:고대산주차장(10:30)-표범폭포(11:00)-쉼터(11:15)-깔딱고개위(11:35)-고대산정상(12:35)-삼각봉(13:45)-대광봉(13:50)-칼바위능선(14:10)-칼바위전망대(14:20)-말등바위(15:00)-3등산로갈림길(15:10)-1등산로갈림길(15:35)-주차장날머리(15:40)

주요지점 통과 및 이동거리
10:30 고대산주차당에서 산행시작 해발157m
11:00 표범폭포입구, 산행거리1.5km,산행시간30분, 해발314m
11:15~23 3코스쉼터, 산행거리1.8km,산행시간45분, 해발353m
11:37 깔딱고개시작, 산행거리2.4km,산행시간1시간07분, 해발492m
11:57~12:18 깔딱고개위, 산행거리3km,산행시간1시간37분, 해발735m
12:35~13:35 고대산정상(점심), 산행거리3.7km,산행시간2시간05분, 해발834m
13:45 삼각봉, 산행거리4.1km,산행시간3시간15분, 해발824m
13:50 대광봉, 산행거리4.3km,산행시간3시간20분, 해발812m
14:10 칼바위능선, 산행거리4.9km,산행시간3시간40분, 해발695m
14:20 칼바위전망대
15:00 말등바위, 산행거리5.81km, 산행시간4시간30분, 해발399m
15:10, 3등산로갈림길
15:35, 1등산로갈림길, 산행거리6.5km,산행시간4시간48분, 해발209m
15:40 2등산로날머리, 산행거리7.0km,산행시간5시간10분, 해발142m

◎ 프롤로그
♪♩그저 와준 오늘이 고맙기는 하여도♩♩♪♬죽어도 오고 마는 또 내일이 두렵다♬♪아 ♪♩♩
테스형
세상이 왜 이래
왜 이렇게 힘들어아 ♪♩♩
테스형 ♩♩♪♬
소크라테스형사랑은 또 왜 이래너 자신을 알라며
툭 내뱉고 간 말을내가 어찌 알겠소 모르겠소 테스형♬♪♩
요즘은 사회는 미래가 없고 서로가 서로를 헐뜯고 비난을 하는 살아가기 힘든 세상으로 서로가 서로에게 사랑이 메말라 그럴 것입니다.
가수 나훈아는 요즘같은 세상을 신랄하게 비판하며 약2420년전 죽은 소크라테스에게 하소연을 합니다.
나훈아의 절규는 우리 국민들의 하소연이고 절규인데 높은 지위에 있는 달님이나 세금만 축내는 여의도 국회에 있는 넘들은 들은 척도 하지 않고 지들 배불리기에 열을 올리고 있으니 오죽하면 가수 나훈아가 바른 소리를 해 대겠습니까?
미련하고 우둔한 넘들은 형광등 같아서 그렇게까지 외쳐대는데 그를 알지 못하고 상대편에게 하는 소리라고 정쟁만 일삼고 있으니 참으로 안타깝고 불쌍한 일입니다.
물론 서울독립군이나 대구 참사랑회원들은 사랑으로 보듬는 현명한 분들이라 잘 극복하고는 있지만요, 항상 사랑을 동경하고 사랑과 함께 하길 바라며 나훈아의 테스형을 음미하며 어려움을 극복하고 알찬 나날이 되기를 바라며 산행을 열어갑니다.

◎만나면 반가운 사람들~~~
밤일을 하고 왔다는 말에 모두들 빙그레 합니다.
이상합니다.
밤일.
밤에 일을 한다는 건데 뭐가 이상한 지?, 왜 빙그레 미소를 짓는지 모를 일입니다.
밤일 보다 더 중요한 게 오랜만에 만나는 반가운 사람들과 만남이었습니다.


