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악산국립공원, 치악종주 산행기
범솥말의 치악종주 이야기
산행일시: 2016년5월27일
누구와: 나 홀로
산행거리: 약22.97㎞
산행시간: 10시간48분(08:50~19:38)
산행코스:다리안들머리(08:50)-능선3거리(10:04.1036m)-묘지봉(10:38,1094m)-시명봉(11:14,1187m)-능선4거리(12:00)-샘터(12:10.1070m,식사)-남대봉(13:00,1181m)-향로봉(14:20,1043m)-곧은치(14:48,867m)-통안재(16:17,1126m)-쥐너미재전망대(16:37,1180m)-1222봉헬기장(16:53)-비로봉정상(17:10,1288m)-사다리병창입구(18:40,507m)-구룡사(19:17)-구룡사종점날머리(19:38,327m)
갈 때 : 청량리역->원주역->원주역정류장에서 21번 버스승차->칠봉암입구에서 하차
올 때 : 구룡사종점에서 41번 버스승차->원주역 하차->청량리역
◎들머리로 가는 길
기차가 있어 여행하기가 좋습니다.
특히 청량리~원주간은 복선을 설치하면서 상하행선이 서로 교행하기 위한 대기시간이 없어지고 속도도 빨라져 약1시간이면 도착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지난해, 올해는 유난히 기차를 타고 산행을 떠난 때가 많았습니다.
오늘도 치악 종주를 위해 청량리에서 첫차인 6시40분 기차를 타고 원주역에 07시45분에 도착했습니다.
<원주역에서 버스를 타러가며....>
<늦은 철쭉꽃이 피어있는 시명봉>
치악종주를 하는 경우 들머리를 대부분 구룡사로 잡는 경우가 제일 많고 그밖에 영원사가 있는 금대계곡, 상원사가 있는 성남이 있으며 지맥종주를 하는 경우 구룡사에서 치악재, 치악재에서 구룡사로 잡는 경우가 있습니다.
하지만 치악재의 경우 치악재에서 시명봉을 지나 영원사와 상원사 사이 능선 안부까지 약7km(3시간)이 비법정탐방로로 길도 희미하고 이정표나 표지기가 없어 초행인 경우 길을 찾는 어려움과 공단직원에 대한 두려움으로 코스를 정하기 쉽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필자는 10여 년 전 치악재~구룡사코스로 지난 적이 있어 들머리를 치악재로 잡았습니다.
원주역에서 약3~4분 거리 원주역 정류장으로 이동을 했습니다.
이곳에서 치악재를 가는 버스는 21번(1시간 배차 1일18회), 22번(1일4회), 23번(1일5회),24번(1일3회), 25번(1일3회)이 있습니다.
<따가운 햇살이 대지를 달구어 놓은 남대봉>
<원주시내 조망점인 향로봉>
그래도 운이 좋아 8시10분에 21번 버스를 탔으며 이 버스는 치악재를 넘었고 하차는 고속도로 교각아래인 칠봉암입구에 하차하여 들머리가 되는 다리실 입구는 길 건너 50여m거리입니다.
버스에서 내려 간단히 산행채비를 마치고 오늘도 무사히 하산할 수 있도록 마음으로 다짐하며 다리실 입구에서 산행을 위한 첫발을 내딛습니다.
◎들머리에서 시명봉 정상 구간
다리실 마을로 들어서 포장도로를 따라 오른다.
마을을 지나 찔레꽃 향기가 물씬 풍기는 포장도로를 따라 10분 쯤 오르면 명경사가 눈앞에 보이는데 일정에 명경사 관람은 없으므로 그냥 지나친다.
<산행의 들머리가 되는 다리안 입구입니다.>
<명경사이며 등산로는 자동차 옆으로 지납니다.>
명경사를 막 지나면 출입금지 경고판이 있는 철망이 가로 막고 있는데 우측으로 돌아서 들어섰는데 이때부터 범법자가 되어 산행을 해야 하는 신세가 된 것이다.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곳은 아니지만 길은 선명했고 이내 잣나무 지대를 지나며 거친 암릉을 오른다.
길가에는 민백미꽃이 하얀 꽃을 피운 곳을 지나고 다시 암릉 지대를 지나고 점점 고도를 높이며 다른 능선과 합쳐지고 합쳐진 능선은 다시 암릉이 이어진다.
한동안 오르다 좌측에 전망바위가 있어 진달래를 헤치고 전망바위위에 오르니 올라선 능선이 한눈에 내려다보이고 치악재 건너편으로는 좌측 구학산이 보이고 벼락바위봉, 보름갈이봉 그리고 백운산이 희미하게 보인다.
<명경사를 지나 입산통제 안내판이 있으며 철조망 우측으로 돌아 들어갑니다.>
<잣나무 수림을 지나 능선오름길은 암릉이 이어집니다.>
다시 능선으로 내려서 5분여 오르면 주능선 정상에 오른다.(10시4분, 1시간14분소요, 2.72km, 해발1036m)
잠시 땀을 식히고 인증사진을 찍고 다시 능선 길을 따라 걷는다.
풀내음 짙은 능선을 걷는 주변으로는 야생화가 살기 좋은 입지조건을 갖추고 있었지만 눈에 띄는 야생화는 보이지 않는다.
이맘때 큰앵초가 많을 것으로 생각했는데 벌써 큰앵초가 다 졌는지 보이지 않고 도깨비부채만 가득했으니 올해는 큰앵초도 못보고 한해를 보내는 가 싶었다.
이어서 능선에는 긴머리 소녀의 머릿결 같은 사초가 사방에 널려있었고 사초위에 몸을 던지고 한참을 누워 계곡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맞으면 좋을 것만 같았다.
