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산100산산행기

동두천, 소요산 산행기

범솥말 2025. 6. 13. 22:28

경기도의 소금강을 찾아서.....

 

산행일시: 20100622(화요일)

누구와: 나홀로

산행거리: 8.2

산행시간: 4시간00(12:58~16:50)

산행코스:일주문(12:58)-원효폭포(13:01)-청량폭포(13:15)-선녀탕(13:30)-상백운대(14:05.559m)-나한대(15:16.571m)-의상대(15:30.587m)-공주봉(15:55.526m)-일주문(16:50)

 

의상대 정상에서

200612월 전철이 소요산까지 연장운행하면서 주말이나 공휴일이면 소요산을 찾는 사람들이 각처에서 모여든다.

조용히 산을 찾는 사람들에게는 환영받을 것은 못되지만 동두천시 입장에서는 우선 많은 사람들이 찾아오니 반가운 일 일 것이다.

전철이 소요산역에 닿을 때 내가 탑승했던 칸의 50~60여명 중 정상적인 교통요금을 내고 온 사람은 나와 또 다른 한사람 그러니까 2사람을 제외한 모든 사람이 65세 이상의 노인들이라는 셈이다.

공짜로 교통의 편의를 받는다고 먼 동두천까지 무임으로 다니며 자리를 차지하고 민폐를 끼치는 어르신들의 사고가 잘못되었으며 복지정책의 일환으로 노인들을 무조건 대우해주는 제도 역시 개선되어야 할 점이기도 하다.

역사를 벗어나 낯익은 길을 따라 소요산입구로 들어서니 전과달리 넓은 주차장과 잘 가꾸어 놓은 요석공원이 눈에 띈다.

요석공원은 신라 무열왕의 딸인 요석공주에서 비롯된 것으로 일찍이 홀로되어 요석궁에 머물던 공주는 원효대사와 인연을 맺어 이두를 만든 설총을 나았으며 원효는 이후 파계승이 되어 전국을 떠돌다 이곳 소요산에 머물러 다시 수행에 정진하였다는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요석공주는 아들 설총을 데리고 원효를 만나기 위해 이곳으로 와서 작은 별궁을 짓고 살며 원효가 수도하는 원효대를 향해 아침저녁으로 예배를 올렸다하는데 원효가 수도하던 원효대가 지금의 공주봉이라 한다.

요석공원을 지나서 일주문을 들어서기까지 여기저기 삼삼오오 모여 식사를 하거나 대화를 나누거나 화투놀이를 하는 노인들의 새로운 문화에 긍정적으로 평가해야 하는지 아니면 눈살을 찌푸리게 만든다고 생각해야하는지.............

<원효폭포>

일주문을 들어서며 1.000원을 주고 입장권을 사고 입장을 한다.

일주문을 들어서 요란한 폭음을 내며 귓전을 때리는 소리에 주위를 살피면 제일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원효폭포다.

15m 정도의 높이에서 낙차하며 떨어지는 물줄기는 세차게 떨어지며서 포말을 일으키고, 폭포 우측에서 원효대사가 도를 닦았다 해서 붙여진 원효폭포에는 세월은 흘러 이 세상 사람이 아닌지 몇 백 년이 지났지만 원효의 이름은 아직도 많은 사람의 입에 오르내리며 이승에 남아있으니 우리의 속담처럼 사람은 이름을 남겨야 한다는 선인들의 말이 허울이 아닌 것은 확실한가보다.

떨어지는 물기둥을 보며 또 다른 원효의 이면을 생각한다.

세인이 아닌 스님의 입장으로 공주와 사랑을 나눈다는 것이 현세에서도 엄두도 못 낼 정도이나 당시 신라시대에 돌출 행동으로 사랑을 이루고 아들까지 낳을 수 있었다니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원효를 생각하며 폭포를 나와 우측으로 이어진 다리는 속리교이다.

속리란 속세와 이별을 하는 다리라는 뜻으로 원효가 수행을 위해 이 다리를 건너며 세상과 인연을 끊으며 붙여진 이름이라 할수 있다.

그러나 다른 측면에서 설총의 손을 잡고 원효를 만나기 위해 수없이 이 다리를 오갔을 요석의 입장에서 본다면 상사교라고 이름 지어져야 하는 건 아닐까 생각도 해본다.

속리교를 건너 좌측으로 계단을 따라 올라서면 원효폭포 뒤쪽으로 노송을 품고 있는 층층의 기암절벽이 나오는데 이곳 역시도 원효의 이름을 딴 원효암이다.

