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재이야기

백제의 숨결, 마곡사를 돌아보다.

범솥말 2023. 11. 30. 10:45

공주 마곡사를 찾아서.....

 

문화재 분류 : 사적 제13

시대 및 시기 : 백제, 6세기 전반

성격 및 유형 : 왕릉과 사찰

소재지 : 충남 공주시 웅진로 391-1, 외 마곡사로966

방문일 : 20220119

누구와 : 동네 지인등과 함께

 

 

어제는 사적12호인 공산성을 답사하고 공주한옥마을에서 숙박을 했습니다.

공주한옥마을은 콘도나 민박같이 밥을 직접 할 수는 없지만 배달음식이나 간단하게 집에서 챙겨오는 음식을 먹을 수 있습니다.

콘도나 민박에 비해 불편한 점은 있기는 하지만 콘도나 민박에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좋은 것이 있으니 자그마치 운동장 같은 12평이나 되는 온돌방이 맘에 들었고 또 다른 하나는 깨끗하게 준비해 놓은 침구로 콘도나 민박보다 찝찝함이 없이 청결했으며 초저녁부터 아침 퇴실할 때까지 춥지 않고 따뜻한 온도를 유지해주니 정말로 강추를 몇 번을 반복해도 모자랄 정도였습니다.

오늘 일정은 무령왕릉 유적지와 마곡사입니다.

 

무령왕릉 유적지와 마곡사는 모두 공주 10경에 포함되어 있는 곳인데 무령왕릉 유적지는 방문한지 2달이 조금 지나 다시 찾는 것인데 우리부부를 제외한 다른 3분은 무령왕릉 유적지를 가보지 못해서입니다.

아침을 느지막하게 하고 숙소에서 불과 300m 정도 떨어진 무령왕릉 유적지로 이동해 관람을 했는데 그래도 먼저 한 번 와 보았으므로 안내해설사가 되어 일행들에거 하나 하나 설명을 해줍니다.

무열왕릉 관람을 마치고 주차장으로 원점회귀한 후 주차장에서 커피를 한 잔씩 마시고 여유 있게 마곡사로 향했는데 마곡사는 무령왕릉에서 23km정도 거리로 네비게이션이 안내하는 대로 드라이브 삼아 천천히 이동합니다.

 

그리고 1140분 경 마곡사에 도착합니다.

그런데 마곡사 입구에서 황당, 황당, 아주 기가차고 황당한 일을 겪습니다.

마곡사 입구 매표소 앞으로 들어서는데 밖에도 사람이 없고 지나며 보나 안에도 사람이 분명 없어서 코로나이기에 무료입장을 하나 했습니다.

그런데 잠시 뒤 60대 후반은 되어 보이는 사람이 나와 그냥 가려한다고 짜증을 내기에 사람이 없었던 상황을 설명 했는데 표를 끊으라는 것입니다.

우리 일행 5명이 모두 경로라고 이야기 하자 경로는 만70세부터라는 것입니다.

결국 2달이 모자라 2명이 매표를 했는데 중요한 것은 정부에서 정한 경로우대 연령이 만65세인데 조계종에서 금년1월1일부터 만70세로 적용하기로 했다니 항당하지 않을 수 없고 이게 말이나 되는 이야기냐고요?

요즘 불교계가 5.000명이 모여 데모를 한다고 난리입니다.

왜냐하면 국회의원 정청래가 불교계는 21세기 봉이 김선달이냐?고 한 말에 불교계가 화가 난 것인데 정청래가 잘 못한 것 없지요, 부처님이 절간에 오는 사람들에게 강제로 돈을 받으라고 가르친 건 아니니까요?

그렇지 않아도 중들이 있는 절간이 맘에 들지 않았는데 언제나 스님들이 수행하는 사찰로 바뀌게 될지.......

저는 산을 다니며 사찰을 구분할 때 입장료를 받는 곳은 절, 그리고 중으로 표현하고, 입장료를 받지 않는 곳은 사찰, 그리고 스님으로 표현하고 기록합니다.

