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독립군과대구참사랑산악회 합동산행기

대구, 참사랑과 함께한 남한산성 합동 산행이야기

범솥말 2026. 1. 3. 22:12

제21차 중 20차 서울 독립군과 대구 참사랑의 교류 산행이야기

대구참사랑 산악회원들과

함께한 미완의 남한산성 합동 산행이야기

 

산행일 : 20161023

누구와 : 대구참사랑산악회원과 시인마뇽, 하이맛, 성봉현 그리고 범솥말

산행시간 : 09:50~14:40(4시간50)

산행거리 : 11.82km(10.51km+1.3km)

주요산행처:광암정수장정류장(09:50)-금암산(10:40,330m)-연주봉옹성(12:00)-남한산성북문(12:25)-동암문옹성(13:30)-남한산정상(13:40,526m)-벌봉(13:48)-장경사앞(14:10)-남한산성동문(14:25,311m)-북문앞 송림정(14:40)

 

<산성 성곽을 돌다 본 여성입니다,

가을을 몹시 심하게 타는지? 쓸쓸해 보이는데 누가 이사람을 모르시나요????>

 

산행 전 이야기

지난 언젠가 제 지인에게서 이런 글을 받은 적이 있습니다.

바로 행복이라는 제목의 글입니다.

『물고기는 물속에 있을 때는 어느 곳이던 갈수 있는 자유와 행복을 누리며 살지만 물고기는 행복의 실체를 느끼지 못합니다. 

사람들이 처 놓은 그물에 걸려 땅 위로 올라오고 난 후에야 비로써 물속에서 자유로이 다닐 수 있었을 때가 행복했을 때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이는 물고기 뿐 아니라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의 대부분 사람들이 마찬가지로 행복은 가지고 있거나 누릴 때는 모르다가 잃고 난 후에야 뒤늦게 깨닫게 된다는 것입니다.

영국에는 「행복은 사라진 후에 빛을 낸다.」 라는 속담이 있다고 합니다.

행복은 공기와 같아 보이지도 않고, 만질 수도 없는데 사람들이 행복의 실체를 보거나 만질 수 있다면 소중히 다루겠지만 실체를 알지 못하므로 행복의 소중함을 모르며 행복이 떠난 후 잡으려 하거나 후회해도 소용없습니다.

그러므로 항상 지금이 행복과 함께 하고 있음을 깨닫고 즐겁게 살아야 할 것입니다.』

 

<행복이 모 별건가요,

이런거 아닌가요? 우린 집에서도 늘 그렀답니다.>

마음에 와 닿는 이야기입니다.

생활의 한 부분인 산행, 더 나가 대구와 서울팀의 우정산행도 예외는 아닐 것입니다. 우리 속담에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라고 합니다.

대구와 서울을 오가기를 10, 때로는 귀찮게 여겨질 때도 있었을 것이고 때로는 하찮은 일로 마주하기 힘들었던 때도 있었을 것입니다.

 

 

<이건 예술입니다. 드라마나 영화의 한장면 같은 .................. >

그러나 지나고 돌이켜 보면 귀찮거나 불쾌했던 시간도 모두 행복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자의에 의하던, 타의에 의하던 물고기의 예와 같이 물 밖으로 나가 물을 그리며 후회하는 날이 우리들에게는 없기를 바라며 언제가 될지 모르는 날까지 지금의 행복이 영원하기를 바랍니다.

 

광암정수장 정류장에서 금암산정상 구간

하남 서부에서 연주봉을 거쳐 남한산성으로 이어지는 등산로의 들머리는 광암정수장 후문으로 대구 참사랑 산악회원들과 함께 들머리에서 단체사진을 찍고 산행이 시작됩니다.

 

<자~~~ 출발합니다.>

이번 코스는 10여 년 전 혼자서 지난 적이 있는데 당시에는 길은 있었지만 이정표나 지형지물 표식은 물론이고 이곳을 지나는 사람들도 많지 않았으며 지금보다 더 낳았던 것은 나무가 지금보다 적고 작아 능선을 오르며 하남과 서울의 도심을 볼 수 있었습니다.

