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안, 운장산 산행기
운장산과 연석산 연계산행기
산행일시: 2010년07월 17일
누구와: 알프스산우회 회원 32명과 함께
산행거리: 약 12.2㎞
산행시간: 6시간10분(10:00~16:10)
산행코스:내처사동주차장(10:00)-앞산날베기능선(10:11)-구봉산갈림길3거리(11:15)-동봉(삼장봉,1124m 11:24)-운장산정상(운장대,1126m 11:50)-상여바위(12:05)-서봉(오성대,1124m 12:20)-만항재(13:50)-연석산(925m 14:10)-연동마을 주차장(16:10)

◎산행전 이야기
금강과 만경강의 분수령을 이루고 있는 운장산은 금강 남쪽으로 뻗어 있는 금남정맥의 가장 주봉이 되는 산으로 산행을 하기전까지는 산명이 구름운(雲), 감출장(藏)의 운장으로 생각 했었다.
금남정맥의 주봉이니 만큼 산꼭대기에는 언제나 구름이 감돌거나 구름이 산을 가리고 있다는 뜻일 것이라 생각했는데 실제는 구름운(雲), 길장(長)을 쓴다는 것이다.
문헌에 의하면 한 때는 구름운(雲), 감출장(藏)의 운장산으로 불려지기도 했는데 언제부턴가 구름운(雲), 길장(長)의 운장산으로 불리고 있다고 하며 진안군지에 표기된 것은 전혀 다른 주출산으로 기록되었다고 하니 옛 이름은 주출산인 것 같다.
또한 산명에 대해서 조선 중종 때의 성리학자 송익필(宋翼弼) 선생이 이곳에서 유배 생활을 한 것에서 비롯되어 송익필선생의 자인 운장(雲長)을 따서 운장산으로 부르게 되었다고 전해지기도 한다.
10여일 두고 지루한 장맛비가 내리며 가끔씩 갠 뒤 다시 비가 오는 상황이 재현되는 가운데 인제의 방태산을 가려했으나 아침가리골 계곡 물의 수량이 많이 늘어나 안전사고의 위험이 있다고 취소되는 바람에 운장산을 택하여 알프스 회원들과 함께 10시가 못되어 들머리가 있는 내처사동 주차장에 도착한다.



<내처사동 들머리>
등산화 끈을 조여 매는 사이 파주 문산 자유로 산악회에서 주차장으로 들어서더니 우리 팀보다 먼저 들머리로 들어서고 이어서 우리 팀도 함께 산행을 시작한다.
우리 일행이 바로 뒤를 이어 합세하고 계곡을 건너 사면을 가로 질러 오르니 준비운동이 안 된 상태라 그런지 초반부터 빡쎈 기분이 기시질 않는다.
10분여를 올라 날베기능선 3거리 안부에 닿자 대부분 사람들이 힘들어하며 간단한 휴식에 들어가지만 혼자서 앞서나가며 외로운 산행을 한다.
◎야생화 비철에 야생화를 만나며
날베기능선의 오름길은 경사도는 심하지 않으나 능선 양쪽으로는 우거진 숲으로 조망도 없는데다가 야생화 철이 아니라서인지 꽃들도 없다.

<날배기능선을 오르는 대원들>


<일월비비추>
3거리에서 20여분을 올라 늦깎이 노루오줌 한 개체가 눈에 뛰더니 조금을 더 오르니 습지에 많이 나는 사초가 여기저기 눈에 뛰더니 일월비비추가 꽃을 피우고 있다.
처음에는 너무 반가워 신주단지 받들듯 모셨는데 오르면서 길가 주변에 사방으로 나있는 일월비비추가 앞다퉈가며 꽃을 피우고 있다.
그렇게 일월비비추와 함께 하며 오르던 능선길은 어느새 산죽으로 바뀌더니 키를 훌쩍 넘기는 산죽은 운장산을 다 벗어나도록 함께 한다.
◎운장산의 역사가 시작되다---동봉
산행을 시작한지 한 시간이 조금 지나 구봉산으로 갈리는 3거리 안부에 도착을 하여 땀을 식히며 일행이 오기를 한동안 기다리며 휴식을 취하고 5분여를 기다려 합세한 일행과 동봉인 삼장봉에 도착을 한다.