중들은 그렇다고 치더라도 국정을 운영하는 국무위원과 국회의원들은 귀가 먹었답니까? 불교계가 무엇인데 아무 말도 못하고 쩔쩔매는 것인지....

선거 때 표 한 장 더 받으려고 국민들 주머니를 강탈하는 꼴을 그냥 보고만 있다니.... 우리 국민들 세금을 받을 자격이 있는지 의심을 가지지 않을 수 없습니다.

언제 중들이 시주 받아 돈을 벌어 전국 큰 땅을 사서 절간을 지었겠냐? 고요. 막말로 무허가로 경치 좋은 곳에 암자를 지어 놓고 세월이 흐르다보니 기득권 주장하고.... 뭐 그런 거 아니겠냐? 고요.

마곡사는 약30년 전 딱 한번 들린 적이 있는데 오래 전 일이라 기억이 전혀 없는데 당시에는 돈을 받지 않아 스님들만 있었는데 세월이 지나며 중들로 모두 바뀌었습니다.

마곡사 주차장에 주차를 하고 마곡사 구경에 나섭니다.

충청남도 공주시 사곡면 운암리의 태화산 동쪽 산허리에 자리 잡은 마곡사는 대한불교 조계종의 제6교구본사입니다.

‘春마곡’이란 별칭에서 알 수 있듯이 봄볕에 생기가 움트는 마곡사의 태화산은 나무와 봄꽃들의 아름답다고 합니다.

마곡사는 백제 무왕 때인 640년에 자장율사가 창건한 것으로 전해오고 있습니다.

조선시대에도 세조가 이 절에 들러 ‘영산전(靈山殿)’이란 현판을 직접 써서 내려준 일이 있다고 하며 현재 마곡사에는 보물 제799호인 마곡사5층석탑, 보물 제800호인 영산전, 보물801호인 대웅보전, 보물 제802호인 대광보전과 보물 제269호인 감지은니묘법연화경 제1권과 보물 제270호인 감지금니묘볍연화경(紺紙金泥妙法蓮華經), 제6권이 보존되어 있다고 합니다.

 

또한 마곡사(麻谷寺)를 포함한 한국의 7대 사찰로 묶어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했는데 문화유산으로 등제된 7대사찰은 마곡사를 비롯해서 통도사, 부석사, 봉정사, 법주사, 선암사, 대흥사입니다.

법당으로 가는 길에 麻谷寺라고 음각한 아주 큰 절 표지석이 있는데 글씨체가 살아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는데 이런 명필은 누구글씨일까?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이 문제의 정답은 절간을 다니다 작은 현판글씨를 볼 수 있었는데 필자가 알고 있는 해강 김규진의 글씨였습니다.

마곡사 표지석을 배경으로 이근남형님 내외분 사진을 찍은 뒤 계곡을 건너 마곡사로 들어섭니다.

마곡사는 2계곡 합수점에 건축물이 양쪽으로 나누어져 있습니다.

건물배치도를 보면 첫 번째 다리를 건너면 서쪽 지역의 건축물로 해탈문, 홍성루, 영산전, 매화당, 명부전이 있고 두 번째 다리인 극락교를 건너면 북쪽지역 건축물은 범종각, 심검당, 관음전, 영화당, 대행각, 응진전 대광보전과 대웅보전이 있으며 대광보전 앞에 5층석탑이 있습니다.

첫 번째 다리를 건너면 좌측으로 건축물이 있는데 별로 관심이 없는 건축물이며 대웅보전으로 가는 길로 해탈문이 보입니다.

 

해탈문

사찰에는 산문이 있습니다.

사찰을 들어가자면 일주문으로 가장 먼저 볼 수 있는데 일주문은 산문 중 제1문으로 마곡사도 매표소를 지나면 일주문이 있습니다.

