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차 서울 독립군과 대구 참사랑의 교류 산행이야기
수도산~양각산 합동산행이야기
산행일시: 2010년04월26일
누구와: 서울,대구독립군과 참사랑산악회원
산행거리: 약10㎞
산행시간: 5시간30분(10:20~15:50)
산행코스:심방마을들머리(10:20.)-백석산(11:00,1.018m)-양각좌봉(12:10.)-양각산(12:30,1150m)-시코봉(13:50.1.237m)-신선봉(14:40.1.313m)-수도산정상(15:00,1.317m)-수도암날머리(15:50)

오늘은 1년에 두 번 있는 대구독립군의 접선이 이루어지는 날...........
상반기는 대구독립군의 주최로 대구 참사랑산악회와 합동산행을 하는 날입니다.
직장의 업무가 아침9시가 되어 종료되지만 사정에 의해 조퇴를 하고 집사람에게 부탁하여 배낭과 도시락을 배달받고 6시15분이되어 서울역에 도착을 하니 함께 할 4명이 이미 나와 있어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 6시25분이 되자 열차는 출발을 하고 긴 잠에 빠져 1시간40분이 지난 뒤 KTX는 동대구역에 도착을 합니다.
동대구에 도착하니 오랜만에 만나는 반가운 친구들이 열차 시간에 맞춰 기다리다가 우리와 조우를 하며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 대기하고 있는 25인승 승합에 승차하여 88고속도로를 이용해 합천을 지나 거창으로 들어서서 거창휴게소에서 들러 대구팀에서 준비해 온 아침을 간단히 해결합니다.

<뒷쪽 오도산과 앞쪽의 미녀봉>
휴게소 남쪽으로는 오도산과 서남으로 길게 뻗은 미녀봉이 자리를 잡고 있는데 사진으로 보았던 오도산의 미녀봉을 이렇게 가까이서 볼 수 있다는 것이 어찌 보면 행운이라 할 수 있을 것이며 맞은편인 북쪽으로는 비계산이 있는데 사실 이 휴게소도 비계산 자락에 위치하고 있는 것인데 비계산은 정상부의 3봉이 보이며 3봉 사이를 잇는 구름다리가 높게 보이는데 당장 오르고 싶은 충동을 느낍니다.
휴게소에서 아침식사를 마치고 가조인터체인지를 빠져나온 버스는 면사무소를 벗어나 중촌리 심방마을로 향하고 길가 양쪽에는 아침햇살에 모든 식물들의 생동하는 소리가 귓전을 때리는 듯합니다.
멀리서 보이는 아름다운 산이 점점 가까워지고 어디선가 본 듯이 눈에 익은 산이다 생각하며 유심히 보니 금귀산과 보해산으로 금귀산과 보해산 꼭 1년전 새마포산악회와 함께 등정을 했던 곳으로 당시에는 반대편 거기리마을 쪽에서 원점회귀를 했는데 이번에는 가조 쪽에서 보는 것으로 능선에서 바라보던 절경보다 밑에서 보는 절경이 더욱 뛰어나다는 생각과 산은 작지만 보해산은 일반 산들에 비해 손색이 없음을 다시 느끼게 합니다.

<심방마을에서 산행을 시작하고>

<노각나무 숲을 지나고>
막다른 길을 한동안 달려 고려말 심방이라는 사람이 살았다는데서 불려지기 시작했다는 심방마을에 도착해 버스를 내리며 산행채비를 마치고 단체사진을 찍고 가파를 들머리를 들어서 능선을 타고 오릅니다.
능선을 오르면서 어지러운 잡목들을 산 주인이 간벌을 하여 산행을 하는 모든 사람들 마음까지 시원스럽게 만들고 오름길에 만난 인상적인 나무가 있으니 시인마뇽선배님에게 한수 배우니 노각나무라고 하시네요.
가파르게 경사진 오름을 한동안 한 뒤 능선에 올라 반대방향으로 5분여를 올라 오늘의 첫 번째 등정하는 힌덤이산 (백석산)에 도착을 합니다.

<흰덤이산(백석산)정상에서>
시원스럽게 뻗어 내린 산줄기는 요의 살아 움직이는 형상을 하며 보해산을 지나 금귀산을 거쳐 아래쪽으로 내달려 뻗었고 웅양저수지를 담고 있는 웅양면 일대는 마치 한 폭의 그림과 같이 보입니다.
웅양면 뒤쪽으로 보이는 백두대간의 덕유산과 삼봉산과 대덕산과 못미처 수도지맥의 분기점인 초점산 삼도봉 등을 조망하며 뒤이어 온 일행들과 합류를 하고 천정미님의 고향이 웅양면이라며 눈앞에 보이건만 오늘 만큼은 갈 수가 없다고 안타까워합니다.




