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참사랑과 함께한 우두산 합동 산행이야기, 운수 좋은 날
제24회 중, 22차 서울 독립군과 대구 참사랑의 교류 산행이야기
비계산~우두산~의상봉 연계산행기
산행일시: 2018년04월22일
누구와: 대구참사랑산악회와 서울독립군
몇 번째: 스물세번째 합동산행
산행거리: 약9.87㎞
산행시간: 7시간17분
산행코스:도리들머리(10:26)-능선3거리(11:42)-비계산정상(11:52~13:34)-상수월갈림길3거리(14:05)-헬기장(14:17)-마장재(14:54)-주차장갈림길(15:17)-우두산정상(16:10)-의상봉(16:31)-고견사갈림길(16:50)-고견사(17:15)-고견사주차장날머리(17:44)

주요지점 통과 및 이동거리
06:35 KTX 서울역 출발
08:21 동대구역 도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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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6 도리들머리에서 산행시작
11:09 너덜겅지대 통과
11:42 능선3거리, 산행거리1.96km,산행소요시간1시간16분, 해발1103m
11:52~12:30 비계산(합천)정상, 산행거리2.06km,산행소요시간1시간28분, 해발1133m
12:31~13:34 비계산(거창)정상, 산행거리2.11km,산행소요시간2시간08분, 해발1135m
13:36 비계풍혈
14:05 상수월갈림길, 산행거리3.37km,산행소요시간3시간38분, 해발1001m
14:17 1094봉헬기장, 산행거리3.75km,산행소요시간3시간50분, 해발1094m
14:19 1094봉
14:47 노른재 헬기장, 산행거리4.71km,산행소요시간4시간21분, 해발839m
14:52 우두산 철쭉군락지 안내판

14:54 마장재, 산행거리4.96km,산행소요시간4시간30분 해발844m
15:17 고개3거리, 산행거리5.81km,산행소요시간4시간51분, 해발855m
16:10~15 우두산 상봉, 산행거리7.02km,산행소요시간5시간45분, 해발1050m
16:29 고견사갈림길3거리
16:37~46 의상봉, 산행거리7.56km,산행소요시간6시간12분, 해발1035m
16:49 고견사갈림길3거리
17:15 고견사, 산행거리8.70km,산행소요시간6시간50분,해발751m
17:40 견암폭포
17:44 고견사주차장날머리, 산행거리9.87km,산행소요시간7시간17분, 해발524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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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12 동대구역 출발
22:48 용산역 도착
◎산행전 이야기
운수 좋은날~~~
인력거꾼 김첨지는 찢어질 듯한 가난속에 병든 부인, 어린아들과 함께 살아갑니다.
3일 전부터 아픈 부인은 설렁탕 국물이 먹고 싶다고 하지만 아픈 부인의 소원을 들어줄 형편이 되지 못합니다.
늘 하루를 시작했던 대로 이른 아침 인력거를 몰러 나가려니 부인이 일을 나가지 말라고 애원하지만 그래도 벌어야 하므로 아픈 부인을 집에 남겨두고 나갑니다.

지금으로 치면 로또가 된 거나 마찬가지입니다.
첫 손님으로 앞집 마님을 태웠는데 30전, 얼마 후 양복을 입은 선생을 태웠는데 50전, 기분이 눈물이 날 만큼 기쁜데 불안한 생각도 듭니다.
그만 벌었으면 싶은데 학생을 태웁니다. 비를 맞아가면서.....
다시 1원50전을 법니다.
행운이 너무 갑자기 크게 찾아오니 불안한 마음이 계속 들었지만 마누라 설렁탕을 사줄 수 있다는 생각에 기쁨도 넘칩니다.
막걸리 몇 사방을 들이키고 한 손에는 설렁탕을 사들고 셋방을 들어서는데 어린아들의 빈 젖 빠는 소리만 들릴 뿐 조용합니다.
돈을 많이 벌었으므로 기고만장하여 큰소리로 욕을 하며 들어서지만 마누라가 움직이지 않습니다.
마누라 발을 걷어차니 꿈쩍도 하지 않고 나무토막 같은 느낌이 들자 불안한 마음에 얼굴을 만져보니 마누라는 이미 죽은 상태였습니다.
눈물을 흘리며 마누라를 붙잡고 "설렁탕을 사왔는데 왜 먹지 못하냐?"고 마구 울어댑니다.
김첨지가 큰돈을 벌어 집에 들어와 마누라가 먹고 싶은 설렁탕을 건네주고, 맛있게 먹는 마누라 옆에서 돈 번 이야기를 신나게 하는 해피엔딩으로 끝났으면 얼마나 좋았겠습니까?
대구 출신 현진건이 쓴 단편소설입니다.
조선말기에 대구에서 태어나 손기정 일장기 말소사건으로 1년간 투옥되었다고 하네요.
이 소설을 보면 일제 강점기 때 서울의 하급층인 우리네의 처참한 삶을 엿볼 수 있는데 정말 눈물겹습니다.
산행전 이야기에 운수좋은날을 넣은 것은 소설 내용보다는 소설의 제목이 너무 좋아서입니다.
소설의 내용은 잊고 오늘 함께했던 일들 모두 운수가 억세게 좋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동대구역에서 반가운 얼굴들을 본 것도 운수가 좋았고,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맛있는 비빔밥으로 주린 배를 채운 것도 운수가 좋았고,
지겹게 밀리던 88고속도로도 뻥 뚫려 차가 쌩쌩 달리는 것도 운수가 좋았고,
소나기가 오지 않고 안개비가 내린 것도 운수가 좋았고,
산상의 만찬도 운수가 좋았고,
아무것도 보이지 않던 풍경이 바람에 의해 그림같은 비경을 볼 수 있는 것도 운수가 좋았고
그 중 제일 운수가 좋은 건 일행 모두가 안전하게 산행을 마칠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정말 운수 좋은 날이 맞지요?
서울 독립군과 대구 참사랑 산악회의 23번째 합동 산행은 운수좋은 날로 문을 엽니다.
◎도리들머리에서 비계산 정상 구간
88고속도로를 이용해 몇 차례 대구와 서울 합동산행을 한 적이 있었습니다.
러시아워 시간에 시내 한 복판을 지나는 것처럼 무척이나 차가 밀리던 곳입니다.
밀리는 차창 건너편에서 차창에 기댄 저를 보고 "리차드기어"라고 하여 잠시 정신이 아찔 했습니다. 그 사람이 저를 보고 미국 명배우 리차드기어로 착각한 것 같아 혼자서 '아! 내가 그렇게 잘생겨 저 사람이 '리차드기어'로 착각한 것'으로 알았는데 가만히 생각해보니 엉금엉금 기는 차량들을 보며 우리가 탄 차를 보고 "니 차도 기어"라고 했던 걸 제가 오판을.........
공사를 마친 88고속도로는 이제야 고속도로의 기능을 하는 것 같았습니다.
88고속도로에서 가조인터체인지를 벗어난 버스는 59번 국도로 올라서 산제현으로 가는 길을 따라 가다가 산제현을 가기 전 도리 고속도로와 교차되는 지점을 막 지나며 정차했으니 이곳이 비계산 들머리가 되는 곳입니다.