<사초의 이름을 확실하게 모르는데 아마도 가는잎그늘사초인가 봅니다.>
<묘지가 있는1094봉입니다. 왜? 이런 곳에 묘를썼을까?>
3거리 주능선을 오른 후 능선 좌우로는 갖가지 풀들이 자라고 있는 초원으로 능선을 오를 때와는 사뭇 달랐는데 요즘은 귀한 야생화가 피는 시절이 아니어서인지 보이지 않는다.
이어서 올라선 봉우리는 누군가는 헬기장이라고 기록하지만 지도에는 묘지라고 기록되어 있고 중앙에는 묵묘가 있는 1094봉이다.
묘지가 있는 1094봉을 지나 다시 1178봉을 올라 한차례 내리막으로 내려섰다가 힘들게 오른 곳이 치악산 시명봉으로 2시간20분이 걸렸다.
시명봉은 뜨거운 열기를 품은 채 늦게 핀 철쭉이 에워 쌓은 채 오늘의 첫 번째이자 마지막이 되었을 필자를 반갑게 맞아 주었다.
<시명봉 북쪽 암봉으로 암봉위에 오르면 사방이 모두 보입니다.>
◇다리실 들머리에서 치악산 시명봉까지 산행거리 5.45km, 산행소요시간 2시간24분, 해발 1187m, 현재시간 11시14분이다.
◎치악산 시명봉에서 남대봉 구간
시명봉!
시명봉은 치악산의 제1봉인 비로봉에 이어 두 번째 높은 봉우리이다.
그러나 현재 시명봉이라 불리는 곳은 예전에는 남대봉이라고 불렸으며 현재 남대봉으로 표기하고 있는 봉우리는 망경대였다고 한다.
국립공원공원측은 이렇게 지명이 바뀐 것에 대한 사실여부를 확인해서 많은 사람과 지역 주민들이 하루 빨리 원래 이름인 남대봉의 이름을 찾아 주기를 바라고 있다고 하니 조치를 해야 할 것이다.
<시명봉에서 보는 가야할 방향의 풍경입니다.>
<시명봉에서 보는 들머리였던 치악재 방향의 풍경입니다.>
그러나 안타까운 것은 남대봉의 이름을 빼앗긴 것도 아쉽지만 치악산에서 두 번째 높은 봉우리임에도 많은 사람들이 찾지 못하는 것은 이곳이 비법정 탐방로이므로 함부로 접근하기가 힘들다는 점이다.
10여 년 전 금대계곡으로 오르려다 경방기간이라는 이유로 입산을 불허한 적이 있는데 이때 그냥 오기 아쉬워 길도 없는 가파른 능선을 올라 수리봉을 지나고 희미한 길을 따라 시명봉에 오른 적이 있었다.
그리고 보름이 지난 후에 치악재를 시작으로 구룡사까지 종주를 하며 이곳 시명봉을 2번째 올랐고 이번이 시명봉에는 3번째 오르게 되었다.
시명봉 정상에는 치악산 다른 봉우리와 달리 정상석을 설치하지 않았는데 아마도 비법정 탐방로이기 때문 같았는데 그래서인지 좁은 정상에는 나뭇가지에 정상표식 판이 2개가 달려있다.
잡목이 우거져 있지만 남,북으로 바위가 돌출되어 있어 바위에 오르면 사방을 모두 시원스럽게 조망할 수 있다.
<시명봉에서 보는 영원사와 금대계곡의 풍경입니다.>
<시명봉에서 보는 동남 방향의 풍경입니다.>
동북으로 가야할 남대봉이 지척이고 남대봉을 지나 좌향하며 육중한 몸을 이끌고 북동으로 내달리며 향로봉과 비로봉을 일으켜 세웠다.
남대봉에서 분기한 또 다른 능선은 우측으로 매봉과 감악산을 일으켜 세우며 제천으로 내달리고 남쪽으로는 주론산과 구학산이 희미하게 자태를 드러내며 서쪽으로 벼락바위봉과 보름갈이봉을 지나 백운산을 일으켜 세웠다.
향로봉 능선과 시명봉 능선이 금대계곡을 이루었고 넓은 숲속에 작은 영원사의 모습이 보이고 치악재에서 시명봉으로 올라선 능선을 따라 눈으로 선을 그려본다.
시명봉에 사방을 조망하고 인증 사진까지 찍으며 조금 지체했는데 한 여름 무더위를 방불케 하는 폭염이 옷깃을 파고 들으나 정상에서 조금 내려선 곳에서 잠시 휴식을 취한다.(시명봉에서 20분 체류)
이어지는 길을 가면 시명봉 이전 능선은 보기 좋은 사초 능선이었는데 시명봉을 내려서면서부터 사초지대는 보이지 않았고 산죽지대가 펼쳐지는데 키도 작고 잎도 말라 노란색을 띠는 산죽으로 볼품이 없다.
이후로 능선은 조망도 막히고 초원도 사라진 적막한 능선길을 따라 22분을 이동하여 출입통제 현수막이 붙어 있는 안부4거리에 도착한다.(시명봉에서 약1.3km, 40분소요)
이곳 안부4거리는 영원사(2.3km)↔상원사(0.5km), 시명봉(1.3km)↕남대봉(0.7km)이 교차하는 지점이다.
안부로 접어들며 주변을 살피고 기척이 있는지 여부를 확인하고 이상이 없음을 확인한 다음 안부로 내려섰고 길가에 주저앉아 잠시 휴식을 취하며 현수막을 보고 다시 놀란다.
