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참사랑과 함께한 불곡산 합동산행이야기
제18차 서울 독립군과 대구 참사랑의 교류 산행이야기
대구 산우들과 함께 한 불곡산 산행이야기
산행일시: 2015년10월25일
누구와: 대구참사랑산악회(임상택, 권재형, 차성섭 나경숙님부부, 박영홍 천정미님부부, 차수근)
서울에서성봉현, 하이맛, 범솥말
산행거리: 약 5.5㎞
산행시간: 4시간35분(09:50~14:25)
산행코스:오산3거리들머리(09:50)-악어바위(10:35)-임꺽정봉(11:07,449.5m)-고개안부(11:30,점심식사50분)-생쥐바위-(12:35)-상투봉(12:47)-불곡산상봉(13:02,470.7m)-임꺽정생가터(13:53.20분휴식)-양주별산대놀이마당(14:25)
대중교통이용
○1호선 전철->양주역 하차->보도로 약15분 양주시청
○의정부에서 32-1. 35. 50. 51. 70. 77. 133 버스로 양주시청, 유양동, 대교아파트 하차

<이번 산행의 포토제닉은 하이멋 선배님의 악어바위 촬영모습입니다.>
산행 전 이야기
매년 봄가을이 되면 맞선을 보는 시골 처녀처럼 가슴이 설렙니다.
나이 60이 넘어 가슴이 설렌다는 말이 조금은 주책맞다는 생각이 들기는 하지만 그래도 설렘은 어찌할 수 없는 일인데 이는 대구의 산우이자 아우들을 만나기 때문인데 자주 만난다면 설레는 맘이 있을 리 만무하지만 일 년에 두 번을 만나므로 설레는 것입니다.

대구와의 합동산행은
2007년 대구 팔공산을 시작으로 서울의 관악산,
2008년 감암산과 황매산, 북한산 숨은벽
2009년 비슬산과 청룡산, 앞산, 화야산과 고동산, 뾰루봉
2010년 수도산과 양각산, 흰대미산, 북한산의 비봉, 의상능선
2011년 신불산 공룡능선, 도봉산의 포대능선, 오봉능선

2012년 가야산과 만물상능선, 인왕산과 북악산(서울도성 문화 답사)
2013년 금원산과 현성산, 마니산 (하늘재~함허동천)
2014년 보현산과 면봉산, 명성산을 산행했으며
2015년에는 봄철 황석산과 수승대에 이어 여름철에는 대구, 서울 우정산행으로 홍천 백우산을 넘어 군유동의 긴 청정 용소계곡을 함께 했고 가을철 정기 산행으로 이번 불곡산을 산행하게 되었으니 올해로 햇수로는 만 9년을 대구와 서울을 오가며 산행을 했는데 정기산행 18회, 우정산행1회로 오른 산으로는 26산을 올랐습니다.

산행을 할 때마다 대구팀은 부부팀과 화기애애한 분위기에 인원도 많이 참여하여 좋았는데 이번에는 불곡산이 별로 알려지지 않은 산, 전국구가 아니어서인지 의외로 참여한 사람들이 적이 쓸쓸했는데 그래도 참여한 사람끼리 재미있는 산행을 했지만, 만날 것이라 생각했던 그리운 사람들 중 고정 멤버인 기경환아우, 박영훈아우와 최미예님부부, 차수근아우의 안사람 박금선님 등을 보지 못해 서운함도 있었던 산행이었습니다.
이번에 참여하지 못한 산우들은 각각의 사정이 있겠지만 마음으로나마 함께 하고 다음에는 건강한 모습으로 볼 수 있기를 바라는 맘을 적어봅니다.
들머리에서 420봉 구간
불곡산은 서울근교의 산으로 설악의 한 부분을 옮겨 놓은 듯 아름다운 산으로 접근이 용이해 많은 사람들이 즐겨 찾는 산이기도 합니다.
그래서인지 들머리도 많고 따라서 날머리도 많은데 대부분 들머리는 접근성이 좋은 양주시청이 가장 선호하는 곳이며 이럴 경우 날머리는 유양동, 오산3거리 도락산, 부흥사 등으로 달리할 수 있는데 우리일행은 내려올 때를 감안해 오산3거리를 들머리로 양주시청을 날머리로 정했습니다.

