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산100산산행기

홍천, 공작산 산행기

범솥말 2025. 6. 15. 23:22

공작을타고 험준한 능선을 날다

 

산행일시: 20090829

누구와: 태숙처형님,집사람 그리고 나

산행거리: 10.3

산행시간: 7시간00(09:45~16:45)

산행코스:공작재주차장(09:45)-568(10:10)-835(11:15)-정상(11:20.877.4m)-안공작재(12:25)-770(12:50,식사20)-수리봉(13:50,755m)-맞바위고개(14:30)-작은골고개(15:00)-약수봉(15:35,558.6m)-수타사(16:45)

어제 저녁 100산을 둘러보기로 집사람과 얘기를 나누고 출발하기 직전 처형님께 전화를 드려 산행여부를 물으니 산행을 하신다기에 함께 만나 홍천까지 내달린다.

처음 계획을 세웠을 때는 공작재에서 정상을 갔다 작은 공작재로 하산을 하는 원점회귀 산행을 하려 했기에 먼저 수타사로 들려 잠시 구경을 한다며 수타사로 들어서니 마을 주민들이 쓰레기 처리에 따른 입장료를 운운하여 수타사를 생략키로 하고 들어갔던 길을 되돌아 나와 공작재로 향한다.

공작재주차장(휴대폰 사진)

공작재주차장 산행안내도(휴대폰 사진)

공작재에는 승용차 10대도 주차할 수 없는 작은 주차장이 있는데 주차장을 관리하시는 관리원이 무척이나 자상하고 친절한 것은 물론이고 산행에 대한 주의사항이나 산세 등에 대해 설명을 해주신다.

작은 주차장에는 우리보다 먼저 도착해 산에 오른 산님의 차량이 2대가 있으며 우리보다 조금 늦게 도착한 산님의 차량도 2대가 되었다.

우리보다 조금 늦게 주차장에 도착한 사람들은 금산에서 밀레매장을 하며 밀레산악회를 운영하는 자들로 산악회에서 공작산을 산행라기로 하고 사전 선답의 의미로 4명이 산행을 한다는 것인데 우리와 같이 수타사까지 갔다가 나중에 차량을 회수하려 한다는 말에 귀가 솔깃하여 기회가 되면 합승을 해서 오자고 하고 우리가 먼저 들머리로 진입을 한다.

등산로 초입의 이정표

명산 100산에 이름을 올린 산으로 큰 기대를 가지고 왔는데 의외로 산을 찾은 사람들도 많지 않아 한적한 산행이 되었고 등산로는 처음부터 순탄하고 난이도 낮아 여느 산 같으면 힘들다며 쉬어가기를 수차례 요구했을 집사람이 아무 말 없이 처형님과 잘 가는 것이 고맙기만 하다.

뒷동산처럼 순탄하던 길이 고도를 높이면서 경사가 심해지고 얼마를 갔을까 급경사가 나타나기 시작하더니 이내 740봉과 735봉에 올라서며 한숨을 돌리고 땀을 유난히 많이 흘리는 집사람이 힘들어하기에 잠시 휴식을 취하며 컨디션을 조절하고 다시 오름길을 계속하니 급경사 암릉지대가 나오는데 다행이 로프와 쇠사슬이 매여 있어 낙하할 일은 없지만 그래도 긴장을 늦춰서는 안 될 곳이다.

정상입구 이정표

삼거리에서 정상으로 가는 길

로프와 쇠사슬 지대가 정상으로 알고 올랐는데 이곳은 정상으로 이어지는 삼거리로 작은공작재는 왼쪽으로 정상은 오른쪽 방향이므로 정상을 갔다가 다시 이곳을 지나야 하는 곳이기도 한다.

이곳에서 약 120m를 가면 886봉으로 새로운 정상석이 세워져 있는 곳이며 이곳에서 30m 뒤에 있으며 이곳에서 50m를 군업리 방향으로가면 또다른 정상이 있어 공작산은 상봉은 한곳이나 정상표식은 3곳에 3개나 있는데 앞서 말한 886봉 암봉위에 있는 정상석은 최근에 다시 세운듯하고 중간 상봉 송신탑 철조망 안에 있는 이 정상석은 887.4m로 제일 높은 곳에 있는 것이고 이 정상석에서 북쪽 군업리 방향으로 스텐레스 스틸로 세운 정상표식이 있다.

휴대폰으로 찍은 정상석

스텐레스 스틸 정상표식

그러나 정상표식이 있는 3곳의 조망은 매우 뛰어나 홍천시내는 물론이고 좌우로 길게 뻗은 능선을 따라 힘차게 이어가는 산세와 가리산과 대관령 삼양목장의 풍차가 한눈에 들어오는데 이러한 아름다운 풍경이나 경치와 깎아 세운 듯한 암벽이 장관을 이루고 있는 산세가 공작새와 같다 하여 공작산이라 하였다고 한다.

