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성산 산행기(대구참사랑과 합동산행 중복기록)
명성산 산행기
산행일시: 2014년10월26일
누구와: 서울독립군과 대구참사랑 회원
산행거리: 약 10.52㎞
산행시간:약 6시간00분(10:45~16:45)
산행코스:산안고개들머리(10:45)-무명폭포3거리(11:02)-2번째무명폭포(11:12)-3번째무명폭포(11:25)-폭포위(11:30)-암봉정상(12:55,890m)-삼각봉(13:15,906m)-명성지맥3거리(13:21)-점심및휴식44분-명성산정상(14:13,923m)-구삼각봉(14:55,893m)-팔각정(15:18,739m)-등룡폭포(15:58)-비선폭포(16:40)-상동주차장날머리(16:45)

산행 전
단군이 이 땅위에 나라를 세운 건 사계절이 뚜렷해 계절마다 아름다운 풍경을 만드는 자연을 높이 사 조선이라는 국가를 세웠을 것입니다.
겨울 흰 눈이 온 천지를 덮는 겨울이 있으므로 만물이 동면에서 깨어나 활동을 시작하는 봄이 있고 풍요로운 내일을 위해 열심히 일하고 왕성한 활동으로 자연과 마음이 푸른 여름이 있고 여름이 있음은 곧 가을을 예고하는 전주일 것입니다.
가을은 풍요의 계절이라고 하여 마음도 풍요롭고 대자연도 풍요롭습니다.
가을이라는 계절이 왔음을 알 수 있는 요인은 아주 많습니다.

<가을이 가고 있음을 주변의 억새와 성봉현씨의 쓸쓸한 뒷모습에서 느낄 수 있습니다.>
눈으로 느끼는 가을은 들판의 오곡이 누렇게 변하는 것을 보고 느낄 수 있으며 거리를 지나는 사람들의 두툼해진 옷에서도 가을의 냄새가 물씬 풍깁니다.
그런가 하면 혼자 조용한 숲을 산행할 때면 새로 떨어진 낙엽이 밟히거니 발에 채일 때 사각사각 소리를 내면 청각으로 가을이 저물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또한 서울과 대구의 교류 산행을 하는 우리 일행들이라면 달력을 뒤로 2장을 남긴 상태 마지막 일요일이 되어 가면 그리운 사람들의 얼굴을 떠올리며 가을이 깊어 감을 마음으로 느낄 수 있습니다. 오랫동안 만나고 헤어짐을 거듭한 사람들입니다.

<가는 가을을 아쉬워 하며 억새와 하나가 되어 추억을 만들업 봅니다.>
사랑이 가득한 사람들입니다.
그들과의 만남이 시작됩니다.
이번의 만남은 대구팀이 서울팀의 안내를 받기로 하고 포천의 명성산에서 산행을 함께 나섭니다.
내촌에서 서울팀이 10분여 기다려 새벽부터 서둘러 먼 길을 온 대구팀을 만나고 서울팀이 버스로 환승해 명성산으로 들어섭니다.
여우고개를 넘어서면서 정체가 시작되더니 상동 주차장일대와 주차장을 지나면서도 많은 차량과 많은 사람들이 뒤엉켜 아비규환을 연상케 합니다.
어렵사리 빠져나가 우리가 탄 버스는 산안고개에 도착하고 이곳에서 산행을 준비합니다.
산안고개 들머리~20m직벽 무명폭포 구간
오늘의 산행은 산안고개에서 합동으로 기념사진을 찍으며 시작하기로 합니다.

<반가울 얼굴들---우명길, 이규성. 홍성남, 성봉현,
임상택, 기경환, 박상훈, 권재형, 차성섭 김경숙, 차수근 박금선, 박영홍 천정미>
운동회 때 달리기 총성이 울리면 앞으로 뛰쳐나갔던 옛날을 연상케 하는 시작으로 모두 힘차게 출발을 하며 앞서나갑니다.
필자는 오늘 우리 모임의 좌장인 시인마뇽 선배님을 모시고 천천히 후미에서 뒤 따르기로 하였으므로 산행에 어려움은 없을 같습니다.
그러다 보니 앞서 간 본진 팀과 후미 사이에 다른 팀이 끼어들어 30여명이 팀을 이룬 것 같은 형태로 좁은 길을 따라 계곡으로 들어섭니다.
산안고개에서 약15분여를 지나 작은 무명폭포에 닿습니다.
사진을 찍는 사이 우리 팀은 모두 올라갔고 중간에 끼어있던 다른 팀은 폭포위에서 휴식을 취하는 것 같았습니다.

