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산100산산행기

팔봉산 산행기

범솥말 2025. 9. 13. 22:42

홍천의 팔봉산 산행기

 

산행일시: 20130416

누구와: 나 홀로

산행거리: 3

산행시간: 2시간45(12:15~15:00)

산행코스:팔봉산입구(12:15)-1(12:37)-2(12:52,300m)-3(13:00,309m)-4(13:15)-5(13:22)-6(13:44)-7(14:00)-8(14:20)-8봉밑 강변(14:43)-팔봉산 매표소(15:00)

춘천에서 팔봉산 가는 경우

후평동에서 3번버스 1040분 출발->시외버스터미널 11:00->강촌역 11:20-> 팔봉산입구 11:50

홍천에서 팔봉산 경우

북방면 경유 버스: 홍천터미널에서 09:30, 15:30, 18:40

양덕원 경유 버스 : 양덕원에서 11:55, 14:15, 14:45

 

팔봉산은?

팔봉산을 맨 처음 찾은 때는 동네 어른들과 산악회를 만들어 산을 다니던 1991년 초반이다.

그 이후 회사 동료들과 다시 찾았고 한동안 잊고 있었다.

명산 100산 산행기를 쓰려니 옛 기억도 한계가 있고 옛날이 분명히 찍었던 사진도 찾을 길이 없어 멀지도 않은 곳에 있으니 시간을 내어 다시 찾았다.

남춘천역 길 건너 정류장에서 1015분에 팔봉산 가는 1번 시내버스가 있다는 자료를 얻어 야간 일을 끝내고 청량리를 가서 0917분 춘천행 ITX청춘열차를 탄다.

이 열차는 53분후인 1010분에 남춘천역에 도착하여 급하게 정류장으로 달려갔으나 버스가 예정보다 빨리 지나간 것인지 아니면 산행 자료가 잘못된 것인지 버스는 없었다.

차선책으로 이곳에서 300m 떨어진 시외버스 터미널 정류장으로 갔는데 이곳에서는 후평동에서 1040분에 출발하는 3번 버스가 있는데 이 버스는 시외터미널 정류장에 도착 예정시간보다 1분이 연착된 1101분에 정확히 도착했다.

<1020분에 이곳에 정차>

3번 버스는 의암댐을 지나 강촌역을 1120분에 경유하여 팔봉산 입구에 1151분이 도착했으니 시외버스터미널 앞 정류장에서 딱50분이 걸려서 팔봉산에 도착했다.

홍천의 팔봉산(八峰山)309미터의 낮고 작은 산이지만 산림청이 지정한 우리나라 명산 100산에 당당히 이름을 올린 산으로 기암절벽으로 어루어진 8봉우리를 지니고 있다.

봉우리와 능선마다 오랜 풍상을 겪으며 지낸 노송의 아름다움이 보태지고 거기다가 이러한 풍경을 물 위에 비추며 굽이쳐 휘어 감고 흐르는 홍천강이 있으니 그야 말로 금상첨화의 경관이다.

이러한 빼어난 경관을 지닌 팔봉산은 홍천9경에 으뜸인 제1경을 차지하고 있는데 그밖의 홍천9경은 가리산, 미약골, 금학산, 가령폭포, 공작산 수타사, 용소계곡, 살둔계곡, 가칠봉 삼봉약수다.

 

산행들머리에서

<팔봉산 안내서 앞면>

<팔봉산 안내서 뒷면>

팔봉산 입구인 어유포리에서 하차하여 나타난 팔봉산은 옛날 그 모습으로 좌측 1봉을 시작으로 맨 우측 8봉까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주차장을 지나 팔봉산 입구로 가는 길을 따라 군에서 만들어 세운 팔랑개비가 헤아리기 쉽지 않을 정도로 많았는데 불어대는 강풍에 팔랑개비는 잠시 쉴 틈도 없이 돌아간다.


<주차장에서 보는 팔봉산>

<다리를 건너면 산행들머리>

<팔봉산 매표소>

팔봉교를 막 건너면 오른쪽으로 매표소가 있는데 어른은 1.500원으로 정해진 요금을 내고 들어서면 우측으로는 나무로 깎아 세운 남근목같이 생긴 조각품을 지나 바로 내려서면 짧은 구름다리가 나오고 이 다리를 지나 왼쪽으로 방향을 바꾸며 조금 가파른 길을 따라 올라가며 본격적인 산행이 시작된다.

산 초입부터 등산로 좌우로는 보라색 꽃을 피운 현호색이 사방에 즐비했는데 이곳의 현호색은 무리지어 있기는 하나 꽃잎이나 꽃이 무척이나 작았는데 산행을 시작하는 이들에게 힘을 돋게 하는 여신과도 같았다.

