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주, 남산~계명산 연계산행기
충주, 남산~계명산 연계산행기
산행일 : 2015년02월05일
누구와 : 나 홀로
산행시간 : 12:20~18:10(5시간50)
산행거리 :약12km
주요산행처:남산등산로주차장(12:20)-약수터들머리(12:35)-깔딱고개능선3거리(12:10,445m)-남산정상(13:35,636m)-마즈막재(15:05)-계명산2봉(제1전망대15:55,620m)-계명산산3봉(제2전망대16:12,706m)-계명산정상(16:45,774m)-연수동갈림3거리(17:37)-금곡어린이집날머리(18:09)

대중교통편
갈 때 : 동서울터미널(09:40분)->청주터미널(11:42분)->남산등산로정류장(11:05택시4800원)
올 때 : 번영로에서터미널택시로이동(18:30,4100원)->충주터미널19:15->동서울터미널(21:45)
◎충주(忠州)의 산을 찾아서
이번 산행은 충주의 산을 찾았습니다.
서울에서 당일치기로 산행을 할 수 있는 거리에는 이전에 다니던 원주, 제천, 단양, 영월 이외에도 가까운 충주가 있습니다.
충주에서는 국립공원으로 지정된 월악산이 접근하기가 용이해 많이 찾는 산인데 월악산은 본래 충주가 아닌 제천의 산입니다.
그러나 충주에도 500~800m 되는 산들이 많이 있습니다.
충주를 감싸고 있는 대림산, 남산, 계명산이 있고 북서방향으로 보련산과 국망산이 있으며, 북쪽으로 천등산, 지등산, 인등산이 있으며, 동쪽으로 주봉산, 부대산, 부산, 마미산, 대덕산 등 다양한 산들이 있습니다.
지난번 영월 계족산 산행을 마치고 계족산에 대한 자료를 검색하다가 충주의 계족산을 알게 되었는데 가야할 산에 등록을 해 놓은 상태로 원거리산은 새벽부터 서둘러야 하지만 근거리산은 조금 여유를 가지고 출발해도 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충주에 계족산이 있나?
있습니다.
현재 계명산(鷄鳴山)으로 부르고 있는 산을 일제강점기 때는 계족산(雞足山)으로 불렸음을 옛지도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

<택시로 이동한 곳 남산등산로 정류장입니다.>

<들머리에 있는 금봉산 산행안내도입니다.>
어제 야간근무를 마치고 오전 9시에 퇴근 하면서 동서울터미널로 가서 9시40분 버스로 충주로 향했습니다.
충주도착 예정시간은 11시20분이었는데 사고와 공사로 정체가 되면서 약25분 연착되어 도착을 했습니다.
택시를 타고 기사분과 남산등산로입구를 가면서 산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어린 시절에는 계명산(鷄鳴山)을 계족산(鷄足山)이라 불렀었다고 하며 닭은 발로 땅을 밖으로 파헤치는 습성을 지니고 있어 충주에서 큰 인물과 큰 부자가 나지 않는다 해서 후에 이름을 현재 부르고 있는 계명산으로 바꾸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산명의 유래는 산을 소개하는 산행기마다 올린 글로 신선한 맛은 없는 정보였는데 계명산의 유래에 대해 이야기 하다 보니 남산등산로입구 버스정류장에 도착을 했습니다.

<마즈막재에 있는 계명산 산행안내도입니다.>
버스 정류장에서 배낭을 다시 추리고 산행 준비를 하다 보니 12시20분이 되어서 산행을 시작합니다.
도로명 남산1길로 들어서 좌측으로는 순복음행복한교회를 지나 100여m오르니 남산등산로주차장이 나오는데 이곳까지 택시로 올라와야 하는데 정보가 없어서 큰길에서 내렸습니다.
주차장을 지나면 Y형 길이 나오는데 우측으로 계속 오르면 주택은 없고 양쪽으로 밭이 있으며 조금을 오르면 남산들머리에 도착을 하는데 큰길에서 약500m의 거리입니다.
◎약수터들머리에서 깔딱고개 능선3거리 구간
들머리에는 음식점이 한곳 있는데 눈여겨보지는 않았지만 어둡고 불이 꺼져 있는 것으로 장사를 하지 않는 듯했다.
데크계단 우측으로는 콤푸레샤 에어분사기가 설치되어 있고 좌측으로는 남산산행안내도가 세워져 있다.

<남산공원 들머리에서 인증 사진을 찍었습니다.>

<남산공원 들머리입니다.>
들머리에서 인증사진을 한 장 찍고 본격적인 산행을 시작한다.
계단을 올라서니 경사진 등산로는 완전히 빙판이다.
조금가면 눈이 없으려나 하는 바람으로 오르지만 응달이어서 빙판은 계속되어 걸음을 늦추게 만들었고 이미 산행을 마치고 내려오는 몇몇 사람들도 쩔쩔매는 모습이 간간이 보인다.
얼음을 피해 돌을 밟으며 조금을 오르니 돌탑이 있는 갈림길 이정표가 나오는데 우측으로는 범바위 가는 길이며 정상은 직진이다.
이곳에서 100m를 오르면 운동기구를 설치한 체육공원이 나오고 주변에는 낙엽송수림이 잘 가꾸어져 있는데 여름철이라면 많은 사람들의 쉼터가 되겠으나 겨울철이라 체육공원에는 한 사람도 없이 썰렁하기만 하다.