산행이 시작되고 곧 능선에 오르면 오르고 내리기를 반복하며 고도를 차츰 높입니다.

곳곳에 긴의자가 설치된 휴식처를 지나 철탑을 지나고 첫 번째 만나는 지형지물이 있으니 큰바위얼굴입니다.

미국 서부에 있던 큰바위 얼굴이 하남으로 이사를 했단 말인가? 그러나 그건 아니었습니다. 미국이 아니라 우리나라에도 큰바위얼굴이 있습니다.

월출산에 갔을 때 큰바위얼굴을 보았는데 당시에는 별로였는데 사진을 보면 정말 턱수염이 난 노인같은 형상이 그럴싸했는데 월출산 큰바위얼굴이 잠시 출장을 나왔나? 그것도 아니었습니다.

 

<큰바위얼굴입니다. 마음이 검은 사람은 잘 안 보일 수 있습니다.>

사방에서 방향을 바꾸어 봐도 얼굴의 윤곽은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소설 속에서 큰바위얼굴을 보고 행복감에 젖고 마을의 행운이 큰바위얼굴에 의해 비롯된다고 생각했던 것처럼 비록 이곳 큰바위얼굴이 얼굴 형태는 나타나지 않아도 이곳을 지나는 사람, 그리고 대구에서 올라온 참사랑회원들에게 행운을 가져다준다고 생각하면 꼭 생각한대로 행운이 따를 것이라는 생각으로 지납니다.

큰바위얼굴에서 2분 거리를 두고 하남시에서 유적발굴을 하는 현장을 지나는데 7월초순까지라고 현수막을 걸어 놓고 기간연장을 하며 예산을 축내는 방법을 생각하고 있나봅니다.

유적발굴현장을 지나 덜미재로 낮추었다가 다시 오름을 시작하며 제법 가파른 길을 오르며 나뭇가지 사이로 펼쳐지는 서울시내의 풍경을 보고 정점으로 오르면 또 다른 지형지물인 범바위와 새바위가 있습니다.

 

<범바위, 그리고 어미새와 아기새 바위입니다.>

<이게 어미새인데 이렇게 가르쳐도 모르겠다고요???>

이곳 역시 범의 형상이나 새의 형상은 찾기 어려운데 보는 눈이 달라 범과 새의 형상과 모양은 서로 다르니 차회장이 집적 하나하나 설명을 하지만 다른 사람들 의견은 서로 다르니 한바탕 웃음으로 의견을 통일 합니다.

이어 거대한 바위를 지나면 소나무가 있는 정상, 바로 금암산 정상에 닿습니다.

오늘을 위해 사전 선답한 성봉현산우가 정상 전망암으로 안내를 했고 전망바위에서 서울시내 조망을 즐기며 시간을 보냅니다.

 

<이렇게 힘들 줄 알았다면 평소에 술을 적게 마시는 건데, 집사람 말을 잘 들었다면 ......... >

<얼굴 표정이 밝습니다, 운수대통할 인상입니다. >

정수장후문들머리에서 금암산까지 스마트폰에 의한 산행거리2km, 소요시간50, 해발330m(지도와는 8m 오차가 있음), 현재시간 1040분입니다.

 

금암산 정상에서 남한산성북문 구간

금암산(金岩山)!

정상 안내판에는 금암산의 유래에 대해, 3개로 이루어져 있는 산정 전망바위가 서울방향 산 아래서보면 바위의 색깔이 비단색을 띠고 있어 붙여진 이름이라고 하며 아래서 보면 바위들이 얼기설기 있는 것처럼 보여 얼거산이라고도 부른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러한 유래가 맞는다면 금암산(金岩山)의 금()은 비단금()으로 바꿔 금암산((錦岩山)써야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저기 보이는 거 있지?

우리나라에서 최고 높다는 롯데월드타워라고............. >

<전망바위에서 보는 시내조망입니다.>

산정 전망바위는 오늘 산행의 최고 조망점입니다.

