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독립군과대구참사랑산악회 합동산행기

대구, 참사랑과 함께한 백우산 보너스 합동산행이야기

범솥말 2026. 1. 3. 12:37

제17차 서울 독립군과 대구 참사랑의 교류 산행이야기

비정규 산행으로 백우산과 용소계곡에서 즐기다

 

산행일시: 20141015

누구와: 시인마뇽,하이맛, 성봉현, 대구참사랑산악회 그리고 나

산행거리:  13

산행시간: 6시간 25(10:40~17:05)

산행코스:가족고개(10:40)-전망대(11:57)-백우산정산(12:07,894.7m)-내촌면갈림3거리에서식사-

십자로4거리(13:10)-군유동(13:58)-계곡쉼터물가(14:10~14:46)-작은너래소(14:51)-큰너래소(14:57)

-거북바위와노송(15:30)-하늘벽(15:40)-아치교(16:28)-장여울(17:05)

 

 

산행 전 이야기

인간이 살아가는 곳 어디에서나 설화가 전해내려 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며 인간이 사는 곳이란 아프리카에서부터 아메리카 그리고 아시아 대륙을 통 털어 포함된 것이며 학자들의 논문에 의하면 전혀 문화적으로 교류가 없는 지구의 극과 극의 곳에서 아주 흡사한 설화가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설화에는 신화, 전설 그리고 민담이 있다고 합니다.

신화는 아득한 옛적부터 전해 오는 이야기로 그 주역이 초월적인 존재나 신이고 그 서술내용을 실증할 수 없는 특징을 지닌다는 것입니다.

이 때문에 신화는 옛날이야기의 범주에만 들어 있을 수는 없는데 신화는 대부분 건국신화로 우리나라의 건국신화에는 환웅이 웅녀와 혼인하여 낳은 단군이 평양에 나라를 세웠으니 곧 조선이라 했고 고구려의 주몽은 하늘의 신인 해모수와 강물의 신인 하백의 딸 유화 사이에서 알로 태어나 짐승과 새들의 보호를 받았고 그 어머니 알을 싸서 따뜻한 곳에 두었는데 알 속에서 한 아기가 태어났다는 고구려의 주몽신화와 이밖에도 알속에서 깨어난 신라의 박혁거세와 가락국의 수로왕 신화 등이 있습니다.

또한 민담은 사람과 사람들 사이에 떠도는 소문으로 설화의 하위 범주로서 신화나 전설은 진실성이 문제되는데 반하여 민담은 진실성이 문제되지 않는 공상에 찬 허구로 어린이들이 좋아하는 옛날이야기라고 합니다.

예를 들면 열두고개를 넘을 때 마다 호랑이가 나타나서 떡 하나 주면 안 잡아먹지~~ 이런 거 있지 않습니까?

전설은 어떨까요? 전설은 방송매체를 통해 많이 보아온 전설의 고향이 있습니다.

전설이란? 민담과 달리 증거물이 남아 있다는 것이 특징으로 예를 들면 바위에서 쌀이 나왔다는 가지산 쌀바위의 전설, 조선판 노아의 방주 때 배를 매었다는 방태산의 배달은석, 구렁이에게 죽을 처지에 놓인 꿩을 살려준 은인에 대한 보답으로 죽음을 감수했다는 치악산 상원사의 범종 등등이 있습니다.

서두에 이러한 설화로 풀어가는 건 가족고개에서 전망대로 향하며 시인마뇽선배님과의 이러한 설화에 대한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산행을 했었는데 이러한 설화로 테마를 잡아본 것입니다.

왜냐하면 시인마뇽선배님과 짜고 친 고스톱도 아닌데 우리가 가는 계곡이 용소계곡인데 용소계곡에는 용에 대한 전설을 지니고 있는 용소가 있는데 이러합니다.

『옛날에 이 계곡 큰 웅덩이에 용이 살고 있었는데 때가 되어 하늘로 승천을 하고 있는데 동네 아낙이 아궁이에 불을 때다가 이 광경을 목격하고 부지깽이로 용을 가르치며 “용이 하늘로 올라간다.” 고 하자 부정이 타 용이 떨어졌고 용이 떨어지며 큰 웅덩이가 파였다고 하는데 이 웅덩이가 바로 용소라고 한다.』

이런 전설과 비슷한 이야기는 우리나라 전역 곳곳에서 들을 수 있는데 꼭 다른 곳의 전설을 카피 또는 표절한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는데 시인마뇽선배님의 말씀에 의하면 이러한 전설은 우리와 전혀 관계가 없는 외국 촌락과 비슷한 전설도 있다고 합니다.