 

1봉으로 가는 길

작은 현호색에 카메라를 접사해 예쁜 모습을 담은 뒤 산행을 시작한다.

<팔봉산 현호색>

매표소를 들어설 때 나보다 먼저 들어선 한 팀이 있었다.

산행팀은 30여명은 되는 것 같았는데 이 친구들 산행을 시작한 지 불과 100m를 와서 힘들다고 쉬는가 하면 다시 내려가겠다고 야단인 친구들도 있다.

<산행들머리>

여러명을 앞질러 능선에 오르니 능선에는 전에 없던 쉼터가 조성되어 있었는데 이 쉼터에는 긴 의자가 여러개 놓여 있었는데 의자마다 쉬는 사람들은 아래 있던 일행과 같은 팀인 것으로 보였는데 초입부터 물을 마시며 제대로 휴식을 취한다면 팔봉산 산행은 어떻게 마칠 것인지 걱정이 앞선다.

<1봉을 오르는 길 조망터>

쉼터를 지나 능선을 오르는 곳곳에는 이제 막 피어 산을 분홍으로 물들인 진달래가 많았으며 능선에서도 만난 사람들이 적지 않았는데 당연한 것이 내게는 신기하거나 이상하게 느껴졌는데 이러한 것은 나는 늘 산행을 오지산행을 하다 보니 하루 종일 10시간을 다녀도 사람이라고는 한명도 만나지 못하는 때가 허다하기 때문에 이렇게 많은 사람들과 함께 산을 오른다는 게 이상하게 느껴지는 것이다.

1봉 앞에 도착을 한 시간은 산행을 시작한 후 20분 후였다.

<1봉으로 오르는 길>

<팔봉산 제1봉>

앞서가던 남자 3명이 1봉을 오를듯하다가 자신이 없다며 우회하였는데 대부분의 산님들이 우회를 한다.

망설일 시간도 없이 제1봉 암릉길로 붙었는데 20여 년 전에도 올랐었지만 이곳에는 사람들이 많이 오는 곳이라 암릉길도 안전하게 로프를 설치하기도 했고 때로는 철심을 박아 손을 잡거나 발판을 만들어 발을 딛고 오르고 내릴 수 있도록 해 놓았는데 안전하여 사고는 덜 나겠지만 산을 제대로 오르는 사람들의 눈에는 이러한 시설물들은 자연을 훼손하는 행위로 밖에 여겨지지 않는 것이다.

<1봉에서>

암벽을 올라 노송이 어우러진 제1봉에 도착을 했는데 1봉에는 아무도 없다.

4각 시멘트 받침 위에 올려 져 있는 제1봉 정상석은 홍천강 강가에서 가져온 자연 강돌로 만든 것 같아 보였는데 그 모습이 깜찍하게 느껴졌으며 강돌에는 우리말로 제1봉 아래는 홍천군이라 음각을 하였다.

정상석 뒤로 절벽이므로 안전을 위해 철재난간을 만들었고 정상석 뒤로는 암벽에 뿌리를 내리고 수없이 많은 날들을 비바람과 싸우며 살아온 소나무가 있다.

돌 위에 카메라를 고정시켜 증명사진을 찍으며 소나무 사이로 보이는 홍천강의 모습과 남쪽으로는 겨우내 많은 사람들이 붐볐을 대명스키장이 보인다.

<2봉으로 가다가  보는 풍경>

<1봉을 내려서는 길>

사방을 구경하고 1봉 내리막길로 내려섰는데 로프만 있어도 될 곳을 철심과 발판을 박아 장애가 되기도 하였다.

무사히 내려서 2봉으로 가며 뒤돌아 1봉을 다시 보며 머릿속에 입력시켜본다.

 

2봉으로 가는 길

1봉에서 제2봉의 거리는 아주 가까이에 있다.

물론 앞으로 진행하는 8봉까지도 아주 근거리에 있기는 마찬가지다.

1봉을 내려서면 1봉을 오르지 않고 2봉으로 우회하는 길과 만나며 이 길을 따라 불과 100m도 안 되는 거리에 제2봉이 있다.

< 제2봉 정상으로 가는 길 주변 풍경 >

2봉으로 오르는 길 양쪽으로는 곳곳에 진달래가 만개하였는데 진달래를 보며 소월의 진달래꽃을 생각하면 시인이 된 듯한 기분으로 가볍게 오를 수 있는데 2봉 오름길은 제1봉과 달리 위험하지는 않다.