버스안에서의 일입니다.
먼 곳에서, 그리고 서울에서, 모두 일찍 만나 기다리던 분들을 반갑게 만납니다.
지난4월 만났다 헤어진 사람들을 반년이 지나 다시 얼굴을 보는데 마치 어제 헤어진 사람을 다시 만나는 것처럼 어색함이라고는 찾아 볼 수 없었습니다.
짧은 시간 고대산으로 이동하며 소회를 털어놓으며 가다보면 어느 새 고대산에 도착합니다.
모든 일에는 모두 100%면 좋은데 대부분 그러지 못함인데 아주 적은 아쉬움이 남게 되지요, 그렇습니다.
대구 팀에서는 김원장 내외의 모습을 찾을 수 없네요, 조금 늦더래도 함께와야지, 임대장이 조금 늦는다고 안델구 걍 스타트 건을 쏴버린 거 같은데 담부터는 함께 보자고.......
서울에서는 성봉현 총무께서 자리를 함께 하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흔하게 쓰는 말 가운데 선수는 후반전이라는 말이 있으니 기다림이 최고조에 달하는 후반전에 등장하려고 작전을 쓰나봅니다.
화룡점정(畵龍點睛)이라는 고사성어가 있습니다.
직역을 하면 용의 그림에 눈동자를 마지막으로 찍는다는 뜻인데 다듬어 말하면 용의 눈동자를 그리면 용이 하늘로 승천한다는 것인데 후반전에 등장하는 성봉현씨가
대미를 장식하려는 것 같습니다.


글구 화룡점정(畵龍點睛)이라는 고사는 이러합니다.
중국 양나라 때 장승요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안락사(安樂寺) 벽에 용 네 마리를 그렸는데, 눈동자를 그려 넣지 않았습니다.
이를 이상하게 여긴 사람들마다 “왜 용의 눈동자를 그리지 않았느냐?“ 묻는 말에 ”용의 눈동자를 그리면 용이 하늘로 날아갈까 해서입니다.“라는 말을 했답니다.
사람들이 그 말을 허황된 말로 여기자 장승요는 용 한 마리에 눈동자를 그려 넣자, 갑자기 천둥이 울리고 번개가 쳐 벽이 깨지고, 용이 구름을 타고 하늘로 올라가 버렸다. 그러나 눈동자를 그리지 않은 나머지 용은 그대로 남아 있었다고 합니다.
아쉬움은 아쉬움대로, 성봉현씨가 화룡점정의 대미를 장식할 것을 기대하며 산행을 시작합니다.
◎ 고대산정상으로 가는 길.....
주차장에서 간단히 산행준비를 하고 산행을 시작합니다.
고대산은 정초에 꽤나 인기가 좋은 산으로 새해 벽두에 북녘을 보며 간절한 소망을 비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입니다.
지금은 기차가 일시 중단된 상황이지만 신탄리가 마지막 기차역이던 때 철길 끝에는 대형 입간판이 세워져 있었는데 「철마는 달리고 싶다.」라는 메시지가 담겨져 있었습니다.

고대산은 아마도 이번이 6번째인가 7번째인가 되나봅니다.
2004년 개방된 직후에는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사람들이 기차를 타고 찾았던 고대산이 지금은 많이 변했습니다.
주차장도 넓게 생기고, 언젠가부터 휴양림도 생기고, 쓰레기 수거비로 1000원씩 받던 입장료는 없어지고........
가장 최근에 찾은 건 2014년 신년산행으로 이곳을 찾았었습니다.
포장도로를 따라가다 대형 입간판이 있는 곳에서 단체사진을 찍고 숲으로 스며듭니다.

예년에 비해 올해는 단풍이 일찍 지나봅니다.
만산홍엽으로 눈부실 풍경을 기대했는데 입구 저지대부터 만나는 단풍은 땅위에 뒹굴고, 이따금 단풍나무와 복자기나무 잎이 허전한 마음을 조금 메워주고는 합니다.
3등산로로 들어서서 조금 지나서 제2등산로 갈림길을 만나는데 이곳에 오니 예전 길이 조금 생각나는데 지금은 지나온 길이 3등산로길이지만 처음에는 이곳에서 조금 더 지나 폭포 계곡을 따라 내려가는 길이 주등산로였습니다.
갈림길에서 계곡 옆을 스치며 샘터를 지나는데 초라한 것은 예전이나 지금이나 마찬가지 같습니다.

