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참사랑과 함께한 합천 가야산 합동산행이야기
제10차 서울 독립군과 대구 참사랑의 교류 산행이야기
합천, 가야산 산행기
산행일시: 2012년04월 22일
누구와: 대구독립군과 서울독립군
산행거리: 약12.5㎞
산행시간: 7시간00분(10:10~17:10)
산행코스:백운동주차장(10:10)-서장대(12:18)-서성재(12:30)-칠불봉(13:50,1432m)-상왕봉(14:10,1430m)-가야산날머리(16:10)-해인사일주문(16:20)-소리길입구(16:35)-해인사홍류문(17:10)

하늘나라 목동인 견우와 옥황상제의 손녀인 직녀가 결혼하였는데 그들은 결혼하고도 놀고먹으며 게으름을 피우자 옥황상제는 크게 노하여 견우는 은하수 동쪽에 직녀는 은하수 서쪽에 떨어져 살게 하였답니다.
그래서 견우와 직녀는 은하수를 사이에 두고 서로 그리워하고 애태우면서 지내야했는데 이러한 사연을 들은 까마귀와 까치들은 해마다 칠석날에 이들을 만나게 해주기 위하여 하늘로 올라가 몸과 몸을 잇대어 다리를 놓아 주었으니 견우와 직녀는 칠석날이 되면 이 다리를 건너 서로 그리던 임을 만나 1년 동안 쌓였던 회포를 풀고 다시 헤어졌다고 합니다.
이 다리가 바로 오작교(烏鵲橋)라고 하지요.
견우직녀설화의 전설은 중국 주(周)나라에서 발생하여 한나라 시대를 거쳐 우리나라에 전해져서 지금까지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고 있는 것입니다.이번 산행기는 견우와 직녀, 그리고 오작교로 문을 열어 보았습니다.
위의 글과 서울과 대구의 교류 산행이야기는 너무나 유사한 점이 많은데 견우와 직녀는 일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까마귀와 까치의 도움으로 음력 7월이 되면 1년에 단 하루 상봉을 하지만 우리들은 열심히 살아가고 있으므로 한 번의 기회를 더 얻어 2번을 봄가을로 만나게 되는 것이고 견우와 직녀는 오작교 한곳만이 만남의 장소이지만 우리들은 서울이나 위성지역 그리고 대구와 위성지역 맘만 먹는다면 어디서든지 까치나 까마귀의 도움이 없어도 만날 수 있다는 점도 열심히 살아가는 자들의 보너스가 아닐까요?
독립군들의 우정의 합동 산행은 이번이 11번째로 1년에 2번씩 만났으니 만 5년이 지나고 6년차에 들어섰으니 이제는 서로 대화하지 않아도 서로가 눈빛만 보아도 의사가 소통되는 정도이니 세월이 지나고 나면 후세인들이 견우와 직녀의 설화같이 우정의 설화를 탄생시킬지도 모른다는 섣부른 염려를 해봅니다.
어제부터 내리는 비는 밤새 내리고도 모자라는지 지방으로 원정 산행을 하는 우리들의 마음을 무겁게 만들었는데 서울을 벗어나 대전 부근부터는 비가 멈춘 것 같아 다행이라 생각했는데 대구에 도착하니 날씨가 너무나 쾌청해 산행에 아무란 문제가 없다는 생각이었는데 동대구역에서 만난 반가운 얼굴들 가운데 안 보이는 얼굴이 있어 서운한 마음으로 우리의 목적지인 가야산으로 향합니다.
대구를 벗어나 고령을 지나가는 차창 밖으로는 고령가야의 웅장한 고분이 우리 곁에 포근한 마음으로 다가오고 6개월 만에 만나 이런 얘기 저런 얘기를 나누며 가다보니 백운동 주차장에 도착을 합니다.
경북 성주군과 경남 거창군 그리고 합천군에 접하고 있는 가야산은 우리나라의 12대 명산 속하는 산으로 1972년에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었는가 하면 1995년에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국보 팔만대장경과 해인사를 품고 있는 산으로 유명합니다.
특히 해인사 동쪽 백운동의 만물상코스는 72년 국립공원 지정과 함께 휴식년제에 묶여 38년 동안 출입이 금지된 지역이었으므로 여러 차례 가야산을 다녔다 해도 미답인 사람들도 많습니다.
가야산은 이번이 3번째로 해인사를 통해 상왕봉 원점회귀 산행과 2010년 출입제한 해제된 직후인 2010년10월31일 만물상을 찾았으며 이번 만물상코스는 18개월 만에 다시 찾았으니 모든 것이 친근하게 다가오는 것 같았습니다.

