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산100산산행기

진안, 마이산 산행기

범솥말 2025. 6. 15. 23:27

마이산 산행기

 

산행일시: 20110824

누구와: 가고파 산악회원42명과 함께

산행거리: 11

산행시간: 5시간00(10:45~15:45)

산행코스:강정마을들머리(10:45)-합미산성(11:00)-광대봉(11:50,609m)-비룡대(13:55,527m)-탑사(14:55)-은수사(15:15)-북부주차장(15:45)

 

진안의 마이산을 찾았다.

마이산은 2번이나 찾았으나 탑사를 구경한 게 전부이니 마이산 산행은 실제로 전무한 상태이다.

고속도로 진안을 근접하면서 말의 귀처럼 쫑끗하게 서 있는 수마이봉과 암마이봉의 우리 일행을 완전히 압도하고 버스가 진안IC에서 빠져 나오는 순간부터 차창으로 비친 수마이봉과 암마이봉을 보려고 모두가 밖을 향한다.

 

마이산은?

마이산은 시대별로 다양한 명칭으로 불리어졌는데 신라 때에는 서다산, 고려시대에는 용출산이라 불렀다고 하며, 조선시대에는 태조가 속금산(束金山)이라 이름을 지었다고 하는데 속금산으로 이름을 짓게된 전설이 있으니 이러하다.

태조 이성계가 고려의 무장으로 운봉에서 왜구를 무찌르고 개선하는 길에 마이산을 보았는데 그 모습이 꿈속에서 받은 금척(금빛이 나는 자)을 묶어 놓은 듯한 모습이었고 마치 마이산이 오행의 금행(金行)을 묶은 듯 생겼다고 하여 속금산으로 명명했다고 는데 그 후 이성계는 30일 동안 마이산에서 기도하며 건국의 대의를 품었다고 한다. 이러한 전설은 조선의 창업을 기리는 노래로 궁중의 연희악이나 종묘제례악에 사용되었던 몽금척요의 바탕을 이루고 있는데 몽금척요는 1393(태조2) 삼봉 정도전이 지은 가사로 마이산에 관한 구절이 나온다. “산의 사면은 모두 돌로 우뚝 솟아 돛대와 같은데, 그 아름다움이 그지없다............”하며 마이산의 모습을 찬미하는데 마이산은 조선의 개국과 밀접한 인연을 지닌 산이라 할 수 있다.

태조가 솟금산이라 명명한 이 산을 태종 시대 이후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는 마이산(馬耳山)으로 불리게 되었다고 전해지고 있는데 태종은 왜? 아버지가 지은 산 이름을 속금산에서 마이산으로 바꾸었을까?

태종이 속금산을 마이산으로 바꾸게 된 동기는 아버지 태조가 지은 시한수를 깊이 음미하고 바꾸었는데 태조 이성계가 지은 시는 이러하다.

동으로 달리던 천마 이미 지쳤는가,

갈 길은 먼데 그만 쓰러지고 말았구나,

몸통만 가져가고 두 귀는 남겼는가,

두 개의 봉우리 하늘로 솟아 있네.

이산은 그리 높지 않은 686m이지만 일반적인 다른 산에 비해 특이한 점이 많고 한국의 7대 불가사이 중의 하나인 탑사의 탑이 있다는 점만 해도 세인들의 이목을 집중시킬 수 있는 산이기도 하며 산 전체가 거대한 암석으로 이산을 중심으로 남쪽으로는 섬진강의 발원이 되는 샘이 있는가하면 북으로도 금강의 발원이 되는 샘이 있다.

 

마이산도 금강산처럼 사계절 이름이 있다?