<산행에 앞서 들머리에서 단체사진을 찍었습니다.>
오산3거리는 한북정맥을 답사할 때 불곡산을 내려서 산성산으로 불리는 대모산을 잇는 길목으로 개인적으로 불곡산을 여러번 산행했지만 도락산을 연계하므로 오산3거리로는 한북정맥 답사할 때 지나고 이번이 두 번째 접하는 곳입니다.
산행에 앞서 들머리에서 전체 사진을 찍고 기분 좋은 출발을 합니다.
좁을 길을 따라 오르다 보면 길은 직진 길과 우측 길로 나뉘는데 직진 길은 한북정맥 길로 군부대를 피해 약간 우회하여 임꺽정봉으로 오르는 길이며 우측으로 이어지는 길은 우리가 가야할 등산로로 악어바위가 있는 420봉 능선으로 이어지는 길입니다.
우측으로 들어서 조금을 지나면 군부대 훈련장을 가로질러 계곡을 지나 가쁜 숨을 토하며 능선으로 오르면 이정표를 만나게 되는데 이곳 이정표가 있는 능선이 420봉 주능선이 됩니다.

<너럭바위를 오르는 차회장 모습이 액숀배우같지 않나요?>
이정표를 지나 능선으로 약7~8분을 오르면 너럭바위전망대가 나오며 이곳 너럭바위전망대에서 잠시 땀을 식히며 유양동 일대와 수락산과 도봉산의 암봉이 뿌연 하늘로 솟구친 풍경을 조망할 수 있으며 너럭바위 전망대를 지나 조금 오르면 불곡산의 명물들이 숨어 있는 곳으로 불곡산을 대표할 수 있는 악어바위가 있는 곳 악어가 사는 곳으로 통상 사람들은 420봉 능선을 악어바위능선이라고 부릅니다.
가파른 경사지를 오르다 보면 앞이 꽉 막힌 기분에서 위를 바라보면 전방 대포부대에서 적군을 향해 대포머리를 들고 있는 듯한 바위가 보입니다.

<불곡산 남근바위서 포즈를 취했습니다.>
이 바위가 불곡산 남근바위인데 일반적으로 남근바위는 하늘을 향해 서있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불곡산 남근바위는 하늘을 향해 수직으로 선 것이 아닌 수평을 이루고 있는 군대말로 거총 자세입니다. 선두는 그대로 지나고 잘 생긴 아우 재형이가 남근바위로 기어올라 거친 바위를 부여잡았고 이어서 저와 성봉현 아우가 남근바위로 올라섰습니다.
측면의 모습을 담아보려 했는데 측면에서는 남근바위의 위용을 느낄 수 없었으며 그나마도 소나무가 가리고 낭떠러지기가 있어 별로 재미와 소득을 올리지 못했습니다.
남근바위를 지나 다른 팀 여러 명이 쉬고 있는 소나무 쉼터를 지나니 선두팀은 벌써 복주머니 바위 아래까지 올라섰습니다.

<몇몇 암벽 오르는 모습을 찍었는데 권재형 사진이 어색함이 없는 포즈로 제일 으뜸이었습니다.>

<복주머니 바위와 임상택 대장을 찍을 때 꼽사리 끼었습니다.>

<악어바위로 접근하는 크레바스로 권재형이 안전사고가 일어날 뻔 했던 곳입니다.>
긴 로프를 타고 오른 차성섭회장 부부는 하늘을 향해 스틱을 세우며 즐거움을 만끽하고 있습니다.
순서를 기다려 로프에 몸을 의지하고 팔에 힘을 주며 위험지대를 오르고 이제는 한숨을 돌리나 했더니 악어바위로 가는 길은 순탄치만은 않았으니 복주머니바위를 우회하는 암릉길 사면은 큰 크레바스가 있어 조심스럽게 지나긴 했지만 안전사고가 발생할 여지가 많은 곳이며 또한 겨울철 눈이 내린 후에는 아주 조심해야할 곳이기도 합니다.
크레바스를 지나면 불곡산의 최고 명물이 악어가 사는 곳입니다.
악어는 열대지방이나 아열대지방에서 주로 서식하고 있는데 불곡산은 아열대 기후도 아닌데 악어가 살고 있으며 아열대지방의 악어는 동물의 왕국에서 본 것 같이 사슴이나 얼룩말이나 사슴, 오리 등을 잡아먹고 사는데 반해 불곡산 악어는 이슬만 먹고살아 악어계에서는 신선에 속하는 악어입니다. 또 하나 기록적인 것은 악어는 약70년을 산다고 하는데 불곡산 악어는 이미 살아온 햇수만도 헤아릴 수 없이 긴긴 시간에 수 천 년을 이곳에서 살며 불곡산을 지키고 있는데 이정도면 불곡산 산신령으로 등극하지 않았을까? 생각이 됩니다.

