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악산 산행기
모악산 산행기
산행일시: 2009년11월 16일(월)
누구와: 나 홀로
산행거리: 약 9.7㎞
산행시간: 5시간45분(09:40~15:25)
산행코스:모악산주차장(11:40)-대원사(12:10)-무제봉(12:40)-장군바위(12:45)-정상(상봉,13:05.793.5m)-남봉(13:50,775m)-배재(14:25,531m)-금산사(14:55)-금산사주차장(15:25)
100대 명산을 찾아 나섭니다.
용산에서 6시50분에 떠나는 무궁화호 첫차를 타기위해 서둘러 집에서 나왔으나 버스타기위해 시간을 보내다 중림동에서 내려 택시를 타고서야 3분전에 용산역에 도착하고 매표를 한 후 가까스로 열차에 오를 수 있었습니다.
3시간 40분만에 전주역에 도착 했으나 어디서 모악산으로 가는 버스를 타는지 몰라 주차장 관리인에게 물으니 건성으로 알려주니 전혀 도움이 되질 않아 가까운 버스정류장에서 어느 아주머니에게 물으니 친절하게 안내해주어 아주머니가 일러 준대로 중앙시장 행 버스를 타고 이어 모악산 행 버스를 타니 모악산 입구의 관광단지 주차장에 도착을 할 수 있었습니다.
12시가 다 되어서인지 일찍부터 서둘러서 산에 갔다 내려오는 사람들이 많았고 특히 주차장 근처부터 전주 현대백화점 직원들의 단체산행으로 내려오는 대로 식당으로 안내하느라 길거리가 현대백화점직원들로 꽉 메우고 있었습니다.
입구에 도착하니 2m가 넘는 대리석으로 완주군에서 세운 母岳山 입석을 카메라에 담고 옆에 있는 안내판의 주요 탐방로를 보고 대원사 코스로 산행하기로 정하니 정상까지는 1시간 30분이 소요되는 3km로 멀지도 않고 지루하지도 않은 알맞은 거리였습니다.
안내판 옆에 있는 모악산의 유래에서는 모악산은 전설에 의하면 정상아래 있는 쉰길바위 모양이 아기를 안은 엄마의 형상을 닮아 모악산이라는 산 이름이 생겨나게 되었다고 하는가 하면 옛날에는 순수 우리말인 엄뫼 또는 큰뫼라고 불리었는데 엄뫼는 나중에 한자로 표기하면서 모악산이라고 불리게 되었다고 하기도 하며 큰뫼는 크다는 것을 금(金)으로 음역하여 금산이라고 부르기도 한다고 합니다.
또한 모악산이 품고 있는 금산사는 문화재도 많지만 경치로도 호남의 4경의 하나로 꼽힙니다.
호남 4경으로는 첫째가 금산사의 봄 경치(母岳春景), 두 번째가 변산반도의 녹음(邊山夏景), 세 번째가 내장산의 단풍(內藏秋景), 네 번째가 백양사의 겨울설경(白陽雪景)이라고 하니 모악산을 다녀오지 않고 호남을 구경했다는 말은 어불성설이라 할 것입니다.
<선녀가 목욕할 곳이 없었나?>
입구로 들어서 5분여를 오르니 선녀폭포와 사랑바위가 나오니 전설은 이러합니다.
「먼 옛날 이곳 선녀폭포에서는 보름달이 뜨면 선녀들이 내려와 목욕을 즐기며 수왕사 약수를 마시고 신선대에서 신선들과 어울리곤 하였는데 어느 날 이곳을 나무꾼이 선녀들의 아름다운 자태를 보고 병을 얻게 되었다.
선녀들을 한 번 더 보는 게 소원인 나무꾼은 보름달이 뜨자 선녀들을 훔쳐보던 중 뜻밖의 한 선녀와 눈이 마주치게 되었다.
그리고 이 둘은 대원사 백자골에서 사랑을 나누며 입을 맞추는 순간 뇌선벽력이 울렸고 이 두 사람은 점점 돌로 굳어지고 말았다.
돌이 된 두 남녀의 모습이 마치 떨어질 줄 모르고 열열이 사랑한 사랑을 속삭이는 듯하다 해서 사랑바위라 부르며 이곳에서 지성을 드리면 사랑이 이루어진다. 」 고 전합니다.
사랑바위를 지나 대원사로 오르는 길은 경사는 있어도 오르기는 부담도 없고 좋았습니다.
<대원사>
현대백화점 직원들의 하산길과 겹쳐 지체가 되고 어느 정도 교행이 이루어진 후 대원사를 지나니 한가해 진 분위기에 속도를 내 봅니다.
얼마 오르지 않아 수왕사 입구에 도착하니 또 다른 산악회 회원들이 시끌벅적거리며 소란을 피우니 수왕사 약수라도 마시며 쉬었다 가려던 생각을 접고 능선에 도착하니 중인리에서 올라오는 길과 만나고 이곳에서 우측은 금성산으로 이어지고 좌측은 무제봉을 거쳐 정상으로 이어지는 길입니다.
안부4거리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무제봉을 오르니 올라온 일대가 한눈에 들어옵니다.
<무제봉에서본 정상과 장군바위>
무제봉 한쪽에 있는 무제봉을 알리는 안내판에는 「무제봉은 예부터 기우제를 드리던 곳으로 전해지고 있으며 바로 위 장군바위(쉰길바위)는 옛부터 신성시 되는 곳으로 명당으로 생각하고 장군봉 줄기에 묘를 계속해서 쓰니 가문이 들어 입산 금지령을 내리기도 했으며 무제봉에서 기우제를 드리기 위해 땅을 파면 해골이 수 없이 나오고 해골이 나오면 비가 내렸다.」고 기록했습니다.
