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주, 적상산 산행기 1
적상산 산행기
산행일시: 2009년12월 14일(월)
누구와: 집사람과 나 그리고 최대운, 이춘자. 윤순자
산행거리: 약 4㎞
산행시간: 45분(13:20~14:05)
산행코스:적상호전망대(12:40)-안국사(13:10)-적산산성비(13:20)-적상산정상(13:30,1034m)-향로봉정상(13:45.1034m)-안렴대(14:00)-안국사(14:05)-적상산사고(14:15)-와인터널(14:30)-북창마을(14:40)

명산 100산 중의 하나로 손꼽히는 적상산은 적상면 중앙에 솟은 1034m의 향로봉과 기봉 두 봉우리를 주봉으로 한다.
북쪽 향로봉과 남쪽 기봉이 마주하고 있는 정상일대는 흙으로 덮인 토산이라 원시림을 방불케 할 정도로 나무가 울창하지만 지면에서 800~900m 가량되는 산허리까지는 사방을 깎아 세운 듯한 암층절벽이 병풍처럼 겹겹이 둘러싸고 있다.
바위산으로 뺑 둘러 산허리를 감싸고 있는 절벽을 치마바위라고 부르며 가을에는 마치 온 산이 빨갛게 물든 모습이 여인네가 붉은 치마를 입은 모습과 같다하여 적상산(붉을赤, 치마裳)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하며 경관이 뛰어나 가을철 단풍뿐만 아니라 철따라 독특한 개성미를 간직하고 있다고 한다.

<상부댐 가는 길옆에 있는 천일폭포인데 잡목이 가려 보이지 않고 물도 흐르지 않는다.>
적상산에는 단풍나무뿐만 아니라 소나무도 많아 바위와 조화를 잘 이루고 있으며 주봉인 기봉과 향로봉 그리고 안렴대를 포함해 천일폭포, 송대폭포, 장도바위, 장군바위등의 명소를 품고 있다.
또한 최영 장군이 건의해서 축조했다는 적상산성(사적 제146호)은 조선 인조6년(1628년) 다시 쌓은 것이며 조선 중기 산성내에 적상산사고(赤裳山史庫)가 세웠다.
사고지에서 가까운 곳에 사찰이 있는데 현재는 안국사인데 예전에는 호국사라고 했다는 절은 사찰의 이름에서 나타나듯이 나라의 안위를 빌기 위해 건립된 절로, 호국사는 1614년부터 건립된 적상산사고를 지키기 위해 세웠다.
적상산 남쪽에는 안렴대라는 큰 바위가 있는데 정묘호란 때 사고에 있던 서책들을 정상 남쪽의 험준한 안렴대 절벽 밑 굴에 숨겨 화를 피했다고 한다.
적상산 산행의 기본산행코스는 치목마을-안국사- 정상-서문3거리-향로봉-서문3거리-서창통제소로 이어지는 코스와 또 다른 코스는 이와 역순으로 산행을 한다.
그러나 이번 적상산 산행은 산행의 목적보다는 여행을 하다가 잠시 시간을 내어 산행을 하다 보니 정상적인 코스보다는 약식산행을 할 수 밖에 없어 치목마을을 경유하여 하부저수지인 무주호를 지나 상부저수지인 적상호까지 이어지는 포장길을 오를 수밖에 없었다.
제철에는 무척이나 붐비었을 매표소는 비철에 평일로 관리인마저 없어 공짜로 들어선다.
별것 아니었던 산이 계곡으로 들어서며 점점 멋진 모습으로 다가오고 700~800m급의 높이에는 수십m의 자연 수직암벽이 온 산을 에워싸고 있음을 보고 적상산의 이름이 헛되지 않음을 다시 한 번 실감케 한다.
구비치는 길을 따라 한참을 올라 정상같은 평원에 도착하니 넓은 적상호가 나를 반긴다.

<상부댐인 적상호의 모습>
거친 바람이 몰아치는 적상산 적상호의 전망대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밖으로 나오니 거센 바람이 우리의 방문을 거부하는 건지? 아니면 2시간을 거쳐 올랐어야 할 이곳을 30여분만에 쉽게 올랐다 하여 시샘을 하는 건지?
몸을 옴츠린 채 원통형으로 되어있는 전망대 계단을 타고 전망대에 오른다.
전망대 안내판에 의하면
860m의 적상호 바닥에 수로를 만들어 750m 까지 직각으로 내려오다 평행으로 전망대에 이르다가 50~60도의 경사로 201.5m까지 흘려보내며 낙차의 힘에 의해 지하에 설치되어있는 발전소의 터빈을 돌려 발전을 하는 것이란다.