정상에서 본 홍천시내의 모습

정상에서 본 가리산의 모습

또한 응봉산에서 발원한 덕치천이 공작산에서 흐르는 작은 계류와 합류하여 수타계곡을 만들었는데 노천리에서 수타사 에 이르는 약 8의 수타계곡은 곳곳에 솟은 기암절벽과 백색 암반 위를 흐르는 맑은 계곡과 용들이 깃들만한 소와 하늘을 덮은 수림이 잘 조화된 절경을 이룬다고 한다.(한국의 산하에서 발취)

정상에서멀리보이는 삼양목장이야기를 하자 아래 주차장에서 만났던 밀레팀이 관심을 가지고 물었는데 나중에 알았지만 그 사람은 4년동안 휴가 때마다 일주일씩 4번으로 백두대간을 마쳤다며 얼마 전 대관령 삼양목장을 지났다며 이곳에서 삼양목장의 풍차를 보니 기분이 이상하고 마치 삼양목장 근처에 와 있는 느낌이 든다고 한다.

사방을 조망하는 재미가 쏠쏠해서 시간을 지체하니 빨리 오라는 집사람의 성화에 정상을 내려와 작은공작재로 향하는데 길가에는 도토리 지천이다.

올해는 도토리가 이른듯한데 그냥 지나쳤으면 좋으련만 집사람은 그냥 지나칠 수가 없는지 처형님과 도토리 사냥이 심해지고 처음에 만류하던 나 까지 합세해서 도토리 사냥에 몰두하니 가벼워져야 할 배낭이 거꾸로 무거워진다.

이렇게 도토리 사냥에 상당한 시간을 허비하고 종주는 힘이 드니 처형과 함께 작은공작재에서 차량이 있는 공작현으로 하산을 하라고 권유를 해도 집사람이 함께 수타사로 간다며 중도 포기를 사양한다.

그렇게 해서 우리 3명 모두 수타사로 목적지를 세우고 긴 여정 길에 오른다.

비탈진 능선을 오르고 내리기를 여러차례 반복을 하면서 작은골고개 임도에 도착하고 높게만 느껴지는 약수봉으로 앞에 두고 휴식을 취하며 갈증을 해소한다.

긴 산행으로 탈진상태까지 접어든 집사람과 처형님은 몹시 힘이든지 약수봉을 오르는데 시간도 생각보다 많이 걸리고 생각보다 힘들어 하며 어렵게 깔딱고개를 치고 올라 약수봉 도착한다.

약수봉 정상의 모습

휴식을 취하며 새 힘을 비축하고 이제 남은 내리막길을 따라 수타사로 내려가기만하면 되는데 금방이면 수타사에 도착할 줄 알았는데 가도 가도 수타사가 나오지 않는다.

조심스레 내리막길을 내려오다 보니 물소리가 크게 울려 퍼지고 사방이 탁 트인 수타사 도착하며 산행이 종료된다.

수타계곡

수타계곡(휴대폰 사진)

덥기도 하고 땀으로 목욕을 하여 물로 뛰어들고 싶었지만 이목이 있어 그럴수도 없어 수타사로 가는 다리 아래서 간단히 몸을 씻고 수타사로 들어선다.

수타사 대적광전

수타사 원통보전

보물은 간직하고 있는 사찰이라고 소문만 요란했지 사찰이 크지 않고 아담해 둘러 보는 시간이 많이 들지 않았는데 수타사는 신라시대 원효대사가 창건한 사찰로 처음에는 일월사라 불렀다가 나중에 수타사라 하였으며 주요문화재로는수타사동종(보물제11-3)과 월인석조(보물 745-5)가 있는데 월인천강지곡과 석보상절을 합해 세조5년인 1459년에 편찬한 불교대장경인데 월인천강지곡은 1446년 수양대군이 왕이 되기 전 세종의 비인 소헌왕후의 건강을 빌기 위해 불교서적을 참고하여 한글로 번역한 것이며 석보상절은 세종이 월인천강지곡을 읽고 각각 2구절마다 찬가를 지은 것인데 수타사 인왕문에 있는 사천왕상의 복장에서 발견된 것이라 한다.

수타사를 돌아보고 나오는 길에 공작재주차장에 주차한 금산의 밀레팀을 만나 합의에 의해 택시를 2만원에 불러 각각 1만원씩 내고 택시로 공작재에 도착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