일주문을 지나면 천왕문이 있는데 천왕문은 사찰산문의 2번째 문으로 천왕문에는 불법을 지킨다는 수호신으로 4천왕을 모시며 천왕문을 지나면 사찰 산문의 마지막 문으로 불이(不二)의 경지를 상징한다는 불이문이 있는데 불이문이 곧 해탈문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마곡사는 천왕문은 없고 해탈문에 2천왕이 자리하고 있다는 점이 특이 합니다.

해탈문 문을 지나면 속세를 벗어나 법계(法界)에 들어가는 것이라고 하는데 해탈문 안에는 양편으로 금강역사상과 보현 및 문수동자가 있습니다.

 

해탈문을 지나면 두 번째 다리인 극락교가 나오는데 다리를 건너며 우측으로 보면 범종각이 눈에 들어오는데 단청색깔이나 건물의 장대석을 보면 새것으로 얼마 되지 않은 것 같습니다.

절간이나 사찰을 찾는 사람들마다 눈여겨보는 건축물이 있을 것이고 이는 사람마다 다를 것입니다.

국보나 보물을 눈 여겨 볼 수도 있고, 부처의 생김을 눈 여겨 볼 수도 있고, 부처님에게 정성을 다해 빌 수도 있고, 석탑을 중히 여기며 볼 수도 있고 건물양식을 중점적으로 볼 수도 있고 역사나 전설을 가지고 있는 건축물을 눈 여겨 볼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필자는 맨 먼저 보거나 관심을 갖는 곳은 범종각입니다.

범종각이라 해서 달랑 범종만 안치한 곳이 아닌 불전사물을 안치한 범종각을 말하는 것입니다.

 

불전사물?

불전사물은 범종, 법고, 목어, 운판을 뜻하는데 사물은 하나하나 마다 뜻을 지니고 있습니다.

극락교를 건너 범종각으로 다가섭니다.

밖에서 사진을 찍으니 겹쳐 찍히기도 하고 자세하게 사진을 찍을 수가 없습니다.

입구에 가니 들어가지 말라고 작은 안내팻말이 있는데 허락을 맡고 사진만 찍으려고 주변을 둘러보아도 물어볼 사람이 없습니다.

다른 사찰에서도 잠시 사진만 찍는다고 하면 대부분 허락을 해주는데 물어볼 사람이 없어 두리번거리다가 죄를 지어야 했는데, 그래야 1분 정도인데 범종각 안으로 들어가서 불전사물을 급히 찍으며 죄를 짓고 나옵니다.

불전사물 중 제일 눈여겨보는 건 목어입니다.

목어는 유명사찰마다 그 모양이나 생김이 각각 다르기 때문에 흥미롭습니다.

목어의 생김과 형상이 서로 달라 수염이 길다 싶으면 짧은 것도 있고, 주둥이가 길다 싶으면 짧은 것도 있고, 이빨이 호랑이처럼 날카롭다 싶으면 없는 것도 있고, 날씬하다 싶으면 뚱뚱한 것도 있고, 작다 싶으면 무식하게 보일 정도로 큰 목어도 있는데 목어의 생김을 하나하나 보면 아주 재미있고 흥미롭습니다.

불전사물에 대한 설명입니다.

1.범종(梵鐘)

만물을 깨워 세상을 밝히다.

범(梵)이란 우주만물이며 진리란 뜻으로 바로 그런 소리를 내는 것이 범종이다.

범종은 원래 절에서 대중을 모으고 때를 알리기 위하여 쳤으나 점차 절에서 조석예불이나 의식을 치를 때 치게 되었다. 하지만 범종을 치는 본뜻은 범종은 그것의 장엄하고 청명한 소리를 듣는 사람으로 하여금 세상에 찌든 몸과 마음을 잠시나마 편안하게 해주며 그들의 마음을 깨끗하고 참회토록 하는 신앙적 의미를 가지고 있다.

 

2.법고(法鼓)

땅의 모든 생물을 제도하다.

법고란 불법을 전하는 북을 말한다.

