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항주 오산공원과 청하방 이야기
중국 항주 오산공원과 청하방 이야기
여행일자 ; 2015년6월 12일~15일(3박4일)
여행장소 : 절강성 지역(서호, 오산공원, 송성가무쇼, 청하방, 노가. 황산, 천도호, 등)
여행한 친구 : 회장 주병갑, 총무 장광순, 이언형, 임덕규, 박선자, 이영자, 주성기

중국 여행 마지막 날(6월15일)
큰 걱정을 안고 공항을 나와 무사히 항주에 들어왔고 이러니저러니 하면서 무사히 3일을 보내고 이제는 마지막 날이 되었다.
아침부터 비가 내리는 가운데 예정된 시간에 모든 짐을 버스에 싣고 호텔 1층에 있는 식당으로 갔는데 최하급 식사였다.
나뿐 아니라 모든 일행들이 먹는 둥 마는 둥 아침을 때우고 대기중인 버스를 타고 마지막 일정을 채우기 위해 복잡한 항주 시내를 다시 지났다.

<성황각에서의 조망---서호에 떠있는 소용주의 풍경입니다.>
오늘 마지막으로 관광하는 곳은 서호가 바라다 보이는 오산공원과 오산공원 아래 있는 재래시장을 돌아보는 것이다.
◎오산공원 이야기
항주에 들어서 서호로 가던 첫날 오산공원이 궁금해 가이드에게 물어본 적이 있는데 자세한 이야기를 해주지 않았는데 오산공원이 마지막 날 관광에 포함되어 있었던 것이다.
10시가 되어 공원 앞에서 내렸는데 비는 그치지 않고 계속내리고 차에서 내린 일행은 언덕진 곳을 올랐다.
입장료는 그리 비싸지는 않은 것 같았는데 이른 아침이라 그런지 사람도 별로 없었다.
계단을 올라 우측으로 비각 안에 『오산천국』이라는 비석이 있었는데 뒷면을 보지 못해 무슨 의미로 세워졌는지 알 수가 없다.

<오산천국 비각과 야외 결혼식장 같은 예쁜 자동차가 보입니다.>

<제대로 설명도 듣지 못한 채 성황각으로 들어섭니다.>

<비각과 마주보고 있는 건물로 사당같이 보였습니다.>
비각 옆으로 작고 예쁜 차가 있었는데 차는 꽃으로 단장하고 부케가 있는 것으로 보아 이곳에서는 야외 결혼식을 올리는 것 같았고 좌측으로는 신주를 모시는 사당같은 건물이 있는 것 같았는데 건물로 들어서는 일행을 뒤 따르느라 자세히 볼 수가 없었다.
7층으로 된 성황각 건물로 들어서면 옛날 송나라 시절의 생활상과 시가지와 성(城)의 모습을 모형으로 전시했으며 2~6층까지는 비 관람지역이었다.

<1층 전시관의 전시물로 옛 남송시절 생활풍습을 재현한 것 같았습니다.>

<1층 전시관의 전시물로 옛 남송시절 성안의 거리를 재현한 것 같았습니다.>

<1층 전시관의 전시물로 옛 남송시절 성문을 재현한 것 같은 조천문 현판이 보입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6층에서 다시 계단을 통해 7층으로 올라갑니다.>

<7층에는 舒春雲天(서춘운천)이라는 현판이
걸려 있는데 신선이 사는곳에서 봄을 펼친다는 뜻이라고 해석해야하나요?>
1층을 관람하고 엘리베이터를 이용해 6층으로 올라간 뒤 계단으로 올라가 舒春雲天(서춘운천)이라는 현판이 걸린 7층 베란다에서 사방을 보는 것이다.
서호 10경중의 하나인 오산 성황각은 신선들의 누각이라 불린다고 하는데 신선들의 누각이라는 수식어가 붙은 이유나 더욱 유명하게 만드는 것은 이곳 성황각 위에서 보는 항주 시가지와 서호의 풍경이 아름답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성황각 전망대에서 주변을 조망할 때는 선명한 서호를 볼 수는 없었지만 안개가 낀 서호의 풍경과 서호위에 떠 있는 소용주와 소용주 앞 호수위에 세워진 삼담인월과 소동파가 쌓았다는 소제와 백거이가 쌓았다는 백제를 볼 수 있었으니 반절의 성공적인 조망을 했다고 할 수 있다.