<이 사진이 포토제닉 우수작으로 표제사진을 정할 때 고민했었습니다.>

<지난번에 보지 못해서인지 얼굴을 보는 순간 넘 반가웠지요.>

<뒤로 보이는 대형 바위 우측에 악어가 살고 있습니다.>
먼저 올라선 생택아우 좀 기다리면 되지 빨리 올라오라고 성화를 해대니 성화를 이기지 못하고 포토죤으로 들어서니 한사람씩 악어와 조우를 하며 기념촬영을 하며 제법 긴 시간을 악어와 보내고 먼저 올라선 일행을 따라 악어바위를 뒤로합니다.
악어바위를 막 지나면 큰 바위가 앞을 막고 있는데 이곳이 신선대인데 신선대는 2년제 대학도 아니고 4년제 대학교도 아닌 신선이 바둑을 두면 놀던 신선들의 놀이터인데 길은 좌측으로 우회를 하며 경사진 오름길은 안전을 위해 로프가 설치되어 있으므로 조심해서 오르면 쉽게 오를 수 있는 구간입니다.

<신선대 우회구간인데 우리팀 정도면 안전로프가 없어고 전혀 지장이 없을 것입니다, 안그래요? 대박~.>

<신선대를 우회하며 바라본 임꺽정봉의 풍경입니다.>
뒤에 성봉현, 권재형 두 아우를 세우고 신선대를 우회하여 지났는데 곧 뒤따라 와야 할 두 아우가 안보이더니 오후! 통재라~~~ 산행대장 허락도 받지 않고 두 아우가 신선대를 올랐네~~~
그런데 신선대 남측에서는 쉽게 오를 수 있지만 북쪽으로 내려서는 곳은 사고가 빈발하는 곳인데 불안한 마음이 앞서니 다시 원점으로 회귀해 안전하게 내려오라고 외치니 망설이던 재형아우가 주변 나무로 뛰어서 이동했는데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습니다.

<코끼리바위로 오르는 너럭바위전망대에서 바라본 풍경으로 신선대와 뒤로 유양동과 백석읍이 보입니다.>
마치 하늘다람쥐가 나무에서 나무로 비행하는 것처럼 하늘을 가르며 안전하게 안착을 했지만 작은 실수가 따른다면 나무에 걸리며 바위로 떨어질 수 있는 상황이었으니 이 광경은 지금 생각하는 것으로도 몸서리쳐집니다. 이후 산행의 귀재인 성봉현아우 마저 쩔쩔매다가 권재형아우의 도움을 받고 무사히 내려서긴 했지만 이런 행동은 없어야 하며 다시 한 번 이런 행동을 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신선대를 지나면 암릉 오르막이 이어지는데 스텐레스 스틸로 지주대를 세우고 로프를 설치해 안전하게 오를 수 있는 구간이며 이 구간을 오르며 뒤돌아보면 한북정맥의 능선을 굽어볼 수 있으며 수락산과 도봉산 그리고 유양동과 백섭읍내를 한눈에 볼 수 있고 북쪽으로 고개를 돌리면 붉게 물들어 가는 단풍과 흰 암벽이 조화를 이루고 있는 임꺽정봉의 멋진 풍경을 볼 수 있으며 동쪽으로 고개를 돌리면 불곡산 정상의 풍경이 가까이 다가와 있음을 느낄 수 있습니다.
너럭바위 전망대를 지나면 또 하나의 명물인 코끼리 바위가 있는데 악어처럼 온전하지는 않지만 그런대로 잘 생긴 넘인데 가까이에 있는 악어와 절친인가 봅니다.

<잘생긴 얼굴과 좋은 매너 거기다 멋진 코끼리까지 정미님은 복터졌다.>
이리저리 자리를 옮겨가며 제일 잘 잡히는 방향을 잡고 월척을 낚은 낚시꾼 마냥 소리를 질러대는 상택아우, 오늘은 참석하지 못한 경환아우가 왔더라면 코끼리 머리위에 부처처럼 좌정하고 사진을 찍지는 않았을까?..........
그래도 총무 대박이가 있어 늘 재미있습니다.
코끼리 코를 움켜쥐고 떨어지지 않으려고 포즈가 웃음이 저절로 나옵니다.
경사진 암릉길을 오르느라 고생한 대가로 명물바위에서 웃으며 시간을 보낼 수 있는 보상을 받고 다시 420봉으로 조금 오르면 또 하나의 명물이 있으니 공기돌 바위입니다. 어찌 보면 해골바위같이 보이는 공기돌바위는 대형 바위 위 약간 굴곡진 곳에 자리를 잡고 있는데 경사가 심해 굴러 떨어질 것 같기도 한데 무게 중심을 잘 잡아서인지 굳굳하게 서있습니다.