<체육공원의 모습입니다.>

<금봉약수터의 모습으로 양은 적었지만 약수는 계속 샘나고 있었습니다.>
썰렁한 체육공원을 지나 다시 100m를 오르면 금봉약수터가 있는데 수량은 많지 않으나 약수는 계속 나오고 있었는데 사전에 이러한 정보를 알았더라면 이곳에서 식수를 준비했을 텐데.............
목이 마르지는 않았지만 약수터에서 물 한 바가지를 들이 키고 다시 산행에 임하는데 약수터를 지나면서 유명한 깔닥고개 오름이 시작된다.
전에는 급경사를 오르내렸을 이곳은 언제 설치했는지 모르겠으나 데크계단이 설치되어 천천히 오르면 별로 힘을 쓰지 않고도 오를 수 있으므로 깔딱이란 고개이름이 무색할 정도이다.

<깔닥고개를 올라서 능선에서 본 모습입니다.>
계단은 3단으로 되어 있는데 첫 번째 계단은 77계단으로 경사가 완만하여 힘들지 않으나 계단에 눈이 얼어 빙판이 되어 주의해야 했다.
두 번째 계단은 88계단으로 첫 번째 계단과 별 차이가 없었고 세번째 계단은 224계단으로 경사가 가파르고 빙판이 계속되므로 아주 위험했는데 눈이 온 직후 계단을 오르고 내릴 때 많은 주위가 필요한 구간이다.
가쁜 숨을 몰아쉬며 올라선 능선에는 간단한 운동시설이 설치되어 있는 쉼터였다.
▷남산등산로주차장으로부터 깔닥고개능선3거리 휴대폰GPS에 의한 산행거리1.17km, 산행시간40분, 해발445m,깔닥고개계단 389=77+88+224, 현재시간13시이다.
◎능선3거리에서 정상 구간
능선3거리에 올라 잠시 숨을 돌리며 인증사진을 찍고 정상을 발길을 돌린다.
들머리에서 깔닥고개를 자니 능선을 오를 때만 해도 등산로가 빙판이어서 아이젠을 착용해야하나 고민을 하면서 올라섰는데 능선으로 올라서니 빙판은 사라지고 등산로도 무척 좋다.
간간이 봉우리를 우회할 때 쇠을달을 만나게 되는데 쇠응달은 초겨울 눈이 내리면 늦은 봄까지 눈이 녹지 않는 곳으로 쇠을달에는 아직도 한 뼘은 얼음이 쌓인 듯 했다.

<깔닥고개 위 능선의 모습이며 철봉 우측으로 창룡사로 내려가는 길이 있습니다.>

<양지바른 능선길을 걷다보면 돌탑을 몇 차례 만납니다.>
쌓다가 중지한 돌탑을 지나 한 봉우리를 오르니 우측으로 전망터가 있다.
다른 사람들의 산행기를 보면 이곳에서 대림산을 조망하는 곳이라 기록되어 있었는데 오늘은 미세먼지가 하늘과 땅 사이를 가득 채워 근거리 조망만 가능하며 수백m를 벗어나면 사물을 분간하기 힘들 정도다.
오늘 충주 산행을 실행한 이유 중에 하나가 남산이나 계명산에서 바라보는 충주호와 주변 산들을 조망하기 위해서였는데 어제부터 미세먼지 농도가 심해 조망은 별로다.
뿌연 산과 계곡만 보이는 곳에서 조망을 대신해 흐른 땀을 식히고 다시 정상으로 향한다.
능선3거리에서 10여분을 지나 도착한 곳은 샘골약수터 갈림길 쉼터3거리다.
이곳에는 2개의 벤치와 2개의 훌라워프가 나무에 걸려있고 이정표(↖샘골약수터1.09km, 깔닥고개0.49km↔충주산성0.83km)가 있다.

<이곳은 샘골약수터로 이어지는 3거리 쉼터입니다.>

<산성 서문터를 올라서기 전 암릉 오르막길입니다.>
샘골약수터 갈림길을 지나 중장년팀으로 이루어진 사람들을 만나 인사를 주고받으며 지나고 이어서 중학생으로 보이는 6명을 만나 반갑게 마주하고 지난다.
12시를 훌쩍 넘은 시간이어서 산을 올랐다가 하산하는 사람들은 이따금 만난다.
산에서 서로 만나면 인사를 하며 지나치는데 충주사람들은 인사에 인색한 것 같다는 인상이 남았는데 10여명을 지나쳤는데 먼저 인사를 하는 사람은 한 명뿐이었다.
능선에는 크고 작은 여러개의 봉우리를 지나는데 대부분 봉우리 정점을 넘는 곳은 없고 사면으로 우회하며 지나고 등산로는 일반적이기 보다는 자유로운 보행을 위해 등산로는 인의적으로 넓혀 놓았다.
제법 높은 봉우리를 우회하니 이제까지 보지 못한 암릉과 바위가 여기저기 보였으며 이곳을 지나 경사진 길을 오르니 충주산성 서문터에 도착한 것이었다.

<서문터로 뒤로 충주산성 안내문이 보이고 위가 남산 정상입니다.>

<서문터에서 본 북문방향 성곽이며 뒤로 희미하게 계명산이 보입니다.>
서문터에는 이정표가 세워져 있는데 가야할 마즈막재는 좌측이며 좌우측으로 성곽이 이어졌다.
이정표 뒤로는 충주산성안내판이 있으니 안내판의 내용은 이러하다.
「충청북도 기념물 제31호인 이산성은 남산이라고 불리는 금봉산 정상을 둘러싼 석축산성으로 마고선녀가 7일만에 쌓았다하여 마고성으로 불리기도 하는데 역사적으로는 신증동곡여지승람에 언급된 동악성일 가능성도 있다.」고 한다.
6세기 중엽 축성된 것으로 보이며 출토된 유물은 신라시대의 것으로 보이며 현재 산성을 복원한 중으로 연차적으로 완전 복원할 예정이라는 것이다.
서문터에서 우측으로는 남문방향으로 복원된 성곽이 보이고 좌측으로는 희미하게 보이는 계명산을 배경으로 북문으로 이어지는 복원된 성곽이 보인다.