<6층 지붕위에 세운 조형물로 마치 수탉같이 보였는데 무슨 의미를 지니고 있는지 모릅니다.>

<7층 전망대에서 본 풍경입니다.---서호와 벽제>

<7층 전망대에서 본 풍경입니다.---뇌봉탑과 서호 그리고 소용주>



<7층 전망대에서 본 풍경입니다.---항주 시가지의 모습>

<7층 전망대에서 본 풍경입니다.---항주 시가지와 뇌봉탑>
방향을 바꾸면 항주시내가 한눈에 들어오는데 꽉 들어찬 빌딩과 주택을 보면 중국의 경제도 상당한 수준에 도달했음을 볼 수 있다.
또 지난번 서호에서 관광선을 타고 서호를 돌 때 산에 높게 보이던 뇌봉탑을 더 가까이서 볼 수 있었다.

<전망대를 내려와 성황각을 배경으로 단체로 인증 샷을 했습니다.>

<성황각을 내려섭니다.>
휑하니 둘러보고 내려선 자리에서 혼자 서호를 관망하다 서둘러 내려와 성황각을 배경으로 단체 사진으로 인증 샷을 날리고 내려서는 곳에서 중국과 한국을 오갈 때 비행기에 함께 동승한 팀이 올라와 우리 일행과 바턴터치 하며 오산공원을 나선다.
◎청하방 이야기
오산공원을 내려서면 입구에 청하방 풍경구인 재래시장이 있다.
시장입구 승강장에는 청하방에 얽힌 사연을 중국, 영어, 한국어, 일본어 4개 국어로 안내하고 있는데 청하방 이야기는 이러하다.

<청하방 거리에는 김유정의 봄봄의 한 장면 같은 조형물이 있습니다.>
허선은 여기서 백낭자와 우연히 만났고 장소천은 여기서 처음으로 ‘장서천가위‘를 제조하였으며 호설암은 여기에 약방을 설치하였는데 이곳이 바로 청하방이다.
보존상태가 비교적 양호한 옛 거리로서 수. 당 시기부터 흥하기 시작했는데 남송 시기에 이름을 날리게 되었고 청. 조 때 번성하게 되었다. 남송 건염3년(1129년) 태사 장준이 금병을 격퇴하여 고가대승을 취득하여 청하군왕이라 봉하게 되었다.
이로하여 왕부소재지(금하방사거리 태평갱) 일대는 청하방이라 부르게 되었다.
청하방은 서쪽으로는 서호 호수가 인접하고 오산의 정기를 받은 백년중의 노포인데 원나라, 청나라, 명나라, 중화민국을 거쳤지만 여전히 번화하였다.
지금의 청하방은 민속, 중약, 시전, 음식 등 4대 문화를 융합한 거리가 되어 항주를 위하여 일련의 추억을 보류하였다.
청하방 거리는 한적했다.
시간상으로도 이른 아침인데다가 비가 내리므로 노점은 대부분 아직 행상을 펴지 않은 곳이 대부분이고 행상을 편 곳도 관심을 끌만한 상품도 없다.
청하방 거리 양옆 상가는 대부분 문을 열었지만 오전이라 그런지 상가를 찾는 사람들이 극히 적었는데 다른 사람 여행기에 밤의 청하방 거리를 보니 호화찬란하고 사람들도 무지하게 붐비는 곳이었다.

<청하방 거리의 풍경으로 언형친구가 선물가게 앞에서 구경을 합니다.>

<청하방 차집 앞에 멈춰 아가씨가 주는 공자 차한잔을 마시고 있는 친구들의 모습입니다.>




<비가내리는 청하방 거리의 풍경입니다.>

<청하방 거리를 20여분 헤매다 다음 코스로 이동하기 위해 버스에 오릅니다.>
청하방 거리에서 시간을 보내고 동파육을 먹었던 지역인 구계지역을 지나 한동안 간 곳은 마지막날 마지막 스케줄로 쇼핑이었는데 라텍스를 직접 만든다는 공장으로 안내되었다.
이곳 라텍스 공장은 한국사람이 직접 공장을 운영한다고 하는데 사장이라는 사람이 우리에게 직접 설명을 해주었다.
다른 곳의 라텍스 가격과 이곳의 라텍스 가격을 비교하며 설명을 하였는데 다른 곳에 비해 가격은 비싼 편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한국 홈쇼핑에서 광고하는 가격에 비하면 아직도 배는 비싼 편인데 이들이 한국 홈쇼핑 시장의 라텍스를 알기나 하는지 모르겠다.
암튼 비싼 라텍스를 살 필요도 느끼지 못했고 시간만 때우고 나왔다.
라텍스 공장에서 그리 멀지않은 곳에 있는 한국음식점으로 이동해 중국에서의 마지막 식사를 했는데 메뉴는 김치찌개로 약간 짜기는 했지만 맛있는 식사를 할 수 있었다.