<금대계곡을 들어서 영원사를 지나 상원사로 넘는 고갯마루로
이곳부터 시명봉을 지나 명봉사까지 비탐방로로 통제한다는 현수막이 붙었습니다.>
<고개에서 상원사 방향으로 200m의 거리에 있는 샘터입니다.>
영원사에서 남대봉구간이 2016년3월2일부터 낙석으로 인한 위험구간으로 별도 공지가 있을 때까지 통제되고 있다는 안내현수막이었으니 제대로 알아보지 않고 금대계곡으로 왔다면 10여년 전과 같이 문전박대를 받을 뻔 했다.
그렇다면 이곳도 안전지대가 아니니 급히 자리를 떠나야 했고 시간을 확인하니 12시 정각이다.
지난번 용두에서 감악까지 산행을 하며 얻은 교훈은 너무 지치기 전 식사를 하기로 하였으므로 남대봉에 올라 식사를 할까 했다가 얼마 떨어지지 않은 상원사로 가서 식수가 있는 곳에서 식사하기로 하고 상원사 방향으로 200m정도, 약 10분을 가니 길가 옆 샘터가 있다.
지도에 나온 쌍용수가 이곳을 지칭하는 것인지 아니면 상원사 안에 또 다른 샘터가 있는지는 알 수 없다.
샘터가 있는 것만으로 기분이 최고였으며 샘터로 내려서 배낭에서 조금 마신 500ml 남은 물을 한 번에 마시고 샘터에서 식사를 한 후 빈병에 물을 채우고 몇 번을 마시고 또 마시며 물배를 채웠다.
흙속에서 솟는 물이지만 남대봉 밑 1070m에서 솟는 물이므로 오염될 염려가 없다.
식사를 마치고 빈 물병에 물을 채우고 길로 들어서 약30~40m가니 출입통제 현수막이 있는 3거리가 나왔다.
이제 완전히 통제지역을 벗어난 것이다.
3거리에서 이제는 상원사로 길 필요를 느끼지 못하니 좌측으로 금대봉(0.5km)으로 향한다.
그리 가파르지 않은 길을 따라 능선으로 올라 완만한 경사길을 따라 남대봉 헬기장으로 들어서다가 반가운 산님을 만난다.
<역 방향으로 진행하던 반가운 산님 홍영표님을 만났습니다.>
<남대봉에 도착합니다.>
서울 강북구에서 왔다는 홍영표님으로 아침 7시에 구룡사를 출발하여 남대봉에 왔으며 금대계곡으로 하산할 계획이라고 한다.
그늘진 길에서 10분 정도 이야기를 나누었고 샘터위치를 알려주고 헤어졌는데 샘터에서 받은 시원한 물을 반정도 나누어 주지 못한 게 산행하며 내내 생각이 났는데 샘터는 제대로 찾아 갔는지? 통제구간이 금대계곡으로 무탈하게 하산은 잘 했는지 궁금했다.
홍영표님과 헤어져 남대봉 헬기장에 들어서서 정상석에서 인증 사진을 찍는다.
사방의 조망은 잡목들로 막혔으며 원주 시내방향으로는 박무로 시내도 보이지 않았고 매봉너머 감악산도 희미한 형체만 보일 뿐이다.
헬기장에서 고도를 측정하니 맞지 않아 금대봉 초소 뒤 삼각점 위에 휴대폰을 얹으니 또 신기할 정도로 지도에 표기된 1181m가 나타난다.
<남대봉 정상표지석에서 인증사진을 찍습니다.
위 작은 사진은 예전 정상석을 설치하기 전 정상표지목입니다.>
예전에는 남대봉에는 정상 표지목이 있었는데 새롭게 정상석을 설치했다.
언제 설치했나 다른 분들의 블로그를 노크해보니 작년10월에는 설치할 정상석을 설치할 자리에 옮겨 놓은 상태였는데 11월에는 새로운 정상석이 세워져 있었으니 작년10월 하순경에 세운 듯합니다.
예전 정상 표지목은 남대봉 대피초소 옆에 있었는데 그래도 정감이 나는 표지목이다.
<남동 방향으로 매봉과 뒤로 감악산이 희미하게 보입니다.>
◇다리실 들머리에서 치악산 남대봉까지 산행거리 7.46km, 산행소요시간 4시간10분, 해발 1181m, 현재시간 13시00분이다.
◎남대봉에서 향로봉 구간
산행기록과 인증 사진을 찍으며 7분을 머물고 남대봉을 내려서 향로봉으로 능선을 이어간다.
남대봉을 지나면 이제까지 왔던 것과 다른 점이 있있다.
첫째는 이정표가 곳곳에 있다는 점인데 이정표에는 그곳의 고도까지 기록되었다는 점이다.
또 하나는 남북으로 이어지는 능선의 동북 사면이 험준한 경사지 또는 암벽을 이루고 있다는 점인데 습한 동북 사면에는 관중을 비롯한 도깨비부채 등 많은 풀들이 살고 있어 보기가 시원하고 좋았다.
<남대봉을 지나 암릉길로 바뀝니다.>
<능선을 동서로 넘고 또 넘으며 향로봉으로 산행을 이어 갑니다.>
등산로는 전과 달리 암릉이 이어졌고 능선을 넘고 다시 넘으며 동서로 능선을 넘고 넘으며 가다보면 암봉 전망대인 1134봉이다.
잠시 사방을 둘러보며 멀게만 보이는 비로봉과 향로봉을 관망하고 1134봉을 내려서 1086봉을 지나 10분을 지나니 석문이다.
석문에는 바람이 무더기로 밀려오자 배낭을 내려놓고 주변에 있는 도깨비부채 잎을 하나 따서 부채질을 하며 도깨비가 되어 지나치는 바람을 잡아본다.