샘터를 지나며 잠시 오름을 하면 이정목이 걸음을 막습니다.
표범바위와 표범폭포가 있는 곳으로 한 여름같으면 폭포소리가 계곡을 울릴텐데 물소리가 시원치 않은 것을 보면 폭포도 찔찔이로 변한 듯합니다.
그냥 지나칠 수 없어 계단을 중간정도 내려가며 보이는 폭포는 물이 보이지 않았으니 물이 메마른 것입니다.
작은 소리를 내며 소량의 물이 흐르는 듯한데 경환아우, 재형아우 그리고 임대장도 물 없는 폭포를 보기위해 내려가 물이 없는 폭포의 풍경을 담습니다.


표범바위나 표범폭포의 유래는 잘 모르겠으나 아마도 폭포를 감싸고 있는 거대한 바위문양 바위가 표범의 표피를 닮았다는데서 비롯되지 않았을까 생각해 봅니다.
폭포를 내려갔다가 오는 사이 선발진에서 일행 중 꼴찌로 바뀌고 폭포를 뒤로하고 5분 정도 가니 쉼터에 일행이 모두 쉬고 있습니다.
얼굴에는 미소가,
입속에는 과일이.............
이렇게 좋을 수가, 이럴 때는 함께함이 제일이지요, 파인애플과 감을 먹으며 즐거움을 함께 느낍니다.


오늘은 산행 거리가 짧아 휴식시간을 길게 가져도 좋습니다.
긴 휴식을 마치고 다시 등로를 따릅니다.
아주아주 밋밋하던 경사가 점점 가팔라지기 시작하더니 깔딱고개가 시작됩니다.
앞서 경환아우와 성섭아우가 올라갔는데 산행을 유유자적하게 함께 가야지 잘 못 배운 산행습관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니 맛있는 과일도 먹지 못하고 땀만 흘리고 오르고 있습니다.
전화를 해서 깔딱고개 위에서 기다리라 연통을 취하고 깔딱고개를 오릅니다.
금방 끝날 것 같은 깔딱고개는 끝날 듯 이어지고 다시 끝날듯하면서 이어지기를 몇 차례, 군부대 밑 알맞은 곳에서 경환아우와 성섭아우의 모습이 나타납니다.
경환아우와 성섭아우와 함께 편한 자세로 올라서는 일행들의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며 재미와 희열을 느낍니다.


하나, 둘, 셋...............
어느새 일행이 모두 깔딱고개를 올라섭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발생했습니다.
차수근,
참사랑산악회 회장 말입니다.
산행할 때마다 “힘들다.“며 뒤로 쳐지기를 단골로 여겼는데 오늘은 전과 다른 모습을 보여서입니다.
이런 차수근회장을 보며 하산할 때 시인마뇽선배님이 부러워하시며 임대장과 어우러져 자전거를 타더니 효과를 많이 본 듯하다고 말씀하십니다.
체력은 국력이라 했으니 아주 쬐만하게 우리나라 국력이 강해졌을 것입니다.
아마도 이를 지켜보았던 금선님도 뿌듯하셨을 것인데 허약한 남편 튼튼 길들이기에 헌신을 다한 역작이라 생각했을 겁니다.


20분을 쉬고 정상으로 이어갑니다.
군부대를 사면으로 질러 지나고 정상을 앞에 두고 가파른 오름이 시작됩니다.
그러나 깔딱고개에 비하면 이건 조족지혈이지요.
가파른 경사지를 올라 정상 조금 못 미친 곳에서 발걸음을 멈춥니다.
6.25전사자 유해발굴터인가? 인데 정상은 정상대로 이곳은 이곳 나름의 뛰어난 풍경과, 탁 트인 철원평야와 평강고원을 볼 수가 있습니다.
먼저 올라서 우리 팀 여학생이 억새사이로 들어가기에 몸 둘 바?, 아니고 눈을 둘 곳을 찾느라 애를 먹었습니다.
가까운 곳에 우리 팀 뿐 아니고 이방인도 있는데 혹시나 여기서 작은 거나 아니면 큰 거 실레를 하는 줄 알았는데 이건 큰 착각이었습니다.