<전망대에서 본 상부 저수지 적상호>

<전망대에서 본 하부 저수지 무주호>
높은 곳에 위치하여 무주스키장과 우리나라에서 4번째로 높은 덕유산이 지척에 있어 가까이 조망되며 무주호와 적상호의 모습도 무척이나 아름답게 보인다.
불어대는 바람에 오래 머물 수 없어 전망대에서 내려와 안국사로 향한다.

<안국사 일주문>

<안국사 전경>
안국사는 원래 적상산 사고 아래쪽에 있었으나 적상호가 만들어지며 적상호 위쪽에 중건하였다고 하며 안국사라는 절 이름에서와 같이 국가의 안위를 생각하는 절이란다.
안국사 이전에는 호국사라는 이름으로 절이 있었는데 고려말 최영장군이 최적의 군사요충지로 군사들을 훈련을 시켰으며 조선시대 광해군 때 적상산성을 부분적으로 쌓았다고 호국비에서 전하고 있다.
성안에는 400여년전의 숨결이 그대로 숨 쉬고 있고 성 밖에는 이기적 집단으로 변한 과거에서 변종된 현재가 존재하고 있으며 성벽은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고 있다.
한 가지 아쉬움은 안국사 주변의 성곽을 나타내기 위해 성곽주변의 사계청소가 이루어져야 할 것인데 잔 나뭇가지에 묻혀 얼듯 보면 그냥 지나칠 수 있을 것 같다.
잠시 성곽을 구경하다 일행들에게 양해를 구하고 얼마 떨어져 있지 않은 정상으로 달음질을 친다.
정상적인 등산로는 안국사에서 안렴대를 거쳐 기봉 정상을 올라야 하는데 여러 사람들에게 미안한 마음으로 빨리 갔다 내려올 생각으로 안국사 일주문 옆 능선으로 올라 단 시간에 기봉에 도착했다.
기봉에는 중계탑이 있었으며 관리인이 있는 곳이라 관리소 휀스 주위를 돌아보니 정상이라는 느낌도 들지 않는다.
1.3km 떨어져있는 향로봉을 갔다고고 싶은데 아래서 기다리는 사람들에게는 미안한 생각이 들어 망설이다가 욕 한 번 먹는 셈치고 향로봉을 간다는 생각을 하니 마음이 급해졌다.
기봉에서 향로봉은 1.3km 거리에 있는데 산길 1.3km는 결코 가까운 거리는 아니지만 다른 산과 달리 적상산의 기봉과 향로봉 두 봉의 높이도 같아 높낮이가 거의 없고 그리 높지 않은 2번의 구릉만 넘으면 되므로 시간은 많이 걸리지 않는다.
기봉에서 내리막을 지나 평탄한 지역으로 들어서자 앞에서 왁자지껄하는 인기척이 들리고 잠시 후 산행을 하는 한 팀을 만났는데 대구에서 온 산악회 회원들이다.
이 팀원들은 향로봉에서 기봉으로 이동하는 중이었는데 바삐 뛰는 나에게 말을 붙이며 천천히 가라하니 모른 척 지나칠 수도 없고 바쁜 판에 인사를 나누느라 시간을 빼앗긴다.
잘 만들어진 길 위에 양탄자가 되어 오가는 이를 맞는 낙엽은 얼마전만해도 아름다운 옷을 입고 산을 찾는 모든 사람들의 감탄을 자아내게 하며 화려함을 뽐냈을 것은 어쩌면 그 나름의 삶을 아름답게 마무리하기 위한 처연함을 역설적으로 표현하는 것은 아니었을지..........