<백운동 주차장>

<백운동 들머리입니다>
서울이나 대구나 아름다웠던 벚꽃이 이제 절정에 달해 주위를 화사하게 단장을 하고 있는 주차장을 떠나 들머리가 있는 백운교 앞에서 단체로 증명사진을 찍고 좁은 들머리로 올라섭니다.
만물상 코스는 들머리에서 능선에 오를 때 까지는 계속 오르막으로 이어지므로 주변을 감상할 여유도 없으며 본다하더라도 절경보다는 잡목으로 만물의 풍경을 볼 수가 없습니다.














<이어지는 만물상 풍경을 담고>
주능선에 올라서도 전위봉이 가리고 있으므로 꼬박 30여분을 올라 사방의 조망이 열리는 전망암에 오를 수 있는데 전에는 사람이 어찌나 많았는지 30분이면 오를 곳을 2시간은 돼서야 오를 수 있었는데 오늘은 한산한 편이어서 가던 길을 뒤돌아보며 비경을 보고 또 보기를 반복하는 즐거움도 느끼고 건너편 동성봉은 산행을 시작할 때부터 흰 구름이 덮고 있어 운이 좋으면 주능선에서 계곡을 덮고 있는 운해를 볼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구름은 계곡 아래로 내려오지 않은 상태로 동성봉을 감싸고 있었습니다.

<979봉에서 폼생폼사의 대구팀 전회장님입니다>
일행들이 서로 사진을 찍어주며 30여분을 오르니 만물상 위치표시 안내도가 있는 봉을 지나 20여분 깔닥고개를 치고 오르면 바위 위에 붉은 페인트로 헬기장 표시인 Ⓗ를 그린 979봉에 오릅니다.
그냥 지나칠 뻔 했을 이곳은 선두로 가던 일행이 이고에서 기다리다 뒤에 오던 일행을 불러 이곳에서 한동안 휴식을 취했는데 이곳에서의 조망은 만물상 코스중 제일이라고 해도 과언은 아니겠으나 위험이 따라 조심을 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대구팀 대장이고 뒤로는 칠불봉과 상왕봉이 보입니다>
979봉에 올랐을 때는 구름이 머물고 있던 동성봉과 칠불봉 그리고 주봉인 상왕봉으로 이어지는 능선이 제 모습을 드러내고 위용을 나타내고 있었으며 가야할 방향으로 멀지 않은 곳에 아마도 신선이 바둑을 두었을 것 같은 바위와 만물상코스의 2봉인 1096봉과 1봉인 서장대(1159봉)가 한 눈에 들어옵니다.

<갖가지 형상이 집결되어 있는 만물상의 한 봉우리>
38년만에 개방이 된 만물상코스는 비경을 볼 수 있어 더 없이 좋은 점도 있지만 또 다른 한 편으로는 능선 좌우로 줄줄이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고 있는 바위들이 이름이 없다는 점이 마음을 무겁게 합니다.
개를 닮은 형상과 물개를 닮은 형상의 바위들이 방향을 바꾸어 보면 코끼리나 악어로 보이는 등 이러한 풍경들이 곳곳에 산재되어 있는데도 아무런 이름이 없으니 가야산 산신령님이여 뒷짐만 지고 있지 마시고 아름다운 전설과 함께 예쁜 이름으로 점지하여 주시길.................

<979봉의 모습입니다>

<2010년10월 말 979봉의 모습입니다>
979봉을 내려서 우측에 신선이 바둑을 두며 놀았을 것 같은 바위를 지나 한동안을 내려서 성터를 꼭지점으로 다시 2봉을 오르기 시작하는데 18개월 전 이곳의 풍경은 빨주노초파남보 무지개색이 이곳을 수놓았는데 단풍으로 무지개를 수놓은 것이 아니고 등산객들의 다양한 자켓이 자연과 어우러져 아름다움을 더하기도 했었습니다.