<산안고개 들머리로 들어서 처음 만나는 무명폭포인데 가뭄으로 물이 적게 흐르고 있습니다.>

<들머리로부터 2번째 만나는 무명폭포로 역시 물이 적으며 아래 못이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 팀은 폭포를 건너지 않고 우측 계곡으로 이미 올라갔는데 필자는 명성산 정상에서 숨은폭 계곡으로 2003년도에 내려선 적이 있는데 오랜 기억이지만 이 폭포가 있는 방향에서 내려 온 것 같은 기억이 가물가물 했는데 일행들이 이미 올라갔으니 아무런 의심 없이 쫓아 올라갑니다.
무명폭포에서 7분 정도 오르니 이정표가 나오고 위에는 무명폭포가 또 있고 일행 중간대원이 열심히 폭포 우측으로 통해 폭포 위를 지나고 있습니다.
열심히 따라 올라갔지만 일행은 멀리 뒷모습만 보였는데 여기서 통한의 알바가 시작됩니다.
<나중에 지도를 보고 판독한 결과 숨은폭 계곡으로 오르는 길은 ①처음 만난 무명폭포에서 직진으로 가면 확실하고 ②무명폭포를 지나 이정표가 있는 곳에서 좌측으로 살펴야 했습니다. ③두 번째 무명폭포 위에서 좌측계곡을 지나는 길이 있는 지 확인을 했어야 했습니다.>
①코스는 아래서 막아 놓았지만 사람들이 출입을 하고 있었고 ②, ③ 코스로 들어서면 ①코스와 만나고 이어서 거대한 암벽이 있는 곳 아래 숨은 폭포가 있습니다.
암튼 알바는 시작되었는데 모든 대원들은 계속 위쪽으로 진행을 합니다.
인적이 거의 없는 곳을 향해 계속 오르니 20m 직벽 폭포가 나옵니다.

<세번째 만난 폭포에는 이른 아침부터 손님이 있습니다.
주변의 풍경과 잘 어울리는데 폭포의 이름이 없는 게 안타깝습니다.>
서늘한 폭포 밑에는 지긋한 나이의 남녀가 막걸리 2병째를 마시며 무슨 사업을 하는 것 같아 가까이 접근하지 못하고 먼 곳에서 폭포의 풍경을 담고 폭포 좌측으로 희미한 길을 선두가 지난 흔적을 보고 올라섭니다.
<산안고개 들머리로부터 폭포위까지 1.3km, 산행시간 50분, 휴대폰GPS 고도570m, 현재시간 11시30분입니다.>
폭포 위~980봉정상 구간
폭포 위에 도착하니 일행이 모두 사라졌습니다.
시인마뇽 선배님과 둘이서 낙오가 된 것인데 아무리 소리쳐 불러도 아무런 답변도 없었고 산행 개념도를 꺼내어 우측으로 선두가 간 흔적을 따라 길을 나섭니다.
실제로 우리가 오른 길은 옛날 구 삼각봉으로 이어지는 길이었나 봅니다.

<흐터졌던 대원들이 다시 모인 자리가 1차 쉼터가 되었습니다.>
앞서간 대원들의 지나간 흔적을 따라가다 흔적을 잃고 둘이서 길을 찾으며 갔는데 너덜지대에서 좌측으로 올라가다가 능선 위에 모여 있는 일행과 다시 합류를 했지만 나중에 확인해 보니 너덜지대를 가로질러 건너편 계곡으로 접어들었어야 했습니다.
하지만 잠시 떨어졌다 만난 일행들이 마치 이산가족이 상봉하는 것처럼 감동적이었습니다.
능선에서 앞에 보이는 큰 암봉이 그때만 해도 정상인지 알았는데 능선을 오르면서 앞에 보이는 봉우리가 정상이 아닌 것을 알았고 삼각봉으로 오인을 했습니다.
여성대원과 선두가 하나가 되어 앞서 올라갔고 시인마뇽 선배님과 함께 후미에 섰는데 암벽으로 계속
이어지는 등산로이므로 대구의 상훈아우와 상택아우가 마음이 놓이지 않는지 앞뒤에서 따라 줍니다.

