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독립군과대구참사랑산악회 합동산행기

대구, 참사랑과 함께한 금원산 합동 산행이야기

범솥말 2026. 1. 3. 11:40

제12차 서울 독립군과 대구 참사랑의 교류 산행이야기

현성산과 금원산 연계산행기

 

산행일시: 2013년04월 28일

누구와: 서울독립군과 대구참사랑산악회원과 함께

산행거리: 약 11.4㎞

산행시간: 7시간 13분(10:57~18:10)

산행코스:미폭(10:57)-현성산정상(12:17,965m,20분휴식)-점심40분-서문가바위(13:42,961m)-976봉삼거리(14:00)-금원산(16:20,1352.5m)-동봉(16:33,1349m)-유안청폭포(17:35)-자운폭포(17:53)-휴양림관리사무소앞(18:10)

 

 

산행 전 이야기

지난 4월19일 일간지에는 미국 항공우주국에서 우주 공간에 있는 슈퍼지구를 발견했다는 기사를 보았습니다.

슈퍼지구라고 부르는 것은 지구의 크기보다 1.6배가 크며 공전주기가 365일인 지구에 비해 빠른 122.4일이라고 하는데 생명체가 살 수 있을 만한 환경을 갖춘 행성이라는 점인데 이 기사를 보고 놀란 것은 슈퍼지구의 발견도 아니고 생명체가 살 수 있는 환경도 아닌 그 행성의 거리인 것이었습니다.

우리가 사는 지구에서 1.200광년이나 되는 거리에 위치하고 있다는 것인데 1/1.200광년도 아니고 1초에 지구를 7바퀴반이나 돌 수 있는 빛의 속도로 1.200년을 가야 도달할 수 있다는 이야기였습니다.

이번 대구 산우들과 산행을 하고 난 뒤 갑자기 전에 읽었던 기사가 생각이 났는데 1.200광년에 대한 거리와 도달의 개념을 생각하며 1년에 2번을 만나는 우리 서울과 대구의 산우들의 만남을 행성에 비교 또는 대합시킨다면 6개월이란 시간은 만났다가 뒤돌아서며 다시 만나는 것과도 비교되지 않은 정도의 시간으로 순간이나 찰라에 불과하다는 시간임을 깨달을 수 있었는데 그런 측면에서 본다면 설레는 초심으로 돌아가 즐겁게 살면서 만나면 반가움을 서로 느끼고 산행의 맛을 흠뻑 느껴야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동대구를 빠져나가 한동안 88고속도로를 달리던 차량이 어느 휴게소에 주차를 하고 아침식사를 했습니다.

전에는 새벽같이 식사를 하고 내려가 다른 사람들이 아침식사를 할 때 구경만 했었기에 이번에는 아침을 먹지 않고 내려왔기 때문에 시장하던 차에 아침으로 국수를 맛있게 먹었는데 그날 준비하느라 수고가 많았는데 잘 먹었다는 인사도 제대로 못했나봅니다.

정말로 잘 먹었습니다. 꺼억~~~

 

미폭 들머리에서

차량이 거창을 들어서면서 각자 옛 추억이 생각나나 봅니다.

고향이 거창이거나 백두대간을 하면서 이곳 거창에서 묵고 서흥버스를 타고 아니면 히치를 하고 빼재로 갔던 기억을 되살리며........

하지만 저는 대간을 할 때도 산악회를 통해 덕유산을 지났기 때문에 거창 시내를 지나기는 이번이 처음이어서 새로운 추억을 만들며 시내를 지났고 차량이 지나는 곳 좌우를 살피며 다음에 찾게 될지 모르는 의상봉이며 장군봉을 눈여겨보며 금원산 계곡으로 빠져들어 갔습니다.

계곡으로 한동안 들어가다 차가 멈춘 곳은 거대한 폭포가 있는 도로가 바로 미폭이었는데 물이 적은 것이 흠이란 생각을 했는데 입간판에는 미폭에 대한 설명을 읽어보고야 물이 많았다면 미폭이라는 이름을 갖지 못했을 것을 알았는데 이렇게 설명하고 있었습니다.

 

미폭과 철죽

미폭(米瀑)의 유래

쌀미(米)자를 쓰는 폭포인 미폭은 물 흐르는 모습이 쌀을 이르는 듯 보이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라고 하며 미폭 이외에 동암폭포라고도 불린다는데 이는 이 폭포위에 동암사라는 절이 있었는데 동암사에서 쌀을 씻으면 쌀뜨물이 항상 이 폭포를 타고 흐르므로 쌀 이는 폭포 또는 동암폭포라고 불리게 되었다고 합니다.