이렇게 서울 시내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조망처는 극히 드뭅니다.

좌측 청계산->관악산->계양산->남산->안산->인왕산->북악산->북한산->도봉산->사패산->불암,수락산이 보이고 정면으로는 555m123층인 우리나라 최고의 건물인 롯데제2월드타워가 위용을 나타내며 좌우, 뒤로 서울의 도심이 잘 보입니다.

<음주 등산면허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라 정상주 한 두잔은 끄떡없습니다.>

선두팀이 서울도심을 조망하고 금암산 정상주를 나눕니다.

뒤이어 올라선 중간과 후미가 모두 한자리에 모여 1차 정상주를 나누며 간식으로 체력을 보충합니다. 물론 취할 정도로 음주를 하면 사고의 원인이 되니 알맞게 한 것은 당연한 이야기입니다. 일행이 모두 금암산 정상에서 인증사진을 찍고 산성으로 이어갑니다.

금암산을 내려서면 흔들바위 작은 안내판이 발길을 멈추게 했고 있어야 할 흔들바위는 없습니다.

안내판 뒤로는 10m되는 낭떠러지기인데 고개를 빼 아래를 내려다보니 아래에 흔들바위가 있는데 집채만하여 흔들 수가 없을 정도였는데 아마도 백제시대 계백장군이 흔들던 바위가 아닐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흔들바위에서 성봉현씨가 가르키는 방향은 벌봉이나 남한산 정상이 아닌 검단지맥이네요? >

<저걸 어떻게 흔들어??? 계백장군이라면 모를까?>

사실은 이 흔들바위가 바위 위에 있었는데 성봉현 산우가 답사할 때 흔들바위를 너무 세게 밀어서 아래로 떨어뜨렸는데 떨어뜨리기는 했는데 다시 올려놓을 수가 없었다고 제게 넌지시 이야기를 했습니다.

흔들바위를 지나 널문이고개를 지납니다.

길가에 연리목 안내판이 있습니다.

연리목은 서로 다른 두 나무가 붙어서 하나의 나무로 살아가는 것을 말하는데 이건 쫌 아니다 싶습니다. 이 나무는 잠시 스치고 지났을 뿐 하나의 나무라고 볼 수는 없지만 그냥 예쁘게 봐 주세요~~~~

 

<아무리 봐도 제대로 된 연리목은 아닌거 같습니다.>

연리지는 채옹에게서 비롯되었다고 합니다.

한나라 말기의 문인 채옹은 효성이 지극했다. 어머니가 늘 병상에 누워있자, 어머니를 간호하느라 3년 동안 옷을 벗고 쉬지 못했다. 또 어머니 병이 악화되자 100일간 잠자리에 들지 않고 보살펴 드렸으며, 어머니가 죽자 무덤 곁에 초막을 짓고 상을 치렀다.  

그 후 채옹 집 앞에 두 그루 나무 싹이 돋아났는데 싹이 점점 커지면서 나무 결이 붙은 가지가 되었는데 세상 사람들은 채옹의 효성 때문에 생긴 기이한 일이라고 했다.”  

이 연리(連理, 결리붙다)는 처음에는 효성의 뜻으로 쓰였지만 이런 것도 진화하여 효에서 사랑을 바뀌다 보니 요즘은 원래의 의미인 효는 실종상태에 이르렀으며 사랑의 대명사로 연인간, 또 부부간의 아름다운 사랑으로 비유하고 있습니다.

이야기가 나와서 한마디 더하고 지나가야 할 것 같습니다.

모든 대원들이 부부간의 사랑이 돈독하겠지만 특히 대구 여성분들은 착하고 아름답고 부부간의 사랑이 으뜸인 것 같습니다. 늘 웃는 모습이 넘 좋고 부군을 보는 눈빛에는 사랑이 넘치니 보는 사람들도 기분 좋습니다.

