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영, 미륵산 산행기
통영, 미륵산 산행기
산행일 : 2014년12월03일
누구와 : 정산악회를 통해 친구와 함께
산행시간 : 12:00~15:30(3시간30)
산행거리 :약8.34km
주요산행처:금평마을입구(12:00)-구망1봉(12:37,303m)-현금산(13:10,330m)-정토봉(13:25,335m)-미륵치(14:18,263m)-미륵산 정상(14:12,461m)-띠밭등(14:45)-일운마을(15:30)
금평마을 입구~구망1봉 구간
참으로 오랜만에 떠나는 명산100산 산행이다.
산이 어디로 떠나는 것은 아니라고 느긋하게 생각하며 시간이 날 때마다 기회가 되면 혼자 또는 산악회를 통해 산을 오르고 있지만 올해 명산100산은 2번째 산행인 것 같다.
산을 시작한지 몇 년 밖에 되지 않은 고딩 친구 지한이는 기회만 닿으면 열일을 제치고 명산100산에 피치를 올리고 있으니 아마도 이 친구가 필자보다 먼저 명산100산을 먼저 등정할 것 같다는 생각이다.
열정을 가지고 산을 오르는 친구 지한이와 오늘 미륵산을 함께 했으니 오랜 기억으로 남을 것 같다.
먼 길을 달리며 비와 진눈깨비를 뚫고 함양땅으로 들어서니 비도 진눈깨비도 모두 사라지고 날씨만 좋았고 이 여세를 몰고 달린 버스는 예상보다 조금 늦은 시간인 12시에 금평마을 입구 로터리에서 모든 대원들을 무사히 토해낸다.
<금평마을 입구에서 산행채비를 하며 출발하는 대원들>
<공동묘지를 지나는 대원들>
마을 초입에서 들머리를 찾지 못해 잠시 우왕좌왕 하다가 밭둑을 가로질러 입산을 하여 조금을 오르니 공동묘지가 나타난다.
무성했던 잡풀이 금잔디로 바뀌고 깔끔한 등로를 따라 조금을 오르니 주능선과 맞닿고 이제야 주된 등산로로 접어든 것이다.
그러고 보면 들머리를 잘못 잡은 것이다.
도면으로 볼 때 산양읍사무소에서 능선을 타고 오르는 것이 정도로 생각되었는데 우리팀은 금평마을 초입에서 좌측으로 올라 주 능선과 합류한 것이다.
주능선에서 뚜렷하게 나 있는 길을 따라 올랐는데 하차지점에서 보았을 때 303봉을 오르기전 전망바위가 있었는데 주능선에서 우측으로 빗겨 있어서인지 전망대를 보지 못했다.
날씨가 쌀쌀한 탓에 대부분 외투를 입고 산행을 시작했던 대원들이 산행 중 곳곳에서 외투를 벗고 거침숨을 몰아쉬며 산을 오른다.
산행을 시작할 때만해도 우뚝 솟은 바위 암봉이 현금산 정상으로만 알았으며 올라서는 등산로에 현금산 500m라는 표식을 보았으며 표식을 지나 200여m 올라 암봉위에 섰는데 이곳은 현금산 정상이 아니고 303봉으로 산행을 시작한지 30분을 조금 넘겨 303봉에 도착했다.
그리고 산행기를 정리하며 303봉을 누군가는 범왕산 또는 범왕봉으로 표기하기도 했으며 다음지도에 의한 표기는 구망1봉으로 표기하고 있는데 303봉이라고 부르는 것보다는 다음지도에 표기된 구망1봉이 더 낳을 것 같아 이후 구망1봉으로 표기한다.
<구망1봉에 올라 정상을 배경으로 포즈를 취해봅니다.>
<이 녀석은 학교 친구로 산을 많이 다니는데 필자와는 첨 산행입니다.>
<구망1봉에서 바라본 풍경으로 상촌마을과 좌측으로는 정토봉이 중앙에는 정상이 보입니다.>
구망1봉은 조망이 뛰어나다.
가야할 미륵산 정상과 정토봉이 거침없이 조망되며 통영 앞 바다의 바다위에 떠 있는 섬들이 한 눈에 들어온다.