<시인마뇽 선배님의 고행의 현장입니다.
이 길을 지나시며 성봉현씨가 길안내를 잘 못하고 있음을 몇번 지적하신 것으로 보아 매우 벅찬 산행을 하신 것 같습니다.>
필자는 선배님 덕으로 급할 것 없이 사진을 찍으며 여유롭게 오르니 참 좋았는데 일행들이 아무리 빨리 올라도 정상 부근에서 다시 만날 것이므로 다급함은 없었습니다.
다만 몸도 성치 않은 상태로 산행에 임한 시인마뇽 선배님은 아마도 이번 후유증으로 한동안 고생을 하지나 않을까? 걱정이었습니다.

지나는 길에 우연히 만난 풍경을 담았습니다.
어마어마한 바위를 오랜 세월 끊임없는 공격으로 반으로 동강을 냈습니다. 이 나무는 바위위에 뿌리를 내리고 생과 사의 갈림길에서 오로지 살아가고자 뿌리를 내리다 보니 이런 결과를 낳았겠지요, 그러나 안타깝게 나무도 죽었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는데 이 나무는 우리에게 많은 교훈을 주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산행을 하면서 알바를 종종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길을 잘못 들어 헛수고하는 경우를 알바라고 하는데 왜 알바라 부르는지 지금도 궁금합니다. 누군가에게 알바에 대해 물어보니 “길을 잘못 든다고 해서 꼭 잃는 것만은 아니고 또 다른 소득을 얻는다.“ 는 이야기였는데 오늘이 정말 알바의 맛을 느낀 등산이었던 같습니다.
길이 있지만 없는 곳이나 다름없는 능선을 오르며 눈앞에 펼쳐지는 아름다운 풍경을 마음에 담았기 때문입니다.
암릉을 오르고 또 올라 높게만 보였던 암봉을 올라섰습니다.

<980봉 정상입니다 정상에는 삼각점도, 정상 표식도 없습니다.>

<980봉 정상에서 본 정상~궁예봉의 풍경입니다.>
삼각봉으로 알고 올랐던 이 봉우리는 도면상 890봉이었습니다. 봉우리에는 정상석이나 삼각점 어느 하나 표식이 없었고 누군가의 표지기 리본만 가볍게 바람에 날리고 있었습니다.
<산안고개 들머리로부터 890봉까지 2.38km, 산행시간 2시간10분, 휴대폰GPS 고도893m, 현재시간 12시55분입니다.>
890봉정상~ 삼각봉정상 구간
890봉 정상에서 주변을 조망하는 사이 일행은 모두 내려섰습니다.
물론 890봉을 올라서면서 구삼각봉이나 병풍처럼 펼쳐진 삼각봉, 정상, 궁예봉, 궁예봉 능선의 암봉들을 수없이 조망을 하였지만 모든 풍경은 보는 각도와 방향에 따라 그 모습을 달리하며 새로운 맛을 보여 줍니다.
980봉을 내려서 이정표를 지나 10분이 지나 삼각봉에 오릅니다.

<삼각봉 정상입니다. >
삼각봉에는 묵직하고 큼직한 정상석을 새로 세웠으며 정상석 위에는 서울의 상징인 해치상을 안치했는데 해치는 모든 잡귀를 물리치는 힘을 지니고 있다는 추상동물로 정상석에 해치를 안치한 것은 명성상을 오르는 모든 사람들에게 불행을 가져다주는 잡귀가 접근하지 못하도록 하는 일종의 주술적 행위라고 보여 집니다.
대구의 상택아우가 마지막으로 오르는 필자를 반겨주었고 삼각봉에서 인증 사진을 남겨줍니다.
오래전에는 삼각봉이 팔각정 방향으로 약1km이상 떨어져 있는 893봉이었는데 언제부턴가 정상 전 뾰죽한 암봉으로 바뀌었습니다.
<산안고개 들머리로부터 삼각봉까지 3.35km, 산행시간 2시간30분, 휴대폰GPS 고도909m, 현재시간 13시15분입니다.>
삼각봉~명성산정상 구간
삼각봉을 내려서니 우리 일행이 오합지졸이 되어 개별 플레이 산행을 하는 것입니다.
상택아우와 함께 가볍게 5분을 걸어 명성지맥이 연결되는 3거리에 도착합니다.