<이어지는 만물상 풍경을 담고>
데크 계단을 따라 오름길을 치고 오르며 뒤돌아보면 조금 전까지 휴식을 즐기던 979봉을 보면 무척이나 아름답게 보이며 잠시 서서 쉬며 고개를 우측으로 돌리면 동성봉으로부터 칠불봉으로 이어지는 아름다운 능선이 피로를 풀어 줍니다.
어렵게 봉우리를 올라서면 앞에 보이는 봉우리가 서장대인가 했더니 2봉인 1096봉이었는데 봉우리마다 모습이 비슷비슷하고 이름이 없으니 여간 신경 쓰지 않으면 산행을 끝내고도 헷갈려 기억하는데 착오를 일으키기도 합니다.

<상아덤에서 본 만물상의 한 봉우리>
계단을 올라 2봉을 내려서면 멀지않은 곳에 서장대가 있는데 서장대는 또 다른 이름으로 상아덤이라도 부르는데 지금은 서장대라고 부르는 이곳의 원이름은 상아덤이라고 하는데 이곳에 올라서면 만물상 능선이 한눈에 들어오며 갖가지 형상들의 바위들도 모두 볼 수 있는 곳이기도 합니다.





<만물상 코스 풍경>

<상아덤에서 보는 찰불봉 풍경>
또한 이곳은 가야산의 여신에 대한 전설이 서려있는 곳으로 이러하답니다.
『옛 가야산에는 성스러운 기품과 아름다운 용모 그리고 착한 마음을 가진 여신 정견모주가 살았답니다. 여신은 이곳 백성들에게 살기 좋은 터전을 마련해 주어야겠다는 큰 꿈을 품고 하늘 신에게 정성을 다해 빌자 천신인 이비가가 어느 봄날 오색 꽃구름 수레를 타고 이곳 상아덤에 내려와 정견모주와 부부가 되어 살았으니 아들을 둘을 두었는데 큰아들 뇌질주일은 아버지인 천신을 닮아 해와 같이 둥그렇고 붉었는데 자라서 대가야국의 첫 임금인 이지아시 왕이 되었고 작은아들 뇌질청예는 어머니인 종견모주를 닮아 갸름하고 흰 편이었는데 자라서 금관가야의 시조인 수로왕이 되었다고 합니다.』
이러한 설화는 최치원의 석리정전 전기에 기록되어 있는 설화라고 합니다.
설화가 서려있는 상아덤에 올라 올라온 만물상을 내려다보며 한없는 쾌감과 희락을 맛볼 수 있었음은 정견모주가 그랬던 것 같이 착한 마음을 지니고 살아왔기에 때문이 아니었을까?
만물상 코스의 마지막인 상아덤을 내려서며 환희와 아쉬움이 공존하는 야릇한 감정을 느끼며 서성재로 내려섭니다.
원래 계획은 칠불봉에 오른 후 식사를 할 예정이었는데 서성재에서 막걸리 한잔으로 시작된 것이 명당자리라서 식사를 하기로 합니다.

<즐거운 시간.....>
대구팀은 대부분 부부팀이 있는 관계로 늘 푸짐한 성찬과 다양한 메뉴로 우리 일행을 즐겁게 해주었는데 오늘도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많은 메뉴로 먹고도 남도록 차려왔으니 먹기는 잘 먹었으나 괜히 미안한 생각이 들었습니다.(잘 먹었습니다.)


<칠불봉을 오르는 길인데 노송과 주변 경치가 조화를 이루고 있습니다>
즐거운 식사를 마친 후 산행은 서성재에서 칠불봉까지 1.2km여서 금방 오를 것으로 생각했는데 등산로는 가파르고 몸은 무거워 힘든 산행이었습니다.


<칠불봉 정상입니다>
가야산에서 제일 높은 칠불봉입니다.
명산 가야산의 제일 높은 정상인데 얼마전까지만 해도 정상의 대우를 받지 못했는데 이제 늦게서 대우를 받고 있는데 그 이유는 가야산 2봉인 상왕봉이 최고 높은 봉으로 여겨오다가 2004년 재 측량을 한 결과 칠불봉이 3m가 더 높다고 결론이 나면서 부터 최고봉의 대우를 받기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늦게서 최고봉의 자리에 올랐으니 더 많은 사랑을 받아야 할 것입니다.


