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남산 산행기(1)
경주 남산 산행기
고위산 권 문화재 탐방기
산행일시: 2014년 04월 26일
누구와: 나홀로
산행거리: 약 11.8㎞ 중 6.3km
산행시간: 6시간 30분(08:30~16:00)
산행코스:용장3리(08:30)-천룡사지(09:15)-고위봉(10:17)-신선암(10:48)-칠불암(11:00)-393봉(11:40)-이영재(12:40)-대연화좌대(12:58)-금오산(13:18)-상사바위(13:52)-바둑바위(14:00)-상선암(14:42)-석조여래좌상(14:53)-선각육존불(15:13)-마애관음보살상(15:22)-삼릉(15:35)-삼불사(15:55)-삼불사주차장(16:00)

무궁화호 열차를 이용해 남산 가는 방법
청량리역에서 21시13분 열차 승차-익일 02시27분 경주역하차(요금23.900원, 5시간14분소요)
경주역에서 길을 건너 500번 506번 등 시내버스를 이용해 오릉~용장리를 지나는 버스 이용
◎산행 전 이야기
명산100산 중 서울 근교에 있는 산들은 일찌감치 마쳤으나 서울에서 원거리에 있는 산들이 대부분 남아 있는데 비교적 접근하가 쉬운 경주 남산이나 구미의 금오산 같은 경우는 마음만 먹는다면 아무 때나 산행하려고 아껴 두었던 산 중의 하나이기도 합니다.

4월27일 대구 독립군들과 영천에 있는 보현산을 합동산행하기로 되어 있어 이참에 두 산 가운데 하나의 산을 오르자는 심산으로 영천과 인접한 곳에 있는 경주 남산을 오르기로 하였습니다.
경주 남산은 그리 높지 않으므로 다음날 산행에도 큰 지장을 주지 않으며 산 전체가 박물관이라는 수식어가 붙을 정도로 유적이 많은 곳이기도 합니다.
경주를 처음 찾은 건 중학교 3학년 때 수학여행을 왔었고 우리 아이들을 데리고 20여년전에 왔던 게 전부로 앨범을 뒤적이면 근 반세기 전의 앳된 모습으로 교복을 입고 모습과 아이들의 어린 모습이 남아있습니다.
추억이 서려있는 고도 경주를 찾아 가기위해 서울에서 하루 두 번 출발하는 청량리에서 무궁화호에 몸을 실었습니다.
익일 02시30분이 다되어 도착한 경주역
인근에 있는24시 편의점에서 찜질방 위치를 물으니 도보로 30분 거리인 황성동 무슨 스포랙스라고 친절하게 가르쳐 주기에 밤거리를 한동안 걸어 찜질방을 찾아 잠시 눈을 붙이고 다음날 아침 여유 있게 남산으로 나섰습니다.
노천박물관 남산은?
산림청의 글을 인용하자면
「경주 남산은 옛 신라의 숨결을 머금은 거대한 문화재로 신라인들은 천년을 두고 남산을 보듬고 아끼며 왕과 귀족이 불국사로 발걸음을 옮길 때 백성들은 남산을 올랐을 것으로 남산은 우리 조상들에겐 마음의 휴식처이자 성지였다」.고 적고 있습니다.

<고위봉을 오르며 전망대에서 내려다 본 천룡사지 고원입니다>
또한 삼국유사는 경주를 가리켜「 사사성장 탑탑안행(寺寺星張 塔塔雁行)」 이라 묘사했다는데 「이는 절은 하늘의 별만큼 많고, 탑은 기러기가 줄지어 서 있는 듯하다.」라는 뜻으로 그 중심에 남산이 있다는 것이랍니다.
이러한 남산은 골골 계곡마다 문화재가 산재해 있으므로 하루에 모든 곳을 답사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효율적인 답사를 위해 들머리와 날머리를 정하는 것이 중요하므로 들머리는 용장3리 틈수골로, 날머리는 삼릉으로 정했습니다.
들머리를 틈수골로 잡을 때 용장사지를 답사하는데 어려움은 있지만 도면으로 분석하니 천룡사지와 고위봉, 그리고 중요한 칠불암을 답사하려면 틈수골이 제일 낫다는 결론을 내렸으며 용장사지 3층 석탑은 주능선3거리에서 역방향으로 10여분을 내려선다는 계획이었습니다.
◎틈수골에서 천룡사지로 가는 길
어렵사리 시내버스를 타고 용장3리 틈수골에 하차하여 산행을 준비한다.
틈수골이란 천룡사 돌 틈에서 물이 새어 나오는 골짜기에서 이름 붙여진 곳이라고 한다.

