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읍, 내장산과 순창, 백암산 연계산행기
내장산~백암산 연계산행기
산 행 일 시:2006년 9월 24일
누 가:나홀로
산 행 거 리:
산 행 시 간:오전 10:00~오후 5:40 (7시간 40분)
주요산행처:내장산일주문(10:00)-서래봉(10:40)-불출봉(11:20)-망해봉 (11:50, 10분 휴식)-연지봉(12:10)-까치봉(12:30)-신선봉 새재 갈림길(12:40)-신선봉(13:00, 10분 휴식)-새재갈림길(13:30)- 소등로재(14:00)-순창새재(14:40, 10분 휴식)-백암산상왕봉 (15:35, 10분 휴식)-1122봉(16:15)-백학봉(16:25)-백양사 (17:10)-주차장(17:40)

백련암과 써래봉
내장산 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것이 단풍이다.
다수의 사람들이 가을단풍을 보기 위해 11월초가 되면 호남고속도로를 주차장으로 만들며 정읍부터 내장산까지 차량과 많은 사람들이 인산인해를 이루는 곳이다.
내장산을 단풍이 물든 시기에 산행을 한다면 금상첨화겠으나 그때가 되면 많은 사람들 때문에 시간의 소요가 많을 것 같아 단풍이 들지 않은 한적한 때를 잡아 정읍의 내장과 장성의 백암을 연계산행하기 위해 며칠 전부터 자료를 분석하여 산행을 준비했었다.
내장산은 남원의 지리산, 영암의 월출산, 장흥의 천관산 그리고 부안의 변산과 더불어 호남의 5대 명산으로 꼽히는 산으로 산행을 하는 사람들이나 여행을 즐기는 사람들 대부분 한 두 번씩은 다녀간 곳일 것이다.
내장산은산행코스가 다양하기는 하나 산의 형태로 보면 원점회귀 산행에 적소일 것인데 나는 원점회귀가 아닌 연계산행이라서 코스를 어떻게 잡아야 하는가를 여러 차례 생각해 보았으며 내장 9봉중 문필봉(675m), 연자봉(675m), 장군봉(692m)의 3개봉은 등정하지 못하고 서래봉(622m), 불출봉(610m), 망해봉(650m), 연지봉(671m), 까치봉(717m), 신선봉(763m)등 6개봉을 등정하고 새재를 통해 백암산을 오르는 것으로 최종 결정을 했다.
첫차를 타고 정읍에 도착한 시간이 9시 30분이다.
내리자마자 오후 8시 귀경 고속버스 예매를 하고 내장산행 버스를 타기 위해 거리로 나섰지만 정읍은 처음으로 오는 곳이라서 내장산까지의 버스 노선, 거리나 배차간격, 승차 정류장 등 아는 것이 하나도 없어 터미널 주위에 정차하고 있는 택시기사에게 내장산행 버스와 개략적 시간 그리고 배차시간 등을 물으니 택시기사는 택시를 이용하도록 권하며 버스는 약 1시간 간격으로 운행한다고 하는데 무조건 8시까지 정읍터미널로 와야 하는 입장으로 시간을 아끼기 위해 택시를 타고 내장산 일주문 앞에 10시에 내려 산행준비를 마친다.
일주문 오른쪽으로 벽련암 가는 시멘트 포장길을 따라 가다 보니 백년약수터가 나오는데 물이 말라 약수터는 제구실을 못하고 있다.
약수터를 지나 경사진 도로를 따라 올라가면 벽련암이 나오지만 구경할 시간이 없어 겉의 형태만 지나며 볼 뿐, 벽련암 우측으로 난 등산로를 따라 올라 가니 코가 땅에 닿을 만큼의 경사진 길을 한동안 지나 거대한 바위 아래 도착한다.
간단한 차림으로 산행하는 사람들이 여럿이 모여 쉬고 있는 곳을 지나 큰 바위를 돌고 돌아 위쪽으로 올라가니 서래봉 정상이다.