<칠불봉에서.....>
칠불봉은 가야국 수로왕과 부인인 인도의 아전타국의 공주 허황옥사이에서 태어난 아들들과 관련한 전설이 전해오는 봉으로 이러합니다.
수로왕과 허황옥은 10명의 왕자를 두었는데 큰 아들 거등은 왕위를 계승하고 둘째와 셋째 는 어머니 성을 따라 허씨의 시조가 되었으나 나머지 7왕자는 스승을 따라 가야산 칠불봉으로 출가하였는데 아들이 보고 싶은 허황후는 가야산을 찾았으나 칠불봉은 오를 수 없어 아들의 그림자라도 보게 해 달라고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를 올리니 칠불봉에서 수행 중인 아들들이 영지에 비쳤다고 합니다.


<칠불봉 풍경>
일곱왕자가 수행하여 부처가 되었다는 칠불봉은 바람이 무척 불었으며 사방의 조망은 속된말로 죽여주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줄을 서서 정상석에서 사진을 찍으며 고생하며 올라온 기쁨을 만끽합니다.
우리 일행들도 벅적대는 틈바구니 속에서 합동으로 사진을 찍기도 하고 개인으로도 사진을 찍으며 땀의 보상을 톡톡히 받고는 200여m 떨어진 가야산의 주봉인 상왕봉으로 이동을 합니다.
이곳 상왕봉은 20여년전 산행을 처음 시작할 무렵 명산산행으로 오른 곳으로 어렴풋한 기억이 있는 곳인데 오랜 세월이 흐른 뒤 다시 이곳을 올라 가슴 뿌듯함을 느꼈습니다.


<가야 19명소의 하나인 우비정입니다>
이곳 상왕봉은 우두봉이라고도 부르는데 정상 동편에는 가야 19명소의 하나인 우비정이 있는데 소우(牛)자에 코비(鼻)자에 우물정(井)자를 쓰는데 소의 코는 항상 젖어 있으므로 이곳은 소머리의 코에 해당되는 곳으로 소코와 같이 이 물도 마르지 않는다고 합니다. 우비정 서편으로는 가야산의 주봉 상왕봉이 있습니다.

<상왕봉에서 뭉쳤습니다, 정상석은 우두봉으로 세웠습니다>
높기로 말하면 칠불봉이 상왕봉보다 3m는 높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주봉은 상왕봉으로 여기고 있습니다.
칠불봉에서도 언급했지만 한국지명학회나 국립지리원 등 산을 관장하는 기관에서 산의 높이를 2004년이전까지만 해도 상왕봉이 칠불봉보다 높게 기록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2004년 재 측정 결과에 따라 최고 봉은 칠불봉에게 물려 주었으나 가야산의 주봉의로서의 역할을 하고 있으며 많은 사람들도 상왕봉을 기억하고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또한 다른 의미에서는 칠불봉은 수로왕의 일곱 형제가 부처가 되었다하는데 상왕봉의 상왕은 모든 부처의 왕을 일컫는다는 말이 있으므로 상왕봉을 주봉으로 인정하고 있다고 합니다.







<상왕봉에서.....>
가야산은 칠불봉이나 상왕봉 어느 봉우리에 서던지 조망은 아주 좋습니다.
동으로 비슬산과 멀리 팔공산이 보이고 남으로는 비계산과 가까이에 남산제일봉이, 남서방향으로 금귀산으로 시작해 보해산과 흰더미산, 양각산이 보이며 수도산은 다른 봉우리에 가려 잘 안 보이는 것 같았으며 능선 뒤로 덕유산으로부터 대덕산으로 이어지는 대간 능선은 윗부분은 구름이 가려 전체의 모습을 볼 수가 없었습니다.
다른 팀과 상왕봉에서 맞물리면서 줄을 서서 기다렸다 정상석에서 사진을 찍어야 했고 한동안을 즐기며 시간을 보네다 하산을 시작했습니다.


<상왕봉에서 보는 칠불봉 풍경>
상왕봉에서 내려서면 중봉이 있으며 중봉의 북측 방향은 수직 절벽을 이루고 있는 봉천대가 자리 잡고 있는데 봉천대는 가야 19명소 중 한곳으로 옛날에는 이곳에서 하늘에 기우제를 지냈다고 합니다.