그러면 그렇지.........
우리 팀 여학생들이 이렇게 예를 모르지 않을 텐데, 이건 완전히 기우(杞愚)였습니다.
이번에는 기우에 대해 공부해봅니다.
기우의 사전적 의미는 쓸데없는 걱정을 말함인데 기우의 어원은 고사에서 비롯되는데 옛날 중국 기(杞)나라의 어떤 사람이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꺼질까봐 걱정을 하다가 급기야는 식음을 전폐하고 드러누웠다는 고사에서 유래한 것이지요.
잠시 후 시인마뇽선배님께서 합류를 하십니다.
잠시 후 시인마뇽선배님께서 합류를 하십니다.
평화누리길을 답사하신지라 이곳 지리에 강하시다며 강론이 시작됩니다.


철원평야와 휴전선 너머로 평강고원, 평강저수지 등, 누군가가 백마고지를 묻는 질문에 가 본 적이 없어 확실하게 말할 수 없다며 앞에 보이는 고지를 가리킵니다.
제가 부인했는데 제가 잘못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저는 1979~80년도쯤 백마고지를 가 본적이 있었는데 아주 밋밋한 작은 뫼였거던요, 지금 생각해보니 백마고지를 간 게 아니고 지금처럼 멀리서 본 것인데 그곳이 백마고지로 착각을 했던 것입니다.
강론이 끝나자 하나 둘 정상으로 이동합니다.
정상은 테크로 넓게 조성한 헬기장으로 북녘을 보며 야영할 수 있는 최북단 야영장입니다.
조금은 강하게 북녘에서 불어오는 찬 공기를 들여 마시며 테크로 올라서면 동쪽 끝에 고대봉이라 음각한 정상표지석이 반갑게 맞아 줍니다.


▷고대산주차장에서 고대산정상까지 산행거리3.7km, 산행시간2시간05분, 해발834m, (+2m오차) 현재시간12시35분이다.
◎ 고대산정상에서

고대산(高臺山)!
고대란 직역을 하면 높은 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옛날 양반가들의 자택을 보면 높은 대에 넓은 집을 지은 것을 보고 고대광실이라고 불렀는데 고대란 그런 의미입니다.
고대산이라는 산명은 언제부터 생겨난 것일까?
이러한 문제를 다룬 산행기는 찾아도 나오지 않습니다.
궁금증을 해소하기위해 연천군청에 민원을 넣었지요, 고대산의 산명에 대한 유래, 오래전 그러니까 조선시대, 영조 때 만들어진 여지도나 철종 때 만들어진 대동여지도에는 어떻게 기록되었을까?

연천군청 산림과에서는 그렇게 깊이 있게는 알지 못한다며 알아보고 전화를 주겠다는 답변이었는데 2일이 지나 전화가 왔습니다.
대동여지도나 여지도에서의 기록을 찾을 수 없었다고 하며 연천군지에 있는 기록이라고 말해주는데 안내판에 나와 있는 그대로였습니다.
신탄리라는 지명은 숯을 굽는 마을에서 비롯되었고, 고대라는 것은 온돌방에서 사용되는 고랑, 즉 불 고랑같이 산 계곡이 고랑을 이루고 있는데서 비롯되었다고 하는 답변만 얻을 수 있었으니 오래전에는 산명이 있었는지, 아니면 없었는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
고대산은 경기도 최북단에 위치한 산으로 철원평야 휴전선 너머로 평강고원 일대를 조망할 수 있는 곳이며 6.25 격전지였고 이름 높은 백마고지를 굽어볼 수 있는 곳이기도 합니다.
백마고지 뒤로는 김일성 고지로 불리는 고암산이 보이는데 6.25한국전쟁 이전 북한 땅이었던 철원평야를 휴전을 하며 남한에 빼앗기자 김일성이 고암산 정상에 올라 눈물을 흘리며 일주일 동안 울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지는가 하면 오래전 궁예가 태봉국을 세울 때 고암산을 주산으로 삼았는데 대신들의 여론은 금학산을 주산으로 삼아야한다는 의견을 무시하고 고암산을 주산으로 삼아 태봉국을 세워 빨리 망했다는 속설도 전해집니다.
가까이 인접한 산으로 금학산과 보개산, 관인산, 성산이 있는데 금학산~고대산이나 고대산~보개산 연결종주도 인기 있는 코스 중 하나입니다.