 

 

2005년 어느 날 한북정맥이 계기가 되어 대구와 서울 산꾼들이 교류산행을 하게 되었으니 올해로 10년째를 맞습니다.

매년 봄철 대구팀이 서울팀이 가고자 하는 남쪽의 산을 안내해주고 가을철 에는 대구팀이 가고자 하는 북쪽의 산을 안내해 주는 정기산행이 이루어지고 있는데 이번 산행은 서울~대구 정기산행이 아니고 대구참사랑산악회 정기산행을 먼 홍천으로 잡게 되었고 서울팀이 우정산행을 한 것입니다.

백우산(白羽山)은 필자가 작년10월 단풍이 물들어 가던 때 혼자 산행을 하며 홍천9경에 들어 있는 용소계곡을 걸으며 여름철 백팻스노클링을 하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고 대구참사랑산악회에게 용소계곡트래킹을 제안했고 이 제안을 받아 들여 오늘 산행을 하게 되었습니다. 

 

가족고개에서 정상으로 가는 길

0930분 홍천 철정휴게소에서 대구팀을 만나 합류하여 내촌면을 지나 가족고개로 향했습니다.

백우산 산행들머리는 면소재지인 도관리 큰골을 지나 지골로 잡는 경우와 가족고개로 잡는 경우가 있는데 대부분 90%는 가족고개로 들머리를 잡습니다.

가족하면 패밀리를 연상시킬 수 있는데 여기서 뜻하는 가족이란 패밀리가 아니 고개 너머에 있는 가족마을의 이름을 따서 붙인 지명이라고 하는데 가족(可足)이란 ()히 살만 한 곳()이다.’ 라는 뜻이라는 주장과 올바른 사람만이 발을 들여 놓은 수 있는 곳 이라는 주장도 있습니다.

가족고개에 도착해 간단히 산행차림을 한 후 다 함께 안내판이 있는 들머리에서 단체사진을 찍은 후 백우산 산행이 시작됩니다.

<가족고개들머리에서 안내도를 보며 무사산행을 빌어봅니다.>

이정표에 의하면 가족고개에서 정상까지는 3.7km이며 고개까지 올라왔으므로 고도차도 300m가 안되므로 힘들지 않은 편이고 백우산 산행이 이어 용소계곡 트래킹이 있으므로 많은 산악회에서 이곳을 찾는데 오늘은 몇 팀이 선답했는지 모르겠으나 조금 전 우리보다 먼저 오른 팀이 있었습니다.

들머리에서 30분을 올라 쉼터에서 흩어져 있는 대원들이 한곳에 모여 간식을 하며 간단히 휴식을 취합니다.

 

<전망대로 가는 길 중간 쉼터에서 잠시 숨을 돌리니다.>

대구팀 전회장인 경환아우의 컨디션이 아주 안 좋아보였는데 모든 게 귀찮은지 말도 없고 얼굴도 붉고 애써 참는 모습이 안쓰러워 보였는데 그렇다고 내가 대신해 줄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잠시 휴식을 끝내고 선발진이 떠나고 후미에서 시인마뇽선배님과 천천히 이런 저런 산 이야기와 설화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서두에 기록한 전설 등에 대한 이야기며 여유로운 산행을 이어갔습니다.

가족고개에서 정상으로 가면서 이곳까지는 특정한 지형지물이 하나도 없으며 잡목으로 인해 주변의 조망도 전혀 트이지 않았으며 능선을 이어갈 뿐이다.

쉼터에서 2번 짧은 급경사를 치고 올라 30여분을 지나니 앞서간 일행들이 한곳에 모여 쉬고 있었는데백우산의 전망대입니다.

 

<전망대에 도착해 배낭을 내리고 잠시 휴식을 갖습니다.>

큰 바위로 되어 있는 전망대 절벽 쪽으로는 안전을 위한 목책이 설치되어 있으며 전망대에서 아래를 보면 내촌면사무소가 있는 도관리 일대가 한눈에 들어오며 뒤편으로 한강기맥 능선이 하늘금을 긋고 있는데 시인마뇽선배님과 기맥능선의 위치파악을 해보지만 정확한 위치를 알 수가 없었는데 나중에 파악한결과 맨 우측 보이는 산이 명산100산에 포함된 공작산이며 좌측으로 대학산 운무산 덕고산 등이 능선이 하늘금을 긋고 있습니다.

시원한 바람을 쐬며 쉬는 동안 선발진은 정상으로 향합니다.

