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월, 요선암과 요선정 돌아보기
영월, 요선암과 요선정 돌아보기
방문일 : 2014.08.16
누구와 : 둘째 형님과 동생 내외 그리고 우리 내외
돌아본 곳 : 요선암과 요선정, 마애여래좌상

영월 여행 첫째날
미리 정한 숙소는 김삿갓면 외룡리였으므로 숙소에서 다시 수주면으로 나오기는 쉽지 않아 영월로 들어가며 수주면을 들려 요선암과 요선정을 둘러보기로 하였습니다.
밀리는 경춘고속도로를 지나 중앙고속도로 들어서니 길은 뻥 뚫렸습니다.
신림IC에서 88번 국도를 따라 영월군 수주면으로 갔습니다.
주천강 강가 옆에 작은 주차장에는 우리보다 먼저 찾은 사람들이 제법 있어 차들이 꽉 찼습니다.
사자암으로 걸어 들어가서 우측 산으로 올라서 길을 따라가다가 좌측 바탈진 길을 따라 주천강으로 내려섰는데 눈앞에는 믿지 못할 광경이 전개되었는데 바로 비경이 요선암이었습니다.
요선암
영월 수주면 무릉리에 있는 천연기념물 543호입니다.
주천강 강바닥과 그 주변에 풍광이 뛰어난 비경이 숨어 있었습니다.



<요선암에서>
요선암은 강바닥에 깔려 있는 바위를 뜻하는데 돌개구멍 하나하나가 태고의 신비를 그대로 간직하고 있습니다.
돌개구멍이란 물이 오랜 세월 소용돌이치면서 모래나 자갈과 함께 암반을 깎아 만든 일종의 돌 포트홀을 말하는 것으로 이러한 바위암반들은 보는 위치나 서있는 위치나 강물의 유량에 따라 달리 보인다고 합니다.




<요선암에서>
우리보다 앞서 이곳을 찾은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가족단의로 찾아 사진을 찍는가하면 전문 사진 동호인들이 이곳을 찾았는지 여기저기에 카메라를 들이대는 사람들이 있는가하면 일부는 쉬고 있는 사람들도 눈에 띄었습니다.



<요선암에서>
요선암 뒤 작은 동산 정상에는 주천강과 요선암을 굽어 볼 수 있는 경치좋은 암반이 있는데 이곳에는 마애여래좌상과 정자가 있는데 바로 요선정입니다.
요선정
요선정은 숙종의 어제시를 봉안한 의미 깊은 곳입니다.

<요선정의 전경1>
숙종의 어제시는 원래 청허루에 봉안했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세월이 흐르며 청허루가 붕괴되었고 숙종의 어제시 현판은 이 지방 지서장인 일본인이 훔쳐갔다고 합니다.
어제 시판을 일본놈이 가지고 있는 것을 못 마땅이 여기고 이 지방 유지들인 이응호, 원세하, 곽태응이 중심이 되어 고가에 시판을 매입했다는 것입니다.
이후 숙종, 영조, 정조 3분의 임금 어제시를 봉안하기위해 1915년 지은 정자가 이곳의 요선정이라고 합니다.

<요선정의 전경2>
정면과 측면 각각 2칸으로 지어진 이 정자는 하나의 건물에 2개의 현판이 달려있습니다.
요선정 이외도 모성헌이라는 현판이 더 있는데 왜? 모성헌이라는 현판이 이곳에 달려있는지에 대해서는 알 수가 없습니다.
요선정과 모성헌이라는 현판은 이응호라는 사람이 썼다고 합니다.
요선의 유래는 조선시대 강릉부사를 지낸 양사언이 이곳과 강의 암반의 경치를 보고 신선이 노닐만한 곳이라고 했다고 합니다.
강가에 절벽을 이루고 있는 바위에 요선암이라 새긴 것에서 유래되었다고 하며 요선암 위에 정자를 세우고 정자 정(亭)을 붙여 요선정이라 이름 지었다는 것입니다.

<요선정 내부 편액--- 이연오의 어제원, 이응호의 어제원>

<요선정 내부 편액--- 홍상한의 요선정기, 곽수정의 기부기>

<요선정 내부 편액--- 홍상한의 요선정중수기>

<요선정 내부 편액--- 판독불, 어재원>
요선정 안에는 많은 편액이 걸려 있습니다.
숙종대왕 어제, 경취주천현루소봉
홍상한의 요선정기와 요선정 중수기
이연오의 어제원
이응호의 어제원
곽수정의 기부기 등이 걸려 있습니다.