산행채비를 마치고 일행이 다 함께 단체사진으로 즐거운 산행을 시작합니다.

미폭 우측을 들머리로 정하고 한동안을 가파른 길을 따라 오르니 잡목사이의 우측으로는 경사를 이루며 큰 암반이 자리하고 있는데 바위 가운데는 이름모를 나무에 꽃을 피우고 있었으며 바로 밑으로는 바위에 뿌리를 내리고 소담스럽게 꽃을 피운 철쭉이 있었는데 현성산신이 정성을 들여 키운 분재같다는 생각을 하며 지납니다.

 

명품분재 꽃나무

철쭉을 보고 10분도 채 못가 우측 바위사면 위쪽으로는 무명의 바위가 있었는데 강화 보문사 뒤에는 이와 유사한 대형바위가 있고 가평 운악산에는 작은 바위가 있는데 모두 이름은 눈썹바위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는데 어쩌면 이 바위도 작은 눈썹바위라는 애칭을 주고 싶었습니다.

작은 눈썹바위에서 차성섭 회장님과 5분여를 더 올라가다 말발도리를 만났는데 이놈은 바위 틈새에 뿌리를 박고 꽃을 피웠는데 어찌 살아갈 수 있는지 참 궁금하다는 생각을 하며 카메라에 담고 5분정도 오르니 이번에는 전망대가 나옵니다.

 

전망대에선 미스 대구 진선미

이곳 전망대에서는 거창 위천면 상천리 일대의 마을과 들판이 한눈에 들어오고 가야할 정상방향으로 마치 불암산 정상 같은 전위봉이 위용을 드러내고 전위봉 뒤 좌편으로 현성산 정상이 맛배기로 조금 머리를 내밀고 있는 모습이 들어옵니다.

뒤따라 오르는 일행들과 이곳에서 멋진 포즈를 취하며 사진을 한 장씩 찍고 다시 전위봉으로 오릅니다.

 

명품바위 전시장을 지나며

봉우리 통째가 대형 바위로 이루어져 있어 오르는 길은 나무계단을 설치해 안전을 기했는데 전에 계단을 설치하기 전에는 긴 로프가 있는 슬랩지대로 스릴을 느끼며 올랐다고 하는데 이런 얘기는 이야기로 전할 뿐 이제는 안전한 계단으로 바뀌었습니다.

긴 나무계단을 오르면 가다가 서는 곳이 곧 전망대이고 카메라를 대는 곳이 명품바위인 명품바위 전시장이었습니다.

 

이 바위 지가 짜른 긴데요

금원산과 치마바위

올라서며 거대한 바위가 반으로 갈라진 틈으로 지나는데 어쩌면 옛날 누가 손으로 내려져 갈랐다는 전설이 있음직한 바위를 지나가는데 누군가는 이곳을 바위문으로 표기하기도 하던데 이 바위를 지나 목책이 둘러친 좌측으로 우회를 하다보면 금원~기백 능선이 한눈에 들어오고 맨 뒤로 금원산 정상이보이고 그 앞으로 멀게 흰 바위가 보이는데 그곳이 도승이 금원숭이를 바위에 가두었다는 금원암이며 (금원암은 낯바위 또는 납바위라고도 함) 바로 앞 현성산 정상에서 한줄기 능선을 타고 내려서며 하얗고 긴 암반이 가로막고 있는데 이 바위가 치마바위라고 합니다.

우측으로 첫 번째 만나는 바위가 연꽃을 닮았다고 연꽃바위라고 부른다는데 그곳을 지날 때는 알 수가 없고 정상 바로 밑 전망대에서 볼 수가 있었습니다.

연꽃바위를 지나면 긴 바위가 칼로 벤 듯 누워 있는데 바위 이름이 없으면 식빵바위라고 이름을 지어주고 싶었습니다.

 

거대한 바위

고래바위냐고요? 아닙니다. 뒤에서 보면 잠수함입니다.

이 바위를 지나면 대형 고래같이 생긴 바위를 지나는데 이 바위는 잠수함바위라고 합니다.

