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영산 산행기
산행일 : 2014년12월27일
누구와 : 가고파 산악회원 33명과 함께
산행시간 : 11:55~16:40(4시간45)
산행거리 :약8km
주요산행처:주차장(11:55)-들머리(12:06)-흔들바위(12:25)-제1봉유영봉(12:54)-제2봉성주봉(13:10)-제3봉생황봉(13:20)-제4봉사자봉(13:28)-제5봉오로봉(13:33)-제6봉두류봉(13:45)-제7봉칠성봉(14:00)-제8봉적취봉(14:32)-깃대봉(14:39,608.6m)-팔영산정상(14:50,565m)-식사20분-적취봉밑3거리(15:26)-탑재(15:50)-팔영산날머리(16:23)-능가사(14:32)-팔영산주차장(16:40)
팔영산(八影山) 은
한반도 최남단 고흥의 진산으로 다도해국립해상공원 주변에 있어 바다와 잘 어울리는 기암괴석과 아름다운 봉우리가 펼쳐져 있어 1998년 7월 30일자로 도립공원으로 지정된데 이어 2011년 1월 1일자로 다도해국립공원 팔영산지구에 편입되었다.
보름전부터 남해안과 충청권에 계속 대설주의보가 발령되며 보기드믄 폭설이 이어졌다.
한파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는 뉴스가 있지만 낙타등 같은 봉우리가 8개가 있는 팔영산의 설경을 그려본다.
아이젠과 스팻치 등 겨울철 등반장비를 갖추고 5시간의 긴 시간을 보내며 팔영산을 찾았는데 주차장에 내려 주변을 보니 생각했던 팔영산의 설경은 한낮 꿈에 불과 한 것으로 눈이라고는 찾아 볼 수가 없었다.
팔영산의 10개봉을 품으러 가다
<주차장을 벗어나 돌담을 끼고 팔영산으로 향합니다.>
<능가사를 지나 올라야할 팔영산의 영봉들이 보입니다.>
주차장에서 좁은 길을 따라 들어서면 능가사 입구로 좌판이 길게 펼쳐져 있는데 요즘은 팔영산 등산철이 아니어서인지 좌판을 지키는 할머니는 2분밖에 없다.
능가사 담장을 돌아 조금을 지나면 우측에 큰 안내판이 있는데 이 안내판은 팔영산(八影山) 봉우리의 유래를 기록한 안내판으로 이러하다.
팔영산은 소백산맥 서쪽으로 힘에 지친 듯 기울다가 동남으로 고흥반도를 바라보며 점암면 성기리, 강산리와 영남면 양사리 등에 우뚝 솟아 있는 산으로 고흥군의 진산이라하였다.
옛 문헌에 보면 이산의 이름은 팔영산 이외도 팔전산, 팔령산, 팔점산 등으로 불리웠으며 산의 정상에 팔봉이 있는데 첫째 유영봉(儒影峰), 둘째 성주봉(聖主峰), 세째 생황봉(笙篁峰), 넷째 (獅子峰), 다섯째 오로봉(五老峰), 여섯째 두류봉 (頭流峰), 일곱째 칠성봉(七星峰), 여덟째 적취봉(積翠峰)이라 하였다.
이 팔봉의 그림자가 멀리 한양까지 드리워져 팔영산이라 불렸다고 하고 일설에 의하면 금닭이 울고 날이 밝아 오면서 붉은 햇빛이 바다로 떠오르면 팔봉은 마치 창파에 떨어진 인판과 같다하여 그림자 영(影)자를 붙였다고 하고 또한 옛날 중국 위나라 태화연간에 팔봉의 그림자가 멀리 위왕의 세숫대야에 비추어 왕이 몸소 이 산을 찾아보고 비로서 그림자 영(影)자를 붙여 주었다고 전한다.
팔영산봉우리 안내판에서 조금을 올라가면 오토캠핑야영장이 있다.
아무리 남쪽이라 해도 겨울철 그것도 12월 하순으로 제법 추운날씨인데도 불구하고 제법 많은 사람들이 야영장에서 야영을 하고 있는 모습이 보였는데 이들은 계절과 상관없이 즐기는 해피족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고 이제는 성인이 된 우리 아이들과 젊었을 때 오토캠핑을 하지 못했음이 애들에게 미안한 생각도 들었지만 30여 년 전에는 모든 환경이 지금과 달랐다는 생각을 하며 오토캠핑장을 지난다.
<이곳은 팔영산 들머리입니다.>
오토캠핑장을 지나 조금으로면 팔영산 들머리다.
들머리부터 산세는 험했으며 계곡을 따라 오르는 등산로는 계속 너덜같은 암릉이 이어졌고 들머리를 들어서 20여분을 부지런히 오르니 눈앞에는 정자가 나타나고 우측에는 안내판이 세워져 있는 곳에 도착했으니 이곳이 흔들바위이다.
흔들바위라고 하지만 움직이지 않고 바위 위가 넙죽하고 평평해 마당바위라고 불린다고 하는데 어른 몇 명이 이리저리 밀다보면 움직임을 감지할 수 있다고 한다.