백우산 정상은 전망대에서 멀지 않아 나뭇가지 사이로 가깝게 보이므로 전망대에서 숨을 돌린 후 서둘러 시인마뇽선배님과 뒤를 따랐고 5분여지나 백우산 정상에 올랐습니다.

 

<정상에 도착해 13명 전원이 기념으로 인증사진을 찍었습니다.>

정상에서 다른 산악회에서 먼저 올라온 사람들이 평평하고 그늘진 자리를 잡고 때 이른 점심을 하고 있었고 많은 사람들이 술 한 잔 걸치며 산행에 대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습니다.

 

정상에서 군넘이로 가는 길

백우산(白羽山)!

백우산은 흰백(), 깃우()를 쓰는 산으로 산 이름만으로도 흰 학을 연상시킬 수 있는데 백우산의 유래에 대해서는홍천군지에는 예로부터 이 산의 형체가 흰 학이 날아가는 것과 같다하여 백우산으로 불리었다고 하며강원도 땅이름에는 면소재지인 도관리 북쪽 3km지점에 위치한 895m의 산으로 형상이 백학(白鶴)의 날개를 펼친 형상과 같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고 기록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정상에는 먼저 온 다른팀이 좋은 장소를 선점했습니다.>

<백우산은 기억할 겁니다. 우리들이 이곳에 왔다 갔음을.....>

정상에는 가장 높은 곳에 정상석이 설치되어 있으며 바로 옆에 삼각점이 있고 정상석 뒤로는 작은 바위가 있고 약간 우측으로는 정상이정표가 서있으며 이정표 우측은 100여평 정도 되는 넓은 정상쉼터가 조성되어 있으며 쉼터에는 통나무 의자가 여러 개 있고 통나무 긴의자도 2개가 있습니다.

정상에는 우리보다 먼저와 넓은 공간을 차지하고 있는 산악회가 있었으며 2%라는 산악회는 선두 2명이 먼저 도착해 있었습니다.

점심을 먹으며 막걸리 한잔을 기울이고 있는 사람들을 지나며 막걸리 한잔을 얻어 마시고 갈까? 하는 생각이었는데 정상석을 에워싼 우리 팀이 전체 사진을 찍기 위해 대기 상태로 기웃거리는 필자에게 빨리 오라고 소리를 지르는 통에 막걸리 한잔은 날아가 버리고 함께 어우러져 사진을 찍었습니다.

 

<늦게 남은 선배님과 정상에서 함 박았습니다.>

<정상을 내려서다 그래도 아쉬워 대박이 마지막을 장식합니다.>

이제 정상에 막 도착해 단체 사진 3장을 찍었는데 선발대는 한참을 대기해서인지 막 바로 하산을 하니 몇몇이 남아 몇 장의 사진을 찍고 로프가 설치된 길을 따라 내려서는 길에서 맞은편 매봉이 나뭇가지 사이로 보였는데 우리팀은 매봉을 갈 것인지 아직은 미정입니다.

조심스럽게 로프를 잡고 400m를 내려서면 3거리 이정표가 있는데 좌측으로는 내촌->큰골-> 지골->배골을 통해 이곳 3거리로 이어지는 길이지만 지골에서 십자로4거리로 오르므로 이곳으로 오르는 사람들은 극히 적습니다.

 

<배골3거리 이정표에서 인증사진을 찍고 갑니다.>

<산행에서 모니모니해도 점심시간이 제일 즐겁습니다.>

이곳을 막 지나면 우측에 작은 공터가 있는데 먼저 내려선 우리 팀이 이곳에서 식사를 하고 간다며 상을 차리고 있습니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라는 속담처럼 먹는다는 것은 기분 좋은 일입니다.

대구팀이 정성을 들여 만든 먹거리를 바라바리 싸왔으니 매번 식사를 할 때마다 괜히 미안한 생각이 들었는데 식판이 넓고 크므로 건너편에 있는 음식은 눈으로 구경만 할 뿐 먹지 못하는 것이 많았습니다.

하이맛선배님이 가지고 온 와인을 시작으로 소주 몇 잔을 걸쳤는데 나중에는 운전을 해야 하므로 술은 낮 산행시간에만 할 수 있으니 주는 술을 마다하지 않고 주고 받다보니 제법 취기가 돌았고 여러분들이 가지고 온 맛있는 반찬과 경환아우가 준비해온 전으로 배를 채우니 등 따싯하고 배가 부르니 남부러울 것이 하나도 없다.’는 말처럼 마냥 좋았습니다.