정상은 데크헬기장으로 야영을 하는 산객들에게 인기가 좋으며 대부분 산객들이 정상에서 식사를 하는데 우리 팀도 정상에서 즐거운 식사시간을 갖습니다.
사람이 먹기 위해 사는 건지, 아니면 살기위해 먹는 건지 확실하게 알 수는 없지만 분명한 건 먹을 때는 마음도 기분도 입도 뱃속도 모두 좋다는 것입니다.
오도도손 둘러앉은 가운데는 대구 팀이 준비한 맛 나는 찬들이 있으니 만찬이 아닐 수 없었는데 대구 여학생들은 미모도 뛰어나지만 손 맵시도 뛰어나서 모든 음식이 최고의 맛이었습니다.
즐거운 시간을 마치고 주변 산세에 대해 설명을 하는데 별 관심이 없는지 하나둘 정상을 내려서고, 혼자남아 사방을 천천히 둘러보았는데 조망이 뛰어납니다.



북으로 백마고지와 뒤로 김일성고지라고 불리는 고암산이 있고 고암산 우측으로 철원평야와 평강평야가 펼쳐지고 철원평야 우측으로는 북측의 오성산이 우뚝 솟아 있으며 오성산 우측 남한측으로 계두산과 옆에 승리전망대가 위치하고 있는데 승리전망대위에 서면 북한의 초소를 내려다 볼 수도 있습니다.
승리전망대 우측으로는 한북정맥이 시작되는 대성산이 있으며 대성산 앞쪽으로 복계산이 복계산 우측으로 복주산에 한북정맥을 이어갑니다.
동으로 복주산에세 이어지는 한북정맥을 가로막고 있는 금학산이 있고 금학산 우측으로 3겹의 산들이 중첩되어 있는데 맨 뒤로는 한북정맥의 광덕산, 백운산, 국망봉, 이 우뚝하며 광덕산과 백운산 증간 뒤로 경기 제1산인 화악산이 우뚝하고 광덕산 앞쪽으로는 명성지맥이 명성산, 사향산, 관음산, 불무산, 보장산이 이어가며 가까운 앞쪽으로는 보개산, 관인산, 성산이 겹을 이루고 있고, 보개산과 관인산 V곡 너머로 희미하게 운학산과 명지산이 나타납니다.



그런가 하면 남서방향으로 소요산, 소요산 건너편으로 마차산이, 마차산 우측으로 감악산이 뚜렷하게 보입니다.
오늘뿐 아니라 언제 어느 산을 가던지 저는 조망에 많은 시간을 투자합니다.
산정에 올라 눈에 들어오는 산들을 하나하나 세밀하게 산명을 알고 익히는 게 산행에서 제일 흥미를 느끼는 것으로 혼자 남아 조망을 즐깁니다.
조망에 정신을 빼앗긴 그 시간, 선두는 삼각봉을 지나 대광봉에 도착합니다.
혼자였다면 30분 정도는 더 머물 것이지만 일행들이 있으니 아쉬움을 남긴 채 정상을 내려섭니다.
◎ 고대산정상에서 주차장 날머리로 가는 길.....
하산은 2코스로 정해졌으므로 정상을 내려서 서쪽 능선을 따라 이어갑니다.
능선을 이어가다가 뒤돌아 고대봉을 보고, 금학산을 보고, 능선에서 주변 산릉을 보는 재미도 아주 좋습니다.
멀지 않은 곳에 임대장과 시인마뇽선배님과 하이맛선배님이 보이고, 잠시 후 삼각봉에 도착하자 임대장은 삼각봉을 내려서서 대광봉으로 향하고 있습니다.


삼각봉에서 보는 사방의 풍경도 아주 보기가 좋은데 이미 정상에서 조망을 끝낸터라 오래 머물 필요를 느끼지 못하고 삼각봉을 내려섭니다.
앞서간 임대장과 시인마농선배님을 따라서니 대광봉입니다.
대광봉 역시 조망이 뛰어나고 정자까지 있어 쉬어가기 좋은 곳인데 정자에는 이미 다른 팀이 점유하고 있어 정자로 올라설 생각이 없었으며 함께 앞섰던 하이맛선배님은 그사이 대광봉을 내려서 선두로 합류했는지 모습이 보이지 않습니다.
대충 대광봉에 머물고 앞서간 선두를 따라 내려섭니다.