<산행채비를 마치고 일행이 함께 기념사진을 찍습니다.>
들머리에 내려서 간단히 산행채비를 한 후 산행 전 단체 사진을 찍고 산행을 시작합니다.
산행의 시작은 가파른 시멘트 포장길로 시작합니다.
약5분 정도 오르면 묘지가 있는 갈림길이 나오는데 선두는 시멘트 포장길을 따라 오르고 차회장은 우측 묘지 옆 표지기가 걸린 소나무 숲속 길로 들어서 차회장과 함께 동행하기로 하고 숲속으로 들어서지만 뒤따라오던 일행은 숲길로 오지 않고 포장길을 따라 선두팀을 따라갑니다.
10여분을 지나 넓은 길과 숲속길이 다시 만나는데 먼저 올라서 후미를 기다려 보지만 좀처럼 나타나지 않자 초조한 마음으로 5분을 기다려 일행을 만나 다시 산행을 재개합니다.
잠시 후 잣나무 수림으로 들어섰고 산행시작부터 내리는 비는 더 이상도, 더 이하도 아닌 산행하기 좋을 만큼이 유지되는 가운데 서서히 고도를 높여갑니다.
전쟁을 치른 전장 터처럼 등로 주변 여기저기에 소나무의 큰 가지가 뒹굴었는데 함께 산행을 하고 있던 경환아우가 얼마 전 눈이 내리고 바람이 불어 대구지방 산에는 대부분 소나무가 큰 훼손을 입었다는 설명을 해 줍니다.

<너덜지대를 지난 곳에는 누군가 소원을 빌며 작은 돌탑을 쌓았습니다.>
어두웠던 등로가 갑자기 훤해지며 너덜겅지대가 나타나고, 너덜겅지대로 오르나 했는데 너덜겅지대를 아래서 살짝 지나더니 우측을 우회하여 결국은 다시 위쪽으로 올라서 다시 지나는데 날씨가 좋으면 너덜겅지대로 그냥 올라가도 될 것 같았습니다.
고도를 올리자 안개인지 구름인지가 우리 일행을 삼켜버렸고 비계의 산신은 무언가를 주문했는데 날씨가 좋으면 주변을 조망하느라 집중력이 떨어져 안전산행을 위한 비계산신의 배려라고 말해줍니다.
너덜겅지대를 지나면 등로는 더욱 가팔라지고 주변으로는 암릉이 속속 출현하고, 어느 정도 올랐는지 알 수 없지만 산행을 시작한지 1시간이 지난 것을 생각하면 주능선에 거의 올라온 듯 했습니다.

<한시간10분여를 올라 능선3거리에 도착해 인증사진을 찍습니다, 성섭아우 인상이 무척힘들어 보입니다.>
잠시 후 선두에서 길을 열어나가던 경환아우의 큰 외침이 들려자 주능선3거리에 도착한 것을 알 수 있었고, 이어서 성섭아우와 주능선에 도착합니다.
능선3거리에는 이정표(비계산0.15km↔산제치3.4km,↓도라1.96km)가 있었으며 정상은 좌측이며 1시간15분이 걸렸고 고도는 1103m를 나타냅니다.
거창과 합천을 경계하는 산제치에서 산행을 시작하면 능선이 완만하지만 거리가 멀고, 반면 도리에서 산행을 시작하면 경사가 심하고 힘들지만 거리가 가깝다는 잇점이 있다고 합니다.
선발로 올라선 3명이 이정표에서 인증사진을 찍으며 5분을 기다려 보지만 후미가 올라오지 않아 정상에서 기다리기로 하고 정상으로 출발합니다.
3거리에서 정상으로 오르는 길은 비교적 급하지 않아 오를만 했으며 능선3거리를 출발해 3분이 지나 정상 첫 봉에 올라섭니다.
비계산은 정상에 3개의 봉우리가 있는데 첫 봉에는 삼각점이, 두 번째 봉우리는 합천에서 세운 정상석이, 마지막 세 번째는 오래전부터 있는 거창에서 세운 정상석이 있습니다.
첫봉에 올라서지만 합천방향이나 거창방향이나 보이는 건 전무한 상태로 바로 다음 봉우리로 이동합니다.

<정상에서 헛 폼입니다.
보이는 것은 아무것도 없는데 가조시내를 바라보고 있습니다.>

<비계산 정상 인증은 성섭아우와 함께 합니다.>
그러나 봉우리 간격이 가까워 합천정상으로 이동하는 데는 1분이면 충분했으며 두 번째 봉우리에는 합천숭산비운산악회에서 세운 정상표지석이 있습니다.
▶도리들머리에서 비계산정상까지 산행거리2.06km, 산행소요시간1시간26분, 해발1133m (+6.3m오차), 현재시간11시52분입니다.
◎비계산(飛鷄山) 정상에서
비계산(飛鷄山)!