서래봉에서 본 가야할 능선---우측 앞이 불출봉, 우측 맨 끝이 망해봉, 가운데 연지봉, 맨 좌측이 까치봉
내장산 전체가 한눈에 내려다보이고 내장9봉은 물론 발아래 내장산의 전경도 한눈에 들어오지만 10월이 임박해 왔는데도 나뭇잎은 아직도 한 여름의 푸르름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어 붉은 빛이라고는 찾아 볼 수가 없다.
서래봉은 큰 바위의 형상이 논을 삶는 써레와 같이 생겨서 서래봉이라 이름이 붙었다고 하는가 하면 일설에는 달마조사가 양나라로부터 이웃에 왔다하여 서쪽에서 왔다고 서래봉이라고 불린다는 이곳은 내장9봉의 단연 으뜸이며 전설에 의하면 벽련암 석축을 쌓을 때 희묵대사가 서래봉 정상에서 돌을 던지면 아래서 제자 희천이 돌을 받아 쌓았다고 한다.
아래 내장사에서 올려다보면 1km에 가까운 기암이 둘러쳐 감탄사를 자아내게 할 이곳 서래봉은 아무도 없이 조용한 가운데 내장9봉을 감상하고 있자니 조금전 휴식을 취하고 있던 일행들이 속속 올라오면서 갑자기 조용했던 서래봉이 시끌시끌해지고 서로가 대견스러워 함박웃음을 짓는다.
갈 길이 바쁜 나는 다른 산님을 뒤로하고 내리막길로 들어서 하염없이 철계단을 내려서 서래봉 매표소길 과 맞닿은 지점에서 한무리 산님을 만나고 얼마 떨어진 서래 약수에 도착하니 샘은 완전히 말라 있다.
지도를 보고 백년약수와 서래약수가 있어 빈병을 가지고 와 이곳에서 식수를 구할까 생각했다가 백의 하니 물이 없어 낭패를 당할지 몰라 집에서부터 물을 가져왔으니 얼마나 다행이며 자칫 서래약수를 믿었다가는 내장9봉도 돌아보지 못 할 뻔했다.
약수터에서 20분 정도를 가서 불출봉에 닿았다.

불출봉 정상의 모습
불출봉에는 서래봉에 아무도 없던 것과 달리 10명의 산님들이 있었다.
서래봉에 벽련암이 있다면 불출봉에는 원적암이 있으니 다시 말해 원적암의 주봉인데 전설에 의하면 불출봉에 안개나 구름이 끼면 그 해는 가뭄이 든다고 한다.

불출봉에서 본 서래봉 능선
불출봉에서 잠시 휴식을 취하고 뒤돌아보니 서래봉이 멀리 보이고 앞을 보니 가야할 망해봉이 저만치 있다.
불출봉에서 망해봉 구간은 길이 비교적 좋은 편이나 서래봉-불출봉 구간에 비하면 무척이나 좋다.
가을의 햇볕은 따갑다.
이따금 내려다보이는 내장의 속살은 9개봉에서부터 이어지는 지능선과 깊은 계곡이 장관을 이루고 갖가지 형상의 기암이 꽉 들어찬 봉우리는 설악의 한 분분과 같다.
이곳에 붉게 물든 단풍을 가미한다면 아름다움의 극치를 이룰 것으로 그래서 모든 사람들이 내장의 단풍에 매료되는가 보다.

망해봉으로 오르는 암릉 철계단 모습
뜨거운 뙤약볕을 머리위로 이고 망해봉에 도착한다.
망해봉에 올라보면 드넓은 호남평야는 물론 맑은 날이면 변산반도가 있는 서해가 보인다 해서 망해봉이라 이름 지어졌다고 하는데 망해봉에서는 정읍 시내가 한눈에 바라다 보이고 내장저수지가 발아래 있으며 사방을 조망하기에는 내장 9봉중 으뜸일 것 같다.
간밤에 얼려 가지고 온 캔맥주를 마시며 갈증을 해소하고 사방을 조망하며 10여분 휴식을 취하고 연지봉으로 이동한다. 내장 9봉은 봉에서 다른 봉으로 이동하는데 먼 구간은 40분 가까운 구간은 10분 보통 20분 정도의 시간이 소요된다.
10여분만에 연지봉에 도착하였는데 이곳에도 나 혼자뿐이다.
불출봉에서 9붕을 조망하기가 일품이었고 망해봉에서 정읍시가지나 내장저수지를 조망하기 최적이었는데 이곳 연지봉에서는 불출봉이나 망해봉에서 느끼지 못했던 서래봉의 멋진 모습을 볼 수가 있는 곳이기도 하다
길게 늘어선 회색빛의 암릉은 마치 신선이 성을 쌓은 듯 보이고 능선 아래 녹음 속에는 관람객이 제법 있는지 시끄러운 소리가 들려온다.