<남산 정상석입니다.>

<남산정상석 옆 나무가지에달린 정상표식입니다.>
서문터에서 정상은 10여m의 가까운 거리로 경사진 곳으로 오르면 작고 흰 정상표지석과 충청북도의 표준 정상석인 오석 정상석이 반갑게 맞는다.
▷남산등산로주차장으로부터 금봉산(남산)정상까지 휴대폰GPS에 의한 산행거리2.88km, 산행시간1시간15분, 해발636m, 현재시간13시35분이다.
◎남산정상에서

남산 정상에 올랐다,
남산은 어떠한 목적지역 남쪽에 있는 산을 지칭하는 고유명사이거나 산명에 이름이다.
일정한 지역에서는 남산이지만 지역의 위치에 따라 남산이 북산이 되거나 서산, 동산이 되기도 하는데 북산, 동산, 서산으로 불리거나 관련지어진 산들은 적은 반면 남산이라는 산명은 어렵지 않게 접할 수 있다.
대표적으로 서울의 목멱산이 남산으로 바뀌었고, 경주의 금오산이 남산으로 불린다.
그런가하면 청도의 남산, 합천의 남산, 포항의 남산, 순천의 남산 등등 전국적으로 보면 남산은 헤아릴 수 없이 많을 것인데 이러한 남산은 대부분 도시의 남쪽에 위치하고 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충주 남산의 옛 이름에 대하여
이 고장 출신인 피안재님의 글을 인용하면 남산은 금봉산(錦鳳山)이라 하여 어떤 지도에는 금봉산이라 표기하기도 합니다.
錦(금)은 비단금, 鳳(봉)은 봉황봉을 쓰는 금봉산으로 이름만으로도 아름답거나, 고귀하다는 느낌으로 다른 산들과 차별화되는 존재감을 느끼게 하는데 금봉산이라는 산명에 대해서는 이러한 전설이 있다고 한다.(피안재님의 글 인용)
천제(天帝)가 살고 있는 천상(天上)에 금단산이라는 아주 아름다운 산이 있다는데 하루는 천제가 지상을 내려다보시고 있는데, 이 나라 한 지역의 산이 마치 금단산에 비단을 걸쳐놓은 것 같이 곱게 물든 단풍이 아름다웠단다. 뿐만 아니라 골짜기마다 하늘을 향해 우뚝 솟아오른 오동나무 가지에 한마리 봉황이 내려앉아 쉬고 있었으니 가히 천상에서도 보기 힘든 절경이었다 한다, 하여 그 산의 이름을 금봉산이라 지어 내려 보냈다는 것이다.
그러나 모든 것은 말이 아닌 증명으로 확인시켜야 한다.


우리나라 고지도에서는 남산을 어떻게 기록했을까?
조선 중, 후기를 대표하는 대동여지도를 비롯해 동여도, 청구요람 모두 현재 남산(南山)은 심항산(心項山)으로 표기하고, 심항산은 대림산과 더불어 봉화를 올리던 산으로 표기했다.
심항산으로 불리던 산은 언제 남산으로 산 이름이 바뀌었나?
그러다가 일제강점기였던 1912년도에 일제에 의해 만든 조선지지자료에서는 심항산(心項山)이 남산(南山)으로 바뀌었고 이 산명은 지금까지 우리가 부르고 있다.

어떤 산 이름이 정답인지는 모르겠지만 이름 자체만으로도 우아하다는 느낌의 금봉산이어도 좋고, 옛 것은 우리 것이고 좋은 거라면 심항산도 좋고, 옛것은 다 지나갔다면 현재 사용하는 남산도 좋다.
그러나 일제가 우리 것을 무조건 배제한다는 의미에서 산 이름을 바꾸었다면 남산보다는 심항산으로 부르는 것이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 정상 한편으로는 미완성 돌탑 3형제가 있습니다.>
금봉산 찬가에는, 봉황은 우는 소리가 퉁소를 부는 소리와 같고, 살아 있는 벌레를 먹지 않으며, 살아있는 풀을 뜯지 않고, 무리 지어 머물지 않으며, 난잡하게 날지 않고, 그물에 걸리지 않으며, 오동나무가 아니면 내려앉지 않고, 대나무 열매가 아니면 먹지 않으며, 아무리 배고파도 조 따위는 먹지 않는다고 한다.
이러한 특성과 아울러 임금의 정사가 공평하고 어질며 나라에 도가 있을 때 나타난다.
아무튼, 남산과 계명산 일대에는 오동나무가 많이 자라고 있는데 오동나무에 대해서는 계명산에서 다시 거론해 본다.