이곳 흔들바위 주변은 임진왜란 이전 능가사의 암자인 만경암이 있었던 곳이라고 하는데 임진왜란 때 불타 없어진 것인지 지금은 암자를 찾아볼 수 없으며 이곳 사람들은 암자가 있던 곳을 맹경절터라고 부른다는 것이다.
<흔들바위의 모습입니다.>
<흔들바위 옆 정자와 이정표 아래 긴의자가 있어 쉬어가는 쉼터로 좋습니다.>
흔들바위를 지나면 길은 포근한 흙길로 이제까지 걷던 돌길과는 완전히 다르다.
이러한 길을 따라 10분을 오르면 묘지가 있는 팔영산 주능선에 도착을 하는데 한 무리가 점심식사를 하고 있었는데 아마도 주차장에 있던 대형버스 2대를 타고 온 사람들인 듯 했다.
주능선에 들어서 우측으로 잡목사이로 접어들어 5분여를 오르면 어마어마한 바위 봉우리를 만나는데 이 봉우리가 팔영산의 제1봉인 유영봉이다.
그러나 유영봉을 오르려면 우측 측면으로 우회를 하여야 하며 바위절벽 옆으로 돌아가는 길목에는 추락에 대한 주의를 안내하고 있으며 지그재그로 이어지는 계단을 따라 10분 가까이를 오르면 유영봉이 애써 오른 산님들을 맞는다.
제1봉 유영봉을 오르다
선비의 그림자를 닮았다 해서 붙여진 봉우리라고 한다.
유영봉은 팔영산 8봉과 깃대봉 구 정상 모두 10개봉우리 가운데 높이가 제일 낮은 봉우리이긴 하지만 팔영산을 찾는 산객들에게 제일 많은 사랑을 받는 봉우리일 것이다.
처음으로 팔봉 중 제1봉에 올라 능가사 일대와 다도해의 많은 섬들을 조망하는 곳이며 힘에 부친 노약자들은 대부분 유영봉만 올랐다가 내려가기도하기 때문이다.
<제1봉 유영봉 정상에서 바라보는 여자만과 다도해가 멀리 보입니다.>
유영봉에는 사방은 열려있고 조망은 뛰어나다.
동북방향에서 북쪽을 지나 서쪽 방향은 육지의 산이지만 산명을 알 수가 없고 반대로 동북방향에서 남쪽을 지나 서쪽 방향은 바다인데 다도해의 많은 섬들을 알 수는 없는데 다른 사람들의 글을 인용하면 유영봉에서 정면으로 바라다 보이는 곳을 여자만이라고 하는데 여자만 부근에는 작은 섬들이 아기자기하게 몰려있다.
펑퍼짐한 유영봉 정상 동남방향으로 작고 앙증맞은 정상석이 있는데 팔영산의 각각 봉의 정상석은 유영봉과 같이 작고 형태도 같으나 정상의 정상석 만큼은 모양과 크기가 다르다.
제1봉 유영봉(儒影峰·491m)
<제1봉 유영봉 정상석에서 포즈를 취했습니다.>
정상석 뒤로는 시각적으로 팔영산의 으뜸인 선녀봉이 보이는데 선녀봉을 다녀오지 못했음이 아쉬웠는데 다음 기회가 또 온다면 들머리를 강산리로 잡아 선녀봉을 오르고 날머리를 양사리로 잡아 산행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해본다.
선녀봉은 제1봉에서부터 깃대봉을 지나며 어느 봉우리에서 던지 조망이 가능하며 이름도 선녀봉 이외에도 옥녀봉과 신선대라고도 표기하는 것 같은데 옥녀봉에는 옥녀봉 아랫마을에 사는 처녀총각의 애틋한 사랑의 이야기가 전설로 전해진다고 하며 신선대는 예로부터 신선들이 노닐며 바둑을 두던 곳이라는 각각의 전설을 지니고 있다고 한다.
일행들이 각자 포즈를 취하며 인증사진을 찍고 필자도 일행에게 부탁해 귀한 사진을 남긴다.
제2봉 성주봉을 오르다
제1봉인 유영봉을 내려서면 진행할 방향으로 이정표가 있다.
가야할 제2봉 성주봉까지는 100m이다.
높게 올려다 보이는 제2봉은 햇빛에 반사되어 제대로 보이지 않는데 철재 난간이 어지럽게 보이는 것이 예사롭게 보이지 않는다.
<제2봉 성주봉을 오르기 전 작은 무명봉을 오르는 계단입니다.>
<작은 무명봉에서 올라야할 제2봉 성주봉을 바라본 모숩인데 역광으로 선명치 못하네요.>
철재 사다리와 난간을 잡고 어렵사리 올라선 곳이 제2봉 정상인가 했더니 2봉 전위봉이고 제2봉은 앞에 버티고 있는데 철재 사다리와 난간이 설치되어 있다.
다시 힘을 내어 사다리와 씨름을 하고 올라선 곳이 제2봉 성주봉이다.