누구에게 물어보지 않아도 비계산의 유래는 산명에 답이 있습니다.
산의 형상이 닭이 날개를 펴고 나는 형상 닮아서라고도 하고 닭벼슬과 같은 형상이라서 붙여진 이름리라고도 합니다.
정상에 오른 경환아우와 성섭아우와 대화를 나누며 우리가 서 있는 이곳이 아마도 가운데 봉우리이므로 닭의 머리에 해당될 것 같다는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나중에 산행기를 쓰며 지도를 보니 머리는 정상이 아닌 1106봉이 되고 정상은 우측 날개를 편 형상이 되고, 1094봉은 좌측 날개를 편 형상이 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후미를 기다리다 거창에서 세운
정상석이 있는 지인봉으로 와서 경환아우와 인증사진을 찍으며 시간을 보냅니다.>
비계산의 족보는 백두대간 초점산 삼도봉에서 수도산을 지나고 단지봉을 지나 가야산 두리봉에서 서쪽으로 하나의 능선이 분기하여 우두산을 가는 중간 남쪽으로 남산제일봉을 분기시키고, 남서쪽으로 이어지는 능선은 우두산(별유산)을 지나 이곳 비계산을 들어 올린 능선은 산제치에서 잠시 숨을 고르며 떨어진 뒤 오도산과 미녀봉으로 달음질을 칩니다.
비계산에서의 조망은 어떨까?
비계산 정상에서의 조망은 일망무제, 더 이상 거론할 필요를 느끼지 못하며 더 이상의 수식어도 필요하지 않은 한 마디로 굿이라고 합니다.
산꾼들의 한결같은 대답, 전국 산정을 올라도 이만큼 호쾌한 조망을 가진 봉우리가 흔치않다고 합니다.
북동으로 남산제일봉과가야산, 수도산이, 서쪽으로는 수도산에서 흘러내린 능선이 양각산, 흰대미산, 보해산, 금귀산을 일으켜 세웠고 그 너머로 금원, 기백과 덕유산이 버티고 있는 산그리매가 펼쳐진다고 하는데 오늘만큼은 상상의 나래로 눈을 감고 마음으로 보아야만 합니다.
천작막여일봉(千雀幕如一鳳)!
천 마리의 참새가 어찌 한 마리의 봉황의 큰 뜻을 헤아릴 수 있겠는가?라는 뜻으로 우리 일행에게 뛰어난 조망을 보여주지 않고 마음으로 보라고 한 비계산신의 깊은 뜻을 어찌 우리가 알 수 있겠습니까 만은 선계에 들어선 우리가 이미 신선이 되었으므로 신선에게는 조망은 의미가 없음을 시사하는 것 같은 느낌을 가져봅니다.
구름 속 신선이 되어 정상표지석을 부여잡고 포즈를 취해봅니다.
경환아우의 태양을 향해 마음을 담은 스틱 활을 당기는 모습이 일품입니다.
계속 사진만 찍을 수도 없습니다, 바람은 거세게 불어오고 부슬비에 추위는 엄습합니다.
올라와야할 일행은 올라오지 않고, 추위에 견디지 못하고 각각 배낭에 있는 바람막이를 꺼내 입고 기다려도 오지 않으니 신선도 필요 없고, 사진도 필요 없습니다. 40분을 기다리다가 세 번째 봉우리로 이동하기에 이릅니다.

<일행이 모두 정상에 모였습니다,>
세 번째 봉우리는 비계산을 대표하는 제1봉을 지인봉으로 부르는데 왜? 지인봉인지 물어보면 서슴치 않고 대답할 수 있습니다, 나도 모른다고.
지인봉에는 오래전부터 거창에서 정상표지석을 세웠는데 최근에 와서 어떤 이유에서인지 확실하게 알 수는 없지만 조금전 지나온 제2봉에도 합천에서 정상 표지석을 세워 2개의 표지석을 거느린 산이 되었습니다.
비계산이 있는 거창은 대구 참사랑산악회 총무인 대박의 고향입니다.
아침에 동대구에서 차에 오르니 권재형아우와 총무의 처인 정미씨가 보이지 않아 궁금했고 아쉬웠습니다.
재형아우와 산행을 하면 산에대한 정보도 많이 알려주고, 조곤조곤 이야기도 잘해 심심치 않으며 정미씨가 없으니 대박이가 말수도 거의 없고 산행에 재미를 느끼지 못하더니 급기야 B팀에 합류해 짧은 산행으로 종료하고야 말았습니다.

<이분들은 위대한 B팀으로 B팀은 인내심이 강해야합니다, 기본1시간 이상을 기다릴 수 있어야.......>
지인봉에 있는 타원형의 정상표지석에는 1136m라고 표기되어 있었는데 스마트폰 고도계는 1135m를 나타냈으며 가조일대를 조망할 수있는 전망처에는 긴의자 2개를 설치해 쉼터로서 훌륭한 곳이며 이곳이 우리 일행의 식사터로서도 최상으로 찜하고 정상석으로 다가갑니다.
정상석을 안아본 뒤 합천방향을 보니 전무하여 눈을 감고 보니 좌측으로 가야산의 자태가 나타납니다.
다시 긴의자가 있는 전망처에 서서 눈을 감고 내려다보니 가조면 일대가 1000m급 고봉에 둘러 싸여 아늑하게 보이는 가조의 분지가 한눈에 내려다보이고 발아래 88고속도로에서는 작게 보이는 자동차들이 전속으로 달리지만 위에서 보니 어린아이들의 소꿉장난 같이 보입니다.
좌측 미녀봉에 누워있던 미녀는 길머리를 바람에 휘날리며 언제부턴가 일어나 앉은 자세로 손을 흔들어 산신이 된 저를 환영해줍니다.
다시 정상석으로 다갑니다.
정상석 뒤로 진달래가 피었습니다.