<어이~, 아래쪽에서 밀다가 돌 구르면 그대로 가는거야, 위쪽에서 아랫쪽으로 밀아야지~~~>

<한쌍의 선남선녀의 모습이 보기에 좋습니다.>

<나는 얘 이렇게 하늘을 날고싶어~~~>
다가서는 사람마다 있는 힘을 다해 밀어보지만 흔들바위가 아니 공기돌바위가 움직일리 없는데 이 바위의 기원은 조선조 명종 때 의적이라는 칭호가 붙은 임꺽정장군이 심심할 때 이곳에 올라와 공기놀이하던 돌인데 그렇다면 공기돌은 5개인데 나머지 4개는 어디에 있단말인가?
밑으로 떨어져 졌을까?
아니면 가지고 다니다가 다른 곳에 버렸을까? 그것이 알고 싶을 뿐입니다.
공기돌바위를 지나 다시 오르막 암릉 구간을 지나면 420봉 정상이며 이곳에서 좌측으로 5분 거리에 임꺽정봉이 있고 우측에는 최종 목적지인 정상이 있으니 우선 임꺽정봉을 갔다가 다시 420봉으로 되돌아 와야 하는 코스를 잡았으므로 좌측 길로 들어서 임꺽정봉으로 향합니다.
임꺽정봉에서
잠시 내려섰다가 암릉을 다시 오르는 길로 길은 좁고 오르고 내려오는 사람들이 많으니 정체가 이루어지므로 한 팀이 모두 하행을 하거나 상행이 끝나야 다른 팀이 지날 수 있는 길이지만 가까운 이동으로 어렵지 않게 오를 수 있었습니다.

<임꺽정봉을 오르는 중 간이 전망대에서 옛날 애인을 생각하며............>

<차화장님은 보면 볼 수록 진국인 것 같고 볼 수록 터프가이같습니다.>
임꺽정봉!
많은 이름 중에 왜 임꺽정이라는 고유명사를 사용해 봉우리 이름을 지었을까? 이러한 의문은 임꺽정 봉 정상에 있는 안내문을 보면 조금은 풀릴 수 있는데 안내문은 이러합니다.
임꺽정봉
불곡산의 3번째 봉우리인 이곳을 일명 임꺽정봉이라 부르고 있다.
양주 유양리는 임꺽정의 태생지 등 많은 전설 등 임꺽정과 관련된 일화가 구전으로 전해 내려오는 지역이다.
이 주위의 골짜기는 청송(靑松)골(소나무가 많아 붙인 이름), 청소(靑笑)골(소나무가 웃는다하여 붙인 이름), 천연(天然)골(자연이 아름답다하여 붙인 이름), 천(天)골(골짜기가 많아 붙인 이름) 등 여러 가지 이름이 남아 전해진다.
이곳 지명과 소설 속 임꺽정의 소굴인 “청석골”과 유사하여 이를 연관지어 말하는 구민들도 있다. 이 지방에서 백정의 자식으로 태어난 임꺽정은 조선시대 홍길동, 장길산과 함께 3대 의적을 꼽히고 있다.
조선 명종 때 약 3년간에 걸쳐 황해도를 중심으로 평안도, 강원도, 경기도, 충청도 지방까지 활동했던 도척의 우두머리로 조선왕조실록에 등장하는 실존 인물로 소설 속의 인물, 괴력을 지닌 전설적인 인물로 더욱 익숙해 있으며 천대받던 백정의 신분으로 당시 집권세력의 탄압 등 사회적 모순 속에 살아 남기위해 도적이 될 수밖에 없었던 그를 한낱 도적의 괴수로 서가 아니라 영국의 로빈훗과 같이 민중에게 대리만족을 시켜준 의적으로 기억하고 있다.
임꺽정은 일반 도적의 무리와 달리 조직적인 집단을 형성하여 엄청난 세력을 갖추었으며 조정에서는 체제 유지의 불안을 느껴 그를 체포하기 위해 온갖 노력을 다 하였으나 신출귀몰한 그의 행적과 그를 옹호하는 민중의 도움속에서 남치근에게 체포될 때 까지 무려 3년이나 걸렸다고 한다.
분명 임꺽정은 도적의 무리입니다, 하지만 조선조 때나 지금도 임꺽정을 도적이라 해서 나쁜 사람이라 하던가 사회악이라 치부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는데 이는 당시의 양반가나 세도가의 갑질로 살아가기 힘든 시대를 대변하는 사건으로 임꺽정은 도적이기는 하지만 양민들의 재산을 빼앗아 온 권력양반이나 탐관오리 등의 재물을 털어 살기 힘든 양민들에게 나누어 주었으니 도적이 아닌 의적으로 영웅시되었다고 볼 수 있는 대목입니다.