 4팀이 부부팀으로 산행을 했는데 이번에는 정미님이 발목을 다쳐 대박이 혼자 산행을 하는데 약간 얼굴이 어두워 보였고 밝지 못했으니쫌 안타깝게 보였는데 담부터는 반갑게 얼굴은 보고 산행이 여의치 않다면 산행할 동안 주변 관광을 하면서 함께 함이 좋은 듯싶습니다.

연리지나무를 지나고 골프장 갈림길을 지나 약1km는 계속 오르막이 지속됩니다.

가끔씩 어린아이 눈물방울처럼 큰 빗방울이 내 몸을 치고 지나갑니다.

모른 채 외면하고 오르는데 위에서 내려서는 사람들은 소나기가 퍼 부을까 걱정을 하며 하산 속도를 올리는데 산행을 하는 사람들도 다양합니다.

나이가 지긋한 분들이 있는가 하면 부부간과 함께한 사람들, 부부는 아닌데 부부같이 행세하는 사람들, 가족 동반을 한 사람들, 부자가 함께한사람들 등 다양한 사람들의 표정도 제각각으로 혼자 스치며 지나는 사람들의 표정을 보며 씩~~ 웃습니다.

거친 숨소리를 토하며 마지막 팀에 상택, 상훈, 그리고 시인선배님과 함께 연주봉을 올랐습니다.

연주봉 정상은 옹성안에 들어있어 등로에서는 들어갈 수 없고 본성으로 들어선 다음 암문을 통해 다시 연주봉으로 나와야 하므로 옹성을 생략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등로에서 성곽이 높지 않아 성곽을 넘는 사람들이 몇몇 보입니다.

 

<망루 중간칸에 상택아우와 상훈아우가 있습니다. 우린 잘못 없고요, 상택아우땜에 일어난 사건입니다.>

<아니??? 성곽을 넘었지? 벌금 50만원인데 D/C해서 10만원만 내라~>

<뒤로 숨는다고 몰라, 빨랑나와서 벌금내라구............>

<지성을 갖춘 여성분 들이야 성곽을 넘었을리 없고 암문으로 돌아서 들어오셨지요?>

성곽을 넘는 사람들에게 욕이나 퍼 부을 태세였는데 상택아우가 성곽을 넘었습니다.

욕을 할 수가 없게 되었고 뒤이어 온 상훈아우에게 말 안 들으면 팰 기세로 성곽을 넘으라고 하니 상훈아우 겁에 질려 성곽을 넘습니다.

그러다 지두 아우한테 혼날까봐 성곽을 넘었는데 지는 아무 죄가 없습니다. 모두 상택아우 땜에 일어난 사건입니다.

쫌 찜찜하던 차에 시인선배님께서 무거운 몸으로 성곽을 넘습니다. 선배님이 성곽을 넘는 순간 면죄부라도 얻은 느낌으로 맘이 편안해져 옵니다.

! 사람 맘이라는 게 요상스럽네요, 왜 선배님이 성곽을 넘는 순간 맘이 편해졌는지 지금도 모를 일입니다. 일단 범죄를 저지른 사람들끼리 사진 한판 박고 본성으로 향합니다.

 (이글을 쓸 때는 몰랐는데 나중에 사진을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우리 팀 대부분이 옹성안으로 진입했는데  어떻게???? 

여성동맹과 보좌진들이 성곽을 넘었단 말입니까 울들처럼 성곽을 넘지는 않았겠지요 여성들인데.... 당근, 암문을 통해

들어왔을 것입니다.)

지금쯤 말은 못해도 선두로 본성에 진입한 사람들은 지루한 시간을 보내고 있을 거란 생각을 하니 괜히 기분이 좋습니다.

한 가지 의문이 드는 건 수근아우 이야기인데 산행을 할 때마다 무릎이 아파 쩔쩔매곤 했는데 오늘따라 매우 잘 달리는 적토마로 변신해 모습을 볼 수 없었는데 잠시 후 본성에 들어가면 볼 수 있을 겁니다.