장고나 진고 그리고 농악에서 쓰이는 북 등 일반 북과는 달리 절에서 쓰는 북을 '법고(法鼓)'라 부르는데 즉 부처님 불법의 진리 싣고 울려 퍼지는 북을 일컫는다.

둥근 나무 몸통에 그 양옆에는 각각 암.수소의 가죽을 대어 만든 북. 음양(陰陽) 화합의 소리를 싣고 막막한 대지에 가득 울리는 법고의 저음(低音)을 듣고 땅위에 사는 네발 달린 짐승들은 마음의 평온을 얻게 된다고 한다.

법고를 칠 때는 마음 심(心)자를 그리면서 2개의 북채로 두드리는데 법고를 치는 승려의 타법에 따라, 또한 북소리를 듣는 이의 마음에 따라 들리는 느낌이 다르겠지만, 여명의 고요 속에 흩어지는 북소리는 장엄하기 그지없다.

 

3.목어(木魚)

잠들지 않는 수행의 길로 인도하다.

목어는 나무로 물고기의 형상을 말한다.

나무로 만든 물고기 배 부분을 파내고 그 사이를 막대기로 두드리면 몸통 사이에서 생겨나는 공명(共鳴)의 울림이 주변에 퍼지면 그 소리 듣는 수중(水中) 중생들은 한없는 해탈의 마음을 가질 수 있다는 것 이었다.

목어는 본래 식당 혹은 행랑 등에 매달아 길게 두 번 두드려 공양 시간을 알렸고, 한 번 길게 두드려 대중에게 모일 것을 알렸다고 한다.

그러나 현재는 독경을 한다든가 예불시간을 알리는 등의 사용으로 그 용도가 변경 되었으며 물고기는 밤낮 눈을 감지 않으므로 수행자로 하여금 졸지 말고 늘 깨어서 꾸준히 수도에 정진하라는 뜻에서 그 형상으로 목어를 조성하였다고 한다.

목어의 형상은 후대에 이르러 용의 머리에 물고기의 몸을 한 '용두어신(龍頭魚身)'의 형태에로 발전되기도 하였다.

 

4.운판(雲板)

하늘의 소리로 날개를 펴다.

운판은 아침 · 저녁 예불 시에 중생교화를 상징하는 의식법구로 소리를 통해 허공을 헤매는 고독한 영혼을 천도하고, 허공을 날아다니는 조류계의 모든 중생들을 제도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운판(雲板)의 외형은 대개 뭉게구름 모양으로 조형되며 표면에 보살상이나 범자, 구름, 달 등을 함께 그리기도 하고 가장자리에는 승천하는 용을 장식하기도 한다.

운판이 구름 모양으로 조형된 까닭을 화재예방의 염원적 상징조형으로 해석하기도 하는데 구름은 곧 물이 되기 때문에 불을 다루는 부엌에서 화재예방의 염원으로 운판의 형상을 조형하였다고 한다.

범종각을 보고 큰 마당이 있는 쪽으로 나오면 대형전각과 탑이 있습니다.

대광보전과 5층석탑입니다.

대광보전(大光寶殿)

 

대광보전은 마곡사의 중심 법당으로 임진왜란 때 불타 없어진 것을 정조 때인 1785년에 새로 지어졌다고 하며 보물 제802호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법당 안에는 중앙에 부처를 두는데 이곳 대광보전에는 중앙에 부처를 두지 않고 서쪽에 비로자나불 두었는데 서쪽에서 동쪽을 바라보도록 특이하게 배치하였다고 하는데 법당은 살피지 않았습니다.

부처가 서쪽에서 동쪽을 보고 있는 절이 이곳 말고 생각나는 곳이 있습니다.

바로 영주 부석사 무량수전 안에 있는 부처는 이곳 대광보전과 같이 부처가 서쪽에서 동쪽을 향하고 있는데 불교계에서는 다 이유가 있다고 합니다.

대광보전 안에 있는 비로자나불은 진리를 상징하는 부처로 모든 사람들을 지혜의 길로 이끌어 준다고 합니다.