나는 마이산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공부하기 전에는 계절마다 산 이름을 달리하는 산은 금강산(:금강산, 여름:봉래산, 가을:풍악산, 겨울:개골산)이 유일하다고 생각했는데 마이산도 계절에 따른 이름을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최선호님사진을 퍼옴>

우리가 부르고 있는 말의 귀 모양을 닮았다는 마이산은 가을이름이며

<브리뜨니님 사진을 퍼옴>

봄에는 안개를 뚫고 나온 두 봉우리가 쌍돛대 같다고 돛대봉이라 하며

여름에는수목이 울창해지면 용의 뿔처럼 보인다하여 용각봉이라 하며

<김진국님 사진을 퍼옴>

겨울이면 눈이 쌓이지 않아 먹물을 찍은 붓끝처럼 보인다 하여 문필봉으로 부른다는 사실이고 보면

확실히 마이산은 명산임에는 틀림이 없는 것이며 이렇게 계절마다 별칭을 갖는다는 것은 산에 대한 극진한 예우라고 하는데 이러한 역사와 전설을 가지고 있어서 인지 사람들은 마이산을 신비의 산으로 보며 관심의 산으로 보고 찾고 또 찾는지 모른다.

 

마령평야가 보이는 들머리

진안IC에서 나오며 좌회전하여 30번 국도를 따라 마령면에서 우측 강정마을에서 하차하여 들머리로 들어서며 본격적인 산행을 시작한다.

<들머리 이정표>

마이산의 등산코스는 여러 곳이 있으나 사람들에게 익히 알려진 긴 코스는 강정마을을 시작으로 광대봉을 거쳐 비룡대가 있는 나봉암을 지나 탑사를 경유하여 북부주차장으로 이어지는 코스가 대표적이라 할 수 있다.

<합미산성>

강정대 들머리가 아닌 묘기가 있는 들머리에 들어서 좁은 길을 따라 10분여를 오르면 합미산성 흔적이 있는 길을 따라 오르다 능선 정점의 비교적 잘 보존된 합미산성을 좌측에 두고 좌측 내리막으로 이어지는 길을 따라 호젓한 산행이 시작된다.

솔밭사이를 가르며 즐겁게 산행하던 것도 잠시 강한 햇볕이 내려쬐기 시작하자 땅에서 지열이 올라 숨이 막힐 지경인 가운데 암릉이 나오면서부터 전신이 직사광선에 노출되니 즐거워야 할 산행이 고난의 길로 바뀌었다.

평상시 같으면 암봉이 나올 때마다 조망을 하며 주위경관을 감상해야 하나 오늘만큼은 좀 다르다.

 

광대봉에서 마이산의 진면목을 보다

숨이 턱에 받치는 가운데 전신이 노출된 상태에서 쇠 난간에 의존해 천천히 광대봉을 오르는 것이 오늘만큼은 무척이나 힘이 든다.

그러나 고통스러움이 전부는 아니다.

<광대봉에서>

<광대봉에서 보는 풍경>

힘들여 광대봉에 오르면 반대급부가 따르는데 광대봉을 올라서는 순간 이제껏 내가 알고 있는 마이산에 대한 관념은 깨지고 발아래 펼쳐진 마이산의 너울진 암봉을 바라보며 이제야 마이산을 조금은 알 것 같다.

동쪽으로 조망이 뚫리며 마이산의 주봉인 마이봉이 고고한 자태로 솟아있고 보는 각도에 따라 모습을 달리하는 마이봉은 말의 귀모양은 아니지만 암마이봉에 가려 옆모습과 머리만 살짝 내민 숫마이봉은 수줍은 여인의 순수처럼 보이고 암마이봉 좌측으로 도봉산의 오봉의 형태를 갖춘 삿갓봉을 비롯해 멀고 작게 보이는 비룡대가 한눈에 들어옴과 동시에 능선을 따라 진안고원의 아름다운 봉우리들이 저마다의 독특한 모습으로 도열을 하고 있는가 하면 남쪽으로는 옛부터 호남의 곡창지대로 이름을 떨쳤다는 마령평야가 넓게 펼쳐지고 북으로는 고속도로가 산과 산을 가로지르며 뒤로 덕유산의 덕유능선이 희미하게 선보인다.

