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산국립공원, 관음봉 산행기
변산국립공원, 관음봉 산행기
산행일시: 2010년06월 12일
누구와: 나와 집사람 그리고 태숙처형님과 친구2명
산행거리: 약 4㎞
산행시간: 2시간30분(16:50~19:23)
산행코스: 내소사주차장(16:45)-내소사 일주문(16:48)-능선(17:20)-관음봉3거리(17:38)-관음봉(18:08)-능선암봉(18:45)-내소사입구(19:23)-내소사(13:20)-내소사주차장(19:38)

지난번 앵자봉을 다녀오면서 태숙처형님과 1박을 하며 지방의 산을 가자고 약속했다.
집사람이 처형님과 협의하여 주말을 끼고 함께 갈 수 있는 날을 12~13일로 정하여 3명과 처형님의 동네 친구2분과 5명이 산행에 나서기로 약속을 한다.
이틀 동안 계속 비가 내린다.
갈까? 말까? 망설이다 간단히 배낭을 꾸리고 조금 늦은 시간에 부안으로 떠난다.
비가 오는 가운데 길을 떠났는데 서산지방에 들어서니 비가 개고 날씨가 그런대로 괜찮았다.
서산 휴게소에 들려 준비해 간 먹거리로 맛있게 점심을 해결하고 내소사 주차장까지 한 번에 내달린다.
비가 와서 산을 찾은 사람이 거의 없을 것으로 생각했는데 의외로 많은 사람들이 왔으며 주차장에도 만차는 아니지만 생각보다 많은 차량이 운집하였다.


일주문을 지나 전나무길로.....
주차를 하고 주차장에서 변산을 보는 순간 그동안 오고 싶었던 산을 너무나 늦게 찾았다는 생각과 마치 주왕산의 바위같은 둥그레한 바위가 짙은 소나무 숲과 어울려 조화를 이루고 있다.
부안에 있는 변산반도는 국내 국립공원 중 유일하게 바다를 끼고 있는 내륙공원으로 바다를 끼고 도는 해안선을 외변산으로 내륙 산악지대를 내변산이라고 할 정도로 안과 밖이 매우 다르며 변산은 예로부터 능가산. 영주산. 봉래산이라 불렀으며 호남의 5대명산중 하나로 꼽혀왔다.

내소사의 100년된 느티나무
최고봉인 의상봉이 509m에 지나지 않으며. 그 밑으로는 쌍선봉(459m)과 관음봉(433m)를 비롯해 신선봉, 성인봉 등 기암괴석으로 이루어진 암봉들이 솟아있다.
또한 높이30m의 직소폭포, 봉래폭포, 부안호, 분옥담, 선녀탕, 가마소, 와룡소, 낙조대 등 절경지가 있으며 외변산에는 해식단애의 절경을 이루는 채석강과 적벽강이 있다.
늦은 시간이어서 산행을 하기에는 좀 무리라는 생각도 들긴 했지만 오늘 관음봉이라도 오르지 않으면 내일 하나의 산밖에 오르지 못하므로 2개산 산행계획에 차질이 생기므로 무리수를 둘 수밖에 없다.
내소사에서 관음봉을 오른다고 해봐야 왕복4km정도이므로 산행을 했다고 하기도 애매하지만 그렇게라도 이름을 지어야만 될 것 같아 주차장에 도착해서부터 서두르기 시작한다.
내소사를 들어서다 하산하며 구경하기로 하고 좌측 사이 길로 들어서 한동안 힘을 쓰고 나니 능선에 닿고 시원한 맞파람에 우뚝 솟은 관음봉을 보니 답답했던 가슴이 뻥 뚫리는 기분이다.


능선을 오르며 보는 관음볼과 세봉능선
능선아래쪽으로 곰소항과 주위의 마을들이 조화를 이루어 한 폭의 산수화를 보는 것처럼 아름답게 조망되기 시작한다.
잠시 숨을 돌리고 능선을 따라 조금 오르니 거대한 암봉이 우리를 반겨주소 바위 밑으로 내소사가 평화스러운 느낌으로 다가온다.
능선을 지그재그로 돌아 오르니 관음봉3거리다.
이정표에는 관음봉이 0.6km로 되어 있으나 도상거리에 오름길이고 보면 만만치가 않다.
서둘러 진행을 하고 양쪽으로 조리대가 나있는 습한 지역을 지나 조금 내려서는가 싶더니 다시 오름이 시작된다.



오름길이 계속 이어지고

꿩의비름
최근 들어 야생화에 부쩍 관심이 높아 오늘도 귀한 야생화를 찾을 생각이었는데 오름길 옆으로 한 무더기 비름이 있으니 꿩의비름인 것 같으나 꽃이 피지 않아 확실치는 않다.
야생화를 찾는 사이 집사람이 먼저 오르며 계속 빨리 올라오라고 독촉을 해댄다.

헬기장 한 구석의 엉겅퀴
관음봉 오름길 헬기장 조금 못 미친 지점에 당도했을 때 굵은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하니 어찌해야 할 바를 모르고 정상이 얼마 남지 않아 정상으로 오를 것을 강요하고 부지런히 오르니 비가그치니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다.