<용장3리인 틈소골 입구입니다>

<마을안 Y형태 길에서 등산로는 왼쪽입니다>
틈수골 정류장에서 마을 안으로 들어서면 마을회관을 지나고 이어서 길은 Y자 형태가 되는데 작은 안내판에 의하면 등산로는 좌측이고 우측 길은 사유지라고 통행을 제한하고 있었다.
이곳을 지날 때는 아무런 의심이 없었는데 고위봉 능선에서 내려다 본 뒤 생각해보면 이러한 것이 모두 기획된 연출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는데 출입 제한된 계곡길로 올라가면 천룡사지로 짧은 시간에 올라갈 수 있는데 능선길로 한참을 돌아 가야할 필요가 없다는 것인데 사유지라해도 신라시대 천룡사가 있을 당시부터 다니던 길을 막을 수는 없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다.
이러한 가정 하에 그러면 누가 이렇게 어렵게 만들었을까? 하는 점으로 이럴 경우 이득을 보는 사람이 있을 것으로 그것은 천룡사지 근처에 새로운 사찰을 운영하는 사람들이 아닐까? 조심스럽게 추정해본다.

<천룡사지1.6km를 알리는 이정표를 지납니다>
Y길에서 좌측으로 들어서면 이정표가 있는데 천룡사지1.6km, 고위봉2.1km로 표기되어 있다.
이정표를 지나면서 가파른 오르막이 한참이나 계속 이어지는데 이 길은 차량 진입이 가능한 도로로 교행이 불가능 하므로 곳곳에 대피소를 만들었는데 겨울철 눈이 내렸을 때는 위험한 도로였다.
도로를 따라 오르며 우측 나뭇가지 사이로 산중 큰 웅덩이가 보이고 고원 분지가 보이는데 나중에 알았는데 이 넓은 곳이 천룡사지 일대인 것이었다.
이곳에서 조금을 오르면 소방서 이정목이 서 있는 3거리가 나온다.
이곳은 중요한 위치인데 이정표가 너무나 소홀하게 만들어져 있다.
직진으로 가면 천룡사지이고 좌측으로 가면 열반재를 거쳐 고위봉으로 오르는 길인데 안내가 제대로 되지 않아 엉뚱한 곳으로 지나야만 했다.
이곳에서 직진으로 조금 오르면 길이 직진과 우측으로 갈라지는 작은 3거리가 나오는데 아무런 표식이 없어 우측으로 들어섰지만 제대로 천룡사지 3층석탑을 찾아가려면 직진으로 가야한다.
우측으로 들어서니 옛 묘지가 나오고 묘지 앞에는 양쪽으로 연꽃문양이 새겨진 석조 유구가 뒹굴고 있었는데 분명 옛 신라의 혼이 묻어 있는 석물이었다.

<천룡사지 부근 묘지앞 유구입니다>

<녹원정사 별채로 보이는 건물입니다>
아래쪽에서 기척이 들리기에 들어서니 위아래로 건물이 있는데 아래쪽은 사찰의 표식이 없는데 사찰의 별채 같은 생각도 들었고 위쪽으로 들어서니 녹원정사였는데 실례를 무릅쓰고 들어가 천룡사지 3층석탑을 물었다.
식사를 하려다 말고 스님 한 분이 나와 친절하게 알려주었다.
스님이 알려준 대로 50~60m 떨어진 곳에 천룡사지 3층 석탑이 있었다.
◎천룡사가 있던 고원
넓은 고원 중앙에 석탑이 하나 있었으니 천룡사지 3층석탑이다.
설에 의하면 신라 시대에 ‘제’와 ‘안’이라는 두 여인이 천 년을 살기 위해 지었다는 천룡사!
세월이 천년이 흘러 사운이 다 되었는가?
그런가 하면 중국 사신 악붕귀는 천룡사를 보고 " 이 절이 파괴되면 얼마 못 가 나라가 망할 것이다. "라고 했다는데 사운이 다되어 신라가 멸망을 했는가? 아니면 천룡사와 신라의 운이 함께 한 것인가? 진실은 알 수가 없고 모든 건 설일 뿐 현실은 넓은 고원 천룡사 자리에는 3층석탑만 외로이 있을 뿐이다.


