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독립군과대구참사랑산악회 합동산행기

대구, 참사랑과 함께한 북한산 의상능선 합동산행이야기

범솥말 2026. 1. 3. 00:18

제7차 서울 독립군과 대구 참사랑의 교류 산행이야기

북한산 의상능선 합동산행이야기

 

산행일시: 20101024

누구와: 서울독립군과 대구 참사랑산악회원

산행거리: 8

산행시간: 7시간20(10:20~17:40)

산행코스:이북5도청(10:00)-비봉들머리(10:20)-향로봉(11:10)-비봉(11:30,560m)-사모바위(11:50)-승가봉(12:00)-문수봉(12:50.727m)-청수장암문(13:00)-나월봉(14:10,657m)-부왕동암문(14:30)-용혈봉(14:50,851m)-용출봉(15:10,571m)-가사당암문(15:30)-의상봉(15:30'536m)-산성주차장날머리(17:40)

산행에 앞서.....

우리가 사회생활을 하면서 가족모임, 직장모임, 사회적인 모임, 그리고 취미생활을 통한 모임 등등 많은 모임을 가지며 살아가는 것이 보편화되어 있는 형태이나 직장이나 사회모임을 하면서 유지하던 모임이 자의나 타의에 의해서 해산이 되거나 퇴색해 버리는가 하면 또 다른 모임이 생기는 현상이 반복되는 것이 일반적이라 할 것입니다.

일명 나 홀로 산을 찾는 사람들의 모임으로 "독립군산행 모임" 명명된 서울과 대구의 산행교류는 4년이 지난 현재까지 흐트러짐 없이 푸르름을 간직하고 있으니 자축을 하지 않을 수 없는 일입니다.

봄철이면 신랑이 신부를 맞는 것처럼 설레는 마음으로 대구로 향하고 가을철이면 고된 시집살이를 하다 친정을 방문하던 옛 우리의 어머니들같이 두근거리는 맘으로 서로를 궁금히 생각하며 친교를 하며 산행이후 일상으로 돌아가 열심히 살아가는 우리들이 자랑스럽고 또한 영원하기를 바라는 맘입니다.

금년 가을철 모임은 서울팀의 주선으로 이루어지며 대구팀이 가고 싶은 산 1위로 꼽고 있는 삼각산으로(일명 북한산) 여러 코스 중 이북5도청을 지나 비봉매표소를 들머리로 시작하여 문수봉과 의상능선을 거쳐 북한산성 주차장을 날머리로 삼기로 했습니다.

서울의 허파역할을 하고 있는 삼각산은 예로부터 금강산, 지리산, 묘향산, 백두산과 함께 5악에 드는 명산으로 꼽아 임금님 용상 뒤에 걸려있는 일월5봉도에(해와 달 그리고 5개봉우리가 그려져 있는 그림) 표기되어 있는 명산이기도 합니다.

 

이북5도청 앞에서 접선을 이루고

오늘은 대구팀의 독립군과 참사랑산악회원이 서울로 원정 산행하는 날

설레는 맘으로 만나기로 약속된 장소인 이북5도청 앞에서 대구팀에 앞서 서울의 시인마뇽 우명길선배님, 하이맛 이규성 선배님, 성봉현씨와 조부근씨 그리고 나 5명이 약속된 장소에 미리 나와 대구팀을 맞고 일찍부터 서둘러 서울로 출발한 대구팀 22명은 예정된 시간보다 20여분 연착하여 도착을 합니다.

<이북5도청 앞에서 단체사진>

오랫동안 보지 못했기에 서로의 안부를 물으며 그간의 소식을 간단히 접하고 단체사진한방을 시작으로 비봉매표소 입구로 향하고 만약의 불상사에 대비해 단체로 준비운동을 하고 본격적인 산행에 나섭니다.

처음부터 가파른 계단길을 올라 한바탕 땀으로 목욕을 하며 오르는 등산로 좌측으로는 멀리 수리봉(일명 족두리봉)이 보이고 바로 위에는 수직의 절벽을 측면으로 비춘 향로봉과 하늘과 맞대고 있는 향로봉의 능선은 마치 용아를 닮은 한 폭의 그림과도 같았습니다.

향로봉을 감상하며 흐른 땀을 식히고 다시 출발한 우리는 절터를 지나 비봉과 향로봉 협곡을 따라 어렵게 능선에 올라섭니다.