<향로봉 정상의 모습>
대구팀과 작별을 하고 내달려 향로봉에 도착했는데 향로봉에는 아무도 없다.
향로봉 정상은 밋밋하였는데 넓게 조성하려한다면 헬기장 이상으로 넓게 만들 수도 있는데 잡목이 둘러친 정상은 10평도 채 안되었다.
주변의 잡목을 제거하지 않아 조망도 뛰어나지 않았으며 가운데 향로봉 정상을 알리는 안내판이 외롭게 서있을 뿐이었다.
텅 빈 향로봉에는 정상석도 없다.
명산 100산의 이름난 적상산에 정상석이 없다는 것이 의아했는데 무주군은 산을 망치며 향적봉에는 리프트를 설치해 많은 외지 사라들의 주머니를 털면서 어찌 아름다운 적상산에는 정상석 하나 세우지 않는단 말인가?
돈이 되지 않는 사안이라도 무주를 찾은 외지인들이 무주를 다시 찾고 입에서 입으로 무주를 알릴 수 있도록 보이지 않고 작은 일에도 신경을 써 주었으면 하는 생각이 든다.
막상 도착한 향로봉이 텅 비어 있으니 쓸쓸한 감이 들고 5분정도 머물며 정상석을 대신하는 향로봉 안내판을 어루만지며 허무함을 달랜다.
왼쪽 아래 잘 만들어진 고속도로 위를 달리는 차량들을 보며 어제와 오늘 그리고 오늘과 내일의 만감이 교차함을 느끼며 무거운 발걸음으로 뒤를 돌아선다.
산행이라고 번갯불에 콩 구워 먹는 격으로 흉내만 내며 뜀박질로 다시 기봉에 돌아왔다.
이번에는 안렴대를 갔다와야 하는지, 아니면 일행들이 기다리고 있으니 바로 안국사로 내려가야 하는지 망설이다 안렴대도 갔다오기로 하고 뜀박질을 하니 이것은 산행을 하는 것이기 보다 산악 마라톤을 하고 있다는 느낌이었다.
안렴대로 가는 도중 향로봉으로 갈 때 만났던 대구팀을 다시 만났다.
이 팀은 젊은 사람들이 아이고 나이가 지긋한 사람들이라 그런지 기봉을 내려서고 있었는데 또 나를 보자 천천히 함께 가지고 하였지만 사정이 다르니 양해를 구하고 혼자서 앞서 안렴대로 향한다.

<안렴대에서>

<안렴대의 모습>

<안렴대 옆 암봉의 모습>
거친 숨을 몰아쉬며 도착한 안렴대에도 아무도 없이 쓸쓸하였는데 큰 바위 위에 안전사고를 방지하기 위한 파이프로 난간을 설치했으며 아래는 절벽이었는데 절벽에서 뿌리를 내리고 살아가는 나무는 파란만장했던 적상산의 역사와 병자호란 때 많고 많았던 조선왕조실록을 뿌리 아래 숨기고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그 자리를 지켰을 것이다.
(당시에는 이곳이 안렴대로 알았는데 안렴대는 능선으로 4~5분 더 내려가야 한다.)
향로봉과 마주보고 있는 안렴대는 높이도 기봉과 향로봉과 비슷하게 느껴졌는데 전망이 뛰어나 어쩌면 적상산의 사실적 주봉의 역할을 하고 있는 것 같다.
좁은 안렴대를 이리저리 서성이며 사진을 찍고 안국사에서 기다리는 일행을 생각해 안렴대를 내려섰는데 안렴대에서 안국사는 500m 거리였는데 계속 내리막길로 내려가는 길이라 전혀 힘든지를 모르고 순식간에 안국사에 돌아와 미안함을 전하자 괜찮다고 위로하는 일행들에게 감사함을 전하고 적상호 쪽으로 나간다.
안국사 일주문을 벗어나 적상호로 내려가다 일행들에게 미안하게도 또 브레이크를 건다.
다름 아닌 적상산 사고를 보기위해서다.
다른 일행은 사고에 대해 별관심도 없어 하지만 나는 그러지 못하는 건 문화재나 역사에 관심을 많이 가지고 있기 때문이지만 조선왕조실록을 보관했던 사고를 옆에 두고 보지 못하고 간다는 것은 내 자신이 용납하지 않을 것이다.

<조선왕조실록 적상산 사고>
적상산 사고는 안국사 일주문에서 적상호로 내려서다가 좌측에 있는데 불과 길에서 50m정도 떨어져 있어 손 쉬게 돌아 볼 수 있는데 아무리 가까이에 있어도 사고에 대한 의미나 사고에 대한 인식과 역사에 대한 가치관이 적립되지 않았다면 일반적인 사찰보다도 못한 것이니 일행들은 사고에 대한 관심이 없다.
혼자서 차에서 내려 사고로 다가 갔는데 다행이도 적상산의 사고의 외부문은 열려있어 사고로 들어서 2동의 건축물을 살피고 전면과 후면을 돌아본다.
좌측의 건물에는 편액이 걸리지 않았고 우측의 건물은 사각(史閣)이라는 작은 편액이 걸려있으며 내부는 굳게 잠겨 있어 구경하지는 못하지만 사고 앞에서 조선왕조의 역사를 다시 되새겨 보며 우리역사의 기록을 훔쳐간 일본이나 프랑스의 노략에 분노를 느낀다.
또한 사고에서 내려다보는 적상호의 광경은 앙상한 나무 가지와 웅장한 모습의 전망대와 어우러져 멋진 경관을 연출하고 있다. 인공으로 만든 호수에서 자연낙차를 이용하여 수력 발전을 하는 설비로 가평 호명산의 호명호에 못지않은 경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