<성주봉을 오르며 지나온 유영봉을 본 풍경입니다.>
제2봉 성주봉(聖主峰·538m)
안내판에 의하면 성스러운 팔영산의 주가 되는 봉우리라고 한다.
성주봉의 정상은 경치가 뛰어나지도 못하며 넓지도 않다. 그러나 조망은 사방이 열려있다.
유영봉이 저만치 멀게 아래로 내려다보이고 그림 같은 선녀봉도 위치를 바꾸어 볼 수 있으며 가야할 3봉 방향으로는 잡목이 있어 볼품은 없지만 잡목을 지나서 2봉 내리막길로 다가서면 3봉과 휴양림 일대가 눈에 들어온다.
주변을 들러보다 뒤를 이어 올라오는 부부팀에게 실례를 무릅쓰고 인증사진을 부탁하고는 2봉을 내려선다.
제3봉 생황봉을 오르다
2봉을 내려서면 잡목이 있다.
잡목 사이로 길을 따라 가면 3봉 안내판이 있고 옆으로 철사다리로 시작을 한다.
무척 힘들고 어려울 것 같은 철사다리 길은 그런대로 오를 만했으며 바로 눈앞의 풍경은 잘 볼 수 없으므로 2봉의 내리막 방향은 3봉을 오르며 풍경을 감상하곤 했는데 명산이다 보니 봉마다 풍경이 뛰어 났다.
2봉을 뒤돌아보며 주변을 둘러보며 올라선 정상은 제3봉 생황봉이다.
<제3봉 생황봉에서 포즈를 취해봅니다.>
제3봉 생황봉(笙篁峰·564m)
생황봉이라~
봉우리의 생김이 무성한 대나무밭 같은 모양으로 바람이 불어 생황봉을 스치고 지나가면 열아홉 구멍의 관악기에서 나는 아름다운 선율이 느껴진다는 뜻같이 생각된다.
월간 산 월간지에 기록된 문화해설사 말에 의하면 팔영산은 예전에 봉우리마다 숫자로 1봉~8봉으로 표시했으나 1998년 초부터 능가사를 보수할 때 발견된 ‘만경암 중수기’에 기록돼 있는 이름을 봉우리 이름삼고 있다는 것이다.
<제3봉 생황봉을 오르기 전 풍경을 담았습니다.>
<제3봉 생황봉 정상을 내려서며 좌측 암릉을 담았습니다.>
2봉에 같이 올랐던 일행이 3봉에 먼저 올라왔는데 한쪽에서 간식을 하고 있어 혼자 쎌카로 인증 사진을 찍고 바로 옆에 있는 4봉을 보니 상당히 위압적이며 앞서간 일행이 4봉 정상에 있어 그림은 멋있으나 역광으로 사진을 담기가 힘들다.
<생황봉을 내려서는 목계단입니다.>
3봉 정상도 좁은 편이며 앙증맞은 정상석 옆에 3봉을 내려서는 계단이 있어 목책계단을 따라 내려서면 바로 4봉의 오름길이 시작된다.
제4봉 사자봉을 오르다
<제4봉 사자봉을 오르기 시작하는 지점의 풍경입니다.>
생황봉을 내려서 제4봉인 사자봉을 오르는 등로는 이제껏 오른 다른 봉우리에 비해 경사도도 심하고 계단도 많으며 그래서 눈이라도 내렸을 때면 신중을 기해야 하는 코스이다.
하지만 다른 봉도 그랬듯이 4봉을 오르면서 눈앞에 펼쳐지는 4봉을 감상하기는 곤란하며 이미 지난 3봉을 감상하는 편이 보기에 좋다.
<제4봉 사자봉을 오르며 3봉 정상과 옆에 선녀봉의 풍경입니다.>
<제4봉 사자봉을 오르며 3봉 정상 너머로 펼쳐지는 여자만 일대의 풍경입니다.>
내려선 3봉 정상을 오르고 또 오르며 고도에 따라 형태를 달리하는 3봉은 3봉 뒤로 보이는 여자만의 작은 섬들이 비눗방울을 흘려보내는 듯 바다 위를 떠다니는 것 같은 풍경이다.
그렇게 3봉을 감상하며 오른 정상은 제4봉 사자봉이다.
<제4봉 사자봉에서 포즈를 취해봅니다.>
제4봉 사자봉(獅子峰·578m)
안내문에 의한 사자봉의 설명은 동물의 왕인 사자처럼 팔영산을 장악하고 군림한다고 붙여진 이름이다.
숲속의 제왕인 사자가 포효를 하면 모든 숲속의 동물이 머리를 조아리는 듯 사자봉이란 봉우리 이름을 붙인 누군가는 팔영산을 지배하는 듯 보였나보다.
그런가하면 풍수지리적으로는 사자봉은 용이 바다를 향해 내달리는 형상의 기백으로 그 혈명은 신선이 구름 속에 앉아 있다는 운중선좌의 형국이라고 한다.
위에서 기록한 바로 능가사의 암자인 만경암 중수기에 기록된 이름을 봉우리 이름으로 삼았다하는데 능가사 대웅전에서 팔영산을 보면 사자봉이 제일 우뚝 서있어 숲의 제왕인 사자로 표현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해본다.