먼저 올라선 대원들이 지나간 자리에서는 뒤 이어 올라온 대원들이 절경을 카메라에 담는다.
처음으로 친구와 함께 하는 산행으로 배경이 좋은 곳을 찾아 서로 사진을 찍어주며 시간을 보내다 보니 후미가 되었다.
서둘러 앞서간 대원들의 뒤를 이어간다.
구망1봉 건너편의 봉우리는 구망1봉과 높이는 비슷하며 직선거리로 200m도 되지 않으나 V계곡을 이루고 있어 가파른 내리막을 내려서 안부를 지나 다시 가파른 경사를 오르는 수고를 감내해야만 한다.
그렇게 다시 올라선 봉우리에는 아무런 표식이 없으며 도면을 보니 현금산은 한동안 더 가야하며 이곳은 도면상 315봉으로 다음지도에는 이곳을 구망2봉으로 표기하고 있으므로 필자도 318봉을 구망2봉으로 표기한다.
<구망2봉으로 불리는318봉으로 친구가 가야할 방향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구망2봉의 정점이지만 아무런 표식이 없이 표지기만 달려있습니다.>
구망2봉을 지나 등산로는 평지를 걷는 듯 아주 순탄하며 약200m를 가면 이정표가 있는 3거리를 만나는데 좌측은 점심이고개에서 올라와 주능선과 합류하는 지점으로 이정목 기둥에 누군가 현금산이라 메모를 했으므로 많은 사람들이 이곳이 현금산으로 착각을 할 수도 있으나 사실 현금산은 더 가야하는데 다음지도에는 현금산의 정상을 이정표가 있는 곳으로 표기했으니 문제가 될 수도 있으나 국립지리원에서 지정하는 현금산의 위치는 송신탑이 있는330봉이라고 한다.
<통영 미항의 풍경입니다.>
통영의 옛 이름은 충무였습니다.
충무김밥의 원조이며 충무공의 호국정신이 깃든 곳이며 지략을 유감없이 발휘하던 곳으로 충무공의 사당이 있는 곳이기도 합니다.
동양의 나폴리라고 불리는 이곳은 미항(美港)중의 미항입니다.
필자는 얼마전만 해도 미륵산은 미항 한쪽에 붙어 있는 육지의 산으로 알았었는데 미륵산은 미륵도에 있는 섬으로 미륵산을 가기위해서는 좁기는 하나 바다를 건너야 하는데 미륵도와 통영을 이어주는 다리인 통영대교나 충무교를 건너야 한다.
<많은 항구가 있음에 이곳이 미항이라는 수식어가 붙은 이유를 알 수 있습니다.>
<전망대에서 통영항을 배경으로 포즈를 취했습니다.>
이정표를 지나 무명봉을 넘으면 좌측으로 작은 전망대가 있는데 이곳에서는 통영항과 통영대교를 가까이서 내려다 볼 수 있는 특권이 주어진다. 물론 정상이나 정토봉에서도 조망이 가능하긴 하지만 보는 방향에 따라 차이가 나기 때문이기도 하다.
전망대에서 친구와 함께 시간을 보내고 10여분을 진행하면 송신탑이 있는 봉우리가 나온다.
현금산에는 손신탑이 3개가 가까이에 있는데 첫번째 만나는 송신탑이 현금산의 정상인데 현금산이라는 산 이름은 어떻게 붙여지게 되었을까?
현금산의 유래는 이러하다고 한다.
현금산의 유래를 살펴보니 정상의 북쪽 벼랑에 폭포가 있는데, 떨어지는 폭포수가 마치 하늘에서 고운 비단을 길게 드리운 것과 같다하여 현금산이라는 지명을 얻었다고 전해지며 이 지방의 옛 사료인 「통영지」에는 빙암으로 기록하고 있다는데 이는 겨울철에는 폭포가 얼어 빙벽을 이룬다는 뜻의 지명이라 하니 폭포와 연관이 있는 산은 맞는 것 같은데 그렇다면 계절마다 4게의 이름은 아니더라도 겨울과 겨울을 제외한 3계절 이름이라도 있었으면 하는 생각을 해본다.