길어도 무방할 산상의 만찬은 30여분으로 끝이 나고 다시 산행으로 이어갑니다.

 

<십자로 안부에 도착했는데 매봉은 생략하고 막바로 하산을 합니다.>

평지 같은 능선길을 따라 5분여를 지나면 지골에서 올라오는 길과 만나는 십자로사거리에 닿게 되는데 이곳에는 인천에서 왔다는 산악회가 터를 잡고 휴식을 취하고 있었는데 이 팀은 내촌면 사무소가 있는 도관리에서 올라 왔다고 합니다.

이곳 십자로 사거리에서 동으로 백우산정상, 서로는 매봉이, 남으로는 내촌면사무소가, 그리고 북으로는 가야할 군유동과 용소계곡이 있습니다.

매봉은 이곳에서 10분 정도의 거리에 있어 개인적으로 가야하는데 우리 팀들은 아무도 매봉을 가는 사람들이 없으므로 바로 굼넘이로 내려섭니다.

이정표에 의하면 굼넘이까지 2.1km로 계곡으로 이어졌으며 낙엽송지대와 잣나무지대를 지나며 계곡으로 습한 지역이어서 관중이나 고사리 종류인 양치류가 많이 서식하고 있으며 야생화로는 산수국이 많고 산작약이나 용담 등도 볼 수가 있는 곳인데 단체로 지나는 관계로 꽃들을 찾아볼 겨를이 없었습니다.

한동안 이끼낀 계곡을 따라 내려섰고 굼넘이를 약300m 남기고 무명폭포를 만나는데 얼듯 보면 하나의 폭포로 보는데 자세히 보면 3단폭포입니다.

 

<무명폭포에 도착을 했습니다. 3단폭포로 1단폭포입니다.>

< 2단폭포입니다.>

 <3단폭포입니다.>

맨 위 폭포는 미흡하기는 하지만 폭포로서의 모든 조건을 갖춘 폭포로 낙차를 일으키는 석벽과 크고 깊은 소는 아니지만 자그만 소까지 갖추어서 여름철 산꾼들의 피로를 덜어주기에 충분하며 1단폭포 아래로 이어진 2개의 폭포가 더 있는데 2단폭포나 3단폭포는 1단폭포보다 위용이 떨어지는 편이며 소를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폭포의 이름이 있지는 않을까? 해서 작년 이곳을 지나며 만났던 이 마을 터줏대감이라는 황병익 선생을 만나 폭포의 이름이 있는지 물어본 적이 있는데 폭포의 이름이 없다고 대답한 적이 있습니다.

 

<굼넘이 마을 정자에 도착합니다.>

3단폭포를 지나 조금을 내려서면 작은 와폭이 있는데 내려선 다른 팀 5~6명이 쉬고 있는 모습이 보입니다.

와폭을 지나 숲을 빠져나와 내려서면 군유동, 옛 이름으로 굼넘이마을이며 내려선 곳에는 작은 정자가 있습니다.

 

군넘이와 용소계곡이야기

정자에는 우리 일행이 모두 휴식을 취하고 있었고 60대중반 낯선 여자분이 있었는데 정자가 있는 곳 밭주인이냐?”고 물으니 맞다.”고 하였는데 그렇다면 작년에 만나 대화를 나누었던 황병익 선생의 부인이 되는 사람이었고 대화중에 정자 옆 들깨가 무성히 자란곳에 염소가 있었다고 하자 물 건너편으로 염소막을 옮겼다.”고 합니다.

정자 옆 냇가에는 누군가 캔으로 물레방아를 만들어 놓았는데 그칠줄 모르고 돌고 있었고 황병익선생의 부인되는 분은 물가가 좋아 손자들이 놀러와 만들어 놓았다고 계곡 자랑을 합니다.

 

<용소계곡 안내판 앞 낯선 여자분이 정자의 주인인 황병익선생의 부인입니다.>

용소계곡은 물이 맑고 긴 청정의 계곡이 홍천9경 중 7경에 해당하는 곳으로 1997년부터 2000년까지 4년동안 일반인들의 출입이 통제되고 자연환경 보호구역으로 관리되어 왔고 거듭된 수해로 옛길이 유실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전 구간 탐방이 어려웠기 때문에 사람의 손때가 묻지 않은 만큼 자연 그대로의 모습을 지니고 있는 곳이었다고 하는데 최근 들어 등산인과 백팻스노클링을 즐기는 사람들에게 알려지면서 많은 사람들이 찾는 곳으로 점차 찾는 사람들이 늘어가고 있다고 합니다.