<1134봉 전망대입니다.
지도에 치마바위라는 지명이 나오는데 이곳을 지칭하는 듯 합니다.>
<전망대에서 보는 가야할 방향이며 향로봉과 비로봉이 보입니다.>
잠시 땀을 식히고 그곳을 지나니 능선 이정표(향로봉1.6km↔상원사3km, 해발1052m)를 지난다.
다시 향로봉1.1km가 표시되어 있는 이정표를 지나 능선에 무성한 풀이 나있는 곳에 민백미꽃과 쥐오줌풀이 무성하게 피어 있다.
치악평전을 지나며 이내 헬기장에 닿고 헬기장에서 지나온 남대봉 능선을 보고는 헬기장을 벗어나 숲속으로 들어서면 향로봉 500m이정표를 지나 경사진 길을 오르면 밋밋한 능선 길을 가다보면 돌탑을 쌓은 곳 삼각점이 있는 향로봉에 도착한다.
<석문입니다.>
<능선을 넘는 등산로인데 지도에 나오는 개미목이 이곳인지?>
<치악평전을 지나 삼각점이 있는 향로봉입니다.>
<삼각점이 있는 향로봉에서 1~2분 거리에
새롭게 정상석을 설치했으며 예전의 정감이 가던 정상표시목은 사라졌습니다.>
아무도 없는 곳에서 인증사진을 찍고 좌측으로 조금 이동하면 또 다른 향로봉이 있는데 조금 전은 삼각점이 있는 향로봉이었다면 이곳은 향로봉 정상표지석이 있는 곳이다.
향로봉 역시 전에 없던 정상석이 설치되어 있었는데 남대봉과 함께 같은 시기인 작년 10월 하순뎡에 설치된 것 같습니다.
◇다리실 들머리에서 치악산 향로봉까지 산행거리 11.03km, 산행소요시간 5시간30분, 해발 1043m, 현재시간 14시20분이다.
◎향로봉에서 비로봉 구간
향로봉!
우리나라 산봉우리 중 향로봉이라는 이름을 가진 봉우리도 제법 있다.
명산의 대부분 봉우리 이름은 불교에서 비롯된 이름이 많은데 치악 4봉 중 제1봉인 비로봉이 불교에서 이름을 딴 봉우리이고 시명봉이나 남대봉 그리고 향로봉은 불교와 관련이 없는 봉우리다.
<조망은 안 되지만 인증사진은 필요할 것 같아 포즈를 취했습니다.>
향로란 향을 피우는 분향기구인데 이러한 향로가 왜 봉우리의 이름으로 사용되고 있을까?
혹자는 봉우리 모양이 향로를 닮아서라고 하는데 더 정확한 설명은 높은 봉우리 위로 구름이 피어오르는 모습이 향로에서 연기가 피어오르는 것 같이 보이는 것에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생각된다.
그러니 옛날 사람들은 높은 봉우리에 구름이 피어나고 구름이 걸쳐있는 곳이 신성하다고 생각했을 것인데 이러한 치악산 향로봉에는 날파리가 유난히 많았다.
숨을 크게 들이쉬면 콧구멍으로 날파리가 들어올 지경이고 자칫 하품을 하면 100% 입안으로 날파리가 들어올 정도이나 입이나 코를 손으로 막아야 할 정도였다.
향로봉에서는 휴식을 취할 수 없었고 조망도 시내방향만 가능했는데 박무와 역광으로 시내는 전혀 보이지 않아 서둘러 향로봉을 내려섰다.
<향로봉에서 내려서는 계단으로 가팔게 내려섭니다.>
<길가 느릅니무가 지나다가 피곤한 사람은 모두 반겨주니 포토존이 되어버렸습니다.>
향로봉을 내려서 1022봉을 지나 급격한 내리막이 시작되는 곳에 향로봉 명물 느릅나무가 있다.
등산로 가운데를 막고 버티고 있는 느릅나무의 생김이 다섯 손가락을 벌린 손과 같았는데 마치 이곳을 오른 사람들에게 피곤하면 모두 쉬어 가라는 듯 생겼는데 그래서인지 느릅나무가 포토 존이 되어버려 반질반질하게 길이 나 있었다.
느릅나무를 지나 등산로는 내리막으로 이어지는 좋은 길이 지속되는데 앞서 한사람이 가고 있었다. 빠른 걸음으로 쫓아가 간단히 인사를 나누고 앞서 갔는데 이 분이 치악산에서 만난 2번째 사람이다.
이후 내리막이 끝나며 헬기장이 나왔는데 남대봉정상과 향로봉 오르기 전, 그리고 이곳이 3번 째 헬기장이었는데 비교적 낮은 곳에 위치하고 있어 주변 잡목들로 조망할 수는 없다.
헬기장을 지나면 우측 사면으로 잣나무 조림지대가 나오며 이어서 등산로 주변으로 많은 사람들이 쉬어간 흔적이 있었으며 좌측으로는 누군가 공들여 돌탑을 쌓아 놓았다.
이어서 안부4거리가 나왔는데 이곳이 곧은치이다.(산행거리12.18km,소요시간6시간)
<곧은치 조금 전 쉼터에 누군가 정성들여 돌탑을 쌓았습니다.>
곧은치!
고개이름도 참으로 다양하다,
고개마다 사연이나 이름에 대한 유래가 있는데 곧은치의 유래는 글자 그대로 곧게 뻗어있는 고갯길에서 유래되었다고 하는데 이 길은 예전부터 원주와 횡성을 오가던 주요 교통로였는데 등산로 옆으로 소가 다니던 넓은 길이 따로 나있었다고 한다.