<이정표가 있는 이곳은 명성지맥이 이어지는 3거리입니다. 차수근씨 내외가 식사할 장소를 물색했습니다.>
각흘산 방향의 넓은 헬기장에는 차수근 내외가 쉬고 있고 정상으로 간 일행과 가려고 서두르는 일행이 있었는데 상택아우가 전화로 모두 되돌아 올 것을 지시합니다.
시간으로 보아 점심식사를 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헬기장 넓은 터에서 우리 일행의 산상 만찬이 시작됩니다.

<산상만찬이 시작되었습니다.
무슨 반찬을 이리도 많이 준비했는지요, 집사람이 생각래 만든 반찬을 남겨왔습니다.>
만찬이 끝나고 이제는 명성산 정상으로 가야합니다.
그러고 보니 대부분 정상을 이미 갔다 왔고 소수인원만 정상을 밟지 않았는데 그렇다고 정상을 가지 않을 수도 없어 빠른 걸음으로 정상으로 향합니다.
지맥 갈림길에서 정상까지는 불과 300m밖에 안 되지만 함께 산행을 하며 300m를 뛰어 넘기는 무척 힘든 일입니다.
식사를 한 지맥3거리에서 10분을 채 못가 산안고개 갈림3거리를 지나고 이내 정상에 오릅니다.
명성산 정상에는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어 인증 사진을 남기려면 긴 줄을 서서 순서를 기다려야 했습니다.

<정상석에서 아우들과 포즈를 취했습니다.>

<정상석에서 대구팀과 서울팀이 포즈를 취했습니다.>
그렇게 기다려 상택, 경환, 상훈 아우들과 인증 샷을 사정없이 때려봅니다, 어찌나 세게 때리던가 지금도 정상의 감동에서 벗어나지 못한 느낌입니다.
좁은 정상에서 주변 정황이 시끄럽고 복잡하다보니 정상에서 조망도 못했는데 오늘 날씨가 흐리고 박무가 심해 광덕산과 금학산이 전혀 이미지도 안 보이는 상황이니 조망도 없었을 것입니다.
정상석 뒤에는 안내판에 명성산에 대한 유래와 궁예의 이야기가 적혀 있는데 이러합니다.
『궁예왕은 서기 904년 철원에 태봉국을 세우고 고구려의 후예임을 내세워 강력한 왕권정치를 펼치며 18년간 통치하였던 왕으로 명성산은 철원태봉국의 명산이다.
철원군 갈말읍 강포리 쪽의 궁예능선은 철원을 한눈에 보면서 오를 수 있는 코스로 왕건의 공격을 피해 항거하며 쌓았던
성벽의 성터와 궁예왕굴 등이 있어 이곳을 찾는 많은 사람들로부터 역사속의 태봉국을 돌아보게 한다.
왕건의 반란으로 이산에 은거하던 궁예왕은 재기에 실패하여 군사들이 해산되자 왕과 군사들이 슬퍼 통곡하며 울었다하여 명성산이라 이름 지었으며 일천년이 지난 지금도 철원 주민들은 일명 울음산이라 부르고 있다.』
그런가 하면 소리 내 우는 울음산에는 궁예 외에 또 다른 전설이 전해지는데 신라 마지막 왕 경순왕의 아들인 마의태자와 관련된 것으로 마의태자가 망국의 한을 품고 금강산으로 갈 때 이 산을 지나며 이산에서 소리 내 우니 산도 따라 울었다하는 이야기인데 두 전설의 공통점은 모두 망국으로 인한 슬픔으로 사람과 산이 함께 울었다는 것입니다.