<송신탑이 있는 이곳이 현금산 정상입니다.>
이곳이 현금산 정상으로 사전에 예습을 하지 못해 정상의 자세한 현장을 담을 수가 없었는데 현금산 정상에는 정상석은 고사하고 아무런 표식도 없으며 산행하는 주능선 곳곳에서 조망이 뛰어난 조망처가 많지만 정작 현금산 정상에서는 잡목들로 조망은 열리지 않는다.
휴대폰 GPS에 의하면 들머리로부터 현금산 정상까지 산행거리 2.91km, 소요시간 1시간13분, 해발 330m이다.
현금산~정토봉 구간
현금산에서 정토봉 구간은 멀지 않다.
현금산 정상부에는 통신탑이 3개가 설치되어 있는데 맨 먼저 만나는 송신탑은 보잘 것 없는 구형이며 나머지 2곳은 제대로 시설을 갖춘 송신소로 모두 등산로 옆에 세워져 있지만 눈여겨보지 않고 지나쳤다.
송신탑이 있는 곳을 내려서는 좌측에는 움막 같은 작은 시멘트 건축물이 있는데 군부대 건축물로 보였으나 현재도 사용 중인지는 알 수가 없다.
건축물이 있는 곳을 내려서 헬기장을 지나고 정토봉이 마주 보이는 구멍바위에 도착을 한다.
좌측으로는 대원들 10여명이 한 자리에 모여 점심을 겸한 간식을 하고 있다.
<구멍바위에서 바라 본 정토봉과 정상의 풍경입니다.>
<구멍바위를 내려서 안부에서 본 정토봉이 시루바위처럼 보입니다.>
<안부를 지나 정토봉을 오르는 로프구간입니다.>
구멍바위 우측으로 조심스럽게 돌아가면 정토봉이 뚜렷이 보이는데 당시만 해도 이곳이 구멍바위인지 알지 못했는데 현금산도 그렇고 구멍바위도 지자체에서 안내판을 세우고 유래나 전설 등을 알려준다면 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기억하고 다시 찾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해본다.
아무튼 구멍바위에서 정토봉을 바라보며 사진을 찍긴 했으나 정작 구멍난 모양은 사진에 담을 수가 없었다.
구멍바위를 내려서 안부에 내려서면 정토봉은 잡목사이로 우람하게 다가서고 다수가 직진으로 우회하여 정토봉울 오르지 못하고 지나쳤으며 직벽에 가까운 암릉을 기어오르면 정토봉이다.
올라선 정토봉은 바람이 너무나 거세게 불었다.
사진을 찍기위해 포즈를 취하는데 심술궂은 바람은 모자를 벗겨 올라섰던 길인 정토봉 아래도 던져버렸는데 다행히도 뒤이어 올라선 대원이 주워오므로 수고를 덜 수 있었다.
<정토봉을 올라선 친구가 흡족한 모습으로 포즈를 취했습니다.>
<정토봉의 풍경입니다.>
<정토봉에서 포즈를 취해 봅니다.>
정토봉은 이곳 사람들은 작은망이라 불렀고 미륵산 정상을 큰망이라 불렀다고 한다.
통영시청 관광과에 큰망과 작은망의 의미에 대해 물어보니 망(望)이란 바라거나 멀리 바라보는 장소를 뜻하는 것으로 쉽게 봉우리로 이해하면 된다는 답변이었고 정토에 대해서는 큰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다는 답변이었지만 정토란(淨土)란 직역을 하면 깨끗한 땅이지만 정토의 의미는 부처와 보살이 사는 곳으로 번뇌의 구속에서 벗어난 아주 깨끗한 세상이라는 뜻으로 불교와 연관이 있는 단어이다.