곧은치 이정표에는 곧은재지킴터2.2km↔부곡지킴터4.1km, 상원사5.7km↕비로봉4.8km로 어림잡아 남대봉과 비로봉 중간지점이 되는 곳이며 향로봉에서는 1.2km지점으로 이곳 재를 통해 향로봉으로 오르는 것 같았는데 조금 전 만났던 여자분도 이곳을 올랐던 것 같았다.
곧은치를 지나 약간 오르막이 시작되고 10분을 지나면 4번째 헬기장이 나오며 헬기장에서는 원주 시내방향이 조망되는데 박무로 제대로 보이지 않는다.
<곧은치를 지나면 이러한 통나무 계단을 오르고 또 오르며 고도를 높여갑니다.>
<곧은치를 지나 오른 헬기장으로 네번째 만나는 헬기장입니다.>
<헬기장에서 바라 본 원주시내의 풍경으로 형체만 나타납니다.>
헬기장을 지나 맞은편에서 혼자 내려오는 남자와 만났고 무표정한 이 사람과 간단히 인사하고 지나쳤는데 이 사람이 치악산에서 만난 3번째였다.
이어 아무런 표식이 없는 971봉을 내려서 저점을 찍은 곳 어딘가가 원통재였을 텐데 언제 지나쳤는지 알지도 못한 채 원통재를 지나쳤다.
원통재를 지나 다시 오르막이 지속되는 등산로 우측은 초원이 이어졌는데 자란초가 하나 둘 보인다.
이 일대는 자란초가 아주 많이 서식하고 있었는데 꽃이 별로 예쁘지 않으니 이곳을 지나는 사람들이 눈길 한 번 제대로 주지 않았을 것이어서 더욱 사랑을 담이 봐주고 사진으로 그 모습을 담았다.
<삼각점이 있는 971봉입니다.>
<원통재를 지나 우측 초원에는 자란초가 많이 보였습니다.>
이어서 길은 계속 오르막이 지속되면서 치악1-16,820봉을 지나고 두 번째 봉우리 이정표가 있는 치악1-15, 997봉으로 고도를 높인다.
820봉을 지나 길은 완만한 경사를 이루며 약15분 정도를 계속 올라 3번째 이정표가 있는 치악1-14,1115봉으로 고도를 높였고 이곳에 도착해 길가에 걸터앉아 잠시 숨을 돌린다.
이제는 비로봉이 1.7km 밖에 남지 않았으니 무거운 몸을 일으켜 세우며 비로봉을 향해 다시 출발한다.
등산로 주변으로는 다시 산죽이 나타났는데 시명봉을 지나서 보았던 산죽과 달리 키도 크고 무성하게 자란 산죽이 등산로 주변으로 넓게 군락을 이루고 있다.
기분 좋게 이곳을 지나 10분을 오르니 넓은 쉼터에 도착하게 되었으니 이곳이 입석사를 통해 올라오는 길과 합류하는 황골3거리이다.
<원통재를 지나 서서히 고도를 높여갑니다.>
<원통재를 지나 3번째 오른 봉우리로 치악1-15, 1115봉에서 잠시 휴식을 취합니다.>
<황골3거리로 가는 곳에는 키가 크고 싱싱한 산죽이 주변을 덮었습니다.>
<황골3거리에 도착했습니다.>
황골3거리에 도착해 우선 흐르는 땀을 식힐 겸 원통 나무의자에 몸을 의지하고 미풍을 맞으며 휴식을 취한다.
5분여 휴식을 마치고 인증사진을 찍기 위해 카메라를 설치하는데 비로봉 쪽에서 남녀 두 사람이 내려와 반갑게 인사를 나누었고 이어 사진을 찍어 주겠다고 자청한다.
하지만 이미 카메라 설치가 끝난 상태여서 사양하고 쎌카 촬영을 하자 이를 지켜보며 이렇게 사진 찍는 방법이 있다며 신기한 듯 감탄하며 바라본다.
스님인 것 같이 보이기도 하고 아닌 것 같이 보이는 이 두 사람이 입석사 방향으로 내려서는 것을 막고 뒷모습을 촬영하자고 하여 하산하는 뒷모습을 담았다.
<나뭇가지 사이로 비로봉이 보입니다.>
<황골3거리에 도착해 인증 사진을 찍어 봅니다.>
<남녀 2사람을 만났는데 스님인지 아닌지 감이 안 잡혔습니다.>
그들이 내려선 뒤 다시 비로봉을 향했는데 비로봉은 황골3거리에서 약1.3km가 남았고 이곳은 치악1-13, 해발1130m로 표기되어 있다.
황골3거리를 지나 계단으로 이어지는 길이 지속되고 이곳부터는 사람들이 많이 찾아서인지 길도 넓었고 길이 많이 파인 곳도 있다.
계단 오름길 옆으로 철쭉이 피어 이제는 만개한 후 꽃잎이 떨어지기 시작하고 먼저 떨어진 꽃잎은 땅바닥에 뒹굴고 있었는데 그냥 지나가다 이제 지면 올해는 다시 보지 못할 늦은 철쭉의 풍경을 카메라에 담는다.
이후에도 계단은 한동안 지속되었고 황골3거리에서 10분을 올라 전망대가 있는 쥐넘이고개에 도착한다.
쥐넘이 고개에서는 원주 시내가 조망되는데 오늘은 박무로 시내조망은 형체만 볼 수 있으며 비로봉은 1180봉의 나무에 가려 보이지 않고 지나온 능선위로 시명봉 꼭대기만 살짝 보인다.
