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이야기

영월, 청령포 돌아보기

범솥말 2025. 12. 28. 23:22

영월, 청령포 돌아보기

 

방문일 : 2015.08.11

문화재 등록번호 : 명승 제50

소재지 : 강원도 영월군 남면 광천리

누구와 : 태욱처남부부와 포처형, 그리고 우리 내외

돌아본 곳 : 청령포, 방울재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이기도 한 조선 왕릉은 대부분 서울 근교에 있어 언제 던지 마음만 먹으면 갈 수 있지만 외따로 있는 단종의 능인 장릉은 강원도 영월에 있어 서울 근교의 왕릉과 좀 다른데 그래도 예전 같지 않아 요즘은 교통의 발달로 찾아보기가 쉬워지기는 했지만 그래도 큰 맘 먹지 않으면 돌아보기 힘든 곳으로 영월여행 둘째 날 단종이 유배되었던 영월의 어소가 있던 곳, 청령포를 찾았습니다.

지난해에는 하남의 형님네와 찾았던 청령포를 올해는 태욱처남네 부부와 영등포 처형과 함께 다시 찾았습니다.

<매표소 부근에서 본 청령포 전경입니다.>

<작은 동력선을 타고 서강을 건넙니다.>

청령포는 3면 이 서강에 둘러싸여 있고 한쪽 면은 육육봉이라는 험준한 암봉으로 이루어져 사실상 섬과 마찬가지인데 아픔의 역사가 무색하게 청령포는 매우 아름다운 경관을 갖고 있어 대한민국 명승 제50호로 지정되기도 했습니다.

작은 동력선을 타고 넓지 않은 강을 건너면 울창한 송림이 있습니다.

<송림속에 단종어가가 보입니다.>

<데크로드를 따라 어가로 들어섭니다.>

송림숲속으로 들어서면 데크로드가 설치되어 있는데 좌측에는 유배 생활을 하던 단종어가가 있는데 단종어가는 2004승정원일기의 기록을 토대로 당시의 모습을 재현한 것으로 단종어가에는 단종의 모습을 밀랍인형으로 만들어 놓았고 마당에는 비스듬이 누워있는 노송 아래 비각이 있는데 이 비각안에는 단묘유지비라는 비석이 있습니다.

<단종어가로 2004년 승정원일기를 토대로 복원했다고 합니다.>

<밀랍인형으로 만든 단종의 모습입니다.>

<어가의 마루와 간단한 이불장이 보입니다.>

이 비석은 영조39년인 1673년 영조 임금의 친필을 각자하여 세운 비석으로 높이 162cm의 크기로 1단의 화강석 비좌 위에 오석으로 된 비신을 세웠는데 비석의 전면에는 端廟在本府時遺址(단묘재본부시유지)라는 글이 새겨 있어 단종이 청령포에 살았음을 증명해 줍니다.

<소나무 한그루가 단종이 그리워 담장 안으로 길게 누워 자라고 있습니다.>

<어소 마당에 단묘재본부시유지비각이 있습니다.>

<비각안의 비석은 영조임금이 단종의 어소임을 증명하는 글이 새겨져 있습니다.>

단종어가를 나와 중앙으로 들어서면 소나무 숲이 이어집니다.

청령포는 특히 소나무 숲이 매우 아름다운데 소나무 숲은 밖에서 보는 모습도 빼어나지만 하늘을 빼곡히 뒤덮고 있는 숲 안의 풍광도 매우 아름답습니다.

어가에서 숲 안쪽으로 들어서면 천연기념물 제349호로 지정된 관음송(觀音松)이 있는데 관음송은 아주 오랜 풍상을 겪은 모습으로 하늘을 찌를 듯이 높게 자라 육중한 몸을 굳게 버티고 서있습니다.

이 소나무가 관음송이라는 이름을 얻은 것은 청령포에 유배된 단종의 애처로운 모습을 보았다고 하여(볼 관), 슬픔과 울분으로 가득 찬 단종의 오열하는 소리를 들었다 해서 (소리 음)를 붙여 관음송(觀音松)이라고 부르게 되었다고 합니다.