<제4봉 사자봉에서 선녀봉과 다도해의 풍경을 담았습니다.>
사자봉의 정상도 좁은 편이다.
인증사진을 찍기위해 자리를 잡는데 3봉에서 간식을 취하며 쉬고 있던 부부팀이 뒤따라 올라온다.
미안한 마음에 말을 못하고 있으니 여자분이 먼저 사진을 찍어 주겠다고 나서니 이렇게 고마울데가..........
인증사진도 찍었고 사방을 둘러보니 보기에 좋았고 천둥이라도 힘차게 쳐 사자의 포효를 느꼈으면 하는 바람이 있지만 오늘 날씨로 보아 청천에 천둥을 칠 리 없을 것이니 조용히 눈은 5봉으로 돌아간다.
5봉은 4봉에서 크게 오름이 없이 약간의 내림과 약간의 오름만 하면 오를 수 있는 곳이다.
제5봉 오로봉을 오르다
크게 힘들이지 않고 4봉을 내려설 수 있었는데 이제껏 봉(峰)과 봉 사이를 오고 갈 때는 철재난간이나 철재사다리 또는 목재 사다리를 오르고 내렸지만 제4봉을 내려설 때는 사다리나 난간이 없으며 조금은 거친 길을 내려서면 제5봉 오로봉 안내판이 있다.
다섯의 신선이 무릉도원이라 느끼고 신선들이 노닐던 곳 이곳이 5봉이란다.
<제5봉 오로봉을 오르며 지나온 사자봉을 담았습니다.>
5봉을 오르는 길도 고도차이 거의 없고 사다리도 없이 손쉽게 오를 수 있는 곳이다.
동쪽으로 선녀봉이 유영봉에서 볼 때 보다 시계바늘 반대방향으로 아름다운 풍경을 전해주고 4봉과 6봉이 둘러쳐 아늑하게만 여겨지는 곳 정상 5봉에 도착한다.
<제5봉 오로봉에서 포즈를 취해봅니다.>
제5봉 오로봉(五老峰·579m)
신선이 극찬했다는 오로봉 정상은 대단치 않다.
이곳에서 노닐던 신선은 늙어서 그런지 사방의 풍경을 보기에도 적당치 않은 곳을 여기가 무릉이라고 극찬을 했다는 것인가?
바둑을 둘 수는 있겠으나 바둑을 두는 장소로도 최적은 되지 못하는데 극찬이라.......... 이해가지 않고, 이해가 가지않는 또 하나는 능가사에서 볼 때도 제4봉 정상에서 볼 때도 4봉이 5봉보다 더 높아 보이는데 정상석이나 안내판에 표기한 높이는 제5봉이 제4봉보다 1cm가 더 높다는 것인데 어떻게 받아 들여야 하나?
매번 산행할 때 GPS로 고도를 측정하는데 팔영산은 봉우리가 가까이 있고 높이를 표기하고 있어 별도 측정을 하지 않았는데.... 시각적 차이?, 착시현상? 모 이런 거라도 있나?
누군가에게 인증 사진을 부탁하려고 시간을 보내도 아무도 올라오는 사람이 없어 적당히 쎌카로 인증 사진을 찍고 어마어마하게 느껴지는 6봉으로 발길을 돌린다.
<제5봉 오로봉 정상의 풍경입니다.>
<제5봉 오로봉을 내려서며 가야할 제6봉 두류봉을 담았습니다.>
5봉에서 보는 6봉의 오름길은 가히 위압적이다.
6시 방향에서 시계바늘을 따라 12시 방향까지 계속 이어지는 철계단과 경사도 그리고 주변의 험한 정세가 대단하게 느껴지지만 막상 부딪쳐보면 모두 감내할 수 있는 것이라 생각하며 6봉으로 접근한다.
제6봉 두류봉을 오르다
5봉에서 크게 내려설 것도 없이 조금만 수고를 하면 6봉의 시작점에 설 수 있다.
안내판에는 하늘과 땅이 맞닿는 곳, 하늘로 이어지는 통천문이 여기로 제6봉 두류봉을 오르면 천국으로 통한다는 것이다.
좌측으로 반원을 그리며 계속 철사다리와 스텐레스 난간으로 이어지는 계단은 천국의 계단이다.
철사다리 아래로 보이는 발판과 녹슨 철난간의 흔적이 이어진다.
5봉에서 함께 하산한 일행이 있었는데 이분과 깃대봉까지 함께 걸으며 서로 사진을 찍어주었다. 이분은 20년전에 이곳 팔영산을 다녀간 적이 있다며 옛날에는 철사다리 밑으로 보이는 발판을 딛고 쇠사슬과 녹슨 철난간을 잡고 무척 힘들게 올랐다며 과거를 회상하기도 했는데 그 당시에 비하면 팔영산 등산은 안전하여 스릴은 느끼지 못한다고 하였는데 그분의 말대로 철사다리가 없다면 나약한 여자분들이 이곳을 지나기는 다소 어려움이 있을 것이라 생각된다.