<동봉인 삼장봉>
전망이 좋은 동봉에서 한동안을 시간을 보내며 조망과 증명사진을 찍느라 분주한 가운데 사방을 둘러본다.
맨 처음 마이산을 찾았으나 보이지 않고 이곳에서 제대로 볼 수 있는 것은 운장대와 서봉인데 착시현상인지 운장대보다 서봉이 한참은 높아 보이는데 운장산의 동봉인 삼장봉은 지도상의 표기는 1124m인데 삼장봉 정상석에는 1133m로 표기하고 있어 많은 사람들이 혼선을 빚고 있는 부분이기도 하다.

<동봉에서 보는 서봉>

<동봉에서 보는 운장대>

<동봉에서 보는 서봉과 운장대>


<바위채송화와 꿩의다리>
동봉을 내려서는 주변에는 바위 틈바구니에 자리를 잡고 살아가는 돌양지꽃과 바위채송화 그리고 꿩의다리가 삼복더위에도 굳건하게 살아가고 있다.
동봉에서 내려서 운장대로 가는 700m는 왜 그리 멀게만 느껴지는지 능선상의 종주는 시원한 바람이 불어 좋을 때도 있지만 숲이 없는 지점에서는 직사광선에 노출되므로 힘든 경우가 종종 발생하기도 한다.
◎운장산의 주봉 운장대
능선을 지나 성곽의 잔재가 남아 있는 지점을 지나면 시원스럽게 사방이 조망되는 운장대가 기다리고 있다.



<운장대에서>
대삼각점이 있는 운장대은 사방이 탁 터있어 조망 처로서는 최고다.
간단하게 증명사진을 찍고 다른 사람들이 기념촬영을 하는 동안 사방을 조망을 하지만 확실히 알 수 있는 산은 마이산과 대둔산뿐이며 덕유산, 지리산 계룡산 등은 방향을 제대로 잡을 수가 없어 구분을 할 수가 없다.

<옛성곽을 지나며>

<운장대에서 본 동봉>
조망을 마치고 주변을 보니 닭의장풀이 꽃을 피우고 있었는데 요즘 들판을 나가보지 않아 달개비 꽃이 피었는지도 모르고 있지만 더 중요한 건 1100m 이상 되는 고지대에 달개비가 자라고 있다는 게 신기하기만 했다.
송신탑 철망사이에 갖가지 색을 띤 산악회 리본들이 바람에 날리는 모습을 보며 혼자 운장대를 내려서 기암이 있는 하강지점에 다다르니 산수국이 하얗게 꽃을 피우고 있다.

<산수국>

<상여바위로 가는 길>
꽃은 화려하지는 못했지만 산수국만이 가지고 있는 참꽃과 헛꽃의 역할로 꽃을 피워 곤충을 부르고 수정을 하는 독특한 특징이 내겐 왠지 쓸쓸하게 보여 진다.
뒤이어 온 일행들에게 산수국의 꽃과 성질을 말해 주고는 서봉으로 발길을 돌린다.

<상여바위와 서봉>

<상여바위에서 본 운장대>

<상여바위에서 본 서봉>
가파른 운장대를 내려서면 서봉과 운장대 중간지점에 우뚝 솟은 바위가있는데 이 바위가 상여바위라고 부르는데 아무리 눈여겨봐도 상여의 모습을 찾아 볼 수 없는데 멀리서 방향을 잡고 봐야 되는 듯싶다.