관음봉 정상에는 쉼터가
어려움 끝에 도착한 정상은 정상석대신 이정표를 겸하는 정상목이 대신하고 그리 넓지 않은 정상은 4각 긴 의자를 놓아 휴식공간을 만들었으며 한 낮이면 사람들이 북적거려 앉을 틈이 없겠으나 비가 뿌려대고 시간이 늦은 지금은 우리 일행 외에는 아무도 없다.
어둠이 서서히 찾아들어 바로 하산하기로 하고 올라온 길로 다시 내려가기로 하였으나 나는 세봉으로 가고 싶은 생각이 굴뚝같으나 여자들만 있는데 보호자가 필요하고 또 여러 사람이 함께 산에 와서 개인적인 행동은 예의가 아니므로 함께 내려선다.


관음봉 정상을 내려서며 보는 관음봉 풍경
헬기장을 내려서 조망이 좋은 바위에 서니 밑으로 봉래구곡으로 이어지는 계곡과 직소폭포가 만드는 거대한 못이 한눈에 바라보이고 건너편 성인봉과 쌍선봉이 지나는 구름을 잡아 세우고 있다.
직소폭포를 가보고 싶었으나 시간이 안 되므로 다음기회로 미루기로 하고 멀리서 직소폭포의 윤곽이라도 볼 생각으로 주위를 기웃거려 봐도 어디에 있는지 모습을 찾을 길이 없다.

변산 협곡과 저수지
그친 비가 이따금씩 몇방울씩 떨어지니 불안해 오래 머물 수가 없어 서둘러 하산을 하니 다시 관음봉3거리다.
여자들은 불안해하므로 언제가 될지 모르는 훗날은 기약하며 하산을 서두른다.
곰소항이 내려다보이는 바위능선에서 잠시 앉아 휴식을 취하고 이마에 흐른 땀이 식을 즈음 내리막길로 들어서 내소사에 닿는다.

<내소사에서 본 관음봉의 모습>

300년 된 보리수나무
집사람과 처형님은 힘이 든다며 사찰구경을 미루고 혼자서 경내에 들어서 뒤를 보니 관음봉의 우뚝 솟은 봉우리와 아래로 이어진 수 십 길의 단애를 배경으로 내소사는 긴 세월을 지내왔다.
옛 문헌에 의하면 관음봉이 있는 이산을 능가산이라 불렀다고 한다.
긴 세월을 말해주듯 마당에는 1.000년 된 느티나무가 우뚝 서있고 그 뒤로 300년 된 보리수나무가 있다.
내소사에 있는 보리수나무는 우리나라 산에 있는 재래종 보리수나무가 아니고 인도지방에 있다는 보리자나무로 우리나라 보리수나무와는 완전히 다른 나무다.
내소사 대웅전 앞에 있는 큰 보리자나무라를 보며 석가모니를 떠올리며, 석가모니 탄생지인 룸비니동산의 무수와 깨달음의 보리자나무가 바로 이 나무인데 인도인들은 5000년 전부터 나무에 신령이 있는 믿음이 강했으며 이 나무 열매로 염주를 만든다고 한다.
보리수나무 뒤로 웅장하지 않고 단청을 하지 않아 소박하게 느껴지는 대웅전이 있으며 대웅전 앞에는 3층석탑이 있는 전형적인 사찰의 모습을 담고 있다.

보물277호인 고려동종
내소사는
신라선덕여왕2(633)년에 혜구선사가 창건하였으며 경내에는 보물277호인 고려동종과 278호인 법화경발본사경 그리고 보물 291호인 대웅전이 있는데 내소사 미완성 대웅전 단청은 아직도 완성하지 못한 채, 한쪽 귀퉁이에 그대로 남아있다고 한다.
이러한 연유는 법당공사가 끝날 무렵 한 화공이 나타나 무보수로 대웅전 단청을 칠해 주겠다하며 100일 동안 절대로 법당에 아무도 오지 못하도록 당부했는데. 100일에서 하루를 남긴 99일이 되던 날 어떤 사마승이 창구멍으로 법당 안을 엿보고 말았다는 것이다.
법당안에서 칠을 하는 화공은 보이지 않고 대신 금 빛 새 한마리가 입에 붓을 물고 몸에서 나오는 물감으로 색칠을 하다 인기척에 놀라 새는 날아가다 떨어져 죽고 많은 사람들이 달려가 보니 새의 시체가 아닌 호랑이 시체가 놓여있었으며 그 호랑이는 변산반도 신령님이었다고 한다.
내소사 대웅전 뒷벽에는 지금도 그 호랑이를 그려놓고 있다고 하며 지금도 대웅보전 내부공포 한 칸은 비어있는데 여기에는 이러한 전설이 전해지고 있다고 한다.

내소사 대웅전
대웅전을 짓기로 한 목수는 3년을 하루같이 집을 짓지는 않고 법당을 지을 나무토막만 다듬었는데 이를 심술이 발동한 동자승 슬쩍 한 토막을 감추어 버렸는데 드디어 나무 다듬는 일을 마친 목수가 나무토막을 헤아려 본즉 하나가 부족한 것을 느끼고 목수는 장탄식하며 자신의 능력이 한심스러워 일을 포기하려 하자 이를 보고 동자승이 놀라 감추었던 토막을 내놓았지만 목수는 그것을 부정한 것이라 하여 쓰지 않고 집을 지었다고 한다.
전설로 얼룩진 대웅전을 한 바퀴 돌아 나와 세심을 위한 약수터로 가서 약수를 마시고 어지러운 마음을 정리하고 내소사를 나선다.


내소사를 나서며
내소사를 나서며 들어 올 때 느끼지 못했던 아늑함과 아름다운 향기를 발산하는 전나무길의 추억을 한 아름 안고서.................
이후
채석강에서 추억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