대광보전 안에는 후불탱화가 있다고 하는데 보지 못함이 서운하기는 합니다.

이 탱화는 1788년 그린 영산회상도로 석가모니께서 영축산에서 설법하는 장면을 그림으로 표현한 것이라고 하며 비로자나불 뒷벽에는 18세기 후반에 그린 백의수월관음도가 있다고 하며 앉은뱅이가 100일 기도를 올리고 걸어 나왔다는 전설이 전하는 곳입니다.

 

대광보전은 외부에서 보면 단청을 한 지 오래되어 희미해졌는데 단청에서 나타나듯이 건물의 중요도를 알 수 있을 것 같으며 팔작지붕으로 처마에는 부연을 설치해 더욱 아름다움을 더했으며 처마에 달린 풍경은 마음의 여유와 넉넉함을 더해줍니다.

풍경(風磬)

바람이 산들 불어대면 은은한 풍경소리가 마음의 여유를 줍니다.

풍경에 대해 알아보기로 합니다.

풍경(風磬)은 처마 끝에 다는 작은 종으로 풍경 외에도 풍탁, 풍령이나 등으로도 불리는데, 우리나라에서는 일반적으로 풍경이라고 부르지만 고문헌에서는 풍탁이라는 용어로 자주 나오는데 현재 흔하게 쓰는 풍경이란 용어는 현대에 들어서 사용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풍경의 구조는 크게 방울형 몸체인 탁신(鐸身)과 바람이 불면 흔들리도록 탁신 아래쪽에 매단 풍판(風板), 그리고 풍판이 흔들리면 탁신 안에서 탁신과 부딪혀 소리를 내는 치게(탁설鐸舌)로 이루어지는데 바람이 불 때마다 풍판이 흔들리면 치게도 움직여 탁신과 부딪혀 맑은 소리를 냅니다

경주에 있는 신라시대 석탑에는 탑 모서리마다 작은 구멍들이 있음을 불 때 풍경은 삼국시대에도 달았음을 추정해 볼 수 있습니다.

풍경(風磬)은 흔히 절이나 암자 등에서 찾아볼 수 있는데 물고기 모양 풍판으로 만들었는데 물고기는 밤낮으로 눈을 감지 않으므로 수행자는 물고기처럼 자지 않고 수행에 임한다는 뜻이라고 하는데 마곡사의 풍판은 물고기 모양이 아니고 특이하게 운판의 모양으로 만들어 졌습을 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풍경의 유래는 무엇일까?

풍경은 대부분 산속에 있는 절이나 암자에 설치하는데 산속에는 예전에 호랑이표범늑대 등 맹수들이 많아 때로는 승려들이 맹수들에게 습격을 당하는 경우가 생겼다는 것입니다.

이에 산짐승들이 싫어하는 쇳소리를 내기위해 풍경을 설치했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라는 것인데 이렇게 시작된 풍경은 산속에 있는 사찰뿐만 아니라 도심안에 있는 호화로운 단독주택에서도 볼 수 있는데 이제는 짐승들로 부터의 방어에서 벗어나 분위기를 조성시키는 목적이나 부를 상징하는 목적으로 변하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그리고 앞면 중앙에는 大光寶殿이라는 현판이 달렸는데 작게 낙관이 찍혀 있기는 하지만 글자를 판독을 할 수 없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大光寶殿 현판은 김홍도의 스승이 되는 표암 강세황의 글씨라고 합니다.

대광보전을 보고 우측을 보면 요사채 같은 건물이 있는데 尋劍堂이라는 현판이 보입니다.

안내판에 의하면 심검당이란 지혜를 찾는 집이라는 뜻으로 언제 지어졌는지 연대를 알 수는 없는데 정조 때 보수한 기록이 있는 것으로 보아 그 이전에 지어진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심검당 마루에는 불전사물 중 동종과 목어가 있다고 기록되어 있으나 이미 설명한 것처럼 불전사물은 이이 새로 지은 범종각에 안치한 상태입니다.