한동안을 광대봉에서 보내며 일행들과 마이산에 대한 찬사를 보내다 광대봉을 내려서는데 광대봉을 내려서는 길은 오를 때보다 더욱 조심스러운 구간으로 급경사로 이어지는 긴 난간과 계단을 내려서면 한동안을 편한 길로 이어지다 528봉에 올라서면 또다시 마이산의 진면목을 감상 할 수 있는 전망코스가 있다.

<전망대에서 본 광대봉>

<전망대에서 본 마이봉>

<전망대에서 마이;봉을 배경으로.....>

우람한 두 귀는 보는 각에 따라 시시각각으로 모양을 바꾼다며 조선시대 학자 김종직은 아름다운 봄 죽순 같은 자태를 서로 사랑할 뿐 기댈 수는 없다고 노래했다고 하는데 광대봉이나 이곳 전망대에서 보면 암수가 살며시 기대어 사랑을 나누는 모습으로 보이는데 아마도 김종직선생이 이곳에서 마이봉을 바라보았더라면 노래가 달라졌을 것이다.

 

나옹암을 지나쳐 비룡대를 오르다

마이산은 다른 산과 달리 전망대에서 볼 때 너울져 보이던 암봉들을 오르고 내려서며 산행길이 이어지는데 전망대에서 보기에 멋있어 좋았지만 수 많은 너울을 지나는 것은 지루하고 힘든 산행의 연속으로 하염없이 내리막을 내려설 때면 내려선 만큼 올라올 생각에 나도 모르게 온 몸의 힘이 빠져 버리곤 한다.

오늘 함께한 가고파산악회는 일반적인 다른 산악회와 운영이 다른 것이 선두나 중간에 산행대장이 없이 자율산행을 하는 곳으로 내게는 안성맞춤이겠으나 경력이 많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어울리지 않을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산행시작 후 30여분정도 함께 산행을 하다 이후로 홀로 산행을 해야했고 515봉을 내려서 안부에서 안내표지기가 붙어 있는 길로 들어설까 아니면 능선 길로 들어설까 망설이다 능선을 택했으나 아쉽게도 금당을 보지 못했는데 금당으로 내려서야 나옹선사가 수도했다는 나옹암을 볼 수 있었을걸 도면상에는 나와 있으나 나옹암을 언제 지나쳤는지 모르게 지나버렸다.

<524봉에서 본 비룡대>

<나봉암 오름길에서 본 마이봉>

많은 봉우리를 오르고 내려가기를 반복하다 보니 체력도 많이 떨어졌는지 이제는 산행이라기보다 길이 있으니 길 따라 가고 있는 느낌이며 높고 멀게 느껴졌던 비룡대가 점점 가까워지고 육중한 암봉에 설치된 난간을 잡고 살인더위처럼 느껴지는 폭염을 맞아가며 한 발자국 씩 가다보니 높게만 느껴지던 비룡대가 눈앞에 있다.

용이 날아든다는 비룡대!!!

마이산의 높은 곳에서는 사방에서 관측이 되는 곳으로 다시 말해 비룡대 위에 올라서면 마이산의 대부분은 관측이 가능하다는 말이다.

<금당>

온 길을 뒤돌아보니 햇빛에 반사되어 금빛이 계곡을 덮고 있는 고금당의 금빛 건물은 능선을 따라 오느라 들리지 못하고 멀리 비룡대에서 보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고 그 뒤로 보이는 광대봉은 먼발치서 말없이 우리를 지켜보고 있으며

광대봉에서 아기자기하게 느껴졌던 마이봉은 가까워지면서 우람하게 보이고 광대봉에서 볼 때 숫마이봉이 암마이봉 우측에 옆모습으로 다가섰는데 비룡대에서 보는 마이봉은 숫마이봉이 암마이봉의 어깨를 딪고 좌측으로 고개를 내밀고 있고 그 앞으로 삿갓봉의 아름다운 4개의 암봉이 분위기를 더 한층 고조시킨다.

비룡대 위에서 맞는 바람도 한마디로 최고다.