좌측으로 10분만 오르면 향로봉 정상이나 이제껏 힘을 쏟아 부은 탓에 대부분이 향로봉을 포기하고 몇몇이 향로봉에 올라 시원스레 조망되는 가야할 의상능선과 백운대와 만경대 그리고 문수봉과 보현봉을 카메라에 담고 바로 앞에 우람차게 보이는 비봉으로 가기위해 향로봉을 내려섭니다.

사실 향로봉은 최고봉에서 사방을 조망하는 맛도 있지만 향로봉을 제대로 알려면 족두리봉 쪽의 직벽을 올라 용아와 같이 아름다운 향로봉 능선을 지나며 좌측으로 불광사 계곡에서 오르는 계곡의 아름다운 바위들과 우측으로 비봉 능선의 무게가 넘치는 무명봉의 아름다움을 보는 것이 진정한 향로봉의 진수일 것이나 오늘은 여러 가지 사정을 감안하여 약식으로 향로봉을 볼 수 밖에 없었습니다.

<진흥왕 순수비가 있는 비봉에 도착하고>

비봉을 오르는 길은 동쪽과 서쪽 모두 있으나 서쪽에는 짧은 직벽 구간은 사고가 빈번하게 발생하자 정상적으로 등산장비를 갖춘 사람들로 제한을 하고 있는 상황으로 동측을 통해 비봉정상을 오를 수 밖에 없었으므로 동측 오름길 앞에는 많은 사람들이 줄을 서서 차례를 기다리고 우리팀에서 향로봉에 가지 않은 회원들은 비봉을 선등한 사람들도 있는가 하면 아래서 암릉의 공포증이 있어 오르지 못한 대원들을 설득하여 다수가 비봉을 올라 국보3호인 북한산 진흥왕순수비를 옆에 세우고 카메라에 담는가하면 사랑스럽게 안고 카메라에 담기도 하며 즐거움을 만끽하며 사방으로 서울의 모습을 조망도 해 봅니다.

<비봉에서>

 

비봉은

삼국시대 신라의 진흥왕(재위 540576)이 한강의 하류지역을 새로운 영토로 편입시킨 뒤 이 지역을 돌아보고, 그 사실을 기념하기 위해 건립한 순수관경비(巡狩管境碑)이다. 원래 북한산 문수봉(文殊峰) 아래쪽의 비봉(碑峰)에 세워졌다.

 

이 비는 조선시대 초의 유명한 스님 무학대사(無學大師)의 비로 알려져 왔으나, 조선후기의 유명한 금석학자 추사(秋史) 김정희(金正喜, 17861856)가 년 순조 16(1816)과 그 이듬해 비봉에 올라 비문을 판독함으로써 신라 진흥왕의 순수비임이 밝혀졌다. 비의 좌측면에는 당시 김정희가 이곳을 방문하여 비문을 판독한 사실이 새겨져 있다. 이에 관한 상세한 내용은 김정희의 예당금석과안록(禮堂金石過眼錄)에 실려있다.

비석은 직육면체의 화강암으로 자연 암반 위에 새긴 2단의 얕은 괴임에 세워졌다. 비석 상단에는 덮개돌을 끼우는 부분이 있으나 덮개돌은 아직까지 발견되지 않았다. 1972825일 비의 보존을 위해 경복궁 근정전 회랑에 옮겨 놓았다가, 현재는 국립중앙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

상당시간을 비봉에서 보내고 예정에 차질을 빗을까하는 염려속에 비봉을 떠나 사모바위로 향하고 사모바위에 도착하니 많은 인파가 몰려 장사진을 이루고 있으니 지나는 길에 사진 한두방으로 대신하는가 하면 일부는 사모바위중간까지 올라가 북한산에 왔던 추억을 새기기도 합니다.

<슬픈전설을 지니고 있는 사모바위>

구기동 쪽에서 사모바위를 보면 하염없이 북쪽을 바라보고 있는 모습을 하고 있는 사모바위에는 이러한 전설이 전해지고 있습니다.

북한산 사모바위의 전설

조선 인조 임금때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전쟁터에 나갔다가 다행히 살아서 고향으로 돌아왔으나,사랑하는 여인이 청나라로 잡혀갔다고 한다.

남자는 사랑하는 여인이 풀려나 돌아오기를 애타게 기다렸다.

드디어 전쟁이 끝나고 청나라로 끌려갔던 여인들은 풀려났으나,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북한산 자락 지금의 홍은동 지역에 모여 살았다고 한다.