<황골3거리를 지나면 나무계단이 한동안 이어지며 고도를 높입니다.>
<1180봉에 있는 쥐넘이고개 전망대입니다.>
<전망대에서 본 원주 시내와 우측 삼봉의 풍경입니다.>
전망대에는 이곳 쥐넘이고개의 유래를 적은 안내판이 있는데 이러하다.
「옛날 이 고개 아래 범골에 범절이 있었는데 절에는 쥐가 너무나 많아 스님들이 쥐 등살에 못 이겨 범절을 떠났고 이에 많은 쥐들도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곳 고개를 넘었다고 하는데 이후 쥐가 넘은 고개라고 하여 쥐넘이재라고 불렸으며 쥐가 떠난 범절은 찾는 사람이 없어 결국 폐사되었다고 한다.」
쥐넘이재 전망대에서 시내도 보고 인증사진도 찍었는데 아직은 햇볕이 따가워 1180봉 나무 아래서 잠시 휴식을 취하고 비로봉으로 향한다.
1180봉을 지나 흐드러지게 핀 철쭉을 지나 한차례 내리막으로 내려섰다가 오르며 암릉 길을 지나면 여섯 번째 헬기장인 1222봉이 나타나고 눈앞에 치악의 제1봉인 비로봉의 의연한 풍경이 비친다.
헬기장에서 인증사진을 찍는데 비로봉에 오른 누군가가 정상정복에 대한 자부심과 기쁨의 표현으로 몇 차례 마음껏 포효를 한다.
<1222봉 헬기장에 도착하니 이제 비로봉이 지척입니다.>
<구룡사에서 올라오는 정상 밑 3거리입니다.>
<드디어 비로봉 정상에 올랐습니다.>
서둘러 헬기장을 떠나 3거리에 들어섰고 이제 비로봉까지 남은 300m 남았으니 벅찬 마음을 다잡으며 계단을 하나하나 올랐고 3거리에서 10분을 올라 비로봉 정상에 올라선다.
그런데 정상석의 위치가 바뀌었고 정상석의 형태와 모양도 달라졌는데 예전보다 품격도 있고 모양도 좋아 보인다.
이곳의 데크시설과 정상석 역시 작년 10월초에는 공사 준비로 이곳에 옮겨 있었는데 11월 초에 새롭게 단장된 것을 보니 작년10월 중, 하순에 모든 공사가 완료된 듯하다.
◇다리실 들머리에서 치악산 비로봉까지 산행거리 17.2km, 산행소요시간 8시간22분, 해발 1288m, 현재시간 17시12분이다.
◎비로봉 정상에서
비로봉!
비로봉은 치악산의 제1봉이며 치악의 자존심이다.
비로봉을 품고 있는 치악산은 강원도 원주시와 횡성군에 접하고 있으며 본래는 가을 단풍이 아름다워서 적악산(赤岳山)이라 불렀으나 상원사의 전설로 널리 알려진 뱀에게 잡혀 먹일 꿩을 구해준 나그네가 그 꿩의 보은으로 목숨을 건졌다는 전설에서 붉을 적(赤)을 꿩 치(雉)로 바꾸어 치악산(雉岳山)이라는 이름이 유래되었다고 한다.
<용왕탑 뒤로 지나온 능선과 남대봉과 시명봉이 보입니다.>
산세가 웅장하고 경관이 뛰어나 원주시를 포함한 일대가 1973년 도립공원으로 지정되었다가 1984년에 치악산국립공원으로 승격되었다.
울창한 숲과 기암괴석 그리고 층암절벽으로 이루어진 사다리골·상원골·산성골·범골·입석골 등의 계곡, 구룡·세렴 폭포, 바위틈에서 솟아나는 약수 등의 명소가 많다.
이러한 치악산의 제1봉이 비로봉이다.
우리나라 명산의 정상 봉에서도 비로봉이라는 이름을 가진 봉우리가 여럿이 있는데 이 모든 비로봉의 유래는 동일한데 이는 불교에서 비롯된 비로자나불에서 앞의 비로를 따서 지은 이름이라고 하는데 비로자나불은 보통사람들의 눈으로 볼 수 없는 광명의 부처라고 한다.
비로봉에 올라 우선 인증 사진부터 찍었다.
<비로봉 전망대에서 향로봉을 배경으로 포즈를 취했습니다.>
<비로봉 정상에서 용왕탑과 신선탑을 앞뒤로 넣고 사진을 찍습니다.>
그리고 주변을 살피니 중앙 산신탑 아래에서 부부로 보이는 50대 초반의 남녀가 과일을 먹으며 쉬고 있어 먼발치 사이를 두고 서로 반갑게 인사를 나누었다.
잠시 후 가까이 와서 참외와 토마토를 조금 주었는데 산에서 먹는 과일이어서 맛도 있지만 세상 어떤 것이라도 남의 것은 내 것보다 더 맛있게 느껴진다더니 그래서 더욱 더 맛있는 것 같았다.
혼자 사진 찍는 것을 보고는 자청해 사진을 찍어주었고 필자도 그들에게 보답의 사진을 찍어주며 10여분을 이야기 하며 함께 시간을 보내고 이들은 먼저 하산을 하였다.
남쪽으로 시명봉과 남대봉 그리고 향로봉을 지나 발아래 헬기장을 지나 이곳 정상까지 개대한 공용이 큰 몸집을 트림하며 움직이는 듯한 풍경, 무어라 더 이상 붙일 수식어가 없는 장관인 치악능선을 말없이 본다.
자욱했던 박무가 사라지고 한 낮 뜨거웠던 열기도 기우는 태양을 따라 시들고 용왕탑과 산신탑 그리고 칠성탑을 감아 도는 거센 바람이 대지의 열기를 식힌다.