<이분들은 미쓰 대구 진,선,미,정입니다, 누가 진할건가요?>
진달래나무에 조금전 미녀봉의 미녀의 환영이 드리웠고 진달래꽃 색깔과 같은 연분홍 얼굴에 미소를 띤 채 입술도 진달래꽃 색깔의 엷은 립스틱을 바르고 미소를 보냅니다.
꿈인가 생시인가 비몽사몽 간 황홀경에 빠진 상태였는데 경환아우와 성섭아우가 올라서며 미녀는 사라지고 미녀가 드리웠던 나무에는 연분홍 진달래꽃만 작은 바람에 흔들리고 있었으니 서포의 구운몽을 재현한 느낌입니다.
다시 3명이 되어 주변을 서성이며 시간을 보내자 중간 팀이 올라섭니다.
물론 중간팀들도 합천 정상에 올라 추억을 만들며 시간을 보내다 왔음은 두말할 필요가 없겠지만 올라오는 일행마다 한 목소리는 "어~ 여기 좋네."였습니다.
일행이 하나 둘 늘어나 신이 났습니다.

<지두 하나 찍습니다.>
이리 저리 이런 포즈 저런 포즈로 사진을 찍으며 20분을 보내서야 우리 일행이 한자리에 다 모일 수 있었으며 우리 일행은 긴의자 주변으로 모여 즐거운 점심을 합니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라고 산행 중 또 다른 재미는 바로 산중 식사입니다.
매번 반복되는 산상의 만찬은 열 번, 백번 칭찬해도 손색이 없습니다.
아침 88고속도로 휴게소에서도 맛있는 비빔밥으로 배를 두둑하게 채워 힘들지 않게 정상을 오를 수 있었는데 이제는 마지막 하산까지 안전산행을 위한 만찬을 준비했습니다.
대전 아들네 집에서 대구로 오느라 도시락에 밥만 담아 왔는데 상차림을 보니 안 먹어도 배부를 것 같습니다.
고기류에서 나물류까지 없는 게 없습니다.
먹는 데는 인정사정이 없어 맛있는 건 남들이 먹기 전에 이리저리 휘저으며 폭풍흡입을 하고서야 잘 먹었다는 생각을 합니다.
암튼 대구 미인들이 차린 음식은 늘 그랬듯이 맛이 좋아 고맙게 잘 먹었으니 이 글을 통해 다시 한 번 감사를 드립니다.
식사가 끝나고 다 같이 거창 정상표지석 주변으로 모여 단체 사진을 찍고 A팀과, B팀으로 나누어 산행을 하기로 하고 정상을 떠납니다.
◎비계산 정상에서 별유산 구간
비계산 정상을 뒤로하고 거친 암릉을 막 내려서면 암흑속에서 눈앞에 안내판이 나타나고 작은 다리 하나가 보입니다.
무심코 건너려다 본 안내판은 가조팔경 중 제4경인 비계풍혈을 알리는 안내판으로 작은 다리 위에서서야 비계풍혈을 실감할 수 있었는데 정상과 작은 다리 건너편 암봉과 거리는 얼마 떨어져 있지 않지만 협곡의 깊이는 아주 깊었으며 협곡 합천방향은 낭떠러지기가 있는 것 같은데 구름이 가려 예측도 할 수 없습니다.

이 깊은 협곡 아래 풍혈이 있는 것 같아 눈으로 협곡을 보며 추측만 해볼 뿐 아래로 내려서면 아마도 50년 동안은 올라오지 못할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이 작은 다리는 양각산과 수도산 산행 때 가조휴게소에서 비계산을 보았을 때 암봉과 암봉을 축으로 하여 아슬아슬하게 하늘에 놓인 다리를 보고 신선들이 이용하는 다리같은 생각이 들었고 하늘다리를 건너고 싶은 생각이 여러 차례 들었지만 88고속도로가 너무 정체가 되므로 대구팀에게 미안하여 차마 비계산의 운자를 띄우지 못 했었습니다.
오늘에서야 신선이 되어 하늘다리를 건넙니다.
뒤이어 다리를 건너는 일행들의 얼굴은 웃음을 머금은 듯 했으니 모두가 즐거움을 만끽 하고 있었습니다.
하늘 다리를 건너 칼등 능선을 이어가는데 구름이 주변을 가렸으니 위험해도 위험한 줄 모른 채 아무 두려움 없이 마냥 기분이 좋은 상태로 능선을 이어갑니다.

<비계풍혈을 지나 날등을 탑니다,
날이 맑았다면 쩔쩔맸을 겁니다, 아래 낭떠러지기가 안 보인다고 겁을 상실한 산태입니다.>
지인봉에서 0.7km정도 내려서서 마주 오던 여자 한사람을 만나는데 아! 이 여자는 식사할 때 길을 잘 못 들어 정상까지 왔던 여자인데 다시 마주치게 되었는데 돌탑봉을 찾습니다.
그러고 보니 약30분은 혼자 헤매고 다닌 것 같습니다.
임대장이 자세히 설명을 해주지만 제대로 들을 생각이 없는 것 같았고, 함께 동행을 하게 됩니다.
잠시 후 비계산1km↔마장재2.5km가 표기된 다목적 소방이정목이 있는 곳에 도착을 하는데 이곳이 1106봉으로 직진은 1106봉 정상으로 오르는 길이고 우측 사면길은 1106봉을 우회하여 지나는 곳인데 이 여자분 혼자서 1106봉으로 올라가 버렸는데 길을 물어 가르쳐준 사람의 성의를 헌신짝 버리듯 져버리는 행동을 하는 것을 보고 저러니 산에 혼자 떨어져 고생을 하는 이유를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구름속 신선이 되어 낙엽이 쌓여 푹신한 등로를 이어갑니다.
비계산1.5km↔마장재2.0km가 표기된 다목적 이정목을 지나 잠시 내리막으로 내려서니 이정표(마장재1.5km↔비계산1.3km,↓상수월3.7km)가 있는 뒤뜰재에 도착합니다.