<뒤에서 본 요선정>

<요선정 우측의 바위---누군가의 명각이 있습니다.>

<마애불 옆에서 본 주천강과 노송>
요선정 앞 마애불을 떠받치고 있는 거대한 바위 틈새에 뿌리를 내린 이 노송이 있는 곳에서 주천강을 내려다 보면 경치가 무척이나 뛰어납니다.
아마도 요선정 주변의 뛰어난 경관을 조망할 수 있는 곳입니다.
하지만 겨울철에는 이곳은 아주 위험할 것 같아 주의가 기울여 지는 지점이기도 한데 그 이유는 아래는 100여m 이상 되는 바위 절벽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아래서 위를 볼 수 있는 특권은 시간이 많아 북측 방향의 강가를 볼 수 있으므로 다수의 사람들은 그 경치를 감상할 수 없습니다.
여기저기 문을 두드려 사진 한 장을 구했습니다.

< 위 사진은 요선정 앞 마애불 아래부분으로 주천강문화센터에서 찍은 것입니다.>

<요선정과 마애불 앞에 무명석탑이 있습니다.>
어제어필 시문에 대하여(두편의 어제시판 번역문은 맨 마지막에 올립니다.)
숙종28년인 1698년 정월 숙종임금은 시한수를 써서 당시 강원감사 심정보에게 내리니 이제어필 시문이 주천현루인 청허루에 봉안하였는데 이후 청허루가 화재로 소실되면서 어제시도 소실되었다고 합니다.
이후 영조대에 이르러 청허루를 다시 재건하였는데 이 소식을 들은 영조는 아버지인 숙종의 시문을 청허루에 보존하기 위해 숙종의 어제시 손수 쓰고 뒤에 영조의 어제시를 함께 써 당시 강원감사인 임집에게 내리니 새로 중건한 청허루에 두 임금의 시판을 걸었다는 것입니다.

<숙종대왕 어제 시 판>

<정조의 敬次酒泉縣樓所奉(경취주천현루소봉) 서 판>
이후 정조대에 이르러 정조는 증조할아버지인 숙종과 할아버지인 영조의 어제시를 잘 보존하라는 뜻으로 정조는 경취주천현루소봉 시를 지어 두 선왕의 어제시 옆에 달게 내렸으니 내용은 이러합니다.
『주천은 옛 고을로서 지금의 원주에 속해있으며 청허와 빙허의 두 누각이 있는 경치 좋은 곳으로 옛날 심정보 목사가 있던 고을이다. 숙종대왕께서 지으신 시의 현판은 그간 화재를 입었는데 무인년 고을을 지키던 신하가 중건하였음을 영조대왕께서 들으시고 원편을 찾아 손수 쓰시고 서문을 지으시고 근신에게 명하여 달게 하니 한 누각이 이루어지고 훼손되는 데 따라 무겁고 가벼움이 있는 것이 아니라 좋은 글과 글씨가 황홀하기만 하니 이 루는 이것으로 빛나고 그 고을의 산천 또한 빛나니 이 누각이 이 고을의 자랑이 아니겠는가, 기와를 잇고 수리하는 일은 가히 힘쓸 줄 믿으니 공경해서 시를 짓고 대략 적어 그 곁에 달게 하노라.』
무릉리 마애여래좌상
요선정 앞에는 3.5m의 자연석이 거대한 바위위에 얹혀 있는데 이 바위에는 마애여래좌상이 새겨져 있는데 이 불상은 강원도 유형문화재 74호로 일반적인 마애불과 차별되는 독특한 불상입니다.

<무릉리 마애여래좌상>
마애불 앞에 있는 안내판의 내용을 요약하면 이러합니다.
고려시대 마애불좌상으로 살이 찌고 둥근 얼굴에 이목구비가 큼직하게 표현되었다.
상체에 비해 하체 무릎 폭이 지나치게 크게 표현하였는가하면 상체가 너무 길어 불균형을 이루고 있는데 고려시대 이 지방 장인이 제작한 것이라는 견해인데 강원도 지방에는 마여래상이 매우 드물어 지방문화재로 보호하고 있다.
필자는 이 안내판을 읽기 전에는 마애불이 좌상인지 알지 못했는데 안내판에는 이러한 불균형을 지적하고 있으며 이 마애좌상이 독특한 것은 머리와 얼굴 부위는 돌출하게 조각한 것이며 목 아래는 일반적인 마애불과 같이 바위를 파서 부처를 조각했습니다.

