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독립군과대구참사랑산악회 합동산행기

대구, 참사랑과 함께한 수락산 합동 산행이야기

범솥말 2026. 1. 3. 22:23

제23차 중, 21번째 서울 독립군과 대구 참사랑의 교류 산행이야기

수락산 합동산행이야기

 

산행일시: 20171022

누구와: 서울 독립군과 대구 참사랑산악회원

산행시간: 5시간40(10:00~15:40)

산행코스:덕릉고개(10:00)-도솔봉(11:10)-치마바위(11:50)-하강바위(12:30)-코끼리바위(12:55)-수락산주봉(13:20)-기차바위(13:50)-노강서원(15:40)

  

기다림이 주는 행복....

봄이 되면 열여덟살 새색시가 혼인날을 받아 놓고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보내는 듯, 가을이 되면 믿음직한 새신랑이 새롭게 맞을 신부를 손꼽아 기다리며 보내는 나날들.............

이러한 모두가 기다림이 가져다주는 행복 중 하나일 것으로 봄이면 신부의 마음으로, 가을이면 새신랑의 마음으로 살아가는 우리는 행복한 사람들입니다.

 

거친 세상을 살아가다보면 행복하고 기쁜 날들만 있는 것이 아니며 때로는 짜증나는 일들, 때로는 걱정해야할 일들이 수없이 다가오고 또 지나갑니다.

어니젤린스키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 사람은 행복하게 살아가는 방법은 언제나 당신 자신과 연애하듯 살라.” 고 제시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항상 나 자신과 연애하듯 즐겁게 살아가는 게 행복이라면 항상 자신을 반갑게 기다리고 맞아주며 살아갑시다.

 

부연하여 봄이 가고 가을이 되기까지, 가을이 가고 봄이 되기까지 신부와 신랑의 마음으로 반갑게 만나고, 맞이하는 사람들은 모두 행복한 사람일 것입니다.

 

대구팀과 서울팀의 23번째 산행 중 2회불참, 21번 째

지난 1122일은 온 세상의 기운이 수락산으로 운집한 길일이었습니다.

이른 새벽부터 대구를 출발한 대구참사랑산악회 회원들이 상계동 덕릉고개로 향하고, 서울 독립군 중 성봉현대장이 미리 마중을 나갔습니다.

서울팀 맏형인 시인마뇽선배님은 발목 부상으로, 하이맛선배님은 연이은 산행으로 합동산행을 포기하고 뒷풀이 때 만나기로 약속이 된 상황으로 저라도 일찍 나가 반갑게 맞아주었어야 하는데 야간 근무를 마치고 상계동에 도착한 시간은 약속시간보다 20여분이 지나서였습니다.

 

 

덕릉고개에서 1년만에 반가운 사람들을 만납니다.

임상택, 기경환, 권재형, 차성섭과나경숙, 박상훈과 최미예, 차수근과 박금선... 한사람 한사람 인사를 나누었는데 처음 보는 사람이 있습니다.

나중에 안 사실지만 대구에서 한의원을 운영하는 김칠*씨라고 하였으며 미모가 뛰어난 부인과 동행하였습니다.

환영합니다, 그리고 만나서 반갑습니다.

오랫동안 인연이 이어졌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그런데 반가운 얼굴이 보이지 않습니다.

참사랑산악회의 감초인 총무 박영홍과 천정미님이 개인적인 사정으로 불참했다는 소식을 접하니 두 사람 얼굴이 자꾸만 떠오르고 서운한 마음이 한동안 이어집니다.

덕릉고개 군부대 앞에서 다함께 사진을 찍고 산행이 시작됩니다.

 

 

선두와 후미 그리고 중간에 주최측인 서울팀이 안내를 하며 그동안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산행을 해야 했는데 선배님들 두 분이 산행에 참여하지 못하면서 산행이 매끄럽지 못하게 이어갑니다.

30여분이 지나 너럭바위가 있는 멋있는 전망대에 올라섭니다.

먼저 올라선 성봉현씨와 권재형씨가 발아래 펼쳐진 풍경을 보며 서울의 시가지와 불암산에 대한 궁금증을 주고받는 듯합니다.