까치봉이며 이 봉우리 아래 용굴이 있습니다.
맞은편에서 3명의 산님이 올라오니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 다시 내려서 다음 봉우리인 까치봉으로 발길을 옮기니 까치봉에는 20명 정도 한 팀이 휴식을 취하고 있다.
내장 9봉중 서래봉, 불출봉, 망해봉은 전형적인 암봉이나 다른 봉들은 일반적인 육봉에 불과하며 조망도 암봉에 비해 떨어지는 편이다.
어떤 사람의 산행기를 읽으며 눈이 번쩍 뜨이고 또 한수를 배우게 되었는데 그 분의 내장산에 대한 산명이나 사찰의 이름을 이것과 연관을 지어 설명하였다.
내장산 안내판에 의하면 내장산에는 숨겨진 것이 무궁무진하다 하여 이름 붙여진 내장산은 신선봉을 주봉으로 9개 봉우리가 말발굽처럼 드리워진 특이한 자연경관을 가지고 있다고 했는데 진짜로 숨겨진 보물은 용굴과 관련이 있으며 용굴은 바로 이 까치봉 아래에 있다.
나도 역사에 관심이 많아 마니산 산행기에서 언급했듯이 우리나라 조선왕조 신록은 세계적으로 유명하고 가치 있는 보물로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조선왕조실록은 최초 4부를 만들어 춘추관·, 충주, ·전주, ·성주의 4사고에 각기 1부씩 봉안하였는데, 임진왜란으로 전주사고의 실록을 빼고는 모두 불타 없어져 전주사고의 실록을 바탕으로 다시 5부를 만들어 1부는 서울 춘추관에 그대로 두고 다른 4부는 강화도 마니산, 경상도 봉화의 태백산, 평안도 영변의 묘향산, 강원도 평창의 오대산에 사고를 새로 설치하고 각각 1부씩 나누어 보관하여 일부훼손이 되고 일부는 온전히 보관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그런데 전주사고가 임진왜란 때 불타지 않고 온전히 보관될 수 있었던 것은 임진왜란 때 왜놈이 금산에 쳐들어오자 손홍록과 안의라는 두 선비가 머슴 수 십 명을 이끌고 전주 경기전(慶基殿)으로 달려가서 그곳을 지키는 참봉인 오희길과 함께 이태조의 영정과 왕조실록 등의 사고본(史庫本)을 내장산 금선폭포 가는 길에 있는 용굴에 1년간 꼭꼭 숨겨 놓았기 때문이라고 한다.
까치봉 아래 용굴이 있어 신록을 온전히 보관할 수 있었음이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이었나...........
까치봉을 나서 10분여를 이동하여 신선봉과 순창새재 갈림길에 당도한다.
산행계획이 이곳에 배낭을 내려놓고 내장산 주봉인 신선봉까지 갔다가 다시 되돌아와 백암산으로 가는 것으로 세웠으므로 잠시 휴식을 취하는 중 새재쪽에서 2명의 산님이 올라온다.
서로가 인사를 나누고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느냐? 묻기에 아침에 서울을 출발하여 서래봉부터 시작하여 백암산을 거쳐 백양사로 갈 예정이라고 말하자 시간상으로 보아 백양사로 내려가기가 힘든 것 같다며 서둘러야 할 것이라고 조언한다.
이들은 일산의 한백산악회원으로 이들 중 한 명은 1대간 9정맥을 모두 끝낸 사람이라고 하기에 한국의 산하나 오케이 마운틴의 닉네임이 있으면 알려 달라고 하자 컴맹이라며 결국 알려주지 않는다.
이들은 입암산 매표소에서부터 출발했으며 신선봉쪽으로 이동한다고 하는 것을 보면 호남정맥을 답사하는 것 같았는데 이들과 산 이야기를 나누며 신선봉까지 함께 산행을 하였는데 1대간 9정맥을 마친 산꾼들이라 그런지 산행속도가 빠른 편이다.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며 가다보니 20분이 결려 신선봉에 도착했는데 내장산 주봉인 신선봉은 특별한 게 없으며 조망도 썩 좋지 않고 정상석도 없다.
단지 내장산의 주봉이라는 점과 건너편 서래봉, 불출봉, 망해봉 등을 제대로 전면에서 조망할 수 있다는 점이다.
정상에서 10분여 대화를 나누다가 다시 새재 갈림길로 되돌아 왔으나 신선봉을 다녀오는 왕복 시간과 휴식 시간을 합쳐 1시간을 보냈다.
나는 아직 호남정맥을 답사하지 못했으나 이곳 삼거리는 호남정맥 갈림길 로써 신성봉에서 장군봉을 거쳐 추령으로 이어지면 반대편 쪽으로는 삼거리에서 순창새재를 거쳐 상황봉으로 이어진다.
삼거리에서 순창새재 쪽으로 내려서서 미지의 세계로 접어든다.
내장산에는 그런대로 산님들이 있으나 이곳에는 호남정맥인데도 불구하고 산행을 하는 산님이 적다, 중간에 4명 한 팀을 만났으며 정맥길을 따라 가다 이정표대로 따라 가다보니 계곡으로 내려섰고 소둥근재에 도착했다. 정맥은 계곡으로 내려서질 않는데 이상하게 생각하고 도면을 자세히 보니 소죽음재로 가야할 길을 국립공원 직원들이 출입제한지역이라고 표식리본을 모두 떼어버려 계곡으로 내려서게 된 것이다. 소둥근재에서 계곡을 타고 올라서니 20여분 뒤 새재에 닿는다. 이 곳 안부사거리는 백암산 상황봉 입암산 소죽음재 소둥근재로 가는 길이며 입암산 쪽은 영산기맥의 분기점이기도 하다.
시간을 보니 2시 40분이다. 이곳에서 식사를 하기 위해 자리를 잡고 식사를 하려던 차에 국립공원 직원 4명이 올라와 앉아 있던 바로 옆에서 작업을 한다고 소란을 피워 점심식사를 거르고 물 한 모금으로 대신하고 상황봉으로 간다.
산님이 전혀 없고 조용하기만 하며 등로는 비교적 좋고 이따금씩 한 길 이상의 억새와 산죽이 밭을 이루고 있다.
특히 어려운 구간이 없어 부지런히 진행하다 막 판 큰 봉우리를 앞에 두고 입안에서 단내가 나도록 힘을 쓰며 올라서니 이곳이 백암산 최고봉인 상황봉 이다.
아무도 없는 정상에서 기쁨을 만끽하며 조금 아래 봉우리 전망대를 오가며 사방을 조망하며 내장산부터 지나온 능선을 쳐다보며 스스로 대단함에 대한 자부심을 갖는다.
과일을 깎아 먹으며 땀을 식히다 말고 한정된 시간에 산행을 마쳐야 한다는 부담으로 급하게 722봉으로 발길을 옮긴다. 상황봉에서 772봉을 지나 백학봉까지의 등로는 양호하며 위험한 구간이 없다. 722봉에 도착한 시간이 오후 4시 15분으로 선답자의 산행기록에 의하면 이곳에서 매표서까지 1시간 반이 소요되었으니 6시면 충분히 산행을 마칠 수 있을 것이므로 어느 정도 안심이 된다.