<서봉으로 오르는 길>


< 자주산꿩의 다리와 까치수염>
상여바위 주위에는 자주꿩의다리가 탐스러운 한창 꽃을 피우고 있고 능선을 가며 까치수염이 여기저기 눈에 띄는데 꽃의 크기나 모양은 저지대에서 피는 까치수염에 비해 다소 떨어진다.
◎운장산 서봉에 서다

<서봉--- 좌측이 오성대이며 가운데가 서봉의 고점인 칠성대>
서봉이 가까워지면서 우람한 오성대와 바위위에 덩그러니 놓인 칠성대가 눈을 통해 하나씩 각인된다.
많은 사람들의 질서 없이 움직이는 모습을 보며 한 무리가 되어 사진을 찍으며 서봉을 점한 기분은 허탈 그 자체로 이리저리로 돌아다니며 움직여 본다.

<오성대---송익필선생이 은거했다고 전해짐>
나중에 느낀 것이지만 시간이 남아 사방을 왔다 갔다 하면서 칠성대에서 30여m 떨어져 있는 오성대는 왜 안 갔다 왔는지.............
오성대는 서두에 밝힌바 있는 서얼 출신의 성리학자였던 운장 송익필선생이 유배 시 이곳에 머물렀다고 하며 서봉의 최고점인 칠성대에는 이러한 전설이 전해지고 있답니다.


<전설을 지니고 있는 칠성대>
운장산 칠성대의 전설
옛날 운장산 깊숙한 골짜기에 절이 있었는데 그 절에는 주지 스님만이 절 앞의 산을 개간하여 농사를 지어가며 부처님을 모시고 지내던 어느날 이 깊은 산중에 손님이 찾아왔다.
그들은 불공을 드리러 온 사람도 아니고 불도를 배우러 온 사람도 아니었으며 모두가 미목이 수려하고 잘 생긴 일곱 청년은 망태를 둘러맨 채였으며 이들은 주지에게 배가 고프니 요기를 할 수 있게 해 달라고 하였다.
이러한 이들에게 주지스님은 나 먹을 밥도 없다고 냉정히 거절하자 이들은 산위로 올라가 암자에 이르러 과거 시험을 준비하는 선비에게 이르러 밥을 주기를 간청하였다.
마침 저녁밥을 준비하던 선비는 불공을 드린 다음 식사를 드릴테니 조금만 기다려 달라고 하며 불상 앞으로 가 불공을 드리려고 하자 일곱명의 청년들은 화를 내며 배고픈 사람의 사정도 모르면서 벼슬은 무슨 벼슬을 한다고 하느냐! 하면서 밥상을 지팡이로 내려쳤고 선비가 놀라 뒤돌아보니 그들은 온데간데없고 자기가 공부하던 책도 없어져 버렸다.
이들은 칠원성군으로 탐랑성군, 거문성군, 녹존성군, 문곡성군, 염정성군, 무곡성군, 파군성군으로 북두칠성의 일곱성군인데 이들이 운장산 암자에서 공부하는 선비가 큰 동량이 되어 벼슬에 나갈만한 재질이 엿보여 그를 한번 시험하기 위해 내려갔다가 실망하여 선비를 혼을 내주고 하늘에 올라갔다고 한다. 선비는 그 후 자기의 모자람을 깨닫고 벼슬의 꿈을 버린 채 수도승이 되었다 하며 그곳을 칠성대라고 부르게 되었다 한다. [자료 펌 : 천황도사 설송]
◎연석산으로 가는 길.....
잠시 휴식을 취하는가 했더니 시끄러워 무슨 일인가 보니 선두가 연석산으로 가려는데 이정표에는 연석산으로 가는 방향이 없는 상태로 모두가 초행이며 심지어는 회장과 산행대장 마저도 초행이므로 길을 몰라 하기에 서쪽방향으로 나있는 길같은 생각이 들어 안내를 하니 연석산으로 가는 길이다.