<인증사진을 찍었습니다.>
정상에 오르면 희고 작은 정상석과 오석 정상석이 있고 뒤로 삼각점이 있으며 정상석 동남으로는 숲이 있다.
남산의 정상은 동서로 길게 늘어져 있는데 동쪽으로 이동하면 낙엽송나무가 숲을 이루고 있어 여름에는 더위를 피해 쉬기 좋은 쉼터로 각광을 받을만한 곳이다.
이곳 숲에는 돌탑 3형제가 나란히 있으며 돌탑에서 동으로 충주호의 시원한 호수를 내려다보는 쾌감을 느낄 수 있는 곳이기도 하지만 오늘은 미세먼지가 방해를 해 충주호의 조망은 애석하게도 볼 수가 없다.
다시 정상석이 있는 위치로 되 돌아와 인증사진을 찍는다.
아무도 없는 정상에서 남산이라는 정상석을 배경으로 3장의 인증사진을 찍고 정상을 내려선다.
처음에는 산성을 한 바퀴 돈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산행에 임하고 보니 시간이 안 된다.
가파른 성곽을 따라 내려서며 앞에 가야할 계명산이 보이는데 희미한 산의 형태만 보인다.
조심스럽게 경사진 성곽을 내려서 바위가 있는 곳을 지나다 이곳에서 점심 식사를 하기 위해 알맞은 곳을 잡아 배낭을 풀었다.

<바위를 바람막이 삼아 이곳에서 점심을 해결했습니다.>
산을 갈 때마다 처음에 만류를 하다가 결국 남편의 뜻을 받아들이고 정성스럽게 반찬을 만들어 도시락을 싸 주는 집사람에게 고마운 생각이 든다.
식사를 마치고 준비해온 물로 뜨거운 커피를 타서 마시며 꿈같은 휴식을 취하며 25분을 보냈다.
◎정상에서 마즈막재 구간
휴식을 취하고 일어서려니 귀찮은 생각이 든다.
그래도 가야할 산이 남았으므로 자리를 털고 일어선다.
잔설이 제법 남아 있는 성곽을 따라 내려서며 마주보이는 계명산을 보니 멀게만 느껴진다.

<서문에서 북문으로 이어지는 복원된 성곽입니다.>

<북문터 성곽이 휘도는 곳 위에 그늘이 되어 줄 소나무가 있습니다.>
식사를 하던 곳에서 불과 1~2분 정도 내려서니 북문터이고 북문터 위에는 노송이 한그루 있는데 산성의 역사를 모든 간직하고 있기에는 소나무의 나이가 어려 보인다.
노송으로 다가서 휘도는 성곽을 따라 누군가 한 사람 산행을 하고 있으며 성곽 위로는 조금 전 머물었던 정상이 보이고 성곽이 보이는 끝지점이 복원된 마지막 지점인지 보이지 않는 곳으로 계속 이어지는 지 알 수가 없다.
성곽을 내려서기 전 성곽을 보며 화선지 위에 그려진 흑백의 수묵화를 연상시키는 풍경을 보며 마음 한 구석에 깊이 간직해 본다.

<북문터에서 보는 성곽의 아름다운 풍경입니다.>

<북문을 내려서 본 성곽으로 높이가 여타의 성에 비해 높았습니다.>
북문터를 내려서는 계단을 지나 이제껏 걸어왔던 성곽을 보니 이전에 다른 곳에서 보았던 성곽과는 축성의 형태도 달랐지만 높이는 현격하게 차이가 났는데 이러한 높이를 유지하므로 몽고군의 습격을 여러 차례 막아 낼 수 있었나 보다.
들머리부터 이제까지 등산로는 정비된 상태로 최고였으나 이제부터는 일반 등산로와 차이가 없으며 등산로에는 아직도 많은 눈이 있어 때로는 빙판이 때로는 눈길이 이어졌는데 경사가 심해 무척이나 조심스럽게 내려섰다.
북문터에서 약5분을 내려서면 임도가 나온다.

<경사진 등로를 내려서 임도와 만났습니다.>
이 임도에서 우측으로 가면 산성에서 보았단 성곽을 따라 동문으로 이어지며 좌측으로 가면 마즈막재로 이어진다.
능선을 지날 때 마다 임도와 등산로가 서로 교차하기를 반복하며 내려서므로 시간을 가지고 트래킹을 하면 참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해 본다.
임도를 가로질러 한동안을 내려서야 하는데 경사가 심하고 잔설이 있어 무척 미끄러웠으며 가끔 암릉이 있는 로프지대가 나오기도 한다.
그렇게 경사지고 빙판인 길을 따라 10분을 내려서 다시 임도를 만나는데 첫 번째 임도에서 좌측으로 내려서면 연결되는 임도에 내려선 것이다.
이곳 임도를 가로질러 능선으로 올라서 5분 이상을 지나면 완만한 경사를 내려서 임도를 다시 만나는데 이곳에는 송신탑이 있는 곳으로 충주교통방송 송신탑이다.

<임도를 다시 만나는 지점에는 충주교통방송 송신탑이 있습니다.>

<임도를 걷다 보면 두껍게 쌓인 빙판을 여러 차례 만나게 됩니다.>
송신탑에서 능선으로 올라야 하지만 이제 길의 흐름을 파악하였으므로 임도를 따라 한 모퉁이를 돌아 8분 후에 다시 임도를 만나는데 임도 응달진 곳에는 눈이 제법 쌓였고 양지쪽에는 빙판으로 위험을 수반하고 있다.
임도 곳곳에는 충주시에서 충주와 관련된 역사적 사실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한 사진이나 그림에 약간의 설명을 곁들인 안내판이 여러 개 세웠다.
점점 경사가 완만하게 바뀌며 능선에서 임도로 내려서기를 6차례를 거듭하더니 결국 마즈막재가 내려다보이는 공사 현장으로 내려섰다.