<다들 미소띤 얼굴인데 딱 두사람만 불만이 많은지 미소를 띠지 않았네요>
임꺽정!!!
분명 임꺽정은 시대를 잘못타고 태어난 역사의 희생물이며 지금 세상에 태어났다면 어떠한 단체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유능한 리더가 될 수 있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우리가 올라선 임꺽정봉에는 의외로 사람들이 적었는데 조금 전 줄지어 한 팀이 내려와서 인듯했으며 서둘러 단체 사진을 찍고 사방을 둘러보고 한북정맥이 이어지는 암봉 전망대로 이동하기로 합니다.
임꺽정봉 정상석이 있는 곳에서는 조망이 없고 사방이 꽉 막혀버렸고 서쪽으로 긴의자가 있는 곳에서 노송 사이로 올라선 능선과 능선을 따라 붉게 물들어가는 단풍은 보기가 좋으며 유양동과 백석읍을 시원스럽게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임꺽정봉에서 암봉 전망대 방향으로 조금 이동하면 임꺽정봉 전망대가 있으며 정상방향을 제외한 모든 방향을 제대로 조망할 수 있습니다.
마주보고 있는 도락산과 그 사이 광백저수지와 암릉 전망대 주변을 비롯해 백석읍 일대, 그리고 수락산과 도봉산을 여과 없이 불 수 있으며 한강봉에서 이어가는 감악지맥의 산줄기를 따라가다 보면 북쪽으로 우뚝 솟은 감악산이 눈에 들어옵니다.

<이번 대구 부부팀으로 사람도 좋고 배경도 좋고, 대박이 봐라 그새 못참아 껴앉고 찍냐?>

<좌측은 미쓰 경남 진 출신이고, 우측은 미쓰 대구 진 출신이지요?>
이곳 전망대에서 암봉 전망대 방향으로 붉게 물들어가는 단풍과 암봉이 어우러진 풍경이 보기에 아름답고 암봉 전망대위에는 오산3거리에서 정맥길을 따라 이곳으로 오르는 사람들이 모여 있습니다. 우리 일행은 암봉 전망대를 갔다가 올 예정이었는데 멋진 풍경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다보니 카메라에 풍광을 담고 단체사진을 찍은 뒤 암봉 전망대 본 것으로 다녀온 것을 대신하기로 하고 다시 임꺽정봉을 지나 420봉으로 발길을 돌립니다.
임꺽정봉에서 상봉 구간
잠시 후 다시 420봉으로 왔고 420봉에서 V계곡 안부로 내려서는 곳은 로프가 설치되어 있는 릿찌 구간으로 길이 좁아 항상 정체가 되는 곳입니다.
오늘도 주일을 맞아 불곡산을 찾은 많은 산님들로 이 구간은 계속 붐비고 있었는데 420봉에서 1차 경사진 로프 구간을 내려서면 또 하나의 불곡산 명물이 있는데 물개바위입니다. 멀리서 보면 물개의 형상을 느낄 수 있는데 가까이서 보면 생김이 썩 잘 생기지는 않았는데 그래도 사진을 찍기에는 제격으로 차성섭회장과 권재형아우가 말 타는 기마자세로 포즈를 취해봅니다.

<악어를 따라왔다가 길을 잃고 이곳에 눌러 앉았다는 전설의 물개바위입니다.>
실제로 오늘은 속도산행이 아니고 즐기는 산행으로 곳곳에서 많은 시간을 할애해 즐거운 시간을 가지며 여유 있게 이동하는 건 거리가 짧아서 일찍 산행을 마치고 창덕궁 안내를 계획했는데 대구 산행대장 상택아우가 고궁답사에 취미가 없는지 단칼에 거부하니 급하게 서둘 필요를 느끼지 못해서 더 그러했습니다. 물개바위에서 시간을 보내며 느낀 것인데 이 물개는 몇 천 년 전에 악어를 따라 불곡산에 왔다가 돌아가지 않고 이곳에 둥지를 틀고 있는 모양입니다.
물개바위를 뒤로하고 내려서는 릿찌 구간은 북적거리고 오르고 내리는 사람들도 많고 중간중간 대기하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악어바위에서 V계곡으로 내려서는 암릉 로프구간을 내려섭니다.>
우리 팀 중 누군가 길을 트고 다른 사람들이 중간에 끼지 못하게 날쌔게 로프를 잡고 이어져 생각보다 시간을 많이 걸리지 않고 안부로 내려설 수 있었는데 내려선 구간을 뒤돌아보면 곳곳에 사람들이 붙어있으며 산행이 서툰 여자들의 괴성도 끈이질 않습니다.
무사히 V계곡 안부로 내려섰고 남은 거리와 하산 후 식사를 생각하여 좀 이른 점심을 먹기로 하고 알맞은 식사터를 잡습니다.