왜냐고요? 앞에서 보면 잠수함과 거리가 멀지만 뒤 쪽에서 보면 잠수함도 대형잠수함을 꼭 빼 닮았으니까요, 그뿐이 아니고 잠수함 바위 위에는 2개의 명품이 더 있는데 하나는 세모바위이고 또 하나는 네모바위입니다.

 

점수함바위와 네모바위

잠수함바위

잠수함바위와 세모바위

저는 이곳을 지나며 아쉬움이 컸는데 잠수함 바위를 올라가 보고 싶었는데 모두 선두 그릅이 그냥 지나치니 뒤로 가서 간단히 사진만 찍고 돌아섰습니다.

네모바위를 지나면 작은 구름다리가 나오는데 구름다리라는 명칭을 쓸려면 현수교를 설치했으면 더 좋았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다리를 설치하지 않고 아래로 우회길이 있었다면 바위의 단면이 마치 시루떡을 포개놓은 것 같아 더 이름난 명품이 되었을 것 같아 아쉬운 점도 있었습니다.

 

작은구름다리---시루떡 퀘처럼 ........

괴송

작은 구름다리를 지나면 능선 암반에 뿌리를 박고 살아가는 노송이 있는데 현성산의 괴송입니다. 지도상에 표기된 괴송이 이 나무인지 아닌지는 확인하지는 않았지만 괴송의 의미는 바위에 뿌리를 박고 바위를 갈라놓은 괴력의 소나무라고 생각해 이 소나무를 포함시켰는데 나무계단을 올라 연꽃바위 옆 목책이 있는 곳 좌측(차회장님이 사진을 찍은 소나무)에 있는 소나무가 지도에 표기된 괴송 같았는데 이러한 소나무들은 한 두 그루가 아니었으며 굳이 괴송을 찾는다면 저는 잠수함 바위 위 세모바위위에 있는 소나무가 괴송이라는 칭호를 받아야 되지는 않을까? 생각을 해봅니다.

괴송을 지나 다시 나무계단이 나오는데 계단 그 자체가 전망대입니다.

좌측으로 위천면 일대와 우측으로 금원기백이 멀리 거창의 모든 명산들이 한눈에 들어오는데 예습을 하지 않고 와서 산명을 모르니 안타까운 노릇입니다.

나무계단을 지나면 현성산 정상을 오르게 되는데 이곳은 가팔라 때로는 네발로 올라야 할 정도인데 이곳을 오르면 중간에 전망대가 있습니다.

 

연꽃바위---자라바위가 더 어울릴 것 같아

하지만 이 전망대는 정상에서 보는 것과 별반 차이가 없는데 이곳에서 보면 연꽃바위가 있는 곳이나 잠수함바위가 있는 곳을 위에서 볼 수 있는데 이곳에서 아무리 보아도 연꽃바위라고는 생각되지 않고 거북바위 또는 자라바위라고 해야 맞을 것 같고 능선 건너편의 상천저수지와 서덕저수지가 물을 가득채운 채 넓은 뜰을 채울 준비를 완료한 상태로 시야에 들어옵니다.

전망대에서 잠시 휴식을 취한 뒤 조금을 오르면 기묘한 바위가 기다리고 있었는데 이곳까지 올라온 기념으로 한방 찍고 가는 포터라인인 셈입니다.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뒤로 돌면 서문가바위의 솟구친 위용을 감상하고 정상에 도착하게 됩니다.

 

현성산의 정상 하늘바래기 봉에 서다

현성산!!!

하늘바래기봉에서

하늘을 향해 우뚝 솟은 정상은 수많은 사람들을 수용할 정도로 넓고 그 위에 작은 정상석이 있고 정상석에는 玄城山 우측 옆으로 (거무시)라고 되어 있는데 거무시는 현성산의 옛 이름이라고 이외에도 감뫼, 검산, 거무성으로 불렸다고 하는데 현성(玄城)이란 검은 성이라는 뜻인데 여기서 검다는 뜻의 “감”이나 “검”은 신성하고 높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고 합니다.

 

차성섭회장님 부부

차수근 산우 부부

부산일보 산앤산 팀의 글을 인용하면 “지리산 산꾼으로 유명한 성락건 선생의 저서 ‘남녁의 산’에 따르면 ”거창 현성산의 정상을 하늘바래기 또는 하늘바라기라고 부르는데 이러한 예쁜 이름은 온데간데없고 해를 향해 솟은 봉이라는 향일봉(向日峰)이라 부르니 안타까우며 하늘바래기 봉우리 이름을 이 땅에서 가장아름다운 이름이라고 덧붙였다“고 합니다.