그런가 하면 신라의 멸망을 눈물로 달래며 이곳을 지났다는 마의태자의 슬픔과 아픔이 서려있는 계곡이기도 합니다.

이곳의 동네 이름은 군유동이며 옛 지명은 군넘이입니다.

군유동의 군()은 임금 군이며, ()는 떠다니는 풀을 의미하는데 마의태자가 이곳을 지날 때 풀로 수레를 덮어 위장을 하고 지났다는 유래에서 비롯된 마을이름이 군유동이며 옛 지명 군넘이도 이와 같은 뜻으로 임금이 넘었던 곳이라는 유래를 가지고 있다고 하는 것이 조부 때부터 이 마을을 떠나지 않고 살고 있다는 마을 토박이 황병익선생의 말씀입니다.

굼넘이 마을을 가로지르며 흐르는 계곡, 바로 용소계곡입니다.

 

<청정의 용소계곡으로 단풍이 물들면 더욱 아름다움을 발 할 것입니다.>

홍천 용소계곡은 내촌면 광암리에서 발원해 두촌면 괘석리를 거쳐 천현리에 이르는 10의 계곡으로 맑은 물과 기암괴석이 조화롭게 펼쳐져 있는 곳으로 백담계곡에 버금간다는 계곡으로 등산인들에게는 크게 각광을 받는데 이는 인제 아침가리골계곡 트래킹과 함께 계곡트래킹의 명소로 신종 레포츠로 불리는 백팩 스노클링이 가능하다는 것인데 백팩 스노클링이란 배낭을 메고 계곡 트레킹을 즐기다 스노클링이 적합한 곳을 만나게 되면 물속으로 그대로 뛰어드는 레포츠로 더위를 시켜가며 산행을 할 수 있는 곳이라고 합니다.

계곡의 이름이 된 용소는 가족고개에서 광암리로 내려서며 만나는 용소계곡에 광암교가 있으며 광암교에서 군유동 방향으로 내려오다 깊은 소가 있는데 이 소가 용소라고 하는데 필자도 미답인 상태이며 이 용소에는 서두에 소개했던 용과 소에 대한 전설이 전하고 있습니다.

암튼 용이 하늘로 오르다 부정이 타서 떨어져 생겨났다는 용소를 품은 용소계곡트래킹이나 스노클링을 직접 체험하기 위해 정자를 뒤로하고 계곡으로 내려섭니다.

 

용소계곡에서 추억 만들기

작년에 이곳을 왔을 때는 황병익선생님을 만나 용소계곡과 관련한 옛이야기와 옛 지명 등을 들으며 시간을 보낸 적이 있었는데 오늘은 황선생님은 보지 못했지만 그분의 부인되는 분을 보고 가니 부부 두 분을 모두 본 셈입니다.

원두막에 황선생님 부인되시는 분만 남기고 우리 일행들이 정자를 떠나 너래소로 향하는 길가 아래 모든 대원들의 이동 및 컨트롤을 맡고 있는 상택아우는 정자에서 노닥거릴 시간이 아까웠는지 일찌감치 계곡에 몸을 담갔는데 작년 이곳을 지날 때 보아둔 좋은 곳이 있어 상택아우를 불러 우리 팀 모두 물놀이를 할 수 있는 장소로 이동을 합니다.

내려서는 곳 명당자리에 다른 2팀이 자리를 잡았고 우리 일행은 작은 너래소를 조금 못 간 지점 나무그늘이 있는 안전지대로 내려섭니다.

일착으로 상택아우가 물에 뛰어들었고 차례로 회장 성섭아우, 수근아우와 함께 차씨형제 싸모가 물로 뛰어 들었고 상훈아우, 영홍아우는 물로 뛰어들었지만 상훈아우 꺼님과 영홍아우 꺼님은 끝까지 품위유지를 위해 물에 몸을 담그지 않습니다.

선배인 시인마뇽, 하이맛 두선배님도 물속으로 몸을 담그고 술이나 취해야 정도를 벗어난 행동을 하는 봉현아우도 상택아우의 부름을 받고 몸을 적시며 흥겨운 시간을 보냈는데 그늘진 한 켠에 팀원들이 노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는 사람이 있었으니 경환아우였는데 너무 안쓰러웠습니다.

저토록 몸이 아프고 힘든데 집에서 푹 쉬지..... 암튼 안됐고 측은해 보였습니다.

대학교수는 어떤 사람이고 어떤 행동을 하며 살아갈까?

전에는 잘 알지 못했는데 대학교수도 우리와 같은 행동을 하며 살아가고 물에서의 행동도 우리들과 다를 바 없었습니다.