지루하게 기다리던 선발진이 답답한지 암문 주변에서 기다리다 반갑게 맞아 주었고 개선장군의 귀향이나 되는 양 의연한 모습으로 본성으로 들어서서 인증 사진을 찍고 여맹이 보이지 않아 물으니 이미 북문에 당도해 있다는 보고를 받습니다.

북문에 도착해 안쪽과 바깥쪽의 성문을 담고 북문 가까운 곳에서 점심을 대신하여 부실한 참을 합니다.

 

<북문인 전승문을 밖에서 본 모습입니다.>

<망루 위에서는 평지로 소품도 있어 사진을 찍고 가기도 좋습니다.>

정수장후문들머리에서 남한산성북문까지 스마트폰에 의한 산행거리5.69km,소요시간 약2시간35, 해발360m, 현재시간 1225분입니다.

 

남한산성북문에서 남한산성동문 구간

여기서 잠깐!

남한산성에 대해 산행을 하면서도 여러 차례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었습니다.

 

<성곽의 풍경이 승천하기 위해 트림을 하는 용과 흡사한 풍경입니다.>

<성곽을 따라 참나무의 단풍이 소나무의 푸르름과 조화를 이뤄 보기가 좋습니다.>

남한산성은 최초 백제시대에 축성했느냐? 신라시대에 축성했느냐? 는 우리와 무관한 일이고 우리가 아는 건, 조선 인조가 왕으로 군림하던 시절 병자년에 청나라가 침략했는데 이를 병자호란이라고 부르며 임근인 인조는 지 혼자만 살자고 이 성에서 45일을 버티다 식량이 떨어지자 청태종에게 항복했으며 송파로 나가 청나라 황제에게 세 번 절하고 아홉 번 머리를 조아리는 삼궤구고두 예를 표하는 치욕을 당한 것입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인조를 좋아하지 않습니다.

왕위를 지키기 위해 장남인 소헌세자를 독살시키고 무능한 둘째 봉림대군으로 왕위를 잇게 하니 이가 효종입니다. 소헌세자가 왕위를 이었다면 역사는 어떻게 변했을지 모르겠지만 안동김씨가조선을 망하게 한 현재의 역사를 피해갔을지 모를 일입니다.

대구 산우들에게는 참 미안합니다.

 

<죄송하고 미안했던 시간, 그래도 맛있게 나누어 먹는 모습이 좋았습니다.>

빗방울이 오락가락하는 풀밭에서 차가운 빵조각으로 끼니를 대신하게 했으니 말입니다.

이러한 의견은 지가 냈는데 산행이 일찍 끝나므로 점심을 거하게 먹으면 식당에서 맛있게 식사를 하지 못할까 하는 생각에서 빵과 우유로 때우게 된 겁니다. 지송하고요, 그래도 맛있게 먹었습니다.

식사 후 다시 성곽을 이어갑니다.

 

<달고나의 축제, 하이맛 선배님께서

생각치 못한 추억의 달고나 사탕을 준비해 모두들 함박 웃음을 지으며 입에 물었습니다.> 

<추억의 달고나 좋긴 정말 좋습니다. 하이맛 선배님 잘 먹겠으니 담에 또 가지고 오세요~~~>

북문에서 남한산이나 벌봉으로 가는 동장대 암문까지 가면서 산성의 정취는 뛰어납니다.

마치 용이 힘차게 하늘로 솟아오를 것 같은 형상의 성곽은 붉게 물들어가는 단풍과 어우러져 절경을 이루고 지나온 연주봉에 멀어져 가는 풍경과 점점 다가오는 벌봉과 북한산 정상의 풍경이 산행의 즐거움을 더해줍니다. 

성곽 옆에 예쁜 단풍이 든 곳에 서어나무가 있습니다.

서어나무에서 한차례 사진을 찍고 나무에 대한 이야기를 합니다.