그런가 하면 도면상에 정토봉으로 표기한 이곳을 다음지도에서는 미륵봉이라 표기하고 있는데 어느 표기가 맞는지는 알지 못하지만 필자의 생각으로는 정토봉 보다는 산 이름을 딴 미륵봉 또는 미륵2봉이라고 부르는 것이 더 좋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정토봉에서 본 현금산과 한려수도의 섬들의 풍경입니다.>
<정토봉 상단부에 있는 작은 돌탑입니다.>
정토봉은 2단으로 우리가 올라선 곳은 아래봉이며 정토봉 정상에는 작은 케언 2개가 있으며 공간은 좁으며 통영항이나 정상 그리고 들머리와 이제까지 걸어온 길이나 발아래 상촌마을의 평화로운 모습을 한 눈에 관망할 수 있는 곳이다.
산행기를 정리하며 보니 1월달에 올린 사진에는 정토봉 케언 아래 오석으로 된 정상석이 있었으나 케언 주변에는 전에 보이던 정상석이나 정토봉을 알리는 표식은 하나도 없다.
휴대폰 GPS에 의하면 들머리로부터 정토봉까지 산행거리 3.45km, 소요시간 1시간30분, 해발 328m로 도면 335m와 7m의 오차를 보인다.
정토봉~미륵산정상 구간
정토봉을 벗어나 무조건 앞서가는 친구를 불러 세워 잠시 휴식을 겸한 간식을 취한다.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대원들이 속속 지나가고 나중에는 후미대장까지 함께 했으니 우리가 후미가 된 셈이다.
서둘러 휴식을 마치고 정토봉 안부를 내려서 경사진 등산로를 따라 잇는다.
특별한 지형지물 없이 20분을 지나 넓은 안부에 도착하니 이곳이 미륵치이다.
<여우치라고도 불리는 미륵치로 내려섭니다.>
미륵치로 내려서는 길 좌측으로는 성곽의 흔적이 있다. 당시만 해도 성곽이 있는지 알지 못했으므로 성곽 같다는 필자의 말에 친구는 어이가 없다는 투로 성곽을 부정했는데 정리하는 과정에서 이곳이 성곽터였음을 알 수 있었다.
미륵치는 미륵도의 중앙 미륵산을 넘는 중요한 고개로의 구실을 했을 것이다.
교통이 발달하기 전에는 미륵도의 중심이 되었던 항구가 있는 봉평동과 금평을 연결하는 중요한 고개였을 것으로 이 고개에서 도깨비가 자주 출현했다고 하는 이야기가 있어 미륵고개에 많은 애환이나 전설이 있을 것으로 생각되어 통영시청 관광과에 물어보았으나 특별한 전설이나 사연이 없다고 했으나 그대로 믿기지 않는 부분이기도 했다.
고개 전 후로 큰 평상이 있는 것으로 보어 여름철이면 많은 사람들이 이곳에서 휴식을 보내기도 하는 곳 같았으며 상촌방향이나 용화사 방향으로도 많은 사람들의 통행이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미륵치에서 정상으로 향하는 암릉지대의 첫번째 만나는 계단입니다.>
<정상을 오르는 길의 기암과 뒤로 현금산의 풍경입니다.>
<미륵치에서 정상으로 향하는 암릉지대의 두번째 만나는 계단입니다.>
미륵치를 지나 정상으로 오르는 길은 상당히 가파른 지역이다.
하지만 주변의 경관이나 조망이 뛰어나 휴식 반, 산행 반으로 즐기며 오르면 꼭 힘든 산행만은 아니다.
바위와 바위 사이를 지나 조망이 터지는 곳곳을 지나며 오르면 약품함이 있는 곳을 지나 스텐레스 스틸로 설치한 계단을 오르고 이어서 목재 계단으로 오르며 동서남북 사방이 모두 열린다.
정상이 보이고 정상 주변으로는 많은 사람들이 보이며 바위절벽에 뿌리를 내린 소나무 뒤로 넓은 바다와 바다위에 떠있는 다도해가 보인다.
<이제 정상이 보이니 거의 다 올라왔습니다>
<정상 전위봉으로 불안전 스러운 산불감시초소가 있습니다.>
거센 바람이라도 불면 금방 날아갈 것 같은 벼랑위에 산불감시초소가 위태롭게만 보였고 사방 조망은 정상에서 한다는 생각으로 발걸음을 재촉해 정상에 올랐다.