<비로봉 정상표지석을 넣은 비로봉의 풍경으로 정상석이 바뀌었음을 볼 수 있습니다.>
<정상에 있는 안내판으로 탑을 쌓은 분에 대한 기록입니다.>
중앙 산신탑 아래는 3개의 돌탑에 대한 안내판이 있는데 설명은 이러하다.
「치악산 비로봉에 세워진 돌탑은 원주시에서 제과점을 운영하던 용창중이라는 사람이 꿈에 “비로봉 정상에 3년 안에 3개의 돌탑을 쌓아라.”라고 하는 신의 계시가 있어 혼자 돌탑을 쌓았던 것인데 1962년 처음 쌓기 시작하여 1964년 5층으로 된 돌탑을 모두 쌓았으나 1967년과 1972년에 알 수 없는 이유로 무너졌던 것을 용창중씨가 그해 복원하였다. 1994년 이후 두 차례에 걸쳐 벼락에 맞아 무너진 것을 치악산 국립공원에서 복원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미륵탑 중 남쪽의 탑은 「용왕탑」, 중앙의 탑은 「산신탑」, 그리고 북쪽의 탑을 「칠성탑」이라고 한다. (용창중씨는1974년 작고하였음)
안내판을 읽고 주변을 서성이며 조망을 한다.
동남 영월 방면으로는 삼태산이 우뚝 솟았고 좌측으로 백덕산이 보이며 동으로 희미하게 청태산과 대미산 능선이 보이지만 북측 한강기맥의 태기산은 보이지 않았는데 계방산에서도 치악산을 볼 수 있으므로 날씨만 좋았다면 태기산이나 계방산도 볼 수 있었을 것이다.
또한 남쪽에서 원주시를 감싸고 있는 백운산은 가까운 거리임에도 형체만 보였고 백운지맥을 따라 이어지는 능선과 양안치에서 서쪽으로 분기한 덕가산 능선도 희미하게 보일 뿐이다.
<정상에서 본 서쪽의 조망입니다.>
<정상에서 본 동남쪽의 조망입니다.>
<정상에서 본 동남쪽의 조망이며 앞에 있는 돌 위가 예전에 정상표지석이 있던 곳입니다.>
<정상에서 본 동쪽의 조망입니다.>
그리고 영월지맥으로 이어지는 매봉과 감악산, 그리고 석기암봉과 그 뒤로 희미하게 제천의 용두산을 희미하게나마 볼 수가 있다.
비로봉 정상에서 오래 머물었지만 하산하고 싶은 생각은 별로 없었으니 서쪽으로는 붉은 노을이 생기기 시작하니 아직도 가야할 6~7km가 남았으니 하산을 준비한다.
계곡길로는 몇 차례 오르고 내려간 적이 있어 이번에는 사다리병창으로 하산하기로 하고 칠성탑으로 접근을 한다.
◎비로봉 정상에서 학곡리 버스종점 구간
비로봉 3개의 탑 중 칠성탑은 북측 조금 떨어진 곳에 있어 칠성탑을 찾지 않는 사람들이 다수로 필자 역시도 예전에 비로봉을 3번 오른 적이 있었지만 칠성탑은 산신탑에서 보았을 뿐 칠성탑까지 내려서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비로봉 북동쪽에 떨어져 있는 칠성탑입니다.>
<칠성탑에서 하산하며 본 구룡사로 이어지는 계곡의 풍경입니다.>
칠성탑에서 내려서면서부터 계단이 이어지기 시작한다.
계단을 따라 조금 내려서다가 계단 좌측에 붉은 꽃을 보았는데 요즘 붉은 꽃을 피우는 야생화는 큰앵초로 내려서던 발걸음을 멈추고 계단을 벗어나 스마트 폰으로 정성을 들여 사진을 찍고 돌아 서려는데 계단 아래 또 다른 큰앵초가 숨어 있었다.
이후 조금 더 내려서면서 여기 저기 큰앵초가 붉은 꽃을 나부끼며 갈 길을 막으니 나중에는 큰앵초에게 미안하다는 생각을 하며 내려섰다.
시명봉과 남대봉을 오르며 그렇게 찾아도 보이지 않던 큰앵초가 비로봉 부근에서는 많이 보였으니 큰앵초 꽃이 이미 졌다고 생각했는데 그런 건 아닌 것 같았고 시명봉이나 남대봉 주변에는 큰앵초가 서식하지 않는 것이다.
<올해 처음 만난 큰앵초입니다.>
<사다리병창은 예전과 달리 새로 정비를 하며 계단을 많이 설치했습니다.>
큰앵초 서식지를 지나 계단은 계속 이어졌으며 주변으로는 기암이 여기저기 서있었으며 곳곳에 쉼터도 많았지만 어두워지기 전에 하산을 해야 하므로 빗방울 같은 땀을 흘리며 빠르게 하산을 했다.
계곡의 물소리가 점점 가까워지고 한참을 내려섰는데도 금방 내려설 것만 같은 세렴폭포입구는 멀기만 했고 빠르게 계단을 내려서다 보니 무릎의 통증도 점점 크게 느껴진다.
좌측에서만 들리던 계곡 물소리가 우측에서도 들리니 사다리병창의 끝이 가까워 진듯했고 인내 계곡길과 합류하는 세렴폭포 입구에 내려선다.
<오래전부터 있던 암릉길로 새로 설치한 구간과 대조를 이룹니다.>
<사다리병창 길은 이러한 구간이 대부분입니다.>
사다리병창! 안내판의 설명에 의한 사다리병창의 유래는
거대한 암벽군이 마치 사다리 모양으로 되어 있고 암벽 사이에 자란 나무들과 어우러져 사시사철 도특한 풍광이 병풍처럼 펼쳐져 있다고 하여 사다리병창이라는 이름이 붙었으며 병창이란 이곳지방 사투리로 벼랑이란 뜻으로 절벽을 뜻한다.