<가야 19명소의 하나인 봉천대입니다>





<봉천대 앞에서 ...........>
봉천대를 뒤로 하고 하산하는 길은 순탄하였으며 해발이 점점 낮아지면서 조릿대를 시작으로 야생화가 눈에 띄기 시작했는데 산괴불주머니와 인사를 하고 한동안을 내려서니 얼레지가 보이기 시작했는데 1km 이상이나 길가로 군락지가 있었는데 아름다운 자태로 꽃을 피우고 있는 모습을 대부분의 사람들이 몰라주고 가니 안타까웠습니다.

<산줄길을 따라서 하산>


<길가에서 만난 얼레지>


<애기 현호색입니다>
얼레지 군락을 따라 내려오며 개별꽃의 군락과 현호색의 군락이 여기저기 눈에 띄었는데 일반적으로 왜현호색이나 대잎현호색은 자주 볼 수 있었는데 다른 곳에서 자주 볼 수 없었던 애기현호색을 발견했습니다.


<개별꽃과 애기괭이눈입니다>
다른 일행들이 모두 내려갔는데도 현호색과 한동안을 함께하다 내려서는 습한 곳에는 파란 이끼를 높이 쌓고 그 위로 애기 괭이눈이 아름다운 모습으로 손을 흔드니 그냥갈 수 없어 또 시간을 보내다가 일행을 따라가기 위해 한동안을 뜀박질을 하여 해인사 후문입구에서 합류하게 되었는데 이곳 우측 계곡과 이곳을 이어주는 가야19경중의 하나인 해인사 외나무다리가 있으니 그냥갈 수 없는 일이어서 다시 일행과 떨어져 외나무다리로 갑니다.


<가야 19명소인 해인사 외나무다리인데 통나무를 반으로 쪼개서 만들었습니다>
이 외나무다리는 유교를 숭상하고 불교를 억제하던 정책이 행해진 조선시대 때 말을 탄 양반이 법당 앞까지 들어오는 행태를 막기 위해 만들어졌다고 하는데 언제 부터가 이 다리를 건너야 극락에 도달한다는 속설이 전해진다고 하는데 아직은 극락에 갈 시간이 안 되었기에 건너지 않고 사진으로 담았습니다.

해인사 일주문을 지납니다.
너무너무 아쉬운 생각이 들었지만 일행들과 합류하기 위해 허황후의 일곱 아들이 비췄다는 영지를 보고는 한동안을 뜀박질을 하여 주차장 못 미친 곳에서 합류를 한 후 다시 소리길로 접어듭니다.

<소리길 입구입니다>
<가야 19명소의 하나인 소리길에 있는 낙화담에서 추억을 남깁니다>
2011년 9월 16일 개통을 한 소리길은 가야산의 젖줄인 홍류동 계곡의 탐방로로 축전주차장까지 5.8km였는데 홍류문까지 2.2km를 걸었습니다.
맑은 물이 큰 바위를 때리며 계곡을 울리는 물소리, 산세가 수려한 계곡의 원시림에 둥지를 틀고 오가는 사람들에게 힘을 보태주는 새소리, 한 낮 더위에 지진 탐방객을 위해 나뭇가지 사이로 몰고 와 우리를 시원하게 해주는 바람의 소리, 앞서가고 뒤 쳐져 가며 풍경을 보며 뱉는 감탄소리, 앞서가는 일행이 사랑으로 전해주는 발자국 소리, 흐르는 물위에 전망대를 만들고 전망대 아래서의 물안개를 일으키는 포말소리와 전망대 위에서 수직으로 낙차하는 폭포의 굉음소리 이러한 소리와 소리를 모은 소리길로 신선이 되어 걷다보면 지루한 줄 몰랐습니다.










<가야 19명소의 하나인 소리길에 있는 낙화담에서 추억을 남깁니다>
홍류문까지 함께했던 모든 대명사의 소리길과 소리길을 함께 걸었던 친구들의 움직임과 순간의 모습과 서로의 모습을 마음의 문을 열고 문설주에 귀를 기울이며 그 때의 재미있고 아름다운 장면을 떠올려 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