 

ㄷ자형인 심검당으로 들어서면 좌측 2층으로 된 건물이 있는데 2층으로 오르는 계단은 따로 없고 고목을 깎아 하나는 오르는 계단용으로, 또 다른 하나는 내려오는 계단용으로 쓰는 것 같았는데 눈길을 끌기에 충분했습니다.

안내판을 읽어보니 아마도 2층이 고방인 것 같았는데 고방에는 포저 조익의 목판 유서와, 조익의 아들 송복양의 송곡문집 목판이 보관되어 있다고 합니다.

고방 맞은편에는 관음전이 보이는데 새로 지은 건물이어서 관심이 없었고 고방 건물골목에서 나와 계단을 따라 오르기 직전 심검당 건물 방문 앞에 작은 현판이 보입니다.

현판 글씨가 너무나 시원스럽고 잘 썼는데 어디서 본 듯했는데 생각해보니 주차장에서 절로 들어서는 곳에 거대한 바위로 세운 麻谷寺 표지석에서 본 글씨입니다.

 

낙관이 찍혀있어 확인하니 알고 있는 사람이 쓴 현판입니다.

海岡 金圭鎭(해강 김규진).

김규진은 영친왕의 서예스승이었으며 글씨와 그림을 아주 잘 그렸는데 창덕궁 영화당 안에 있는 총석정절경도와 금강산만물초승경도 그림을 그린 사람인데 우리나라 사진기사 1호로도 잘 알려져 있습니다.

김규진이 쓴 작은 현판의 글씨는 주차장에서 들어오며 보았던 麻谷寺 표지석과 같은 필체의 같은 글씨였습니다.

김규진의 글씨는 우리나라 사찰 곳곳에서 볼 수 있는데 이곳 마곡사 이외에도 송광사 현판, 건봉사 불이문에서 직접 확인할 수 있었는데 그 외에도 알아보면 더 있을 것 같습니다.

마곡사 현판을 확인하고 좁은 계단을 따라 위로 올라가면 마곡사에서 내세울 수 있는 또 다른 건축물인 대웅보전이 있습니다.

대웅보전(大雄寶殿)

 

대웅보전은 법화경에 석가모니부처를 큰 영웅이라 한데서 유래한 것으로 석가모니불이 있는 전이라는 뜻입니다.

마곡사 대웅보전은 보물 제801호로 임진왜란 때 불타 없어졌는데 효종 때인 1651년에 새로 지며 대장전이라고 불렀는데 이후 언제인지 대웅보전으로 불려졌다고 하며 내부에는 석가불을 중심으로 양옆에 약사여래불과 아미타불을 두고 있다고 합니다.

사진에서 보듯이 대웅보전은 2층인데 안네서 보면 하나의 공간인데 이러한 건축물은 조선 왕궁의 건물에서 볼 수 있는데 경복궁의 근정전, 창덕궁의 인정전, 창경궁의 명정전, 지금은 동국대학교에 있는 경희궁의 숭정전이 이러한 건축형태입니다.

이러한 마곡사 대웅보전 안에는 싸리나무로 된 4개의 기둥이 있다고 하는데 싸리나무 기둥을 안고 돌면 득남을 한다는 설이 있어 사람들은 대웅보전의 싸리나무 기둥을 돌고 돌아 기둥은 많은 사람들의 손 때가 묻어 반질거리게 윤이 난다고 하며 재미있는 설화가 전한다는데 이러합니다.

사람이 죽어 저승의 염라대왕 앞에 가면 “그대는 마곡사 싸리나무 기둥을 몇 번이나 돌았느냐?”고 묻는다고 합니다. 그 이유는 많이 돌수록 극락길이 가깝고 아예 돌지 않았다고 하면 지옥에 떨어지는 것입니다.

 

대웅보전도 대광보전과 같이 단청의 색이 많이 바랬습니다.