올라섰던 계단을 다시 내려서 계곡을 따라 10분정도 오르면 자재암이 나오는데 작은 암자의 앞에는 자재암에 대한 유래가 있으니 이러하다.

원효대사가 요석공주와 사랑을 나눈 후 모든 인연을 끊고 수행에 정진하기위해 이곳에 도착하였는데 비가 오는 날 약초를 캐러왔다 길을 잃은 아녀자로 화현한 관세음보살이 원효에게 하루밤 쉬어 가기를 원하며 시험을 하였다.

원효가 슬기롭게 대응하므로 여인이 미소를 지으며 유유히 사라졌으니 원효는 여인이 관세음보살의 화현임을 알고 더욱 수행에 정진하였고 후에 이곳에 암자를 지어 자재암이라 이름하였다 한다.

이러한 전설을 가지고 있는 암자 앞에는 하늘을 향해 치솟은 독립암이 위용을 나타내고 독립암 아래로는 경사진 사면의 바위를 이용하여 칸을 막아 자연동굴을 이용한 처소를 지었으니 나한전이며 나한전 과 붙어 위로는 독립암이 하늘을 향하고 아래로는 원효폭포와 흡사한 청량폭포가 어제 내린 비로인해 많은 수량을 자랑하며 우렁찬 소리를 내며 산사와 산을 찾은 많은 사람들을 맞는다.

<독립암과 청량폭포>

넋을 잃고 독립암과 청량폭포를 보다가 정신을 차리고 계단을 향해 오르니 선녀탕 갈림길이 나온다.

소요산을 찾은 건 이번이 5번째이긴 하지만 선녀탕을 가본 적이 없어 잠시 망설이다 이번은 선녀탕길로 오른다고 결정을 하고는 우측길로 들어서 맑은 물이 흐르는 계곡으로 오른다.

선녀탕 입구

선녀탕을 오르는 계곡길은 마치 설악의 구곡담을 연상시키듯 흐르는 물소리와 작은 담이 요소요소에 있고 간간이 지저귀는 산새소리까지도 구곡담인 듯 착각을 한다.

규모는 작으나 기암과 녹음이 어우러지고 6담은 못되어도 2담이 있는 곳은 선녀탕길과 나한대로 오르는 길과 갈리는 3거리다.

좌측 선녀탕이 있는 곳으로 방향을 잡고 오르니 이곳부터는 인기척이 하나 없는 조용한 숲과 나와 새소리뿐이며 선녀탕 못 미친 곳에는 오가는 산님들이 여기저기 돌을 쌓아 표식을 남겨놓기도 했다.

백운대길과 선녀탕길이 가라지는 갈림길에서 10분을 올라 선녀탕에 도착한다.

<선녀탕>

계곡의 위쪽이다 보니 수량이 많지 않아 선녀탕 위에서 떨어지는 폭포의 물줄기는 빈약하지만 오랜 세월 10m이상의 높이에서 낙차하며 떨어지는 물은 거칠었던 돌을 여인의 몸매처럼 매끄럽고 각지지 않은 유연한 곡선으로 갈고 닦아 놓았다.

선녀탕의 물깊이는 깊지 않으나 하늘의 선녀가 내려와 목욕을 하기에 부족함이 없는 맑은 물과 자그마한 소는 선녀중에도 검소하고 분수를 잘 지키는 알뜰한 선녀가 주인이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소박하고 아담한 선녀가 달밤이면 살포시 내려와 목욕을 했을 선녀탕에 한동안 정신을 빼앗기고 떨어지는 물방울이 바위에 부딪쳐 쪼개지며 내 얼굴을 때릴 때서야 정신을 차리고 우회를 하여 선녀탕 위쪽우로 우회하여 올라선다.

<선녀탕위 무명 소폭포>

선녀탕 바로 위에는 작고 아담한 소폭이 있으니 그 또한 일품이며 이곳에서 정화를 하고 물을 물로 깨끗이 씻은 후에야 아래로 내려 보내 선녀가 목욕을 할 수 있게 내려 보냈나 싶다.

또한 선녀탕 위에서 바라보는 경치는 소요의 여러 가지 비경중의 하나로 능선을 따라 이어지는 기암과 건너편 우뚝 솟은 나한대와 의상대가 일품이며 가을 단풍이 들때면 아름다움은 지금보다 몇 배 더 빼어날 것이다.