<무릉리 마애여래좌상에서 집사람과 형수가 함께...>

<무릉리 마애여래좌상에서>

<무릉리 마애여래좌상과 등을 마주하고 있는 제수씨>

< 마애여래좌상 바위 뒷면에는 풍혈로 구멍이....>

<무릉리 마애여래좌상>

<요선정 ---다음지도>
어제시판 번역문

<숙종대왕 어제 시 판>
○ 肅宗大王 御製 숙종대왕 어제
憑虛淸噓兩樓詩一律病裏吟曦 빙허청허양루시일률병이음희---빙허청허 양루의 한시는 병중에 읊으신 것으로
贈原州牧使沈廷輔仍賜酒饌 증원주목사심정보잉사주찬---원주목사 심정보에게 주시고 술과 안주를 내리시다.
聞說雙樓在酒泉 문설쌍루재주천---듣건대 쌍루가 주천에 있다던데
幾經葺裏尙能全 기경즙리상능전---몇 번이나 고쳐 이어서 아직도 온전한가
峨亞石壁靑雲接 아아석벽청운접---높고 높은 석벽은 구름에 닿았고
洋洋澄江碧水連 양양징강벽수연---맑은 강물은 짙푸르게 이어 지도다
山鳥好禽鳴樹上 산조호금명수상---산새들은 나무 위에서 우짖고
野花春草映階前 야화춘초영계전---들꽃과 봄풀은 뜰아래에 비치었네
携登宮醞呼兒酌 휴등궁온호아작---술 가지고 올라 아이에게 따르게 하니
醉倚欄干白日眠 취의난간백일면---취해서 난간에 기대 낮잠을 이루도다.
庚子 正月 二十八日 경자 정월 이십팔일(1720 숙종 46년 1월28일)
英祖大王 御製御筆 영조대왕어제어필
竊惟此我 聖考御製詩 절유차아 성고어제시---지금 내가 생각하니 선대왕의 어제시는
侍湯中己爲仰覩 而頃年奉覽 시탕중기위앙도 이경년봉람---병구완 중에 본 것으로
御製此詩載於編末 어제차시재어편말---선대왕의 문집 끝에 써 놓으신 것을 읽으며
故不覺涕泗交頤 고불각체사교이---눈물이 턱 밑까지 흐르는 것을 깨닫지 못하매
自此不忍更作詩句 자차불인경작시구---내 다시 시를 짓지 못하고
仍記于予之詩卷中矣 잉기우여지시권중의---나의 책에 기재하여 두었도다
令因禮判達白當更鐫揭流涕 령인예판달백당경전게류체---이제 예조판서의 주달이 있어 다시 울면서 써서
以寫謹承旨懸揭 이사근승지현게---승지를 보내어 현판을 달게 한다.
噫昔年宸章令予手書此誠稀 희석년신장령여수서차성희---승지를 보내어 현판을 달게 한다.
有追慕深切固宜賡韻 유추모심절고의갱운---추모하는 마음이 간절하여 운을 읊으매
而非徒於詩己謝方在裏麻之中 이비도어시기사방재---비단 글뿐이 아니라 상중에 있었던 것을
故敢以小識以記下方使我 고감이소식이기하방사아---사하는 고로 감히 기록하여
聖考璀瓚之奎章 不泯於後焉 성고최찬지규장 불민어후언---아바마마의 찬란한 문장이 뒤에 없어지지 아니하도록 하노라
皇朝崇禎紀元後三戊寅陽月涕泣謹識 황조숭정기원후삼무인양월체읍근식
---영조34년(1758년 무인 10월) 울면서 쓰다
時任牧使任潗其能重建上弗負尙能全之 시임목사임집기능중건상불부상능전지
---이 때 소임을 맡은 목사 임집이 중건하고
御詩故特賜虎皮一領以亦嘉尙之意 어시고특사호피일령이역가상지의
---이제 시를 받들어 저버리지 않으니 호피 한 장을 내려 가상한 뜻을 보이노라.
○ 正祖大王의 序文과 御製詩(정조대왕의 서문과 어제 시)
숙종대왕과 영조대왕 서문의 현판이 청허루에 보관된 지 30년이 지난 정조 12년 무신(1788)에 정조대왕은 상기 어제 현판 옆에 숙종대왕께서 지으신 시운에 따라 새로이 시 한 수를 짓고 어필하여 상기 현액 옆에 게첨하였다.
정조대왕은 청허루에 봉안된 두 분의 선왕(숙종.영조)의 어제시를 소중히 간직할 수 있도록 敬 次 酒泉縣 樓所 奉序(경 차 주천현 루소 봉서) 를 지어 두 분 선왕의 어제시 옆에 걸게 하니 그 글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담겨있다.