<제2봉정상의 칠성각과 삼부인당>

2봉 정상에 오르면 정상에 자그마한 집이 2채가 있는데 한 채는 칠성각이라 하고 한 채는 삼부인당이다.

산을 다니다보면 당산도 있고 당집도 볼 수 있지만 봉우리 꼭대기에 당집이 있는 곳은 이곳 팔봉산이 유일무이할 것으로 여겨지기도 한다.

나는 당집이니 칠성각이니 하는 따위와는 거리가 멀어 대충보고 지나쳤는데 제2봉의 정상석이 삼부인당의 옆 마당쯤 되는 곳에 있으니 그냥 지나칠 수 없었는데 삼부인당 서쪽 측면에는 삼부인당의 유래에 대한 설명문이 붙어 있었는데 이러했다.

<3봉에서 보는 2봉 정상>

삼부인당의 유래

*팔봉산 제2봉 정상에 위치한 이 당집은 3부인(이씨, 김씨. 홍씨) 신을 모시는 곳으로 지금으로부터 400여 년 전인 조선 선조(1590년) 때부터 팔봉산 주변 사람들이 마을의 평온을 빌고 풍년을 기원하고 액운을 방지하는 당굿을 해 오는 곳이다.

*팔봉산 당산제는 지금까지 유일하게 전승되어 오는 부락제로서 매년음력 3월 보름과 9월 보름에 전통적인 굿과 제사를 지내면서 나라의 백성이 평안하고 관광객이 산과 강에서 무사 안녕하기를 축원한다.

*팔봉산 굿 놀이는 칠성, 산신, 삼부인을 모시는 3마당으로 되어 있는데 팔봉산 당굿을 보면 무병장수하고 소원이 성취된다 하여 도처에서 많은 사람들이 굿 놀이를 보러온다.

위 삼부인당에 대해 첨언한다면 3부인의 이씨는 시어머니, 김씨는 며느리, 홍씨는 시누이라고 하며 3월과 9월 보름에 벌이는 당굿 중 3월 당굿이 큰데 이때는 삼부인신과 칠성신을 기리는 세 마당 굿을 사흘 동안 이어지는데 이 굿을 보면 무병장수하고 복을 받으며 소원성취 한다는 전설이 전해지고 있다고 한다.

<2봉정상석>

<제2봉 정상에서>

2봉에서의 조망은 제1봉보다 뛰어나 사방을 한 눈에 둘러 볼 수 있었는데 특히 강이 산을 휘감아 도는 풍경에 노송들이 바람에 움직이는 모습이 더해지니 과연 천하제일의 풍광이었다.

또한 제2봉에서 가야할 3봉의 모습을 보면 감탄사가 저절로 나올 정도로 뛰어났는데 증명사진을 찍기 위한 카메라를 고정시키려 했으나 마땅치 않았는데 때 마침 2명이 올라와 사진을 부탁해 증명사진을 찍는다.

<2봉에서 3봉을 배경으로>

2봉에 올라 쓴 어느 기자분의 글에는 백일기도를 드리는 어느 박수의 밀을 인용한 글로 2봉에서 3봉을 보면 3봉 우뚝 솟은 바위가 남성의 심볼을 상징하는 남근석이라 하며 4봉을 오르기 위해 빠져나가야 하는 해산굴을 여성의 심볼인 여근곡이라고 했다하여 유심히 살피니 정말 남근석을 닮았다.

자연의 섭리란 참으로 오묘하다는 생각을 하며 3봉을 가기 위해 2봉을 조심스럽게 내려선다.

 

3봉으로 가는 길

2봉을 내려서면 100m앞에 팔봉산의 상봉인 제3봉이 우뚝 솟아 있으며 2봉에서 중간 정도 간 뒤 예각정도 꺾여 3봉으로 가는데 예각으로 꺾이는 지점에는 좌측으로는 울창한 송림아래 긴 의자를 설치한 휴게장소가 있다.

팔봉산은 일정한 시간 내에 전체의 산을 주파하는 일반적인 산과 달리 속도를 중요시 하지 않으며 풍경이 멋있는 곳에 다리가 서면 몸이 멈추고 몸이 멈추면 눈과 마음은 주변의 풍광에 젖어 시간을 초월하는 산이다.

그래서인지 작은 산에 쉼터도 많고 또 쉼터가 없는 곳에는 사방에 널려 있는 너럭바위가 곧 쉼터이다.

3봉으로 가는 중간 쉼터에는 3명의 여자 산님이 쉬고 있었다.