<흰더미산 정상에서.....>
사실 박영홍님과천정미님 부부는 고향에 불가피한 사정이 있어 불참을 통보했었는데 임상택대장의 강한 요청에 의해 가족행사를 취소하고 산행을 하기로 했다니 고마울 따름 입니다.
힌덤이산에서 한동안을 머물며 산 이야기를 나누고는 양각산으로 향합니다.
일명 쇠뿔산이라고도 불리는 양각산은 정상인 양각산과 좌측의 양각좌봉이 소뿔같이 생겼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며 양각산으로 오르는 여러 곳에는 또 다른 각의 하나인 노각나무가 산재되어 있으니 양각에서 삼각산이라 불려야하지 않을지.....

<헬기장에서 보는 양각산>

<헬기장에서 보는 산포리 풍경>

<헬기장에서 보는 금귀산과 보해산 풍경>
헬기장을 지나 물고기바위를 지나 점점 높이를 더해가며 전망도 높이와 비례합니다.
양각좌봉에 오르니 선두는 양각산에 이미 도착했고 산길을 따라 우리팀들이 여기저기 흩어져 정상을 향하는 모습들이 아름답게 보이고 좌봉을 내려서 양각산 오름길우측에는 바위봉우리가 절경을 이루고 근처 정상으로 가는 길 여기저기에는 작은 돌탑을 여러 무더기를 쌓았으니 보기에 좋았습니다.


<전망바위에서 조망을 하고.....>

<책바위에서 폼도 잡아보고....>

<물고기바위도 지나고.....>



<양각산 좌봉 암릉지역에서>

<양각산 정상 직전 돌탑을 지나고.....>

<정상직전 홈통바위>
돌탑을 지나 능선에 오르니 펑퍼짐한 바위에 원형의 홈통이 있는데 자연적인 형상은 아닌것 같고 그러면 누가 왜 이곳에 어떠한 이유로 이러한 홈통을 팠는지에 대한 의문을 남긴 채 큰 바위를 하나 넘으니 양각산 정상입니다.

<양각산정상석>
양각산에서는 사방의 조망이 가능하여 심방마을부터 올라선 능선으로 아래로 보해산과 금귀산이 위로는 흰덤이산과 양각좌봉이 모두 한눈에 들어오고 백두대간을 잇는 고봉들과 가야할 수도산이 멀게 보입니다.

<양각산 정상에서 임상택님과.....>
양각산(兩角山·1,150m)은 경남 거창군 웅양면과 가북면의 경계에 솟아 있는 산으로 일명 쇠뿔산이라고 하는데 이유는 소의 양쪽 뿔을 연상케 하는 두 개의 봉우리 형태에서 이름이 비롯된 것으로 추정되며 쇠머리고개를 뜻하는 우두령(牛頭嶺), 소의 밥그릇인 구유(구시)를 상징하는 구수(口水) 마을, 쇠불알(우랑)을 뜻하는 우량동(牛郞洞) 마을 등의 지명이 모두 소와 관련된 것이랍니다.
그러나 대동여지도나 거창고읍지 등에는 양각산을 금광산(金光山)으로 표기하고 있고 이 산 남쪽에는 금광 마을이 있으며 금광사라는 절이 있었다고 전하는데 예부터 금이 많이 묻혔다는 갑설과 금이 많이 묻혔다는 설보다는 마을 주변의 산 사면 암벽에 항상 물기가 남아 있어 이것이 햇빛에 반사돼 번쩍번쩍 빛이 난다는 데에서 붙여진 이름이라는 을설도 전하고 있습니다.
선두는 이미 양각산을 내려선 상태에서 후미는 주변 경치에 반해 조망을 하며 오석으로 세워진 정상석에서 연실 카메라에 순간들을 담는가 하면 가야할 능선은 살아 움직이는 뱀처럼 힘차게 솟아 수도산에 이르고 다시 한동안 밑으로 떨어지는가 하던 능선은 힘차게 솟아오르며 단지봉을 만들고 승천하는 용처럼 가야산 정상을 향해 솟구치는 형상을 하고 있습니다.


<양각산정상에 선 성봉현님>
멀지않은 곳에서 선두팀이 점심상을 준비하고 빨리 오라고 외쳐대니 어쩔 수 없이 빠른 걸음으로 양각산을 내려서 소나무가 있는 안부에서 점심을 해결합니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라고 했듯이 먹어야 즐거운 산행도 하는 것이며 특히 산에서는 때를 놓쳐 체력이 급격하게 떨어져 위험한 상황이 발생되는 경우가 있으니 식사는 중요한 임무중 하나로 각자 맛있는 점심을 준비해 왔고 나도 집사람이 정성들여 준비해 준 반찬을 여러 사람들이 먹는 식단에 올려놓고 맛있는 식사를 합니다.