남자는 사랑하는 여인을 찾으려고 그 지역을 샅샅이 뒤졌지만 찾지를 못했다.

결국 그는 북한산에 올라 북쪽을 바라보며 이제나 저제나 사랑하는 여인이 돌아오기를 기다리다 바위가 되었다고 한다.

 

통천문을 지나 문수봉으로.....

한없이 시간을 보내려는 대구팀을 이끌기 위해 선두에서서 승가봉으로 향합니다.

중간과 후미로 나누어 뒤를 있고 승가봉에 올라 흐르는 땀을 닦은 후 통천문에 도착해 승천하는 용의 기세처럼 당당하게 통천문을 지나서 문수봉 암벽길과 청수동암문으로 갈라지는 갈림길에 당도하니 점심시간이 되었습니다.

배고파하는 일부와 문수봉을 지나서 식사를 하자는 의견이 대두되고 결론은 문수봉을 지나 725봉에서 점심을 하기로 하고 암벽에 자신있는 사람은 우측으로 오르고 안전하게 갈 사람은 좌측 길로 청수동암문으로 오르기로 하고 선두에 서서 대구팀을 안내하다 보니 우리 일행 모두가 문수봉 암벽 길로 오르게 되었습니다.

<문수봉을 오르는 암릉 절벽길>

걱정은 되지만 지방팀은 언제 이러한 기회가 주어질지 예상할 수 없으므로 다행이라는 생각을 하며 문수봉을 오르며 신의 예술품이 진열된 진열장 같은 비경을 카메라에 담고 또 담으며 문수봉을 오릅니다.

경치가 좋아서인지 한곳에 머무르면 자리를 뜨기 싫어하는 일행들을 부추기며 청수동암문을 지나 725봉에 도착하니 후미는 문수봉에서 출발도 안한 상태입니다.

<문수봉을 배경으로.....>

<문수봉 정상에 오르고.....>

725봉에서 점심을 하기위해 자리를 보지만 여러명이 함께 식사할 장소가 없어 725봉 아래로 이동하기로 하고 내려섰으나 나는 후미를 안내하기위해 혼자 남아 시간을 보내고 있자니 한동안 후에야 후미가 모습을 나타내고 식사를 아래서 한다는 말에 시인마뇽선배님이 불편한 심기를 노출시키니 설득하여 아래쪽으로 동행합니다.

 

나한봉 밑에서 점심을

3곳으로 나누어 맛있는 식사를 하면서 대구의 새벽이야기는 새벽부터 비가 내려 서울 북한산 산행 약속을 해놓고 안갈 수도 없는 입장이고 간다 해도 간다고 약속한 회원들이 비를 핑계로 빠지면 낭패라는 압박을 받았다고 합니다.

그래도 강행하기로 했고 하나둘씩 모인 회원들은 모두 모여 하나의 걱정은 덜었으나 산행 중 계속 비가 내리면 어쩌나 하는 압박은 대구를 벗어나며 해소되었다 합니다.

<청수동 암문에서.....>

그 이유는 비가 내리던 데구를 출발해 서울로 들어서니 "언제 비가 왔더냐?"하는 날씨속에 서울팀을 만나니 더없이 기뻤다는 이야기 입니다.

맛있게 점심을 마치고 간단히 후식을 하고는 나한봉으로 오르는 옆 등산로를 따라 갑니다.

나는 능선으로 올라 삼천리골 계곡을 내려다보며 혼자서 나월봉으로 향합니다.

<나월봉과 뒤로 백운대,인수봉,망경대,앞쪽 노적봉>

갖가지 형상을 하고 있는 바위들을 지나 나월봉 봉우리 뒤로 보이는 백운대와 노적봉의 모습이 더욱더 웅장해 보이고 노적봉은 노적가리를 쌓아 것 같이 보인다 해서 붙여진 노적봉에는 얽힌 전설이 전해지고 있으니 이러합니다.

 

◆노적봉 관련 이야기

고양군 숫돌고개에서 왜병과 접전을 한다.

이때 숫돌고개 남쪽 진기리에 늙은 할머니가 어디에선가 나타나서 떡을 팔고 있었다.

왜병들은 숨가쁜 싸움에 목이 타도록 갈증이 난다.

마침 그들은 노적봉 아래를 휘돌아 진기리 앞으로 흘러내리는 냇물에 다다른다.

그런데 냇물이 뜨물과 같이 뿌옇다.