학바위로 가는 도중 보이는 백양사 전경

학바위
그래도 차편이 어떻게 될지 몰라 정읍에 도착하는 시간까지 긴장을 늦출 수 없다. 유명하다는 백학봉에 도착하였으나 좋은 줄 모르겠다. 백학봉에서 올라오는 산님을 만났는데 올라오기가 너무너무 힘들고 죽음의 급경사 계단 임을 예고해 준다. 사실 그랬다. 위에서 보면 아무렇지도 않고 멋도 모르겠으나 내려서면서 보니 웅장한 학바위가 장관을 이루고 그 밑에 영천굴과 약수암이 있다. 내려가고 또 내려가도 철계단과 나무계단은 끝이 없고 밑에서 오르는 사람들은 천국의 계단을 오르는 심정으로 있는 힘을 다해 올랐을 것이다.
약 3년전 집사람이 동네 산악회를 따라 왔을 때 모든 사람이 백양사에서 시간을 보낼 때 재선엄마와 둘이서 백학봉까지 왔었다고 하며 스스로 대단한 것처럼 얘기 했을 때 대수롭지 않게 여겼으나 실제 오늘 목격을 해보니 대단한 사건이었으며 그때 정말 수고했다고 치하해주지 못한 게 미안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 나이가 들어 다리와 허리가 아파 낮은 산도 산행하기 힘들어 하니 애석하기만 한데 하루속히 완쾌되어 백학봉을 다시 함께 올랐으면 하는 아쉬움을 가지고 내려선다.

영천굴의 모습
웅장하고 어마어마한 바위 아래는 자연적으로 움푹패인 천연굴에 인공을 가미하여 불전을 만들어 불자들의 도량으로 만들어 놓은 영천굴이 있고 마루 밑으로는 석진수의 흐르는 소리가 계속 들려온다.
샘물을 받아 갈증을 해소하고 아래로 내려서 한산한 길로 접어드니 이곳부터는 백양사에서 올라오는 일반관광객들이 많다. 손을 잡고 오는 남녀가 있느가 하면 어린이들을 데리고 온 가족도 있다.
백양사에는 많은 사람들이 절구경을 하고 있으나 서울까지 올라가야하는 제한적인 시간으로 사찰을 둘러 볼 시간도 없이 안타까운 마음으로 매표소로 이동을 한다.

백양사와 학바위
몇 발자국 가다 말고 뒤돌아보기를 여러 차례
뜨거운 빛을 잃어가는 붉은 햇빛에 비치는 학바위의 웅장한 모습이 너무나 멋진 풍경으로 보이니 전국의 산들은 그 산들마다 저마다의 자태를 지니고 있으나 백암산의 학바위는 내 머릿속에 영원히 남아 있을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