<이 사진은 890봉을 오르며 본 정상 부근의 풍경입니다.>
하지만 이것은 전설에 불과한 것일 것입니다.
한문으로 표기하면 현재는 鳴聲山이라고 하는데 고문헌의 지도에는 鳴城山이라고 나온다하니 시대적으로 산 이름도 바뀐다고 봐야 할 것 같습니다.
<산안고개 들머리로부터 명성산정상까지 3.58km, 산행시간 식사시간 포함 3시간30분, 휴대폰GPS 고도932로m 9m오차, 현재시간 14시15분입니다.>
명성산정상~구삼각봉정상 구간
비좁은 정상에서 줄을 서서 차례를 기다려 인증 샷을 때리고 정상을 내려섰습니다.

<정상석에서 대박 부부가 포즈를 취했습니다. >
정상을 내려서 3거리 안부를 지나며 정상을 오를 때 길을 잘 못 들어 890봉으로 오르게 된 경위가 궁금했는데 이 길을 따라 내려선다면 어디서부터 잘 못 진행을 했는지 알 수가 있겠다는 생각을 해보았지만 현실은 그러지 못함을 알기에 앞서간 아우들을 따라 능선을 이어갑니다.
정상을 내려서 10분이 지나 식사를 했던 명성지맥 3거리를 지납니다.
좌측으로는 뿌연 박무속에 각흘산이 보였지만 북한강을 만드는 주능선인 한북정맥의 광덕산은 박무속에 모습을 감추고 보이지 않았습니다.
실제로 명성산은 조망이 뛰어난 산입니다.
능선 곳곳에서 한북정맥은 물론 경기 최고의 산인 화악산과 두 번째인 명지산과 휴전선과 맞닿은 대성산과 적근산 그리고 북한의 오성산을 한눈에 볼 수 있으며 궁예가 태봉국을 세웠던 넓은 철원평야와 철원을 감싸고 있는 금학산과 고대산 등 주변의 아름다운 풍경을 조망할 수 있는데 오늘은 아쉽게 볼 수가 없습니다.
식사 전 정상을 찍고 온 대원들을 따라 잡으려 발걸음이 빨라집니다.
직등을 감수하며 올랐던 890봉을 지나 간간이 단풍이 든 능선과 바람이 불면 머리 위로 떨어질 듯 아슬아슬 얹혀 있는 바위 아래 암릉길을 지납니다.

<능선을 지나는 길............. 누군가 앞에서 충을 겨누고 있나 봅니다.>

<능선을 지나는 길............. >

<능선을 지나는 길............. 황야의 무법자 포스가 풍기는데>
정상을 떠난 지 25분이 지나 무명봉 아래 돌탑이 있는 능선에 도착을 하여 잠시 숨을 돌리며 인증 샷을 때리고는 마음이 급한지 급히 능선을 따라 내려서고 뒤에 가던 상훈 아우가 좌측의 포사격장을 보고 옛 군생활의 향수를 불러 일으키며 손으로 무언가를 가리키는 순간 오늘 최고의 사진을 만들었습니다.
이어서 이정표를 만나는데 이곳은 산안고개로 내려서는 3거리로 이곳을 따라 내려가면 우리들이 착오를 일으킨 지점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집에 와서 등산로 검색을 해보았는데 중년 남녀가 막걸리를 마시던 폭포에서 좌측으로 올라 우측으로 제대로 방향을 잡았는데 너덜이 시작되는 지점에서 우린 좌측으로 올랐지만 지도상 등산로는 우측으로 계속 이어갔어야 했었습니다.
또 다른 등산로는 이곳 이정표에서 들어서서 구삼각봉 능선을 타고 내려서다 헬기장 이정표가 있는 곳과 이어지는 것입니다.
한세상 편하게 살자고 방원이 「“이런들 어떠하리 저런들 어떠하리.....” 」 하여가라는 시를 정몽주에게 읊었던 것처럼 이리가면 어떻고 저리가면 어떻겠습니까? 정상찍고 구경 잘하고 재미있게 등산만 하면 그게 최고 아니겠습니까?