<제6봉 두류봉을 오르는 거친 오름길입니다.>
<제6봉 두류봉을 오르며 지나온 오로봉의 풍경을 담았습니다.>
고도를 높이며 5봉과 그 너머로 4봉, 3봉, 2봉이 도열을 하고 있는 듯 보이고 각각의 봉우리에는 몇몇의 후미 일행들의 모습이 보인다.
그렇게 힘을 쓰며 오른 정상이 제6봉 두류봉이다.
<제6봉 두류봉에서 포즈를 취해봅니다.>
제6봉 두류봉(頭流峰·596m)
천국으로 통하는 통천문을 지나지 않았는데 안내문에는 하늘과 땅이 맞닿은 곳 천국으로 통하는 통천문이 있는 곳으로 묘사했다. 처음에는 안내문이 잘못된 것으로 착각을 했는데 지금이야 철계단을 놓아 손쉽게 오르지만 철재사다리가 없던 시절 쇠난간에 쇠줄을 잡고 녹슨 발판에 목숨을 담보하고 계속 하늘로 올랐음을 천국으로 통하는 문으로 표현을 한 것인데 7봉에 있는 석문인 통천문만을 생각해 착오를 일으킨 것이다.
두류봉의 정상은 참으로 시원스럽다,
동으로 다도해의 시원스러운 풍경과 바다위에 크고 작은 섬들이 아기자기 있는 모습이 어떤 이는 물개가 물위를 헤엄치는 모습과 같다고 비유하기도 했는데 그러고 보면 비유와 아주 흡사한 풍경이다.
<두류봉에서 보는 다도해국립공원의 풍경입니다.>
<두류봉에서 보는 서쪽 편백나무 수림지대입니다.>
다도해 방향으로 줄곧 산행하며 함께하는 비경, 선녀봉의 모습이 두류봉에서 더욱 빛을 발하는 듯 했고 선녀봉 뒤로는 다도해의 비경이 펼쳐지는데 정상에 안내판을 설치해 몇몇의 섬들을 기록했는데 기왕지사 안내판을 세울 것이라면 많은 섬들을 기록했더라면 더 좋지 않았을까?
두류봉 서쪽으로는 편백나무 숲이 무성했는데 이러한 돌산에 예상치 못한 편백나무 숲이 대단위로 가꾸어지고 있음이 놀랄만한 일이며 두류봉 정상에서 푸르름이 가득한 편백나무 숲은 장관이었다.
함께 오른 분과 서로 인증 사진을 찍어주며 이야기를 나누고 7봉이 바라보이는 방향으로 계단을 내려선다.
내리막 계단은 두류봉을 오를 때처럼 험하거나 경사가 심한 편은 아니지만 지그재그로 길게 한동안을 내려서면 이정표가 있는 안부사거리에 도착을 한다.
<두류봉을 내려서며 본 제7봉 칠성봉입니다.>
동서로->휴양림능가사3.7km, 남북으로->칠성봉170m두류봉50m로 표기되어 있는데 이 표기는 오기라고 보아야 하는데 칠성봉 정상에 있는 이정표는 칠성봉과 두류봉 사이의 거리를 400m라고 표기하고 있기 때문이다.
제7봉 칠성봉을 오르다
이정표를 지나 7봉을 가는 길은 헷갈림의 연속이다.
앞에 보이는 봉우리가 당연히 7봉으로 생각하고 다가섰다.
웅장한 바위를 지나 조금을 오르니 뜻하지 않은 석문이 나온다.
팔영산은 천국으로 통하는 문이 둘이나 있는 셈이다.
<제7봉 칠성봉을 오르며 하늘로 통하는 통천문에서 환희의 표정을 짓습니다.>
두류봉의 험하고 험한 오름길을 천국으로 통하는 계단이라고 표현했는가 하면 칠성봉을 기기위해 지나는 석문 또한 하늘로 이어지는 통천문이 아닌가?
함께 가던 4명이 통천문앞에서 포즈를 취해가며 인증 사진을 남기고 천국으로 접어들기 위해 통천문을 지난다.
통천문을 지나며 뒤를 돌아보니 하늘과 맞닿은 것 같은 두류봉이 우뚝 솟아있다.
앞서간 일행을 따라 1분여를 지나니 정상에 섰고 앙증맞은 정상석은 칠성봉이라고 새겨져 있다.
<제7봉 칠성봉에서 포즈를 취해봅니다.>
제7봉 칠성봉(七星峰·598m)
안내문에 의한 칠성봉은 북극성을 축을 삼아 천만년을 한결같이 변함없음을 말한다.
고려말 이후 칠성신앙은 무속 및 민간신앙으로서 일반화되고, 그것이 불교사찰 안에서까지 모셔지게 되었는데 하늘이 인간의 운명을 좌우한다는 생각에서, 인간의 운명, 숙명, 그리고 인간의 재수를 관장하고 농사와 관계있는 비를 내리게 하는 신으로도 생각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칠성봉의 의미는 우리 생활을 주관하는 신적인 존재처럼 귀하게 받들었음을 말하는 것 같다.