敬 次 酒泉縣 樓所 奉序(경 차 주천현 루소 봉서)
- 序文
敬次酒泉縣樓所奉 경차주천현루소봉---주천현루는 숙종대왕의 어제시와
肅廟朝御製詩韻倂 小序 숙묘조어제시운병 소서---영조대왕의 서문을 모시고 있다.
酒泉古縣也今屬原州 주천고현야금속원주---주천은 옛날에는 현이었는데 지금은 원주에
有淸憑虛二樓地勝在 유청빙허이루지승재---속해 있으며 청허와 빙허의 두 누각이 있는 경치
昔沈廷輔之牧是州也 석심정보지목시주야---좋은 곳으로 옛날 심정보가 목사로 있었던 곳이다
肅廟寵之以詩間經回祿 숙묘총지이시간경회록---숙종께서 지으신 시의 현판은
之災先朝戊寅守臣重建之 上聞之 지재선조무인수신중건지 상문지---
그간 화재를 입었는데 무인년(1758년)에 지키던 신하가 중건하였음을 영조께서 들으시고
手書原篇繼以小識 수서원편계이소식---원필(原筆)을 찾아 손수 쓰시고 서문을 지으시어
命近臣往揭之夫 명근신왕게지부---근신에게 명하여 현판을 달게 하니
一樓成毁若無所輕重而 일루성훼약무소경중이---
한 누각이 이루어지고 훼손되는데 따라 무겁고 가벼움이 있는데 아니라
宸章寶墨前後焜耀不濁 신장보묵전후혼요불탁---좋은 글과 글씨가 황홀하기만 하니
樓之頼之顯凡州之山川亦 將由樓而增重則樓之爲 是州輕重何如也
루지뢰지현범주지산천역 장유루이증중칙루지위 시주경중하여야---
이 루(樓)는 이것으로 빛나고 그 고을의 산천 또한 이 루(樓)로 인해 빛나니 이 누각이 이 고을의 자랑이 아니겠는가
繼此葺修之役可以知所勉夫 계차즙수 지역가이지소면부---
기와를 잇고 수리하는 일은 가히 힘쓸 줄 믿으니
敬次詩韻略敍其槪俾揭于傍云爾 경차시운략서기개비게우방운이---
공경해서 시를 짓고 대략을 적어 그 곁에 달게 하노라
(正祖大王의 御製詩)
尙說黃封降酒泉 상설황봉강주천---임금께서 주천에 글을 내리시니
淸虛從此勝名全 청허종차승명전---이로써 청허루의 이름이 보전되도다.
樓容重與 루용중여---누각의 모양은 구름과 더불어 빛나고
雲章煥地氣還應壁宿連 운장환지기환응벽숙연---땅의 기상은 오히려 하늘에 닿았도다.
百日桑麻渾不改 백일상마혼불개---백리의 농사일은 달라짐이 없고
一春花鳥摠依前 일춘화조총의전---한 봄의 꽃과 새도 그전과 같도다.
瞻言咫尺分憂在 첨언지척분우재---근심이 지척에 있음을 보고 이르노니
太守休爲醉後眠 태수휴위취후면---태수는 쉬면서 술 취해 잠자지 말지어다.
子卽作十二年仲秋 자즉작십이년중추---12년 8월 아들지음
*위 어제시 번역문은 카페 주천강문화센터 김원식님의 것을 퍼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