<3봉의 모습>

3봉 아래로 서면 50~60도 정도 되는 철계단이 높다랗게 설치되어 있는데 고소공포증이 있는 분들은 이곳을 오르지 못하므로 우측으로 3봉을 우회하는 길이 있다.

말이 50~60도이지 조금 과장을 하면 직각에 가까운 철계단을 오르면 맨손으로 암벽을 타서 지나고 다시 완만한 철계단을 지나야 3봉 정상에 설 수 있는데 이곳이 팔봉산에서 제일 높은 상봉이다.

2봉에서 볼 때 남근석 같이 보였으나 가까이에서 보면 전혀 남근석 같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데 이 바위는 장군바위라고 부른다.

<제3봉 정상과 장군바위>

3봉정상석이 있는 곳까지 올라설 수 있지만 이 바위에는 오를 수 없으며 옛날에는 가뭄이 들면 이 바위위에 치마를 씌우고 기우제를 지냈다고 하는데 이러한 풍습을 본다면 예로부터 남근석의 의미를 지니고 있었던 것 같은 생각이 든다.

이곳 상봉에서의 조망은 팔봉산 어느 곳보다 뛰어난데 동남쪽으로 삼부인당이 있는 2봉이 노송이 양손으로 올려 세운 듯 안락하게 보인다.

좌측 옆으로는 팔봉교와 팔봉교 아래로 끈임 없이 흐르는 강물이 보아고 주차장 방향으로는 암벽에 뿌리를 내리고 억겹의 세월을 지내온 노송과 생을 다한 고사목이 험난했던 세월을 말해주는 듯하다.

<3봉에서>

<3봉에서 바라본 강가의 풍경>

벼랑 위에는 장방형의 홍천강 강돌을 올려놓고 3봉이 아닌 八峯山 (팔봉산)이라는 정상석을 홍천군의 이름으로 세웠으니 주봉으로 8봉을 대표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가야할 서북쪽으로는 4봉과 5봉의 정상이 가까이 보인다.

< 3봉 정상에서 보는 4봉과 5봉 정상 >

4봉 위에는 2명의 산님이 올라 즐거움을 만끽하고 있었는데 3봉을 막 올라서는 산님들과 일행이었는지 소리를 지르며 의사소통을 한다.

3봉 아래 쉼터에서 휴식을 취하던 여자 산님3명도 3봉을 오르긴 했지만 무섭다는 이유로 위쪽을 생략하고 정상석 아래쪽으로 우회하여 4봉으로 향한다.

알맞은 자리를 잡아 카메라를 고정시켜 증명사진을 찍고 3봉을 조심스럽게 하산을 했는데 위험한 길도 아닌 듯 했는데 연속으로 철사다리가 놓여 있다.

 

4봉으로 가는 길

3봉과 4봉은 아주 가까운 거리에 있는데 거리는 가깝지만 그 사이는 협곡을 이루고 있어 3봉정상에서 협곡의 저점으로 내려서려면 위험한 바위를 내려서야 한다.

예전에는 내려선 지점에서는 우회길이 없어 다음 봉으로 진행을 하려면 그 유명한 해산굴을 통해 4봉을 오르게 되어 있었는데 세월이 흐르며 산길도 진화를 했다.

<3봉을 내려서며 4봉으로>

<3봉과 4봉을 연결한 철 구름다리

이 다리를 지나면 해산굴은 생략하게 된다.>

<아래서 본 구름다리>

3봉에서 4봉을 가기 위해 조금을 내려섰는데 오랜 동안 팔봉산을 찾지 않은 사이 여기저기 안전을 위한 시설물이 생겼는데 3봉과 4봉을 잇는 구름다리를 놓은 것이다.

앞서가던 여자 산님 3명과 남자 산님 2명이 협곡으로 내려가는 철사다리와 구름다리 갈림길에서 구름다리로 들어서자 위에서 보고 있던 사람이 구름다리를 건너지 말고 철사다리를 타고 협곡으로 내려서라며 계속 주문을 하더니 팔봉산을 왔으면 해산굴을 지나야 한다고 소리치자 이들이 다시 되돌아가 철사다리를 내려서 협곡으로 들어선다.

<해산굴로 가는 길>

<해산굴을 빠져 나가는 모습>

뒤에서 아무 말 없이 그들의 행동을 보며 뒤따른다.

해산굴!!!

해산굴의 유래

팔봉산 4봉에 태고의 신비를 안고 자연적으로 형성된 이 굴은 통과하는 과정의 어려움이 산모가 아이를 낳는 고통을 느끼게 한다 하여 해산굴이라 부르며 여러 번 빠져 나갈수록 무병장수 한다는 전설이 일명 장수굴이라고도 불린다.