시인선배님은 물에서도 품위?를 지키는 것 같았는데 하이맛 선배님은 어린애처럼 물위에 몸을 맡기며 물길을 따라 둥둥 떠내려가는 모습이.... 울산대학 게시판에 올려볼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종합해보면 이러합니다.

품위유지 상---1등 기경환, 2등 영홍아우꺼, 3등 상훈아우꺼

<옥경이두 엄는대 물에 들가면 모하나? 폼생몸사가 내 신조인데.... 경환이 1등>

<아~ 나두 물에 들가 개셤이라두 처야하는데 보는 눈이 마나서...... 그래 정미씨 2등이다.>

<나두 들가 망가지고 시픈대 둘다 망가질 수가 업써서... 미예씨3등 먹었다.>

왕창 망가진 상---1등 하이맛선배님, 2등 상훈아우, 3등 영홍아우

<나 이러고 있는거 보는 사람 업겠찌---지가 찍었시유 울산대 게시판에 올릴라구요>

<난 너무 망가져서 지쳤씨유---상훈이 2등이야>

<지친대다가 술머긍게 무치 쓰데이---영홍이 3등>

제일 신난다 상---1등 회장차성섭, 2등 상택아우, 3등 수근아우

<물놀이 왔씀 재밌게 놀아야지요--- 멋졌어, 1등이야>

<봉현아~ 보지만 말구 니두 해보래이... 재밌나? 2등이다>

<와~ 신난다. 형 물에 잡쳐너니까 죽겠대요... 알았어 3등이야>

품위유지하며 신난상---1등 수근아우꺼, 2등성섭아우꺼, 3등 봉현아우

<아이 조아라~~~ 하이파이브하며...공동1위입니다.>

<할만한겨? 쑷쑤러운데 재미있네... 3등했어>

놀고싶은데 체면땜에 못논 상---시인마뇽선배님

<뒤에서 쳐다 보고 있어서 못하겠어... 체면이 몬대>

나무아미타불상---차수근

<물속 와불이라고 들어 보셨남요>

재미있었던 놀이였습니다.

제가 백팻 스노클링을 처음 접한 것은 4년전 방태산 아침가리골을 트래킹 하면서였습니다.

당시 여러 차례 물을 건너며 물속으로 잠수도 하고 깊은 소에서 수영도 하고는 했는데 오늘은 물도 얕고 아는 사람들이라 체면도 걸리고 해서 물놀이를 제대로 못했는데 아마도 경환아우가 물에 들어갔더라면 어거지라도 물에 집어넣었을 것 같은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물가에 도착해 물에 들어갈 준비를 합니다.>

<물에 들어서 물싸움이 시작되었습니다.>

용소계곡도 백팻스노클링하기 좋은 곳이기는 하지만 아침가리골과는 차이가 있는데 아침가리골은 계곡을 가운데 두고 수없이 계곡을 건너고 다시 되돌아 건너기를 반복하며 트래킹하기 때문에 어느새 옷이 젖어 버리고 그러면 왕창 망가져 완전히 물속으로 잠수하며 놀게 되는데 비해 용소계곡은 계곡을 가로지르는 것이 마지막 아치교를 건너는 것이 유일한 것이고 트래킹하는 동안 계곡 좌측에 있는 길을 통해 계곡을 따라 가는 것이기 때문에 마음 먹고 잠수를 해야 합니다.

 

<시인선배님이 이때까지는 체면을 유지하고 있지만 곧 망가집니다.>

<체면을 유지하며 물놀이에 열중입니다.>

<헤헤~  니 노는 거 보니 애들같이 순진한 면이 있다? 라고 생각...>

암튼 재미있고 즐거운 물놀이를 마치고 산행채비를 재정비 하고 다시 계곡트래킹으로 이어집니다.

등로로 들어서 약4분을 지나면 작은 너래소가 있는데 실제로 이곳에서 물놀이를 하려고 생각했었는데 그늘이 적어 이곳을 택하지 않았는데 이곳도 아주 안전하고 경관과 풍경이 멋을 갖춘 곳이며 특히 가을철 작은 너래소와 단풍이 물든 계곡을 카메라에 담으면 최고의 풍경이 되는 곳입니다.

 

<어딜가나? 일와 함 더 빠뜨리게 회장왈->재한테 잡히면 죽는다.>

<수중회담? 저러면서 '쉬'하는거 아냐???? >

<이제는 우리가 ♬♩떠나가야 할시간♪♩♬♩.....>

작은 너래소에서 내려서는 계곡은 크게 반원을 그리며 내달리는데 등산로는 계곡에서 조금 위쪽으로 함께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며 이어지는데 길은 암릉과 오르내림이 지속되며 군너미 방향으로 계곡의 풍경이 장관입니다.