<능선을 지나는 길............. 구삼각봉으로 가는 황야의 3인>

<구삼각봉에 도착했습니다. 수십년을 삼각봉 이름을 붙이다가 몇 년전 삼각봉 이름표를 뗐습니다.>
그렇게 3거리에서 하산로를 보며 능선을 잇고 멀리에는 검게 보이는 구삼각봉이 빨리 오라고 재촉을 해댑니다.
정상을 떠난 지 30분이 조금 지나 구삼각봉에 올랐습니다.
<산안고개 들머리로부터 구삼각봉까지 5.35km, 산행시간 식사시간 포함 4시간08분, 휴대폰GPS 고도901m 8m오차, 현재시간 14시55분입니다.>
구삼각봉~팔각정 구간
구삼각봉 정상에 도착해 그냥 지나가려는 아우들을 불러 세워 인증 샷을 때렸는데 인증 샷을 때린다고 귀찮아 할 수도 있는데 세월이 지나고 훗날 보면 “그래도 인증 샷 때릴 때가 봄날이구나.” 하는 생각을 할 것입니다.

<이제는 새이름을 지어 주던가 아니면 893봉으로 불러야 하지않을까요???>

<경환 아우와 893봉에서 추억을 쌓아봅니다.>
구삼각봉 정상에는 알미늄 샷시로 된 작은 정상표식이 있는데 옛날에는 나무목으로 세우고 이정표의 역할도 한 것 같은 기억이 납니다.
오래전부터 명성산을 오른 사람들은 구삼각봉에 대한 향수를 많이 가지고 있어 우회길로 가지 않고 정상을 경유할 것입니다.
궁금하지 않습니까?
봉우리 이름을 정했으면 그것으로 끝내야 하는데 삼각봉을 옮긴다?, 이유는 이러하답니다.
스마트 폰이 우리 생활에 깊숙하게 자리 잡은 지 오래 지났잖아요.
산행을 하는 사람들이 스마트 폰의 GPS로 고도 측정을 하니 오차가 많이 나므로 포천시청에 아주 여러 차례 문의와 항의를 하여 실측을 하니 현재 삼각봉이 고도와 일치되어 정상석을 새로 세우게 되었답니다,
그러니까 이제까지 삼각봉을 엉뚱한 봉우리로 홍보를 했다는 것인데 지금이라도 바로 잡았음이 다행이라 생각됩니다.
구삼각봉을 내려서 능선길을 지납니다.
좌측으로 포사격장을 보며 한참을 지나 이정표를 만나고(팔각정0.5km↔삼각봉4km) 이후 무명봉을 우회길로 쉽게 지났는데 경환아우는 매번 무명봉이 나올 때마다 무명봉을 경유하는데 필자도 아우 때는 펄펄 날랐는데 아우들이 부러울 뿐입니다.

<능선을 지나는 길............. 바람불면 떨어질 것 같은 바위>

<붉은 단풍과 산정호수의 비경 박무가 없었다면 더 좋았을 걸.......>
무명봉 능선에서 내려서 우회 길과 만나는 지점에는 작은 돌탑을 세웠는데 이곳에서는 산정호수가 한눈에 보이고 능선 골골이 붉게 물든 단풍이 보기에 좋았고 산정호수 우측으로 궁예가 왕건에게 쫓기며 이곳으로 들어와 이곳에서 망을 보던 봉이라는 전설이 전해지는 망무봉이 뾰쭉하게 솟아 호수와 주변의 풍경이 아름답게 보입니다.
경사진 암릉길을 조심스럽게 내려서면 길 가운데 인상적인 참나무 한그루가 서 있는데 한여름 더위를 피해 휴식을 취하기 좋은 곳으로 여자 산객 한 분이 짝 잃은 오리처럼 외롭게 앉아 있습니다.
방향을 우측으로 돌리며 팔각정이 보이고 우리팀 일행들이 후미를 기다리며 막걸리 한잔으로 목을 축이며 담소를 나누고 있었습니다.

<벤취에 외로운 여자를 버리고 무정하게 지나는 황야의 3인>

<어이~ 친구! 빨랑와서 한잔 하라구~~~~>
우리 일행은 그렇게 1시간13분을 떨어져 산행을 하다가 팔각정에서 합류를 합니다.
<산안고개 들머리로부터 팔각정까지 6.48km, 산행시간 식사시간 포함 4시간30분, 휴대폰GPS 고도739m, 현재시간 15시18분입니다.>
팔각정~상동주차장 날머리 구간
팔각정은 명성산을 찾은 산객이나 관광객 등이 모두 지나는 곳으로 늘 사람들이 많은 곳입니다.
더구나 가을 억새가 필 무렵이면 전국의 산객과 여행객은 물론 젊은 남녀의 데이트족까지 몰려들어 장사진을 이루는 곳이기도 합니다.