<마즈막재에 도착해 충추호를 바라 본 풍경입니다.>

<마즈막재 3거리 풍경입니다.>
마즈막재 입석을 찍고 3거리 방향으로 가서 충주호를 담아보았다.
마즈막재를 내려서며 이따금 해가 나타나기도 하여 시계가 넓어져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이정도만 유지해도 계명산을 오르는 전망대와 계명산 정상에서 어느 정도 조망이 가능할 것으로 생각되었다.
충주호를 카메라에 담고 계명산 등산로 주차장으로 내려선다.
▷남산등산로주차장으로부터 마즈막재까지 휴대폰GPS에 의한 산행거리5.58km, 산행시간2시간45분, 해발257m, 현재시간 15시05분이다.
◎마즈막재에서 계명산 정상 구간
마즈막재!
마지막재가 아니고 이정표와 고개 입석에 마즈막재라고 표기하고 있다.
마즈막재의 옛 이름은 심항현이라고 한다.
심항현은 현재 우리가 부르는 남산의 옛 이름인 심항산(心項山)에서 유래했을 것이다.
오래전 심항현은 마수막재로 달리 불렸다고 하는데 마수막재가 오랜 세월이 지나며 변형이 되어 마즈막재가 되었다는 설이 있다.
그런가하면 옛날 남산 아래 죄수를 처형하는 사형장이 있었는데 포승줄에 묶여 이곳 고개까지 끌려온 죄수들은 이 고개를 넘으면 처형을 당하므로 살아 마지막 고향쪽을 바라볼 수 있는 고개가 되어 마즈막고개로 불리게 되었다고는 설도 있다.

<마지막이 아닌 마즈막재의 표지 입석입니다.>
마즈막재에서 충주방향으로 50여m를 내려가면 주차장이 있으며 약수터도 있고 버스정류장이 있는데 정류장이름도 마즈막재이다.
참고로 이곳에서 남산이나 계명산 들머리로 정할 경우 대중교통 이용방법은 충주시내에서 직동가는 100번, 514번 버스나 요각골가는 513번 버스를 타고 마즈막재에서 하차하면 된다.
마즈막재에서 계명산 들머리는 대몽항쟁승전탑으로 오르는 계단이다.
계단 옆에는 계명산 등산안내도가 있고 좁은 목책계단을 따라 3~4분을 오르면 동상과 함께 세운 대몽항쟁승전탑이 있다.

<계명산 들머리로 항몽승전기념탑으로 오르는 길이기도 합니다.>

<항몽승전기념탑으로 탑 위 1253은 승전한 년도입니다.>
승전탑에는 오석 석판에 몽고군과의 전투를 설명하고 있다.
1253년 몽고군이 다섯 번째 충주산성 공격에 나섰다.
이 지역 관리, 군병, 농민, 승려, 노비 등이 몽고군을 피해 충주성으로 대피했고, 방호별감 김윤후가 지휘하였다.
장기전으로 지속되며 양식이 떨어져 패전이 눈앞에 보일 즘 김윤후는 백성에게 전쟁에서 승리하게 되면 신분을 가리지 않고 모든 사람들에게 벼슬을 내리겠다고 했고 이에 모든 백성이 힘을 내어 몽고군을 물리칠 수 있었다고 한다.
전쟁이 끝나고 약속대로 모두에게 벼슬을 내렸다고 하는데 전승을 기념하기 위해 세운 탑이 대몽항쟁전승기념탑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항쟁에 승리했다는 역사에 대한 부정은 누구도 없지만 충주산성이 남산 산성이라는 주장과 대림산의 대림산성이 충주성이라는 주장은 서로 이견을 보이고 있다.

<청구요람으로 대림산에 고성이라는 기록을 했습니다. >
충주산성은 어디일까?
남산산성일까? 아니면 대림산성일까?
이건 필장의 생각인데 충주산성은 대림산성이라는 주장에 한 표를 행사한다.
그 이유는 옛 지도인 청구요람을 자세히 보면 심항산에는 아무런 표식이 없는 반면 대림산에는 작은 글씨로 古城이라는 표식이 있기 때문이다.
어떤 주장이 맞는지 수 일 내로 대림산을 찾아 대림산성을 돌아보아야 할 것 같다.
잠시 대몽항쟁승전기념탑을 둘러보고 계명산 산행을 시작한다.
기념탑에서 직진으로 오르며 약간 우측으로 방향을 바꾸어 계곡으로 오르기 시작했는데 생각보다 경사가 심해 얼마 오르지 않았는데 땀이 나기 시작한다.

<계명산을 오르는 길은 이러한 너덜길도 지나야 합니다.>

<계명산 제1봉을 오르며 뒤돌아 본 남산의 모습입니다.>
중간에 하산하는 한 분을 만나 5분여 계명산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난이도가 높아 힘든 산이라며 부지런히 올라야 6시까지 하산할 수 있다며 격려를 아끼지 않는다.
감사를 표하고 헤어져 다시 계곡을 오르는 길은 경사가 심했고 우측으로는 너덜지대가 계속 이어졌고 등산로는 너덜지대를 지나 우측 능선으로 걸치더니 다시 로프지대를 지나 작은 봉우리에 올라서니 이곳이 계명산 119 제1지점으로 필자는 이곳을 계명산제1봉을 칭해본다.
잠시 땀을 식히며 건너편 남산을 보니 남산이 엇비슷하게 보이는 것으로 한동안 올라섰음을 알 수 있었는데 대몽항쟁기념탑에서 계명산1봉까지 27분이 소요되었고 제1봉의 해발은 523m이다.