<이곳에서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누면 긴 점심식사를 했습니다.>
불곡산은 바위산이기는 하지만 식사를 할 만한 곳은 사방에 널려있어 알맞은 곳을 잡고 점심상을 펼쳤는데 늘 느끼는 것인데 대구팀들은 꾀나 잘해먹고 사는지 만날 때마다 진수성찬입니다, ‘가던 날이 장날‘ 이라는 속담처럼 모처럼 대구팀과 산행을 하는 이때 집사람이 여행을 떠나 반찬은 달랑 김 하나에 밥만 준비해왔는데 이럴 줄 미리 알았는지 대구 팀이 준비해 온 찬이 너무 많고 맛깔이 있어 식사 시간 내내 즐거웠으며 식사시간은 평소 2배에 가까운 50분이나 걸렸는데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며 즐거운 시간이었습니다.
식사를 마치고 다시 상투봉으로 향했습니다,

<상투봉 너럭바위 구간을 오르며 임꺽정봉을 배경으로 포즈를 취했습니다.>

<엄마가슴바위라고 하네요, 하도 빠대서 흰색으로 변했습니다. 뒤에 보이는 산은 도락산이구요.>
가던 길은 암릉 로프 구간과 우회길로 갈리는데 맨 앞서서 암릉 구간으로 올라섰는데 뒤따라 와야 할 일행들은 우회길로 들어섰는지 보이지 않더니 잠시 후 상택아우와 재형아우만 모습이 보였는데 다른 사람들은 위험하고 힘든 너럭바위 규간을 오르지 말고 우회길로 갈 것을 지시했다고 하는데 이러한 결정은 아주 중요한 생쥐바위와 엄마가슴바위를 보지 못하고 지나치는 결과를 초래하게 되었습니다.

<생쥐바위에서 건너편을 본 풍경인데
오래전에는 이런 사다리계단이 여러 곳에 있었는데 지금은 이곳이 유일한 것 같습니다.>

<생쥐바위로 앞 사다기 계단 부근에서 찍어야 제 모습이 보입니다.>

<생쥐바위에서 상투봉을 오르는 암릉구간으로 안전시설이 설치되어 있습니다.>

<상투봉 직전 고래등처럼 생긴 너럭바위 구간입니다.>
3명만이 상투봉 오름길의 명물인 생쥐바위와 엄마가슴바위를 돌아보고 이어지는 너럭바위 구간을 지났는데 이곳 너럭바위 구간도 참으로 시원스럽고 볼거리가 많은 곳으로 가야할 구간과 지나온 구간을 볼 수 있으며 덕정일대의 모습도 볼 수 있는 구간입니다. 우리 3명이 너럭바위를 지나는데 상투봉 정상에서는 차성섭 아우를 비롯한 일행들이 상투봉에서 기념사진을 찍으며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고 뒤 이어 상투봉에서 일행과 합류 합니다.

<상투봉에서 포즈를 취해봅니다.>
상투봉!
상투봉 정상석 옆에는 어찌 보면 상투머리에 망건을 쓴 것처럼 생긴 바위가 있는데 이 바위에서 상투봉이 유래한 것은 아닌가 생각되는데 이 봉은 다른 방향에서 보면 시루처럼 생겼다고 해서 시루봉이라고도 부른다고 합니다.
상투봉이 되던 시루봉이 되던 예전에는 봉우리 이름을 몰랐었는데 어느날 상봉과 함께 상투봉이라는 정상석이 생겼는데 어떠한 문헌에 의해 봉우리 이름이 생겼는지는 알 수가 없습니다.
정상이 가까워서인지 상투봉에는 사람들이 제법 북적거렸고 짬을 내어 대충 사진 한 장을 걸치고 오래 머물 수가 없어 상투봉을 내려서 상봉으로 향합니다.