 

<못생긴 얼굴도 이런 포즈 취한다면 더 잘보일라나..>

<단풍 좋고, 인물 좋고, 사진발 잘 받고, 이대로 계속 갑시다.>

예전 글을 모르던 시절 5리마다 나무를 심어 거리를 표기했다는 오리나무가 있는데 서어나무는 일명 10리나무라고 하는데 10리에 하나씩 심어 거리를 표기했다고 하는데 서어나무는 목질은 단단한데 목피가 울퉁불퉁하여 쓸모가 없어 땔감밖에 안됐지만 현재는 가공기술이 뛰어나므로 여러 곳에 사용할 수 있지만 서어나무가 흔하지 않은 편입니다.

이야기를 하다 보니 동장대 암문에 도착합니다.

암문을 나서면 외성인 봉암성으로 산성의 이름을 빌려준 남한산 정상과 벌봉이 봉암성에 있습니다.

지와 경환 아우가 한 조가 되고 성봉현, 임상택, 차성섭 산우가 한 조가 되어 남한산으로 향했습니다.

 잡풀이 무성헌 남한산 정상에는 정상석은 없으며 풀섶에 삼각점만 있어 정상 삼각점에서 인증사진을 찍고 벌봉으로 향합니다.

 

<남한산 정상에는 잡풀만 무성합니다.>

<여기가 남한산 정상, 삼각점에서 인증사진찍고 , 어때? 괜찮아 보이나???>

벌봉은 남한산 정상에서 200m 거리에 있는데 벌봉에 도착하니 성봉현 조는 이미 벌봉을 보고 내려선 상태였습니다.

벌봉은 남한산보다 높이는 낮지만 사실상 정상을 대행하는 봉우리인데 남한산 정상이나 벌봉이나 정상석은 없지만 벌봉에는 바위 봉우리가 있고 바위에는 김병육(金炳陸), 서상조(徐相朝) 2개의 명각과 봉암성 신축비가 바위에 음각되어 있습니다. 

신축비는 작은 글씨에 마모가 되어 쉽게 알아볼 수 없는데 안내문에 의하면 숙종12년인 1686년 윤사월 초일에 시작해 한 달 열흘 걸려 쌓았다는 내용이었습니다.

 

<봉암성 신축비 안내판을 보고있는 모습입니다.>

<바위에 이름을 새기면 마애명, 바위에 불상을

새기면 마애불, 바위에 시를 새기면 마애각, 통털어 글을 새긴바위를 각자바위라고합니다.>

여기서 또 잠깐,

조선시대에는 성이 제법 많았는데 방치하여 무너지고 훼손이 심했는데 숙종이 곳곳의 훼손된 성들을 복원, 증축, 축성하는 등 많은 심혈을 기울였습니다. 

그런가하면 숙종은 연애도 박사였습니다. 

드라마나 영화에서 여러번 다루었던 장희빈과 인현왕후가 숙종의 부인입니다.

미색이 뛰어난 장희빈을 왕비로 앉히고 인현왕후를 폐서인 시켜 사가로 쫓아냈다가 장희빈이 신물이 나니까 죽이고 다시 인현왕후를 복원시키는 등 여색에 박사이며 창덕궁에가면 장희빈과 연애하며 뱃놀이하던 곳, 달밤에 정자에서 술마시던 곳 등 많은 흔적을 남겼습니다.

마애명을 본 후 각자바위에 올라 인증사진을 찍고 기다릴 대원들을 생각해 급히 본성으로 들어섭니다.

 

<벌봉 정상 각자바위에서 지상 최고의 포즈를 취해봅니다.>

<난 대충 포즈를 취해보고>

본성으로 들어선 후 비는 더욱 많이 내렸고 앞서간 대원들이 걱정되었지만 어쩔 도리가 없는 입장이었습니다. 동장대 터를 지나 내려서는 성곽 너머로 망덕산과 검단산이 모습을 드러내며 붉게 물들인 단풍과 풍경을 한껏 돋보이고 있었습니다.

이어서 장경사를 지납니다.

 

<술 취한 지 얼굴 맨시루 빨갛네요.>

<성곽과 단풍 아주 잘 어울립니다.>

비를 맞아 촉촉한 단풍나무의 아름다움이 절정에 달하고 있는 성곽을 돌고 또 돌아갑니다.