선녀탕을 지나 계속되는 오름길은 경사가 점점심해오고 길옆 이름모를 야생화 속에는 천남성이 여기저기 눈에 띄는데 천남성은 맹독을 가진 우리나라의 야생화로서 한약재로 쓰이나 독이 매우강해 옛날 궁궐에서는 부자와 함께 사약으로 이용되기도 했던 약재이기도 하다.

<선녀탕 우측 능선 풍경>

<선녀탕에서 본 나한대와 의상대 풍경.>

고도를 높이며 계곡의 물소리는 그치고 나뭇가지 사이로 들어오는 제법 따갑게 느껴는 햇살을 쐬며 치고 오르다 보니 어느새 능선안부에 닿는다.

가야할 상백운대는 안부에서 우측이며 좌측으로는 하백운대와 중백운대로 이어지는 길로 좌측으로 100m를 가면 덕일봉인데 옛추억을 상기시키며 덕일봉 갈림길로 가서 이정표를 잡아보며 4년전 소요지맥을 하며 아무도 없는 덕일봉에서 외로이 산행하던 기억을 떠 올리고는 다시 상백운대로 향한다.

상백운대 조금 못 미친 곳에서는 15명 정도의 한 팀이 회의를 하고 있어 간단한 목례로 인사를 대신하고 황급히 상백운대로 향하여 상백운에 도착을 했으나 그곳에는 아무도 없는 공허 그 자체였다.

삼각대를 받쳐 놓고 이리저리로 사진을 찍고 간단하게 집사람이 챙겨준 도시락으로 점심을 해결하고 칼바위능선으로 내려선다.

<삼각점이 있는 상백운대에서>

상백운대에서 나한대 입구까지 약1km의 바윗길은 노송과 칼처럼 날카로운 바위들이 하늘을 향해 아름다움의 경연을 하는 경연장을 연출하는데 여기 저기 요모조모를 카메라에 담으며 나한대 입구에 도착한다.

우측으로 나있는 선녀탕 방향으로 하산하는 3거리를 지나 경사진 오름길을 로프에 힘을 실으며 나한대로 올라선다.

칼바위 능선에서 보는 왕방산과 해룡산

칼바위 능선을 지나며.....

이정표

<나한대에서>

나한대 정상에 서니 소요의 최고봉인 의상대가 가까이보이고 동으로 희미하게 실루엣처럼 보이는 왕방산과 국사봉 그리고 해룡산이 보인다.

나한대!

나한이란 본래 불경에서는 성문사과(聲聞四果) 의 하나로 놓으며 일체의 번뇌를 끊고 끝없는 지혜를 얻어 세상 사람들의 공양을 받는 성자를 의미한다는 것이다.

이곳에 오르면 일체의 번뇌를 끊고 끝없는 지혜를 얻을 수 있다고 스스로에게 지시하고 지시받으며 번뇌를 떨쳐본다.

나한대에서 본 의상대

나한대에서 잠시 머물다 발걸음을 옮겨 10분 거리에 있는 의상대로 이동하고 잠시 땀을 흘리나 싶을 즈음 의상대에 닿고 옛날에 보지 못했던 대리석의 정상석이 나를 반긴다.

소요산에는 봉우리가 하백운대,, 중백운대, 상백운대, 나한대, 의상대, 공주봉 등6개가 있으나 그중 조망이 제일 뛰어난 곳이 의상대다.

의상대에서 본 상백운대

의상대는 제일 높기도 하지만 바위봉우리로 이루어져 있어 일반적으로 나뭇가지가 시야를 가리고 있는 것과 달리 사방의 조망이 뛰어나 왕방산, 국사봉 그리고 해룡과 칠봉산보인다.

서쪽으로는 가까이 마차산과 멀리 감악산의 우뚝 솟은 모습이 여과 없이 눈에 들어오고 자재암쪽으로 시원스럽게 뻗어 내리는 능선의 기암은 장관을 이룬다.

자재암을 중심으로 옴팍하게 쌓여 요소요소마다 6개의 봉우리가 솟구쳐 산세를 더욱 오묘하게 만들고 능선 좌측으로의 공주봉을 마주보고 있으면서 까마득하게 직벽을 이루고 있는 단애는 보기만 해도 오금이 저릴 정도다.