사다리 병창에 대해서는 익히 들어 알고는 있었지만 가히 마의 길이었다.
그나마 내려오는 길이라 체력소모도 덜했고 등산로 정비를 하여 가파른 절벽지대에 계단을 설치하여 하산시간을 줄일 수 있었는데 무릎이 아픈 사람이 이곳으로 하산을 했더라면 아마도 하산시간이 배 이상 걸릴 수 있었을 것인데 이유는 대부분 계단을 설치해 일반 등산로보다 계단 등산로가 더 길 것 같이 느꼈기 때문이다.
사다리 병창을 내려서 계곡으로 가서 차가운 계곡물로 세수를 하며 정신을 차리고 구룡사로 향한다.(산행거리19.7km,소요시간10시간)
<사다리병창길과 계곡길이 합류하는 곳입니다.>
<세렴안전 센터에서 구룡사로 출발합니다.>
세렴폭포입구부터는 차량이 다닐 수 있는 비포장도로로 걷기는 수월하지만 장거리로 누적된 피로가 있어 생각보다 속도를 낼 수가 없다.
그래도 빠른 걸음으로 향했고 15분을 지나서 대곡야영장에 도착하였는데 자판기가 있다.
모두 마시고 싶은 음료수지만 그중 캔커피를 선택했다.
시원한 커피를 마시며 몸과 마음의 갈증을 풀며 걷다보니 어느새 구룡사 입구 구룡폭포에 도착하고 이내 구룡사 경내로 들어선다.
<대곡 야영장 앞을 지나며 자판기가 있어 캔커피를 마셨는데 맛이 최고였습니다.>
<구룡폭포 앞 구룡소를 건너는 사장교를 새로 건설했습니다.>
<다리 위에서 본 구룡소입니다.>
아무리 급해도 구룡사를 그냥 지나칠 수 없어 천왕문을 들어서 계단으로 올라선다.
계단을 올라서면 현대건축인 필로티 양식으로 된 보광루가 있는데 피로티 양식은 아래층은 공간으로 쓰고 2층부터 주거용 건물을 짓는 아파트나 빌라의 건축 양식을 말하는데 우리민족은 벌써 1000년전부터 이러한 양식으로 집을 지었는데 구룡사 보광루도 이러한 양식으로 지어졌는데 보광루는 사찰의 3문인 불이문을 겸하고 있다고 한다.
보광루 우측으로는 범종각이 있는데 범종각 내부에는 불전사물이 있는데 필자가 큰 사찰을 찾았을 때 제일 보고싶어 하는 것이 불전사물이다.
<구룡사의 불전사물 중 운판입니다.>
<구룡사의 불전사물 중 범종입니다.>
<구룡사의 불전사물 중 법고입니다.>
<구룡사의 불전사물 중 목어입니다.
구룡사의 목어는 너무 못생겼고 주둥이는 잘려나간 모습입니다.>
불전사물이라 함은 법고, 운판, 범종, 목어를 말한다.
첫째, 법고로 불전을 전하는 큰 북을 말하는데 이는 땅위에 있는 모든 생물을 제도한다고 한다.
둘째, 운판으로 운판을 울리는 소리로 허공을 맴도는 영혼을 천도하고 하늘을 나는 모든 생물을 제도한다고 한다.
셋째, 범종으로 지옥의 중생들이 모두 고통에서 벗어나 즐거움을 얻도록 하는 동시에 불법의 장엄한 진리를 깨우치게 하는데 있다고 한다.
넷째, 목어로 물고기는 항상 눈을 뜨고 있는 것과 같이 잠들지 않는 수행의 길로 인도한다고 한다.
이러한 불전사물은 거의 비슷한 형태를 띠고 있는데 목어는 그 형상이 사찰마다 독특하게 만들어졌다.
그런데 구룡사 목어는 몸통은 우직하게 생겼고 특히 머리는 주둥이가 잘려나간 기형의 물고기처럼 생긴데다 눈은 고양이 눈처럼 날카롭게 생긴 게 너무나 독특했다.
보광루와 마주보고 있는 대웅전은 문은 열려있었지만 사찰에 가서 예불을 드리는 일은 없으므로 올라서지 않고 멀리서 보고 구룡사를 내려섰다.
구룡사를 나와 계곡을 따라 10분이면 버스종점에 도착하는데 매표소 맞은편에 학곡리 금표가 있는데 날이 어두워 글씨를 읽을 수는 없었지만 의외의 소득이었다.
<학곡리 금표가 매표소 앞에 있을 줄 생각도 못했는데 행운 이었습니다.>
<어두워져 방위에 음각한 황장금표라는 글씨가 흐릿하게 보입니다.>
<구룡사 매표소를 지나는데 왜 산을 가는데 문화재관람료를 받는지 이해가 안 됩니다.>
<긴 산행이 종료되는 순간이며 구룡사 버스 종점에 도착합니다.>
학곡리보다 먼저 봉산금표가 발견된 곳은 문경 명전리 황장산이며 학곡리 금표도 보고 싶었는데 뜻하지 않게 볼 수 있었으니 뿌듯한 마음이었다.
어둠속에 금표를 보고 나서니 버스종점이며 원주역으로 출발하는 버스는 19시50분으로 10분의 여유가 있었다.
◇다리실 들머리에서 구룡사가 있는 학곡리 버스종점 날머리까지 산행거리 22.97km, 산행소요시간 10시간50분, 해발327m, 현재시간 19시38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