 

 

물론 이곳에서 보는 풍경도 보기에 좋지만 조금 더 올라서 도솔봉에서는 사방이 탁 트여 이곳에 견줄 바가 아닙니다.

잠시 전망대에서 시간을 보내고 도솔봉으로 향합니다.

대구팀 차수근씨는 전망대에서 5분여 조망을 하는 사이 나름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다며 혼자 먼저 도솔봉으로 향했으니 안사람인 금선씨 무척 걱정을 하며 도솔봉으로 갑니다.

전망대를 지나 15분경 올라 도솔봉 아래 도착하고 다시 바위를 오르면 작은 오석 정상석이 있는 도솔봉입니다.

그런데 먼저 올라와 있어야할 차수근씨 모습이 보이지 않으니 금선씨 도솔봉을 오르다 정상 방향을 보고 걱정스러워 하는 모습이 낭군을 가다리다 돌로 변한 전설속의 망부석같은 모습입니다.

금선씨의 속 마음을 알 턱이 없는 일행은 도솔봉에 올라 기쁨과 즐거움을 마음껏 발산합니다.

 

 

 

도솔봉!

도솔은 불교에서 유래하는 욕계6천 중에 제4천에 해당하는 하늘이라고 하며 우주의 중심이 되는 상상의 수미산이 있다고 하는데 수미산에서 180km위에 도솔천이 있다고 하는데 도솔천의 제일 높은 도솔봉에 우리 일행이 올랐으니 참으로 대단한 역사를 쓰고 있는 것입니다.

도솔봉에서 조망은 아주 뛰어난데 이곳에서의 조망과 하강바위위에서의 조망이 거의 비슷하므로 북동에서 동쪽 방향의 산인 천마지맥에 대해서만 설명합니다.

 

 

 

 

북쪽으로는 가야할 방향으로 정상이 있고 우측으로 북동에서 동쪽으로 주금산, 철마산, 천마산으로 이어가다가 마치고개에서 잠시 숨을 죽인 능선은 다시 힘을 내 백봉산을 일으켜 세우고 계속하여 우측으로 갑산과 예봉산을 일으킨 뒤 팔당댐이 있는 남한강에서 맥을 다하니 이 능선이 천마지맥입니다.

천마지맥을 설명하다가 백봉산 아래는 무능한 조선의 왕이자 대한제국의 초대 황제인 고종과, 일본에게 나라를 빼앗기고 황제에서 이왕가(한 나라의 왕이 아닌 이씨문중의 왕)의 순종이 묻혀있는 홍유릉을 설명하며 고종이 이곳에 묻히기 위해 잔꾀를 쓴 야사를 들려줍니다.

 

 

고종께서 친행하사 결정하신 만년지지

<매일신보> 1926 6 15일자(요약편집

고종(高宗) 순종(純宗)의 금곡(金谷) 어릉(御陵)에 대하여 우리가 아직 알지 못하는 재미있는 이야기가 숨어 있는 것이니 마지막 대행의 능침을 모신 오늘에 이에 대한 소식을 삼가 기억함도 무미한 일은 아닐 것이다

고종이 죽으면 청량리 명성황후의 능침인 홍릉에 함께 묻힐 터인데 홍릉의 위치가 좋지 못하여 팔도의 유명한 지관이란 지관은 모조리 불러 능침자리를 고르라 하였으나 만년지지가 될 만한 곳이 없었다.

그러자 몇 년 뒤 명당이 없으면 이미 산소자리를 쓴 곳이라도 알아보라는 하교를 내리자 여러 지관들이 다시 대관과 문별 있는 집의 산소자리는 모조리 보았더니 태조 이성계 때 정승을 지낸 조말생(趙末生)이란 재상의 묘지가 명당이었다