<제1봉입니다.>
정상을 거쳐 하산까지 많은 시간이 필요하므로 다시 정상으로 향한다.
잠시 숨을 고르나 싶었는데 연이어 로프지대가 나오며 경사진 길을 계속 오르지만 제1봉 오름길에 비하면 이 정도는 아주 양호한 편이다.
거친 숨을 토하며 넓적다리 근육이 팽창함을 느낄 때 올라선 봉우리는 제1전망대 봉으로 필자는 계명산 제2봉이라 칭한다.
헬기장보다는 작은 제2봉 정상은 이정표가 있는 전망봉우리인데 이정표에는 정상1.4kn↔마즈막재0.9km 계명산휴양림1.4km이다.
계명산 들머리에서 40분을 걸었는데 1km도 채 오지 못했다니....
제2봉은 전망봉으로 좋은 입지조건을 갖춘 것 같다,
동으로 계명산 휴양림이 있다고 하는데 충주허반을 보며 산책을 하거나 맑은 공기를 마시며 휴식을 취할 수 있어 많은 사람들로부터 사랑을 받고 있다고 한다.

<2봉에서 금봉산을 배경으로 인증 샷을 했습니다.>

<제2봉으로 제1전망대입니다.>
남쪽과 서쪽으로는 충주시내가 자리를 잡고 있으며 남동으로는 금봉산이, 동쪽으로는 충주호의 넘실거리는 물결과 충주호 위를 떠다니는 유람선의 풍경은 가히 일품이라 할 수 있겠으나 오늘 만큼은 아니다.
오전보다 미세먼지 농도가 낮아져 금봉산은 볼 수 있으나 충추호의 아름다운 모습은 산과 호수라는 것만 어렴풋하게 구분할 수 있을 뿐 경치를 감상하기에는 부적격하다.
또한 아무리 전망하기 좋은 장소라고 해도 주변을 제대로 관리하지 않으면 전망처로서의 구실을 다할 수 없는데 제2봉 주변 잡목들을 제대로 제거하지 않아 조망에 장애가 되고 있으므로 새봄에는 주변 잡목을 제거함이 시급할 것 같다.
사방을 둘러보아도 신통한 점은 하나도 없어 간다한 인증사진을 찍고 전망봉을 뒤로 한다.
제2봉에서 제3봉은 그리 멀지않다.

<제3봉으로 오르는 로프지대입니다.>

<제3봉 전 소나무 쉼터로 계명산119제2지점입니다.>
제2봉에서 로프가 설치되어 있는 경사진 길을 10여분 오르면 소나무 숲에 계명산119 제2지점 안내판과 벤치가 설치되어 있는 쉼터에 도착한다.
필자는 이곳이 3봉으로 알고 잠시 휴식을 취하며 인증사진까지 찍었는데 사실 제3봉은 쉼터에서 2~3분을 더 가면 제2전망대로 칭하는 전망봉우리가 나오는데 필자는 제2전망대 봉우리를 계명산 제3봉으로 칭한다.
16시12분 계명산2봉(제1전망대)으로부터 계명산3봉(제2전망대)까지 14분이 소요되었고 제3봉의 해발은 706m이다.
제2전망대로 불리는 제3봉은 전망대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주변 청소가 안 되어 작은 잡목부터 큰 나무들까지 시야를 가리고 있는데 여름철 녹음이 짙게 물들이면 전망은 고사하도 불과 몇 십m도 관측하기 힘든 상태이다.

<소나무 전망대에서 인증사진을 찍었습니다.>

<제3봉으로 제2전망대인데 주변 잡목이 시계를 가립니다.>
전망이 용이하지 않아 바로 3봉을 뒤로 하고 정상으로 향한다.
정상과 고도 차이를 줄인다 생각했는데 정상으로 가는 길은 갑자기 한동안 내리막을 탔는데 내리막길에는 완전히 빙판에 이따금 암릉도 나타나 여간 조심스럽지 않았다.
배낭안에 가지고 온 아이젠을 착용하자니 시간 낭비에 번거로움과 얼음이 없는 곳에서 무릎의 부담 등을 생각해 조심스럽게 스틱에 의존해 빙판을 지난다.
갑자기 뒤쪽에서 인기척이 들려 뒤 돌아보니 늦은 시간에 혼자서 산을 오른 사람이 있다.
반가운 마음에 인사를 나누고 말동무가 되어 정상으로 향했는데 혼자서 여유있게 가다가 함께 가다보니 발걸음이 무척 빨라졌고 사방을 둘러보며 갈 수 있는 여유도 없다.
한동안 내려선 만큼 다시 오름이 시작되고 이정표가 있는 봉우리에 도착을 했는데 필자는 이곳을 계명산 제4봉으로 칭한다.

<제4봉입니다.>
4봉에서 사방을 들러볼 여유없이 앞서가는 사람을 따라가기 바쁘다.
이 분은 충주사람으로 충주백산산악회 회장으로 지난주 서울 관악산을 갔다 왔다고 하는데 지방 산꾼들은 서울에 북한산, 관악산, 도봉산, 수락산 등 명산이 있음을 부러워하고는 있는데 이분도 많은 대원들을 인솔하여 관악산을 갔다 왔음을 이야기한다.
하산이 걱정되어 정상에서 하산방향을 물어보니 다시 마즈막재로 하산을 한다고 하는 말에 약간은 실망스러웠다.