전국의 산을 다니다 보면 무수히 많은 해산굴을 만나게 되는데 대부분 작은 수고만 하면 빠져 나가는 곳이지만 이곳의 해산굴은 뚱뚱한 사람들에게는 빠져나가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 전국 최고의 해산굴이다.

해산굴을 오르기 위해 협곡에서 조금 올라서면 왼쪽에 해산굴의 안내판에 있는 글입니다.

이곳은 팔봉산의 명물로 익히 산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는 소문이 나 있는 곳으로 전에 서술한바와 같이 3봉의 우뚝 솟은 바위가 남성의 심볼인 남근석이라면 4봉을 오르는 관문이 이곳은 여성의 심볼인 여근곡이라는 어느 박수의 주장을 떠 올리며 생명이 없는 이러한 바위도 자연의 이치에 맞는 형태를 취하고 있다는 생각을 해보지만 어쩌면 이러한 바위도 나름대로의 생명을 지니고 자연의 이치와 순리에 순행하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20여년전 동네 이웃 부부산악회 회원들과 이곳을 찾았었다.

당시 날씬한 여자들이 이곳을 빠져 나가며 나는 뚱뚱해 이곳을 빠져 나갈 수 없을 것이라고 했다.

만약 빠져 나가지 못하면 창피해서 어쩌나 근심어린 표정을 지으며 좁은 해산굴을 빠져나가던 생각을 하며 짧은 시간 긴 회상에 잠겨본다.

위에서 자세를 주문해주고 아래서 오르는 여자 산님은 주문대로 자세를 갖추며 하나 둘 모두 빠져 나간 후 혼자서 빠져 나갈 수 있다는 내 의견을 무시하고 위에서 잡아주니 이게 20년 이상 산을 다닌 사람의 체면이 말이 아니다.

<4봉 정상에서 보는 3봉정상과 2봉 정상>

<4봉 정상에서 보는 홍천강>

해산굴을 빠져나갈 때는 요령이 필요한데 요령이라는 것은 공식과 같다.

다른 자세로는 도저히 빠져나갈 수 없고 가지고 있던 배낭을 먼저 밖으로 보낸 뒤 먼저 위 구멍 방향으로 머리를 올리고 엉덩이와 등을 눕는 자세로 돌에 밀착시킨 후 발을 구부려 건너편 돌에 댄 후 발을 펴면서 이 힘을 이용해 머리가 굴 밖으로 나오게 하고 몸을 좌우로 움직이며 팔을 뺀 후 양 팔의 힘으로 몸이 빠져나오는 방법이다.

해산굴을 빠져 나온 뒤 나온 공간을 다시 봐도 좁은 곳으로 어마어마한 덩치가 빠져나올 수 있었다는 게 믿어지지 않는 듯 했는데 그렇다면 아직은 나도 날씬한 편에 속할 수도 있다는 자신감이 든다.

해산굴울 빠져나온 오른 쪽으로는 3봉 하산로와 4봉을 잇는 철제 하늘다리가 놓여져 있다.

3봉에서 4봉을 힘들이지 않고 10초면 건널 수 있지만 그럴 경우 해산굴을 그냥지나치게 되므로 해산굴을 지나기 위해서는 한동안 내려섰다가 다시 암봉을 기어 올라야 해산굴을 갈 수 있다.

조금은 번거롭고 힘들기는 하지만 이런 과정이 팔봉산의 명물과 추억만들기를 위한 과정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4봉 정상에서>

해산굴에서 약간 위쪽이 4봉 정상이다.

정상석은 조금 아래 노송의 그늘 속에 다른 곳과 마찬가지로 사각 시멘트 위에 강돌을 고정시켰고 팔봉산, 4, 홍천군이라고 음각했다.

알맞은 곳에 카메라를 고정시키고 증명사진을 찍고 아래 방향으로 내려선다.

 

5봉으로 가는 길

4봉을 내려서기 위해 방향을 잡으면 눈앞에 펼쳐지는 5봉은 한마디로 우람하다.

덩치 큰 바위에 사다리를 기대 놓은 것 같은 철계단이 그 위용을 나타내는데 위험하다는 생각보다는 안정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5봉을 오르는 철 계단>

조심스럽게 4봉을 내려와 철계단을 오르면 초입에 정상석이 있으며 좌측으로는 코뿔소의 코뿔처럼 튀어나온 바위와 그 아래로 평쳐지는 강과 어우러져 멋진 풍경이 펼쳐진다.