오래세월이 지나며 짙었던 색이 발하여 오늘에 이른 것처럼 많은 세월과 함께하며 우리나라와 역사를 같이하며 많은 어려움과 희로애락을 함께한 건축물이라 생각하니 감회가 새롭습니다.

대웅보전도 대광보전과 같이 팔작지붕에 부연으로 아름답게 꾸몄으며 다포형식의 2층으로 2층은 지지대를 세워 안전을 도모했으며 처마 끝에 달린 풍경은 바람이 불지 않아 움직임은 없었지만 필자의 귓전에는 긴 세월의 우여곡절을 들려주는 듯 했습니다.

2층 중앙에는 大雄寶殿이라는 현판이 달려있는데 낙관이 없어 글씨의 주인을 알 수 없었으며 대웅보전을 떠나며 건축물 뒤를 보았습니다.

대웅보전 건물과 불과 20여m 정도에 잡목이 있는 임야로 정리가 되지 않은 상황이었는데 태화산에 화재라도 발생한다면 귀한 문화재는 잿더미로 사라질 수 있을 것입니다.

국가에서는 보물이나 국보 등, 문화재가 있는 절에는 유지비를 주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그냥 공짜로 준다고 생각하지 말고 문화재를 보존, 유지하는데 보템이 되게 쓰면 좋겠습니다.

서두에 기록한 바, 국가에서 만65세를 경로우대자로 인정하는데도 불구하고 올해 1월1일부터 조계종에서 만70세로 상향시켜 입장료를 받고 있으면서 그돈은 무엇에 쓰려는지 이해가 안 됩니다.

대웅보전을 뒤로하고 좌측으로 내려서면 경사진 길을 따라 다시 대광보전 앞마당으로 내려섭니다.

대광보전 앞마당 가운데는 석탑이 있습니다.

公州麻谷寺五層石塔

공주마곡사5층석탑은 보물 제799호로 안내판에 의하면 고려말 원나라 라마교의 영향을 받아 세워진 탑이라고 합니다.

다보탑이라고도 불리는 이 탑은 1층에는 자물쇠를 새기고 2층 몸돌에는 4방향으로 불상을 새겼고, 머리장식으로 라마탑에서 볼 수 있는 풍마 등 장식을 설치한 탑으로 희귀하다고 하는데 탑에 대한 상식이 없어 평가하기는 어렵습니다.

다만 층층 탑신이 깨졌거나 층간 딱 맞지 않고 틈새가 일정하지 않게 벌어진 정도로 보아 희소의 가치를 떨어뜨리는 것 같은 생각이었습니다.

5층석탑을 다시 보고 일행들이 기다리는 주차장으로 방향을 돌립니다.

극락교를 건너자 일행인 이근남 형님이 오지 않는 필자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미안한 마음으로 발걸음이 빨라지다가 뒤로 돌아서며 범종각을 다시 눈여겨봅니다,

범종각안에 있는 불전사물을 생각하면서 .....

오랜 전통을 지닌 마곡사, 세계유산에 등재된 7대사찰 중 한 곳인 마곡사의 범종각안에는 마곡사 목어가 있습니다.

마곡사 목어는 머리는 메기머리 형상에, 입은 크고, 이빨은 예쁘고 정교하게 잘 나있으면서 송곳니2개가 밖으로 튀어나오고, 입술은 아프리카 흑인들의 입술처럼 두툼하고, 수염은 해적단 선장의 수염을 달고, 등에는 등지느러미가 가시처럼 솟은 게 영낙없는 쏘가리 등지느러미를 하고, 눈은 왕눈이, 몸통은 날씬한데 몸통지느러미가 몸통 중간에 3개씩 붙어있고, 꼬리는 날렵하니 산천어 꼬리이고. 비늘은 촘촘하게 잘 나있는 게 잉어를 닮았으니 예전에도 그러했듯이 오늘도 내일도 마곡사 목어는 수중뿐이 아니라 인간들의 마음을 번뇌에서 건져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