이러한 글을 보니 이제는 유식한 척 향일봉이라는 표기보다는 순 우리말 이름인 하늘바래기로 불러야 함이 지당하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신성한 곳에서 이건 무슨 시츄에이션입니까?

무조건 벗으려 하니 차회장님 눈둘 곳이 없어 고개를 돌립니다.

프로 마운티너의 폼

파노라마---남덕유산->삿갓봉->무룡산->백암봉->중봉, 향적봉->삼봉산

하늘바래기봉 정상에서는 조망이 일품으로 기백에서 금원을 잇는 능선이 눈앞이고 금원산 북서쪽으로부터 시작한 덕유능선은 남덕유를 시작으로 삿갓봉, 무룡산, 백암봉, 중봉, 향적봉이 파노라마를 그리고 그 우측으로 빼재를 지나 삼봉산까지 한눈에 들어오며 가까이 금원산 북릉을 타고 내려오면 1144봉과 그 아래 금원암이 보이고 능선을 따라 한동안 내려와 996봉을 지나 필봉을 분기하는 976봉3거리가 코앞이며 그 앞으로 전설을 가지고 있는 서문가바위가 있고 동쪽으로 수도산과 가야산, 비계산과 오도산이 있을 터인데 연무로 방향을 잡을 수 없어 안타까울 뿐이다.

일행들이 하나 둘 올라서며 탄성을 자아내고 작은 정상석과 백두대간의 덕유능선에 흠뻑 빠져 기분 좋은 시간을 보냅니다.

 

전설의 서문가바위

20여분 이상을 정상에서 보내고 하늘바래기를 내려섭니다.

하늘바래기를 내려서면 4거리 안부에 도착하는데 문바위2.5km, 금원산4.5km 이정표에서 진행방향으로 무명 바위봉을 지나야 서문가 바위로 갈 수 있는데 선두는 벌써 무명 바위봉을 지나고 있습니다.

무명 바위봉을 오르면 진짜 괴송이 한 그루 있는데 얘는 바위위에 뿌리를 박고 오랜 세월 바위와 싸움을 하여 결국 바위에게 항복을 받아냈는데 패자인 바위는 그 둔탁한 몸을 동강을 내서 괴송의 소원을 들어주었고 이 괴송을 지나 내리막으로 내려서는 바위 틈새에는 수 천 만원을 호가하는 분재소나무가 있는데 권재형 후배가 분재소나무와 증명사진을 찍습니다.

 

얼마에 사갈랍니까?

암릉을 지나 노송 숲으로 들어서니 선두가 자리를 잡고 이곳이 길지(吉地)이므로 이곳에서 식사를 해야 무탈산행을 할 수 있다니 이거야 정말로 반가운 소리가 아니겠습니까?

아침도 대구 사모님들에게 잘 얻어먹었는데 점심 반찬도 신경을 많이 써주어 먹기는 잘 먹었지만 왠지 미안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암튼 금강산도 식후경이라는 말이 있는 것처럼 먹는 게 우선이니 어차피 펼친 상 맛있게 깨끗이 비워야 되는 게 준비한 분들에 대한 도리라서 많이 먹었는데 속으로 욕 많이 했을 걸.............

식사를 마치고 다 같이 서문가 바위로 이동을 합니다.

봉우리 이름은 봉우리가 연꽃을 닮았다고 해서 연화봉이라고 하는데 모든 사람의 산행기를 보아도 연화봉이라는 표기보다는 서문가 바위로 표기를 하고 있었는데 이러한 현상은 단지 연꽃을 닮았다는 단조로운 이야기보다는 전설을 지니고 있는 서씨와 문씨의 사랑이야기가 많은 산님들의 마음을 끌고 있나봅니다.

 

연화봉의 서문가바위

그래서인지 저도 연화봉 보다는 서문가 바위가 더 정감이 가는 것 같았는데 서문가 바위에 가까이 가보니 하늘바래기봉에서 보았던 것보다 우람하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서문가 바위에는 이러한 전설이 전해진다고 합니다.

서문가바위의 유래

연화봉 꼭대기에는 큼직한 바위가 있는데 이 바위를 서문가바위라고 하는데 서문가바위라는 이름을 갖게 된 이야기로 두 가지의 전설이 있다고 합니다.