정상석 주변에는 사람들이 줄을 서 있어 주변부터 둘러본다,
정상은 무척 넓고 정비가 잘되어 있는데 사방으로 데크전망대를 조성하여 위험에 따른 안전사고는 해소했으며 이곳에는 등산객뿐 아니라 케이블카를 이용하는 순수 관광객들이 많으므로 안전에 만전을 기한 것 같았다.
<미륵산 정상의 풍경입니다.>
그러나 어느 쪽이 북쪽이 되는지 방향감각이 없다.
그래서인지 정상석 우측에는 원형 대리석으로 방향표지석을 세웠으며 방향표지석에는 나침판과 같이 방향을 표기했으며 고려시대부터 이곳은 봉화대로 이용하던 곳이라는 음각으로 안내를 하고 있다. 정상은 넓기는 하지만 평평한 헬기장 형태가 아니고 자연 그대로의 지형에 데크로 조성한 광장이다.
미륵도는 한려해상국립공원에 속한 섬이며 정상에는 바라보는 위치에서 보이는 다도해의 모습을 찍은 대형 사진이 3곳이 있어 사진을 보며 바다위에 떠있는 많은 섬들을 구분할 수 있도록 배려를 했는데 사량도와 욕지도를 찾아보고 한 때 우리 땅이었던 대마도의 방향으로 보니 보이는 듯 마는 듯 어렴풋하게 보이는 것 같았으며 마산의 무학산도 희미하게 머리를 내밀고 있다.
<미륵산 정상에서 포즈를 취했습니다.>
휴대폰 GPS에 의하면 들머리로부터 미륵산 정상까지 산행거리 4.46km, 소요시간 2시간15분, 해발 452m로 도면에 표기된 461m와는 9m의 오차가 있다.
미륵산의 유래
우리나라 전역에 있는 많은 산들은 자기 나름대로 이름을 가지고 있으며 산명은 그 산의 톡특한 지형이나 전설 등 산명에 대한 유래를 지니고 있다.
미륵산은 어떤 이유에서 미륵이라는 이름을 가질 수 있었을까?
백과사전이나 여러 사람들이 산행기에서 밝힌 유래는 불교와 연관 지은 내용이다.
또한 미륵산이라는 산명이외도 용화산이라고도 부르는데 이는 어떠한 이유에서 일까? 정토봉에서 간단히 언급한 것과 같이 큰망과 작은망은 어떠한 의미인가?
미륵치에는 어떠한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을까?
이러한 의문들이 풀리지 않아 필자는 통영시청 관광과(055-650-4681) 이종애 선생님에게 전화로 물어보았다.
<통영항과 주변의 풍경입니다.>
<정상에서 본 거제도, 대마도 방향의 풍경입니다.>
<정상에서 본 사량도 방향의 섬들입니다.>
<정상에서 본 욕지도, 연화도 방향의 섬들입니다.>
이 산의 산명은 미륵산이며 용화산이라 부르는 것은 “산 아래 천년고찰 용화사가 있어 사람들이 용화사가 있는 산이라고 부르다 줄여서 용화산이라고 부르게 된 것 같다.“는 답변이었다.
미륵산의 유래에 대해서는 ”섬 중앙에 높게 솟아 남서쪽으로 길게 뻗은 능선이 마치 용이 누워 트림을 하는 형상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용은 순수한 우리말로 미르라고 하여 처음에는 미르산이라 했을 것입니다. 미르산이라고 부르던 이 산이 미륵산으로 변한 것은 경상도 사람들의 센 발음과 억양이 가미되어 미르산이 미륵산으로 불리게 되었으며 종당은 미륵산이 된 것입니다.“라고 답하였다.
많은 사람들이 말하는 미륵산은 미륵존불이 미래에 강림하실 것이라 해서 미륵산이라고 한다는 물음에 웃으면서 사람들이 불교용어로 연관지어 하는 말이라는 답변이었는데 미르와 미륵? 설명대로 그럴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으며 불교용어를 빌어 산명을 지은 것 보다는 용(龍)의 순수 우리말인 미르에서 비롯되었다고 믿는 것이 더욱 더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정상에서 본 봉화대의 풍경입니다.>
미륵도 중앙에 높게 솟은 미륵산은 육지의 고산에 비해 높지 않은 산이지만 산세가 기암과 기봉을 수 없이 지니고 있으며 봄이면 진달래가 만발하고 여름이면 골마다 많은 물이 흐르고 가을이면 계곡과 능선이 단풍으로 물들며 곳곳에 명찰과 천년고찰 용화사를 품고있는 명산임을 강조하는 통영의 주장을 충분히 이해할만하다.