<보물 제1188호인 천룡사지3층석탑입니다>


<천룡사지 석조유구>
천룡사지3층석탑!!!
경주 남산 유적 답사 중 첫 번째 만나는 유적으로 내 맘 깊게 자리 잡을 것이다.
천룡사지3층석탑은 보물 제1188호로 안내판에는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높이 6.75m로 삼국유사에 남산 남쪽 제일 높은 봉우리를 고위산이라하고 산 남쪽의 절을 고사(高寺) 또는 천룡사(天龍寺)라고 기록하고 있다.
이 석탑은 단층기단위에 3층의 몸돌로 구성된 일반적인 형태로서 통일신라시대에 만들어 졌는데 원래는 천룡사터에 넘어져 있었으나 1990년 동국대학교 경주캠퍼스 박물관 조사단의 발굴 조사 후 1991년 기단의 일부와 꼭대기 부분 머리 장식 대부분이 없어진 것을 보충하여 현재의 모습으로 다시 세웠다.
축조 수법으로 보아 9세기경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안내판의 설명을 읽은 뒤 한 바퀴를 돌아보니 설명대로 머리부분 장식은 돌 색깔이 완전히 다른 게 표시가 나지만 기단부는 크게 차이가 나지 않는 것 같다.
남쪽에서 북쪽 방향으로 석탑을 보면 형태가 하늘로 날듯이 날렵하고 간결한 맛을 느낄 수 있는데 북쪽 방면의 1층 몸돌이 상당부분 훼손이 되어 있다.
한동안 천룡사지 석탑을 보며 시간을 보내다 고위산을 오르기 위해 석탑을 뒤로하고 돌아선다.

<천룡사지의 이정표인데 고위산 안내가 없습니다>
석탑에서 100m를 나오면 3거리가 나오고 이곳에 이정표가 있는데 틈수골입구1.5km, 새갓골주차장2.3km가 표시되어 있다.
있어야할 고위산의 안내가 없어 처음에 올라왔던 열반재 갈림 3거리까지 갔지만 시원스럽게 안내해줄 이정표가 없어 다시 천룡사지 앞 3거리로 와서 이정표의 주차장 방향으로 올라서니 길가 좌측에 고위산 천룡사라는 사찰이 또 있다.
천룡사지삼층석탑 근처에도 천룡사가 있는 것으로 보았는데 한 곳에 천룡사가 2곳? 아니면 같은 사찰? 의구심을 가지고 사찰 우측으로 나 있는 길을 따라 능선으로 올라서니 능선에는 차량통행이 가능한 천룡재다.
◎고위봉으로 가는 길은 어디에?
천룡재에는 이정표가 있는데 이정표에는 고위산을 적시하고 있지 않았다.
고위산 정상은 멀지 않은 곳에 보이는데 고위산 오름길은 증발이 되어 버렸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천룡사지에서 열반재3거리로 나와 열반재를 통해 고위봉으로 올라야 했는데 이정표의 부실로 산을 20여년 다니는 이 사람도 길을 잃어 비법정 등산로를 통해 고위봉을 올라야 했다.
등산로 폐쇄를 알리는 팻말이 세워진 곳을 통해 비법정 등산로로 들어섰는데 길은 뚜렷했으나 이곳으로 오르는 사람은 없었는데 대부분의 사람들이 천룡사지를 본 후 열반재를 통해 고위산으로 오르기 때문인데 천룡사지 쪽에서 고위산으로 오르는 이정표의 보완이 있어야 할 것 같다.