<상수월로 갈리는 뒤뜰재3거리에서 후미를 기다립니다.>
잠시 후미를 기다리다가 서서히 오름을 시작하며 암릉을 지나고, 가파른 목재계단을 올라서고, 1094봉 헬기장을 지나 암봉인 1094봉 도착합니다.
1094봉은 작은 암봉으로 가야산일대와 우두산과 의상봉을 조망하기 좋은 곳이었으나 오늘 만큼은 사방이 전무한 상태입니다.
소월의 진달래꽃을 생각하며 꽃을 따 입속에 넣고 옛날을 떠올리며 일행이 오기를 기다립니다.
5분여를 기다려 A팀8명이 도착하자 1094봉을 내려섭니다.

<1094봉 조름 못 미친곳 헬기장입니다.>
다래넝쿨이 우거진 등로를 따라 내려서는 곳곳에는 얼레지가 피기시작하고 꽃은 예쁘나 너무 흔해 대접을 받지 못하는 큰개별꽃이 사방에 피었습니다.
편안하게 내리막길을 내려서면 마장재0.5km가 표기된 다목적이정목을 지나며 철쭉나무가 밭을 이룬 노른재 헬기장에 도착하지만 아직은 철수가 일러 철쭉은 꽃봉우리를 머금은 채 필 준비를 하고 있었는데 일주일이 지나면 철쭉이 피기시작하며 노른재와 마장재 일원을 붉게 물들일 것 같았습니다.
노른재헬기장에서 잠시 머물고 위로 올라서니 희미하게 안내판이 다가섭니다.
무엇일까? 궁금증에 보니 우두산철쭉군락지안내판으로 철쭉군락지와 더불어 의상봉에 대한 안내가 적혀 있습니다.

<우두산 철쭉군락지네 도착했는데 열흘이나 보름 후에 철쭉이 만개할 것 같습니다.>
안내판이 있는 봉긋한 능선 위에서 사방으로 넓은 철쭉 군락이 형성되어 있는데 아직은 꽃이 피지 않아 황홀함에 도취될 상황은 아니지만 주변이 구름으로 덮이니 마치 소설이나 영화의 한 장면 속에 우리 모두가 주인공인 된 듯한 착각에 빠져 듭니다.
특히 A팀에 부부팀인 상훈아우네와 김원장네는 영화속 주인공 같은 신부의 사랑스러운 모습을 추억 속으로 쓸어 담는 모습이 정겹게 보입니다.
철쭉군락지에서 약2분 정도 지나면 이정표(우두산2km↔비계산2.8km,↓주차장1.6km)가 있는 마장재로 마장재에는 긴의자 2개가 설치되어 있어 쉬어 가기 좋은 곳이며 나뭇가지에는 이곳을 지나 산꾼들의 표지기가 무수히 달려 있습니다.

산 곳곳에 길을 표시하는 표지기는 그 용도와 부르는 이름도 업그레이드되었는지 이니셜로 부르기도 하는데 이니셜로 불러도 틀린 말은 아니겠지만 이니셜과 표지기는 분명 차이가 있다고 생각하며, 용처에서도 길을 알리는 표식에서 개인이나 산악회의 홍보를 위한 수단이나 도구로 이용되고 있음이 안타깝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곳 마장재에서 B팀은 주차장 방향으로 하산을 하기로 했으므로 현재 인원 8명만이 우두산으로 함께 이동합니다.
이곳에서 비계산신으로부터 인간세계에서 산행에서만 신으로 추앙받는 우리 일행을 우두산신 , 아니 별유산신에게 부탁을 했으니 이제부터 별유산신의 안내를 받으며 길을 나섭니다.
마장재에서 유순한 등로를 따라 가면 주변으로 암릉이 서서히 나타나고 철쭉도 간간이 꽃을 피운 상태로 우리 일행을 맞아줍니다.
가시거리 50m도 안 되는 상태로 진행을 하며 우리 앞에 어떤 풍경이 나타날지 모르므로 기대감과 뜻하지 않은 풍경이 펼쳐질 때 감흥은 배가 되며 펼쳐질 풍경을 생각하며 등로를 이어가는 것도 재미가 좋습니다.
마장재에서 10여분 능선을 이어가면 목계단이 나타나고, 목계단을 지나 5분정도 지나면 이정표가 있는 고개3거리가 나타납니다.

지나온 노른재, 마장재 그리고 이곳 고개3거리 3곳이 위치는 다르지만 하산지점은 고견사주차장으로 집결한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고개3거리에는 우측으로 바위들이 산재한데 앞서가던 경환아우가 문바위를 발견하고 문바위 뒤에서 포즈를 잡습니다, 그러나 문바위를 지나 별유산으로 이어진다면 명물로 이름을 올릴 수 있겠지만 사람들이 통행하는 문이 아니므로 고개3거리에 있는 문바위는 통천문이라는 이름을 얻지 못한 것 같습니다.
고개3거리를 지나 앞이 전혀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등로를 이어가면 별유산신은 딱50여m씩만 길을 열어줍니다. 조금은 가파른 암릉길을 올라서면 전망바위가 분명할 진데 사방이 모두 구름속에 쌓여 보이는 것이 없는 상태입니다.

<별유산신의 쇼를 보기 위해 기다리고 있는 장면입니다.>
경환아우가 선두로 가다가 전망바위에서 자리를 잡고 휴식을 취하자 연이어 올라서는 일행이 전망바위에 모이게 되었는데 별유산신이 우리에게 처음으로 아름다운 풍경을 보여줍니다.
별유산이나 의상봉 오름길에 비하면 이번의 풍경은 미약하지만 스크린이 빠르게 지나는 것처럼 가조일대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구름을 밀쳐버리면 또 다른 구름이 다시 몰려들고 이에 질세라 바람이 다시 구름을 몰아내기를 반복하는 사이 우리 일행은 눈앞에 펼쳐지는 풍경을 보며 마치 어린아이처럼 소리를 지르며 환호를 합니다.