왜 냇물이 이러냐고 늙은 떡장수 할머니에게 물으니 그녀는 노적봉을 가리키며 저곳에 식량을 수만석 쌓아 놓고 대군대가 진을 치고 있는데 군량미를 하도 많이 씻기 때문이라고 일러주자 왜병들이 바라보니 과연 산속에 어마어마한 노적가리가 보였다. 이들은 냇물을 뜨물이라 여기어 마음놓고 정신없이 들이마셨다. 그 할머니는 미리 사람들을 시켜서 노적봉에 이엉을 두르게 하여 노적가리처럼 꾸미고 그 아래 개울에 회를 풀게 하여 회독으로 왜병을 죽어가게 만들었다 한다.

진기리 길가에는 머리 없는 지장보살 석상이 지금도 초연히 서 있는데 임진왜란 당시 떡장수 할머니의 화신이라 하는데 어쩌자고 왜정 초기에 그네들이 지장보살의 머리를 잘라가 버렸다고 전한다.

<증취봉에서 본 용혈봉과 용출봉>

단풍이 곱게 물든 나월봉을 조심스럽게 내려서 부왕동 암문에 도착해 한숨을 돌리고 다시 이어지는 평온한길을 지나 시인마뇽 선배님과 함께 증취봉에 올라서 북한산 전역을 둘러보고는 증취봉을 내려서 용혈봉에 도착합니다.

<용혈봉에서 본 용출봉>

<용혈봉--뒤로 의상봉이 보인다>

용혈봉!!!

2007730일 오전11시 이곳 용혈봉 정상에서 뜻하지 않은 낙뇌사고로 4명이 목숨을 잃었던 곳으로 당시 일행을 이끌던 리더의 배낭에 꽂았던 스틱에 벼락이 치면서 배낭이 터지고 주위에 있던 일행3명과 함께 현장에서 즉사하고 또 다른 일행 4명이 크게 부상을 입었다고 보도한 내용을 떠올리며 숙연한 마음으로 용혈봉을 내려서고 용출봉 오름길에 중간에 휴식을 취하는 중 대구팀의 여자4명과 합류하며 맨 후미 팀이 되어버렸습니다.

<미녀3총사의 포즈>

<강아지 바위>

간단한 간식을 하며 삼천리골 방향에 있는 강아지 바위를 케메라에 담고는 용출봉으로 오릅니다.

의상능선의 봉우리중 제일 높고 멋진 용출봉은 갖가지 형상을 한 바위들이 즐비하고 설악산의 철계단을 방불케하는 길고 높은 철계단을 오르는 스릴을 느끼며 봉우리로 올라서면 봉우리 위는 잡목과 소나무 숲이 조성되어 있고 공간이 넓어 위험성도 없는 안전지대입니다.

정상에는 여러 팀이 진을 치고 휴식을 취하고 있고 우리 팀은 이미 의상봉을 향해 내려간 후이므로 잠시 머물고 우리도 경사진 등산로를 따라 의상봉으로 출발하는데 여성들이 내려서기에는 위험한 구간이 여러곳이 있어 조심스럽게 내려서 가사당 암문에 도착하여 우리를 기다리는 일행을 만나 의상봉을 오릅니다.

의상봉에 오르니 선두팀은 후미를 기다리다 벌써 하산을 하였으므로 오랫동안 머물 수 없어 잠시 머물며 원효봉을 시작으로 염초봉을 지나 백운대로 오르는 릿지코스를 설명하고 선두가 내려선 길을 따라 하산길로 접어듭니다.

경사진 암릉마다 사람들이 많이 다녀서인지 미끄럽게 변했고 옛날에 여러차례 다니던 대서문 방향의 험한 길은 이제는 제한지역이 되고 좌측으로 완만하고 안전한 길로 바뀌었습니다.

<쌍토끼바위에서>

하산 길 중간 쌍토끼 바위에 도착해 기념촬영을 한 후 발걸음을 재촉하니 북한산성 주차장에 도착하여 대장정의 삼각산 산행을 마무리 합니다.

<무탈하게 주차장에 도착하고.....>

 

이   후

주차장에서 일행 모두를 기다려 10여분 떨어져 있는 식당 둥굴장으로 이동하여 산행이야기를 나누며 허기진 배를 채웁니다.

< 뒤풀이 식사를 하고.....>

즐거운 시간을 보내다 대구까지 가야하는 일행들로 예정보다 이른 시간에 자리를 털고 해가 바뀌면 내년 봄철 건강한 몸으로 다시 만날 것을 기약하며 아쉬운 이별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