정상에서 사방을 조망하며 가야할 8봉과 깃대봉을 본다.
<제7봉 칠성봉을 오르며 뒤돌아 본 두류봉의 모습입니다.>
<칠성봉에서 본 다도해의 모습입니다.>
<칠성봉에서 본 제8봉 적취봉과 깃대봉 능선입니다.>
8봉은 밋밋하게 보이고 8봉을 넘어 좌측으로 이어지는 능선은 완만한 경사를 이루며 한동안 뻗어나가다가 기지국이 있는 곳에 정점을 찍었으니 그곳이 최고봉인 깃대봉이다.
함께하던 분과 서로에게 인증 사진을 찍어주고는 이런 저린 이야기를 나누며 7봉을 내려서 8봉으로 향한다.
제8봉 적취봉을 오르다
7봉을 내려서 밋밋한 길을 따라 5분여를 지나 작은 봉우리에 올라섰는데 8봉으로 알고 오른 이곳은 아무런 표식도 없는 무명봉이며 가야할 8봉은 앞에서 빨리 오라고 손짓을 한다.
<제8봉 적취봉을 가며 뒤돌아 본 칠성봉입니다.>
<제8봉 적취봉의 정상에서 서쪽으로 이어지는 암릉의 풍경입니다.>
무명봉을 내려서면 8봉 안내판이 기다리고 있다.
비취의 푸른색을 물총새의 신비로운 푸른빛으로 묘사한 푸른초목이 병풍처럼 둘러친 봉이라 하여 붙여진 적취봉이란다.
급한 마음에 안내판을 뒤로하고 작은 봉을 돌아 넘으면 작은 용아같은 바위지대가 나오며 이곳에는 작은 다리를 놓아 짧은 용아를 넘는 스릴과 쾌감을 모두 앗아갔다.
다리에 들어서면 정면으로 바라다 보이는 8봉 정상석을 보며 밋밋한 바위길을 지나 민대머리 같은 8봉 정상에 선다.
<제8봉 적취봉에서 포즈를 취해봅니다.>
적취봉(積翠峰·591m)
물총새의 푸른 깃털은 광택이 난다.
그러나 8봉을 비취에 비할 수는 없는데 왜 신비스러운 물총새의 비취 깃털에 비유를 했을까? 필자의 주관적인 생각은 마지막 8봉에 올라 다도해의 푸른 바다의 넘실대는 물결에 햇빛이 반사되는 모습을 귀하고 고상하고 신비스러운 물총새의 비취색에 비유한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다.
적취의 뜻을 생각하며 뒤돌아 지나온 칠성봉과 선녀봉 그리고 드넓게 펼쳐진 바다와 그 바다 곳곳에 떠 있는 많은 섬들을 보니 신비스럽고 정겨워 보인다.
이러한 신비스러운 풍경을 보기위해 새벽부터 서둘러 5시간 버스로 이동해 1봉을 시작으로 이제 8봉에 이르렀으니 이 모든 게 감동이고 파격이다.
하지만 아직 산행이 끝난 것은 아니다.
가야할 깃대봉과 아직은 정하지 못한 마주보이는 봉우리도 기대가 된다.
<제8봉에서 본 제10봉 팔영산 정상의 모습입니다.>
<제8봉을 내려서 본 모습입니다.>
함께 올라선 4명이 사방을 돌아보며 이야기를 나누다 깃대봉을 가기위해 8봉을 내려선다.
8봉을 내려서면 이정표가 있는데 이곳에서 서쪽으로 내려서면 탑재로 내려서 하산하는 길이지만 깃대봉을 다녀 다시 이곳으로 내려서야 할 것이다.
제9봉 깃대봉을 오르다
8봉을 내려서 깃대봉으로 가는 길은 이제껏 지나온 갈과는 완전히 다른 부드러운 육산으로 지나칠 정도로 부드러운 길에는 양탄자를 깔아 보행을 도왔다.
3~4분을 지나면 헬기장이 나온다.
헬기장을 지나면 팔영산 휴양림으로 가는 안부3거리가 나온다.
<깃대봉을 가기위해 헬기장을 지납니다.>
<헬기장을 지나 무선기지국이 보이고 뒷편이 깃대봉입니다.>
이곳을 지나 나지막한 경사진 길을 올라서면 우측으로 이때까지 가야할지를 정하지 못한 봉우리 갈림길이며 이곳에서 앞에 보이는 기지국으로 이어지는 능선을 가며 지나온 8봉을 보면 2봉~8봉까지 기기묘묘한 봉우리를의 비경을 감상할 수 있다.
<깃대봉을 가며 팔영산의 연봉들 측면 풍경을 담았습니다.>
그러는 사이 기지국에 닿고 이내 깃대봉 정상에 선다.
<깃대봉 정상입니다.>
<제9봉 깃대봉 정상에서 포즈를 취해봅니다.>
제9봉 깃대봉(609m)!