갑설에 의하면 임진왜란 때 왜놈들을 피해 한 여인이 이 바위 아래로 피난을 와서 살았는데 피난을 혼자 온 것이 아니고 서씨 성을 가진 남자와 문씨 성을 가진 남자와 함께 왔다고 하는데 피난생활을 1년을 넘게 하던 중 이 여인이 아이를 출산했는데 아이의 성을 붙이려하니 서씨인지 문씨인지 알 길이 없어 두 사람의 성을 모두 붙였다고 하는데 그 후 피난생활을 했던 이곳의 바위를 서문바위라고 부르게 되었다고 하네요,(왜 그랬을까???)

을설에 의하면 서문기라는 사람은 고려말 공민왕의 비인 원나라의 노곡공주를 따라 원나라에서 노국공주를 따라 건너온 사람으로 이성계가 고려를 멸망시키고 조선을 세우자 두 임금을 섬길 수 없다며 관직을 버리고 이곳에서 은둔생활을 한데서 유래되었다는 설인데 서문기는 안음 서문 씨의 시조가 된다고 하는데 안음이란 지금의 거창 위천면과 함양의 안위면 일대의 옛 이름이라고 하며 공민왕으로부터 이곳의 땅을 하사받고 이곳에 정착했다고 하며 금원산이 있는 이곳이 서문기의 유허지라고하여 그 신빙성을 더해주고 있다고 합니다.

산행을 하려면 사전에 공부를 많이 해야 하는데 공부를 게을리 하고 나중에 후회를 하게 되는데 이 서문가바위에는 한 여인과 두 남자가 살았던 굴이 있다고 하는데 그 굴을 보지 못하고 왔다는 점이 많은 아쉬움을 남깁니다.

서문가바위 정상으로는 혼자서 오르기는 힘들고 누군가 밑에서 받쳐주면 오를 수 있는데 임상택, 성봉현 두 후배와 바위를 오르려 했는데 점심식사 때 알콜을 섭취했으므로 안전사고라도 나면 여러 사람들에게 민폐가 되므로 정상은 포기하고 아래로 내려섭니다.

 

금원산으로 가는 길

서문가 바위를 내려서서 약15분을 가면 3거리 안부가 나오는데 우측은 필봉으로 이어지는 능선이고 좌측은 금원산으로 가는 길입니다.

살짜기 사진 한방 찍고 앞서간 일행을 쫓아가다 함께 가던 권재형 후배가 석이버섯을 발견했는데 귀한 버섯이긴 하지만 버섯이 작고 적어 채취할 수가 없어 통째로 카메라에 담고 다시 부지런히 능선을 따라갔는데 이제까지 계속 암릉길이었는데 이제부터는 거의 육산으로 쌓인 낙엽으로 푹신하니 양탄자 위를 걷고 있는 느낌이었습니다.

 

오마이뉴스의 김민수 기자는 불우어린이 돕기 행사에서 이렇게 이야기했습니다.

『소중한 것은 지킬 수 있을 때 지켜야 합니다.

소중한 것이 언제나 곁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한 번 떠나면 영원히 다시 돌아오지 않는 것이기에 소중한 것입니다.작고 예쁜 구슬 같은 소망을 담은 꽃 "구슬붕이"는 참 소중한 꽃입니다.

그 안에 나의 유년시절이 들어있습니다.

그리고 함께 이 꽃을 바라본 우리 아이들의 추억도 들어있습니다.

작지만 참으로 많은 것을 담은 꽃입니다.

그래서 예쁘고, 소중한 꽃입니다.』라고............

구슬붕이의 꽃말이 기쁜소식, 희망이니까요~~~~~

산행 들머리부터 야생화를 찾으며 왔는데 이 산은 야생화가 거의 없는 산으로 주변을 아무리 살펴도 보이지 않아 포기 상태였는데 뒤에 오던 성봉현 후배가 작은 꽃이 있다기에 자세히 보니 귀한 작은구슬붕이가 길가에 있었는데 정말로 반가웠습니다.

구슬붕이는 꽃을 피우는 시간이 짧고 크기가 작아 만나기가 쉽지 않았는데 다행히 이곳에서 만났으니 이렇게 반가운 일이..............