계곡을 따라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며 가다보면 작은 안내판이 있는 큰 너래소에 닿게 되는데 큰너래소에서 단체 사진을 찍으려 후미가 오기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좋은 배경으로 사진을 찍기 위해 상택아우의 헌신적인 희생으로 무릎까지 차오르는 물속에서 기다리고 있으니 이렇게 미안할 수가..............

그렇게 큰너래소에서 좋은 추억을 담아보았다.

 

<작은 너래소입니다. 정비를 안 해 퇴적 모래가 쌓여 소를 거의 메꾸었습니다.>

<큰너래소의 소앞에 섰습니다.>

<큰너래소에서 화이팅 한번하고 갑니다.>

너래소는 너래+소를 합친 합성어로 너래란? 평평하고 넓은 바위를 뜻하는 강원도 사투리라고 하며 소()못이나 늪을 뜻하므로 작은 너래소와 큰너래소는 평평하고 넓은 바위와 어우러진 못이 있다는 뜻으로 지나온 작은 너래소도 그랬지만 큰너래소는 너래바위도 크고 넓기도 하지만 소는 물이 푸른 것으로 보아 2~3m는 될 것 같았는데 앞서 언급했던 황병익선생의 말에 의하면 아주 오래전 홍수가 났을 때 동네 사람 7명이 소를 몰고 이곳을 건너다 모두 물에 빠져 죽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고 했으니 허튼 이야기는 아닐 듯싶었습니다.

일행이 먼저 가고 난 큰너래소에서 성봉현아우와 큰 너럭바위와 넓은 소를 감상했는데 검푸른 소위에, 너럭바위 위를 흐르는 물위에 가을단풍이 비치면 더욱더 보기가 좋았을 텐데 아직 단풍이 들기까지는 시간이 필요했고 우리 일행은 그 시간을 맞출 수 없었습니다.

 

계곡을 따라 걷는 길

큰 너래소에서 계곡과 못, 그리고 산천이 어우러진 풍광을 보고 다시 등산로로 복귀해 앞서간 일행 뒤를 쫓습니다.

큰 너래소를 지나면 계곡과 등산로는 조금 거리를 두고 이어지므로 물에 들어가기는 그리 쉽지 않았고흐르는 물소리를 들으며 큰 너래소에서 5분을 지나면 계곡 가운데 아주 큰 사각바위가 있으며 이곳을 지나면 물가와 떨어져 등산로가 구비치는 계곡을 따라 이어지며 성봉현아우와 시인마뇽선배님과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25분을 지나 거북바위와 노송 안내판이 있는 곳에 도착합니다.

앞서 선배님이 간 자리에 봉현아우와 거북바위와 노송 안내판에서 몇 장의 사진을 찍으며 거북바위를 찾아 보지만 알 수가 없었는데 지난해 거북바위를 찾느라 물가로 내려서 계곡 주변에 있는 바위들을 유심히 관찰해 봤지만 당시에도 악어와 같은 바위는 있었는데 거북을 닮은 바위는 작은 바위가 있었는데 여기서 뜻하는 거북바위가 아닌 것 같았습니다.

 

<용소계곡 유일한 안전 로프지대를 지납니다.>

거북바위에서 등산로를 따라 조금 내려서면 물길이 구비쳐 돌아가는 곳으로 이곳은 위험한 곳으로 유일하게 안전로프를 설치한 곳으로 조심스럽게 지나고 계곡을 가까이에 두고 이어가던 등산로는 잠시 거리를 벌리고 참나무와 잡목이 있는 숲을 지나고 땅위에는 앉은뱅이 산죽이 잠시 나타나고 평탄한 길을 지나다 안내판을 만나는데 이곳이 하늘벽으로 거북바위 명소에서 8분 거리입니다.

하늘벽 명소는 등산로에서 고도는 큰 차이가 없지만 거리는 조금 떨어져 있는데 지난해에는 가던 길을 멈추고 하늘벽을 찾아 나섰지만 오늘은 일행들과 함께 나선 길이라 그럴만한 여유가 없습니다.

하늘벽을 벗어나 등산로를 따라 가며 보는 풍경은 참으로 아름다웠는데 더구나 여름철 많은 사람들이 모여 아수라장을 방불케 하는 시끄러운 계곡이 아니라 여유로운 산행과 계곡 트래킹을 할 수 있어서입니다.