대광봉에서 능선을 따라 직진으로 내려서면 제1코스로 가는 길이고 우측으로 방향을 바꾸어 내려서야 제2코스로 내려서는 길인데 아마도 우리 팀은 모두 제대로 내려섰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대광봉에서 제2코스로 내려서는 길은 고대산 코스 중 제일 가파른 코스로 경사진 암릉과 칼바위능선을 지나는 곳으로 한눈을 팔 수 없는 코스이기도 합니다.
정상을 올라설 때 올랐던 능선과 점점 멀어져가는 고대봉을 보며 10분정도 내려서면 암릉이 시작되는데 바로 칼바위능선입니다.
이름은 거창한 칼바위능선이지만 그 길이가 짧고 그리 날카롭지가 않아 조금만 신경쓴다면 어렵지 않게 내려설 수 있는 능선입니다.


칼바위능선이라는 이름을 가진 능선은 전국적으로 수없이 많을 것인데 서울의 북한산과 도봉산에도 칼바위능선이 있으며 아마도 대구의 주산인 팔공산에도 칼바위 또는 칼바위능선이 있을듯한데 어디를 가나 거기서 거기겠지만 고대산 칼바위능선은 이름에 비해 큰 위용은 느끼지 못합니다.
칼바위능선 상부에서 사방을 조망하는 재미도 쏠쏠합니다.
이곳에서는 오전에 올랐던 3코스 능선과 1코스 능선을 측면에서 볼 수 있는데 1코스 주봉 옆에 문바위가 뚜렷하게 보이는데 언젠가 1코스로 올라 3코스로 내려선 적이 있는데 오래전 일이라 문바위의 기억은 뚜렷하지 않습니다.
문바위 능선 우측 멀리 마차산과 감악산의 희미한 형체를 보고 발아래 펼쳐진 신탄리 풍경을 보고 칼바위능선을 내려섭니다.


앞서 내려가는 시인마뇽선배님이 아주 힘들어 합니다.
시인마뇽선배님은 약15년 전쯤 춘천 용화산에서 추락 사고를 당하고 난 이후로 암릉길에 대한 트라우마가 있어 암릉만 나타나면 ‘어매 기죽어’부터 나타난다고 하시는데 트라우마를 없애려고 함께 용화산을 산행했는데도 마음속 파고든 트라우마는 좀처럼 사라지지 않는다고 하십니다.
임대장이 앞에서 잡아 주기도 하고 걱정과 초조한 눈빛으로 조언도하며 내려서다 보면 전망대에 도착합니다.




전망대에는 최북단에 있는 산, 북녘을 바라다 볼 수 있는 산, 큰고래에서 유래되었다는 등등이 기록되어 있는데 정작 아주 오래전 마을 사람들이 부르던 산 이름이나 여지도나 대동여지도에 무슨 산으로 기록되었는지는 적시하지 않은 우를 범하고 있습니다.
먼저 하산한 일행들의 인솔 등을 우려해 임대장에게 먼저 하산하라 부탁을 한 후 시인마뇽선배님과 내려서다 보면 또 한 차례 경사가 심한 까탈스러운 길을 내려서야했는데 막판 안전사고를 지향하기 위해 천천히 내려섭니다.


전망대에서 30분을 내려서 평범한 바위를 지나는데 이정목에는 이 바위가 말등바위랍니다, 이러한 바위마다 이름을 붙인다면 설악산은 100만개 바위에 이름을 붙인다고 해도 모자랄 판이니...... 그냥 그대로 받아들이고 사진을 찍습니다.
말등바위를 지나 7분을 내려서니 이정목이 가로막는데 2코스에서 3코스로 이어지는 갈림길입니다.
안내판에 있는 지도를 보니 3코스로 가야 정답같은데 2코스로 내려서는 게 거리가 가까워 보이므로 하산을 2코스로 계속 이어가기로 하고 우선은 쉬어가라고 긴의자를 설치했으니 물 한모금 마시며 5분여 쉼을 하고 다시 하산으로 접어듭니다.