능선우측으로 내려다보이는 소요산의 계곡마다 샅샅이 볼 수 있고 선녀탕의 자그마한 기암과 소폭도 여인의 중요한 부위처럼 깊숙이 감춰져 살며시 나타나있으니 예로부터 많은 사람들로부터 소금강이라는 칭호를 얻었을 것이다.

<소요산의 최고봉인 의상대>

다른 산님들이 나중에 의상대를 왔다가 먼저 떠나가도록 의상대를 떠나지 못하고 시간을 보내다 마지막 봉우리인 공주봉을 향하기 위해 가파른 계단을 따라 의상대를 내려선다.

의상대 직벽

칼바위 능선보다 아름답지는 않지만 동두천 시내가 내려다보이는 능선을 따라 가벼운 발걸음으로 가다보니 자재암으로 내려가는 지름길을 지나 한 차례 가파른 등로를 로프에 의지하며 정상에 오르니 이내 공주봉에 닿는다.

공주봉에는 의상대를 제외하고 다른 봉우리처럼 정상석이 없고 스텐레스 안내판으로 정상을 표기하고 있으며 정상 표기판 뒤로는 듬직한 바위와 그 뒤로 동두천을 한눈에 볼 수 있으며 절벽으로 이루어진 남측으로 전망대를 설치하여 시원스러움이 솟는가 하면 야외 공연장처럼 테크를 설치하여 높은 산 정상인지 의아함을 갖게 할 정도이다.

소요산의 6봉우리 가운데 5개봉이 대()를 사용하고 있고 유일하게 봉()을 쓰는 봉우리가 공주봉이다.

공주봉은 원효와 요석의 러브스토리가 얽혀있는 곳으로 요석공주가 이곳 소요산 아래 별궁에서 거처하며 아침저녁으로 올라와 원효대사가 수도하는 원효대를 향해 예배를 올렸다고 한다.

원효대는 지금의 공주봉으로 최초에는 6봉 모두 봉이 아닌 대를 써오던 것이 어느 때부터 원효대만 공주봉으로 바뀌었으나 공주봉 어디에도 원효대에서 공주봉으로 바뀌게 된 이유나 원효와 요석의 애절한 사랑얘기에 대한 안내는 어디에도 없으니 공주봉을 찾는 산님을 위해 더 깊은 배려가 있어야 할 것이며 현실에 국한되기보다는 과거와 현실을 공감할 수 있는 분위기가 필요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공주봉 능선길

공주봉에서 보는 동두천

공주봉의 돌탑

테크 뒤로는 대형 돌탑 2개가 세워져 있어 공주봉을 찾은 산님들의 기분을 더 한층 업 시키는가 하면 내려가는 길 우측으로는 작은 돌탑을 10개를 세웠으니 누군가가 하나하나의 돌을 쌓으며 돌 하나하나 마다에 희망과 소원을 담았을 것으로 누군지 모르는 그분의 바람이 이루어 졌으면 좋겠다.

<공주봉에서>

공주봉을 뒤로하고 내려오는 길에 가파른 내리막을 지나면 신선의 휴식처로 불릴 정도로 멋있는 높고 펑퍼짐한 암반의 전망 휴식처가 나오며 이곳에서 소요산의 내면을 감상하고 의상능선의 단애를 감상할 수 있는 전망대가 기다리고 있다.

<공주봉을 내려서며 만난 소원을 바라는 돌탑에서>

<공주봉을 내려서며 전망터에서 본 의상대>

<하산길에서 본상백운대 능선>

전망대에서 또 한 차례 내림 길을 내려서면 기도터가 나오며 기도터의 암벽수는 소요산을 한바퀴 회귀하는 산님들의 피로를 한순간에 씻어 줄 수 있는 오몀되지 않은 완전 무공해 식수로 물맛은 최고이나 관리가 안 되고 있어 물을 마시고 싶어도 특수용기가 있어야 마실 수 있는 불편이 있으니 이곳 역시 지자체에서 세심한 관심과 배려가 있어야 할 것이다.

<구절터의 계곡>

기도터를 지나면 계곡물이 흐르는 소리가 점점 귓전을 때리는가 하면 어느새 구절터에 이르고 이어서 속리교를 건너고 말없이 쏟아내는 원효폭포의 아름다움을 보며 일주문을 통해 벗어나고 있다.

다른 곳과 달리 소요산 입구에서 일주문에 이르는 구간의 가로수는 대부분 단풍나무와 복자기 나무로 되어 있어 가을철 단풍이 물들기 시작하면 이곳은 많은 사람들을 유혹하고 끌어들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