<충주 백산산악회 대장님이 먼저 헬기장으로 오릅니다.>

<계명산 정상에 있는 헬기장입니다.>

<계명산 정상의 모습으로 이곳에도 2개의 정상석이 있습니다.>
이야기를 나누며 빠른 걸음으로 정상으로 질주하다보니 로프가 설치된 마지막 경사길을 올라 넓은 헬기장에 다다르고 이내 계명산 정상에 도착한다.
▷남산등산로주차장으로부터 계명산정상까지 휴대폰GPS에 의한 산행거리8.2km, 산행시간4시간55분, 해발774m, 현재시간16시45분이다.
◎계명산 정상에서

계명산!
헬기장에서 북쪽으로 50m쯤 떨어진 곳에 있는 정상은 고사로 죽은 큰 소나무와 바위틈에 뿌리를 내리고 싱싱한 가지를 지니고 있는 몇몇의 소나무가 숲을 이루어 절경을 만들고 소나무 그늘아래 2개의 정상석이 있다.
작고 흰 아담하고 깜찍스러운 계명산 정상석과 옆에 털썩 주저 않은 충청북도 특유의 오석 정상석이 있다.
함께 도착한 충주백산산악회 대장님께서 자청해서 인증사진을 찍어 주겠다하여 2장의 인증사진을 남겼다.
정상에서 함께한 시간은 약5분이었는데 먼저 하산하겠다고 하며 하산길에 대해 간단하게 설명을 해주고는 헬기장을 지나 아래로 내려가신다.

<충주백산산악회 대장님이 정상 인증사진을 찍어 주었습니다.>

<정상에서 바라 본 올라왔던 봉우리입니다.>
혼자 정상에 남았지만 조망은 어려웠으며 정상에서 볼 수 있는 곳은 올라왔던 봉우리로 제1봉, 제3봉, 제4봉을 볼 수 있는 게 전부였다.
계명산 정상에서는 주변 조망이 뛰어난 곳으로 유명하여 다른 사람이 올린 조망도까지 준비하여 주변 산들을 철저히 관망할 예정이었는데 가던날이 장날이란 말처럼 오늘따라 미세먼지로 조망이 트이지 않는다.

계명산(鷄鳴山)!
직역을 하면 닭울음산이다.
그러나 계명산은 뜻은 닭이 울어 ‘새벽을 알리는’, ‘활동이 시작되는’, ‘부지런한‘이란 뜻을 지닌 뜻으로 생각된다.
계명산의 원래의 이름은 오동산(梧桐山)으로 심항산(心項山)이었다고 하는 것은 잘못 알려진 정보다.
선답자의 글을 인용해본다.
천상에 있던 마고할멈이 죄 값을 치르기 위해 이 땅으로 내려와 있을 때 유독 지네가 많았던 심항산을 마고성주의 딸이 노닐다가 지네에 물려 죽었고 이에 지네를 소탕하기 위해 심항산 마루에서 치성을 드리던 중 꿈에 신령이 나타나 온 산에 지네와 상극인 닭을 방목하라는 교시를 받아 온 산에 닭을 방목해 지네를 소탕하였고 이에 산의 이름도 심항산에서 ‘닭이 밟지 않은 곳이 없다‘는 뜻의 계족산(鷄足山)으로 바뀌게 되었다.
잘 못된 정보다.
남산 정상에서 거론했던 글이다.
남산은 조선 중, 후기 지도인 대동여지도, 동여도, 청구요람에 모두 심항산으로 기록했으며 일제 강점기에 심항산에서 남산으로 산 이름이 바뀌었다.


옛 지도에서 조선 중, 후기에는 계명산(鷄鳴山)이라는 산 이름은 없고 오동산(梧桐山)으로 기록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그러다가 일제강점기였던 1912년도에 일제에 의해 만든 조선지지자료에서, 오동산(梧桐山)이 계족산(雞足山)으로 바뀌었고, 일제강점기 때 사용하던 계족산(雞足山)이 현재 계명산(鷄鳴山)이라는 산 이름을 사용하고 부르고 있다.
계족산과 계명산에서 쓰는 계(雞, 鷄)의 한자가 틀리다는 점을 알 수 있는데 음이나 뜻은 모두, 계와 닭으로 같은데 어떠할 때 각각 달리 쓰이는지에 대해서는 모른다.
겨울철에 산행을 해서였는지 오동나무가 많은 것에 대해서는 별로 생각하지 않은 채로 산행을 했다.
선답자의 산행기를 보면 “이제껏 많은 곳을 돌아다녀 보았지만 이곳 남산이나 계명산 일대 만큼 한 지역에 오동나무가 집단적으로 서식하고 있는 곳은 보지 못했다, 특히 석종사 인근의 골짜기에 서너아름씩 되는 우람한 오동나무들이 많이 산재해 있다.”는 기록을 볼 수 있다.
우리 선조들의 생각이나 행동은 지혜롭고 맞는 것이다.
현재 계명산으로 부르고 있는 이 산은 예전에 오동나무가 큰 숲을 이루었던 오동산이었음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봉황만이 찾는 고귀한 나무인 오동나무가 숲을 이루었던 아름답던 산을 일제강점기 때 계족산으로 바꾸었고 1958년 닭이 울어 여명을 알린다는 뜻으로 현재의 계명산으로 바꾸었다.
그립다, 오동나무가 숲을 이뤘던 오동산이........