미륵산 정상~단암마을입구 버스정류소 구간
미륵도는 한려해상국립공원에 포함되어 있다.
정상에는 삼면에 대형 실 사진을 찍어 안내판을 만들고 바다위에 떠있는 섬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기록하여 주변을 감상하는데 편의를 주고 있다. 사진과 실물을 비교하며 찾고자하는 섬들을 찾아보며 시간을 보내고 정상석으로 왔지만 아직도 정상석 주변에는 많은 사람들이 있어 결국은 줄을 서서 차례를 기다려 친구와 함께 3장의 사진을 남길 수 있었다.
<친구와 기쁜 맘으로 정상에서 한 컽 했습니다.>
필자가 주변 조망에 시간을 보내는 것이 답답해 보였는지 함께 사진을 찍고는 친구는 계단을 따라 하산을 시작했는데 정상에서 머무는 사이 우리일행은 대부분 하산을 시작한 것이었고 후미대장은 우리가 하산하기를 기다리는 모양이다.
서둘러 정상을 내려서니 또 다른 암봉이 있는데 미륵산의 제2봉이기도 한 이 봉우리는 봉수대라고 안내판이 세워져 있는데 안내문에 의하면 경상남도 기념물 제210호인 통영 미륵산 봉수대는 언제 세웠는지 알 수는 없으나 부산 동래 다대포 봉수대에서 우산봉수대의 중간 봉수로의 역할을 했다는 것이다.
친구의 부름을 마다하지 않고 봉수대로 올랐다.
<봉화대에 올라 바라 본 한산도 방향입니다.>
이순신 장군이 거느리는 조선 수군이 겁도 없이 당포에 정박해 분탕질하던 왜선 21척을 단박에 박살냈다고 하는데 왜군을 물리친 한산대첩지와 유명한 한산도가 손에 잡힐 듯하고, 그 뒤로 웅장한 산세를 이루는 것이 거제도의 노자산능선이다.
<봉화대에서 본 케이블카 상부역사와 골프장을 만들기기 위해 파헤쳐지는 산림현장입니다.>
미륵산 정상과 케이블카 상부역사가 내려다보이고 역사 아래는 흉측스러운 산림훼손의 현장이 보인다.
서둘러 봉수대를 내려서 케이블카 상부역사로 가지 않고 용화사 방향으로 내리막길로 내려선다. 많은 사람들이 통행을 해서인지 길은 거칠고 정비가 시급했다.
길은 잠시 후 송림으로 바뀌고 삼림욕을 하는 기분으로 15분을 내려서면 도솔암과 띠밭등으로 갈리는 3거리 안부에 도착을 하는데 선두는 우측 띠밭등으로 안내지를 깔았다.
도솔암 길림길에서 완만한 경사길을 따라 우측으로 채 5분도 내려서지 못해 임도를 만나는데 임도 우측으로는 미래사로 가는 길이며 임도 좌측으로는 용화사로 이어지는 길인데 임도와 접한 곳에 띠밭등 또는 미륵등이라고 불리는 약수터가 있다.
<미륵등 약수터에서 약수 한 바가지를 마시고 정자를 지납니다.>
그러고 보니 오늘 산행이후 물을 한 모금도 마시지 못했다. 친구와 함께 약수터로 내려서 미륵산의 정기가 배어있는 약수를 한 바가지 듬뿍 퍼 마시고 임도를 따라 좌측으로 나선다.