해산굴을 먼저 빠져나온 여자 산님2명과 남자 산님2명이 전마 좋은 방향으로 사진을 찍고 있었는데 실례를 무릅쓰고 사진을 찍어달라는 부탁을 해 5봉에서 한 장의 사진을 남겼는데 5봉에서의 조망은 마치 쌍봉낙타등처럼 솟고 코뿔소의 뿔처럼 튀어 나온 바위와 맞닿은 굽이도는 홍천강의 강물과 백사장이 한폭의 그림을 연상시킬 정도이다.

<5봉의 노송의 멋진모습>

<5봉 낙타등에 올라서>

길게 이어진 날 등 주차장 방향으로는 바위 틈새에 뿌리를 박고 긴 세월 비바람을 이기며 살아온 소나무의 끈질긴 생명력을 느낄 수 있으며 노송 뒤로는 넓은 들판과 가운데 마을이 조성되어 있으며 마을 가운데를 가로지른 도로가 펼쳐진 모습이 평화스러워 보인다.

5봉에는 다른 봉우리와 달리 사각 시멘트 위에 강돌로 세운 정상석의 모습이 사라졌는데 누군가가 훼손을 한 것인지 있어야 할 자리에 있지 않아 보기에 안 좋았고 아쉬운 마음도 컸다.

<정상석 받침은 있는데 정상석은 어디로.........>

<5봉 하산 철 계단에서 산님>

사진을 찍던 남자 산님이 먼저 하산을 하고 이어서 6봉을 가기위해 내려서는데 사진을 찍어 주었던 여자 산님이 길이 위험하다며 함께 내려갈 것을 요구하니 산에서는 누구나 친구나 가족과 같이 대하니 안전하게 함께 내려선다.

5봉을 내려서 6봉으로 오르는 협곡은 중간 탈출로가 있는 곳으로 대다수의 산님들이 6, 7, 8봉을 생략하고 이곳을 통해 하산을 하는 편이다.

함께 5봉에서 내려선 산님들도 이곳으로 하산한다고 하여 작별을 하고 6봉 철계단으로 올라선다.

 

6봉으로 가는 길

5봉에서 함께 하산한 2명과 미리 대기하고 있던 3명은 일행으로 3명이 찍은 사진이 필요하다며 사진을 찍어 달라는 요청을 받고 흔쾌히 사진을 찍어주고 경사진 철계단을 오른다.

<제6봉으로 오르는 철계단>

철계단을 올라 조금을 오르면 다른 봉우리와 같이 바위와 노송이 어우러져 아름다운 풍경을 연출하는데 정상석이 세워진 곳은 다른 곳과 달리 보물찾기를 하는 것처럼 유심히 살펴봐야 찾을 수 있는데 다른 봉의 정상석은 눈에 잘 띄는 곳에 세운 반면 6봉은 자연석이 움푹패인 지점에 시멘트로 고정 받침을 만들고 그 위에 정상석을 세워 바위의 수평을 맞추었다.

<6봉 정상석>

<6봉 정상을 지키는 명품 노송>

5봉을 지나 하산로가 있으므로 6봉부터는 오르는 사람들이 적어서인지 산의 훼손도 적게 느껴졌고 노송도 더 많았다.

주차장이 있는 방향으로 잘생긴 노송은 바위에 뿌리를 내렸으므로 무척이나 오래된 나무같았는데 분재화분에 심은 작은 분재의 모습을 하고 있었는데 아마도 이러한 나무는 가치로 따지면 억대를 호가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소나무 사이로 주차장과 강가를 바라보며 6봉을 내려선다.

 

7봉으로 가는 길

7봉을 오르기 전 만나는 돌탑은 향수를 불러일으키며 많은 바람의 산물이다.

<7봉 오르기전 돌무더기>

산을 다니다 보면 이곳처럼 짜임새나 계획을 가지고 싸은 탑이 아닌 누군가 하나 둘 던져 이루어진 돌탑을 가끔 만나게 된다.

나는 이러한 돌탑을 볼 때마다 어릴때 시골의 성황당을 연상하는데 작은 고개를 넘는 곳이나 큰 고목나무 주위에 이러한 돌무더기가 있곤 했는데 당시 어르신들의 말씀이 신에게 마음의 소원을 빌며 돌을 던지면 이루어 진다는 것이다.

많은 세월이 흘렀어도 뇌리에 생생히 남아있는데 소원이 이루어지고 안 이루어지는 것은 별개의 문제이고 소원을 담은 돌을 던지는 마음이 순수하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러한 순수함이 깃들어 있는 곳이 7봉이며 7봉은 다른 봉우리 오름길과 달리 연봉으로 되어 있다.