<드디어 쇼가 시작되었습니다,
전무했던 정면이 순식간에 우두산 비경이 나타납니다.>

<우리의 호프 성봉형아우가 순간포착에 몰두하는 장면입니다.>
그렇게 별유산신이 보여주는 대자연의 조화에 감동되어 갈 길이 멀다는 것을 잊고 시간을 보냅니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구름을 밀어내던 바람도 힘이든지 더 이상 바람이 구름을 밀어내지 못하자 우리 일행은 자리를 이동합니다.
정신을 차리고 가야할 방향을 보니 조금 전까지 보이는 것이 없던 정상방향으로 구름이 조금씩 이동하며 암봉이 모습을 드러냅니다.
지남산인지, 장군봉인지 바람이 구름을 밀어내며 보기 드문 풍경이 눈앞에 펼쳐지니 전망대가 따로 없고 명소가 따로 없는 선 곳이 전망대이고 눈에 보이는 곳이 곧 명소입니다.

<능선을 이어가면서 가깝게 접근하면 또 다른 세상, 멋있는 비경이 나타납니다.>
목계단을 오르며 고도는 점점 높아지고 보이다가 사라지고 사라졌다가 다시 나타나는 풍경에 매료되어 속도를 낼 수가 없습니다.
거기다 바위 작은 틈새에 뿌리를 내리고 살아가는 철쭉의 자태가 너무 아름다웠는데 소월이 바위에서 살아가는 이러한 꽃을 보면 어떠한 시상이 떠오를지 궁금합니다.
풍경과 꽃만 아름다운 것이 아닙니다, 등로 옆 암봉과 아기자기한 바위, 그리고 별유산신의 공기돌 같은 바위를 곱게 포갠바위도 보기가 좋았는데 상훈네는 밀어 버리려하고 김원장네는 히프로 받쳐 보기도하며 웃음을 주고받습니다.
마장재를 1km지났다는 다목적이정목을 지납니다, 30분이면 충분했을 거리를 50분이 더 걸려 지납니다.
구름에 쌓여 식별을 할 수 없지만 앞에 거대한 바위가 있습니다.

<앞으로 줄행랑 놓기에 큰 거 해결하러 가나보다 했는데 어느 새 산신이 되어 있는 경환아우입니다.>
앞으로 다가서자 거대한 바위가 나타내고 긴 철계단이 보였는데 바위에 누군가 있어 보니 경환아우가 이미 거대한 바위위에 올라서 있습니다.
거대한 바위가 연속으로, 연속되는 암릉을 구름이 감싼 아름다운 풍경을 글로서 마땅히 표현할 수식어가 없고, 한 마디로 기가 막힐 정도로 멋있는 풍경이 펼쳐집니다.
암릉지대를 지나 구름속으로 들어서면 폐헬기장 같은 쉼터를 지나 이정표를 지나는데 우두산 정상이 0.3km 남았다고 표기되어 있습니다.

<그 유명한 코끼리바위입니다, 병아리 바위도 있다고 하던데....>


<우두산 정상이 가까워 지며 비경이 연속으로 나타납니다.>
잠시 후 경환아우는 구름속으로 사라지고, 뒤이어 오던 상택아우는 코끼리바위라고 외치는 소리가 들렸는데 정상 부근 병아리바위와 코끼리바위가 있다는 글을 읽은 적이 있지만 어디에 있는지 알지 못하고 지나칩니다.
정상이 가까워지며 암릉밑 우회길을 버리고 암릉위로 올라서 암릉을 타고 정상으로 이어가는데 마땅하게 명경을 찍을 만한 풍경을 보지 못했습니다.


<우두산 정상에 도착합니다.
임대장이 무척 외로운 지, 정상표지석이 애인이라도 되는 양 꼭 껴안고 있는 모습이 안쓰럽습니다.>
전혀 보이지 않던 전방이 가까이 접근하며 조금씩 열리고 거대하고 위험한 곳이 정상일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밋밋한 육봉에 사람 키 정도의 정상표지석과 옆에 경환아우가 보였으니 현대식 이름으로 우두산, 옛 이름으로 별유산의 정상인 상봉입니다.
▶도리들머리에서 우두산정상까지 산행거리7.02km, 산행소요시간4시간54분, 해발1050m (+4m오차), 현재시간16시10분입니다.
◎우두산정상에서 고견사주차장 구간
우두산(牛頭山) 상봉!

비계산과 같이 우두산의 유래에 대해서도 산명만 보면 알 수 있듯이 우두산은 산의 형상이 소머리를 닮았다고 해서 붙여진 산명일 것입니다.
우두산을 올랐을 때만해도 몰랐던 옛 이름이 있습니다.
의상봉 자락에 있는 고견사 현판이 '별유산사천성문(別有山寺天城門)라고 달려 있는 것을 보면 우두산의 옛 산명은 별유산 임에는 틀림이 없는데 무엇이 다른 산과 다른지는 알 수가 없고 언제 왜? 우두산이 별유산으로 바뀌었는지 궁금해 거창군청에 문의를 해보아야 할 것 같습니다.
정상표지석을 배경으로 인증사진을 찍는 사이 일행이 속속 올라섭니다.
그러나 상봉에서 오래 머물 시간이 없었던 것은 임대장의 부추김에 단체사진과 개개인 사진을 찍는데 5분이면 충분했습니다.
임대장의 지휘로 상봉을 내려서 의상봉으로 이어갑니다.