이에 고종 조말생 후손을 불러 조말생의 묘터를 명성후의 능침자리로 달라하였으나 거절당하자 얼마 후에 고종이 다시 조씨 후손을 불러 "경의 선조의 묘지가 그토록 훌륭하다 하니 구경이나 가자" 하였고 조씨의 종척 몇 사람과 함께 금곡으로 친행을 한 후 "과연 명산이다, 명당이다" 칭찬하다가 "어디 이렇게 좋으나 혹 무슨 기적이 없는지 땅을 좀 파보자" 하시어 근친자들이 묘소 부근을 시험적으로 몇 자 파보았더니 아! 이것이 왠일이냐, 깊은 흙속으로부터 큰 돌이 한 개 나타났고 그 돌에는 "오백년후이조능침지지(五百年後李朝陵寢之地)"라고 뚜렷이 새겨있었다. 이것을 보옵신 고종께옵서는 "보라! 이것은 하늘의 뜻이로다, 할 수 없다, 이 자리는 짐에게 주고 그 대신 경등의 마음대로 사패지(賜牌地)를 주리라" 하시어 황명과 천명을 어기지 못하는 조씨 일가의 묘지를 전부 옮기고 금곡 명당지지는 고종이 차지하고 청량리의 홍릉을 천봉(遷奉)하게 된 것이다.

이렇게 명당자리를 잔꾀를 부려 빼앗는 데는 성공하였으나 나라는 일본에게 넘겨줄 수밖에 없는 고종의 이야기를 하며 긴 시간을 보내고 도솔봉을 내려섭니다.

오늘 산행은 산행거리가 짧아 상대적으로 쉬는 시간이 많습니다.

도솔봉을 내려서 10여분을 가니 길가 바위에 걸터앉아 눈이 빠지게 일행을 기다리는 차수근씨와 합류했는데 혼자 길을 잃고 맘편히 떡을 먹으며 쉬고 있었는데 이렇게 잘 있는 줄도 모르고 금선씨는 보이지 않는 동안 안절부절 하다가 망부석으로 변할 뻔 했습니다.

 

 

 

다시 일행이 하나가 되어 잠시 길을 이어가 경사가 제법 있는 너럭바위 앞에 섰고, 명색이 산꾼들인데 차마 우회로로 오를 수 없어, 유감없이 실력을 발휘하여 너럭바위를 치고 오르니 치마바위였습니다.

왜 치마바위냐고? 묻는다면 딱히 할 말은 없는데 아마도 너럭바위가 치마를 펼쳐 놓은듯하다고 붙여진 이름은 아닐까? 옹색하게 대답할 수밖에 없습니다.

치마바위에는 쉬고 있는 사람들이 제법 많았는데 그래서인지 사진을 찍기도 수월치 않았는데 처음 산행을 하는 김원장 싸모 한 장을 건졌습니다.

어수선한 치마바위를 내려서 마땅한 장소를 잡아 식사를 했습니다.

어제 야간 근무를 하고 산행에 임했으므로 간단히 밥만 준비를 했는데 그냥와도 대구팀이 준비를 해 걱정은 없겠지만 그래도 찬은 없어도 밥과 수저는 있어야 최소한의 체면은 유지할 것 같아서..........

미안하고 고마운 사람들입니다.

암튼 이사람, 저 사람들이 준비한 갖가지 찬으로 맛있는 식사를 할 수 있었습니다.

식사를 마치고 산행을 이어갑니다.

식사를 한 곳 바로 위에는 하강바위가 있는데 하강바위에 오르면 조망이 최고로 사방이 탁 트여 답답했던 가슴이 뻥 뚫립니다.

 

 

 

 

조망은 도솔봉에서 보는 것과 비슷하지만 더 높은 곳에서 더 멀리 볼 수 있어 좋습니다.

북쪽으로는 가야할 방향으로 정상이 있고 우측으로 천마지맥이 남쪽으로 흐르고 백봉산 뒤로는 용문산의 긴 능선이 하늘금을 이루며 남쪽으로는 팔당댐을 가운데 두고 하남 검단산에서 시작된 검단지맥은 작년 가을 비를 맞으며 산행했던 남한산성과 뒤로 성남 검단산이 능선을 이어 갑니다.

바로 앞 불암산과 우측으로 상계, 중계, 하계동의 넓은 시가지가 보이고 그 뒤로는 청계산이 희미하게 보이며 마주보고 있는 산은 대구팀이 제일 먼저 산행을 함께한 관악산이 희미하게 모습을 나타냅니다.

서편으로는 북한산의 보현봉이 능선을 이어가며 백운대로 치닫고 이내 도봉산으로 이어지고 가깝게 보이는 정상 방향으로는 단풍으로 물든 풍경이 비경을 만들고 곳곳에 있는 바위군들은 갖가지 형상을 만듭니다.