<위에서 보면 300m고원의 천룡사의 터가 무척 넓습니다>
능선을 오르다 바위 전망대에 올라서 틈새골과 천룡사지를 내려다보고 느낀점을 앞서 기록한 바와 같다.
주산을 고위봉으로 한 천룡사는 좌,우로 청룡과 백호가 감싸 안은 최고의 명당같이 보였고 고원에 드넓은 절터가 있음이 믿기지 않을 정도이다.
전망암을 지나 조금 올라서면 고위산 정상으로 이곳을 지나는 40대 중반 남자분과 이야기를 하게 되었는데 경주 남산에 대해 상세하게 설명을 해주며 남산의 유일한 국보인 칠불암을 꼭 보고가라고 당부를 한다.
◎고위산 정상에 서다
고위산!!!
삼국유사에 기록되어 있다는 역사의 산,


<고위산 정상에서 인증사진을 찍었습니다>
경주 남산에는 2개의 봉우리가 우뚝 서 마주보고 있는데 해발 468m의 금오봉과 해발494m의 고위봉으로 고위산 고위봉이라는 산명의 유래는 주변 봉우리보다 높다고 해서 붙여졌다고 하는데 남산은 경주시가지 남쪽의 산을 지칭하는 말로 남산에는 여러 산과 봉우리들이 있는데 이러한 산군들 가운데 제일 높은 산이 바로 고위산이다.
송림으로 둘러친 정상은 생각보다 넓었는데 주변 조망은 어려웠으며 남서쪽으로 오석의 정상석이 있다.
누군가 오기를 기다리니 노부부가 올라온다.
잠시 숨 돌릴 시간이 지나서 사진을 찍어 달라고 부탁을 하여 증명사진을 남기고 칠불암으로 가는 방향으로 내려선다.
◎신선암으로 가는 길
고위산 정상에서 500m를 내려서 백운재에 닿는다.

<백운재 이정표입니다>
고위봉을 오르기 전 천룡재에서 이정표가 안내하는 방향으로 백운재로 와서 이곳에서 고위봉으로 오르는 길이 지정된 등산로였는데 이러한 사정을 몰라 비법정 등산로를 통해 고위봉을 오른 것이다.
백운재에 있는 이정표에 의하면 용장사지로 가는 길은 저수지가 있는 좌측 방향이며 칠불암 방면은 직진이다.
칠불암 방면으로 들어서 가면 갈림길이나오는데 좌측으로는 칠불암가는 지름길이고 능선으로 오르면 봉화대로 가는 길인데 지름길로 들어서 조금을 지나면 또 다른 이정표를 만나는데 이정표에는 칠불암이 350m거리에 있음을 알린다.
이곳 3거리에서 칠불암 방향으로 조금을 오르면 전망 좋은 암봉이 있는데 암봉위 작은 틈새에 뿌리를 내리고 억겹의 세월을 살아가고 있는 소나무가 한 그루 있으니 토양에 뿌리를 내린 다른 나무들과 달리 가지도 부실하고 솔잎도 빈약해 보이는데 이러한 환경에서도 굳굳하게 살아가는 소나무가 마치 은근과 끈기를 가지고 살아가는 우리 민족의 파란만장한 역사를 대변하는 듯 했다.
이곳에서 사방을 두루 살피기에 적당하지만 칠불암은 아래쪽에 있으므로 관망이 되지 않는다.
잠시 사방을 둘러보지만 경주 인근의 지리에 어두워 실감이 나지 않아 이정표가 지시하는 방향으로 내리막 암릉길을 따라 내려선다.
유적지가 많아 세계자연유산에 등재되어 있는 남산은 산림으로는 그리 후한 점수를 받을 수 없는데 이는 산림이 황폐하고 도로정비도 제대로 되지 않아 안전사고의 유발이나 문화재 지역의 보호 등은 미흡한 편이다.

<마애불 위를 보면 비를 맞지않도록 석공의 지혜가 돋보이는 작품입니다>
조금을 내려서면 신선암 입구가 있는데 관리가 소홀해 자칫하면 그냥 지나칠 수 있을 것 같았는데 입구에 설명문과 사진을 곁들인 안내판설치가 있으면 좋을 것 같았다.
입구에서 50여m를 들어서면 자연암에 새긴 마애불이 온화한 모습으로 세상 모든 사람을 반긴다.
신선암!!!
남산유적 답사 중 두 번째 만나는 유적이다.
정식 명칭은 경주남산 신선암 마애보살반가상이다.