<암릉 습지에 난 괭이눈>
서봉에서 내려서는 길은 경사가 심한데다 여러 곳에 로프가 매여져 있는데 며칠동안 비가 내려 바위가 젖어 있어 미끄러워 사고 위험이 있어 시간이 걸려도 천천히 하산하기를 권하니 아무런 사고 없이 위험구간을 내려서 잣나무 수림이 우거진 곳에서 점심식사를 하며 아침부터 산행한 이야기를 중심으로 대화를 나누며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
식사 후 산행은 늘 그랬듯이 귀찮고 힘들다.
서봉을 내려선 뒤부터 연석산으로 가는 길은 만항재까지는 힘든 곳이 없다.


<연석산 오름길에서 본 서봉과 운장대>
만항재를 지나며 연석산으로 오르는 길은 직사광선에 노출되는 것과 직벽에 가까운 암릉이 가로막고 있어 어려운 길이 된다.
◎연석산에 올라
마음같아서는 옷을 모두 버려도 소낙비나 죽죽 퍼부었으면 하는 바람을 가지며 어렵게 올라선 연석산은 정상석도 없이 스텐레스 입석표기가 전부이며 누군가 스텐레스에 매직펜으로 연석산 925m라고 표기했으므로 정상임을 알 수 있다.


<연석산 정상>

<연석산 서릉의 병풍바위>

<연석산 정상에서 본 서봉>
정상에는 햇볕을 가릴만한 그늘이 없다 조금 벗어난 나무들 주변에는 산죽으로 꽉 들어차 산죽을 쓰러뜨리며 쉴 공간을 만들 수는 없지 않는가?
연동마을로 내려서는 구간은 2곳으로 예정된 구간으로 가면 500여m 이상 거리가 멀다며 가까운 쪽으로 내려선다.
처음 합류한 산악회의 성질을 몰라 한동안을 기다려 회장이 올라오니 회장의 지시도 여러 사람들이 원하는 곳 다시 말해 가까운 곳으로 하산을 한다고 한다.
무더위 소에서 하산은 지루했다.
30여분이상을 내려서 계곡에 와 닿고 계곡의 물소리만 들어도 더위가 어느 정도 가실만큼 시원했다.
마당바위 위쪽에 자리를 잡고 배낭을 풀어헤친다.
◎계곡에 몸을 담그고.......



<보기만 해도 시원해~~~ 베틀소가 아닌가?>
최근 장맛비로 인해 수량이 많아진 계곡은 천지를 진동시키는 듯한 우레 소리를 내며 위에서 아래로 내리 쏟고 마치 설악의 구곡담계곡에 와 있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할 정도로 여기저기에 크고 작은 폭포와 작고 아담한 소를 지니고 있다.
여인이 베를짜는 모습과 흡사하게 생겨 베틀바위라고 불리는 바위와 베를 짜는 여인이 피로와 외로움을 잊기 위해 연못에서 목욕을 했다 해서 베틀소라고 전해지는 전설을 안고 있는 베틀바위와 베틀소는 안내하는 사람이 있거나 제대로 된 안내판이 없어 정확히 알 수는 없었지만 아마도 우리가 쉬었던 곳이 각시소는 아닌지..............
더위에 찌든 몸을 계곡물에 담그고 시간 가는 줄 모르게 보내다 다시 하산을 시작하고 바로 아래 마당바위를 지나 10여분 아래 산제당의 이정표를 지나니 임도가 나온다.



<등골나물과 물레나물 그리고 미나리아재비>
임도길로 내려서 주차장으로 가는 길가 주변에는 등골나물과 노란꽃을 피우고 있는 물레나물이 멀어져 가는 나를 아쉬운 듯 배웅하는 가운데 우리 일행 중 거의 마지막 팀으로 연동마을 주차장으로 내려선다.
날머리에 도착해 뒤돌아 본 연석산은 부드럽게 보였는데 막상 안으로 들어서면 부드러움보다는 강한 외유내강의 산이라 할 것이다.

<연동마을 날머리>

<날머리에서 본 연석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