아래서는 바람이 별로 없는 것 같았는데 육각형의 2층 정자에 올라서니 엄청나게도 불어오는 바람은 전신에 흐른 땀을 금새 말려주고 벤취에 기대어 시간을 보내니 졸음이 밀려와 잠이 들것 같은 기분에 그만 자리를 털고 계단으로 내려선다.

계단을 막 내려선 왼쪽에는 나봉암이란 정상석이 있다.

한동안 휴식을 취하여 가벼운 몸으로 앞서간 일행을 따라가기 위해 속도를 내 본다. 합미산성이나 광대봉에서는 역 산행하는 사람들이 한 사람도 없었는데 비룡대를 내려서면서 몇몇을 만났는데 아마도 탑사에서 비룡대까지 짧은 산행을 하는 사람들인가 싶다.

 

마이봉과 탑사 그리고 은수사의 신비속으로

비룡대를 벗어나 한구비를 돌아 가파른 오르막을 넘으니 벤취가 설치되어있는 북부주차장으로 가는 직 코스와 탑사를 거쳐 가는 코스로 갈라지는 곳에서 휴식을 취하는 일행과 합류를 하여 함께 봉두봉을 향해 나선다.

한동안 오르다 좌측으로 우회길을 따라 얼마를 내려갔을까 아뿔사 직진으로 오르막을 올라서야 봉두봉인 것을 모르고 우회길로 들어섰으니.....

아쉬움을 남기고 탑사로 들어선다.

광대봉에서 하나의 조각품처럼 보였던 암마이봉이 이제는 거대한 산으로 내 앞에 있다.

중간 중간 보조개를 간직한 채, 한국의 7대 불가사리중의 하나인 탑이 있는 탑사를 품에 안은 채, 이갑용처사의 신비로움을 말없이 혼자 비밀로 간직한 채, 탑사를 찾는 수많은 사람들의 행복을 빌어주며 수억년의 신비를 간직한 채 오늘도 묵묵히 그 자리에 그 모습 그대로 있다.

<탑사입구에서 본 나도산의 전경>

<탑사입구에서 본 숫마이봉>

마이봉을 포함한 마이산 전체는 약 1억여 년 전 중생대 백악기 당시 이곳은 공룡들이 목을 축이던 호수였는데 이 지역에 홍수 때 유입된 자갈과 모래가 퇴적해 약 2m 두께의 역암층으로 변했다. 이 역암은 7천만 년 전쯤에 지각변동으로 지표면에 솟아 오른 후 차별 침식과 풍화를 거쳐 지금의 모양을 갖추게 되었다. 탑사 쪽에서 올려다보면 마이봉 절벽에 벌집모양으로 뚫려있는 작은 동굴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는데 타포니(tafoni)로 불리는 이 동굴들은 역암이 풍화하는 과정에서 생긴 흔적들이라 한다.

 

탑사와 은수사의 모든 하나하나가 시크릿.........

지하50여미터 아래서 나온다는 암반수로 갈증을 풀고 탑사경내로 들어서며

대웅전 주위에 세워져 있는 탑들을 보니 감회가 새롭고 오랜 세월을 한자리에서 그모습 그대로 변함없이 서있는모습은 신비 그 자체이다.

초입에 용궁이라는 샘이 있다.

이 용궁은 역사적 가치와 우물과 함께하는 천연기념물이 있다.

100여년전 이갑용처사가 식수로 사용하던 우물로 이곳에서 나는 샘물이 섬진강의 발원지라는 점과 이 용궁에 뿌리를 박은 줄사철나무는 천연기념물 제380호로 이갑용처사가 1910년 탑을 쌓을 때 식수한 것이라 한다.

대웅전 앞과 뒤 그리고 주변에 신비롭고 아름답게 샇아 올린 탑은 이갑용처사가 25세 나이로 마이산에 들어와 솔잎으로 생식을 하며 수도하던 중에 천지음양이치와 팔진도법을 적용하여 30여년동안 108탑을 쌓아 올렸는데 100년이 되도록 비바람에 무너지지 않고 제자리를 지키고 있으니 신기하기만 하며 인근 30리 안팎에서 조달한 돌로 기단을 만들고 축지법을 써서 전국 명산에서 날라 온 돌들에 기()를 담아 세워 올렸다고 한다.