<지나온 양각산을 보고>


<조망>

<즐거운 식사시간~~~>
30여분 대화를 나누며 맛있게 식사를 마치고 산행이 재개되며 성질 급한 대원과 여성대원들이 앞으로 나가고 걸음이 느린 시인마뇽선배님과 동행하는 몇몇만 뒤로 남습니다.
식사한 자리에서 얼마기지 않아 금광갈림길 이정표가 있는 지점을 지나며 생각하니 이곳은 옛날부터 금이 많이 나던 고장으로 웅양면 일대는 금과 관련이 있는 지명이 많다고 하는데 이정표에서도 금광이길을 나타내는 것을 보니 이곳 근처 어디엔가 금광이 있었나 봅니다.

<1166봉 정상으로 누군가가 갈참나무에 달아놓은 리본이 바람에 나풀거리린다. >

<파노라마로 보는 가야할 수도산 풍경>

<파노라마로 보는 양각산과1166봉 풍경>
1166봉은 수도산에서 단지봉으로 이어지는 능선을 조망하기에는 으뜸입니다.
지나온 양각산도 흐트러짐 없이 한눈에 들어 옵니다.


1166봉을 지나 암릉길로 이어지던 길은 한차례 공룡같은 큰 바위가 앞을 막고 버티고 있으니 조심스레 올라서 상쾌한 기분을 발산하며 셔터를 늘러대고 앞서간 대원들은 능선 높은 곳의 벽바위에 안착을 하였습니다.


<벽바위를 넘으며>
능선길은 암능길이 많아 직사광선을 그대로 쬐며 산행을 해야되는 어려움이 있지만 반대급부로 사방 조망이 뛰어나므로 기분을 업시킨 상태로 선두를 쫒아 벽바위를 넘어 시코봉에 도착을 합니다.
1327m의 시코봉은 백두대간의 초점산 삼도봉에서 분기하여 수도산으로 이어지는 능선이 수도산으로 가기위해 이곳 능선에서 양각단맥과 합류하는 곳이라는 권재형씨의 설명이 곁들이고 양각산에서 수도산으로 이어지는 능선은 육산과 암릉이 조화를 이루어 지루하지 않은데다 암릉길 마다에 있는 바위와 노송들의 조화가 어울리며 오름과 내림을 반복한다 해도 고도의 차이가 많이 나지 않으니 힘들지 않고 백두대간과 가야산으로 이어지는 능선 등의 조망이 뛰어나니 좋은 환경을 갖추었다고 느껴집니다.

<시코봉을 지나 신선봉으로.....>

<신선봉으로 가며 보는 수도산 정상>

<신선봉으로 가면서.....>
시코봉을 지나 신선봉으로 가는 도중 또 하나의 거대한 바위가 있으니 지도에 나오는 삼각바위 같은데 위는 고르지 못해 오래 머무를 수도 없다. 삼각바위에 올라 수도산 정상을 보니 다른 팀의 산님들과 우리 팀의 선두가 벌써 수도산 정상에 도착한 모양입니다.


<수도산 서봉인 신선봉에서>
삼각바위에서 한동안을 올라 갈림길 앞에서 권재형님이 부르는 소리에 좌측의 봉우리로 올라서니 이곳은 수도산 신선봉으로 수도산에서 분기하는 황강지맥의 분기점이라고 하나 내가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황강지맥보다 수도산의 서봉이라고도 불리는 신선봉을 그냥 지나칠 뻔 했다는 것으로 대부분의 산님들이 신선봉을 그대로 지나치고 우리 일행으로는 권재형님과 성봉현님 그리고 나 3명만이 신선봉을 경유한 것 같습니다.
신선봉을 내려서 가까이에 있는 정상에 오르니 일행이 수도산 정상에서 다시 한자리에 모였습니다.
각각의 무리를 지어 산행을 하다 보니 심방마을에서 출발하여 힌덤이산, 점심시간, 그리고 수도산 정상에서 한자리에 모인 것입니다.



<수도산정상에서>
정상에는 우리 일행 이외에도 몇몇 팀이 있어 반가이 인사를 나누고 실례를 무릅쓰고 다른 팀에게 카메라를 4대를 맡기고 한자리에서 번갈아가며 사진을 찍어 달라고 부탁을 하며 한동안 즐거운 추억을 만들고 카메라에 담습니다.
한동안을 정상에서 보냈는데 선발진은 후미에 비해 30분이상 먼저 정상에 도착했으니 지루한 시간이었는지 서둘러 수도암으로 하산을 시작합니다.