<깎까지른 절벽 위에 자연 바위에 있는 마애불로 정교함이 돋보입니다>
안내문의 설명에 의하면
보물 제199호인 신선암은 칠불암 위의 곧바로 선 절벽면에 새겨져 있어 마치 구름위에 앉아 있는듯 보이는데 머리에 삼면보관을 쓰고 있어 보살상임을 알 수 있다. 얼굴이 풍만하고 오른손에는 꽃가지를 들고 왼손에는 가슴까지 들어 올려서 설법하는 모양을 표현하였다.
팔각형으로 보이는 대좌 아래로 옷이 흘러내리고 오른쪽 다리는 아래로 내려놓은 자세다.
발은 연꽃위에 있으며 이처럼 유희좌를 표현하였음은 드문 예이다. 그 아래에 뭉게뭉게 피어나는 구름이 조각되어 있다.
불상의 높이는 1.4m이고 통일신라시대인 8세기 후반의 작품으로 보인다.
불상에 대해 문외한인 필자는 이글을 읽으면서 또 공부를 한다.
머리에 보를 쓰고 있는 경우 보살이라고 하니 절벽 아래 있는 칠불암의 부처는 머리에 무었을 쓰는지 아니면 쓰지 않는지 관찰을 해볼 것이다.
신선암 앞에는 마애라는 단어가 붙어있다.
경주 남산에 있는 불상은 마애불이 대부분인데 마애불이란? 바위에 새긴 부처를 뜻하는 말이며 신선암은 온화한 미소가 보는 이들에게 평화를 주며 외적인 면을 보면 비가와도 비글 맞지 않게 눈썹바위형태로 머리 위를 받치도록 바위를 깎아 조각을 했는데 이를 보면 석공의 기교와 정성을 엿볼 수 있는데 아마도 석공은 진짜로 살아 있는 부처의 혼을 담는다는 생각으로 신선암을 조각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신선암은 절벽위에 있는 바위에 새긴 석불로 앞 공간도 좁아 사진을 찍을 때도 아주 조심해야하는 곳이며 정상적인 통로로 다니지 않고 옆으로 우회하는 사람들을 볼 수 있었는데 다니는 사람들에 대한 안전 불감증도 문제겠으나 국립공원인 이곳을 관리하는 공단에도 큰 문제가 아닐 수 없는데 안전을 위해 통행할 수 없는 제도적 장치를 설치해야만 할 것 같다.
◎걸작 칠불을 만나고
신선암을 나와 암릉을 따라 한동안을 내려선다.
위험한 암릉 내리막길을 지나 작은 대나무 숲을 지나 일곱의 석불이 온화한 미소로 맞고 있었으니 바로 칠불암이다.

<남산 유적 중 유일한 국보인 칠불의 모습입니다>
칠불암!!!
남산유적 답사 중 세 번째 만나는 유적이다.
남산 유적가운데 유일한 국보라며 다른 곳은 못가더라도 칠불암만은 꼭 들려가라고 했던 이름 모를 산님의 말대로 칠불암에 왔다.
칠불암 역시 신선암과 같은 마애불로 마애불 중 최고의 걸작으로 통일신라 전성기의 걸작임을 보여주고 있다. 칠불은 바위를 깎아 조각한 삼존불과 삼존불 앞에 놓인 사면 바위에 새긴 사면불을 합하여 칠불이 되며 칠불 남쪽으로 암자가 있는데 이 암자가 칠불암이다.
삼존불 뒤 직각을 유지하는 바위면에는 누군가 마애각인 명각을 새겼는데 이를 감추기 위해 페인트로 덧칠한 것이 자연을 훼손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는데 명각이 있는 대로 두는 편이 더 자연스러울 것 같다.