<해 맑게 웃는 모습으로 보아 오늘 산행에 만족하신가 봅니다. 미쓰대구 진>
상봉은 상투봉에서 그리 멀지 않은데 예전에는 상봉을 오르는데 위험도 따르고 힘들게 올라야 했었는데 10여 년 전쯤 계단을 설치해 안전하게 오를 수 있도록 도모했는데 계단 아래로는 옛길의 흔적을 볼 수 있었는데 이러한 옛길을 보자 아주 오래전 동네산악회를 만들어 이곳을 자주 왔던 기억이 새삼 떠올랐습니다. 옛 추억을 상기하며 추억이 서려있는 상봉 오름길을 따라 상봉으로 오릅니다,

<상봉을 오르며 뒤돌아본 풍경으로 상투봉 위 바위가 망건이나 상투처럼 보입니까?>

<♭ ♬♩♪♪♩♩♬♩♩♪♩♪♪♬~~~~ 그냥 좋다는 얘깁니다.>
상봉 바위절벽 아래는 평지대로 예전부터 이곳이 식사터였는데 오늘도 어김없이 넓은 공간을 꽉 메운 산님들이 즐거운 점심을 해결하고 있습니다.
마지막 바위를 우회하며 올랐던 위험구간도 데크로드가 설치되어 위험이라고는 전혀 없어 손쉽게 상봉에 올라설 수 있으므로 데크로드를 따라 올라선 곳 바로 불곡산 정상인 상봉입니다.
상봉에서 놀이마당 구간
불곡산 상봉!
상봉은 불곡산에서 제일 높은 봉우리에서 비롯한 것 같다는 생각이며 동쪽인 산북동 쪽에서 보면 투구처럼 생겼다해서 투구봉이라 부르기도 했다는 설도 있으며 산명에 대해서도 전에는 불곡산과 불국산을 혼용해 사용하기도 했는데 요즘은 대부분 불국산으로 부르고 있습니다.

<빙고~~~ 불곡산 정상에서 모두 일치되었습니다, 모두 빙그레 미소띤 얼굴로................ >
불국산과 불곡산으로 혼용하여 부르는 것은 1530년대에 제작된 신증동국여지승람과 1760년대에 제작된 해동지도와 1861년에 제작된 대동여지도에는 불곡산(佛谷山)으로 표기되어 있고, 1761년대에 제작된 여지도서에는 불국산(佛國山)으로, 1842년에 제작된 양주목읍지에는 1792년 정조가 이곳을 행차한 후 옥류산(玉流山)이라는 이름을 내렸다는 기록도 있다고 합니다.
불곡산이란 산명의 유래는 예전에 회양목이 많아 겨울철이면 빨갛게 물든다 하여 붙여진 데서 유래되었다는 설이 전해지고 있는데 지금은 회양목이 거의 다 사라지고, 295m봉 서쪽 능선 등지에 소규모의 자생지가 남아 있다고 합니다.

<아이구 조아라~~~ 표현을 합니다, 기분 졸땐 이렇게>

<상봉에서 친구끼리 상봉한 장면이고 뒤에 보이는 산은 좌측이 감악산, 중간이 마차산, 우측이 소요산입니다.>

<상봉을 내려서며 바라본 풍경입니다.>
상봉에 수많았던 사람들은 점심식사 시간이 되어서 주변으로 흩어져서인지 생각보다 많지 않아 여유를 가지고 단체로 기념촬영도하고 희미하게 보이는 능선을 따라 한북정맥 길을 그려보며 시간을 보냅니다. 그렇게 한동안 상봉에서 시간을 보내고 목책계단을 따라 내려서면 불곡산 마지막 명물이 펭귄바위를 만날 수 있습니다.
남극에서 왔는지 북극에서 왔는지 고향이 확실치 않은 이 녀석에게 먼저 다가간 재형아우가 물어보았더니 아마도 남극 세종기지에서 살다 온 것 같다고 하는데 이 녀석이 이곳에 정착한 이후 수 천 년이 지난 후 이 녀석의 고향에 우리나라가 남극에 세종기지를 세운 듯합니다.

<펭귄바위에서, 그런데 좌측에 있는 이 사람은 왜 여기서 있대????>

<나도 웃고 펭귄도 웃고 뒤로 보이는 도봉산도 웃고.......... >

<사방이 모두 즐거운 식사시간입니다,
혼자 산행을 하면서 이런 곳을 지날 때는 막걸리 한잔 얻어마시고 가는데..... >
펭귄바위를 내려서면 쉼터에 여러 팀들이 넓은 쉼터를 꽉 메우고 막걸리 한잔을 걸치며 즐거운 식사시간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쉼터를 지나 조금을 가면 제5보루 전망대가 있는데 양주시청을 들머리로 삼을 경우 제5보루 절벽지대에 설치한 안전로프를 잡고 올라서 이곳 전망대에서 의정부와 백석, 그리고 수락산과 도봉산을 조망하며 흐르는 땀을 식히는 곳인데 역으로 산행을 하니 이미 상봉에서 주변의 조망을 끝낸터라 재5보루 전망대에서 사방을 둘러 볼일이 없어졌습니다.