 

 

 

 

 

가까이 코끼리바위와 종바위가 있고 뒤편으로 철모바위와 배낭바위가 솟아 있습니다.

뒤이어 기경환, 임상택, 권재형이 오르고 여학생 대표로 박금선씨와 신입여학생이 올라 주변을 조망하고 포즈를 바꿔가며 추억을 만들어 봅니다.

거센 바람이 시샘을 하는지 비를 몰고 옵니다.

작년 남한산성 산행 때도 비가 와서 산행을 망쳤는데 다시 비가 많이 내릴까 걱정을 하며 조심스럽게 하강 바위를 내려섭니다.

 

 

 

하강바위를 내려서 얼마가지 않은 곳에 코끼리바위 아래 조망처로 이동했는데 많은 사람들이 모여 아름다운 풍경에 취한 듯합니다.

단체 사진을 찍고 어마어마한 바위를 갈고 닦아 갖가지 형상을 만든 신의 한수를 보며 감탄을 자아냅니다.

밀고 올라서는 사람들과 그 틈바구니를 비집고 내려서는 사람들이 실타래처럼 엉키는듯하다가 시간이 지나면 모두 해소가 됩니다.

 

 

 

코끼리바위를 지나 암릉길로 무명바위롤 오르는 사이 일행은 정상 등로로 철모바위로 향했는데 길이 엇갈리는 바람에 철모바위를 우회하여 정상으로 들어서게 됩니다.

일주일에 한 번은 산을 오르지만 대부분 혼자 오지를 다니며 하산을 완료할 때까지 단 한사람도 만나지 못하고 내려서는 게 다반사인데 산에서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무리속에 동화되어 산행을 하고 있다는 것 자체가 조금은 어색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습니다.

 

 

 

태극기가 펄럭이는 수락산 정상에 올라섰고 주변에는 많은 사람들이 운집해 있었습니다.

수락산(水落山)!

수락산의 의미는 물이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떨어진다는 뜻으로 정상 동쪽에는 수락의 의미인 옥류폭포, 금류폭포 그리고 은류폭포가 있는데 골이 깊지 않아 큰 장마가 졌을 때는 위용을 나타내지만 평소에는 건폭이거나 작은 물줄기가 폭포의 명맥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수락산은 산의 규모는 작지만 곳곳에 동물이나 그 외 갖가지 형상을 띠고 있는 바위도 많고 능선을 따라 비경을 만드는 바위능선은 설악의 한 부분을 옮긴듯합니다.

 

 

 

그러나 주변에 명산인 북한산과 도봉산이 있어 사람들의 주목을 받지 못하고 있지만 파트타임 산행을 하거나 장거리 산행을 싫어하는 사람들 사이에는 제법 인기가 있는 산이기도 합니다.

2015년 초여름 음력 보름날을 정하고 불수사도북 오산종주를 하며 이곳 수락산 정상에서 야경을 본적이 있는데 하늘에는 별들이 총총하고, 동북으로는 의정부 시내가, 남쪽으로는 노원구의 야경이 환상이었습니다.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순서를 기다려 기념촬영을 하며 시간을 보내고 이제 하산을 해야 했고 날머리를 석림사로 잡았으니 기차바위를 지나 계곡으로 내려서야합니다.

정상을 내려서 기차바위가 있는 벙커봉 한켠에서 간단히 간식을 하며 휴식을 갖고 기차바위로 이동했는데 기차바위에는 부산 모산악회에서 온 산행팀이 기차바위를 내려서고 있습니다.

비는 몇 방울 내리다 그쳤지만 비를 몰고 다니는 바람은 아주 강하게 불고 있어 하산에 집중해야했으며 부산팀이 모두 내려서기를 가다려 우리 팀이 기차바위를 내려섰는데 강한 바람속에 몸을 지탱하며 기차바위를 내려서는 스릴 만점의 시간이었습니다.

 

 

 

 

기차바위는 일명 홈통바위라고도 불리는데 40도 정도의 사면을 이루고 있는 너럭에 자로 재고 돌을 파 낸듯한 홈통이 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고, 기차바위는 긴 줄을 잡고 10여명이 올라서거나, 내려설 때의 모습이 기차를 연상 시킨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입니다.