<칠불 옆 암자는 칠불암인데 보통 통칭 칠불암이라 부릅니다.>
암자에서는 비구니 몇 분과 암자를 찾은 신도들이 칠불을 향해 열심히 염불을 외고 있었으며 이곳 암자에는 따로 부처를 모시는 게 아닌 것 같았다. 칠불이 있는 방향인 동북쪽의 벽면을 유리로 대체해 칠불암을 바라보며 기도를 올리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필자는 사면불 후면에 있는 석불을 찍으려 유리창 앞으로 갔다가 결례를 범하고 말았다.

<칠불중 뒤 3존불 가운데가 석가모니의 좌상입니다>
칠불암 앞에는 칠불암을 설명하는 안내문 입간판이 세워져 있는데 내용은 이러하다.
국보 제312호인 이 불상들은 경주남산 봉화골의 정상 가까이에 위치한 마애 삼존불과 사방불로서‘칠불암 마애석불’이라 불린다.
삼존불 가운데 있는 본존불은 앉아 있는 모습으로 미소가 가득 담긴 양감있는 얼굴과 풍만하고 당당한 자세를 통해 자비로운 부처님의 힘을 드러내고 있다.
왼쪽에만 걸치고 있는 옷은 몸에 그대로 밀착되어 굴곡이 실감나게 표현되어 있다. 오른손은 무릎위에 올려 손끝이 땅을 향하고 왼손은 배 부분에 대고 있는 모습이다.
사방불도 모두 연꽃이 핀 자리위에 앉아 있는 모습으로 각기 방향에 따라 손 모양을 달리하고 있다.
보살상이 본존을 향하고 있는 것이나 가슴이 길고 다리가 짧게 조각된 수법으로 보아 통일신라시대인 8세기경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안내문을 보고 아쉽다고 느낀 것은 칠불에 대한 이름이다.
다른 문건으로 삼존불의 이름을 알 수 있었는데 가운데가 석가모니불이며 양옆으로 미륵불과 석가여래불이라고 하는데 앞 사면불의 이름은 알 수가 없었는데 본존불과 같이 사면불에도 각각의 이름이 있을 텐데 안내문에도 석불의 이름이 없어 일반인들을 위한 구체적인 설명이 있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칠불암에서 인증 사진을 찍었습니다>
칠불암에 대해 문화유산채널의 실린 배재호님의 글을 퍼와 일부 편집했습니다.
불상이 7존 있어서 칠불암이라고 한다. 언제부터 이렇게 불렀는지 알 수는 없지만 칠불암은 남산 불교 유적 중에서 가장 남쪽에 있는데 맨 몸으로 올라가도 힘든 곳인데 7존의 불상을 새겨 놓았으니 할 말을 잃을 정도다. 그것도 대단한 수준으로 말이다. 이들 불상은 크다란 바위면에 부조된 불상 1존, 보살상 2존과 그 앞에 네모나게 돌을 대충 다듬은 다음 네 면에 걸쳐 각각 1존씩 새겨진 불상들로 이루어져 있다.
불삼존상 중에서 불상은 편단우견(偏袒右肩)식으로 법의를 착용하고 결가부좌한 채 항마촉지인을 결하고 있는데 편단우견이란 오른쪽 어깨를 드러낸 모습으로 이러한 편단우견은 스승에 대한 존경을 뜻과 오른쪽을 중요시 한다는 뜻이기도 한데 인도에서 밥을 오른손으로 먹고, 일을 본 뒤에 왼손으로 뒤처리를 하는 것은 다 이런 이유에서다.
그러나 정작 어떤 불상과 보살상을 조성하였는지는 알 수 없다. 수인으로 보면, 주존은 당연히 석가모니 불상이어야 하나 촉지인을 결하였다고 하여 석가모니불상이라고 단언할 수 없다. 이 시기는 촉지인이 석가모니불상 외에 아미타불상, 약사불상, 비로자나불상 등의 수인으로도 쓰이기 때문이다.
항마촉지인은 보드가야의 보리수 아래에서 결가부좌한 채 막 깨달음을 이루신 석가모니 붓다의 상징적인 수인으로 620년경, 인도를 방문하고 저술한 당나라 현장 스님의 「대당서역기(大唐西域記)」에서 석가모니의 불상에 대하여 구체적으로 기록하였다. 즉 편단우견의 착의법에 항마촉지인을 결한 불좌상에 관한 내용이다.
칠불암 불상의 배치법은 특이하다. 마애불삼존상의 앞을 사방불(四方佛)이 가로 막고 있다. 불상을 조성하면 앞을 가리지 않는 것이 일반적인데, 칠불암에서는 사방불을 앞에 배치함으로써 불삼존상을 예불하는 사람들의 시야를 가리고 있다. 사방불은 불교의 세계관(世界觀)이 발전하면서 등장하는데 500년이란 세월이 지나 불자들은 석가모니 외에도 또 다른 붓다들이 존재한다고 믿기 시작하였는데 대표적인 붓다가 바로 사방불로 동서남북 네 방향에 정토의 세계가 있는데, 동방정토, 서방정토, 남방정토, 북방정토가 그것이다.
칠불암의 사방불은 남산의 사방, 즉 남산 전체가 정토라는 것을 나타내려 한 것 같다.
다른 등산객에게 사진을 찍어달라 부탁해 인증사진을 남기고는 다음 목적지를 위해 머릿속에 각인 시키고 칠불암을 벗어나 왔던 길로 다시 오른다.
신선암 입구를 지나 전망암을 지나 삼거리에 선다.
◎보너스로 보는 용장계3층석탑
이정표에 의한 금오봉까지의 거리는 약3km이다.
금오봉 방향으로 200m를 가니 이정표가 나오고 이정표에 의하면 용장사곡 3층석탑을 안내하고 있어 망설이다가 계곡을 따라 내려선다.
이정표의 안내보다 먼 곳에 있다는 느낌과 계곡에서 한참을 올라갔다가 다시 내려서 석탑에 도착을 한다.