상식으로 구슬붕이는 하나의 대에 2송의 꽃을 피우는 것으로 알고 있었는데 이곳에서 만난 꽃 중 하나의 대에 한 송이 꽃을 피우고 있는 꽃도 있었는데 나중에 한 송이를 더 피울 건지..........

구슬붕이를 수확하고 작은 무명봉 쉼터에 도착하니 대박과 대박 사모님이 후미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다리 근육이 뭉쳐서 산행을 하기가 힘들다는 판단에 오락가락했는데 여기까지 와서 포기하기가 너무 안타깝고 억울하다는 그런 얘기로 흑기사 권재형 후배 참으며 가보라는 권고에 다시 산행을 하기로 결정했으니 하마터면 낙오자가 될 뻔 했지요.

 

금원산으로 가는 산죽길

무명봉을 지나며 등산로 양쪽으로는 산죽이 군락을 이루며 온산을 산죽으로 밭을 만든 낭만이 흐르는 길을 따라 다시 산행을 이어가며 10여분을 지나 다시 탈출로가 나오는데 시인마뇽 선배님께서는 금원산을 2번이나 오르셨으므로 금원산을 생략하고 중간 하산 길로 내려가 마애삼존불과 문바위를 보시고 남는 시간에 독서를 하시겠다고 하십니다.

그렇게 선배님께서 하산을 한 후 앞서간 일행을 따라가기 위해 속력을 내다보니 지쳐버려 산행에 어려움을 느꼈는데 그나마 다행인 것은 대박과 대박 사모님이 있다는 것입니다.

대박 사모님 쉴 때 조금씩 쉬면서 회복시켜 무명봉을 우회한 후 기운을 차릴 수 있어 낙오를 명하게 되었습니다.

1144봉을 지나며 동봉이 정상으로 오인하고 선두는 벌써 정상에 도착했어야 했는데? 의문을 가졌는데 한번 땀을 흘리고 난 후 정상은 오름 능선 바로 위에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아~ 금원산

 

금원산 정상에서

금원산을 감싸고 있는 4면 중 동쪽을 제외하고 남쪽, 서쪽, 북쪽은 백두대간입니다.

백두대간이 인접해 있으면서 그 대열에 끼지 못한 서름에 한이 맺혀 금원산이 세상에 얼굴을 내민 시점부터 지금까지 주위에서 사시사찰 지켜보며 한을 달래고 있는 것 같았는데 가능할 수 있는 것이라면 먼 훗날 몇 억 년 후에 지구에 지각변동이 생긴다면 남덕유와 금원산이 하나로 붙어 금원산의 한이 풀렸으면 하는 바람이었습니다.

 

 

그러한 연유로 한이 맺혀서인지 금원산에는 갖가지 전설이 바위와 골짜기 등에 묻혀 있는데 금원산이라는 산 이름에도 전설이 있으니 이러합니다.

금원산의 유래

옛날 이 산에 금빛원숭이 한 마리가 살고 있었는데 너무 날 뛰고 다녀 마을 사람들에게 피해를 많이 주었으나 하도 날쌔므로 잡을 수가 없었는데 어느 날 도승이 나타나 금빛원숭이를 잡아 바위 속에 가두었고 천길 벼랑으로 흘러내린 미끈한 바위면이 마치 원숭이의 얼굴을 닮았다고 하는데 그 바위가 정상에서 현성산 방향으로 내려서다 1144봉에서 우측으로 분기한 능선에 현성산 능선의 치마바위처럼 길게 늘어선 흰 바위로 금원암이라고 하며 지금의 금원산이라는 산 이름은 금빛원숭이가 살던 산에서 비롯되었다고 합니다.

『금원산은 본디 「검은산」이다. 옛 고현의 서쪽에 자리하여 산이 검게 보인데서 이름하였다. 이산은 금원암을 비롯하여 일암, 일봉, 일곡마다 전설에 묶여 있는 산이다. 옛날 금빛원숭이가.............. 』로 시작되는 이글은 정상석 뒷면에 음각된 글인데 이 정상석은 위천면 원학동심회에서 2005년에 세운 것으로 부산일보 산앤산 팀의 설명과 비슷한 내용이 새겨져 있는데 내용이 조금씩 다른 것은 전설이라는 것이 예로부터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이므로 전하는 사람에 따라 차이를 보이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어렵게 올라선 정상은 위험하지 않은 안전지대로 남쪽과 서쪽으로는 조망이 탁 트여 백두대간을 한눈에 볼 수 있지만 동쪽과 북쪽으로는 조망은 별로였는데 이곳 정상에서 보아도 200여m밖에 있는 동봉이 높게 보였는데 이상한 일이었습니다.