<편지를 써 갈 수도 없고..... 우편엽서를 파는 자판기를 설치해야 앞뒤가 맞는 게 아닐까요?>

<팔각정에서>
막걸리 한 잔씩으로 목을 축이고 하산을 시작합니다.
하산은 책바위 방향, 자인사 방향, 등룡폭포계곡 방향 세 곳이 있는데 오늘 산행대장을 맡은 성봉현 아우가 하산로는 계곡방향으로 잡았습니다.
키를 훌쩍 넘는 억새밭 한 가운데를 가로지르는 등산로를 따라 하산을 하게 되는데 성봉현 아우가 오늘 명성산 산행을 준비하며 들머리를 산안고개로 잡은 것은 명성산의 명품 억새에 초점을 맞춘 것으로 해를 등지고 억새를 볼 때 바람에 일렁이는 억새꽃의 풍경을 제대로 볼 수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억새가 쫌 철이 지난 것 같습니다.
담에는 좀 탄력적으로 대처했으면 좋겠습니다.>

<우리 영화의 한장면 같지 않나요? >

<이제 억새밭을 따납니다.>
그런데 날씨가 협조를 해주지 않고 시기를 제대로 맞추지 못한 이유로 최상의 풍경을 보지 못했습니다.
그나마 어두웠던 하늘이 잠시 햇빛을 내면서 아쉬움은 그런대로 덜 수 있었지만 열흘 정도 산행시기를 앞당겼더라면 금상첨화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었습니다.
억새밭을 감상하며 많은 사람들과 하나의 무리를 이루며 지나 계곡으로 접어듭니다.

<억새밭을 지나 계곡으로 이동하고 있습니다.>
줄줄이 폭포가 있는 계곡은 가뭄 중에도 소량의 물이 흐르고 있었는데 산정호수를 이루는 물의 대부분이 이 계곡에서 흘려보내고 있는 것이고 보면 이 계곡의 중요성은 더욱 실감할 수 있습니다.
팔각정을 떠난 지 50분이되어 무명폭포 위를 지납니다.
계곡은 등산로와 가까운 거리를 유지하고 있으므로 하산을 하며 폭포를 내려서는 것은 어려운 일은 아니지만 한 여름 뜨거운 햇살이 아니니 대부분의 사람들이 계곡으로 내려서지 않고 하산을 합니다.
가던 발길을 계곡으로 돌려 내려섰는데 대부분 나뭇잎이 떨어져 아쉬웠는데 암반으로 이루어진 계곡 위로는 단풍나무가 터널을 이루고 있어 잎이 떨어지기 전 풍경은 상상 만으로도 가슴이 벅찰 정도였습니다.

<제1무명폭포입니다, 낙엽이 지기전에 이곳에서 보면 멋있을 것 같습니다.>

<제1무명폭포입니다, 못 주변에서 쉬고 있는 한 쌍이 낭만적으로 보입니다.>
암반 계곡 아래쪽으로는 완만한 경사각을 따라 흘러내려 무명폭포를 이루었는데 첫 무명폭포는 이단으로 소를 이루었는데 위 못에 비해 아래 못은 제대로 모습을 갖추었으며 못 위에는 낙엽이 떠다니며 늦가을의 풍경을 보여 주었고 주변에는 젊은 남녀가 휴식을 취하고 있었는데 보기가 좋았습니다.
능선에서 볼 수 없었던 단풍은 계곡을 따라 내려서며 곳곳에 자리를 잡고 있습니다.
오가는 사람들이 단풍 주변에서 사진을 찍느라 넓은 등산로가 정체되기도 하는데 들뜬 마음으로 조금 내려서니 또 다른 무명폭포를 만납니다.