<상봉에서 의상봉 안부로 내려서는 길에 안개가 걷히며 멋진 암봉이 나타납니다.>

<상훈 아우와 미예씨가 내려서 위치 확인을 하는 듯 합니다, 걍 좋아서 산행할 때도 늘 곁에 붙어 있습니다.>
상봉에서 0.5km를 지나 등로옆 다목적이정목을 만나면서 상봉 북릉과 의상봉의 비경이 순간적으로 나타났다가 없어지기를 반복하며 별유산신의 쇼가 펼쳐지기 시작하고, 상봉 북릉은 오봉 또는 오형제바위라고 이름을 붙여도 될 만큼 위용있고 수려한 바위가 눈길을 끕니다.
너무 가까워 한 컷에 담을 수 없어 의상봉 밑 안부로 내려서면 가조팔경 중 제1경 의상봉에 대한 안내판이 있는데 이러합니다.
| 가조1경 의상봉 의상봉(1046m)는 가조의 진산 우두산 서쪽 지맥으로 가조면 수월리에 위치한다. 신라 문무왕 때 의상대사가 참선한 곳이라 하여 이름 되었으며 '별유천지비인간(別有天地非人間)'아라 할 정도로 우뚝한 돌부리가 뛰어난 산이다. 산 아래는 의상대사가 수도할 때 쌀을 얻었다는 쌀굴이 있고신리 때 창건한 고견사와 최치원선생이 심은 은행나무를 비롯해 십이지신상석, 수석이 아름다운 고견천, 가정산폭포, 낙화담, 가마소 등의 명소가 즐비하다. |
안부에서 잠시 시간을 보내고 의상봉으로 오릅니다.
계단은 보이나 의상봉의 위세는 볼 수 없음이 안타깝지만 하나 둘 계단을 오르면 오르는 대로 점점 앞을 막고 있는 구름리 길을 내줍니다.
꽤나 가파른 목계단을 한동안 올라서면 좌측으로 너럭바위 전망대가 있습니다.

<의상봉 안부에서 의상봉으로 오르는 계단으로
옛날 의상은 여길 어떻게 오르내렸다는 이야기인지 납득이 안갑니다, 뻥치는 거 같지요?>

<의상봉을 오르는 중간 너럭바위 전망대에 서니
별유산신이 쇼를 시작되는대,아마도 오늘 최고의 압권이었을 것 같습니다.>
전망대를 그냥 지나치면 전망대의 입장이 난처할까봐 전망대로 올라서 구름뿐인 상봉 북릉을 보고 있노라니 별유산신이 이를 알았을까? 고견사에서 바람이 불어와 구름을 밀어내니 북릉의 오봉과 주변 암릉이 송림과 어우러진 최고의 비경이 나타납니다.
가조1경이 헛되지 않음을 실감할 수 있으며 이러한 풍광이 머물러 있음이 명찰인 고견사가 존재할 수 있다는 공식이 성립되는 것 같았습니다.
주변의 깎아지른 절벽은 위엄을 주기에 충분했겠지만 안심하고 비경의 감흥을 느낄 수 있는 산신의 배려가 있어 절벽 아래를 볼 수 없습니다.
너럭바위 전망대에서 비경을 즐기고 또 다시 이어지는 지그재그 계단을 따라 먼저 올라선 일행이 간단한 휴식을 취하고 있는 의상봉으로 올라섭니다.
올라설 때의 깎아지른 절벽에 비해 정상은 위험하지 않으며 평평하지는 않지만 안전하게 휴식을 취할 수 있는 공간이 충분했으며 중앙에 거창군에서 세운 의상봉표지석이 있습니다.

<별유산신의 쇼를 보고 늦게서야 의상봉으로 오릅니다.>

<의상봉 표지석입니다.>
의상봉!
가조1경이며 의상대사가 좌선을 했다고 전해지는 봉우리로 이같이 험하고 높은 절벽을 의상은 어떻게 올라와 수도를 했을까?
불가능 할 것 같은 이야기가 전설로 전해지는데 사실보다는 전설은 전설로 보아야 할 것 같습니다.
의상봉에 올라와 사진 몇 장 찍었을 뿐인데 임대장, 또다시 빨리 하산해야 한다며 부추기므로 오래 머물 수가 없이 의상봉을 내려서야 했는데 정상에서 장군봉 방향이나 상봉, 그리고 비계산이나 가야산 어느 곳 하나 제대로 볼 수 있는 곳이 없었습니다.

<저 봐라, 좋아서 죽겠단다.>

<의상이 수도하던 곳에서 우리는 기분 좋게 인증 사진을 찍어 봅니다.>
마지막으로 의상봉을 내려서며 텅빈 정상이 공허한 제 마음을 대변해 주는 듯 했습니다.
의상봉을 안전하게 내려서며 계단 아래로 오래된 길의 흔적을 보면서 오래전에는 이렇게 위험한 절벽을 로프에 의존해 올랐다는 생각을 하면 오금이 저릴 정도였습니다.
안부에서 마지막 대원이 내려오는 것을 확인한 임대장이 하산을 시작합니다.
의상봉에서 하산은 서쪽 방향을 통해 고견사로 내려섭니다.
처음에는 꽤나 가파른 산죽지대를 내려섭니다.
때로는 흙이 나와 미끄러운 곳을 지나기도 하고 때로는 미끄러운 암릉을 지나기도 하고, 때로는 움직이는 돌들을 밟고 내려서야 했으며 산정에서는 바람이 불어 어수선했던 분위기였는데 하산하는 계곡은 조용했고 간간이 우리 일행의 발걸음 소리가 정적을 깰 정도였습니다.
안부에서 15분을 내려서 등로 옆 2개의 돌탑이 있는 곳을 지나 잠시 내려서면 방향이 우측으로 바뀌는 지점에 오래된 이정표가 있습니다.

<의상봉에서 고견사로 내려가는
중간 돌탑이며 이곳에서 의상이 수도할 때 쌀을 얻었다는 쌀굴로 가는 길이 있습니다.>
이정표에는 ↑의상봉0.7km, 고견사0.5km↔쌀굴0.5km가 표기되었는데 쌀굴을 보는 순간 보고 싶은 충동이 발동을 합니다.
의상이 이곳에서 수도를 할 때 바위굴에서 쌀을 얻었다는 전설이 있는 쌀굴인데 가고 싶은 마음이야 굴뚝같지만 단체산행을 하는 입장에 개인행동을 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지금쯤 주차장에서는 A팀이 내려서기를 학수고대하고 있을 B팀을 생각하면 빨리 내려가야 했습니다.
방향을 바꾼 등로는 우측으로 작은 능선을 넘어서고 눈앞에는 고견사가 나타납니다.
능선에서 보면 고견사는 아늑한 분위기였으며 앞마당에 큰 은행나무가 보였는데 가조1경 안내판에서 언급한 최치원이 심었다는 은행나무 같았습니다.
사찰을 들리면 불전사물을 관찰하는 것이 우선인데 불전사물이란 범종, 법고, 운판, 목어를 뜻함인데 대부분 불전사물은 범종루에 있는데 능선을 내려서며 보니 고견사 범종루에는 범종만 있고 법고, 운판, 목어는 없으므로 고견사를 가지 않아도 될 것 같았는데 일행 누구도 사찰로 올라서는 사람이 없습니다.