 

금원산에서 본 금원동봉과 기백능선

먼저 도착한 일행들이 한동안을 기다리며 후미가 오길 기다렸는데 눈총을 주었는지 보지는 못했지만 오늘 20년 산을 다니며 대구 산우들에게 큰 실수를 한 것 같아 미안했는데 미안한 것도 잠시 금원산 정상석에서 증명사진을 찍으며 건너편 황석산과 거망산을 더듬으며 남덕유에서 서봉을 지나 뾰죽하게 솟은 할미봉을 지나서 영취산 백운산과 그 옆으로 장안산이 선명하게 보여 산 능선을 따라 하늘금을 그리는 사이 피로가 한 순간에 회복이 되었는데 우리 일행들 나중에 올라선 후미 짐 풀자마자 떠날 채비를 하니 이게 웬 말입니까?

배낭에서 당근용으로 오이를 꺼내 돌리고 울 집사람이 대구산우들과 맛있게 먹으라고 손수 만들어 준 약식으로 뇌물을 썼지만 서울로 가는 기차예매시간이 촉박하다며 오래가지 못하고 동봉으로 이동을 합니다.

 

형님같아 보이는 아우 금원동봉

그래도 끈질기게 볼 것 다보고 찍을 것 다 찍고 급하게 정상을 뒤로하고 아래로 내려서니 영역을 표시하기 위해 일부러 세운 것 같은 선돌이 우뚝 솟아 있고 조금 아래는 넓은 헬리포터가 있는데 일행을 쫒느라 대충보고 지나칩니다.

 

동봉에서---임상택 후배

동봉을 올라서니 봉봉에는 정상석이 없고 이정표와 돌탑이 있습니다.

그런데 에궁~

일행들이 벌써 하산을 했네요, 그렇다고 그냥 갈 수는 없잖아요?

동봉은 정상보다 조망이 뛰어나 금원산 자락이 훤히 내려다보이며 지척에 상봉이 솟아 있고 남쪽의 기백산부터 시작해 뒤로 백운산을 시작으로 백두대간 능선을 타고 덕유산까지 하늘금이 이어져 장관을 이루고 있었는데 아쉬운대로 금원산 정상과 기백 능선 그리고 기백산으로 마구 쓸어 담았습니다.

동봉에서 금원산을 향해----성봉현 후배

금원산 정상에서 느꼈던 봉우리의 높이가 다시 의심스럽습니다.

금원산 정상에서도 동봉이 더 높게 보였는데 이곳 동보에서 보아도 역시 동봉이 높게 느껴지며 금원정상이 눈 아래 보이는 것 같아 성봉현 후배에게 이러한 이야기를 하니 착시현상이라고 하는데 착시현상은 저 혼자만 나타나는 가 봅니다, 다른 사람들은 이러한 얘기가 없는 것으로 보아.............

성봉현 후배와 임상택 후배가 자리를 뜨지 않고 끝까지 같이해주었는데 고마운 생각과 미안한 생각이 교차하네요.

동봉에서 본 기백능선

하산길 전망대에서 ---성봉현 후배

하산길 전망대에서 본 금원암과 현성산

번갯불에 콩 볶는 것도 아니고 정신없이 움직이며 하산을 합니다.

하산길도 만만치는 않았는데 1km정도를 지나며 경사가 완만하게 바뀝니다.

처음 현성산으로 오를 때 계속 암릉으로 이어지던 길이 금원산에서는 대부분 부드러운 길이어서 서로의 부족한 점을 채우는 방법 다시 말해서 금원산과 현성산을 함께 산행하는 것이 이상적일 할 것 같습니다.

내려서는 길 곳곳에 전망대가 있어 건너편 현성산을 담기는 했지만 금원암을 담지 못했는데 사전 지식이 없어 금원암의 존재와 가치를 미처 생각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남부군의 은신처 유안청계곡과 유안청폭포

동봉에서 약 45분정도를 내려서 임도4거리에 내려서고 이곳에서 임도를 가로질러 내려서며 유안청 계곡으로 들어서는 길로 약 15분을 내려서면 그 유명한 유안청폭포에 도착을 합니다.