우리 주변의 산봉우리 중 깃대봉은 심심치 않게 만날 수 있는데 깃대봉에는 깃대가 있고 깃대에는 태극기가 펄럭이고는 하는데 이곳 깃대봉에는 깃대나 국기가 없다.
어떻게 된 일일까?
여러 가지 추측이 가능하겠지만 필자의 생각은 이러하다.
이곳 깃대봉은 사방에 막힘이 없어 멀리까지 관측이 가능한 곳으로 예전에는 이곳에 봉화대가 있어 여수 방면의 신호를 받아 또 다른 곳으로 신호를 전달했을 것이므로 봉화대 주변에 봉화대의 표식으로 깃대를 걸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다.
<깃대봉 정상에서 팔영산 정상을 담은 풍경입니다.>
<깃대봉 정상에서 영남면 양사리 방향으로 다도해의 풍경을 담았습니다.>
<깃대봉 정상에서 선녀봉의 풍경을 담았습니다.>
깃대봉의 정상석도 팔봉의 정상석과 같은 크기와 모양으로 앙증맞게 세웠다.
팔영산의 모든 봉우리는 처음부터 끝까지 예사롭지 않은 암봉이었는데 이러한 암봉을 넘다가 마지막 최고봉인 깃대봉이 부드러운 육산 봉우리로 되어 있으니 이 또한 그런대로 좋았고 떨어져 있는 깃대봉에서 넘어온 팔봉의 비경을 감상하는 맛도 일품이다.
정상석을 잡고 인증 사진을 찍고 왔던 길을 되돌아간다.
제10봉 팔영산 정상을 오르다
팔영산에도 산명을 가진 정상이 있다
8봉에서 볼 때 남쪽으로 한일(일)자로 보이던 바위 암봉이 마음에 걸린다.
함께 걷던 일행에게 양해를 구하고 혼자서 내려선다.
조용하기만 한 암봉을 혼자 올라섰다.
중앙에 불안정 스럽게 세워진 작은 정상석에는 ‘八影山(팔영산) 807m’라고 표기되어 있으며 뒷면에는 ‘제8봉에 세워야 하나 제7봉에 세움‘이라고 음각되어 있다.
아~ 팔영산(八影山)!
그러고 보니 이곳이 팔영산 정상인 것이다.
<제10봉 팔봉산 정상에서 포즈를 취해봅니다.>
<팔봉산 정상에서 역광으로 포즈를 취했습니다.>
팔영산(八影山, 565m)
정상석이 있는 곳이므로 정상일 것이라고 생각하긴 하지만 이곳이 정상이라고 확정지을 수만은 없다.
뒤편에 음각되어 있는 문구로 보아 처음 정상석을 세운 곳은 이곳이 아닐 것 같다는 생각이다.
높이로 보면 깃대봉이 최고봉이며 깃대봉을 제외한다면 칠성봉인 7봉이 제일 높으므로 칠성봉에 세웠던 정상석이 1998년 초 각각의 봉에 이름을 붙이고 앙증맞은 정상석을 세우며 기존에 있던 이곳의 정상석은 자리를 빼앗기고 이곳 외따로 떨어진 암봉에 자리를 잡은 것 같은 생각이 든다.
하지만 현재로서는 팔영산 정상석이 이곳에 있으니 언제 이곳을 다시 찾을지 기약이 없는 상황에서 오늘 이곳을 들리지 않았더라면 두고두고 후회를 할 뻔 했다.
<팔영산 정상에서 본 깃대봉의 모습입니다.>
<팔영산 정상에서 바라본 제8봉 적취봉의 모습입니다.>
올해 초 이곳을 찾았던 친구와 이야기를 하니 이곳이 정상이라는 것이었고 친구가 이곳을 찾았을 때는 산악회에서 정상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어 모든 사람들이 이곳을 올랐다고 하는데 오늘 함께한 일행 중서는 유일하게 필자만 이곳 팔영산 정상을 올랐는데 이러한 결과는 안내 산악회에서 이 곳 정상에 대해 일언반구가 없었기 때문이다.
오늘 제1봉인 유영봉을 시작으로 제8봉인 적취봉, 그리고 최고봉인 깃대봉까지 9개봉의 정상석을 보았으며 주능선에서 떨어진 곳에 10번째로 팔영산 정상표지석을 보게 되었다.
현재시간 오후 3시가 다 되어간다.
이곳 아무도 없는 조용한 곳에서 점심을 한다, 새벽부터 집사람이 정성을 들여 싸준 도시락을 풀면서 미안함과 고마움을 느낀다.
급하게 식사를 마치고 이리저리 어렵게 쎌카로 인증 사진을 찍고 정상을 내려서 왔던 길을 따라 주능선으로 복귀를 하고 이내 8봉 밑 이정표를 지나 탑재길로 내려선다.
탑재를 거쳐 하산하다
<탑재입니다>
8봉에서 탑재로 내려서는 등산로는 계속 너덜길로 이어지며 좌우로 거대한 바위가 산재되어 있지만 안전을 위한 난간 로프가 설치되어 있고 중간 데크쉼터를 3곳이나 만들어 이곳 팔영산을 찾는 산객들이 쉬어 갈 수 있도록 상당한 배려를 한 듯 했다.