비가 점점 더 내리고 배낭에 1회용 우의가 있는데 입지 않고 그냥 비를 맞고 걸었는데 여성대원 중 우의가 없는 대원이 있다면 건네주려는 생각이었는데 나중에 보니 일회용 우의를 준비했었는데 그것도 모르고 비를 맞았습니다.

성곽과 산 그리고 가끔씩 나타나는 바위와 어우러진 단풍이 아주 잘 어울립니다. 이정표에 동문이 200m를 남았다고 알립니다.

남자들만 같다면 비를 맞으며 산행을 이어갈 수 있지만 여성대원이 걱정되어 전화를 연결하고 동문에서 산행을 마쳐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을 전합니다. 

곧 동문으로 내려섰고 안전을 위해 산행을 끝내기로 결정을 하니 정상적인 산행은 동문에서 끝이 납니다.

 

<동문 건너편 성곽을 보며 가야되는지, 이쯤서 끝내야 되는지 망설여 졌습니다.>

<단풍이 물든 동문으로 내려서며 본 풍경입니다.>

정수장후문들머리에서 남한산성동문까지 스마트폰에 의한 산행거리10.51km,소요시간 약4시간35, 해발311m, 현재시간 1425분입니다.

 

산행 이후

우리가 산행을 마친 동문부근의 풍경은 말 그대로 아수라입니다.

좁은 버스정류장에 비를 피하려 모여든 산객들이 꽉 찼고 편도 1차선의 좁은 길을 오르는 차들은 길게 늘어서 꼬리를 물고 오르고 있습니다.

일행이 한자리에 모여 약1.3km가 되는 예약한 식당으로 도보로 이동을 합니다.

 

<비가 내리는 산성로터리의 풍경입니다.>

<드디어 송림정에 도착합니다, 모든게 먹고 살자고 하는 건데 빨랑 들어가자고요~~~>

오르는 버스가 온다 해도 걸어서 오르는 편이 더 빠르며 산성 로터리로 오르는 사람들은 대부분 산행을 하는 사람들이며 산행의 문화도 바뀌어 대부분 우산을 받치고 다니는데 조금 전 성곽을 지날 때도 우산을 받치고 산행하는 사람들이 많이 보였습니다. 그렇게 올라 산성로터리를 지나 북문 조금 못 미친 곳 송림정으로 들어섭니다.

정수장후문들머리에서 송림정까지 스마트폰에 의한 산행거리11.81km, 소요시간 약4시간50, 현재시간 1440분입니다.

 

<대구 참사랑산악회 차성섭회장님이 건배제의를 합니다.>

<산행할 때 안 보이던 재형아우가 보입니다,   

글구 오늘따라 잘 달린 수근아우도 기분이 최고입니다.> 

늘 그렇듯이 산행의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즐거운 시간을 보냅니다.

예정된 산행을 마무리 짓지 못했지만 누구하나 불만을 갖거나 불평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일년에 2번을 만나 산행하기를 벌써 10년이 지났으니 모두의 마음을 읽을 수 있고 이해할 수 있는 관계가 되기 때문입니다.

대화의 화두는 지난번 이야기 나왔던 10년을 대구와 서울을 오가며 함께했던 산행을 한권의 책으로 내는 이야기로 결론은 올 12월까지 개인별로 마음에 드는 산행기를 나름대로 출품하기로 의견을 모았습니다.

 

 

<누가 이 사람을 모르냐고?

방송을 태우니 제 짝이 나타났네요,

담장에 기대있는 걸 보고 실성했나 했는데

지금보니 말짱한건 서방님이곁에있어서인가 봅니다,

암튼 오늘 산행기의 처음과 마지막을 장식하게 되었습니다. 복 많이 받고 메리 크리스마쓰쓰쓰~~~>

각각 헤어져 집으로 돌아가는 길, 전철안에서 시인 선배님과 하이맛 선배님이 불렀던 로미오와 줄리엣 영화의 삽입곡이 생각났고 마음 깊은 곳에서 음악은 지금도 계속 울리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