<이분이 4봉부터 정상까지 함께 산행한 충주백산산악회 대장님입니다.>

<백산산악회 대장님이 조심해 하산을 하라며 먼저 왔던 길로 내려섭니다.>
산 이름을 바꿑 이유로, 21세기 들어 이곳 충주 사람들은 충주에서 큰 인물이 나지 않고 부자가 나지 않는 것은 계족산이라는 산 이름 때문으로 닭은 땅을 밖으로 파헤치는 성질로 분산을 뜻한다하여 닭이 울어 여명을 알린다는 뜻으로 1958년 계명산(鷄鳴山)으로 산 이름이 바뀌게 되었다고 한다.
닭을 오덕을 지닌 상서로운 동물로 여겼다고 하는데 이는 닭은 머리에 벼슬을 지니고 있으니 문(文)을 지녔고, 다리에 날카로운 발톱이 있으니 무(武)이며, 적을 만나며 용감하게 대적하니 용(勇)이며, 먹이가 있으면 혼자 먹지 않고 서로 불러 모으니 인(仁)이며, 제때에 어김없이 울어주니 신(信)을 지녔다고 여겼다는 것이다.

<정상석 뒤 소나무가 괴이한 모양으로 자랐습니다.>
계명산 정상은 조용하고 적막하였고 양은 적으나 눈발이 날리고 있다.
갑자기 조급함에 얼마 있지 않아 어두워진다는 생각에 정상을 떠날 채비를 한다.
◎정상에서 날머리 구간
텅 빈 정상에서 사방을 두리번거리며 정상을 떠난다.
헬기장 위쪽 이정표에는 마즈막재2.6km↔막은대미재4.3km로 표기되어 있는데 막은대미재가 어디인지 알 수가 없고 산행날머리로 잡은 두진아파트로 내려서야 하는데 가다가 날이 어두워지면 길이 있는 곳으로 하산한다는 생각이다.

<정상을 떠나며 헬기장을 지납니다.>

<헬기장 위 이정표로 아직 가야할 길이 멀다.>
헬기장에서 올라섰던 능선을 한번 쳐다보고 우측 능선으로 하산을 시작한다.
내리막길이라 손쉽게 내려설 것으로 생각했는데 초반에는 의외로 경사가 심했고 경사진 곳곳은 빙판이 있어 무릎이 약해 고전을 할 수 밖에 없었다.
정상에서 7분을 내려서 좌측으로 전망대가 있다.
그냥 지나치다가 다시 되돌아와 전망대에서니 발아래 펼쳐진 큰 건물과 넓은 주차장이 보였고 우측으로는 희미함 속에 충주 시내의 아파트가 보였는데 나중에 검색해보니 발아래 펼쳐진 곳이 충주의료원인 듯 했다.


<하산길 소나무 전망대의 풍경으로 전망대아래는 바위 절벽이며 아래 충주의료원이 보입니다.>
전망을 마치고 등산로로 복귀해 한동안 경사진 내리막을 조심스럽게 내려서니 돌탑이 있는 이정표 앞에 도착했고 이정표에는 주공7단지3.4km↔정상0.4km로 15분 동안 400m밖에 내려오지 못했으니 언제나 하산을 완료할지 갑갑하기만 했다.
돌탑을 뒤로하고 다시 10분을 지나 또 다른 이정표를 만났으니 정상에서 700m내려선 지점이며 이곳에서 다시 10분을 내려서 묘지가 있는 곳에 도착을 하였고 묘지에서 100m쯤 내려섰는데 좌측으로 하산길이 있다.


<하산길 이정표로 때로는 눈과 빙판이 때로는 부드러운 흙길을 만납니다.>
정상에서 약1.3km내려선 지점으로 가야할 거리가 아직은 많이 남았는데 좌측으로 하산을 시도하기는 이른 듯했는데 언제 얼마만큼 지나 다시 하산로가 나타날지 알 수가 없는 상황이라 잠시 걸음을 멈추고 생각에 잠긴다.
어두운 시간에 산에서 헤매는 위험을 감수할 필요가 없다는 판단을 내리고 좌측기로 하산을 시도한다.
낙엽이 쌓인 하산길은 양지바른 곳으로 빙판이나 잔설은 없어 내려서기가 편했다.

<하산길에 만난 능선의 묘지입니다.>

<이곳에서 좌측으로 내려서 하산을 시작했습니다.>
여유를 가지고 내려서다 바위에 걸터앉아 과일을 먹으며 체력도 보충시켜 본다.
편한 길을 따라 내려서니 과수원이 보이는 곳에서 길이 왼쪽으로 갈라지며 다시 올라가기에 희미한 길을 따라 우측으로 내려서니 길은 과수원으로 내려섰고 이내 과수원을 가로 지르며 내려서는데 복숭아가 익어가는 계절이라면 과수원 주인이 틀림없이 뭐라 시비를 걸 것 같았다.
과수원을 지나니 과수원 중간으로 포장도로가 나오고 내려서는 길에서 바라다 보이는 시내 아파트 위로 낮에는 보이지 않던 태양이 붉게 변해 빛도 잃은 채 구름속으로 점점 빨려 들어가며 오늘의 생명을 다한다.
하염없이 내려서는 포장도로를 따라 어둠과 함께하는 길은 너무나 춥다,

<주변이 어두워져 날머리에 도착을 했습니다.>

<금곡어린이집이 날머리가 되었습니다.>
차량의 불빛이 점점 가까워지고 자동차 소음이 귓전을 파고들더니 금곡어린이집이 있는 4거리에 도착을 하고 오늘 산행의 종지부를 찍는다.
▷남산등산로주차장으로부터 연수동금곡어린이집날머리 휴대폰GPS에 의한 산행거리 약12km, 산행시간 약5시간50분, 현재시간18시10분이다.


<다음지도로 이동경로를 그렸습니다.>

<남산과 계명산 지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