<천연기념물 제349호인 관음송입니다.>

<집사람이 관음송 앞에서 포즈를 취했습니다.>

<처남네와 처형이며 관음송 뒤로 단종어소가 보입니다.>

관음송의 크기는 높이가 30m에 달하는 노거수로 중간에서 두 갈래로 갈라져 동, 서로 비스듬히 자란 형태로 나무의 나이는 약 600년으로 보고 있는데 이는 단종이 유배되었을 때의 수령을 80년으로 추정하여 계산된 것이라 고 합니다.

관음송으 지나 데크계단을 따라 오르면 날등 너머로 서강이 흐르고 날등을 따라 가파른 곳으로 오르면 단종이 유배당시 한양을 보며 쌓았다는 망향탑이 있는데 이 망향탑은 단종이 한양에 두고 온 왕비를 간절히 생각하며 흩어져 있는 돌을 쌓아 망향탑을 만들었다고 합니다.

<단종이 한양에 두고 온 왕비를 간절히 생각하며 쌓았다고 하는 망향탑입니다.>

<단종이 이곳에 올라 시름에 잠기곤 하였다는 노산대입니다.>

<노산대 위에 있는 표석입니다.>

올랐던 망향탑을 내려서 날등을 지나면 서강 벼랑위에 작은 돌 봉우리가 있는데 이를 노산대라고 부르는데 단종은 이곳에서 시름에 잠기고는 했다고 합니다.

노산대를 둘러보고 비알진 곳을 내려서면 금표비를 만나게 됩니다.

금표비란 글짜 그대로 금한다는 표기를 한 비석으로 이 금표비는 영조 2년인 1726년에 세운 비석으로서는 청령포의 동서방향으로 약90m, 남북으로는 약약150m 안에 소나무의 벌목을 금하고 이곳에 쌓인 흙을 파가지 못하도록 하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전면으로청령포금표라고 한문으로 음각했습니다.>

<후면으로동서방향으로 삼백 척,

남북으로는 사백구십 척 안에 소나무의 벌목을 금하고,

퇴적된 흙을 파가지 못하도록 하는 내용을 한문으로 음각했습니다.>

<금표비 앞 긴 의자에서 휴식을 취하며 기념사진을 찍었습니다.>

단종릉인 장릉이 한양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이유는 영월이 유배지였기 때문이며 당시 큰 홍수가 나자 청령포에 있던 단종은 영월시내 중심가에 있는 관풍헌으로 임시 어소를 옮기게 되고 이곳 관풍헌에서 어명에 의해 사약을 받았습니다.

<사약을 받은 관풍헌과 자규루로  전에 찍은 사진입니다.>

<단종이 묻힌 장릉 정자각과

왕릉으로의 능상과 곡장, 혼유석, 석상 등은

제 모습을 갖추었으나 중계, 하계 등 석물은 왕릉으로의 규모로는 미흡하게 조성되었습니다.>

단종의 사체는 강물에 버려지고 아무도 수습하지 말라는 명이 떨어졌지만 엄흥도라는 사람이 단종의 시신을 수습하여 봉분이 없는 장례를 치렀고 이후 중종11년인 1516년에 암장지를 찾아 봉분의 형태를 갖추었고 선조13년인 1580년에서야 능역을 조성하게 되었으며 숙종24년인 1698년에 비로서 시호를 단종으로 복위했고 묘소도 장릉으로 추봉해 현재에 이른다고 합니다.

방울재공원을 방문했습니다.

군등치 고개를 넘어 이곳을 지날 때 말 목에 달려있던 방울이 떨어져 이후 방울재라고 불린다고 합니다.

<방울재의 유래가 담겼습니다.>

<영월땅을 들어서 단종이 청령포까지 갔던길을 재현하고 있습니다.>

<방울재 공원의 풍경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