<주차장과 강물 그리고 진달래의 조화>

직벽이나 직벽을 오르는 철계단을 오르면 바로 정상봉이 있는 반면 7봉은 이러한 과정을 2번을 거쳐야 정상석이 있는 곳에 도달할 수 있다는 점이 틀린다.

또한 7봉은 노송도 제일 많아 다른 봉우리를 오르면 몸이 노출되어 직사광선을 받아야 하는데 7봉은 소나무 그늘속으로 지날 수 있으며 서쪽 강가 직벽을 타고 올라오는 시원한 바람이 흐르는 땀을 식혀주무로 여유있는 산행을 할 수 있으며 그늘과 강가를 내려다 볼 수 있는 장소가 많아 아무 곳이나 앉으면 쉼터가 되는데 늘 보며 지나왔던 강가의 모습이 방향을 바꾸면서 또 다른 맛을 느끼게 해주는 곳이 7봉이다.

<7봉에서 보는 풍경>

또한 7봉은 팔봉산 8봉중 훼손이 제일 적고 시설물이 적은 윈시에 가까운 봉으로 7봉을 처음에 오를 때도 철계단이 아닌 철심을 박아 손잡이를 만들었는데 이러한 시설물은 20여년전에 왔을 때나 같은 모습이었는데 7봉 정상을 지나 8봉으로 가는 도중 작은 협곡에 철다리를 설치한 것이 유일하게 새로운 시설물을 설치한 부분이다.

전위봉에서 정상석이 있는 곳으로 가는 도중 곱게 피어난 진달래의 짙은 분홍빛이 뒤로 보이는 강물과 조화를 이루어 아름다운 풍경을 연출하고 흐르는 강물위로 놓인 다리위를 지나는 차량들의 모습에서 봄의 활기를 느낀다.

<7봉 정상석>

<7봉 협곡을 가로지른 철 구름다리>

7봉의 정상석은 제일 높은 곳에 설치된 것이 아니라 아래 햇볕이 잘 드는 곳에 세웠는데 시멘트 사각받침에 비해 정상석이 너무 작아 밸런스가 맞지 않았는데 이러한 것도 의도적인 연출인지? 아니면 강돌을 제대로 고를 수 없어 작은 돌은 얹었는지?

정상석을 지나 내림막 길로 접어들면 설치하지 안했어도 될 철재 다리가 있는데 이곳을 지나 로프가 매여 있는 길을 따라 내려선다.

 

8봉으로 가는 길

다른 봉우리에 비해 8봉은 위험한 구간이다.

7봉을 내려서면 위험 경고판이 설치되어 있는데 팔봉산에서 안전사고가 가장 많이 나는 곳으로 노약자는 우측 탈출로로 내려서라는 내용이다.

<경고문과 제8>

<8봉 오름길의 노송>

물론 산을 많이 다니고 암벽을 많이 탄 사람들도 있으나 그래도 누구를 막론하고 안전사고에 대비해 조심해야 할 구간임에는 틀림이 없다.

그리고 8봉은 선택받아 오를 수 있는 계절이 있는 봉으로 적기에 이 산을 찾은 것만 해도 행운인 것이다.

8봉을 넘어 하산하는 길은 무척 가팔라 조심을 해야함은 두말할 나위가 없지만 강바닥으로 내려서 줄을 잡고 암벽을 붙어 지나던 옛기억을 떠올렸는데 여름 우기에는 강물이 등산로를 넘겨 안전사고가 일어날 수가 있으므로 통제를 하는 곳이니 우기가 오기전 이곳을 찾아야 한다.

8봉을 오르기 위해 암벽으로 붙으면 거친 바위가 수시로 앞을 막는데 곳곳에 철심을 박아 손잡이를 만들어 놓아 주의를 기울이며 조심을 하면 위험에서 벗어날 수 있다.

잠시 암벽을 오르면 땀이 흐르고 잠시 쉬면서 뒤돌아 7봉 내리막을 보고 있노라면 시원한 바람이 어느새 흐르는 땀을 식혀준다.

<8봉 정상석>

다시 한차례 힘을 내면 8봉 정상에 서게 되는데 8봉 정상은 온통 바위 틈새 뿌리를 내린 분재전시장을 방불케 하는데 힘이 센듯한 노송 몇 그루가 긴 세월 바위와 싸우며 바위를 통째로 반으로 자르고 있는 중이었으며 강바람이 불어오는 서쪽 방향으로 독립된 바위위에 단아한 모습으로 정상석을 세웠다.