<고속도로변 주택 위에 있는 것은 물탱크실이 아니라 가족 납골당입니다.>
식사를 마치는 것으로 모든 일정이 끝나고 이제 한국으로 돌아가는 일만 남았다.
다시 교통이 복잡한 항주 시내를 지나야 한다는 생각을 하니 답답하다는 생각을 했는데 의외로 고생을 하지 않았는데 식사를 한 곳 가까운 곳에 고속도로 인터체인지가 있었기 때문이었고 고속도로를 올라선 버스는 무한질주를 하며 이내 항주 공항으로 접이 들었다.

<우리가 탄 버스가 항주 공항으로 들어섭니다.>

<항주공항 출국장에 도착합니다.>

<공항에 내려 출국장으로 들어서며 공항을 배경으로 담아봅니다.>

<출국수속을 마치고 화물을 부치기 위해 순서를 기다립니다.>

<3박4일동안 우리를 안내했던 김광현가이드와 함께 기념사진을 찍습니다.>
공항에 도착해 짐을 화물로 부치고 중국에서의 마지막 단체 사진을 찍고 가이드와 헤어져 비관세지역으로 들어서며 중국 여행의 종지부를 찍었다.
◎에필로그
무사히 이륙한 비행기는 중국 영공을 지나 대륙붕을 따라 이어도와 제주도 상공을 지나 무사히 인천공항에 도착했다.

<출국수속을 마치고 탑승 대기하며 바라 본 공항의 풍경입니다.>

<구름위를 날고 있는데 구름이 그다지 아름답지가 않습니다.>

<중국에서 한국으로 가는 비행기 안의 모습입니다.>
입국을 하면서부터 4일동안 잊었던 메르스의 압박이 시작되었다.
공항당국에서 입국자 명단에 「경기 여주 임덕규, 축산인」을 확인하고 체포작전에 돌입하니 그대로 체포되었고 우리들을 열감지 카메라 앞을 유유히 지나 아무런 제재없이 입국할 수 있었다.
사는 곳이 각기 달라 가야할 곳도 다르다.
선자친구는 두 형제가 엄마를 모시러 나왔고 영자친구는 조카인지 누가 모시러 대기중이란다.
나는 공항철도를 타면 1시간 이내에 집까지 들어서니 걱정이 없고 여주로 가는 친구들이 걱정이었는데 무사히 도착했다는 전갈은 나중에 확인할 수 있었다.

<무사히 인천공항에 도착했습니다.>
사람이 산다는 것, 살아간다는 것이 무엇인가.
어느 시인은 인생은 먼 길을 걷는 나그네가 잠시 주막 텟마루에 잠시 걸쳐 휴식을 취하고 가는 짧은 시간이 인생이라 했고 목사님은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고 방황하며 사는 게 우리 인생이라고 한다.
짧은 인생 살아가는 동안 재미있게 살다 한 세상 마무리 지어야 할 것이 아닌가?
형제간, 부모 자식간, 부부간. 그리고 친구간, 우리 모두 한 번씩 다시 생각해보고 좋은 건 더 좋게 나쁜 건 서로 이해해서 좋은 방향으로 발전해 나가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다.
이번 여행에서 다 함께 했으면 더없이 좋았을 것을.....

<입국장의 풍경으로
누군가 들어오고 들어오는 누군가를 마중나온 사람들이 붐비고 있습니다.>

<우리도 저 틈 어딘가에 끼어 들어와
지금은 각자의 자리로 돌아가 현재에 최선을 다하고 있을 것입니다.>
몸이 안 좋은 친구, 마음이 복잡한 친구가 불참해서 아쉬웠던 여행이었다.
정말 미안했던 건 여행을 하는 동안 친구들을 생각하지 않았다는 것이었는데 인천공항을 들어서며 같이 못한 친구들이 생각나고 미안한 생각이 들었으니 나는 이기적인 동물인기 보다.
하지만 우리 친구들은 아직 젊고 살아온 날들보다 앞으로 살아가야 할 날들이 많으니까....
힘을 내세요,
용기를 가지세요,
희망을 보세요,
세상은 우리들 편이니까.................

<부르고 싶은 친구들~~~
평생을 이렇게 흐믓하고 기쁜 얼굴로 살자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