<제2무명폭포입니다,
위에서 아래로 내려 본 모습입니다.>

<제2무명폭포입니다,
아래서 위로 본 모습입니다.>
두 번째 무명폭포는 위에서 볼 때는 생긴 모습이나 경사각이나 물이 고인 소의 형태 등 모습을 제대로 갖추었는데 아래서 보면 물이 흐르는 면이 고르지 못했습니다.
간단히 인증 샷을 때리고 앞서간 일행을 쫓아 얼마가지 않아 거대한 폭포를 만나니 등룡폭포입니다.
지나온 무명폭포들이 각광을 받지 못하는 이유는 이 등룡폭포가 너무나 웅장하고 수직낙하에 2단으로 이루어져 있고 위에서 아래로 쏟아지는 물줄기가 물보라를 이루고 이 물안개를 타고 용이 하늘로 승천했다는 전설까지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옛날에는 멀리서 폭포를 관망했는데 언제부턴가 철제 데크로드를 만들어 폭포 가까운 곳에서 볼 수 있도록 새로운 길을 만들었습니다.

<쌍폭포, 이중폭포라고도 불리는 등룡폭포로 위 폭포입니다.>

<물안개를 타고 용이 하늘로 승천했다는 전설을 지니고 있는 등룡폭포로 아래 폭포입니다.>

<차수근씨 내외가 등룡폭포에서 정다운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제법 많은 시간을 할애해 번갈아 등룡폭포를 배경으로 인증 샷을 때리고 내려섰는데 또 다른 무명폭포가 있었지만 등산로에서 계곡이 깊어 내려설 수가 없었고 연이어 무명폭포가 나타났는데 완만한 경사각으로 4단으로 흐르고 있어 사단폭포라고 이름을 지어 주었으면 하는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폭포 중간에 누군가 세면을 하는 모습을 포착해 잡아서 벌금을 물릴까 했는데 상택아우였으므로 봐주기로 했습니다.

<제3무명폭포입니다.>

<이곳 보기 괜찮은데 사진 한번 눌러 보라구~~~>

<멋 있지는 않아도 그런대로 복 좋은 다리도 있습니다.>
등산로로 들어서 좌우에 제대로 물든 단풍을 보며 한동안을 내려서며 단풍을 배경으로 사진도 찍으며 계곡을 가로 지르는 아치교를 넘고 넘어 내려섰습니다.
한참을 내려서 맨발로드가 나타났으니 이제 주차장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반증이며 비선폭포가 모습을 나타냅니다.
일행이 모두 하산하고 혼자 폭포로 내려서 텅 빈 쓸쓸한 비선폭포를 담아봅니다.

<비선폭포입니다, 선녀가 목욕하던 못이 이렇게 앝아서야 되겠나 싶습니다.>
그래도 여름철에는 이 폭포가 인기가 대단한데 그 이유는 다리가 아파 멀리 못 올라가는 노인들에게는 여행 가이드가 이 폭포라도 보여주어야 명성산에 구경가 폭포를 보고 왔다는 말을 할 수 있도록 여기까지는 무조건 안내를 하니 많은 사람들이 붐비는 최고의 폭포입니다.
등룡폭포를 내려서며 일행들과 함께 나눈 이야기입니다.
이 계곡에는 4개의 무명폭포를 제외하고 이름 붙여진 폭포가 2곳이 있는데 등룡폭포와 비선폭포입니다.
인간보다 한 수 아래인 미물인 용이 승천했다는 폭포는 웅장한데 인간을 지배하는 선계의 아리따운 선녀들이 수시로 목욕을 하러 내려왔다는 비선폭포는 이리도 초라하다는 것인데 현재 등룡폭포가 비선폭포가 되어야 이치에 맞지 않을까? 생각이 됩니다.
비선폭포를 뒤로하고 내려서면 바로 상동 주차장입니다.
<산안고개 들머리로부터 상동주차장 날머리까지 10.52km, 산행시간 식사시간 포함 6시간00분, 휴대폰GPS 고도206m, 현재시간 16시45분입니다.>

<일행들이 날머리를 벗어나고 있습니다.>

<주차장에서 본 책바위의 모습입니다.>
다수의 사람들이 들머리로 이용하고 있는 이곳은 오가는 사람들로 만원을 이룹니다. 비좁은 틈을 빠져나와 주차장으로 들어서 뒤돌아 본 명성산은 책바위가 있는 암봉과 마주보고 있는 암봉에는 화려함을 점점 잃어가는 단풍이 가는 가을을 아쉬워하며 작별을 고하고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