유안청폭포는 1폭포와 2폭포로 나누어져 있는데 물이 떨어지는 곳의 소는 깊지 않으며 폭포의 형태도 직폭이 아닌 와폭으로 이루어 졌는데 여름철 더위에 산행을 했다면 모든 사람들이 폭포로 뛰어들 것만 같았는데 넓은 암반에 위에서 비스듬한 바위를 때리며 떨어지는 물줄기가 시원하게 느껴졌습니다.

 

유안청1폭포

유안청폭포의 본래 이름이 가섭연폭이었다고 하는데 옛 가섭사 절집이 있던 곳에 조선시대 유생들이 지방향시를 목표로 공부했던 유안청이 자리해 유안청폭포로 이름 바뀌었다고 하며 이 유안청폭포는 빨치산들의 아픔을 그린 소설 남부군에 등장을 하는 곳인데 빨치산 출신으로 남부군이란 책을 쓴 이태씨는 소설 남부군에 유안청계곡에서의 빨치산들의 애틋한 흔적이 잘 묘사하고 있는데 “기백산 북쪽 어느 무명 골짜기에 이르러 500여명의 남부군들이 남녀 모두 부끄러움도 모두 잊고 옥같은 물속에 몸을 담그고 알몸으로 목욕을 하였다”라고 기록을 하고 있으니 산과 골짜기마다 빨치산의 흔적이 세월의 아픔으로 흩어져 있다고 합니다.

 

유안청2폭포

1폭포 조금아래는 유안청 2폭포가 있는데 너비 10여m에 길이 190m의 3단으로 된 이 와폭 주변은 온통 단풍나무가 숲을 이루고 있어 가을이면 폭포가 일으키는 물보라와 색색의 단풍이 서로 어우러져 절경을 연출하는 곳이라고 하는데 아직은 계절적으로 수량도 적고 주변의 수림도 잎이 나지 않아 절정의 아름다움은 상상으로 그릴 수 있는 것이며 특히 이곳은 영화 ‘남부군’에서 수백 명의 빨치산이 알몸으로 목욕하던 실제 장소라고 합니다.

유안청2폭포에서 계곡을 따라 5분여를 내려서면 산막집을 새로 단장을 하는지 공사가 한창이고 그 앞으로 긴 목조다리를 설치했는데 다리 아래는 위쪽에서부터 아래로 200여m는 되어 보이는 와폭이 흐르는데 우기철에는 장관을 이룰 것 같았습니다.

 

자운폭포

다리를 건너면서부터 아스팔트 포장길을 따라 5분정도 내려서면 좌측 계곡으로 시원한 물소리가 들리며 폭포가 이어지는데 이 폭포가 자운폭포로 자줏빛을 띤 화강암반을 타고 흘러내리는 물결 모양이 마치 붉은 노을에 흰 구름이 떠가는 것 같다고 해서 붙은 이름으로 담소가 깊어 푸른빛을 띤 2단의 와폭은 억겹의 세월을 흐르며 갈고 닦아 매끄럽게 만들어 보기에 좋고 시원스러웠는데 항상 위험에 노출되어 있어서인지 출입을 통제하고 있었습니다.

 

처녀치마

모두들 내려가고 난 후 급하게 내려서는데 운 좋게 처녀치마가 무리지어 피어난 곳을 발견하고 급하게 쓸어 담고 구보로 내려서니 문바위 갈림길에 우리일행과 버스가 보입니다.

미안해서 빨리 가고 싶은데 우측 계곡에 선녀담이 또 바쁜 길을 막고 세웁니다.

금원산 정상석 뒤에 음각된 내용같이 바위와 계곡과 봉우리마다 전설을 줄줄이 간직하고 있다고 하더니 이 선녀담에는 이러한 전설이 전해집니다.

 

선녀담의 전설

이곳은 옛날 하늘에서 내려 온 선녀3명이 이곳 아름다운 경치에 취해 시간가는 줄 모르고 있다가 하늘로 오르지 못하고 물밑 바위로 숨어버렸다는 전설이 있는 곳으로 아이를 못 낳는 부녀자가 이곳에서 기도하면 잉태한다는 이야기가 함께 전해진다.

급하게 일행들과 합류하며 하루산행을 마치게 되었는데 길지를 잡아 점심식사를 해서인지 무탈하게 산행을 마칠 수 있었습니다.

서서히 금원산을 빠져나가며 이번 산행을 이끌어준 대구 산우들에게 감사함을 가져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