<원효가 전생에 보았다고 해서 고견사로 이름 지었다는 유래를 가진 고견사의 풍경입니다.>

<고견사 앞에 있는 은행나무로 최치원이 신었다고 전해집니다.>
고견사(古見寺)!
한문을 직역하면 '오래전에 본 절'이라는 뜻으로 고견사라는 사찰의 이름은 원효가 이곳에 와서 보니 전생에 와 본 곳이라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합니다.
서둘러 고견사를 내려서 계곡 물소리를 들으며 내려서는 길 우측으로는 모노레일이 설치되어 있는데 다른 사찰과 달리 고견사는 차량이 진입할 수 없으므로 각종물품의 이동 수단으로 설치한 듯한데 사찰에서 주차장까지의 거리도 조금은 먼 1.5km나 됩니다.
계곡은 서늘한 분위기였으며 한동안 내려선 등로는 계곡을 가로지르게 되는데 이곳에서 일행은 모두 간단한 세면과 세발을 하고 하산을 재개합니다.
날머리를 지척에 두고 견암폭포를 지납니다.
직폭이라기 보다는 약간은 기운 폭포는 그 높이가 상당히 높아 보였으며 주변의 풍경은 노송과 넓직한 암릉이 어우러져 보기에 아주 좋았으며 견암폭포를 옆으로 내려서며 폭포 아래 소에 눈길이 갑니다.

<견암폭포 위 암벽 풍경을 담았습니다.>
그리 큰 소는 아니며 가깝게 접근하지 않아 그 깊이를 알 수 없었는데 견암폭포에서 떨어지는 물을 담는 소는 가조1경 안내판에서 언급한 낙화담이라는 사실을 나중에서야 알 수 있었습니다.
낙화담(落花潭)에는 미인 양씨가 순절한 곳이라고 하는데 갖가지 자료를 뒤져 보지만 미인 양씨가 누군인지 무슨 이유로 순절했는지에 대한 답을 찾을 수 없었는데 거창군청에 문의를 해보려 했는데.......

<견암폭포 상부입니다.>

<견암폭포 하부로 물을 받는 소는 낙화담이라고 하는데 미인양씨의 전설이 전해진다고....>
마음은 낙화담으로 가려고 하는데 몸은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주차장으로 향합니다.
멀지 않은 곳에 우리들의 애마가 기다리고 있었고 지루하게 A팀을 기다리던 B팀이 반겨주며 기다림이 지루해 다음부터는 A팀과 B팀을 바꿔 산행하자는 제의를 합니다.

<고견사에서 내려서 B팀이 기다리고 있는 날머리에 도착합니다.>
▶도리들머리에서 고견사주차장까지 산행거리9.87km, 산행소요시간7시간17분, 해발524m, 현재시간17시44분입니다.
◎에필로그
차가 고견사계곡을 빠져 나와 큰 도로로 올라서면서도 눈은 비계산과 우두산에서 떨어 지지 않았는데 아래서 보니 하늘로 솟은 암봉이 대단한
위용을 보였는데 우리 일행이 저런 험하고 신선이 살만한 산을 무사히 지냈다는 것이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참사랑 산악회 신임회장인 차수근님이 무사산행을 위한 말씀에 이어 건배를 제의합니다.>

<두 사람 눈빛이 누가 러브샷하라고 하지 않나? 은근히 바라다가
러브샷하라고 누군가 하자 기다렸다는 듯이 러브샷을 하는데 두사람 눈빛이 넘 사랑스러웠습니다.>
가조IC를 통해 고속도로로 올라선 차량은 예전 확장공사를 할 때와는 달리 정체가 없이 이름그대로 고속도로가 되었습니다.
어둠이 서서히 대지에 내리고 하나 둘 가로등이 켜질 무렵 한적한 외곽 멋과 맛이 공존하는 식당에서 여장을 풉니다.
신임 참사랑산악회 회장인 차수근님이 무사산행의 감사함을 전한 후 만찬이 이어집니다.
영원히 잊지 못할..............

<요 때는 아직 술이 안 취할 때이고 이 다음은 완조니 망가졌습니다.>
오늘 산행을 돌이켜 보면 모든 게 우리를 위한 최상의 조건을 갖춘 산행이었습니다.
동대구를 출발하면서 빗방울이 떨어져 약간 걱정이 되긴 했지만 산행을 하는 내내 옷이 흠뻑 젖을 정도로 비가 내리지 않았던 것도 우리를 위한 예비된 행운이고, 이로 인해 무더위와 직사광선을 쐬며 무더위와 싸우는 어려움에서 벗어날 수 있었으며 아름다운 풍경을 마음껏 조망할 수 있는 쾌감은 느낄 수 없었지만 구름의 빠른 이동으로 인한 잠깐 사이 나타났다가 사라지는 스릴과 짜릿한 풍경을 볼 수 있음이 우리에게 또 예비된 행운이었을 것입니다.
행운은 대구와 서울, 더나가서 너와 나 그리고 우리가 태고에서부터 예정되었던 인연(因緣)에서 비롯되었을 것입니다.
이러한 인연으로 여러 해를 지나며 함께 산행을 이어왔고 또 하나의 역사를 쓰며 스물네번 째 대구와 서울 합동산행을 이어갔습니다.
인연은 소중합니다.
소중한 이연이 오래도록 이어지기를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