<제5보루 전망대로 좌측은 낭떠러지기가 있는 옛길이고 우측은 최근에 설치한 안전 계단입니다>
그리고 전에 없던 데크계단을 설치해 이 계단을 통해 오르고 내림을 하니 절벽지대를 지나는 위험 또한 없어졌습니다.
이곳을 지나며 이제 남은 건 양주시청에서 기다리고 있는 차수근 아우를 빨리 만나 이제까지 버스 안에서 기다려준 대가로 시원한 맥주에 저녁 식사를 하는 것이었습니다.
제5보루를 지나고 이어서 십자로 안부를 지나 능선 포장마차를 조금 내려선 지점에서 급한 마음에 좌측으로 이어지는 길을 그만 놓치고 우측으로 들어서 3보루를 지나 임꺽정 생가터로 들어서게 되었습니다. 3보루까지 내려서다 양주시청 능선으로 가기위해 능선으로 되돌아 갈 수도 없는 입장이었고 임꺽정 생가터는 저도 아직은 미답으로 길을 잘 못 들고도 그리 기분 나쁘지 않았습니다.

<생가터에서, 고증을 거쳐 초막이라도 지었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생가터에는 초막의 흔적도 없으며 2000년도에 세운 3~4m되는 커다란 생가터를 알리는 비가 세워져 있고 아래에는 경민대학교와 숙명여자대학교 교수의 이름으로 임꺽정에 대한 글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글의 내용은 안내판에 있는 내용으로 명종실록의 글을 실었습니다.
명종16년10월6일
『나라에 올바른 정치가 없으면 가르침이 밝지 못하고 재상들의 횡포와 수령들의 사나움이 백성들의 살과 뼈를 깎고 피를 말려 손발을 둘
곳이 없고 호소할 곳도 없다, 추위와 굶주림이 절박하여 하루도 살기 어려워서 잠시라도 연명하고자 도적이 된다. 도적이 된 원인은
정치를 잘못하여서이지 그들의 죄가 아니다.』라고 하여 그들의 죄가 아님을 밝히고 있다.
우리는 이 글을 볼 때 어쩜 460여 년 전의 정치형태와 지금이 그리도 비슷할까? 하는 생각을 해 볼 수 있습니다. 그러고 보면 지금의 정치를 한다는 사람들은 국가를 위한 정치가 아닌 평민들의 골수를 빼먹는 기생충 같은 사람들일 것이라는 생각을 해 봅니다.
상택아우, “할아버지 옛 집터에 들렸으니 술 한 잔 안하고 갈 수 있겠나?” 그런 의미로 20여분 잔디밭에서 편히 쉬어 갑니다.
생가터를 나와 가까운 곳에 양주 별산대놀이 마당이 있는데 가는 길이 막혔는데 재형아우와 차회장은 산길을 따라 놀이마당으로 향하고 나머지는 사유지로 들어서 허름한 대문 옆으로 빠져나와 유양동 놀이마당으로 들어섰고 놀이마당에서 차회장과 재형아우를 재화허며 산행의 종지부를 찍습니다.
놀이마당이 있는 유양리(유양동) 마을의 유래에 대해서는 몇 가지 설이 있는데갑설에 의하면 조선초기 이 마을 출신 인물이 중국에 사신으로 갔다가 중국의 유양리라는 곳을 들렸는데 그곳이 흡사 자신의 고향과 비슷하다고 느꼈고 이후 자신의 고향을 유양리로 부르게 되었다는 설이 전한다고 합니다.

<무형문화재 제2호인 양주 별산대놀이 중 잠시 휴식시간입니다.>
놀이마당에서는 장단에 맞춰 국가 무형문화재 제2호인 양주 별산대놀이를 한창 연습을 하다가 우리가 들어선 뒤로 휴식을 취하는지 중지되었고 중지된 별산대놀이 재개하지 않으니 시간이 많지 않아 인내로 버틸 수가 없어 놀이마당을 뒤로하고 호출한 버스에 승차했고 우리를 실은 버스는 의정부를 지나 송추로 힘차게 달려갔습니다.
거기서 우리는 즐거운 시간을 가졌습니다.
이렇게.....................

<통큰 미쓰 경남 진 정미님은 러브 샷도 병째입니다.>

<백두대간을 마치므로 1대간 구정맥 완주패를 전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