대웅전을 한 바퀴 돌아 나오다 또 한번 놀라게 만든 것이 있으니 암마이봉을 타고 기어오르는 능소화 때문이다.

탑이 세워진 오랜동안 역사를 같이 했는지 마치 나무와 같은 줄기를 암마이네 밀착시키며 가지와 가지를 뻗으며 위로위로 오르고 있는데 주위 어디에도 천연기념물이라는 안내판이 없는 것으로 보아 천연기념물로 지정이 안 된 모양으로 하루 빨리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어야 하지 않을까?

탑사를 나서며 보고 봐도 풀리지 않는 의문을 안은 채 은수사로 향한다.

<은수사에서본 숫마이봉>

<청실배나무의 모습>

<역고드름 현상>

은수사에는 태조 이성계가 심었다는 청실배나무가 있는데 청실배나무의 나뭇잎이 아래서 위로 들리는 현상과 겨울철에는 청실배나무 근처에서 정화수를 떠 놓으면 얼음 기둥이 위로 솟아오르는 역고드름 현상이 종종 일어나기도 하는데 과학적인 설명으로 역고드름 생성의 원인이 밝혀지고 있지만 신기한 일이 아닐 수 없으며 전자에 기술한바와 같이 태조 이성계가 꿈에서 국가를 만들라는 금척(金尺)을 받은 곳도 이곳이라 한다.

 

불임여성이 찾던 곳 화엄굴 석간수

은수사를 뒤로하고 넓고 편한 나무 계단을 올라 암마이봉과 숫마이봉 사이인 고개를 천황문으로 이동하여 20여년전 이곳에 왔을 때 화엄굴에서 약수를 마셨던 기억을 되살리며 화엄굴로 가니 낙석으로 인한 통행이 불가한 지역이란다.

이곳의 약수는 24절기 중 춘분과 추분에만 약수까지 햇빛이 비치는 신비로움을 간직하고 있고 이 약수를 마시고 지성을 드리면 숫마이산의 정기를 받아 옥동자를 얻을수 있다는 전설이 있어 많은 불임여성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다고 전해지기도 하는데 통행을 금지시키고 있으니 안타까운 일이다.

다시 천황문으로 데크계단을 하나 둘 내려서며 북부주차장으로 내려선다.

전설이 있는 마이봉

북부주차장에 도착해 마이봉을 보니 암마이봉은 숲에 가려 보이지 않고 자식을 품에 안고 있는 숫마이봉만이 외롭게 보이는데 부부바위인 숫마이봉과 암마이봉에는 신선부부의 승천에 얽힌 전설이 있으니 이러하다.

옛날에 한 쌍의 신선이 자식을 낳고 살았다 한다. 마침내 승천할 때가 되어 남자 신선이 사람이 보면 부정 탄다고 한밤중에 떠나자 했다. 그러나 여자 신선은 밤에 떠나면 무섭다며 새벽에 떠나자고 말해다는 거다. 결국 그들은 새벽에 떠나게 되었는데, 때마침 일찍 물 길러 나온 아낙이 그들이 승천하려는 모습을 보고 소리를 질렀다. 승천하기는 다 틀렸다는 것을 알고 화가 난 남자 신선이 여자에게서 두 자식을 빼앗자 그만 그 자리에 바위산을 이루며 주저앉아 버렸다는 이야기다. (출처 : 오마이뉴스)

무사한 하루에 힘든 산행이었으나 추억에 남을 산행이었다는 생각으로 북부주차장으로 내려 섰지만 태조 이성계는 이곳에서 건국을 계시하는 금척을 받고 어떠한 생각을 하며 이 산을 내려갔을까?????

<고속도로를 달리는 버스안에서서 본 마이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