 

<용소계곡 숲길을 지나고 있습니다.>

이렇게 여유로운 길을 걷다보면 사유지에 닿게 되는데 이곳에 마의태자가 망국의 한을 품고 금강산을 갈때 용소계곡을 지났다는 안내문이 세워져 있는데 제대로 관리를 하지 않고 있습니다.

길가 잡풀이 무성한 길을 지나며 우측으로 농장이 보이고 괘석리 3츨 석탑과 절터가 있으며 농장 한쪽에서는 누군가 야생화에 접사카메라를 들이대고 열심히 사진을 찍는 모습이 포착되었는데 작품을 만들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좌측으로는 용소계곡 하류에 처음 민가를 만날 수 있으며 이곳을 지나 용소숲길 안내판을 지나고 다시 5분 정도 가면 계곡은 또 다시 우측으로 방향을 바꾸며 좌측으로 높은 직벽을 지나 다시 계곡물과 가까운 거리에서 등산로는 평행을 그리며 이어지고 잠시 지루한 산행이 이어지다가 계곡 물가에서 휴식을 취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더니 멀리 아치교가 보입니다.

지난해 이곳을 지날 때 다리 공사를 하는 것을 보았는데 어느새 완공이 되고 예쁜 아치교가 되었습니다.

 

<아치교를 건너며 후미 팀이 추억을 담았습니다.>

<작년 다리공사를 하는 중이었는데 어느새 아치교가 들어 섰습니다.>

다리 위를 건너며 기념사진을 찍으며 추억을 만들고 다리를 건너 200m지나면 민박 팬션과 음식점이 있어 이곳에 우리의 버스가 대기하나 싶었는데 버스는 보이지 않습니다.

포장도로를 따라 지루하게 노송이 있는 곳, 다리를 다시 가로지르고 계곡을 따라 포장도로를 걸어 높지 않은 고개를 넘으며 계곡은 멀어졌고 경사진 길을 따라 내려서며 농사를 짓는 원주민들의 민가가 보이는 곳에서 지쳐가는 우리 일행을 태우러 좁은 길로 들어서는 버스를 만납니다.

 

이 후

버스는 경수교가 있는 곳으로 갔습니다.

경로당 옆 공터에서 먼저 도착한 일행들이 저녁 식사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전자에도 논한 것처럼 대구팀과 한 자리에 앉으면 작게만 느껴지는데 이번에도 서울팀을 더욱더 작게 만들었습니다. 

토종닭을 초벌로 익혀 가져와 기사선생님께서 우리가 산행하는 사이 신경을 써 주셨습니다.

 

<산행을 마치고 즐거운 시간, 수고들 했습니다.>

감사한 마음으로 고마운 마음으로 잘 먹고 즐거운 하루였으나 이러한 먹거리를 준비하는 과정은 많은 수고와 노력, 그리고 무엇을 어떻게 할까? 하는 고심과 정성이 깃든 먹거리였습니다.

운전 때문에 술을 마실 수 없었지만 고마운 정성을 담은 식사를 맛나게 했으며 감사했던 시간이었습니다.

또 하나 뜻하지 않은 손님이 있습니다.

산에 대해 여암선생 못지않은 열정을 가지고 있는 신경수씨와의 만남이었습니다. 지난번 성봉현아우가 신경수씨를 초빙할까?하는 이야기를 했을 때 대단한 분이 우리가 초대한다고 올까? 하는 반신반의했는데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왔습니다.

대구팀들이야 상택아우나 재형아우 이외는 신경수라는 존재에 대해 별 관심을 갖지 않겠지만 오늘날 지맥, 단맥, 무명 산들에 대한 개척산행은 대부분 우리 앞에 함께한 신경수씨에 의한 것입니다.

그렇게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시간이 흘렀고 갈 길이 먼 대구팀과 아쉬운 작별을 하였습니다.

 

<신경수님입니다. 더 이상의 수식어가 필요없습니다, 산길 개척자 >

이후 신경수씨와 함께 홍천 시내의 한 치킨집에서 생맥주를 기울이며 2시간 정도 시간을 보내며 산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거만할 줄 알았던 선입견과는 달리 아주 털털하고 숨김없고, 어쩌면 순진하게만 보였습니다.

대구의 반가운 아우들의 얼굴도 보고 대구 사과를 먹고 자라 고운피부, 고운얼굴을 가진 미인들도 보고 산의 대가 신경수님도 보고 아우들과 선배님들의 망가진 모습도 보고 즐겁고 재미있는 하루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