<머릿돌도 없고 관리도 너무나 허술해서 안타까웠던 석탑이었습니다>
용장계3층석탑!!!
남산유적 답사 중 네 번째 만나는 유적이다.
넓은 터에 외따로 혼자 있는 3층석탑은 세련됨보다는 둔탁한 느낌이 들었고 기단부의 받침석이 정교한 맛이 없었으며 기단부와 몸체 어느 곳에도 문양이나 무늬를 찾아 볼 수 없고 이 탑의 기원이나 이력 등을 알리는 안내문이 없었다.
잠시 탑 주변을 배회하다가 주능선 3거리에 다시 돌아와 오르막길을 따라 이동을 하여 450 능선위로 올라서니 지나왔던 능선과 가야할 능선이 모두 보인다.
내리쬐는 햇볕으로 무더움을 느끼다 능선위로 올라서니 그런대로 바람이 불어주어 시원하였다.
맞은편에서 2명이 오므로 반갑게 인사를 하며 지나쳤는데 이들 중 한명이 산위에서 부는 바람 동요를 부르며 불어주는 바람에 대해 좋음을 표시하는 것이었다.

<395봉으로 가는 445봉 바위길입니다>

<금오산이 건너다 보이는 395봉입니다>
바위를 갈라놓은 듯한 길을 지나 395봉에 도착한다.
시간을 보니 12시가 가까워진다.
아침을 간식으로 대신하였으므로 마땅한 자리를 잡아 점심식사를 한다.
식사를 하며 건너편 능선을 보니 바위가 몰려있는 지대에 석탑이 작게 보였는데 아마도 용장사지 3층석탑으로 여겨진다.
오늘 계획에는 도면으로 보고 짜기는 했지만 이영재에서 가다가 용장사지에서 오르는 길과 만나는 곳에서 역으로 내려서 용장사지로 내려가 3층석탑을 보고 다시 복귀할 예정이어서 잠시 후 갈 곳이라 생각하고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바람은 살랑살랑 불어오고 햇볕은 따사하고 식사를 마치니 나른하고 이대로 한참을 쉬고 싶은 생각이다.
또 다시 가야하므로 자리를 털고 일어서 능선을 따라 내려선다.
소방서 이정목(이영재1km)를 지나고 이정표를 지난다.


<이영재에 도착해서>
한동안 내리막 안부에 도착한다.
좌측에서 올라오는 길이 있고 일행4명이 올라오고 있는데 이곳이 바로 이영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