1봉을 오를 때 많은 산님들이 5봉을 오른 후 하산로로 탈출하고 6봉부터 시작해 8봉에 이르기까지 산은 조용하고 아무도 없다.

<8봉에서>

정상을 오르면 쉬고 있는 산님이 있겠지? 라는 기대는 기대로 끝나고 현실은 반대로 적막이 흐르는 고요 그 자체였다.

그늘에 앉아 휴식을 취하며 시간을 보내고 알맞은 자리에 카메라를 고정시키고 자동셧타를 이용해 증명사진을 찍고 하산을 시작한다.

인기척이 들리더니 조금을 더 가니 북쪽 끝 부분에 3명의 산님이 휴식을 취하고 있었는데 멀리 떨어져있어 인사를 나눌 수 없었다.

<8봉 하산길의 철 계단>

8봉이 왜 안전사고가 자주 일어나는지는 이곳으로 하산을 해야 알 수 있다.

비록 산은 낮다 해도 하산로는 거칠고 경사가 심해 항상 긴장해야하는데 거기다가 이곳은 항상 습한 곳이어서 바위에는 온통 두꺼운 이끼가 서식하는 곳인데 하산로는 로프가 있으면서 철심을 박아 발판을 만들었는데 습한 곳이어서 발판은 미끄러워 긴장은 늦출 수 없는 곳인데 산행을 모두 마쳤다 해서 긴장이 풀린 상태로 내려서다 안전시고가 속출하곤 한다.

위로는 로프에 의존하고 아래는 발판을 잘 딛으며 조심스럽게 하산해야하며 강가에 도착할 즈음이면 철계단이 놓여있는데 경사가 심해 조심하지 않으면 안 된다.

 

강가를 지나 원점회귀로 가는 길

말로는 설명이 필요 없다.

백문이 불여일견도 아니고 요즘은 백견이 불여일타라고 하는데 백번 보는 것보다 한번 부딪치는 것이 더 확실하다고 한다.

<강바닥으로 내려서서>

조심스럽게 8봉을 내려서면 바로 강바닥으로 내려서게 되는데 우기에는 강바닥에 만든 길이 모두 물에 잠기게 되는데 20여년과 비교하면 홍천군에서 세심한 관심을 가지고 강 길을 보완해 놓았다.

맨바닥이었던 길에 철재로 길을 만들고 물가쪽에는 난간을 세워 사고예방에 신경을 썼는데 옛날 바위에 로프를 설치하고 평균대처럼 좁은 철판을 이어 길을 만들었던 것과 비교하면 길도 세월이 흐름에 따라 향상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옛날에는 이렇게 지났다>

<그러던 것이 요즘은 이렇게 바뀌었다>

물길이 오랜 세월 바위를 깎아 만든 길이 있는 바위지대를 지나다 보면 길지 않은 출렁다리가 있는데 현수교형태였던 이 다리는 튼튼하고 넓게 보완작업을 했지만 그 자리에 그대로 설치해 스릴과 즐거움을 함께 느낄 수 있도록 배려를 했다.

<앙증맞게 생긴 출렁현수교>

출렁다리를 지나면 모래사장이 있는 강가로 등산인이나 연인들이 데이트하기 좋은 장소인데 여름철이면 매표소에서 입장을 한 후 산행을 하지 않고 우측 강가로 내려서 물을 즐기고 강가를 거니는 연인이나 가족단위의 관광객도 상당히 많은 곳이기도 한다.

<아슬아슬한 강가를 지나서>

모래사장이 있는 강가로 올라서 10여분을 강물이 흐르는 반대방향으로 진행을 하면 매표소가 나오며 팔봉산 원점회귀를 마치는 지점이기도 하다.

<사색을 즐길 수 있는 강변도로>

40여명이 되는 백두대간을 하면 선두팀과 중간팀 그리고 후미팀이 정해지며 선두팀은 마라톤을 하는 것처럼 앞뒤도 제대로 보지 않고 달려 평균 시간보다 얼마가 빨랐다고 하는 시간과 싸우는 산행을 하게 되며 혼자 기맥이나 정맥길을 걷다보면 대중교통 시간을 맞춰 하산을 해야 하므로 제대로 쉬지도 못하고 줄기차게 산행을 해야 하기도 하는데 이곳 팔봉산은 전자의 산행과는 다른 산행으로 시간을 초월하며 눈에 보이는 경관은 모두 즐기며 발과 몸으로 부딪칠 수 있는 행동은 모두 이루며 마음껏 산행을 하는 산으로 노송과 바위와 그리고 강 3박자를 갖춘 팔봉산은 인간이 존재하는 한 항상 사랑을 받을 수 있는 산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