그렇게 너덜길을 따라 20분을 내려서면 피톤치드 1등급의 나무인 편백나무지대를 만나고 임도를 가로질러 도착하는 곳이 탑재이다.
<하산길은 이처럼 험한 너덜길로 이어집니다.>
<기분 좋게 편백나무 숲을 지납니다.>
탑재에는 쉬어 갈 수 있는 정자가 있으며 이곳 정자에서 보는 전경은 실로 놀랄만한데 높다란 두류봉의 기상과 주변의 우람하고 기묘한 암봉과 어울어진 산능 아래 편백나무 숲으로 임도 좌우로 넓게 포진된 편백나무 숲이 많은 피톤치드를 발산하여 산객들의 심신을 안정되게 이끌어 주는데 고흥군이 자랑하는 이 편백나무는 자연적으로 자란 원시림은 아닐 것인데 어떻게 언제 이러한 숲을 만든 것일까?
이 편백나무 숲은 1981년부터 전주제지에서 조성했다고 하며 올해로 33년이 되었다는 것이다.
<1981년부터 전주제지에서 조성했다는 편백나무 숲이 이제는 고흥의 명물이라고 합니다.>
두류봉과 편백나무를 배경으로 인증사진을 찍고는 조용한 길을 따라 하산을 시작한다.
봄철이면 주변에 많은 꽃들과 계곡에 맑은 물이 흐르겠으나 한겨울 쓸쓸하고 적막한 계곡에는 산새의 울음소리도 자취를 감추었다.
곳곳에 집채만한 바위와 소량으로 떨어지는 작은 무명폭은 작은 소를 이루며 너덜계곡은 반복되고 이따금 하늘을 치솟는 암봉이 곳곳에 수를 놓은 풍경을 감상하는 사이 어느새 날머리에 닿는다.
능사가를 돌아보다
오토캠핑장을 지나 능가사로 들어선다.
송광사 말사인 능가사는 1,500여년 전인 420년 신라 눌지왕 때 아도화상이 보현사란 이름으로 창건했다고 하는데 임진왜란 때 소실되었고 이후 1644년 조선 인조 22년에 벽천대사가 중창하면서 ‘인도의 명산을 능가한다’는 의미로 능가사(楞伽寺)로 이름이 바뀌었다 전하는 고찰이다.
응진당 뒤 새로 지은 듯한 사적비각이 있는데 이 비각안에 있는 능가사 사적비는 폭1.3m, 높이3m나 되는 거대한 비석인데 이거대한 사적비는 덕목스님이 도술로 옮겼다고 전설로 전해지며
<능가사 응진당과 뒤에는 능가사 사적비를 안치한 비각이 보입니다.>
범종각에 있는 동종은 보물 제1557호로 숙종2년인 1698년에 만든 것으로 종을 치면 점암면 일대에 울려 퍼질 정도로 소리가 좋았다고 하는데 일제강점기 때 일본놈들이 일본으로 가져가려고 헌병대에 옮겨 놓고 종을 치자 소리가 나지 않아 예사롭지 않다 싶어 다시 능가사에 돌려주었다는 전설을 지니고 있다고 한다.
<능가사 대웅전으로 보물 제1307호이며 대웅전 편액으로 염제 송태회가 썼습니다.>
<전설을 지니고 있는 보물 제1557호 동종입니다.>
능가사의 건축물의 유일한 보물1307호인 대웅전은 1644년에 지은 것을 최근 다시 보수하여 지었다고 하며 대웅전 편액과 응진당의 편액은 염제 송태회의 글씨로 염제(念齊) 송태회(宋泰會, 1873~1943)는 서예와 그림에도 뛰어난 재능을 가진 사람으로 전라남도 화순 출신으로 구한말에 태어나 최연소로 성균관에서 수학하였으며 중국 유학을 다녀온 후 매일신보 기자생활을 하다가 일본에게 나라를 빼앗기자 아픈 심경을 달래기 위하여 낙향하여 후진양성에 전념하였다고 한다.
규모가 제법 큰 사찰은 3문을 지나 대웅전으로 들어서게 되는데 사찰의 대문격인 일주문, 진리는 둘이 될 수 없음을 뜻하는 불이문, 그리고 모든 액운을 막아주는 사천왕상이 있는 천왕문이 그것인데 능가사는 불이문은 없으며 천왕문이 일주문의 역할까지 겸하고 있다.
<능가사 천왕문 앞 좌판에서 혼자 자리를 지키고 있는 모습입니다.>
능가사 천왕문을 나서 길가 좌판을 지키는 아주머니 한분은 장사를 접고 가셨고 한 분은 끝까지 자리를 지키고 있었는데 누군가 산행을 시작하며 우스개 소리로 던진 말 “산행을 마치고 올 때 사겠다.”고 한 말을 믿고 자리를 지키고 있다는 것이다.
좌판을 지나 주차장에 이르렀고 일행 중 3명이 하산을 하지 않아 1시간이상을 기다려야 했다.
<팔영산 지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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