임도를 따라 한 모퉁이를 돌며 만나는 잔디밭이 있다. 이곳이 띠밭등인데 띠밭등의 의미에 대해 통영시 관광과 이종애 선생님에게 물어보았는데 띠는 잔디를 뜻함으로 산 능선에 넓은 잔디밭이라는 뜻이라고 알려주며 예로부터 통영사람들이 즐겨 찾던 곳으로 이종애 선생님도 어린시절 이곳으로 늘 소풍을 나섰던 곳이라며 옛 추억을 상기시키는 듯 했다.
<능선에 있는 넓은 잔디밭이라는 뜻의 띠밭등에서 포즈를 잡았습니다.>
띠밭등에서 도남동으로 이어지는 소로 길로 들어서 소나무 수림으로 삼림욕을 하는 기분으로 5분여를 내려서면 5번 이정표를 만나고 잠시 후 다시 정자 쉼터가 있는 곳에서 4번 이정표를 만나며 정자를 가로질러 능선으로 올라 10분을 지나 미래고개를 지나며 다시 10분을 더 가면 우측으로 작은 바위 전망대를 만날 수 있다.
오늘 산행에서 마지막 접하는 전망대로 이곳에서는 미륵산의 정상부와 케이블카의 움직임을 볼 수 있는데 역광으로 이미지만 볼 수 있음이 아쉬웠으며 정상 아래쪽으로는 멀쩡한 산림이 심하게 훼손되는 현장을 가까운 곳에서 내려다 볼 수 있으며 가야할 방향으로 군부대로 여겨지는 건물이 보인다.
<마지막 전망대에서 바라 본 미륵산 정상부와 산림훼손의 현장입니다.>
산림의 훼손에 대해 궁금했었으며 궁금증을 해소하기 위해 통영시청 이종애 선생님에게 물어보니 골프장 공사를 하는 현장이라는 말을 듣고 아름다운 산을 훼손하며 돈을 벌겠다는 사업주를 떠 올리며 마음으로 저주를 했다.
마지막 전망대에서 내리막길을 따라 5분을 내려서면 군부대초소 앞 포장도로인 1021번 지방도로로 내려서게 되는데 이곳이 미래고개로 오늘 산행의 날머리가 되는 곳이며 이곳에서 포장도로를 따라 단암마을 방향으로 5분을 내려서면 우리 팀의 안식처인 버스가 있다.
<미래고개 날머리에 도착을 합니다.>
<산행 후 싫은 건 포장도로를 걷는 것입니다.>
<골프장을 만들기 위해 훼손되는 산림 현장으로 앞으로 1년 후에는 어떻게 변해 있을지요???>
휴대폰 GPS에 의하면 들머리로부터 단암마을입구 버스정류소까지 산행거리 8.34km, 소요시간 3시간30분, 해발 10m이다.
에필로그
우리가 이용한 버스는 한적한 단암마을입구 3거리에서 종주하는 대원을 기다리고 있었다.
정상에서 찍은 사진을 보면 그 시간에도 이곳에 있었는데 거의 후미에 속해 하산했을 때는 회장을 포함해 먼저 내려선 대원들이 식사 준비를 하고 있었는데 오늘의 식사는 특별한 것으로 활어 회를 택했다.
<먼저 집결지에 도착한 대원들이 산상의 만찬을 준비합니다.>
<만찬이 끝나고 커피를 마시며 상경 채비를 하고 있는 모습입니다.>
정산악회가 남해, 삼천포, 사량도 등을 갈 때면 삼천포에 있는 단골집에서 저렴한 가격으로 특별식으로 활어를 먹고는 했는데 통영까지 배송이 될 수 있나?를 타진하니 단골이라 특별히 배송을 해주기로 했다.
하여 산행하는 대원들의 의사를 물어 10.000원씩 캭출을 하여 회를 시켰으며 5시간 숙성을 시켜 산행 후 만찬이 열리는 것이다.
처음 함께한 산악회로 서로가 잘 알지는 못하는 사이지만 술이 한두 잔이 오가고 대화를 나누다 보면 오랜 친구같이 가까워진다.
즐거운 식사를 마치고 예정보다 이른 시간에 단암마을을 떠나 통영을 지나 함양에 이르니 이제까지 잠잠하던 기상이 진눈깨비를 동반한 거친 바람이 차창을 사정없이 때린다.
산행궤적입니다.