금방 내려설 것 같은 등로는 완만과 급경사지를 번갈아 지나며 이내 끝이 보이게 됩니다.
반가운 얼굴이 보이네요.
담이 결려 산행을 함께하지 못한 성봉현씨가 마중을 나온 것인데 반갑고 고마운 친구인데 정상에서 식사를 하며 임대장과 성봉현씨 이야기를 나누고는 이후로 산행에 열중하느라 미안하게도 기억속에서 잠시 사라졌는데 얼굴을 보니 미안한 생각이 듭니다.
서로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 휴양림을 지나 조금 더 내려서니 반가운 일행들이 기다리고 있었으니 왜 미안한 마음이 없을까? 당연 미안하지요.


지금은 모라고 하겠지만 세월이 10여년 지나보면 아우들도 저나 시인마뇽선배님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을 겁니다.
▷고대산 주차장에서 3코스~고대봉을 경유~2코스로 원점회귀로 고대산주차장까지 산행거리7.0km, 산행시간5시간10분, 해발142m, 현재시간15시40분이다.
◎ 에필로그
오늘 산행의 주된 목적은 최북단 산정에서 철원평야와 북녘을 보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보는 것에서 만족하지 않고 최대한 가까이 접근하는 것입니다.
주차장을 떠난 버스는 백마고지 역으로 달립니다.

백마고지 역에서 백마고지는 제법 먼 거리이고 백마고지 전망대는 위령탑이 있는 곳이었으니 버스는 다시 백마고지 역을 나와 위령탑이 있는 백마고지전망대로 이동합니다.
전망대 주차장에서 내리면 백마고지위령비가 있습니다.
재형아우에게 제 이름이 있나 찾아보라고 하니 대답은 당연하겠지요.
제 이름이 위령비에 있다면 귀신이지 제가 사람이겠냐고요?
위령비를 지나고 위령탑을 지나면 평화의 종이 있는 백마고지 전망대에 서게 됩니다.


79년도인가 제가 아주 젊었던 시절 이곳에 왔다갔는데 너무 오래전이라 기억이 제대로 나지 않습니다.
당시에는 땅굴사건으로 통제가 아주 심하던 때인데 암튼 그 가운데 이곳 최전방 그것도 백마고지전망대를 왔다가 갔었습니다.
11시 방향으로 백마고지가 보이고 1시2시 방향으로 철원평야가 펼쳐지는데 79년도에는 이곳에 농사를 짓지 않고 억새가 무성했었던 기억이 납니다.
남학생들은 별 흥미를 느끼지 못하는 것 같은데 여학생들은 아주 재미있어하고 흥미도 느끼고 매우 만족스러워 하는 것 같습니다.


다음부터는 남학생들은 빼고 여학생들만 모시고 역사나 인문 기행을 해야 할 듯합니다.
멀어져 갑니다.
백마고지도 멀어져가고, 고대산도 멀어져 갑니다.
황혼녘 길게 드리운 그림자처럼 아쉬움이 아주 길게 남기며 멀어져갑니다.
차창으로 공산당 당사로 쓰였던 건물을 수리를 하고 있는 풍경이 비치는가 하더니 다시 멀어져 갑니다.
오래전 같으면 수 십 번 검문을 받으며 지나야 했을 최전방을 한 번의 검문도 없이 프리패스를 합니다.
즐거운 식사시간을 갖습니다.


서울 팀은 이 시간만 되면 작아집니다.
그건 대구 팀이 대구만 내려가면 호화롭게 대접을 하다 보니 윗사람으로 제대로 할 일을 못해서인가 봅니다.
그러나 중요한건 서로가 이해를 할 수 있다는 것임에는 아무런 이유가 없을 것입니다.
서두에 나훈아의 테스형에서
세상이 살기 힘들다 하소연으로 시작했습니다.
삶이란
언제나 슬프고 힘들지만 세월이 지나고 나면 그 때가 그리워진다고 러시아 시인 푸시킨이 말합니다.
그렇습니다.
힘들어도 지금이 행복한 때입니다.
서로 사랑할 사람이 있고 서로 위로 해주고 위로받을 사람이 있다는 건 행복입니다.
해가 바뀌면 더 해맑은 모습으로 만나기를 소원합니다.
추신: 대구가면 칠곤 원장에게 안부 전해주고 담에는 얼굴 꼭 보자고 전해주시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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