무사히 기차바위를 내려서고 능선을 잇다가 도정봉을 오르기 전 능선안부에서 좌측 계곡을 따라 하산을 시작합니다.

 

 

 

계곡으로 들어서며 사방이 막혀 갑갑하기는 하였으나 곱게 물든 단풍나무의 단풍을 보면서 내려서는 것도 그런대로 좋았는데 능선이나 정상에서 보는 단풍은 참나무류의 단풍으로 주황색의 단풍이지만 단풍나무의 단풍은 참나무와 달리 곱고 색깔도 좋았으며 햇빛에 비치는 밝은 빛이 현란하기만 했습니다.

합수곡을 지나 건폭에 도착해 잠시 쉬어갔는데 오래전 겨울 이곳을 지날 때 온통 얼음세상으로 쩔쩔매며 이곳을 지났던 기억이 떠오릅니다.

 

 

 

건폭지대를 뒤로하고 10여분을 내려서면 석림사가 있습니다.

대웅전이라는 현판대신 큰법당이라고 건 현판이 눈에 들어왔고 범종각이 있습니다.

언제부턴가 사찰을 가면 제일 흥미있게 관찰하는 곳이 있으니 범종각인데 범종각에는 불전사물인 운판, 목어, 법고, 범종을 안치하고 있는데 모든 사찰이 불전사물이 있는 것이 아니고 제법 큰 사찰에는 불전사물이 있습니다.

일반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지 않는 불전사물에 관심을 갖는 건 사물 각각의 뜻을 지니고 있는데 운판은 하늘을 나는 모든 생물을, 목어는 수중의 모든 생물을, 법고는 지상의 모든 생물을, 그리고 범종은 만물을 깨워 세상을 밝힌다고 합니다.

 

 

석림사의 불전사물을 담고 잠시 내려서면 노강서원입니다.

노강서원은 박태보의 뜻을 기리고자 세운 서원으로 박태보는 숙종 때 사람으로 숙종이 희빈 장씨를 중전으로 앉히기 위해 인현왕후를 폐위시키자 반대하고 불복하다 죽은 사람인데 한동안 데리고 놀던 중전 장옥정이 싫증나자 장옥정을 중전에서 폐위시키고 다시 인현왕후를 복위시키게 되는데 그러고 보니 아무 죄도 없는 사람을 죽인 게 미안한 숙종이 체면치레로 세웠다고 보아야 할 것 같습니다.

노강서원을 지나치기 전 주차장이 있는데 먼저 내려선 일행과 대구에서 타고 온 미니버스가 마지막 내려서는 일행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버스에 올라 노강서원을 떠나며 뒤돌아본 수락산에는 전설속 수락의 아버지가 수락이를 애타게 부르는 소리가 환청으로 귓전을 때립니다.

수락산의 전설

옛날 수락산 자락에 사냥꾼 부부가 살고 있었는데

부인이 아이를 낳자 이름을 수락이라고 짓고 행복하게 살아오던 중 부인이 병들어 죽어 사냥꾼은 이웃에 젖동냥을 하면서 수락이를 키우며 살아갔답니다.

어느 해 이 지역에 호랑이가 자주 출몰하여 마을 사람들을 괴롭혀 외출도 못하는 처지가 되자 이 사냥꾼은 호랑이를 잡아 아기 수락이의 젖동냥에 보답한다며 호랑이 사냥에 나섰는데 이때 수락이도 함께 동행 하였고 사냥꾼은 온 산을 헤매도 호랑이는 찾지 못하였고 호랑이 발자국을 본 것이 전부였답니다.

갑자기 비가 쏟아지자 사냥꾼 부자는 동굴로 비를 피해 들어갔는데 비가 그치지 않고 계속 내리자 사냥꾼은 잠시 잠들었고 이틈에 아들 수락이가 밖으로 나갔다가 호랑이에게 잡혀갔답니다.

잠에서 깨어난 사냥꾼은 아들을 찾으려 수락이를 외치며 온 산을 헤매고 다녔지만 찾지 못하고 그만 벼랑으로 떨어져 죽고 말았는데 그 후로 비만 오면 산에서는 수락이를 찾는 사냥꾼의 절규가 이어졌고 사람들은 이때부터 이산을 수락산이라고 부르게 되었다는 전설이 전해지고 있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