<수도산정상에서>

<수도산정상에서 보는 신선봉>
수도산 정상을 중심으로 신선봉이 서봉이라 부르고 동쪽 수도암 갈림길에 있는 봉우리를 동봉이라 부르니 수도산도 삼봉산이 됩니다.
모두 내려가고 아무도 없는 수도산에서 다시 사방을 조망하고 쓸쓸하게 내려서며 언제 다시 올지 기약 없는 수도~가야 연계산행을 생각하며 그때나 다시 동봉을 밟지나 않을까 하는 기대를 가져 보며 하산을 합니다.
동봉에서 수도암으로 내려서는 길은 계속 내리막으로 이어지므로 힘든 줄은 모르고 길가에는 간간이 암릉이 나오고 암릉과 불가분의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노송의 모습 또한 암릉과 더불어 한폭의 동양화를 연상케하고 좌우로 꽉 들어찬 참나무 숲 사이에 힌덤이산에 널려있던 노각나무가 이곳에도 자리를 지키고 있습니다.


<동봉 갈림길에서>

<동봉갈림길에서 수도암 방향 암릉을 배경으로.....>

<동봉갈림길에서 가야산을 배경으로.....>
넓직한 헬리포토를 지나 갈림길이 나오고 직진하면 청암사로 가는 길이어서 우측으로 방향을 잡아 이런 저런 생각속에 등로가 끝이 나고 수도암 대적광전 앞에 도착을 합니다.


<수도산 등산안내지도>
수도암은 처음 도국선사가 쌍계사의 소속암자로 청암사와 함께 창건하였으나 1894년 동학혁명 당시 농민에 의해 전소되었다가 1900년 포응화상에 의해 중수되었으며 현재 본당인 대적광전, 약광정, 나한전, 관음전, 선원 등은 1975년에 창건된 것으로 문화재로는 수도암 약광전 석불좌상(보물296호)과 수도암 3층석탑(보물297호), 그리고 수도암 석조비로자나불상(보물307호)가 있습니다.



<수도암 3층석탑>
대적광전의 중앙 문을 열면 정면으로 보이는 약광정 석불좌상은 우람한 몸체와 우아한 모습으로 인자한 미소를 띠고 있는데 전설에 의하면 광전석불은 거창땅 부처골에서 다듬어 한 노승이 들고 이곳 수도암으로 운반하다 대적광전앞에서 칡덩굴에 걸려 넘어지게 되었는데 화가 난 노승이 수도산 산신을 불러 꾸중하기를 “감히 하찮은 칡덩굴이 부처님의 봉안을 방해하다니 앞으로 이곳 주위에는 절대로 칡덩굴이 살지 못하게 하라”고 호령하고는 사라졌다고 합니다. 뒤따라오던 사람들이 멍하니 바라보다 누군가 “부처님화신이다”라고 말하니 모두들 노승이 떠난 곳을 향해 절을 하고 이곳(대적광전)에 사찰을 지었다하는데 사실 현재까지도 칡은 절 주위 300m반경 내에는 없어졌다고 합니다.

<대적광전과 3층석탑>
그러나 지친 몸으로 주위를 둘러보며 칡넝쿨이 있는지의 여부는 알아 볼 수 없었고 대적광전 앞 좌우로 세워져 있는 수도암 3층석탑은 동탑과 서탑으로 나누어져 있는 탑으로 각각 1층에 연꽃위에 여래좌상이 돋게 새겨져 있으며 보기에 좋았고 두탑의 형식이 다른 것으로 본래부터 쌍탑으로 만들어 진 것으로 보기는 힘들다는 설명이 있습니다.
수도암을 둘러보고 주차장으로 내려서니 권재형씨 부인인 임채미님이 차를 가지고 마중을 나오셨고 힘들어 하는 여자분들을 우선 차에 모시고 수도리로 먼저 내려갑니다.
임상택대장이 자주 이용한다는 대창식당 식당에 사전에 연락을 취하여 음식을 준비하였고 여성회원들이 쑥을 뜯어 만들었다는 쑥떡을 해서 임채미씨가 가지고 왔는데 따끈한 것을 즉석에서 콩가루를 묻혀 인절미로 만들어 먹고(서울회원들에게 헤어질 때 한 무더기씩 싸주었다) 닭볶음탕에 막걸리로 허기진 배를 채우며 산행 시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며 즐거움을 나눔니다.
오후 8시55분 동대구에서 출발하는 KTX를 예약한 상태로 시간에 맞춰 버스에 오르고 동대구로 향하는 버스 안은 만선의 기쁨으로 항구로 돌아가는 어부의 행복한 마음처럼 미소가 떠나질 않았습니다.

<수도산 개념도와 산행궤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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