<장군바위>
<장군바위에서 본 무이방향>
<장군바위에서 본 전주방향>
무제봉에서 사방을 조망하고 장군봉에 도착하여 정상과 구이지역과 전주시내 등을 조망합니다.
그러나 모악의 근원이 되었다는 어미가 자식을 앉고 있는 형상이라는 쉰길바위는 어느 곳에 있는지?, 어떤 바위인지 알 길이 없습니다.
어미가 자식을 앉고 있는 형상의 쉰길바위를 찾으려 했지만 그 모습은 찾을 수 없었고 현대인이 살아가는데 필요한 모든 정보를 송신, 송출하는 정상의 송신소가 현대인의 모악이 아닐까 생각을 해봅니다.
동장군이 동반한 풍장군의 성화로 장군봉에 오래 머물 수 없어 정상 아래쪽 전망대로 자리를 옮깁니다.
전망대에 도착하니 대구지방에서 왔다는 단체 산악회에서 전망대를 점령하고 포터존을 막고 자리를 내어줄 생각을 안 하니 그렇다고 이를 어쩌겠나..........
전망대에서 구이일대를 내려다보며 한 폭의 그림같이 풍광에 빠져 한동안을 보내다 정상으로 발길을 돌립니다.
정상은 북봉으로 내려가는 길을 지나 송신소 안으로 들어가야 하는데 대부분의 산님들은 이러한 사실을 모르니 전망대가 정상으로 생각하고 북봉으로 가는 길로 내려서 금산사로 향하는데 대구에서 온 산악회원30여명도 예외는 아니어서 정상을 오르지 못하고 북봉으로 내려섭니다.
일반적으로 높은 산 정상에는 송신소가 많이 있으며 송신소는 일반인의 출입을 막고 있어 정상을 가서도 밟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 이곳 모악산 송신소도 처음에는 출입이 통제되는 줄 알았으나 출입문 앞에 가서야 출입이 가능하다는 것을 안 것이 천만다행이었습니다.
정상을 가기위해서는 송신소 출입문을 통해 계단으로 올라 전망대 계단 옆에 삼각점이 있는데 다른 산과 달리 정상석은 없고 정상임을 알리는 안내판이 있습니다.
<여기가 정상, 위는 원형 송신소 옥상 전망대>
그렇게 아무도 없는 정상으로 외롭게 오르며 정상 삼각점을 접수하고 삼각점 위로 있는 철계단으로 올라 전망대 옥상에 도착하니 산을 오른 사람들은 제법 됐었는데 정작 정상에 오른 사람은 혼자뿐으로 사방을 둘러보며 동서남북을 조망해 봅니다.
매서운 추위와 찬바람으로 전망대에 오래 머물지 못하고 전망대 아래로 내려서 송신소 문 앞에 바람이 막힌 통로에서 자리를 잡고 새벽에 정성으로 준비해준 집사람을 생각하며 식사를 하며 휴식을 취하니 몸도 많이 풀리는 듯했습니다.
이제 금산사로 내려서는 길을 북봉으로 잡고 갈 것인가 아니면 남봉으로 갈 것인가 망설이다 남봉 방향으로 정하고 정상에서 내려와 송신소 문에서 좌측 길로 들어서 한참을 내려섰다가 올라서 남봉에 도착을 하니 중년부부가 식사중이였습니다.
<남봉에서 본 정상>
간단한 인사를 나누고 장근재로 출발하며 뒤돌아서 본 정상의 위용이 그런대로 보기가 좋았으며 남봉에서 장근재로 가는 길은 길 양쪽으로 산죽나무가 군락을 이루고 있으니 대간을 가는듯한 착각 속에 쌀쌀한 바람과 함께 계속 길을 따라 갑니다.
멀리 보이는 화율봉이 점점 가까워지며 가고 있는 능선과 분리되는 듯한 시각현상이 일어나더니 이내 하나의 능선으로 이어지며 이내 장근재에 도착을 합니다.
남봉에서 1.4km로 떨어진 장근재에 도착하여 모악정을 경유하여 금산사로 하산하려 했으나 조금이라도 장거리를 하고픈 맘에 배재쪽으로 방향을 바꿔 능선을 넘고 또 넘어 지루함을 느끼는 산행으로 배재에 도착합니다.
잠시 숨을 고르고 청룡사방향으로 하산을 하다 휴대폰을 주워 확인을 하니 토요일 부산에서 왔던 한진중공업 직원이 분실한 것으로 하산 후 연락하여 전해 주기로 합니다.
가파른 길을 내려서 한동안 계곡 길을 내려오다 보니 청룡사로 향하는 포장도로가 나오고 이내 금산사를 지척에 두고 북봉에서 내려오는 도로와 만나게 됩니다.
잠시 내려와 금산사로 들어서니 당간지주가 눈에 들어옵니다.
미륵전은 너무나 인상적이었는데 많은 문화재와 긴 역사를 지닌 금산사를 시간적 여유를 가지고 감상해야 하는데 전주로 가는 차가 어디에 있으며, 몇 시에 있는지? 알지 못하는 상황에서 문화재 관람은 겉치레일 뿐이었습니다.
주마간산 식으로 금산사를 둘러보고 급히 서둘러 관광단지로 나오니 전주로 가는 버스가 나를 위해 대기하고 있는 것처럼 출발 직전이었습니다.
서둘러 버스에 오르니 바로 출발을 하고 아쉬움을 뒤로 한 채 점점 멀어져가는 모악산을 바라보며 언젠가 다시 찾을 날을 기약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